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와 심화,
혼란과 좌절의 1930년대, 일제 말 암흑기의 시문학사
양상들
1. 문단 내외의 상황
3) 서구 문예의 본격 유입과 소개
한편 이시기는 서구의 제 유파의 이론 및 문예 작품들이 거의 동시대적인 맥락에서 수입, 소개되기 시작하였다는 데 그 특색이 있다. 이러한 현상은 그 전대의 서구 문예이론 수용 양상이 대부분 일본이라는 1차 경유지를 거쳐, 다소간의 시간적 편차를 두고,
부분적으로 굴절된 형태로 이루어졌던 것과는 차별성을 지닌다. 물론 이 시기라 하여 완전히 서구로부터의 직수입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서구 문단의 동향에 대한 우리 내부의 관심 고조와 더불어, 그 수입과 소개 양상이 거의 동시대적으로 진행되었다는 사실은 마땅히 주목할 만한 여지가 있다.
이와 같은 동시대적인 수용의 배경에는 서구적 의미에서의 근대에 대한 문단 내부의 새로운 이해 및 그에 따른 신세대 문학인들의 문학을 바라보는 기본 관점과 감각의 변화가 한몫을 한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김기림 등이 주축이 된 서구 모더니즘 문예에 대한 관심이 자리잡고 있었다. 김기림의 말마따나, 조선에서의 모더니즘 이입에는 전대의 문학 경향에 대한 문단 내부의 불신과 불만이 자리하고 있다.⁵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중요시되어야 할 것은 이러한 새로운 조류를 별 무리 없이 수용할 수 있게 하였던 당대의 문화적 배경과 지식인들의 정서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결국 도시화로부터 촉발된 서구 근대문명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나, 이에 기초한 감각적 수용의 자세와 긴밀하게 연결되는바, 비록 경성이라는 지역적 한계를 멀리 벗어나지 못하긴 하였으나, 당대의 조선사회 일부가 이미 서구문명의 감각과 정서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만한 토대를 확보하였음을 말해주는 것일 수 있다.
한편, 이러한 모더니즘 문예의 이입과 소개는 또 다른 관점에서 우리문단의 질적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데 일조했던 것으로 생각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기에 벌어졌던 여러 논쟁들 가운데 이 점과 관련하여 기억될 만한 것으로는 '기교주의 논쟁'이 있다. 1930년대 중반을 무대로 김기림과 임화 · 박용철 등이 각각의 유파를 대표하여, 작시 상에 있어서 기교의 문제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자신의 입장 표명과 함께 상대편관점에 대한 비판 공세를 펼쳤던 이 논쟁은 표면적으로는 내용과 형식(기교)의 문제를 둘러싼 다분히 원론적인 차원의 논의로 시종 일관한 감이 없지 않지만, 내부적으로 보다 자세히 들여다볼 경우 모더니즘 시문학의 확산에 따른 문단 내부의 관심과 긴장감의 표출이자, 점차 열악해져가는 외적 정세에 나름대로 대처해나가기 위한 위기의식의 산물임이 드러난다. 논쟁 자체만으로는 결과적으로 이들 삼자 간의 입장 차이만을 재확인한데서 끝났을 뿐이었지만, 이를 계기로 하여 김기림이 '전체성의 시론'으로 나아간다든지, 임화가 교조적인 계급주의적 관점에서 한 발짝 벗어나 낭만주의에 대해 전향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한 것은 이 논쟁이 빚어낸 의도되지 않은 수확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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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모더니즘은 두 개의 부정을 준비했다. 하나는 '로맨티시즘'과 세기말 문학의 말류인 '센티멘털· 로맨티시즘'을 위해서고, 다른 하나는 당시의 편내용주의 경향을 위해서였다. '모더니즘'은 시가 우선 언어의 예술이라는 자각과 시는 문명에 대한 일정한 감수를 기초로 한다음 일정한 가치를 의식하고 쓰여져야 되다는 주장 위에 섰다." 김기림. '모더니즘의 역사적 위치, 김기림전집』 2, 심설당, 1988, 55쪽.
『한국 현대 시문학사』 이승하 외 지음
2024. 11. 11
맹태영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