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15:1-11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다시 사신 역사적인 사건에
대한 진술이고 고전15:12-19절은 부활이신 그리스도와 우리의 관계를 설명합니다.
12절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그리스도의 부활은 죽은 자들의 부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신(rose) 그리스도가 아담 안에서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의
부활(resurrection)이 되십니다.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부활과
생명이십니다(요11:25) 성도의 부활의 실제는 아담 안에서 죄로 인해 사망
가운데 죽었던 자들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시 사는 것입니다.
아담 안에 죽었던 자들이 그리스도의 부활로 다시 살고 그 생명으로
영원한 생명으로 얻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육신의 껍데기가 영화로운
것으로 바뀌는 형체의 부활이 있습니다. 쉽게 설명하면 씨가
먼저 살아나고 완성이 된 후에 형체도 바뀐다는 말입니다.
13절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였으니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었다는 말씀입니다.
그 분 자신이 바로 부활이요 생명입니다. 그 분은 처음부터 영원한 생명을 가지신 분입니다.
하나님의 씨를 가지신 분입니다(요일3:9)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사시므로
형체가 변화되는 부활체가 되셨습니다. 그 다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모시는 아담 안에
죽었던 자들의 부활의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었습니다. 이를 제대로 알게 해야죠.
14절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였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부활에 대한 믿음이란? 1)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의 역사적
사실을 믿는 것이며 2) 부활이며 생명이신 그 분이 내안에 계시는 현재적인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헛 믿음은 그럴 것이라는 개념을 가진 믿음입니다.
산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가 적용되는 순간부터 생깁니다. 성령의 역사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이 선물은 실제적입니다. 가상이 아닌 실상입니다.
사람들이 일반적인 신뢰의 믿음은 다 가지고 있습니다. 비행기를 타며,
고층아파트에 사는 것 자체가 이미 믿음으로 산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부활에 대한 믿음이 이래서는 안 됩니다. 있으면 있고 없으면 없는 겁니다.
전파되는 것이 헛것이면 믿음도 헛것이 되는 걸 유의해야 합니다.
그러나 전파되는 진리가 산 것이면 믿음도 산 믿음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으로 죽으셨다가 다시 사신 사건과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내 안에 계시는 사실을 믿는 믿음이 바로 산 믿음, 살아 있는 믿음입니다.
그리스도는 죽지 않고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존재하시는 분입니다(요1:1)
사실 그 분에게는 부활한다는 단어가 필요 없고 그 분 자체가 바로 부활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 분이 '다시 사셨다. 또는 일어나셨다' 라고 표현합니다.
부활은 정작 아담 안에서 죄로 말미암아 죽은 우리들에게 절실히 필요합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란 그리스도가 바로 우리의 부활이란 말입니다(요11:25, 롬8:10)
따라서 언제나 그 분이 우리 안에서 살아 운동력으로 역사하시도록 해야 합니다(히4:12)
15-16절에는 그리스도를 살리신 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해 설명합니다.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은 현재형이며 수동입니다.
우리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는 부활과 생명의 주님이십니다. 그 부활로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주님이시며 그 생명으로 영원히 살게 하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리스도가 부활과 생명이 되시는 바울의 주관적인 체험을 말하고 있습니다.
17절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부활의 성격에 대한 말씀입니다.
만약 부활이 없었다면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다’ 매우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바울은 부활을 죄에 대해서는 죽고, 의에 대해서는 산자로 여기는 것을 말합니다(롬6:11)
바울은 세례(침례)를 설명하면서 죄의 몸에서 끝이 나고 다시 살아난 것을 부활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다시 살았으므로 죄와 사망의 법이 없어졌습니다(롬8:1-2)
그러므로 부활과 죄 사함을 하나로 보는 겁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바라보고 예수만
믿고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하지 않으면 여전히 타의 모범이 되는 죄수로 사는 겁니다.
18절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들도 망하였으리니”
잠자는 자는 육신이 죽은 자들입니다. 요11:11-13절에
예수님이 나사로가 잔다고 하시고 깨우러 가자고 하셨습니다.
삼하7:12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왕상2:10 다윗이 그 열조와 함께 누워 자서 다윗성에 장사되니
행13:36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섬기다가 잠들어
죽음과 잠은 다릅니다. 죽음은 그리스도 밖에 있는 멸망을 말하고,
잠은 그리스도 안에서 안식을 얻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잠’에 대한 말씀은
계6:11 ‘잠시 동안 쉬되’ 계14:11-13 ‘짐승의 표를 받는 자는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그러나 주 안에 죽은 자들은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육체가 아니라 영적인 상태를 말하고 있습니다.
시편을 보면 영혼의 안식에 대한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사실 미라는 부활사상입니다. 다시 살아 날 때까지 쉰다는 의미입니다.
19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이 말씀은 죽어서 가는 천국이 없다면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죽어서 가는
천국은 그리스도를 주로 모시므로 영원한 생명을 가졌으니 생명의 부활로
마지막 나팔 소리에 나오는 것은 당연합니다(요5:29) 지금은 봄인데 여름을
향해 빨리 오라고 재촉한다고 여름이 성큼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태양계의
차서를 따라 여름이 지금 다가 오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가는 천국이 있기
때문에 이 세상 삶이야 어떻던 괜찮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그의 부활로 거듭나서 하늘의 신령한 복을 받으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다윗처럼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를 주로
모시고 하나님 앞에서 항상 주의 이름을 간절히 부르므로(행2:14-36) 구원을
실시간으로 받는 산 믿음이 없이 육체의 수고로만 살아간다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라는 바울의 진술입니다.
첫댓글 아멘!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