프로메테우스의 동생 에피메테우스
인간과 여러 동물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능력을 배분해 주는 일을
맡았다. 그는 여러 가지 유익한 기능을 동물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러나 마침내 인간의 차례가 됐을 때는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다 써버려 아무
것도 줄 것이 없었다. 빨리 달리거나 하늘을 날지도 못하고, 힘이 세거나,
뿔이나 상아가 있는 것도 아니고 털도 머리털 정도밖에 없으니
그 자체로는 생존조차 어려웠다.
이 곤란한 상황을 형에게 상의하자 프로메테우스는 하늘로 올라가 여신 아테네의
수레에 달려 있는 불을 훔쳐와 인간에게 건네주었다. 이렇게 불의 사용법을 배운
인간은 다른 동물보다 월등한 존재가 됐다고 한다.
그리스인이 이미 자각했듯이 인간의 육체는 그 구조와 기능에 있어 전혀 전문화돼
있지 않다. 초식동물이나 육식동물의 이는 풀이나 고기를 뜯기에 알맞게 발달돼
있지만, 인간은 그 어느 것도 아닌 어정쩡한 이를 가졌다. 빨리 뛰거나 나무를
타거나 헤엄치는 그 어느 것도 쉽지 않은 팔다리를 가지고 있다. 두더지는 땅을
파는 재주가 있고 돼지는 과식하지 않는 재주라도 있지만, 인간에겐 그것마저 없다.
헤르더가 말한 대로 인간은 '결핍을 지닌 존재'다.
동물의 이런 전문화된 신체 구조는 거의 전적으로 본능에 의해 작동된다.
그래서 동물은 본능만으로도 살아갈 수 있지만, 전문화된 신체 기관을 갖지 못한
인간에게는 기본적으로 그것이 불가능하다.
생명력에서의 이러한 약점에도 불구하고 기후나 지형 조건 등의 제약과
상관없이 지구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살아가는 유일한 고등 생명체가 바로 인간이다.
이는 주어진 생물학적 제약을 지각과 학습능력으로 극복하기 때문에 가능해진다.
본능에 지배받는 동물의 삶은 특정 환경에 전적으로 고착될 수밖에 없지만, 본능에서
유리된 인간의 삶은 겔렌이 말한 대로 '대세계적(對世界的) 개방성'을 지니게 된다.
본능만으로 살아갈 수 없는 인간은 이전의 문명이 만들어 놓은 기반 위에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 인간은 생물학적 출생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교육이라는 문명의 전수과정을 거치면서 사회 속에서 형성돼 가는 존재다.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것은 이처럼 교육 때문에 비로소 가능하므로 교육은
그 자체가 인간 형성의 핵심적인 요소가 된다.
그러면 오늘의 우리는 우리의 2세들을 제대로 교육하고 있는가.
오늘날 대학은 특수 전문인 양성에 자신의 역할을 한정시키고 있다. 그래서
문명의 기반인 인문학과 기초과학은 날로 위축돼 간다. 중등 교육에서도 수많은
과목을 모두 잘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정작 기본적인 언어.논리 교육이나
수학.과학 교육 등은 시간 수나 교육 내용 모두에서 충실하지 못하다.
초등교육에서 대학교육에 이르기까지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토론하고
많이 쓰게 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문명에 대한 기본적 이해는 불가능해진다.
문과.이과 구분없이 기본 교육의 과정을 충실히 거쳐야 학생들은 철학과 역사,
예술에 대한 안목을 확보하고 자연과학의 성과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래야만
풍성하게 살아가는 삶을 만드는 역할을 교육이 수행하는 것이 된다.
인류가 지금까지 쌓아 온 문명의 자양분을 두루 흡수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반은
교육과정 안에서 형성돼야 한다.
양형진 고려대 교수.물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