江雪 강과 눈
강설 柳宗元유종원
千山鳥飛絶 천산조비절 천개의 산에 새 나는 것 끊기고
萬逕人蹤滅 만경인종멸 만개의 길에 사람 발자취 멸하였다
孤舟簑笠翁 고주사립옹 외로운 배 도롱이에 삿갓 쓴 늙은이
獨釣寒江雪 독조한강설 홀로 낚시질하는 차가운 강과 눈
제목은 江雪. 시의 맨끝에도 江雪이 나오는데 앞에 寒이 붙었다. 江雪을 어떻게 번역해야 할까? ‘강과 눈’으로 일단 중립적으로 번역하는 것이 좋아 보인다. 그래서 寒江雪은 차가운 강과 눈이 된다. 추운 겨울 눈이 내리는 날은 대부분 포근하지만 여기는 차다. 포근한 날에는 눈이 내려도 강에 바로 녹아버리면 쌓이지 않는다. 차가운 날씨에는 강물이 꽝꽝 얼지는 않아도 살얼음은 얼었을 것이다. 여기 이 강에는 눈이 쌓여 있을 것이다. 이 노인은 눈이 내리기 전부터 살얼음을 깨면서 배를 몰고 강 중류에 와서 낚시질을 하고 있다. 눈이 내려 살얼음 언 강을 온통 하얗게 덮어버렸다. 산도 하얗고 강도 하얗고, 그래서 江雪은 ‘강의 눈’이라고 볼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강에 눈이 쌓여 있는 모습이 상상이 된다.
산과 하늘에서는 새들이 날아다니지 않는다. 수많은 길이 있지만 사람의 발자취가 끊겼다. 絶,滅이라는 말은 어감이 강하다. 완전히, 철저하게 사라졌다는 것. 외로운 배에 늙은이 혼자 있는 것이 더욱 돋보인다. 강까지 눈이 뒤덮이고 배도 눈에 뒤덮이고 삿갓 쓰고 도롱이 입은 늙은이도 눈을 맞아 하얗다. 배의 외로움과 노인의 혼자 있음마저 눈에 매몰되어 오히려 드러나지 않는다. 천지가, 거기에 있는 사물들과 사람이 모두 눈에 파묻혀 있는 와중에 유일하게 動的동적인 것은 낚시질. 낚싯줄로 전해지는 미세한 떨림이 滅絶멸절과 孤獨고독의 세계에서, 하얀 죽음의 세계에서 살아 있음을 發信발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