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호텔, 기내 너머 지구촌 곳곳 누비는 대한민국 막걸리
“막형이 이 책을 쓰게 된 까닭은 21세기 들어 우리 민족이 빚은 막걸리가 그동안 지구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혼을 쏘옥 빼먹고 있었던 와인을 순식간에 KO시켜 버리고 그 자리를 독차지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언제나 헐벗은 고된 서민들 삶을 다독여 새로운 희망으로 이끄는 대한민국 특산품 막걸리가 우리 민족과 늘 부부처럼 함께 살았으나 그동안 막걸리 속내를 꼼꼼하게 다룬, 우리나라 사람이 독자적으로 쓴 책이 희한하게도 우리나라에는 단 한 권도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지구촌을 휘어잡는 우리나라 막걸리를 다룬 책이 2년 앞 일본에서 먼저 나왔다는 데에 따른 심한 부끄러움과 자책감도 한몫했다.”-‘책머리에’ 중에서
대한민국이 빚은 술 막걸리. 막걸리가 지구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술맛과 건강을 한꺼번에 사로잡고 있다. 막걸리는 지금 청와대를 찾아오는 국빈들 건배주, 만찬주로 떠오르는가 하면 일본, 미국 등 외국관광객들에게 날로 인기를 끌면서 이제 우리나라 백화점 매장은 물론 특급호텔, 비행기 기내까지 들락거리고 있다. 막걸리는 그동안 유통기한(4~5일)이 짧고, 가격이 싸다는 까닭에 외국관광객이나 백화점, 호텔 등에서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지만 지금은 와인보다 더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국민술’이라 불리었던 막걸리는 1960대 허리춤까지만 하더라도 술 시장 70%를 사로잡았지만 1965년부터 꼬리를 슬슬 내리기 시작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식량부족을 막기 위해 ‘양곡관리법’을 만들어 쌀로 막걸리를 빚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었다. 막걸리는 이때부터 쌀이 아닌 잡곡으로 빚어지기 시작하면서 막걸리 참맛이 사라졌고, 막걸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조차 소주나 맥주 등 다른 술을 찾았다.
막걸리가 다시 제자리를 찾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허리춤께부터다. 이때부터 쌀이 남아돌기 시작하면서 옛 전통방식 그대로 쌀로 빚은 막걸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여기에 웰빙바람까지 거세게 불면서 발효식품 막걸리가 ‘웰빙식품’ 혹은 ‘건강주’로 떠올라 판매량이 크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국세청이 내놓은 ‘술 소비동향’을 살펴보면 막걸리 판매량은 2002년 12만9천 톤을 주춧돌로 삼아 계속 판매량이 늘었다. 2007년에는 급기야 17만2천 톤이나 팔렸다. 그뿐이 아니다. 지금 막걸리는 중국과 미국 등 14개국에 수출하고 있으며, 특히 일본에서는 대한민국 생막걸리 전문점까지 비온 뒤 쑥쑥 자라나는 죽순처럼 수없이 생겨 i세대들에게까지 막걸리 문화를 활짝 꽃피우고 있다.
막걸리에 포옥 빠져 사는 시인이 입땀 발땀으로 쓴‘간추린 막걸리 백과사전’
“막형은 지난해 여름부터 겨울 끝자락까지 6개월 동안 다닌 막걸리 기행에서 새로운 사실 하나를 알게 되었다. 지난 30여 년 동안 줄기차게 마셨던 한반도 남녘 곳곳에서 빚는 막걸리들이 요즈음 막걸리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는 탓인지 맛이 훨씬 더 좋아지고, 상표도 아주 세련되게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는 그동안 지역에 따라 여러 가지 독특한 맛을 지니고 있었던 막걸리가 평준화되면서 맛도 한 차원 높아졌다는 그 말이다. 그래도 아쉬운 점은 예전에는 어느 지역에 가면 그 지역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막걸리 맛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고 거의 같아졌다는 것이다.” -‘책머리에’ 중에서
20대 때부터 막걸리와 우리 음식에 포옥 빠져 살고 있는 시인 이소리(51)가 ‘환족이 쌀로 빚은 신비스런 술방울’이란 덧글이 붙은 우리나라 막걸리의 겉내와 속내를 빠짐없이 다룬 ‘간추린 막걸리 백과사전’이라 불리는 <막걸리>(북포스)를 펴냈다. 이 책은 시인이 지난 30여 년 동안 한반도 남녘 곳곳을 돌아다니며 막걸리를 마셨던 기억을 주춧돌로 삼아 지난해 여름부터 다시 막걸리 기행을 다니면서 직접 마셔보고 느꼈던 맛을 서까래로 올리고, 막걸리에 얽힌 역사와 문화, 빚는 법, 여러 가지 우스개 이야기, 추억, 기행문 등을 지붕과 용마루로 올렸다.
한 사발, “대한민국 특산품 ‘막걸리’ 알몸 훔치다”, 두 사발 “암세포까지 죽이는 지구촌 으뜸 보약”, 세 사발 “막걸리 홍보대사로 나선 ‘막걸리 대통령’”, 네 사발 “한반도 허리춤은 지금 ‘막걸리 전쟁’ 중”, 다섯 사발 “전라도 막걸리 VS 경상도 막걸리 VS 섬 막걸리” 속에 들어 있는 막걸리에 얽힌 역사와 빚는 법, 막걸리와 궁합이 맞는 음식, 막걸리와 건강, 막걸리를 죽도록 좋아했던 천상병 시인과 박정희, 노무현, 이명박 대통령과 살을 섞은 ‘대통령 막걸리’에 얽힌 여러 가지 우스개 이야기, 전국 막걸리 기행문 등이 그것.
이소리 시인은 “이 책에서는 순수한 전통 막걸리만 다루었다. 인삼이나 둥굴레, 복분자, 유자 등 다른 약재나 과일을 곁들여 빚은 막걸리는 뺐다”라며 “약재나 과일 등을 넣어 빚는 막걸리는 전통 막걸리가 아니라 요즈음 쓰나미처럼 밀어닥치는 막걸리 파도를 타고 새롭게 빚은 21세기형 막걸리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주말이면 타고난 역마살을 어쩌지 못해 전국 곳곳으로 여행 다니기를 아주 좋아한 까닭에 서울, 부산, 인천, 경기에서부터 강원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제주도 곳곳에 있는 막걸리는 다 마셔 보았다”고 말한다. 그 가운데 가장 으뜸인 막걸리는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대뜸 “여수 개도막걸리”라고 못 박았다.
‘막걸리’에 희롱당한 시인과 대통령
우리나라에서 ‘막걸리’를 애인보다 더 사랑했던 시인은 천상병이다. 그는 경기도 의정부에 살 때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이면 어김없이 단골 막걸리 집을 찾아가 혼자 앉아 막걸리 한두 잔 마시는 것을 사는 즐거움으로 삼았다.
그때 천상병 시인이 매일 가는 막걸리 집을 꾸리는 주모는 할머니였다. 그런 어느 날 하루, 천상병 시인이 갑자기 단골 막걸리 집을 싹 바꿔 버렸다. 천상병 시인 부인인 목순옥 여사가 이상하게 여겨 천상병 시인에게 은근슬쩍 물었다.
“새로 가는 술집주인이 예쁜 젊은 여자인가 보죠?”
천상병 시인은 어이가 없는지 입을 삐쭘이 내밀며 목순옥 여사에게 한마디 툭 던졌다.
“문디 가시나~ 새로 가는 막걸리 집은 주모가 젊고 예쁜 기 아이라 술잔이 훨씬 더 크다 아이가.”-제3부, “문디 가시나, 새로 가는 막걸리 집은 잔이 더 크다 아이가” 중에서
우리나라에서 ‘막걸리 대통령’으로 불리는 분은 세 명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 그 분 이명박 대통령이다. 그렇다면 ‘막걸리 대통령’ 세 분이 즐겨 마신 ‘대통령 막걸리’는 어떠어떠한 것들일까.
박정희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14년 동안 마셨다는 막걸리는 부산에서 빚는 금정산성막걸리와 경기도 고양에서 빚는 배다리막걸리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 맛에 반해 앉은 자리에서 6잔을 잇따라 마셨다는 막걸리는 충북 단양에서 빚는 소백산 대강막걸리다. 이명박 대통령이 즐겨 마신다는 막걸리는 자색고구마 생막걸리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중소기업중앙회 임원들과 만나는 자리에서는 전남 강진에 있는 병영주조에서 빚은 설성동동주를 건배주로 이용하기도 했다.
그 가운데 박정희 대통령과 막걸리에 얽힌 일화는 배꼽을 쥐게 한다. 하루는 박 대통령이 고건 수석비서관과 함께 청와대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한동안 잔을 주고받으며 박 대통령과 막걸리를 나눠 마시던 고건 비서관은 갑자기 소변이 마려워 살그머니 빠져나와 혼자 어둑한 곳에서 소변을 보려했다. 그때 박 대통령이 고건 비서관 어깨를 슬쩍 치며 한마디 나지막하게 툭 던졌다.
“고 비서관! 거기는 경비들이 있어. 이리로 와.”
박 대통령도 이때 소변이 마려워 밖으로 나왔다가 고건 비서관이 소변을 보려는 것을 보고 얼른 자리를 옮겨 같이 청와대 풀밭에 오줌을 눴다는 것이다. 누군가 이 이야기를 들으면 일부러 지어낸 이야기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청와대는 그때 건물이 일제 총독관저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어서 화장실 시설이 그리 좋지 않았다 한다.
제주에 가더라도 조껍데기술은 없다
“어이~ 자네 조껍데기를 그리도 빨리 못 까는(따르는) 걸 보니, 혹시 포경 아니야?”
“그 참! 형님도. 그러면 형님 먼저 좇껍데기를 한번 까보라니깐.”
“ㅋㅋㅋ~ 얌마! 발음 똑바로 해. 어디서 형님한테 함부로 좇껍데기를 까라 마라 하고 있어. 정말 좇껍데기 같은 넘이구먼.”
“할망! 이 좇껍데기 같은 넘하고 술 못 마실 것 같으니까 할망이 여기 와서 조껍데기 한번 까주면(따르면) 안 되겠어요?”
“......” -다섯 사발, ‘할망, 조껍데기 빨리 까버려’ 중에서
이 책 4, 5부는 시인이 서울, 부산, 인천 경기, 강원, 충북, 대전 충남, 전주 전북, 광주, 전남, 대구 경북, 울산, 경남, 제주 등지를 여행하면서 마신 그 지역에서 빚는 여러 막걸리에 대한 추억과 제조법, 맛 등을 꼼꼼하게 적은 막걸리 기행문이다.
시인은 제주 성읍마을에 가서 오메기술을 마시면서 좁쌀로 만든 술을 ‘조껍데기술’이라 낮춰 부르며 낄낄거리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저 사람들 장난질을 해도 너무 심하다. 주모한테 거는 말이 이곳에서 파는 ‘말뼈’처럼 뼈가 있는 것이 아니라 대놓고 내뱉는 성희롱이다. 근데도 저 사람들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킥킥 웃음이 자꾸 나오니, 이를 어찌하랴.”
시인은 “도토리묵과 함께 마시는 제주 특산막걸리 오메기술은 걸쭉하면서도 부드럽다. 뭐랄까. 첫맛은 유자처럼 시큼하면서도 뒷맛은 감귤처럼 달콤하다고나 해야 할까. 정말 안주가 필요 없을 정도”라고 말한다. 그는 “제주막걸리 오메기술은 사방팔방 바다를 낀 탓에 무속신앙이 많았던 제주에서 사시사철 당신(堂神)에게 제사를 지낼 때 바치던 술”이라며 “제주에는 고소리술이란 것도 있는데, 이 술은 오메기술을 맑게 거른 청주”라고 귀띔한다.
이 책 곳곳에 막걸리 안주처럼 맛깔스럽게 붙어 있는 도움글도 우리나라 막걸리의 뿌리를 파헤치는 소중한 사료집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책이 지니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은 1부에서 5부에 담겨 있는 모든 글들이 시인 스스로 지난 30여 년에 걸쳐 전국 곳곳을 여행하면서 직접 몸으로 체험하고 마음으로 느끼고 발효시킨 이야기를 솔직 담백하게 씨실과 날실로 꼼꼼하게 엮어놓았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