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내일까지 닭 30마리만 준비해 주실 수 있으세요?"
"그럼요. 어느 교회세요?"
만년동엔 아주 친절하고 순하게 생기신 채소 가게 아주머니 아저씨가 계십니다. 그 가게 앞을 지날 때마다 참 좋은 분들이구나 하는 생각을 가졌지요. 작년엔 유성 장에 가서 닭을 사왔는데 이번엔 시간을 낼 수가 없었습니다. 지나 가는 길에 부탁을 드렸지요. 어려운 분들에게 전할거라고 말씀 드렸더니 아주 싸게 해 주셨습니다.
주일날 오후, 교육관 부엌엔 닭 30마리가 배달 되었습니다. 여집사님들의 손이 잽싸게 움직였습니다. 인삼 넣고 대추 넣고 마늘 넣고 찹쌀 넣고, 그러니 닭 뱃살이 불룩해졌습니다. 마무리는 두 다리를 열쭝 쉬어 자세로 묶었습니다. 그래야 솥에 넣고 끓여도 터지지 않을테니까요. 닭들에게는 좀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물 붓고 끓이기만 하면 먹을 수 있는 삼계탕 꺼리가 된 겁니다. 그냥 놔두면 상할까봐 냉동실에 넣어서 쾅쾅 얼렸습니다.
월요일 아침엔 장마가 시작되면서 장대같은 빗줄기가 사정없이 쏟아졌습니다. 바지를 걷어 붙이고 삼계탕 꾸러미를 날랐습니다. 혼자서는 힘들어서 두 분과 함께 빗속을 뛰었습니다. 아무래도 오늘을 넘기면 좋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지요.
우선 복지관 두 곳을 들렸습니다.
이제 익숙한 분들이어서 아주 반가워해 주셨습니다.
"아! 은평교회요? 삼계탕요."
처음엔 집집을 방문해서 전해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게 보통 일거리가 아니었습니다. 외롭고 힘들게 사는 분들이어서 말문이 열리면 그칠 줄을 몰랐습니다. 그렇다고 금방 자리를 털고 나올 수도 없구요.그래서 복지관에서 수고하는 분들에게 전해 달라고 부탁 드렸지요. 장애인들이 가족처럼 함께 생활하시는 밀알의집과 한우리 쉼터도 방문했지요. 역시 반가워 하셨습니다.
그리곤 대청댐 푸른 물을 끼고 한참을 달렸습니다. 장대비는 여전히 퍼붓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들린 곳이 '갈릴리 마을'이었습니다. 대청댐을 옆구리엔 낀 학교 건물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문닫은 학교를 임대 받아서 순수하게 이웃을 도우며 살아가시는 분들이 계시는 곳이지요.
아! 문간에 낯익은 얼굴이 보였습니다.
"최용덕 간사님?"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그렇게 살 순 없을까'라는 노래를 만드신 분이지요. 두 손들어 환영해 주셨습니다.꾸러미를 드렸지요.
"삼계탕요? 아 그렇군요."
한동안 웃음꽃이 폈지요. 저도 사정없이 떠들었습니다. 좋은 분을 만나면 틀림없이 '오바'하지요.
최 간사님의 이야기 중에 3가지가 남았지요.
"아니? 한목사님은 점점 젊어지시네요?"
그 분은 절대로 거짓말을 모르는 분입니다. 그리고 안경도 끼시지 않았고 사물을 순수하게 볼 줄 아는 분입니다.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다음 이야기, 기도 많이 하시는 분이 전화를 하셔서 최용덕할 때 '용'자가 좋지 않으니 고치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제 용자는 회개한 용자입니다.'라고 하셨다는 말씀을 듣고 한바탕 웃었지요. 저는 처음부터 '쓸용'자인데요.
마무리 이야기, 작년에 문간에 김장 보따리를 갖다 놓은 범인이 바로 목사님? 이제 들켰지요. 작년 가을에 김장을 담아서 이곳 저곳 나누어 드리고 갈릴리 마을까지 갔지요. 그냥 문간에 놓고 왔는데 이제 들킨 겁니다.
대청댐 물이 놀래도록 한바탕 웃었습니다.
누군가 우리교회를 '삼계탕교회'라고 부르기 시작 했습니다. 이번에도 땅에 심지 않고 하늘에 심었습니다.
유쾌, 통쾌, 상쾌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