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 만세] 김천 성의여중고등학교
무감독 시험 30년…"정직한 삶의 기쁨 배워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한 시험 시간. 학생들은 모두 책상에 놓인 시험지를 뚫어질듯이 내려다보더니만 이내 문제를 푸느라 여념이 없다.
긴장으로 가득찬 시험 시간의 모습은 어느 학교나 마찬가지이지만, 경북 김천 성의여자중·고등학교(교장 이흔상) 시험 시간엔 다른 학교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풍경이 펼쳐진다.
'무(無)감독 시험'. 성의여중고 시험 시간엔 감독 교사가 없다. 오직 '양심'만 있을 뿐이다. 시험 시간 내내 텅 비어 있는 교탁, 부정 행위를 감시하는 교사의 매서운 눈초리는 성의여중·고 시험 시간엔 찾아볼 수 없다.
감독 교사 없이 시험이 치러지기 때문에 부정행위가 빈번할 것이라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스스로 '감시자'가 되어 오로지 '양심'에 따라 시험을 치르는 이 학교 학생들에겐 부정 행위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 양심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정직한 삶이 가져다 주는 기쁨을 느끼게 하고자 올해로 30여년 째 꾸준히 실시해 오고 있는 '무감독 시험' 제도는 이 학교만의 자랑거리. 입시 위주, 성적 위주의 비뚤어진 교육 환경에 놓인 학생들에게 올바른 삶의 태도를 갖게 해주는 이 제도는 교훈 '양심'을 몸소 실천하려는 학교 측의 애정어린 노력의 일환이다.
시험 시간은 온전히 학생들 자율에 맡기고 있지만, 무감독 시험을 위한 준비만큼은 절대 소홀히 할 수 없는 일. 성의여중고만의 '교육 전통'이라 내세울 수 있을 만큼 무감독 시험을 위해 학교가 기울이는 노력은 철저하다.
매 학기 시험을 치르기 전 이흔상 교장은 전교생을 대상으로 양심의 중요성과 무감독 시험의 취지 등을 설명하는 훈화 시간을 갖는 것을 비롯해 양심을 주제로 한 각 학급 담임 선생의 훈화도 매주 빠짐없이 이어진다.
또 무감독 시험 당일에는 담임선생이 칠판에 '자기를 이기는 것이 학문을 하는 제일의 공부이다' 등의 글귀를 적어놓거나 성서 구절을 읽어 주며 학생들이 부정 행위를 할 생각을 버리고 차분한 마음으로 시험을 치를 수 있게 도와준다.
그 중 학교가 가장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소감문 작성 시간'. 학생들은 시험이 모두 끝나는 마지막 날에 소감문을 통해 무감독 시험을 보면서 느낀 점이나 개선할 점, 학급 분위기 등을 학교에 전하고, 학교는 이를 모아 다음 시험을 위한 참고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무감독 시험에 따른 가장 큰 성과는 학생들의 자율성과 책임감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등 교내 시험에만 실시되던 무감독 제도가 지금은 모의고사 등 교외 시험에까지 확대되어 시행되고 있는 점은 학생 스스로가 얻은 성과라 할 수 있다.
김로타(중3)양은 "시험을 못 쳐도 선생님없이 스스로 감독하며 시험을 쳤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을 때가 많다"며 "양심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 성적보다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는 기회인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