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 두레박 신부의 영적일기(사순 제2주일)
일어나라, 영적인 거룩한 빛으로….
한 고운님이 너무 힘들어서 전화로 기도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동안 계속 찾아오는 고통과 불행으로 하느님을 원망하고 자신의 처지에 울면서 지냈답니다.
자기가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그 고운님에게 이 말씀을 주면서 정신을 차리고 기도하자고 했습니다.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테살로니카 1서 5장 16-18절)”
그 후에 고운님은 이 말씀을 붙들고, 정말 힘든 상황에서도 하느님께 감사하고, 또 감사했으며, 시간 나는 대로 성당에 나가 미사성제에 참례하고 감사기도를 올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감사가 기적을 가져옵니다. 그 가정이 영적 거룩한 빛으로 다시 일어나고 회복되는 과정을 듣게 되었습니다.
바로 말씀을 통해 하느님의 뜻이 그 고운님에게 어두움과 절망을 이긴 영적인 빛으로 은총이 내린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 사건은 먼 곳이 아니라 우리 곁에 어두움과 절망을 이긴 영적인 거룩한 빛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옆에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우리의 기도와 감사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아멘.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따로 데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모세와 엘리야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보게 됩니다.
그때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께 “선생님, 여기가 좋으니, 골치 아픈 일이 많은 세상에 내려가지 말고 여기에서 초막집을 짓고 살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즉 세상의 욕심을 버리는 영적인 거룩함이 일어나는 하느님의 소리를 듣게 됩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바로 예수님께서는 세 명의 제자를 데리고 올라간 이유가 세상의 욕심을 버리고 오직 주님만을 바라볼 수 있는 영적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입니다.
즉, 하느님의 음성을 듣고 세상에 얽매이지 않고 사는 제자들, 세상 사람과 다르게 사는 제자들, 그리고 땅만 보지 않고 하늘을 보는 제자들을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영적인 거룩한 빛을 체험하는 것에 머물러 있는 것을 원하지 않으시고 “내려가자.”라고 하십니다.
“내려가자.”라는 말씀의 뜻은 “너희가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통하여 영적인 거룩한 빛을 은혜로 받았으니, 세상에서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도망가지 말고, 매일 감사기도로써 이겨내고 극복하라.”라는 것입니다.
즉 “기도 외에는 세상에 그 어떤 문제를 풀 수도 없고, 몸과 마음에 치유도 없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산에 내려가자마자 더러운 영이 들린 아이를 고쳐주셨습니다. 아멘.
사랑하는 고운님들!
하느님의 자녀들은 모든 문제를 믿음으로, 기도로써 풀어야 합니다.
완전히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믿음이 고운님들의 마음 안에서 은혜가 될 때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첫째도 기도요, 둘째도 기도요, 셋째도 기도입니다.
이렇게 주님께서는 기도로 고운님들의 마음을 열어주시고, 서로 나누고 용서하는 은혜로운 삶을 살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분명 고운님들이 올라가고 내려가는 영적인 거룩한 빛으로 열심히 기도하게 되면 고운님들의 가정에, 고운님들의 자녀들에게, 그리고 고운님들의 이웃이 은혜받고 축복받게 될 것입니다.
특히, 고운님들의 기도로 기억하는 불쌍한 영혼들이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지금 고운님들이 어떤 일에 힘들고, 절망하고, 그리고 쓰러져 일어날 기운이 전혀 없을 때 주님께서 조용한 다가와 손을 잡고 말씀하십니다.
“괜찮다, 그럴 수도 있지, 괜찮아. 내 자녀들아, 나는 너를 사랑한다. 나는 너와 함께한다.” 아멘.
저 두레박 사제도 하느님의 말씀으로 영적인 거룩한 빛으로 감사 기도하면서 몸과 마음이 아픈 고운님들과 아픈 이들을 돌보는 고운님들, 그리고 고운님들의 자녀에게 주님의 치유와 회복의 은총이 임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영적일기를 마무리하면서….
나에게 있는 것을 사용하여 하느님의 마음으로 고통과 눈물로 살아가는 이들을 돌보고 나누며 사는 고운님들에게 영적 거룩한 빛으로 간절히 바라는 것이 이루어지는 치유와 회복의 은총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강복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 전능하신 천주 성부와 (+) 성자와 성령께서는 고운님들에게 강복하시어 길이 머물게 하소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https://youtu.be/hDGHsa8To88?si=CATDz0jC6laBCaHw
2024년 2월 25일
사순 제 2주일
마르코 9,2-10
변화는 신에 대한 감정에 의해 결정된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변모입니다. 예수님께서 변모하실 때 나타난 모세와 엘리야는 어떤 인물일까요? 모세는 진리, 엘리야는 은총과 관련이 깊습니다.
모세는 십계명을, 엘리야는 불이 세상에 내려오게 하였습니다. 은총과 진리는 마치 어머니의 젖과 가르침처럼 자녀를 새로 태어나게 합니다.
그러자 하늘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은총과 진리를 통해 새로운 존재로 변화되었고,
그 새로운 존재의 은총과 진리를 통해서만, 또 제자들도 새로 태어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제자들은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기도는 진정 새로 태어남의 시간이요,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는 기적의 시간입니다.
사순절에 교회에서 권고하는 세 가지 재계, 곧 기도-자선-단식에서 오늘은 기도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기도하건 하지 않건 사람은 조금씩 변해갑니다. 더 높은 본성으로 변하든지 더 악해지든지 할 뿐입니다. 사람이 변하는 것은 외부에서 들어오는 어떤 것 때문입니다.
안 좋은 것을 받아들일 때는 안 좋게 되고 좋은 것을 받아들일 때는 좋게 변화됩니다. 만약 어떤 사람들이 악마와 같이 변화되었다면 그런 것들을 받아들여 자신들의 정체성을 악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몇 년 전에 SNS에 N번방을 만들어 수십 명의 여성을 노예처럼 착취하며 돈을 번
일당이 잡혔습니다. 그중 상당수가 미성년자였습니다.
천재적인 수법으로 사람의 인권을 철저히 짓밟으며 그것을 돈벌이로 이용한 젊은 청년 중
주도자 두 명이 자신들의 아이디를 ‘갓갓’(GodGod) ‘붓다’라고 한 것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신이 되려 했습니다. 사람들이 그들을 신으로 불러줬기 때문입니다.
신이 되는 방법은 돈을 소유함으로, 쾌락을 추구함으로, 힘을 과시함으로써입니다.
곧 스스로 주님, 창조자, 심판자가 되려 한 것입니다. 하지만 스스로 신이 되려 했는데 알고 보니 악마가 되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경찰에 잡혀 자신들의 악마와 같은 삶을 끝내줘서 감사하다고까지 말했습니다. 이들은 왜 스스로 신이 되려 했을까요? 세상에 아무도 자기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무언가 만들어주는 도구입니다. 아기가 짐승에게 사랑받고 길러지면 짐승이 되고 사람에게 길러지면 사람이 되며 하느님께 길러지면 하느님이 됩니다.
그들은 사랑받지 못했기에 아무 것도 아닌 존재였습니다. 이때 스스로 높아지는 방법은 돈과 여자, 힘이었던 것이고 그것이 사람을 악마로 만듭니다.
영화 ‘한공주’(2014)는 집단 성폭행을 당한 아이가 자기 힘으로 살아보려 했지만,
부모로부터 외면당하고 학교, 그리고 친구에게마저 외면당함으로써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으로 나옵니다.
목숨을 끊는다는 말도 내가 신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생명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안타깝지만, 자기 힘으로는
절대 높은 수준의 본성으로 올라올 수 없습니다.
사람에 대한 사랑은 사람을 한층 더 높은 수준의 본성으로 상승시킵니다. 주윤발 배우와 같은 이들은 세상에서 가진 전 재산을 아낌없이 주고 가겠다고 말하며 자신들은 매우 검소하게 삽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이들은 세상이 자기들을 그만큼 사랑했다고 여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