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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초고] '지대본위화폐' 시대를 상상한다③ㅡ에너지본위를 품에 안는 지대본위
이원영 (국토미래연구소장) + AI 동료들
지난 회에서 자본주의와 국가사회주의를 함께 넘어서려 한 사람들의 계보를 짚었다. 이번에는 조금 다른 갈래다. 화폐의 담보를 사적 자산이 아니라 인류 생존의 물리적 실체인 '에너지'에서 찾으려 했던 사람들이 있다. 20세기 초의 대담한 상상에서 오늘의 블록체인 실험까지 이어지는 흐름인데, 필자는 이들의 문제의식이 옳다고 본다. 다만 닻을 내릴 자리는 달리 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이야기를 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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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량기를 달 수 없는 것은 팔 수 없다
천재 발명가 니콜라 테슬라는 에너지를 특정 개인이나 기업이 계량기를 달아 파는 상품이 아니라, 지구가 인류 모두에게 내어주는 공유 자산으로 보았다. 1901년 뉴욕 롱아일랜드에 착공한 워든클리프 탑은 전선 없이 지구 전리층을 통해 전 세계 어디서나 전력을 공급하려는 '세계 무선 시스템'의 시도였다.
이 사업은 금융업자 J.P. 모건의 투자로 시작되었으나, 모건의 관심은 애초에 대서양 횡단 무선통신에 있었다. 테슬라가 계획을 대규모 무선 전력 전송으로 확장하자 모건은 추가 자금을 거부했고, 탑은 완공되지 못한 채 1917년 철거되었다. "전선 없이 전기를 보낸다면 계량기는 어디에 달아야 하느냐"는 모건의 말이 이 일화를 압축하는 상징으로 회자되지만, 실제로 그가 그런 말을 했다는 사료적 근거는 없다. 후대에 만들어져 굳어진 전설에 가깝다.
다만 그 전설이 오래 살아남은 이유는 분명하다. 희소성을 인위적으로 만들고 거기에 통행세를 매기는 것이 금융자본의 오랜 문법이었고, 계량할 수도 독점할 수도 없는 무선 에너지는 그 문법 밖에 있었기 때문이다. 테슬라의 기획은 좌절되었지만, 에너지는 공유될 수 있고 화폐의 물리적 기반이 될 수 있다는 발상의 씨앗은 20세기 내내 간헐적으로 되살아났다.
포드와 풀러 — 부채가 아니라 실물에 닻을
1921년 12월, 미국 자동차 산업의 거두 헨리 포드는 앨라배마주 테네시강의 머슬 숄즈 수력발전 댐 건설을 둘러싼 논쟁에서 파격적인 제안을 내놓았다. 당시 미국 정부는 댐을 지으려 했으나 월스트리트의 채권 발행 요구에 부딪혀 난항을 겪고 있었다.
포드의 주장은 이랬다. 정부가 공공 인프라를 지으면서 금융업자에게 이자를 지불할 이유가 없다. 금이나 채권 대신 그 댐이 앞으로 생산할 전력을 담보로 화폐를 직접 발행하면 된다. 에너지 화폐 체계에서는 한 시간 동안 발휘된 일정량의 에너지가 곧 1달러와 같아진다는 것이었다. 그는 금이 소수 금융권력에 의해 인위적으로 통제될 수 있는 반면 발전소에서 나오는 물리적 전력은 독점하거나 조작할 수 없다고 보았고, 나아가 금본위제의 통제 가능성이야말로 전쟁의 뿌리라고까지 주장했다.
제안은 즉각 논쟁에 부쳐졌다. 며칠 뒤 《뉴욕타임스》는 금을 에너지 단위로 대체하려는 발상이 그 문턱에서부터 비틀거린다는 회의적인 사설을 실었다. 포드는 3년간 머슬 숄즈 인수를 시도하다 1924년 계획을 접었다.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국가 통화의 담보를 부채가 아닌 실물 생산력에 두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이후 에너지 화폐론의 원형으로 남았다.
시스템 사상가 벅민스터 풀러는 1969년 저서 『우주선 지구호 사용설명서』에서 이 발상을 훨씬 큰 규모로 끌어올렸다. 그는 지구를 한정된 자원을 실은 우주선에 비유하며, 인류의 경제 시스템이 열역학 법칙과 물리적 실체에 부합해야 생존할 수 있다고 보았다.
세계의 폭력 문제를 어떻게 풀겠느냐는 물음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자신은 언제나 어떤 도구나 발명을 통해 문제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문제를 푼다고. 그리고 그 답은 모두가 같은 전력망에 연결되는 세계 에너지 그리드를 만드는 것이며, 그러면 국제 분쟁 같은 것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새로운 경제적 기반은 금이나 달러가 아니라 킬로와트시가 될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풀러는 금융 화폐를 아무 물리적 실체가 없는 허구적 약속으로 보았고, 반대로 지구가 축적해온 에너지 흐름이야말로 진짜 부라고 주장했다.
생태경제학의 정교한 경고
1970년대 오일 쇼크와 기후위기의 가시화는 이 담론에 학술적 무기를 쥐여주었다. 화폐 발행 메커니즘 자체를 자연의 물리적 한계 안에 묶어두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아일랜드의 생태경제학자 리처드 다우트웨이트는 『화폐의 생태학』에서 현대 금융자본주의의 자기파괴적 본성을 지적했다. 오늘날 화폐 대부분은 시중은행의 대출을 통해 창출되는 부채 기반 화폐이며, 이자를 갚기 위해 경제가 해마다 물리적으로 성장할 것을 구조적으로 강요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 무한 성장의 압박이 생태계 파괴와 기후 파국의 근본 원인이라고 진단하고, 대안으로 청정 에너지 생산량과 연동된 '에너지 보증 화폐'를 제안했다. 정부나 지역 공동체가 재생에너지 설비를 확충할 때 그 설비가 미래에 생산할 전력량을 담보로 화폐를 발행하면, 통화 유통 자체가 탄소 배출 감소와 정비례하는 선순환이 만들어진다는 구상이었다.
시스템 생태학자 하워드 오덤은 경제와 생태계를 아우르는 정량화 도구로 에머지(Emergy) 개념을 창시했다. 어떤 재화나 서비스를 만드는 데 직간접적으로 투입된 태양 에너지의 총량을 뜻한다. 오덤은 인간이 아무리 복잡한 기술과 노동을 투입하더라도 그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지구와 태양이 축적해온 에너지 흐름에 의존한다고 보았다. 부동산이나 주식의 가치는 투기 심리로 얼마든지 부풀려질 수 있지만 그 자산이 품은 실제 생태적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 이론을 통화 개혁에 접목한 이들의 논지였다.
21세기의 실험들
역사적 상상력과 생태경제학의 이론은 21세기 들어 스마트 그리드와 분산형 전원, 블록체인 기술과 결합하며 구체적인 모델로 이어졌다.
2013년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브라이언 맥코넬은 화폐 가치의 기준을 에너지의 물리적 단위인 '줄(Joule)'에 고정하는 줄 표준을 제안했다. 금이든 법정화폐든 정치적·시장적 요인에 좌우되어 장기적으로 가치가 흔들려온 반면, 1줄이 물리적 세계에서 발휘하는 일량은 변한 적이 없다는 데 착안한 것이다.
2011년 금융공학자 닉 고거티와 조지프 지톨리는 중앙은행이 국채나 부실 금융자산 대신 실제 전력을 생산·공급하는 자산을 화폐 발행 담보로 보유하자는 논문을 냈다. 스마트 계측기가 생산된 전력량을 실시간으로 검증하면 그 가치에 비례해 화폐를 발행할 수 있다는 구상이었다. 학계에서 널리 주류화된 논의는 아니었지만 실제로 파생물을 남겼다. 고거티는 이후 온라인 자원봉사 커뮤니티와 함께 솔라코인을 만들어, 태양광 발전 1메가와트시당 코인 1개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이 아이디어를 암호화폐로 구현했다.
이들이 공통으로 그리는 그림은 하나다. 화폐 발행의 주체를 중앙은행의 캐비닛에서 햇빛과 바람이 내리쬐는 지역사회와 시민들의 지붕 위로 분산시키는 것. 부동산 소유주가 지대를 취하며 부를 불리던 구조에서, 청정 에너지를 생산하는 시민들이 발행 이익을 나누어 갖는 방향으로의 전환이다.
옳은 문제의식, 그러나 닻의 자리는
필자는 이 계보에 깊이 공감한다. 화폐가 무형의 신뢰가 아니라 실물에, 그것도 생태적 실물에 닻을 내려야 한다는 것 — 이 연재도 바로 그 자리에서 출발했다.
다만 닻을 내릴 곳은 달리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발권력이 다시 몰린다. 발행의 근거를 발전설비에 두면 설비를 가진 자에게 발권 이익이 쏠린다. 태양광 패널을 지붕에 얹을 수 있는 사람과 그럴 형편이 못 되는 사람 사이에 새로운 격차가 생긴다. 땅문서를 가진 자에게 몰리던 것이 발전설비를 가진 자에게 몰릴 뿐, 구조는 닮아 있다.
둘째, 보편성이 약하다. 모든 사람이 어딘가 땅을 딛고 산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전기를 생산하지는 않는다. 화폐는 어디서나 통용되어야 하니 그 근거도 어디에나 있어야 하는데, 발전은 그렇지 않다.
셋째, 그리고 이것이 결정적인데 — 재생에너지의 수익 자체가 결국 입지의 함수다. 태양광의 발전량은 일사량에 달렸고, 풍력은 풍황에 달렸으며, 둘 다 송전망에 얼마나 가까운가에 크게 좌우된다. 좋은 발전 입지의 땅값과 임대료가 오르는 것이 그 증거다. 에너지의 생산력은 결국 지대에 응결된다. 그러니 지대를 재면 에너지의 가치도 함께 잡히지만, 에너지를 재면 지대는 잡히지 않는다.
그들이 공격한 것은 땅이 아니었다
여기서 오해를 하나 풀어야 한다. 이 계보는 흔히 "죽은 땅의 금융에서 살아있는 에너지의 금융으로"라는 구호로 요약된다. 그렇다면 땅으로 돌아가자는 이 연재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 않다. 그들이 겨눈 것은 땅 자체가 아니라 땅의 사적 독점이었다. 다우트웨이트가 비판한 것은 부채 기반 화폐가 자산가격 상승에 의존하는 구조였고, 그 구조의 담보는 등기부, 곧 소유권 증서였다. 지대본위는 등기부가 아니라 사용의 흐름을 담보로 삼고, 그 흐름을 공동체로 되돌린다. 소유가치가 아니라 사용가치라는 첫 회의 구분이 여기서 다시 작동한다.
그러니 지대본위는 에너지 본위를 물리치는 것이 아니라 품는다. 발행의 이익을 시민의 지붕 위로 분산시키자던 그들의 결론은, 토지배당이라는 이름으로 이 연재에서 이어진다. 옥상 태양광과 영농형 태양광이 그 지붕 위에 놓인다면 더욱 그렇다.
두 계보가 만나는 자리
지난 회와 이번 회에 걸쳐 두 갈래의 계보를 짚었다. 하나는 자본 축적의 정당성을 물은 흐름이고, 다른 하나는 화폐의 닻을 실물에서 찾은 흐름이다. 두 갈래는 결국 한 자리에서 만난다. 화폐를 무엇에 근거해 발행하고 어떤 방향으로 순환시킬 것인가.
이제 계보에서 현실로 넘어갈 차례다. 다음 회에서는 중국으로 간다. 세계의 은을 끌어모으고도 화폐의 안정을 바깥에 내맡겼던 나라, 그리고 오늘 다시 비슷한 자리에 선 나라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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