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18회 동기회 모임
봄의 계절 아카시아 향기가 코 끝에 와닿는 5월도 중순입니다.
동기 여러분 그동안 안녕하셨어요?
이번에는 작년 용산 국립박물관에 이어 두 번째 문화 프로그램으로
아시아 에서도 유일한 이국적 분위기의 ‘중남미 문화원’을 찿아 보려 합니다.
이곳 박물관에는 중남미의 대표적 문화인 마야, 아즈텍 ,잉카유물 등이 전시
되어 있고, 미술관에는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다양한 작품들 , 야외 조각공
원에는 현대 조각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또한 관람 후에는 스페인에서 전래된 맛 있는 빠에야(paeya)풀코스 메뉴도 준비
되어 있습니다. 우리들의 관람이 유익하고 즐거운 하루가 될것으로 여겨 지네요.
동기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18회 동기 회장 임 향 빈
일시: 2011년 6월15일(수요일) 오전 11시
장소: 중남미 문화원(031-962-7171) 매표소 (고양시 덕양구 고양동 302-1)
회비: 2만원
오시는길: (1)지하철 이용시: 지하철 3호선 삼송역 ( 8번출구 )
마을버스 053번 승차후 고양시장앞 하차 하시어
건너편 훼미리마트 골목 도보 10분이면 문화원 도착
(2)자동차 이용시: 강변북로 _ 자유로_ 통일로IC_ 문산방향 2km_
필리핀 참전비앞 신호에서 우회전 2km_ 문화원이정표
확인후 좌회전_ 문화원 도착
*참석희망자는 임원및 각반 간사에게 연락 바랍니다.
*http://cafe.daum.net/changduk18 에 자세히 공지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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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문화원 소개글]
중남미문화원은 1992년 중남미에서 30여년간 외교관 생활을 하셨던 이복형 대사와 그의 부인이신 홍갑표 이사장이 그 지역의 풍물을 모아 세운 문화의 장이다. 일반인에게 아직은 낯선 중남미 지역의 문화와 예술에 대한 이해를 돕고, 청소년들에게는 세계화 사회교육의 일환으로 꿈과 이상과 건전한 세계관을 심어주기 위한 취지로 건립되었다.
현재 중남미 문화원은 일반 개인 및 단체는 물론 학회, 외교단, 기업과 교육 기관 등에서 많이 이용하고 있으며 앞으로 문화, 예술의장소로서, 향토의 테마 문화 공간으로 육성해 나가고자 한다.
박물관(1994년 건립)에는 중남미의 대표적 문화인 마야, 아즈텍, 잉카 유물 등이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고, 미술관(1997년건립)에는 중남미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그림과 조각들이 전시되어 있다. 또한 조각공원(2001조성)을 비롯한 야외에는 중남미 12개국 등의 현대 조각가들의 작품이 공원 및 산책로, 휴식공간 곳곳에 자리잡고 있어 예술품을 통한 중남미 문화의 정취를 느낄 수 있게 마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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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복 형 원장 >
저는 거의 30년간을 중남미 지역에 외교관으로 있었습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했던 중요한 시기를 전부 그곳에서 보낸 셈입니다.
주 멕시코 대사를 지내면서 1세기 전에 유카탄 반도에서 쿠바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삶을 찾아 꿈을 안고 떠난 우리 이민의 후손들을 만나 보았습니다.
중남미의 나라들은 우리 나라가 어렵고 고달팠던 시절에 우리를 도와주었던 고마운 나라들입니다. 약 25,000년 전에 베링해를 건너 아메리카대륙으로 흘러간 종족이 우리와 같은 문화의 뿌리를 가졌다는 것을 상기하지 않아도 중남미 지역의 선주민 문화는 서구문화와는 달리 친근하고 동양적이며, 우리 전통문화와 같은 느낌조차 줍니다. 늘 고국이 그리운 외교관 생활을 오래하면서 이토록 문화적으로 친근한 지역에서 근무했던 것을 행운이라고 여깁니다.
취미 삼아 수집을 하다가 박물관 건립의 꿈을 키우게 되었고, 공직 생활을 은퇴하고 나서 그 꿈을 실천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이제 박물관이 문을 연지 15년째를 맞았습니다. 지금까지도 각계 각층에서 많은 분들께서 저희 박물관을 찾아주셔서 설립자로서 감격의 기쁨을 누렸습니다.
앞으로도 정부 각 관계기관, 학계, 기업, 교육기관에서 본 문화원을 많이 이용하기를 바랍니다.
특히, 1997년 개관한 미술관은 문화. 예술계에서 이용하기를 부탁 드립니다.
나아가 아시아 지역에서는 중남미 문화를 소개하는 유일한 문화공간으로 우리 국민뿐 아니라 우리 나라를 찾는 외국인들까지도 중남미 문화를 접하는 공간으로 활용되기를 바랍니다.
< 홍 갑 표 이사장 >
30여 년 동안 외교관생활을 하는 남편을 내조하면서 벼룩시장에서 하나하나 소품을 수집하고 주변의 지인들로부터 받은 작품을 모아 남편의 정년퇴임과 함께 경기도 고양시에 중남미 문화원을 개관하였다. 처음엔 도와주는 사람 없이 오직 문화를 사랑하는 일념으로 홀로 시작하며 힘든 세월을 거친 게 어느새 15년을 넘고 있다. 그녀는 정말 바쁜 사람이다. 문화원의 크고 작은 일은 모두 그녀의 몫이며 예술을 이해하고 사랑하며 문화원을 찾는 사람은 누구를 보든 반갑게 맞이한다. 그녀는 문화대사다. 그를 만나는 데는 늘 새로운 각오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는 항상 새로움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녀와 대화를 하게 될 때면 항상 능란한 화술에 빠져들곤 한다. 물론 말 장난이나 가식은 전혀 아니다.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예술가적 승부근성이 홍갑표 그녀에게는 운명과도 같은 삶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항상 낮은 데로 임하고 열정적인 그녀 이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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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 아메리카]
우리가 보통 중남미 또는 라틴아메리카로 부르는 지역은 미주대륙에서 북미의 캐나다, 미국을 제외한 멕시코와 중미, 카리브해역 및 남미대륙의 국가들을 말한다. 이 지역에는 약 4억 7천만의 인구가 35개의 독립국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인구 1억 6천만의 브라질에서 부터 5만의 세인트 크리스토퍼 네버스등 다양한 형태이다.
사람이 최초로 이지역에 이주해온 것은, 약 40,000년 전후로 빙하기에 아시아로부터 육지로 연결되었던 베링해협을 통하여 시작되었고 B.C.9000년경에는 미주대륙 최남단인 띠에라 델 후에고(Tierra del Fuego)에 도달하였다. 초기 이주민들은 멕시코와 안데스고원 지대에 정착하였고, 인디오(Indio)로 불리는 이들은 BC7000년부터 농경사회를 형성하였다. 여러 부족 사회들로 구성된 인디오들 중에 메소 아메리카(Meso America)와 안데스(Andes) 지방에 국가 형태를 갖춘 부족이 형성되고 16세기초 스페인 정복이 시작되기 전에 인구 5만-10만의 도시들이 형성되는데 멕시코 아스떼까(Azteca) 제국의 수도인 떼노치띠뜰란(Tenochtitlan)과 페루 잉카(Inca) 제국의 수도인 꾸스꼬(Cuzco)가 그 대표적인 도시들이다. 특히 고도의 수학과 천문학, 섬세한 건축과 고유문자를 보유하였던 멕시코 유까딴(Yucatan)-중미일원의 마야(Maya)족도 값진 세계 일류 문화 유산을 남기고 오늘까지 그 후손들이 존재한다.
콜롬부스(Cristobal Colon)가 1492년 우연히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콜롬부스는 서방항해로 아시아에 도착할 목적이었음)한 후 4회의 항해끝에 1518년 싼또 도밍고(Santo Domingo)에 총독부를 설치하고 에르난 꼬르떼스(Hernan Cortes)가 1521년 멕시코의 아스떼까 제국을 정복하고 프란시스코 삐사로(Francisco Pizarro)가 1533년 잉카제국을 정복함으로써 3세기여에 걸친 유럽 식민시대가 열린다.
중.남미 제국은 불란서 혁명의 영향을 받아 1804년 독립한 아이티(Haiti)를 위시로 대부분 19세기 초반부터 독립을 성취하였다. 그러나 왕권을 대신한 정통성의 문제와 구식민지 체제에 집착하는 보수파와 근대화를 추구하는 자유파의 투쟁, 중앙집권파와 분리파의 대립, 열강의 개입, 독재와 군부 쿠데타등으로 독립 후 시행착오의 악순환을 겪었다.
혁명, 폐쇄적 민족주의, 사회 민주주의, 독재 등 악순환을 반복하다가 라틴 아메리카 제국은 80년대의 민주화 과정을 걸쳐 최근 정치면에서 민정안착과 누적 외채문제를 위시 경제, 사회적 난관 극복, 경제 통합, 외교의 다변화에 박차를 가하면서 과감한 개방, 자유화 정책하에 우리나라와도 협력 증대, 강화를 추구하고 있다.
< 지역적 특성 >
멕시코 면적은 약 197만 평방킬로미터로 알래스카를 제외한 미국본토 면적의 4분의 1에 해당된다. 국토의 대부분이 고원지대이며 태평양 쪽으로는 좁은 평야지대가 있고, 멕시코만 유역에는 넓은 연안 평야지대가 있다. 산유국으로 다른 천연자원도 풍부하다.
중미지역에는 7개 독립국이 있는데, 대부분이 산악, 고원, 계곡 및 해안 평야로 구성된 소국들이다. 기후는 멕시코와 비슷해서 온대성 고원지대에 주로 거주한다.
카리브해 즉, 서인도 지역은 13개 독립국과 식민도서로 구성되어있다. 쿠바, 아이티, 도미니카 공화국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소국들이다. 쿠바는 이들 중 가장 큰 국가이며 사탕수수가 주산물이다. 라-에스빠뇰라(La Espanola)섬은 서부에 아이티, 동부에 도미니카 공화국이 자리잡고 있다. 이들 두 나라는 산악국가로 강우량이 풍부하다.
남미 지역에는 12개 독립국과 1개 프랑스령 식민지가 있다. 이들 지역에는 세계 최대의 산맥인 안데스(Andes) 고지대 등 산악지대가 많고, 대부분의 거주지역이 해발 3,000미터 이상의 고지대에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대륙의 5분의 3이 낮은 평야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팜파(Pampas), 브라질의 셀바(Selvas), 베네수엘라의 야노(Llanos) 등이다. 이 세 지역에는 모두 커다란 강이 있는데 아르헨티나의 라쁠라타 강, 브라질의 아마존 강, 베네수엘라의 오리노꼬 강이 그것이다. 또한 볼리비아늬 띠띠까까(Titicaca)호수가 해발 3,686미터에 자리잡고 있다. 콜럼비아에서 페루에 이르는 안데스 산맥은 빙하가 많고 지진과 화산폭발이 잦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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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 역사와 문화]
<최초의 아메리카대륙인>
구대륙인 아시아나 유럽에 비해 아메리카에서 인류가 살기 시작한 것은 그다지 오래지 않은 약 2-3만년 전이다. 최후의 빙하기가 끝날 무렵 몽고족들이 시베리아에서 베링해를 거쳐 알래스카를 통해 북아메리카로 들어왔다. 그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북에서 남으로 서서히 남하해 내려왔다. 멕시코 계곡에서 약 1만년 전의 맘모스와 인골이 발견되는 것으로 미루어, 당시 인류는 수렵 민이었음을 알 수 있다. 사냥을 주축으로 하는 수렵민의 생활은 기원전 6000년에서 4000년에 걸쳐 절정기를 이루었다. 기온도 높고 강수량도 풍부했다.
그러나 기원전 3000년 전, 즉 지금부터 약 5000년 전 기온이 내려가면서 건조현상이 나타났다. 이에 따라 인류는 새로운 생활방식을 찾았는데, 이것이 바로 농경의 시작이었다.
농경은 기원전 7000년경부터 식물을 채집하면서 반 정착생활을 하면서 시작되었는데, 이들 수렵 민은 기원전 5000년경에 이르러 감자와 고추의 재배법을 익혔다. 기원전 3000년경에는 원시적이지만 옥수수를 재배할 줄 알았으며, 이때부터 메따떼(Metate)라 불리는 돌절구가 쓰이기 시작했다. 한편 에콰도르에 페루에 이르는 해안에서는 풍부한 어족 자원에 힘입어 어로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들도 기원전 2500년에서 1200년에 이르러서는 반농. 반어적인 생활형태를 띠게 되었다.
< 올메카(Olmeca)문화 >
멕시코 계곡을 중심으로 기원전 1500년경부터 옥수수 농경이 펼쳐졌다. 약 500년이 지난 후 멕시코만 연안에서 일어난 올메까 문화는 '자가야'신을 중심으로 한 고도로 체계적인 종교를 지니고 있었다. 베라꾸르즈(Veracruz)근처의 라 벤따(La Venta)지역에는 올메까 문화의 특징 인 눈을 치켜 뜨고 반달 모양으로 입의 양쪽 끝을 아래로 구부린 거대한 인간형상의 석조상, 피라미드, 검은 토기 등이 발견된다. 특히 인간과 동물의 결합상, 괴기 인간상 등은 중미 인들의 사상적 근간을 이루었다. 이 문화는 기원전 1000-600년경이 전성기였다.
< 떼오띠우아칸(Teotihuacan)문화 >
멕시코 시티의 북부지역 분지에서 발생한 떼오띠우아깐 문화는 기원전 200년경에 시작되었으며, 서기 100년에서 300년경에는 태양의 피라미드(Piramide del Sol)와 달의 피라미드 (Piramide de la Luna)가 세워졌고, 물의 신 뜰랄록(Tlaloc)에 대한 신앙이 시작되었다. 신전과 신관을 중심으로 하는 대도시가 이루어지고 거대한 신전이 축조되었으며 그곳에는 새의 털을 지닌 뱀의 신인 께잘꼬아뜰(Quetzalcoatl)이 있었다. 그는 인간과 신의 중개자이며 사람들의 생활을 지배하는 정치적 지도자였다. 9세기 중엽 북쪽에서 온 침입자에게 멸망 당했다.
< 사뽀떼까(Zapoteca)족 >
서기 600년에서 900년경에 멕시코 고원의 남쪽에 있는 오아하까(Oaxaca)분지를 중심으로 새로운 문명이 발생했다. 돌조각과 상형문자, 천문학이 발달하였고, 윗니를 드러내며 웃는 모습이 특징인 토기를 만들었다.
< 마야(Maya)문명 >
마야 문명은 고전기와 신 제국으로 나뉘는데, 고전 마야 문명은 서기 320년경에 시작되었다. 그들은 석 조각 등을 세우고 연호를 기록하였으며, 태양력에 의한 1년을 365일로 정했고, 춘분과 추분도 알고 있었다. 과떼말라의 띠깔(Tikal), 왁샥뚠, 까미날퓨등이 고전 마야 문명의 중심지이다. 고전 마야문명은 서기 600년경까지 계속된다. 600년에서 약 200년간은 고전 마야 문명의 절정기인데, 이때 그들은 2미터에서 10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돌기둥 위에 마야 숫자를 기록해 놓았다. 온두라스의 꼬빤(Copan), 멕시코의 빨렌께(Palenque)가 그 중심지역이다. 금속기를 몰랐던 마야인은 모든 물건을 돌로 만들었으며, 천문학과 수학이 매우 발달했다. 그들은 정령의 개념을 알았으며 20진법을 사용하였다. 10세기 말엽 마야문명 은 갑자기 종말을 고하는데, 그 원인에 대해 아직 잘 모르고 있다.
신 마야 제국은 10세기 말에서 11세기 초에 똘떼까족이 북방에서 유까딴 반도로 이동해 오면서 시작되었다. 치첸잇싸(Chichen Itza)가 중심지이며 께잘꼬아뜰이 주신이었다. 살아있는 인간을 제단에 안치시키고 그 심장을 석재 칼로 도려내어 바치는 인신공양은 최고의 의식이었다. 치첸잇싸와 더불어 욱스말(Uxmal)과 마야빤 (Mayapan)등 3대 도시는 마야 문명의 르네상스를 이루었다. 그러나 고전 마야시대가 정교하고 충실함에 비해 신 마야 예술은 과거의 모방에 그치고 있다. 고전기의 표현이 매우 사실적인데 반해, 르네상스기에는 추상화한 기하학적 문양이 많이 쓰였다. 그들은 또한 카카오에서 초콜릿을 만들기도 했고 치끌레 나무에서 츄잉껌을 만들어냈다. 천연고무 또한 중요한 수출품으로 등장했다.
이러한 후기 마야 문명은 15세기 중엽에서 16세기 초엽에 이르러서는 권력싸움이 극대화되어 거의 무정부 상태에 이르렀다. 16세기 초 스페인인이 이곳에 왔을 때는 이미 찬란한 마야 문명 은 존재하지 않았다.
< 모치카(Mochica)문화 >
페루 북부지방을 중심으로 고대의 옥수수신인 자가야를 섬겼던 모치까족은 떼오띠우아깐보다 도 금속을 먼저 사용했으며 전쟁을 많이 했던 종족이었다. 전쟁에 대한 기록은 모치까의 토기에 생생히 남겨져 있다. 1520년 아스떼까의 마지막 왕 목떼수마(Moctezuma)는 께잘꼬아뜰 전설을 믿었고, 이는 꼬르떼스(Cortez)에 의한 아스떼까 멸망을 앞당기게 했다. 사실 아스떼까라는 이름은 이 종족이 어딘가 동화 속의 나라 아스트란에서 온 것 같다고 생각한 스페인 인들이 붙인 이름이다. 그들은 스스로를 테노치까라 불렀다. 또한 나우아족 또는 멕시까(Mexica)족으로도 불렸다.
< 미슈떼까(Mixteca)문명 >
멕시코 남부에서는 사뽀떼까족의 뒤를 이어 몬떼 알반(Monte Alban)과 미뜰라(Mitla)를 중심 으로 미슈떼까 문명이 번성했다. 그들은 금속 세공과 회화에 특이한 재능을 발휘하였다.
< 챠빈(Chavin)문화 >
남미 에콰도르 지역에서 기원전 1000년에서 400년경에 발달한 초기문화로 건축과 도자기에서 뛰어났다.
< 잉카(Inca)문명 >
3세기 초, 만코까빡이 그의 일족을 끌고 페루의 쿠스코(Cuzco)계곡에 도착했다. 사실 그들이 어디서 왔는지는 아직초대왕 만코까빡에서 8대 비라코차 그리고 잉카까지 약 200년간은 전통 잉카제국 시대이다. 외침을 물리치고 쿠스코 계곡을 평정하고 태양신의 숭배와 농업을 주축으로 하는 잉카제국은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15세기 중엽, 제9대 빠치쿠치 잉카 유빵끼(Yupanqui)가 왕이 되었다. 그는 태양신의 신전을 건립하고, 우르밤바와 비루가밤바를 정복했다. 1471년 빠치쿠치가 아들 또빠잉카에게 왕위를 물려줄 무렵 잉카는 볼리비아에서 칠레에 이르기까지 약 4800킬로미터의 대제국을 거느렸다.
잉카의 석조건축물은 최고의 수준이며, 태양신이 최고의 신이었다. 1525년 와스카르가 12대왕이 되었고, 이때 왕권다툼으로 허수아비 13대왕이 스페인 인들에 의해 추대되었으나 1533년 11월15일 삐사로의 쿠스코 입성으로 잉카는 멸망했다.
쿠스코나 마추피추(Machu Pichu)는 잉카의 실존을 밝혀주는 살아있는 박물관이다. 고고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다.
< 따이노(Taino)족 >
카리브해 에스빠뇰라 섬에 살았던 아라왁(Arawak)인디언으로 스페인 정복 후 100년만에 멸족 되었다. 돌과 나무 공예품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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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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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에서 전래된 이음식은 오늘날 스페인 뿐 아니라 중남미 각국에서 널리 맛 볼 수 있는데, 양철로 만든 큰 후라이팬에 요리하는 빠에야는 주재료가 쌀이며 특유의 노란빛이 나는 것은 바로 사프론이라는 향신료 때문이다. 기본 재료에 닭고기와 해산물을 첨가해주는 것이 전통이지만 돼지고기나 다른 야채를 넣어 입맛에 맞게 요리할 수도 있다. 빠에야는 맵거나 강한 맛이 나기보다는 향을 중시하는 요리다. 요리법도 간단하고 큰그릇에 서브해 각자 양만큼 한 수저씩 덜어먹는 우리네 문화와도 잘 어울리는 음식이다.
< 빠에야 식사 가능 요일, 시간 및 장소 >
- 월 ~ 토요일
- 오후 12:00 - 14:30
- 풀코스 (full course) 메뉴
- 중남미문화원 박물관
[ 하루전 예약 필수 ]
< 코스 내용 >
- 와인, 샐러드,
- 빠에야, 스테이크,
- 과일, 커피
< 요금 안내 >
- 성인 1인 : 28,000원
- 소인 (만 5 - 10세) 1인 : 20,000원
[ 입장료 별도 ]
< 빠에야 예약 전용 게시판을 통한 예약 안내 >
- 인원수
- 확인 연락 가능한 전화 번호
- 글 등록시 "비밀글" 박스 체크
첫댓글 회장님 수고하시네. 많은 친구들이 모였으면 좋겠구나.
봉춘이와 어제는 커피한잔하는 여유를 가졌었지. 오래간만에말야.
6월 15일에 삼송역에서 10시30분에 만나기로 했어.
늦지는 안겠지.? 조정애도 만나기로하고,
다른 친구들도 같이 만나면 좋을텐데말야 ...
건강들하고 안녕 !!!!
그래,성희야, 답글로 소식주어 고맙다.
너희반 친구들 더 수소문해보렴.
늦지말고 와야되.30분만에 올수있을까 모르겠다. 10시 20분까지 정확히만 삼송역에서 모이면
시간을 댈지 모르겠는데? 왜냐하면 버스 기다리는 시간등등. 하여튼 알아서 늦지말고 와.
큐레이터한테 해설을 부탁했거든.
우리 식사할때 홍 이사장님도 나와서 이야기해달라고 부탁했고.
아무튼 나도 오랫만에 가보는 거고 친구들과 단체로 가는거라 기대가 된다.
그 때 반갑게 만나자구.
나 지하철같은 땅속 안 좋아하거든
밀페된 공간에도 답답해서 잘 못 있고
그런데 품위있는 문화원 기회를 주어서
청심환 먹고 가볼란다
친구들 얼굴도 만나고 수다 도 떨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