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생각이 나겠지
이별은 길옥윤의 끝 모르는 주색잡기로 부부가 별거하고 있을 때 받은 곡이다. 어느 날 뉴욕에 머물던 길옥윤으로 부터 전화가 왔다. “패티, 내가 새 곡을 썼는데 들어 볼래요?” 어쩌다 생각이 나겠지 냉정한 사람이지만 ........... 그렇게 사랑했던 기억을 잊을 수는 없을거야"
길옥윤은 특유의 나지막한 음성으로 이별을 끝까지 불렀다. 별거 중에도 길옥윤은 패티김을 염두에 두고 계속 곡을 지어 넘겨 주곤 했었다. 가사에는 이별을 아쉬워하는 통한과 패티김에 대한 사랑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길옥윤은 술과 결혼생활 중 하나를 택하라는 패티김의 마지막 경고에도 불구하고 끝내 술을 택했다.
길옥윤이 보내온 악보에는 제목이 <어쩌다 생각이 나겠지>로 되어 있었다. 이에 패티김이 ‘ 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는데 이별로 고치면 어떻겠느냐 ’ 고 길옥윤의 동의를 받아 음반을 발매했다. 노래가 나오자 마자 전국 방방곡곡 온 종일 이별노래가 울려 퍼졌고 결과적으로 이혼곡이 되어 버렸으며 두 사람은 1973 조선 호텔에서 기자 회견을 열어 공식적으로 이혼을 선언한다. 길옥윤(1927~1995.3.17 68세)이 3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고 고국에서, 그리고 20년후 1994년 패티김의 '이별 콘서트'에서 객석에 있는 길옥윤에게 "거 뭐 병 같은 걸 앓고 그러십니까?" 라고 했는데 많은 감정을 삭혀야 저런 말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콘서트 후, 엠불런스를 타고 가는 길옥윤을 배웅도 못하고 분장실에서 혼자 울었다고 한다. 그 이후 패티는 76년 이태리 남편과 재혼을 하였다.
어쩌다 생각이 나겠지 냉정한 사랑이지만 그렇게 사랑했던 기억을 잊을 수는 없을 거야 때로는 보고파지겠지 둥근달을 쳐다보면 은 그날 밤 그 언약을 생각하면서 지난날을 후회할거야
산을 넘고 멀리 멀리 헤어 졌건만 바다 건너 두 마음은 떨어졌지만 어쩌다 생각이 나겠지 냉정한 사랑이지만 그렇게 사랑했던 기억을 잊을 수는 없을 거야
산을 넘고 멀리 멀리 헤어 졌건만
바다 건너 두 마음은 떨어졌지만 어쩌다 생각이 나겠지 냉정한 사랑이지만 그렇게 사랑했던 기억을 잊을 수는 없을 거야 잊을 수는 없을 거야 잊을 수는 없을 거야
|
첫댓글 <경음악>- 이별 - 어쩌다 생각이 나겠지
<embed src="http://cfile286.uf.daum.net/media/0227144C50FDEEE033AB56"
type="audio/mpeg"loop="-1"hidden="true">
♬자유인산악회/한문희총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