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DMZ 평화의 길 22코스 제1부
화천교-마리나워터스키-가손이-전장골-
미륵바위-살랑교-대붕교-구만교삼거리-
해병대화천지구전투전적비-미래의숲-
윗대이리경로당-화천레미콘-꺼먹다리
20250627
1.코스소개(두루누비)
1)코스개요
- 화천대교 회전교차로에서 풍산교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 화천읍 시내 구간을 지나 북한강의 절경을 만끽할 수 있는 구간이다.
- 화천의 대표 관광지인 딴산유원지와 꺼먹다리, 숲으로다리 등을 지나는 코스다.
2)관광포인트
- 화천댐 건설 이후 북한강을 건너기 위해 만든 꺼먹다리
- 화천댐 건설 이후 거대한 호수가 된 파로호
- 6.25전쟁 때 국군이 중공군의 대공세를 무찌른 전투를 기리는 파로호 안보전시관
- 화천군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돌아볼 수 있는 화천박물관
3)여행정보(주의사항)
- 우천시 숲으로다리 노선 폰툰교 제거에 따른 이용이 불가하다.
- 주요경로 : 화천대교 3.4Km 미륵바위 3.6Km 화천꺼먹다리 8.3Km 풍산교
- 길이 15.3km, 소요시간 5시간, 난도 쉬움
- 시점 : 강원특별자치도 화천군 화천읍 하리 8-3
대중교통) 화천시외버스터미널에서 도보 이동 (600m)
- 종점 : 강원특별자치도 화천군 화천읍 풍산리 398
대중교통) 화천시내버스터미널에서 ‘풍산리 2, 2-2번 버스’ 이용, 명승동 하차
2.뗏목을 타고 술잔을 드니 만단의 설움이 다 풀어지네
민족의 비극 6.25전쟁 75주년을 맞이한 지난 달 6월 25일 도보여행팀 '좋은사람들'이 안내하는 DMZ 평화의 길 탐방에 참여했다. 도보여행팀에서는 이날 23코스와 22코스, 2개 코스를 역방향으로 진행하여 도보여행팀 버스는 해산령을 넘어 23코스 종점인 평화의 댐 국제평화아트파크에 10시 6분에 도착한다. 주어진 시간은 9시간 30분, 그래서 23코스 시점인 화천읍 풍산리 풍산대교에서는 오후 4시에, 22코스 시점인 화천읍 하리 화천대교 회전교차로에서는 오후 7시 30분에 도보여행팀 버스가 서울로 출발하니 탐방객들은 이 시각을 지켜 달라고 도보여행팀 안내자가 당부한다.
무릎과 인대에 이상이 있고 체력이 약한 탐방객이 2개 코스 36km 거리를 과연 9시간 20분 안에 걸을 수 있을까? 그래도 걸을 수 있는 데까지는 최선을 다해 보자. 비가 적당하게 내려서 우산을 받치고 힘겹게 23코스를 오후 3시 15분에 끝내고는, 널부러졌다. 발과 무릎에 이상이 생기고 체력의 한계 때문에 더 이상 22코스를 진행할 수 없었다. 아쉽지만 평화의 길 22코스는 다음 기회로 미루어야 했다. 풍산대교 입구에서 도보여행팀 버스를 타고 22코스 시점인 화천대교 회전교차로에 4시 15분에 도착하여, 완주자들이 도착하는 시각까지 대기하였다. 2개 코스를 완주하고 도착하는 탐방객들은 길고 긴 42.195km 거리를 완주하고 골인하는 마라톤 완주자처럼 보였다. 그들을 부럽게 바라보면서 중도에 탈락한 탐방객의 마음에는 이슬비가 뿌렸다. 완주한 길동무와 함께 화천시장 앞 막걸리집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빗물을 씻어냈다. 도보여행팀 버스는 저녁 7시 20분 화천대교 회전교차로 앞에서 서울을 향하여 출발했다. 그래, 나 홀로 다시 이곳에 오리라.
이틀 뒤인 6월 27일 DMZ 평화의 길 22코스 탐방을 위해 동서울터미널에서 6시 45분 화천행 첫차를 타고 화천으로 떠났다. 날은 잔뜩 찌푸려 있다. 화천대교 회전교차로의 화천교 입구 DMZ 평화의 길 22코스 시점에서 이틀 전 탐방하지 못한 22코스 탐방을 9시 56분 출발한다. 22코스는 화천읍 하리에서 출발하여 화천읍 아리, 대이리, 풍산리 지역을 탐방하는 코스이다. 화천천이 북한강에 합수하는 두물머리에서 북한강을 거슬러 오른다. 풍산천이 북한강에 합수하는 어룡동 마을 입구에서 북한강과 헤어져 풍산천을 거슬러올라 화천읍 풍산리 우장마을 풍산천에서 22코스 탐방을 끝낸다. 22코스 탐방 체험을 화천읍 대이리 643고지 전투전적비 입구를 경계로 하여 2부로 나누어 기록한다.
제1부 : 화천교는 화천천을 가로지르고, 화천대교는 북한강을 가로지른다. 두 다리 사이에 화천대교 회전교차로가 있고, 그 중심에 화천을 상징하는 조형물 회전탑이 5층 탑의 형태로 자리한다. 그리고 화천교 서쪽 화천산천어 축제장 입구에 화천의 또 하나의 명물 얼곰이가 산천어를 낚시질하는 조형물 얼곰이탑이 솟아 있다. DMZ 평화의 길 22코스 시점은 '청정과 번영'의 두 조형물을 바라보는 화천읍 하리 화천교 입구에 있다. 평화 없는 청정과 번영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화천대교 회전교차로의 화천교에서 시작되는 도로를 '평화로'라고 명명한 의도를 가볍게 여기지 말라. '평화로'가 평화를 향해 힘차게 북한강을 따라 오른다. '평화로'는 북한강을 따라오른 뒤 풍산천을 따라오르다 풍산대교를 가로질러 해산령을 넘어 평화의 댐으로 이어진다. 평화의 길 22코스는 평화로를 따라 북진하여 풍산천 위를 가로지르는 풍산대교 아래의 풍산천에서 대미를 장식한다. 'DMZ 평화의 길'과 '평화로', 22코스 탐방로는 평화의 의미를 더욱 가슴 깊이 새기게 한다.
화천교를 건너 평화로를 따라 북한강을 거슬러 오른다. 평화로에는 가지치기를 한 단아한 모양의 은행나무들이 가로수로 조성되어 줄지어 서 있다. 늦은 봄날 연노랑으로 피어난 자잘한 은행나무 꽃은 이미 떨어지고 푸른 잎들이 무성하다. 은행나무 꽃말은 장수와 희망을 의미한다. 가을날이면 은행나무는 황금빛 잎들로 물들어 풍요의 아름다움을 선물한다. 가을날의 평화로는 은행나무 황금빛 물결이 반짝이며 출렁일 것이다. 지금은 6월말 은행나무 무성한 푸른 잎들이 '풍요와 통일의 희망'을 향해 평화로를 달린다.
평화로와 나란히 가는 보도&자전거길은 '파로호 산소 100리길'이라 명명되어 있는데, 북한강이 남한강과 합수하는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양수리 두물머리까지의 거리 표지목이 1km 거리로 세워져 있다. 산소길에서 처음으로 만난 표지목은 양평군 양서면 두물머리 합수지까지의 거리가 107km 거리임을 알려준다. 그렇다면 발원지까지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 그 거리도 함께 적었으면 금상첨화였을 것이다. 북한강(北漢江)은 강원도 회양군 금강산의 단발령에서 발원하여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양수리에서 남한강과 합수하여 끝나며, 길이는 155.86㎞라고 한다. 그렇다면 현재의 위치에서 발원지까지는 48.86km가 된다. 북한강을 거슬러 발원지까지 걸어가는 '평화의 길'을 개통할 수 없을까?
북한강에는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물오리 가족이 한가로이 유영한다. 호심처럼 고요한 강물을 바라보며 북한강 강변길을 따라 오른다. 모터보트는 물살을 가르며 화천대교 방향으로 내려간다. 북쪽에서 흘러 내려오는 북한강을 바라보며, 발원지 금강산을 떠올리면 가슴에 먹구름이 덮인다. 춘천 방향으로 흘러 내려가는 북한강을 바라보면, 남한강과 합수하는 두물머리와 한강이 서해 바다에 몸을 푸는 김포 유구섬이 떠오른다. 강물이 바다에 몸을 푸는 곳은 이 세상 모든 것들이 결국에 도달하는 죽음과 화해의 장소라는 생각이 들고, 그리하여 안개와 먹구름이 걷힌다. 북한강을 바라보면, 시원(始原)의 이상향이 펼쳐지는 과거로 되돌아가듯 정태춘의 '북한강에서' 노래가 흐른다.
"저 어둔 밤하늘에 가득 덮인 먹구름이/ 밤새 당신 머릴 짓누르고 간 아침/ 나는 여기 멀리 해가 뜨는 새벽강에/ 홀로 나와 그 찬물에 얼굴을 씻고/ 서울이라는 아주 낯선 이름과/ 또 당신 이름과/ 그 텅 빈 거릴 생각하오/ 강가에는 안개가 안개가 가득 피어나오// 짙은 안개 속으로 새벽 강은 흐르고/ 나는 그 강물에 여윈 내 손을 담그고/ 산과 산들이 얘기하는/ 나무와 새들이 얘기하는/ 그 신비한 소릴 들으려 했소/ 강물 속으론 또 강물이 흐르고/ 내 맘 속엔 또 내가 서로 부딪치며 흘러가고/ 강가에는 안개가 안개가 또 가득 흘러가오// 아주 우울한 나날들이 우리 곁에 오래 머물 때/ 우리 이젠 새벽 강을 보러 떠나요/ 과거로 되돌아가듯 거슬러 올라가면/ 거기 처음처럼 신선한 새벽이 있소/ 흘러가도 또 오는 시간과/ 언제나 새로운 그 강물에 발을 담그면/ 강가에는 안개가 안개가 천천히 걷힐 거요/ 흘러가도 또 오는 시간과/ 언제나 새로운 그 강물에 발을 담그면/ 강가에는 안개가 안개가 천천히 걷힐 거요" (정태춘의 '북한강에서' 노랫말)
화천읍 아리(衙里) 지역 아5리 가손이 마을과 전장골 마을을 지난다. 강변길에서 위쪽 평화로를 바라보면 여러 펜센들과 음식점들이 자리한다. 북한강으로 유입되는 오염물질을 방지하기 위해 강변길에는 눈개승마 육성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눈개승마는 경관식물로 가치가 있으며, 토양의 유실방지 등 오염물질 방지에도 큰 효과가 있다고 한다. 5월의 산에 가면 눈개승마 새하얀 꽃줄기들이 눈부시게 빛난다. 한 달 전에 이곳에 왔다면 강변길에 흐드러지게 핀 눈개승마 하얀 꽃들이 드넓게 펼쳐져 장관을 이룰 것이다. 지금은 꽃줄기가 말라 있고 잎들도 시들었다. 눈개승마 조성지는 화천읍 대이리 미륵바위까지 이어져 있다.
미륵 신앙에 의해 명명된 미륵바위 6개가 줄지어 서있는데, 그들 중 가장 큰 바위를 미륵바위라 이르는 게 옳을 것 같다. 미륵바위는 바위라기 보다는 돌, 그래서 미륵돌이라는 명칭이 어울릴 듯하다. 민중의 소망이 절절한 미륵 신앙을 현실의 사물로 구체화한 미륵바위에 얽힌 전설들이 서로 얽혀 민중의 소망을 드러낸다. "미륵바위에 정성을 들여 과거에 급제하여 높은 벼슬에 올랐다, 북한강을 오르내리던 소금배의 안전한 귀향과 흥성한 장사를 위해 미륵바위에 제를 올렸다, 미륵터에서 잠을 자던 선비가 꿈속에서 미륵동자가 읊어준 시(詩) 구절이 과거시험의 시제(詩題)와 같아 과거에 장원급제한 뒤에 이곳에 미륵을 세웠다, 옛날 한 부자가 미륵돌을 자기집 정원에 갖다 놓았다가 재앙이 끊이지를 않아 집안이 망하였으며, 미륵돌은 옮겨 다니는 곳마다 재앙을 불러 결국 제자리인 이곳으로 옮겨 놓자, 다른 형제돌들이 모였으나 막내돌은 아직도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여러 전설이 전해진다고 한다.
'DMZ 평화의 길'은 화천읍 대이리와 간동면 구만리 사이로 흐르는 북한강의 강변길을 거슬러 오른다. 이 길에서 4개의 다리를 만나는데 살랑교와 대붕교는 다리 아래를 통과하고, 구만교와 꺼먹다리는 다리 입구를 지난다. 살랑교는 강변길에서 살랑교 입구로 올라갈 수 있으며, 대이리와 구만리 살랑골을 이어주기에 다리 이름을 살랑교라 하였다고 한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살랑골 바람이 북한강을 건너온다. 살랑교를 건너 보았다. 화천군 간동면 구만리 살랑골 입구에서 북한강 숲을 따라가는 수상교(폰툰교) '숲으로 다리'가 있었는데, 지난해 철거되고 '숲으로 다리' 입구만이 남아 있다. 환경 문제 때문에 이 다리가 철거되었을까? 김훈 작가가 명명했다고 하는 '숲으로 다리'를 걷고 싶다.
"미루나무 꼭대기에 조각구름 걸려 있네/ 솔바람이 몰고 와서 살짝 걸쳐 놓고 갔어요// 뭉게구름 흰구름은 마음씨가 좋은가 봐/ 솔바람이 부는 대로 어디든지 흘러간대요" (박목월의 '흰구름') 국민학교 시절에 배운 동요를 불렀다. 강변길에 미루나무 세 그루가 솟아 있고, 강변에는 버드나무들이 무성하다. 나무들이 무성한 아름다운 북한강 강변길에서 마음은 동심으로 돌아가 햇볕 쨍쨍한 신작로를 따라 엄마와 함께 시장 보러 가는 모습이 떠오른다.
강변길을 따라 대붕교 아래를 지난다. 대붕교? '대붕호(大鵬湖)로 가는 다리'라고 하여 대붕교(大鵬橋)라 명명하였을 것이다. 1944년 화천댐 건설로 생겨난 드넓은 인공호수의 이름은 원래 대붕호(大鵬湖)라 불렸다고 한다. 날개의 길이가 삼천 리이며 하루에 9만 리를 날아간다는, 매우 큰 상상의 새가 대붕(大鵬)이다. 화천군 간동면 구만리(九萬里)라는 지명과 상상의 새 대붕(大鵬)이 잘 어울려서 대붕호(大鵬湖)라 불렸는데, 6.25전쟁이 끝난 뒤 1955년 이승만 대통령이 '오랑캐를 무찌른 호수'라는 뜻의 '파로호(破虜湖)'로 명명하고, 기념비 제막식을 거행했다고 한다. 화천 지역에서는 원래의 대붕호 이름을 찾고자 아마도 이 다리 이름을 대붕교라고 지었을 것이다. 그런데 대붕교 입구에서 지방도 제61호선은 평화로와 갈라져 대붕교를 건너 대붕호로 달려가는데 도로명은 '파로호로'이다. 그리고 대붕교 입구에서 지방도 제460호선이 시작되어 평화로를 따라간다. 도로명 '파로호로'를 '대붕호로'라고 개명할 날이 올까?
평화로의 구만교 삼거리에서 구만교로 나가보았다. 구만교는 일제가 기초를 닦고, 광복 후 북한이 교각을 세우고, 6.25전쟁이 끝난 뒤 한국이 상판을 놓은 역사의 다리라고 한다. 구만교가 노후하여 중형 차량들이 통행할 수 없게 되자 구만교 아래에 새 다리를 건축하여 대붕교라고 명명했을 것이다. 구만교와 대붕교는 화천읍 대이리와 간동면 구만리를 잇는 다리로 '파로호로'를 따라 대붕호(파로호)와 화천댐으로 이어진다. 북한강 동쪽의 도로명은 '파로호로', 서쪽의 도로명은 '평화로', 북한강이 평화를 가로막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니다, 북한강은 평화를 이어주는 만남의 물길이다. 이제 파로호로는 대붕호로라고 개명될 것이며, 그 만남의 시원인 금강산 단발령으로 과거로 회귀하듯 북한강을 따라 올라가게 될 것이다. 그 만남의 희망이 구만교 아래로 흘러간다.
평화로 옆 산책로&자전거길을 따라 화천읍 대이리(大利里) 상대리(上大利윗대이리) 마을로 올라간다. 평화로 옆 작은 공간에 통일기원비가 세워져 있다. 1993년 9월에 세워진 통일기념비에는 "우리는 늘 하나되어 이웃과 정을 나누며 즐거운 삶을 누려 왔으나 우리도 모르게 이 땅에 38선이 그어지고 기어이 둘로 갈려져 반목하며 살아온 지 48년. 이제는 겨레가 다시 하나되고 땅도 얼도 하나되어 이 땅에 화평의 나무를 심고 온누리 배달겨례의 무궁번영을 이루어 나가야 하겠기에 여기 민족분단의 현장 평화의 댐 가는 길목에 우리 모두의 소망을 담아 이 비를 세운다."라고 적혀 있다. 통일을 진정으로 소원한다면, 이런 기념비를 세우고 상투적인 문장을 적기보다는 현실에서 진정으로 실천과 운동을 해야 한다. 기념비는 이런 실천과 운동에 의하여 통일이 이루어졌을 때 세우면 되는 것이다.
"華川郡民이여! 永遠한 幸福과 繁榮을 為하여 우리 모두의 슬기와 精誠을 한데 모으자."라고 적힌 88서울올림픽 기념비를 지나면 '해병대 화천지구 전투전적비'가 세워진 전시장이 조성되어 있다. 해병대 화천지구 전투전적비가 우뚝 솟아 있고, 그 옆에 추모비와 해병대 김대식 장군 흉상이 세워져 있으며, 그 양쪽에 대국민 안보체험 및 홍보를 위하여 해병대로부터 무상대여 받아 수륙양용장갑차(水陸兩用裝甲車)가 전시되어 있다. 화천댐과 화천수력발전소를 차지하고자 하는 격렬한 전투가 화천 지역에서 벌어져 해병대가 화천지구를 회복하는 데 해병대가 큰 역할을 했음을 추모비 윗면에 소개된 6.25전쟁 주요 작전경로, 6.25전쟁 해병대 작전, 해병대 화천지구 전투를 통하여 알 수 있다. 민족의 비극 6.25전쟁의 호국영령들을 머리 숙여 추모합니다.
이곳을 지나면 1996년 4월 5일 제51회 식목일을 맞이하여 후손들을 위하여 이곳에 '미래의 숲'을 조성하고 세운 '미래의 숲' 기념비가 있다. 진정한 실천과 행동으로 조성한 윗대이리 지역의 '미래의 숲'이 빛난다. 이러한 실천과 운동이 있었기에 오늘의 화천과 강원도, 대한민국은 후손들에게 훌륭한 자연의 숲을 물려줄 수 있는 것이다. '미래의 숲'에서 북한강 동쪽 간동면 구만리를 바라보면 화천수력발전소가 가까이 보인다. 화천수력발전소는 휴전선에서 남쪽으로 불과 30여㎞ 떨어진 38선 이북 북한강 최상류에 위치하고 있다. 화천수력발전소는 화천댐 상류에서 물을 취수해 650m의 도관을 통과한 후 낙차를 이용해 발전하는 댐수로식 발전소라고 한다. 화천발전소 뒤 산 너머에 화천댐과 대붕호(파로호)가 있다. 파로호로를 따라 대붕호(파로호)로 걸어보고 싶은 욕망이 솟는다.
웃대이리 버스정류소와 윗대이리 경로당을 지나 한강 합수지 113km 표지목이 세워져 있다. 출발지인 화천교에서부터 약 7km를 걸어왔다. 평화로의 꺼먹다리 삼거리에 이른다. "화천(華川) 꺼먹다리는 1940년대 화천댐과 화천수력발전소를 건설하면서 세운 다리로, 폭 4.5m, 길이 204.84m이며, 나무의 부식을 막기 위해 칠한 콜타르의 색이 검어서 '꺼먹다리'라 불린다. 6.25전쟁 당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지만 꺼먹다리가 남과 북을 연결하는 중요한 다리였기 때문에 남과 북이 다리를 폭파하지 않고 남겨 두었다. 그래서 꺼먹다리에 총알의 흔적은 많이 남아 있지만 원래의 모습이 잘 보존되었다." (설명안내판)
꺼먹다리로 나가보았다. 서쪽에 수리봉이라고도 불리는 후덕봉이 솟아 있다. 후덕봉은 6.25전쟁 때 643고지라 불렸으며 고지 쟁탈전이 치열하였다고 한다. 북한강 상류 방향으로 간동면 구만리 딴산유원지와 어룡동마을이 가늠되고 하류 방향으로는 화천수력발전소와 구만교가 보인다. 북한강을 화천 지역에서는 모진강(母津江), 춘천 지역에서는 신연강(新延江)이라 이른다고 한다. 북한강 물길이 꺼먹다리 아래를 지나 구만교, 대붕교로 흘러간다. 북한강 물길은 뗏목을 서울로 운반하는 물길이었다고 한다. ''뗏목을 타고서 술잔을 드니/ 만단의 서름이 다 풀어지네" 뗏목꾼의 '뗏목아리랑'이 들려오는 것 같다.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를 통해 북한강 뗏목을 알아본다.
"30년대까지만 해도 화천에서 나는 통나무들은 뗏목에 묶인 채 북한강 물길을 따라 서울로 운반되었다. 서울의 뚝섬나루까지 운반되는 과정에서 적어도 사나흘 넘게 물속에 잠겨 있게 되기 때문에 나무의 진이 빠져서 품질이 뛰어났고, 그 때문에 서울의 장사꾼들은 앞을 다투어 화천 뗏목을 사려고 하였다. (중략) 뗏목은 육로교통이 불편한 지역에서 강물의 흐름을 이용하여 원목을 엮어 물에 띄워 내리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압록강, 두만강, 한강 상류에서 벌목한 나무를 강물에 띄워 내려보내 궁궐을 짓거나 집을 짓는 데 활용했다. (중략) 뗏목은 교통의 발달과 함께 차츰 줄어들었으며, 북한강 뗏목은 1943년 청평댐이 건설됨에 따라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중략) 사공들은 뗏목을 운전하면서 강원도 아리랑 조에 얹은 <뗏목아리랑>을 불렀다.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리리오/ 아리아리 고개로 넘어가네/ 뗏목을 타고서 술잔을 드니/ 만단의 서름이 다 풀어지네/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리리오/ 아리아리 고개로 넘어가네/ 앞 사공 뒷 사공 조심하게/ 포와지 물서품 치솟는다" 이렇듯 북한강의 물길은 뗏목을 나를 뿐 아니라 서울의 소금배가 오르내리고 춘천이나 서울을 드나드는 중요한 교통로였다. 북한강의 물길이 끊어진 것은 1941년 화천군 간동면 구만리에 화천댐을 만들면서부터였다.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8 : 강원도)
3.탐방 과정
전체 탐방 거리 : 18.4km
전체 소요 시간 : 5시간 1분
화천 산천어축제장 입구에 얼곰이탑, 화천대교 회전교차로에 화천의 상징인 회전탑이 조성되어 있다.
화천대교 교차로에서 독특한 조형물이 눈에 띈다. 부드럽게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는 듯한 모양을 한 이 조형물은 어느새 화천의 명물이 되어 입소문을 타고 있다. 화천의 회전탑은 이 지역을 대표하는 테마인 '청정'을 기본으로 하고, 5개의 읍과 면을 5층 탑 형태로 형상화하였다. 아래쪽에는 수달, 산천어 등 화천의 명물을 형상화한 조각상들이 배치되어 있다. 산과 강이 어우러지고 산천어와 수달이 사는 '청정' 지역 화천의 기상을 되새기고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자는 의미가 이 탑 속에 담겨 있다. - 화천여행
청정문화·산업도시를 추구하는 화천군 고유의 독자성을 대내외적으로 표방, 공유하고 지역의 문화·산업 발전에 전기를 마련하기 위해 5층 구조의 석탑에 5개 읍·면의 화합과 발전을, 팔괘 부분에 천지만물의 이치에 순응하여 조화와 질서를 유지·존속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을 담아 이곳에 상징조형물을 설치합니다. 2007.9. 화천군수
화천대교오거리 화천교(북쪽)과 화천대교(남쪽) 사이의 북한강 언덕에 소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순록, 곰, 강아지, 어린왕자와 여우, 역마차 등 루미나리에(luminarie) 조형물과 '한여름의 세레나데' 조각상, 화천교 입구에 평화의 길 안내판 등이 설치되어 있다.
화천대교오거리 소공원에서 북한강 상류를 올려본다. 왼쪽 화천천이 화천교 아래를 흘러 북한강에 합수한다.
왼쪽에 루미나리에 작품 역마차, 오른쪽에 연인 한쌍이 색소폰을 불고 음악을 감상하는 '한여름의 세레나데' 조각상이 설치되어 있다.
화천교 서단 입구에 DMZ 평화의 길 화천군 종합안내도, 22코스 설명안내판과 이용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숲으로 다리'는 지난해 이미 철거되어 현재는 이용할 수가 없고 그 모습을 찾을 수도 없다.
●평화의 길 22코스(14.97km, 3시간 45분 소요) : 화천대교 회전교차로에서 풍산교로 이어지는 코스입니다. 일부 구간인 화천대교 회전교차로에서 살랑교 구간은 자전거도로를 이용하는 상시 노선과 숲으로 다리를 이용하는 비상시 노선으로 나뉘며, 이후 북한강변을 따라 조성된 자전거도로를 통해 풍산마을을 경유하여 풍산교까지 연계되는 코스입니다. 숲으로 다리는 우기에는 운영하지 않으며 이용할 경우 각종 주의가 필요합니다.
●평화의길 이용안내 : 평화의 길 22코스(숲으로 다리). 이곳은 우천시 통행이 불가능할 수 있습니다. 다음 사항을 준수 및 협조 부탁드립니다. 1.우천시 무리하게 건너지 마시고 자전거길 구간으로 우회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2.숲으로 다리 이용 시 음주 및 흡연을 하지 않습니다. 3.우기 등 폰툰교 미설치 기간은 자전거길 구간으로 우회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DMZ 평화의 길 종합안내도 왼쪽 기둥에 22코스 방문인증 QR코드가 붙어 있고, 오른쪽에 주요 볼거리가 소개되어 있다.
주요 볼거리 ●화천산천어축제장 : 5년 연속 대한민국 대표축제로 선정되었고, 매년 150만명 이상이 찾으며 화천군과 군민이 하나가 되어 만드는 볼거리, 즐길거리가 많은 축제입니다. 산천어 얼음낚시, 산천어 맨손잡기, 산천어 야간낚시, 창작썰매콘테스트, 세계최대 실내 얼음조각 광장 등 30여 종의 체험프로 그램과 볼거리가 가득합니다. ●딴산 유원지 : 파로호와 평화의댐 진입로에 위치하고 있으며, 산이라기보다는 섬같이 물가에 떠있는 동산입니다. 물가에 홀로 섬처럼 두둥실 떠있는 딴산의 모습도 이채롭지만, 일대의 산그늘과 강물이 시원해서 쉼터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80m의 인공폭포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화천읍 하리와 하남면 위라리를 잇는 화천대교가 북한강 위를 가로지른다. 건너편 위라리 탑둔지마을에 화천중고등학교가 보인다.
위라리(位羅里)는 본래 화천군 남면(南面) 지역으로 사래(이랑)가 길므로 사래, 사내(沙內), 또는 변하여 위라리(位羅里)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갯말, 다리울, 탑둔지를 병합하여 위라리라 하여 하남면(下南面)에 편입하였다. 위라리 7층석탑은 탑둔지에 있는 7층 석탑으로 강원도 유형문화재 30호이다. 고려 충렬왕(1275~1308) 때 하남면 계성리에 있는 계성사(啓星寺)의 말사(末寺)를 세웠던 자리라고 전하나 절의 명칭은 알 길이 없다. 석탑의 높이는 지대석을 제외하고 3.26m이며 3단의 옥개석 받침과 옥개석의 육중한 느낌 등으로 미루어 각 부재의 수법과 양식면에서 고려시대의 석탑임에 틀림없다. - 화천문화원
중앙 왼쪽 하남면 위라리 지역에 화천소방서가 보이며, 그 왼쪽 위는 간동면 구만리 지역이다.
화천읍 하리와 아리를 이어주는 화천교가 화천천 위를 가로지르며, 평화의 길 22코스는 평화로를 따라간다.
왼쪽에 화천대교 뒤에 화천읍 하리 성산, 오른쪽 얼곰이탑 뒤에 화천읍 상리 서화산, 중앙 화천대교오거리에 5층 회전탑이 있다.
인공폭포 바위에 '아이 기르기 가장 좋은 화천' 문구가 적혀 있다. 이곳에서 적근지맥은 맥을 다하며, 왼쪽에 절산 등산로가 있다.
화천천이 화천읍 중리와 아리를 거쳐 하리로 흘러온다. 화천천 출렁다리 동단 오른쪽에 화천평생학습센터와 낭천산림욕장이 있다.
화천읍 중리 산35번지에 위치하고 있는 낭천산림욕장은 원래는 지역 주민들을 위한 작은 산책로였다. 화천시가지를 조망할 수 있는 절산에 위치하고 있어서 원래부터 전망이 좋으며 등산로와 팔각정 등이 있어 가볍게 쉬었다 가기 좋은 곳이다. 화천읍내에서 차편으로 5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어서 이동하기에도 편리한데 최근에 새롭게 정비하여 등산과 더불어 휴양을 즐길 수 있는 건강공원으로 탈바꿈했다. 주요 시설로는 80m 길이를 가진 맨발지압로, 반원주목 등이 있다. - 화천군 관광안내
평화의 길은 이곳에서부터 화천읍 대이리 대붕교까지 지방도461호선 평화로를 따라간다.
화천천이 화천교 아래를 흘러 북한강에 합수한다. 왼쪽 화천대교 뒤에 성산, 오른쪽 얼곰이탑 뒤에 서화산이 있다.
북한강이 화천읍 하리와 하남면 위라리를 잇는 화천대교 아래를 지나 붕어섬으로 흘러간다. 오른쪽 하리에 성산이 솟아 있다.
파로호 산소 100리길은 '숲으로 다리'라 불리는 폰툰교(수상교)는 지난해 철거되어 수상길의 백미를 즐길 수 없다.
‘물과 안개의 고향’ 화천에 조성된 길은 ‘파로호 100리 산소길’이다. 굽이도는 북한강변을 따라 42㎞에 걸쳐 조성됐다. 호수와 주변 산자락에서 뿜어내는 맑은 공기를 흠뻑 마실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도보꾼도 없진 않으나, 대개는 자전거를 이용해 돌아본다. 자주 자전거를 접해본 이는 3시간 남짓, 초보자는 4시간 넘게 소요된다. 원시림을 관통해 가는 숲속길(1㎞)과 북한강 위로 지나가는 수상길(1㎞), 물안개와 저녁노을을 감상할 수 있는 수변길(2㎞) 등 다양한 볼거리가 조성돼 있다. 숲속길 중간에서 만나는 꺼먹다리 풍경. 교각은 일본이, 철골은 러시아(옛 소련)가, 상판은 우리가 세운 독특한 이력을 가진 근대문화유산이다. 백미는 강 위에 부교를 띄운 수상길이 꼽힌다. 위라리와 대이리 살랑골 사이의 험한 산길을 돌아가기 위해 만든 강상(江上) 도로다. 폰툰(상자형 부유 구조물) 위에 나무를 깔아 강물 위를 둥둥 떠다니는 느낌을 준다. 특히 비가 오고 난 뒤 물안개가 필 때면 더없이 몽환적인 풍경을 선보인다. 수상길은 용화산 숲길로 이어진다. 생태가 잘 보전된 원시림 산길이다. - 화천 ‘파로호 100리 산소길’, 서울신문 2011.07.28. 화천 손원천기자
화천교 동단 입구의 평화로 보도에 화천관광안내도와 파로호 산소 100리길 조형물, 평화의 길 이정목이 설치되어 있다.
북한강에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북한강 건너편 하남면 위라리 지역에 화천소방서 건물이 보인다.
북한강 위쪽에 살랑교 흰 교각이 보인다. 그 오른쪽은 간동면 구만리 살랑골이며 매봉산 능선이 길게 이어진다.
화천읍 아리(衙里) 이곳에서 북한강이 남한강과 합수하는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양수리 두물머리까지 107km 거리이다.
지방도 제461호선 평화로는 가로수를 은행나무로 조성하였다. 은행나무 가지를 모양이 좋게 가지치기하였다.
평화로를 따라 북한강을 거슬러오르다 화천읍 하리 화천교와 성산을 뒤돌아본다.
바나나보트와 모터보트를 타는 화천 마리나 워터스키가 화천읍 아리 북한강에 있다.
위쪽 평화로 건너편 왼쪽에 아5리 가손이 버스정류소와 복지회관이 보이며, 가손이길을 따라 올라가면 절산 등산로가 있다.
가손이(加孫伊)【마을】금산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 마을로 큰가손이와 작은가손이로 나뉘어져 있으며, 가손이라는 지명의 유래는 '집이 숨겨져 있다'는 뜻이라고 한다. - 화천문화원
파로호 산소 100리길을 따라 화천읍 아(衙)5리 가손이(加孫伊) 지역의 북한강변 목교를 건넌다.
북한강의 화천대교와 성산이 중앙 뒤에 보인다. 화천교를 건너 파로호 산소 100리길을 따라 마리나 워터스키를 지나왔다.
화천읍 아(衙)5리 가손이 지역을 지나는 '파로호 산소길' 자전거길에 공공 근로자 한 분이 노란색 중앙선을 새로이 칠하고 있다.
화천읍 아(衙)5리 평화로 옆에 화천 생활실내체육관이 있다.
평화로의 화천읍 아(衙)5리 전장골 버스정류소 옆에 아5리 마을회관이 있다.
전장골(戰場골)【마을】아리(衙里) 남동쪽 대이리와 가손이 사이에 있는 마을로 고종32년(1896)에 의병들이 일본 군대와 이곳에서 전쟁을 하였다고 한다. - 화천문화원
화천읍 아리에서 대이리로 넘어와 한강합수지 109km 지점을 통과한다. 파로호 산소 100리길을 따라 눈개승마가 조성되어 있다.
비점오염원 저감식물 친환경 육성단지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비점 오염원이 무슨 뜻일까? 사전에 비점 오염원(非點汚染源)은 일반 주택, 상가, 양식장, 야적장, 농경지, 도시 노면 따위와 같이 광범위한 곳에서 배출되는 오염 물질을 이른다고 되어 있다..
오염원 저감식물을 활용한 친환경육성단지를 화천읍 대이리 437번지 일원 109,801m²에 2014.1~2016.9에 걸쳐 조성하였다고 한다. 이 사업은 우기시 북한강으로 유입되는 다량의 비점오염물질(흙탕물 등) 저감을 통한 수질개선에 기여하기 위하여 비점오염원 저감식물인 눈개승마 육성단지를 조성한 것이다. "눈개승마는 30~100cm로 자라며, 꽃은 5~7월에 노란빛이 도는 흰색이다. 경관식물로 가치가 있으며, 매년 경운작업이 필요 없어 토양의 유실방지 등 비점오염 방지에 큰 효과가 있다."고 한다.
파로호 산소 100리길을 따라 눈개승마 육성단지가 드넓게 자리하고 있다.
눈개승마는 2~30년 다년생 작물로 30~100cm로 자라며, 꽃은 6~8월에 하얀색으로 피고, 매년 경운작업이 필요없어 토양의 유실방지 등 '비점 오염방지'에 큰 효과가 있음. 또한 식재 3년차부터 어린 순의 판매가 가능하며 5~9년차 사이에 100% 수확이 가능함. 3가지 맛(소고기, 인삼, 두릅)이 난다 하여 '삼나물'이나 '고기나물'이라고도 한다.
파로호 산소 100리길에서 화천읍 대이리 미륵바위 공원으로 올라가 미륵바위를 살핀다.
왼쪽 느티나무 앞에 임옥상 미술연구소가 제작한 작품 '흐르고 또 흐르고' 조형물, 그 오른쪽에 미륵바위가 있다.
오랫동안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미륵바위처럼, 얼마나 많은 삶의 시간이었을까? 그 시간은 정체되어 있지만 아니 하였으리라. 끊임없이 움직이는 삶의 시간을 경관에 도입하기로 한다. 늘 보았던 그 곳, 늘 흐르는 삶을 새롭게 볼 수 있길 기대한다.
미륵바위 안내판에는 미륵바위가 5개라고 적혀 있는데, 그렇다면 미륵바위 한 개가 돌아왔는가?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 대이리 344-3번지에 위치한 이 미륵바위의 조성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구전에 의하면 조선시대 후기에 건립된 절터로 추정된다. 화강석으로 제작된 5개의 미륵 중 가장 큰 미륵은 높이 170cm, 둘레130cm로서 이보다 작은 미륵 1기와 보다 작은 미륵 3기가 나란히 북한강을 바라보며 앉아있는 모습이 마치 거인이 쪼그리고 앉아 있는 것 같기고 하고 거북이가 하늘을 향해서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화천읍 동촌리에 사는 장모라는 선비가 이 바위에 극진한 정성을 드려 과거에 급제하여 양구현감까지 제수되었다는 전설과 소금배를 운반하던 선주들이 안전한 귀향과 함께 장사가 잘 되기를 바라며 제를 올렸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1999년 2월 제단 및 주차장을 설치하고 조경사업을 펼쳐 휴식공간으로 새롭게 단장하였다.
대이리 미륵바위와 미륵바위 마을을 바라보았다. 오른쪽 두 번째가 미륵바위이다. 왼쪽에 절산, 맨 뒤에 후덕봉을 가늠한다.
미륵바위 : 중대리 앞 강가 밭 한가운데 이 근처의 바위와는 사뭇 다른 기이하게 생긴 바위가 서 있다. 이 바위가 오형제 바위인데 그 중에 제일 큰 돌의 모양이 신기하여 옛날 한 부자가 이 돌을 자기집 정원에 갖다 놓았는데 집안에 재앙이 끊이질 않아 집안이 망하고 말았다. 그 후에 이 돌은 여러 곳을 옮겨 다녔으나 가있는 곳마다 재앙을 불러 몇 년 전에 제자리를 찾아 이곳으로 옮겨 놓았다고 한다. 제일 맏형인 돌을 지금의 자리에 갖다 놓자 하나씩 형제돌들이 모였는데 막내돌은 아직도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 화천문화원
미륵바위 전망대에서 미륵바위 공원과 뒤쪽의 살랑교를 바라보았다. 오른쪽의 산은 매봉산인 듯.
눈개승마 육성단지가 펼쳐진 파로호 산소길을 따라 한강 합수지 110km 지점을 통과한다. 앞쪽에 살랑교가 있다.
화천읍 대이리와 간동면 구만리 살랑골을 잇는 살랑교가 북한강 위를 가로지른다.
살랑교 건너편은 화천군 간동면 구만리 살랑골이다.
살랑교는 소재한 곳의 지명인 살랑골에서 유래한 것으로, 북한강의 시원한 바람과 로컬 이미지를 담아 총길이 290m, 폭 3m 규모로, 사람과 자전거만 통행할 수 있는 다리이며 교각상판 중 120m 구간은 투명유리로 설치된 '스카이 워크' 존으로 발 밑으로 흐르는 북한강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 화천관광 안내도
살랑교에서 북한강 하류 방향과 왼쪽 아래 화천읍 대이리 미륵바위를 바라본다. 이곳은 중대리(中大利)라 이른다.
대이리(大利里)는 옛부터 이 고장을 아랫대리, 윗대리라고 불렀는데 본래 군내면의 지역으로 이조시대에 대리원(大利院)이 있었으므로 대리(大利)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후덕(後德)과 풍산리와의 경계에 있는 무럭마을을 병합하여 대이리라 하였다. 대이리(大利里)는 아래쪽부터 위쪽으로 하대리(下大利), 중대리(中大利), 상대리(上大利)라 이른다. - 화천문화원
수상교 '숲으로 다리'는 지난 해 철거되었다고 한다. 그 입구가 왼쪽에 보인다. 물 위에 푼툰교가 설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건너편 화천군 간동면 구만리 골짜기는 살랑골이라고 하며 살랑교는 살랑골에서 따왔다고 한다.
북한강 상류 방향을 살핀다. 오른쪽 화천군 간동면 구만리 살랑골길에 살랑골터널이 조성되어 있다.
왼쪽은 화천읍 대이리 지역이며 평화의 길은 강변의 파로호 산소 100리길을 따라 북한강을 거슬러 올라간다.
총길이 290m의 살랑교 교각상판 중 120m 구간을 투명유리를 설치한 '스카이 워크' 존으로 조성하였다. 이곳은 중대리(中大利) 지역. 왼쪽 뒤에 절산, 중앙 뒤에 후덕산이 가늠된다.
살랑교 북단에 살랑교 공원과 주차장 등 편의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맨 오른쪽에 무인 카페점, 맨 왼쪽에 화장실이 있다.
살랑교 동쪽 무인 카페점 옆에 평양 초계탕·막국수 음식점이 있다.
화천여행 평양초계탕 막국수 "학~씨 파리채로 내려치고 쓰레빠루 후려쳐!" 이곳에 파리들이 많은가?
주차장 앞'사ㄹ라ㅇ'조형물 조형물 옆에 화천관광안내판의 안내도는 떨어져 있고, 주요관광지 안내는 양쪽에 붙어 있다.
화천관광안내판에서 화천관광안내도가 떨어져 땅바닥에 세워져 있다.
화천관광안내판의 안내도 왼쪽에 붙어 있는 주요관광지 안내판을 살핀다.
화천관광안내판의 안내도 오른쪽에 붙어 있는 주요관광지 안내판을 살핀다.
살랑교 북단 동쪽에 '사ㄹ라ㅇ'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화천읍 대이리 살랑교 주차장에서 북한강 강변으로 내려와 미루나무들이 하늘 높이 치솟은 파로호 산소길을 따라간다.
파로호 산소 100리길을 따라 한강 합수지 111km 지점을 통과한다. 북한강변에는 버드나무들이 무성하다.
대붕교 아래를 지나서 대붕교를 살핀다. 파로호(破虜湖)의 원래 이름은 대붕호(大鵬湖)였다고 한다. 화천읍 대이리와 간동면 구만리를 잇는 대붕교는 북쪽 파로호로 이어진다. 평화로의 지방도 제461호선은 대붕교를 따라 파로호로로 이어지고, 평화로는 대붕교 입구에서부터는 지방도 제460호선을 따라 평화의 댐으로 이어진다.
대붕교를 지나 위쪽의 구만교와 화천수력발전소를 살핀다. 평화의 길은 왼쪽 지방도 제460호선 평화로와 나란히 간다.
왼쪽은 지방도 제460호선 평화로이며 평화의 길은 평화로의 보도&자전거길을 따라간다.
지방도 제460호선 평화로의 구만교 삼거리에서 평화의 길은 직진한다. 잠시 오른쪽 구만교를 살피고 되돌아온다.
구만교는 화천읍 대이리와 간동면 구만리를 잇는 다리이다. 구만교는 일제가 기초, 북한이 교각, 한국이 상판을 놓았다고 한다.
구만교에서 북한강 하류 방향의 대붕교를 살핀다. 대붕교 서단에서 지방도 제461호선은 평화로와 헤어져서 파로호로로 이어져 대붕교를 건너 간동면 구만리로 넘어간다.
북한강 상류 방향을 살핀다. 오른쪽은 간동면 구만리 지역으로 위쪽에 화천수력발전소가 있고, 산 뒤쪽에 화천댐과 파로호가 있다.
구만리는 화천군 간척면(看尺面)의 지역으로 북한강(北漢江)의 구석에 있으므로 구마니라 하였다 하는데, 일설에는 화천댐 완공 이전에는 화천-양구간에 골짜기가 많고 구비구비 돌았다 하여 아홉 九자와 일만 萬자를 따서 구만리(九萬里)라 칭하게 되었다고 한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도송동(都宋洞), 동면(東面)의 동촌리(東村里) 일부와 군내면(郡內面)의 대이리(大利里) 일부를 병합하여 구만리라 하고 간동면(看東面)에 편입되었다. 1944년 화천댐 완공으로 저수지가 생기면서 교통이 불편해지자 도송동을 분리시겼다. 담수로 인해 구만리 원래의 마을은 물속에 잠기게 되었는데 이 마을을 구구만리라 하고, 현재 새로 생긴 마을을 신구만리라 부르고 있다.
구만교 서단 구만교 삼거리에서 평화의 길은 오른쪽으로 이어간다.
지방도 제460호선 평화로가 화천읍 대이리 상대리(웃대이리) 마을로 이어지고, 역사 속의 구만교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평화로 옆의 산책로&자전거길을 따라 평화의 길은 이어진다. 앞에 통일기원비가 있다.
●비를 세우며 : 우리는 늘 하나되어 이웃과 정을 나누며 즐거운 삶을 누려 왔으나 우리도 모르게 이 땅에 38선이 그어지고 기어이 둘로 갈려져 반목하며 살아온 지 48년. 이제는 겨레가 다시 하나되고 땅도 얼도 하나되어 이 땅에 화평의 나무를 심고 온누리 배달겨례의 무궁번영을 이루어 나가야 하겠기에 여기 민족분단의 현장 평화의 댐 가는 길목에 우리 모두의 소망을 담아 이 비를 세운다. 1993년 9월 일 민족통일화천군협의회 회원 일동 ●뒷면 : 이 비는 1981년 민족통일 화천군협의회가 창립되어 그간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며 통일역량배양에 주도적 실천자로서 밝고 활력있는 사회 구현과 국민화합의 선도적 역할을 수행하여 왔던 회원들의 뜻과 성금을 모아 건립함.
산책로를 따라 한강 합수지 112km 지점의 화천읍 대이리 지역을 지나간다. 뒤쪽에 서 있는 빗돌이 궁금하여 가 본다.
華川郡民이여! 永遠한 幸福과 繁榮을 為하여 우리 모두의 슬기와 精誠을 한데 모으자. 1988.9.17. 화천군수
서울올림픽 기념비 앞에서 평화로를 살피니 강원특별자치도 화천교육지원청 입구가 보인다. 이곳은 상대리(上大利) 마을이다.
해병대 화천지구 전투전적비 공원에 해병대 화천지구 전투전적비와 추모비 그리고 해병대 김대식 장군 흉상이 세워져 있고, 그 양쪽에 수륙양용장갑차(水陸兩用裝甲車)를 한 대씩 전시하고 있다.
추모비 윗면에 6.25전쟁 주요 작전경로, 6.25전쟁 해병대 작전, 해병대 화천지구 전투를 소개하고 전사자 이름이 새겨져 있다.
1.추모글 : 화천군민과 해병대 장병은 참전용사들의 고귀한 희생을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2015.11.30. 화천군·해병대사령부
2.해병대 화천지구 전투 : 1951년 4월 10일부터 동년 6월 3일까지 화천지구 전투에 투입된 해병대 제1연대는 4월 16일 화천댐 수문을 탈취, 확보하여 우군의 북한강 도하작전 성공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중공군의 춘계 대공세 시에는 육군 6사단의 철수를 엄호하고 용화산에 방어진지를 구축하여 중공군의 공격을 저지하였다. 중공군의 5, 6차 공세로 홍천까지 철수한 해병대 제1연대는 동년 5월 22일 소양강을 도하, 북으로 진격하여 화천댐 일대까지 전진, 적을 소탕하고 동년 6월 3일 육군 제7사단에 점령지역을 인계하고 양구와 인제 사이의 험준한 도솔산으로 전진하였다. 전사자 : 중위 김성훈 중사 윤탁 중사 한홍석 하사 고계수 하사 김양숙 하사 박만준 하사 이상호 하사 좌귀양 상병 김찬득 상병 김기웅 상병 김남출 싱병 김종계 상병 박금동 상병 오봉후 상병 우영명 상병 최경재 일병 고순제 일병 유재봉
1. 개요[편집] : 대한민국의 군인, 정치인, 친일반민족행위자. 제3대 해병대사령관을 역임하였다.
2. 일생[편집] : 1918년 강원도 춘천군(現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에서 태어났다. 춘천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졸업 후 만주국의 국경감시대에서 상사로 복무하다가 간도특설대가 창설되면서 창설요원으로 근무했다. 계급은 준위였다. 8.15 광복 이후 대한민국 해군의 전신인 해안경비대에 입대해 1949년 대한민국 해병대 창설요원으로 근무했다. 해군본부 인사국장, 해병교육단장, 해병대사령부 참모장, 해병대 제1여단장 등을 지냈다. 6.25 전쟁 당시 인천 상륙 작전, 서울특별시 탈환 등을 지휘하였다. 1957년 9월부터 1960년 5월까지 제3대 해병대사령관을 역임하고 해병 중장으로 예편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강원도 대한민국 참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해병대사령관 시절 3.15 부정선거에 가담하였다는 이유로 1961년 대한민국 국회에서 반민주행위자공민권제한법에 의해 국회의원직을 상실하였다.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에 걸쳐 홀트아동복지회 회장을 지냈다. 1999년 1월 9일 향년 80세를 일기로 별세하였다. 유해는 국립대전현충원 장군제1묘역에 안장되었다. 2000년 부터는 경북 포항시에 위치한 해병대 1사단의 대강당을 김대식관으로 명명하여 그를 기리고 있다. - 나무위키
대국민 안보체험 및 홍보를 위하여 해병대로부터 무상대여 받아 수륙양용장갑차(水陸兩用裝甲車)를 전시하고 있다. 평화로 건너편에 강원특별자치도 화천교육지원청 건물이 보인다.
한국 해병대가 1974년에 도입 2002년까지 주력 상륙장비로 사용한 수륙양용장갑차(水陸兩用裝甲車)(LVT-P7)는 차체가 특수 알루미늄으로 제작되고 전방엔진과 후방램프(출구)구조의 장비로 전면을 경사면으로 하여 해상속도를 향상시키고 육/해상 제자리 360도 회전이 가능하며 해상은 해수추진기(Water jet)에 의해서 추진되고 육상은 궤도에 의해서 기동한다. ○길이 : 7.94m ○승무원 : 3명 ○폭 : 3.27m ○수송인원 : 25명(무장) ○최대속도 : 육상 64km/h, 해상 13.5km - 안내판
'미래의 숲' 주차장을 지나와 뒤돌아본다. 레미콘차 뒤에 해병대 전투전적비가 있고, 오른쪽 뒤에 강원도 화천교육지원청이 보인다.
대이리 '미래의 숲' 입구에 화장실, 그 뒤에 쉼터정자가 있다.
1996년 4월 5일 제51회 식목일을 맞이하여 후손들을 위하여 이곳에 '미래의 숲'을 조성하고 이 기념비를 세웠다.
화천읍 대이리 미래의 숲에서 간동면 구만리 화천수력발전소를 바라본다. 산 뒤에 화천댐과 대붕호(파로호)가 있다.
화천수력발전소는 휴전선에서 남쪽으로 불과 30여㎞ 떨어진 38선 이북 북한강 최상류에 위치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태평양 전쟁을 위한 군수 산업 에너지원 발전소로 건설한 이곳은 댐 상류에서 물을 취수해 650m의 도관을 통과한 후 낙차를 이용해 발전하는 댐수로식 발전소이며 1939년 7월 착공해 1944년 10월에 준공했다. 또한 6·25전쟁 당시 전투가 가장 치열했던 한 곳으로 화천수력발전소를 차지하기 위한 ‘파로호 전투, 643고지 전투’의 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월간전기 2013.6.4. 유미희 기자
북한강 건너 화천 수력발전소를 살피고 뒤돌아서 평화로를 살피니 웃대이리 버스정류소가 보인다.
평화로의 파라반캠핑장 입구에 윗대이리(상대리上大利) 경로당이 자리한다.
화천군 간동면 구만리 어룡동마을이 2.5km 거리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평화로에 세워져 있다.
뒤쪽에는 후덕산(수리봉)이 솟아 있고, 그 아랫자락에 꺼먹다리 펜션이 자리한다.
평화로의 화천레미콘과 꺼먹다리펜션 입구 맞은편 보도에 한강 합수지 113km 표지목이 세워져 있다.
지방도 제460호선 평화로의 꺼먹다리 삼거리가 앞에 있다.
평화로의 꺼먹다리 서단에 꺼먹다리 삼거리 이정목, 평화의 길 이정목, 꺼먹다리 설명안내판 등이 세워져 있다.
꺼먹다리는 1940년대 화천댐과 화천수력발전소를 건설하면서 세운 폭 4.5m, 길이 204.84m의 다리이다. 철근콘크리트로 만든 기둥 위에 철골 구조물로 뼈대를 세우고 마지막으로 나무를 올려 완성하였다. 다리에 사용한 나무는 네모난 모양으로 깎은 후 대각선으로 놓았으며, 부식을 막기 위해 콜타르를 칠하였다. 이 콜타르의 색이 검어서 다리도 전체적으로 검은색을 띠므로 '꺼먹다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국 전쟁 당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지만 꺼먹다리가 남과 북을 연결하는 중요한 다리였기 때문에 남과 북이 다리를 폭파하지 않고 남겨 두었다. 그래서 꺼먹다리에 총알의 흔적은 많이 남아 있지만 원래의 모습이 잘 보존되었다. 꺼먹다리는 2017년부터 2019년까지 보수공사를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단순하면서도 안정된 구조로 만들어 현대 교량사 연구에 좋은 자료이다.
꺼먹다리는 폭 4.5m, 길이 204.84m이며, 나무의 부식을 막기 위해 칠한 콜타르의 색이 검어서 '꺼먹다리'라 불린다고 한다.
간동면 구만리에 화천수력발전소, 그 아래 구만교와 대붕교, 중앙 뒤에 매봉산이 가늠된다. 맨 오른쪽에 화천레미콘 건물이 보인다.
중앙 뒤 북한강 동쪽 화천군 간동면 구만리 지역의 딴산유원지와 어룡동마을이 가늠된다.
북한강 꺼먹다리 서쪽에 수리봉이라고도 불리는 후덕봉은 6.25전쟁 때 643고지라 불렸으며 고지 쟁탈전이 치열하였다고 한다.
꺼먹다리 이정목에 화천 7.7km, 딴산 1.8km라고 적혀 있다. 오른쪽 딴산 방향으로 이어간다.
평화로 보도&자전거길에서 북한강의 꺼먹다리를 다시 살핀다. 꺼먹다리 교각에 총알의 흔적들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