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 묵상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4-6)
⁋ 찬송- 270장 변찮는 주님의 사랑과
⁋ 기도- 박희산 장로
⁋ 성경- 마가복음 14:3-9
3.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4. 어떤 사람들이 화를 내어 서로 말하되 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는가
5.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
6.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만 두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7.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8.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9.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 말씀
고난주간 화요일이다.
유월절을 이틀 앞두고 예수님은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을 방문하셨다. 이 날,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머무시면서 가장 친절한 대접을 받으셨다.
당시 유대인의 습관에 따르면 귀한 손님이 집에 오면 손님에게 몇 방울의 향유를 뿌리는 풍습이 있었다. 그런데 한 여자가 예수님의 머리 위에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머리에 부어드렸다. 최고의 존경을 보여준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여자의 행동을 결코 이해하지 못했다. 오히려 반대하고, 심지어 화를 냈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도 대부분 같은 태도였다.
“어떤 사람들이 화를 내어 서로 말하되 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는가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4-5).
요한복음에 따르면 지극한 존경심을 보인 그 여자를 비난한 당사자는 유다였고(요 12:4), 옥합을 깨뜨려 향유를 부은 여자의 이름은 마리아였다(요 12:3).
유다는 마치 ‘율법’(신 15:11)을 들먹이며 합리적인 충고를 하는 듯하다. 현실의 재리에 일찍 눈 뜬 유다의 눈으로 볼 때 마리아가 한 행위는 상상할 수 없는 낭비였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마리아의 행동은 ‘어리석은 낭비다, 철없는 짓이다, 현실을 너무 모른다, 순진한 생각이다’라는 식으로 평가할 만도 하였다. 그러나 마리아와 유다의 상반된 태도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마리아가 예수님을 목적으로 삼았다면, 유다는 예수님을 수단으로 삼았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믿었고, 유다는 예수님을 알기만 하였다. 마리아는 ‘신앙적 물질관’을 가지고 있었으나, 유다는 ‘물질적 신앙관’을 가지고 있었다.
대부분 제자들이 갈릴리 출신인데 비해 먼 지방 가룟에서 온 유다는 그들 중에서 단연 두각을 나타내었다. 직업이 세리였던 마태를 제치고 제자 그룹 중에서 회계를 맡은 것을 보면 수완이 뛰어난 사람처럼 느껴진다.
유다의 문제를 꼽는다면 그가 두 마음을 품었다는 점이다. 그는 예수님을 따랐으나 이전의 물질적 가치관을 버리지 못하였다. 그런 까닭에 유다는 예수님을 자기 이해관계에 따라 판단하였다.
유다는 평소 사람을 보면 이용 가치부터 생각하고, 물건을 보면 돈으로 환산하던 사람이었다. 그런 유다의 눈에 사랑의 위대함, 희생의 고귀함, 헌신의 순수함, 신앙의 숭고함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유다는 ‘값싼 은혜’를 추구한 사람이다. 제가 행한 만큼 얻을 대가를 따졌다. 그러다가 제 이해를 따지고 이익에 맞지 않으니 나중에는 스승마저 배신 한 것이다.
예수님의 고난에 대해서 마리아와 유다는 정반대의 생각을 가졌다.
마리아는 나를 위한 거룩한 죽으심에 앞서 최고의 선물을 드렸으나, 유다는 자기와 상관없는 헛된 죽음으로 여겨 최악의 배신을 하였다.
마리아는 예수님께 값비싼 옥합을 깨뜨려 사랑의 낭비를 하였으나, 유다는 향유 한 옥합을 값으로만 따져 철없는 짓으로 비난하였다. 유다의 생각은 합리적인 듯하나, 진실하지는 않았다.
여자의 행위는 ‘거룩한 낭비’였다. 여자는 자기 헌신을 통해 ‘주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내 주님이십니다’라고 고백한 것이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그 여자가 한 일을 기쁘게 받아주신다.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8).
유다가 지적한 대로 가난한 자들을 돕는 일은 마땅히 해야 한다. 율법을 따르는 일이다. 그들은 언제든 도와야 하고, 도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위해서는 더 이상 시간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여자는 가장 필요한 시간에 최고의 낭비를 한 것이다.
바로 자기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사랑과 헌신을 드릴 수 있었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기회가 항상 있는 것은 아니다.
거룩한 욕망과 거룩한 낭비가 너를 구원으로 인도할 것이다.
사실 거룩한 낭비는 인간이 아니라, 본래 하나님이 하신 일이다. 애초에 십자가는 죄인이 짊어져야 할 일이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죄 없으신 예수님을 우리를 위해 속죄양으로 삼으셨다. 십자가는 가장 위대한 낭비였다.
주님은 우리보다 먼저 십자가를 대신 지시고 구원의 길을 가셨다.
하나님의 차원에서 보면 죽을 수밖에 없는 나를 위해 ‘거룩한 낭비’를 하신 것이다.
인간의 판단으로 지극히 불합리한 일을 선택하셨다.
십자가의 길은 인간의 합리적 판단으로 이해가 가능한 것이 아니다. 그 길은 ‘죽음의 길’처럼 보이지만, 결국 ‘생명의 길’이었다. 이러한 ‘죽음의 길’을 ‘생명의 길’로 내가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이다.
하나님의 거룩한 낭비인 십자가는 나를 하나님의 사랑으로 초대한 위대한 친절이다. 그 ‘거룩한 낭비’가 내 삶을 새롭게 하고, 부요하게 하며, 참된 부활의 믿음으로 이르게 하신다.
⁋ 주기도문
“오늘도 주님의 평화!”
첫댓글 주님께 최고의 선물을 아낌없이 드린 마리아의 '거룩한 낭비' 헌신을 배우게 하옵소서
나같은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고난 당하신 주님께 한없는 감사를 드립니다. 나의 귀중한 옥합을 깰 수 있는 마음을 주시고 고난주간을 더욱 경건히 보내게 하옵소서.
이땅에서 주님께 기도하고 찬양할 수 있는 시간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늘 깨어있어 기도하고 찬양하며 내 인생 최고의 시간과 노력을 주님께 바치는 신앙인이 되길 소망합니다.
" 거룩한 낭비는 인간이 아니라, 본래 하나님이 하신 일 "
그 시대 여자들의 일반명사였던 마리아가 했던 그 거룩한 낭비를 기억합니다. 지금 이곳에서 제가 할수 있는 거룩한 낭비, 거룩한 욕망이 무엇인지 알기 원합니다. 내 마음과 눈을 열어주옵소서. 주님
우리의 죄 사함을 위해 거룩한 피를 쏟으신 주님을 생각합니다. 내가 주님께 드릴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 말씀을 통해 더 가르쳐 주시고 헌신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