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생크 탈출>의 선전 포스터는 매우 인상적입니다. 장대비가 쏟아 붓는 칠흑같이 캄캄한 밤하늘에 한줄기 섬광같은 번개불이 밤하늘을 대낮처럼 밝힌 그 하늘을 향臼?탈출에 성공한 주인공 앤디가 두팔을 활짝 벌리고 자유의 감격에 전율합니다.
젊고 유능한 은행 간부 앤디(팀 로빈스)는 부인과 그녀의 정부를 살해한 죄목으로 쇼생크 교도소에 수감 되는 것 으로 이 영화는 시작 됩니다 . 이영화는 교도소로부터 탈옥하는 진부한 소재를 매우 신선하고 박진감 있게 구성한 영화로 특히 탈옥 후에 비 쏟아지는 들판에서 자유를 만끽하는 앤디가 하늘을 향해 팔을 벌리고 울부짖는 장면의 연출은 무척 인상적 입니다.
이 영화에서 앤디 역은 지성파 명배우 '팀 로빈스'가 맡아 인간의 타고난 본능과도 같은 자유에 환호하는 절절한 연기를 보여줍니다.
흑인배우 '모건 프리먼'의 잔잔한 연기도 압권입니다.
이영화는 비록 죄수들 이지만 그들의 자유와 평등을 향한 인간의 본능을 감동적으로 표현한 영화 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쇼생크 탈출>이라는 제목으로 상영되었지만 영어 원제목은 <쇼생크 탈출>(Shawshank Escape)>이 아니라 <쇼생크 구원(Showshank Redemption)>입니다. '탈출'이 '벗어남'만을 의미하는 소극적의미라면 '구원'이란 '새 삶, 새 세상'의 쟁취와 완성의 적극적 의미인 것 이죠.
'탈출'은 어두움과 억압 속에서 빠져나오는 자체만을 의미하지, 그 '탈출' 이후에 얻은 삶이 '탈출'의 본래 '목적'을 달성 했는지에 대해서는 묻지 않습니다. 대개의 '탈출영화'는 이 범주에 속합니다. '탈출'에 성공하는 것으로 영화는 곧 끝이고 그 이후에 주인공의 삶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관심 없습니다.
그러나 <쇼생크 탈출>은 탈출과 해방의 '진정한 의미'를 묻습니다. '해방'의 진정한 의미는 '탈출'을 통하여 진정 '새 세상'을 찾았는지의 문제이지 '탈출' 그 자체는 아닙니다.
영화는 50년간 쇼생크에서 복역한 '브룩스(Brooks)'라는 한 수감자을 통해 그 문제를 제기합니다. 50년을 쇼생크에서 복역한 브룩스 영감에게 느닷없이 가석방이 결정됩니다. 브룩스 영감은 기뻐하기는커녕 절망에 빠지고, 고민 끝에 칼을 들고 동료죄수의 목을 겨누는 난동을 부립니다.
브룩스 영감은 그런 사고를 쳐서라도 가석방의 결정이 취소되어 교도소에 남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영감의 눈물겨운 노력도 무위로 끝나, 영감은 어쩔 수 없이 가석방 당합니다. 50년만에 아무런 준비없이 '자유의 세상'에 내동댕이쳐진 브룩스에게 '자유'란 '고통과 불안' 그 자체일 뿐입니다.
그는 결국 목을 메 자살합니다
쇼생크에서 탈출(?) 은 성공했지만 진정한 자유를 쟁취하지는 못 한 결과입니다
그런의미에서 앤디는 탈출을 넘어 진정한 자유 즉, 구원을 얻습니다.
치밀한 계획으로 탈출에 성공하고 진정한 자유까지 쟁취한 앤디 , 그래서 영화 마지막장면 앤디와 레드가 바닷가에서 해후하는 장면에서 박수와 감동이 몰려오는 것 입니다
탐욕과 살인과 누명과 거짓으로 둘러싸인 죄악의 군상,올가미,어둠,좌절,이러한 삶 속에서 빛과 자유를 찾아 전력 투구하는 소망과 인내로서 달려감으로 얻어지는 빛의 세상 자유의세상으로 이동하는 주인공의 그 모습에서 우리는 '자유'의 대리만족을 얻습니다..
볼수록 잘만든 영화입니다
이영화에선 모짜르트의 음악이 들려집니다
앤디가 교도소장 집무실에서 축음기와 확성기를 통하여 감옥구석구석에 모짜르트의 아리아를 들려주는 장면. 삭막하기만 한 쇼생크 교도소에 모짜르트의 음악이 울려퍼지자 모든 죄수들과 간수들이 넋을 잃고 귀를 기울입니다
카메라가 비추어주는 죄수들 한명 한명의 놀란 듯한, 마음 한구석 아파오는 듯한 진지한 표정을 영상을 통해 대했을 때, 그들과 함께 음악에 깊이 공명되었던 본인은 깊은 감동에 전율 마저 느꼇습니다
이 세상 가장 그늘진 곳 죄수들에조차 여전히 따뜻한 피가 흐르고 있다고 믿게 하는 장면은 그들 깊숙한 곳에 내재한 인간 본연의 감정에 음악은 부드럽게 호소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영화에서 이렇게 군중을 동원하여 감동을 자아내려 하는 전개 방식은 다분히 고의적이고 도식적 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음악으로도 그 감동을 대신 전해줄 수 없을 만큼 빼어난 선곡이 있었고, 그 음악을 대하는 죄수 레드의 한 점 가식 없는 고백이 함께 하기에, 이 장면은 언제 다시 봐도 그 빛을 잃지 않습니다.
이 곡은 모짜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에서 백작 부인과 수잔나가 부르는 여성 이중창 입니다. <편지 쓰기의 이중창>이라고도 하며 <저녁 바람의 노래>라고도 합니다.
"오늘 저녁 서풍 제피로스가 온화하게 불겠지요. 소나무 숲에서..."
이렇게 백작을 장난으로 유혹하려는 편지를 쓰는 장면 입니다.
하녀인 수잔나에게 눈독을 들이는 바람둥이 남편 알마비바 백작을 골려주기 위해 백작 부인은 편지의 내용을 불러주면서 수잔나의 필체로 편지를 받아쓰도록 합니다.
편지를 받은 백작이 수잔나를 만나려고 저녁 때 소나무 숲에서 기다리면, 수잔나와 옷을 바꿔 입어 변장한 백작 부인이 대신 나가서 골탕을 먹이려는 것이지요.
이러한 가사 자체는 전혀 감동을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작가가 글으로 말하고 화가가 그림으로 말하듯이, 작곡가는 음악이라는 언어를 통해 말하는 법 입니다.
서풍 제피로스가 산들거리며 불어오듯이 백작부인의 부드러운 목소리는 우아하게 울려옵니다. 편지를 쓰는 수잔나 주위를 왔다갔다 거닐며, 그 속도에 편안하게 맞추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합니다.
수잔나는 백작 부인이 불러주는 내용을 받아쓰면서 백작 부인이 말한 내용을 다시 반복해서 물어보기도 하고 따라 부르기도 합니다.
두 여성이 노래하는 상냥한 멜로디는 감미로우며, 완전히 한마음이 된 백작 부인과 수잔나는 더없이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들어냅니다.
이 음악은 매우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는 감각적인 즐거움을 넘어서는 것이 들어 있었습니다.
죄수 레드 로서는 그것이 무엇인지 정체를 알 수 없었지만 분명히 감지할 수는 있었던 것, 그래서 그토록 모든 사람의 심금을 울렸던 것이 있었습니다.
그 속에는 인간성에 대한 따뜻한 신뢰와 애정이 담겨 있습니다.
존엄하게 태어난 모든 인간이 갈망하는 자유와 평등을 향한 목소리가 .....
이곡은 이러한 자신의 확고한 신념을 음악이라는 언어를 통하여 용기 있게 말하는 작곡가 모짜르트의 정신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백작 부인과 수잔나가 그랬듯이 쇼생크의 모든 간수들과 죄수들은 단 한순간이나마 잿빛 공간 속에서 그들을 서로 갈라놓고 억압했던 모든 폭력과 강제를 잊은 채 감정을 가지고 느낄 줄 아는 평등한 인간으로서 다같이 음악에 귀를 귀울인 것 입니다.
인간 스스로 만들어내어 스스로를 결박할 뿐인 모든 어리석은 구속에서 벗어나기를,
아름다운 새들처럼 자유롭기를....다툼도 차별도 없이 모든 인간이 피를 나눈 형제처럼 조화롭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그 모든 이상을 모짜르트는 이 음악 속에서 구현 했습니다.
생활에 지치고 삶이라는 편력에 지칠 때 모짜르트의 음악은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아로새겨진 정신적 유년기에 대한 향수를 가져다 줍니다. 누구나 아름답고 즐겁게 기억하고 싶을...
그러나 다시 돌아오지도 만져지지도 않을듯 아득한 서글픔을 지닌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