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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석가세존은 우리나라의 백두산에서 고행성도하였다.
1. 석가세존의 고행성도지는 설산이다.
석가세존이 단군족의 후예라면 당연히 고행성도지(苦行成道地) 역시 우리나라라고 추정할 수 있다. 그런데 주지하다시피 석가세존은 보살 당시 설산(雪山) 염부주(閻浮洲)에서 6년동안 고행 끝에 그 남녘 기슭 니련선하(尼連禪河)에서 목욕하고 그 곁의 가야산(伽倻山 또는 가사산;伽寐山)에서 수도고행중 동방계명성(東方啓明星)의 밝은 별빛을 보고 도를 깨치었다고 한다. 그후 설산 총림방 중의 진귀조사(眞歸祖師)로부터 종지를 받았다고 한다.
그러면 설산은 인도 북부 히말라야 산맥 가운데 있는 어느 산인가? 아니면 우리나라의 백두산인가?
더욱이 백두산에도 눈이 일년 내내 녹지 않으므로 백두산을 일명 설산이라 하며, 백두산을 우리민족의 순수한 고유어로 표현할 경우, 그것은 히머리산, 히마리산, 히마리야산이 되고, 히마리야산을 영어로 표기하면 "Himalya"산이 되며, 이를 발음하면 히말리야산이 되며, 히말리야가 전음되어 히말라야(Himalaya)산이 된다.
염부주도 신주(神州) 또는 진단(振旦)이라 하는데, 우리나라의 백두산 일대 또는 천지일대(天池一帶)도 거기에서 신선도가 베풀어졌고, 신선과 성인들이 살았으므로 신시(神市) 또는 신주(神州)라 하고, 그곳은 불사약인 자연생 인삼의 원산지여서 진단(震檀·振旦·震丹·眞丹)이라 불리웠던 것이 후에 우리나라의 이칭이 되기도 하였다.
여기에서 석가세존의 고행성도지인 설산 염부주가 인도 북부의 히말라야산맥 어디에 있는 것인가? 아니면 우리나라의 백두산과 천지주변을 의미하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이러한 경우 흔히 아전인수격(我田引水格)으로 해석하여 자기에게 유리한 쪽을 택한다. 그것은 학문하는 올바른 자세라고 할 수 없다. 학문은 어디까지나 미확정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객관적인 입장에서 어떠한 판단기준에 의하여 확정하여야 한다. 이때 인용하는 방법이 가설검증법(test of hypothesis)이다.
가설검증법이란 어떠한 가설 즉 어떤 판단기준을 세우고 그 판단기준에 의하여 미확정적인 문제를 확정하는 방법이다. 이 경우 판단기준은 불서의 기록 밖에 달리 있을 수 없다. 따라서 불서의 설산과 염부주가 우리나라 및 인도의 그것 가운데 어느 것과 일치하느냐에 따라 석가세존의 고행성도지가 확정되게 된다.
2. 설산은 어떤 산인가?
그러면 석가세존이 고행성도한 설산과 염부주는 어떠한 특성을 지니고 있는가? 우선 판단기준으로서 불서에 기록된 염부주와 설산의 특수요건을 요약정리한다. 참고서적은 장아함경·중아함경·석가씨보·석가방지 등이다. 우선 염부주의 성립요건이다.
? 염부주는 수미산 남쪽 해중(海中)에 있다.
? 염부주는 3변이 비등하나 북은 넓고 남은 좁아(北闊南狹) 인면상(人面像)이다.
? 염부주를 진단 또는 신주라 한다.
? 염부주 중에 한 개의 큰 못인 아뇩달지가 있고, 4방으로 4대하가 흐르는데 모두 오른쪽으로 돌아 흐른다.
다음은 설산의 성립요건이다.
? 설산은 지구의 중심에 있다.
? 설산은 3층이다.
? 설산은 하수의 원천으로서 수지영부(水之靈府)이다.
? 설산의 정상에 큰 못인 아뇩달지(阿?達池)가 있고, 이를 당(唐)에서는 무열뇌지(無熱惱池)라 하였다.
? 아뇩달지에서 북쪽으로 굉장한 폭포(謎羅川)가 흐른다.
? 아뇩달지의 둘레는 8백리이다.
? 아뇩달지에 용왕이 산다(龍王住處).
? 아뇩달지에서 4방으로 4대하가 흐르는데, 모두 오른쪽으로 돌아 흐른다.
? 아뇩달지의 4안(四岸)이 보물장식 같다.
아뇩달지의 정남과 동쪽에 대단한 평지가 있는데 동서로 경사를 이루고, 5천리에 이른다.
아뇩달지의 정남은 첨처(尖處)이며, 그 밑은 지옥이다.
이상은 석가세존이 6년간 고행성도한 염부주와 설산의 성립요건을 정리한 것이다. 따라서 어느 지역이나 어느 산이 위의 성립요건에 부합일치되면 그곳이 염부주 또는 설산이라 할 수 있고, 부합일치되지 않으면 염부주 또는 설산이라 할 수 없다는 이론이 성립된다.
3. 인도북부의 히말라야 산맥에는 설산이 없다
그러면 불자들이 성산으로 모시는 히말라야 산맥 가운데 어느 산이 위에 제시한 설산의 성립요건에 부합일치되느냐의 문제이다. 최소한 히말라야산맥 가운데 어느 산의 정상에 하수의 원천인 큰 못이 있느냐의 문제이다.
동아일보의 보도에 의하면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산상호수는 페루와 볼리비아 국경에 있는 티티카호와 소련의 레닌그라드 근처에 있는 라도카호라 하여 인도 히말라야산맥의 어느 산의 정상에도 큰 못(호수)이 없음을 확인하여 주고 있다.
이는 곧 인도 북부 히말라야 산맥에는 석가세존이 고행성도한 설산이 없음을 확인하여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뿐더러 현장(玄濱)의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를 비롯하여 어느 불서를 보아도 석가세존이 히말라야 산맥의 어느 산에서 고행했다는 기록을 일절 찾아볼 수 없다.
더욱이 학자들의 불교사서를 보면 석가세존의 설산고행을 허무맹랑한 전설같이 흘려버리고 있다. 그것은 인도 지역에 불서에 기록된 그러한 설산이 없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인도 북부의 히말라야 산맥에는 석가세존의 고행성도지인 설산이 없는 것이 분명한 것이다.
4. 인도의 부다가야는 설산이 아니다.
그러면 인도 중부의 부다가야가 석가세존의 고행성도지인가? 현재 인도 당국은 부다가야를 석가세존의 고행성도지라 하여 여러가지의 시설을 갖추어놓고 있으나 이제 기록과 현지를 비교하면서 그 부당성을 지적하고 비판한다.
첫째, 부다가야는 산악이 아니라 평지이다.
석가세존의 고행성도지인 설산은 산악이다. 이는 불교신자라면 누구나 다 아는 일반상식이다. 그런데 인도 중부의 부다가야는 산악이 아니라 평지이다. 그밖에도 부다가야는 설산의 특수요건을 어느 하나도 갖추고 있지 않다. 이에 대해 인도를 방문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잘 알 것이다. 그리고 부다가야는 인도 중부에 가까운 곳으로 인도 북부의 히말라야산맥 중의 어느 산을 설산이라 할 경우 거기에서 2천여리 이상 남쪽으로 떨어져 있다.
둘째, 부다가야의 네란자라강은 불서의 니련선하가 아니다.
석가세존은 6년 고행 마지막에 니련선하(尼連禪河)에서 목욕하고, 가야산(가사산 또는 고석산)의 보리수 밑에서 성도했다. 니련선하는 종교용어로서 강물이나 그 주변의 풍경을 나타낸 표현이다. 그 뜻으로 말하면 강바닥에 깔려 있는 모래가 보일 정도의 깨끗하고 맑은 물을 의미하며, 강변에 연이어 서 있는 병풍석은 마치 비구니가 줄지어 서서 기도하는 것 같은 선경을 의미한다.
인도의 부다가야 가까이에도 네란자라강이 흐른다. 네란자라강은 건기에는 말라 버리고 우기에만 흐르는 강으로서 맑지도 않고 강변은 흙과 모래로 된 얕은 언덕으로서 병풍석이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또한 니련선하는 설산에서 동남해로 들어가는 항하의 지류로서 동쪽 아니면 동남쪽으로 흐르는 강이라 추정할 수 있다. 그런데 부다가야의 근교를 흐르는 네란자라강은 인도 중부의 데칸고원을 시발로 하여 남쪽에서 동북쪽으로 흐르는 강이다. 그러므로 부다가야의 네란자라강은 불서의 니련선하라 할 수 없다.
셋째, 부다가야에 석가세존의 불탑이 없다.
수양대군의 저술인 {석보상절}에 의하면 석가세존의 고행성도지에 불탑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석가세존의 고행성도지라는 부다가야에 석가세존의 불탑이 없다. 있다면 석가세존이 입멸하여 약 2백년 후에 아쇼카왕이 세웠다는 돌기둥과 정사와 그후에 만들어졌거나 다른 데서 옮겨온 승려들의 불탑만이 있을 뿐이다.
넷째, 부다가야는 조작되고 있다.
부다가야는 가야에 부다를 붙인 명칭으로써 가야보다 후에 조작된 명칭이라 할 수 있다. 즉 가야를 힌두교의 성지로 만들면서 어쩔 수 없이 붙인 명칭인 것이다. 그런데 부다가야의 불탑들은 다른 데서 옮겨온 것인가 하면, 정사의 작은 원판 자체가 근대의 위작이라는 학자(B.M.Barua)도 있으니, 부다가야의 유물과 유적들은 인도인의 긍지를 높이고 인도를 찾아오는 외국불자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기 위하여 후대에 와서 조성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은 이유에 근거하여 인도의 부다가야는 석가세존의 고행성도지가 아니라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인도의 부다가야는 석가세존이 고행성도한 설산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다가야를 석가세존의 고행성도지라고 믿는 우리나라의 승려들이나 불교학자들의 심리를 전혀 이해할 수 없다. 더욱이 부다가야에 막대한 금액을 드리면서 절까지 지으니, 신앙이란 그렇게도 맹목적인가? 맹목적 신앙으로 어떻게 견성성불할 수 있단 말인가? 참으로 통탄할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5. 설산은 우리나라의 백두산이다
인도 북부의 히말라야 산맥도 석가세존의 고행성도지가 아니며, 인도 중부의 부다가야도 석가세존의 고행성도지가 아니다. 그렇다면 석가세존의 고행성도지는 어디인가? 자연히 우리나라의 백두산이라고 추정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과학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 이에 따라 염부주와 백두산의 천지(신시), 설산과 백두산을 비교한다. 먼저 염부주와 백두산의 천지를 비교한다. 참고문헌은 {신증동국여지승람}과 학자의 논문들이다.
1) 염부주는 海中에 있다고 했는데, 고조선을 海中이라 한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 상설한다.
2) 염부주는 3변이 비등하며 북은 넓고 남은 좁아 인면상인데, 백두산의 천지 모형도 3변이 비등하며 북은 넓고 남은 좁아 인면상이다.
3) 염부주를 진단 또는 신주라 했는데, 백두산의 천지주변을 진단 또는 신주 또는 신시라 한다.
4) 염부주에 아뇩달지라는 못이 있어 거기에서 사방으로 4대하가 흐르는데, 백두산 정상에도 천지라는 못이 있고 거기에서도 사방으로 4대하가 흐른다.
이상과 같이 백두산 천지의 특수요건이 염부주의 성립요건에 부합일치된다. 이러한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염부주가 인도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백두산 천지 곧 신시임을 의미한다. 또한 {석가방지}를 보면 "염부주를 크게 3분하면 2분은 북쪽인데, 땅은 넓고 사람은 드물며, 흉노가 사는데, 도(道)에 힘쓰지 않는다. 1분은 남쪽인데 3면이 바다에 닿았고, 사람은 많으나 마음이 맑고 성인의 교화를 잘 받은 대성도(大聖都)라"고 하였다. 이를 보면 염부주는 한편 만주·러시아의 연해주·한반도를 포괄하는 상고시대의 고조선 강역 전체를 가리키기도 한다.
이와 같이 볼 때, 염부주는 좁게는 백두산 천지 곧 신시를 의미하며, 넓게는 상고시대의 고조선 강역 전체를 의미한다.
다음은 설산과 백두산의 비교이다.
1) 설산을 히마리야산이라 하는데, 백두산도 우리민족의 순수한 고유어로 표현하면, 히마리야산이며, 한편 설산이라 한다.
2) 설산은 지구의 중심에 있다. 그런데 백두산이 지구의 중심에 있다고 세계지리학회에서 발표하였다.
3) 설산이 3층인데 백두산도 3층이다.
4) 설산은 하수의 원천으로서 수지영부인데, 백두산도 하수의 원천으로서 수지영부이다.
5) 설산의 정상에 아뇩달지라는 큰 못이 있고, 당나라에서는 그 못을 무열뇌지라 하였다. 그런데 백두산의 정상에도 천지라는 큰 못이 있고, 천지를 최남선은 무열뇌지라 하였다.
6) 아뇩달지는 3변이 비등하며 북은 넓고 남은 좁아 인면상인데, 백두산의 천지 모형도 3변이 비등하며 북은 넓고 남은 좁아 인면상이다.
7) 아뇩달지에서 사방으로 4대하가 흐르고, 그 하수는 오른쪽으로 돌아 흐르는데, 천지에서도 사방으로 4대하가 흐르고 그 하수 역시 오른쪽으로 돌아 흐른다.
8) 아뇩달지 북쪽에 굉장한 폭포(謎羅川)가 흐르는데, 천지의 북쪽에도 굉장한 폭포가 흐른다.
9) 아뇩달지 정남벽상에 첨처가 있고, 그 밑에 지옥이 있는데, 천지의 정남벽상에도 예각직암이 높이 솟아있고, 그 밑은 낭떠러지이다.
10) 아뇩달지의 남쪽과 동쪽에 5천리에 이르는 대단한 평지가 있다. 그런데 백두산 천지의 남쪽과 동쪽에도 약 4만km2의 대평지인 개마고원이 있다.
11) 아뇩달지의 못 둘레가 8백리라 한다. 그런데 천지의 못 둘레는 80리라 한다. 단위는 과거와 현재, 인도와 중국과 우리나라가 서로 다르므로 [8]이라는 숫자에 의의가 있는 것이다.
12) 아뇩달지의 4안이 보물장식 같다는데, 천지의 4위도 형형색색하여 보물장식 같다.
13) 아뇩달지는 용왕주처(龍王住處)인데, 백두산 천지를 용왕담(龍王潭) 또는 용담(龍潭)이라 한다. 이상을 도표화하면 도표(6)과 같다.
도 표(6) 설산과 백두산의 비교표 설 산
A
아뇩달지
인면상
미 라 천
정남첨처
4안보식
龍王住處
B
지구중심
4 대하
수지영부
동,남평지
3 층
池周8백리
a
천 지
인면상
천지폭포
정남직암
4위보식
龍 王 潭
백두산
b
지구중심
4 대하
하수원천
동,남고원
3 층
池周8십리
"A와 a, B와 b를 비교하시요"
이상과 같이 우리나라의 백두산의 특수성이 설산의 성립요건에 부합일치되고, 인도에는 그러한 설산이 없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연역할 수 있다고 본다.
1) 불서의 설산은 우리나라의 백두산이다.
2) 염부주도 인도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백두산 천지이다.
3) 석가세존이 설산 염부주에서 6년 고행 끝에 그 남녘 기슭 가야산에서 성도한 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우리나라의 백두산 천지에서 6년 고행 끝에 그 남녘 기슭의 가야산(우리나라의 {신교총화;神敎總話}에도 나오는 산으로서 고유명사가 아니라 승려들이 수도하는 산)에서 성도하였음을 의미한다.
4) 석가세존에게 종지를 넘겨준 진귀조사 역시 인도 사람이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이다.
5 석가세존의 탄생지인 가비라성도 우리나라의 백두산 남녘 기슭에 있었다.
6) 석가세존은 근본적으로 우리민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