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0.
손님
자욱이 오는 가랑비를 몽우(濛雨)라 한다. 이렇게 젖은 날은 장화와 우산으로 치장하고 비닐하우스를 향해 씩씩하게 걸어간다. 뿌리를 튼튼하게 내린 비트를 대장으로 청경채, 적겨자, 상추들은 한 번만 쳐다봐도 된다. “아따! 잘 크고 있네” 딸랑 이 한마디면 오늘 일과는 끝이다. 몽우가 귀농귀촌지원센터를 덮은 날에는 그냥 쉬면 된다.
11시에 출발해서 나를 보러 구례로 달려온다고 했다. 대구에서 구례까지는 정속 주행하면 딱 2시간이 걸린다. 시계를 쳐다보니 13시 정도는 되어야 도착할 것 같다. 구례로 한해살이 온 후 지인들이 몹시 궁금해한다. 어떻게 사는지, 뭐하며 지내는지, 힘들지는 않은지 자꾸만 묻는다. 불편해서 어쩌냐면서 필요한 거 있으면 택배로 보내겠다는 친구도 있다. 전화로 묻는데 뭐라 답하기도 마땅하지는 않다. 왜냐면 살만하기 때문이다.
먼 길을 오는데 점심은 어쩌지. 넷이 점심을 먹을 구례 맛집을 곰곰이 생각해 본다. 마을부녀회에서 운영하는 산수유 두부전골집 하나를 네이버로 공유한다. 아무래도 약하다. 구례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을 소개해야 하지만 딱히 내세울 만한 게 없다. 지리산을 끼고 있으니 산나물 맛집을 소개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세자매가든의 돌솥밥과 산나물이면 나쁘지 않을듯하다. 그래도 뭔가 부족한 것은 음식의 종류가 평이해서인가. 유명한 맛집이 있긴 한데 웨이팅이 너무 길어 공유할까 말까 망설여진다. 운은 하늘에 맡기고 검색한 주소를 카톡으로 보냈더니 다슬기 수제비 맛집 부부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고 한다. 맛있게 먹었다니 고맙고 다행스럽다.
비는 하염없이 내리고 온다는 손님 소식은 없다. 시침은 2시를 지나 3시, 4시에 가까워지고 있다. 창밖으로 검은 세단 한 대가 스친다.
“한 3년만 노시다가 좋은 일자리 찾으세요”
“예? 뭔 말씀을! 계속 쭉 놀아야죠”
“그러니까, 3년만 노세요. 하하하”
나보다 먼저 퇴직하고 시골로 들어가서 연로한 부모의 농사일을 도왔던 은퇴 선배의 말이니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내일 일도 모르는데 3년 후의 일이야 지금으로써는 모르겠다. 그는 퇴직한 지 5년이나 되었다. 벌써 그리되었다니 세월 참 빠르다. 엊그제 같은데. 알 듯 말 듯 한 이야기와 격려인지 위로인지 모를 이야기를 남기고 떠났다.
이제 겨우 1개월이다. 지금은 그냥 이렇게 시간을 보내도 후회할 일은 없을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