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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 人 『AC, 七〇』
작가: 이은집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O號夫婦 『머튼・헌트』 報告.
變貌하는 現代人의 性生活을 分析한 第二의
『킨제이』報告. 愛人도 아닌 妾도 아닌
아내도 물론 아닌 여자와의 關係.
만났을땐 서먹했으나…어느날 밤 『키스』로 발전…낯선 곳에선 대담해져…
『칵테일・라운지』야말로 남편이 즐기도록 권유도…안타까이 상대를 찾아…진짜 배우자 만나기도.
× × ×
저들이 된 마지막 그가 버스정류장 한편에서 산 모 주간지의 인기있는 『특별連載』를 발췌한 것인데,
그는 이것을 좌석버스에 타고 가다가 펼쳐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네거리의 지하도 六번째 계단에서 저들은 예정된 인원인 四명이 되었고,
一九六九년의 一二월 六일 오후 六시였다.
누구도 예상한 바가 아니었다고 확언할 수는 없으나 二:二 남녀 동수로서 저들의 구성은 결정되어졌던 것이다.
이윽고 저들은 빗발처럼 후룩후룩 쏟아지던 어둠이 도시의 강렬한 조명으로 해서 엉거주춤 망서리고 있는 시장을 향해 걸어갔다.
아무도 먼저 입을 열지는 않았지만 저들은 호주머니에서 천원씩을 꺼내어 합계 四천원이란 금액을 만들었고.
그제야 저들 가운데 그가 오늘의 스케쥴을 발표했던 것이다.
『그러면 지금부터 동인 「AC, 七〇」 결성을 위한 준비를 합시다.』
순간 저들의 하나를 제외한 나머지 셋은 똑같이 지난주의 모 주간지의 팬팔란에 실렸던 글을 상기했다.
<그리스도 탄생 이후를 AD(Anno Domini)라고 불러왔으나 저는 이제 AC로 바꾸고 싶습니다.
After Computer, 즉 콤퓨터의 시대가 왔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AD, 七〇이 아니라 AC, 七〇을 대비하여 새로운 삶을 모색할 동인을 三명에 한하여 구합니다.
뜻이 있으신 분은 一九六九년 一二월 六일 오후 六시 광화문 네거리 지하도의 국제극장쪽 六번째 계단으로
회비 一〇〇〇원을 지참하여 나오시길…. 가칭 동인 「AC, 七〇」 발기인 백>
저들은 우연히 이것을 보았는데, 각자가 자기대로 살아가던 터였으므로 모든 생활환경과 사고방식은 전혀 달랐다.
그러나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저들은 월요일부터 토요일 오후 二시경까지 직무에서 이탈할 수 없는 처지였다.
저들 가운데 그들은 一六년의 학교와 三년의 군대를 마쳤고, 그녀들은 一六년의 학교만 졸업했는데,
그것은 오늘날 저들이 일주일 가운데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시간이란 토요일 밤을 전후한 몇 시간 뿐으로
허용받는데 기여한 꼴을 초래했을 따름이었다.
그러므로 저들은 항상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에 쌓인 저 생활의 찌꺼기들을 버리기 위하여,
주말이면 곧잘 영화관이나 고궁을 또는 다방이라든지 좌우간 그릴싸한 곳을 찾아보거나 당구나 바둑 등 어떤 놀이를 해보지만, 아무것도 완전히 그것을 해소시켜주지는 못한다는 불만을 항상 께름칙하게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해서 저들의 하나가 낸 이 팬팔은 비상한 섬광을 일으키며 저들의 나머지에게도 공감을 불러 일으켰던지 모를 일이었다.
저들은 이 하나의 낙서에 가까운, 아니 어쩌면 한없이 황당무계하고
치졸하기조차 하다고 말할 수 있는 팬팔에서 전혀 뜻밖의 기대와 흥분을 느꼈던 것이다.
『좋아요. 우리는 당신의 팬팔을 보고 온 사람들이니까요.』
이윽고 저들 가운데 한 그녀가 그의 말에 찬성을 표했다.
『허지만 오늘밤의 주인공은 저 혼자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여야 합니다.』
그는 그녀의 말에 약간 미안스러운 표정으로 저들에게 말을 이었다.
『…다만 제가 오늘 모임의 제안자로서 한 말씀 드립니다.
이제 우리는 이 돈으로 우리의 기분을 적당히 취하게 해 줄 술과,
지금 날씨가 꽤나 싸늘하므로 역시 또 적당히 난방이 된 여관방을 찾아가도록 합시다.』
『그럼! 금강산도 식후경이요 양반도 추우면 흔들린다는데….』
저들의 또 한 그가 즉시 찬성발언을 하지 않았더라도 저들은 이미 처음부터 반대의사가 예상되어지지는 않았다.
네거리의 지하도로 저들은 오늘 각자 스스로에 의해서 왔던 터였으니까였다.
<술은 아직 마셔본 일이 없는데….>
저들 가운데 두 그녀는 이런 생각을 똑같이 했지만. 그것에 구애되는 옹졸함을 노출시키고 싶진 않았다.
저들은 소주와 포도주와 맥주와 정종과 요컨대 술의 종류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것은 골고루,
그리고 안주거리를 사가지고 한적한 곳에 위치한 어느 이층 양옥의 여관으로 직행했다.
마침 각 방마다 목욕탕까지 완비된 二층의 〇〇호실은 二五. C의 쾌적을 유지하면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저들은 보이의 안내로 방안에 들어와서 숙박부에 기입을 한 후 一천五백원의 요금을 지불했다.
그러니까 오늘 갹출된 四천원에서 二백원이 남았다.
그 돈은 크리스마스 이브도 아닌데 남녀가 한 방에서 동숙하다니
좀 의아스럽다는 표정을 짓는 보이에게 팁으로 주어서 그것을 무마시켰다.
저들은 자신들이 생각해도 이 어이없게 벌어지기 시작하는 오늘의 모임에 대하여 왠지 비밀을 간직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것은 저들 자신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도 이제껏 저들은 서로의 이름조차 말하지 않았으니였다.
허지만 그것은 저들에게 오히려 이상하게도 친밀감을 유발시켰다.
저들은 실지로 언젠가 경험했고, 또 현재도 진행중인 연애감정 이상의 놀라운 상태에 빠져졌던 것이다.
각자가 나누어 들었던 술과 안주를 담은 꾸러미는 웃목에서 잠시 저들의 손길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때 저들은 똑같이 무언가 찌부듯한 피로를 느꼈고,
바로 맞은 편 도어 뒤에 숨어있는 목욕탕을 발견한 순간에야,
그것은 저들의 지난 일주일 동안에 쌓인 저 생활의 권태들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목욕탕 완비>란 간판을 보고도 이제야 발견을 해내다니….』
저들 가운데 하나는 어이가 없었는데, 그것은 나머지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우선 목욕이나 하자구! 우리는 오늘밤에 일금 일천오백원을 주고 분명히 이방을 빌렸으니까….』
『그럼요! 돈을 준 바에는 밑천을 뽑아야죠.』
『호호호! 그런데 좀 넓다고는 해도 二인용 방에 딸린 욕실인데 협소하지 않을까요?』
이어서 나머지들 역시 이렇게 저마다 떠들었으니였다.
『뭐? 그러면 우리 모두 함께 목욕을 한단 말인가?』
저들의 하나가 사실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무의식중에 말했다.
그것은 전혀 그의 잘못이 아니라 이제까지의 습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무슨 소릴 하는거야? 우리는 지금 동인이 되기 위하여 모였는데….』
『아하! 내가 깜빡 그 사실을 잊었군.』
『명심해요! 이제부터 우리는 동인 「AC, 七〇」의 회원이 된다는 사실을….』
그의 말은 결코 농담이 아니었다.
『호호호! 정말이예요. 이 방에 들어온 때부터 AD가 아니라 우리는 AC로 살아야 하니까요.』
『어쩜, 의리도 없이 내가 하려는 말을 먼저 앞질러 해버리죠?』
『아하하!』
『오호호!』
저들중의 한 그녀가 다른 그녀에게 이런 항의를 제출함으로 해서 저들은 모두 각각 폭소를 터뜨렸다.
그리고 저들은 옷을 벗어 방 한편 구석에 던졌다.
이미 보온과 권위와 지위 또는 계급의 상징으로서의 역할을 상실한 옷이란 저들에게 있어서
사실 거치장스러운 것에 지나지 않았다.
저들은 옷을 하나하나 벗으면서 참으로 어이없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만약에라는 단서를 붙이는 것이지만 온 세상을 하와이의 와이키키 해변만큼 상하의 온도로 유지시킬 수만 있다면,
옷이란 그렇게 필수품이어야 한다는 논리는 얼마나 그릇된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인간이란 저렇게 생겼는데 항상 옷을 입었던 까닭에,
여자라면 얼핏 치마를 생각하고 남자라면 바지를 연상했던 착각이었다.
따라서 저들은 이제야 그런 오류를 깨닫게 됐음을 후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들은 자기 자신이나 혹은 상대방이 종래 저들이 생각한 것처럼 신비하거나
수치심을 야기 시키지 않음을 확인하면서 욕실로 들어갔다.
과연 저들 가운데 그녀가 예상했던대로 욕실은 협소했다.
그러나 바닥이 꽤 넓어서 과히 불편할 것은 없었다.
찰랑하게 넘쳐 흐르는 온수가 손을 잠그자 파르르 미소를 짓고 저들을 반겼다.
저들은 공평하게 물을 끼얹어 우선 몸의 겉에 묻은 피로를 씻어냈다.
『흥흥흥!』
『라라라!』
저들은 콧노래를 합창하며 벌써 二〇년이 넘었을 모래강변에서의 어린 시절을 되찾고 있었다.
그때 저들 가운데 두 그들은 신이 나서 벌떡거리는 저들의 그것에 물을 끼얹었다.
그러자 잠수를 마친 수병(水兵)처럼 그것은 머리를 흔들었다.
『자! 그만 목욕을 끝내기로 합시다.』
이윽고 저들 가운데 그가 제의했다.
『네! 벌써 여덟시가 다 됐을 거예요.』
저들은 타올로 물기를 훔치며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촉감좋은 카시미론 이불이 깔려진 방바닥에 반쯤 몸을 밀어넣었다.
『정말 시원하군.』
『몸이 날을 것만 같애요.』
『몰랐지? 요런 기분은 몰랐을 거다.』
『예전엔 정말 미쳐 몰랐어요.』
『아하하하!』
『오호호호!』
저들은 또 한번 폭소를 터뜨렸다.
다음에 저들은 술병과 안주 꾸러미를 끌어다가 풀어헤쳤다.
『포도주는 우리꺼예요.』
저들 가운데 한 그녀는 날쎄게 「대관령」을 끌어갔다.
『좋다구! 그럼 쐬주는 우리꺼야.』
저들 가운데 한 그가 또한 날쎄게 「진로」를 끌어갔다.
『이거 왜들 이래? 술은 충분할 텐데….』
『똑같이 돌려가며 마셔요, 우리는 동인이 될 사람들인데….』
그때 나머지 그와 그녀가 저들의 그와 그녀에게 시정을 촉구했다.
해서 저들은 다 함께 잔을 들어 포도주와 소주를 섞어 마셨다.
『이건 칵테일・파티인데….』
저들의 하나가 술잔을 쭉 들이키며 말했다. 사실 저들은 술 뿐이 아니라 이미 저들 자신도 칵테일을 하고 있었다.
목욕을 한 탓인지 술기운은 놀라운 속도로 온 몸에 고루 퍼져나갔다.
잠시후에 저들의 가슴은 뜨겁게 달아올랐고,
천정과 방바닥이 뒤바뀌는 듯한 혼란한 착각이 저들 앞에 그네처럼 오락가락했다.
『자! 오랫동안 기다렸습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동인 「AC, 七〇」의 결성을 시작합시다.』
그제야 저들 가운데 한 그가 생각이 난듯이 말을 꺼냈다.
『좋소! 먼저 발기인의 제안설명부터 들읍시다.』
『정말 우리는 술만 마시러 모인게 아네요.』
『지금 시각은 여덟시 삼십분! 이미 시작했어야 해요.』
저들의 나머지가 일제히 동의를 표시했다.
『네! 잘 알겠습니다. 그러면 본인이 제안설명을 하지요.
이미 주간지에도 발표한 바와 같이 그리스도 탄생 이후를 AD라고 불러왔으나 저는 이제 AC로 바꾸고 싶읍니다.
After Computer, 즉 콤퓨터의 시대가 왔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AD 一九七〇년이 아니라 AC 一九七〇년을 대비하여 새로운 삶을 모색하자는 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현재 발붙이고 있는 현실은 AD이기 때문에 다만 각자가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허용된
토요일 오후부터 일요일 아침까지만의 시간에 한해서라는 것을 유의하고 말입니다….』
저들 가운데 그는 극성스럽게 달라붙는 주기(酒氣)를 뿌리치면서 아주 조리있는 발언으로써 저들의 찬성을 폭발시켰다.
『좋소!』
『찬성이요!』
저들 셋의 절대적인 지지에 그는 고개를 꾸벅하면서 말을 이었다.
그 뿐이 아니라 그의 그것도 고개를 숙이고 저들의 지지에 사의를 표하고 있었다.
『…그러면 이제 우리 다같이 박수로서 동인 「AC, 七〇」이 결성된 것으로 합시다.』
『이히! 짝짝짝!』
저들은 환호성과 박수로 투표를 대신했으며,
언젠가의 저 민주주의를 내세워 감행한 다수당의 새벽 개헌안 통과보다
더 빨리 해치웠다는데 대해서 저들은 기분이 흐뭇해졌다.
그리고 그곳은 싸늘한 새벽 공기가 음울하게 찌푸리고 있었겠지만,
지금의 방안은 유쾌한 술기운이 안개처럼 넘실거렸다.
저들이 해외토픽에서 가끔 보아온 LSD나 마리화나가 이땅에서는 아직 입수하기가 곤란한 까닭으로 해서 마신 술이지만
, 저들에게는 이 경우에 있어서 오히려 그 이상의 효력을 발생시켜준 셈이었다.
『자! 그럼 우리 동인 「AC, 七〇」의 탄생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건배를 듭시다.』
저들의 하나가 술잔을 높이 쳐들자 저들은 너도 나도 뒤를 이었다.
그것은 참으로 통쾌한 음모였다.
저들은 이제 二〇년하고도 五・六년씩 더 살아왔으나 아직 감히 이러한 시도를 획책해 본 적이란 없었다.
저들은 어느날 태어났던가 기억에 전혀 없지만, 저들의 부모가 알려준 생년월일에 조금도 의심을 품어보지 않았으며,
나이가 적령기에 다달았을 때 저들은 학교엘 입학하고 또 졸업을 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저들의 생활이란 순전히 타인들의 추종에 불과했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것이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리는」 길인지는 몰라도
아무튼 저들 중의 그녀가 오늘 오전에 했던 일만 해도 그러했다.
그녀는 예금된 만큼의 숫자가 통장에 옳게 기입됐는가를 확인하는 일로써
그녀가 취직한 후로 똑같이 계속되는 일과를 마쳤던 것이다.
거기에서 그녀는 무슨 의미를 찾을 수 있었던가?
단지 그때 그녀는 막연히 돈이란 어째서 그렇게 필요한 것인가를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 따져보니 그것은 기가 막힌 오류였다.
만약에라는 단서를 또 붙이는 것이지만,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불필요해지는 상황이 도래한다면 돈을 그처럼 강도나 살인 혹은
부정부패를 저지르면서까지 악착스럽게 가지려고 할 사람이 있을까?
그녀는 이 뜻밖의 깨달음에 가슴이 뛰었다.
『긴급동의예요!』
해서 그녀는 저들에게 긴급동의를 제출했다.
『뭐야?』
『말해봐요.』
저들은 건배에서 손을 떼면서 그녀에게로 시선을 집중했다.
『「AC, 七〇」의 동인이 되어서 생각해 보니까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부터 그러한 새로운 세계에 대해서 각자의 의견을 발표해보자는 거예요.』
『음! 그것 참 좋은 생각인데….』
『무조건 오케이야!』
『그러지 않아도 나 역시 그런 생각을 했어요.』
저들은 하나같이 그녀의 동의에 호응했다.
『잠깐만! 내 불 좀 끄고 오거든….』
이때 첫번째로 호응했던 저들 가운데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욕실을 향했다.
『아하하하!』
『오호호호!』
그 바람에 저들은 오늘밤 세번째의 폭소를 터뜨렸다.
『나도 사실은 마려운데….』
『저 역시 참았어요.』
『그럼 합동으로 진화작업을 해요.』
저들은 그 순간 우르르 욕실로 몰려갔다.
한창 시원스레 뿜어내던 저들 가운데 먼저 온 그는 자리를 비켜주며 저들에게 유쾌한 미소를 날렸다.
그리고 한동안 맹렬한 기세로 물줄기 흐르는 소리가 욕실을 채웠다.
이윽고 저들은 다시 카시미론 이불에 몸을 반쯤 밀어넣고 다음의 순서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그러면 제가 먼저 말을 꺼냈으니 의견을 발표하지요.
저의 생각으로는 만일에 이 세상에 모든 것이 불필요해지는 날이 온다면 돈이란 전혀 그 사용가치가 없어지겠다는 거예요.』
『그야 당연한 얘기지.』
『두말하면 개소리지.』
저들은 제멋대로 움직거리는 사면의 벽과 천정과 방바닥을 바로 맞추려 안간힘을 쓰며 말했다.
『그 예를 우리 지금부터 생각해봐요.』
그녀의 이 말에 저들은 상상의 나래를 펴고 지상을 이륙했다.
그 순간 저들의 머리속에는 갖가지 예기치 않은 생각들이 비둘기때처럼 그의 건강한 비상을 시작했다.
『우선 나는 의(衣), 즉 옷문제부터 생각해 봅니다.
만약에 이 지구상 어느 곳을 막론하고 적당한 온냉방장치를 영구적으로 해결할 수만 있다면,
마치 우리가 지금 아무런 옷이 필요 없듯이 모든 인간들에게 옷이란 불필요한 것이 돼버릴 것입니다.
원래 옷이란 너무 춥거나 덥거나 때문에 생겨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실제 지금도 적도지방의 토인들 중에는 벌거숭이로 살고 있는 종족이 있다지 않아요?』
『사실 그런 것 같아요. 우리가 종래에 느끼는 수치심은 오랜 관습의 탓일 뿐이니까요.』
『…해서 나는 그 온냉방장치를 위해 이 지구상의 군데군데에 원자난로를 피우고
콤퓨터에 의한 자동온도조절기를 설치할 것을 구상해 봅니다.』
『음! 그것은 과연 그럴듯한 착상인데….』
저들은 AC 一九七〇년에는 능히 그것이 가능한 일이라고 믿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저들의 가상 지구에는 자동적인 컴퓨터로 조종되는 거대한 원자난로가 지상 곳곳에 알맞은 배치로 건설되어 갔다.
그러자 남극도 북극도 상온(常溫) 二五℃를 유지했으며 적도지역은 냉방장치로서 더위가 완전히 제거되었다.
낙원은 우선 이렇게 기온문제의 해결로써 그 웅장한 서막을 열었다.
『나는 식(食), 즉 빵문제를 생각해 보겠어요.
만약에 우리가 하루에 필요한 二五○○칼로리의 영양을 공급할 수 있는 종합식품을 콤퓨터에 의해 무제한 합성 생산할 수 있다면, 오늘날의 월남전이라든가, 하는 전쟁은 없어질 것이라 생각해요.
옛부터 전쟁이란 근본적으로는 서로 먹을 것을 빼앗기 위한 것이었으니까요.
또한 우리가 이처럼 악착스레 일할 필요도 없게 되겠지요. 생각해 보세요.
우리 주위에는 순전히 먹기 위해서 하는 일들이 얼마나 엄청나게 많은가요.
그것을 앞서 말한 바와같이 생산할 수 있다면….』
저들의 한 그녀는 자신의 상상이 너무나 엄청나서 수습을 못하고 말았다.
다시 저들의 가상 지구 군데군데에는 무진장의 생산능력을 갖춘 합성식품공장이
조국근대화에 기여하는 차관업체처럼 우후죽순격으로 세워졌다.
그리고 저들은 누구나 배가 고프면 영구보존이 가능하도록 잘 포장된 종합합성식품을 무료로 먹는 자신들을 구경했다.
순간 음식점, 술집, 다과점, 좌우간 먹을 것을 파는 집이란 집은 모조리 문을 닫고 실업자로 전락하나,
다행히 놀고도 먹을 수 있게 되므로 해서 사회문제로는 등장하지 않는 기적을 보았다.
『나는 주(住), 즉 집문제를 생각해 보겠읍니다. 만약에 우리가 앞서 말했듯이
이 지구상 어느곳에나 온냉방장치가 설치된다면 집 역시 불필요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아무데에서나 폭신한 깔 것만 있다면 잠자리를 마련할 수 있을 테니까요.
따라서 六九년의 六대시정방침의 하나로 <아파트 건설은 영세대중부터 먼저 해결한다>는
공약(公約)은 공약(空約)이 되었다고 해도 국정감사에서처럼 왈가왈부되지는 않겠기에
시장님께 시대를 잘못 만난 불운을 충심으로 동정하는 바입니다.』
저들의 맨 마지막 발표자가 된 그는 엉뚱하게도 국정감사문제까지 들고 나왔는데,
그것은 아마도 이 모임에 참석하기 위하여 집을 나섰을 때 어느 석간신문을 사보았음에 틀림없었다.
저들은 다같이 이 서울의 고지대마다에 진열장의 견본상품처럼 전시효과만 발휘하는,
겨우 골조공사를 끝낸 시민 아파트를 본 적이 많았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들이 얼마나 헛된 일에 애를 쓰는가 싶어 안타까웠다.
저들은 마구 뛰놀면서 무진장한 종합식량으로 배를 채우고는 아무데서나 쓰러져 잠을 잤다.
저들은 요컨대 괴로울 일도, 속상할 일도, 힘들고 어려울 일도 없는 완전상태에 빠져있었다.
『자! 그러면 그러한 AC시대의 도래를 축하하는 의미에서 건배합시다.』
이윽고 저들 가운데 하나가 밀어놓았던 술병과 안주를 집어들었다.
『좋습니다. 벌써 술기운이 거의 달아났는데요.』
『저 역시….』
『남자분들이 술마시는 이유를 이제야 알겠어요.』
나머지 저들은 제각기 이처럼 지꺼리며 다시 잔에 술을 채웠다.
그리고 저들은 마치 더 빨리 맡은 바 직무를 수행하도록 독려하는 상급기관의 전통과 같은
두번째 취기의 방문을 온 몸 구석구석에 공평하게 받았다.
때문에 저들의 의견발표회는 더욱 활기를 띠고 계속 진전되어졌다.
『이제 우리는 의식주 문제를 완전히 해결했습니다. 그러면 다음엔 교통문제를 해결해 봅시다.』
『네! 저는 그것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해요. 오늘날엔 자동차, 기차, 배, 비행기 정도가 교통기관의 전부라 하겠는데요,
그때는 좀더 달라지리라 믿어요. 즉, 이 지구의 동서남북을 거미줄처럼 잇는 영구적인 교통시설이 있어서,
이를테면 방앗간의 피대처럼 온 지구를 휘감아도는 유동고속도로 같은 거예요.』
순간 저들은 온 지상에 바둑판처럼 깔린 유동고속도로의 어지러운 회전을 보았다.
그것은 일정한 시간마다 콤퓨터에 의해 승객들이 갈아탈 수 있도록 정거되고 있었다.
저들은 오늘날의 로켓트보다도 더 빠른 이 유동고속도로의 쾌적한 여행을 즐기면서
어느새 지구의 남극과 북극을 관광하고 돌아왔다.
『그러면 병이 났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들의 그녀가 새로운 질문을 내었다.
『그것은 말이 안되는 얘기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인류는 병의 요인이 되는 각종 병원체를 모두 소탕했을 테니까요.』
『참, 그렇겠군요.』
『그럼 인류는 영원히 죽지 않는게 아니야?』
『그렇지! 설사 자연노쇠를 한다해도 정신과 육체를 완전 분리하여
버나드 박사가 심장이식수술에 성공했듯이 정신의 이식을 할 수도 있을 테니까….』
『야! 그거야말로 일대 혁명중의 혁명인데요.』
저들은 이제 큰 빌딩이면 흔히 병원이던 오늘의 현실에서 또 한번 시민 아파트 건설때와 같은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리고 마음대로 남성이 될 수도 있고 여성이 될 수도 있으며,
심지어 어린 아이로 되돌아 갈 수도 있는 정신이식수술에 의해 저들은 번갈아 몇번이나 서로를 바꾸었다.
『참 얼마전에 미국은 아폴로 一二호에 의해 두번째로 달나라에 다녀왔는데요, 그 때는 어찌될까요?』
『아! 그건 유치한 방법입니다. 여러분! 바다에는 잠수함이 다니지요?
그것을 응용해서 이 지구를 하나의 잠수함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저들 가운데 한 그녀가 묻는 말에 그의 이러한 착상은 나머지에게 퍽 기발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어떻게요?』
『네! 아주 간단하지요. 콤퓨터로서 바로 대기권 위에 오늘날의 우주선보다 훨씬 견고한 투명 고체성기체를 한 꺼풀 입힙니다.
다음엔 이 지구의 엄청난 인력을 우리가 가고 싶은 우주 공간으로 향하도록 가변시킵니다.
그러면 지구는 마치 잠수함이 물속을 헤엄치듯이 목표하는 천체를 향해 가게 될 것이 아닙니까?』
저들은 지구우주선으로 태양계를 떠나 은하계로 향했다.
아득한 대기권 위의 유리창밖에는 무수한 성좌들이 낯선 지구의 출현에 놀라고 있었다.
저들은 상승고속도로를 타고 가서 그들에게 인사를 던졌다.
『초면입니다. 앞으로 종종 놀러오지.』
저들은 최초로 인간이 달을 밟았을 때 암스트롱이 지꺼린
「한 인간에게는 매우 사소한 첫 발이지만 인류에게는 거대한 비약이다」란 말을 상기하고 실소를 금할 수가 없었다.
<역시 동방예의지국의 후손이라 인사성이 바르구나.>
저들이 이윽고 다시 은하계를 출발하여 태양계로 되돌아왔을 때 저들 중의 하나가 말했다.
『다음에 우리의 사회생활은 어떻게 될까?』
『역시 오늘날하고는 전혀 달라지겠지요.』
『첫째는 직업이란 것이 필요없어지겠군요. 모든 것은 콤퓨터가 대행해 줄테니까….』
『물론이겠죠. 우리가 직장에서 일하는 이유란 먹고 입고 자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겠어요?』
『그럼 가족제도 같은 것도 상당히 변천되겠네요?』
『그건 현재도 덴마크같은 데서는 변천되고 있다더군요.
비록 채택되지는 못했으나 동성간, 형제간, 자매간,
또는 한 남성과 여러 여성과의 결혼을 합법화하자는 법안을 제출한 정당까지 있다니 말입니다.
그러나 아무런 인척관계없는 남녀와 그들의 자녀들이 모여사는
이른바 매거・패밀리(Mega Family=집단가족)는 이 나라에서 묵인되는 형편이라니까요.』
『그건 정말 AC적인 사고방식인데요,
사실 생각해보면 이런저런 인척관계에 얽매여 일생을 그 테두리안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은 좀 부당한 일인 것 같아요.』
『동감입니다. 저 역시 이를테면 부부는 반드시 남녀야 하고 일부일처라야 한다는 원칙에 회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네! 우리는 이제 좀더 다양성 있는 형태의 가족제도를 창안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매거・패밀리는 진일보한 것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저들은 이제 오늘의 모임의 결론을 내릴 때가 됐음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저들은 통금시간이 임박해서 서둘러 택시를 잡는 선량한 시민들처럼 좀더 바빠져야 했다.
저들은 물건을 팔고사는 시장이 없어진 대신 처음에 저들 중의 하나가 모 주간지에서 본
「머튼・헌트」의 「○號夫婦」를 실현시켜주는 인간시장을 향하여 유동고속도로를 탔던 것이다.
이로써 저들의 동인 「AC, 七〇」의 그 뜻깊은 첫 모임의 막이 내려졌다.
다음날 일요일 아침 오전 9시에, 저들은 상쾌한 기분으로 그 네거리의 지하도에서 각자 저들의 생활을 향하여 헤어졌다.
『6시에 만나서 그것을 뒤집은 9시에 헤어지는군요.』
『AD에서 이륙하여 AC에 착륙했다가 다시 AD로 돌아온 거지요.』
『그럼 나는 6과 9의 숫자를 기억하지요.』
『저는 AD와 AC를 외울게요.』
그리고 이것은 동인 「AC, 七〇」의 저들이,
그 지하도의 중앙지점에서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주고받은 최후의 대화들이었다. □
*낙도 김형태 사진작가 작품 (갑진년 청계천 야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