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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뿌라 메트로 역 Jangpura Metro Station 외부모습
후마윤묘를 관람하고는 바로 길을 건너서 이슬람의 성자 니자무딘의 묘(Nizam-ud-din's
Dargah)를 보고 갈까 생각하다가 오늘 밤 열차로 아즈메르(Ajmer)로 가기로 예정되어 있
어 일단 숙소로 돌아가기로 하였다. 호텔에 체크아웃도 하고 아침도 먹어야 되겠기에 가
까운 메트로역으로 가서 숙소로 돌아가기로 하였다. 현지시각은 아직 아침9시도 되지 않
았는데, 햇살은 따끈따끈하다. 릭샤가 여러 대 대기하고 있어「장뿌라(Jangpura)역」이나
「JLN Stadium역」을 가는데 50루피를 내라고 한다. 필자가 20루피를 주겠다고 하니 30루
피만 달라고 사정을 한다. 그렇게 하기로 하였다.
▲ 니자무딘 지역에 있는 시장 모습
▲ 성자 니자무딘 묘지 표지판
▲ 델리시내의 메트로 열차는 구간별로 항상 붐빈다.
메트로 열차의 보라색선(violet line)인「장뿌라(Jangpura)역」에 도착하여 티켓을 구입하
여 탔다가「센트럴시크리태리엇(Central Secretariat)역」에서 노란색선(yellow line)으로
갈아탔다. 그리고는「뉴델리(New Delhi)역」에서 내려 메인 바자르(Main Bazar)를 지나
빠하르 간지(Pahar Ganj)의 골목으로 들어갔다. 날씨도 덥고 배도 고프다. 늦은 아침이지
만, 한국식당 <인도방랑기>로 들어가 김치찌개를 시켜 먹었다. 조금 늦은 아침인데다가
모처럼 한국식당에서 밥을 먹으니 정말 밥맛이 좋다.
▲ 한국식당 <인도방랑기>표시간판
늦은 아침을 먹고는 숙소인 스털링-인(Sterling Inn)으로 가서 모든 짐을 챙겨 배낭을 쌌
다. 이틀 밤을 잤지만, 그 동안 빨래도 할 수 있고 샤워도 할 수 있어 좋았다. 물론 런닝
내의와 같은 속옷이 잠깐동안의 외출이라도 나갔다 오면 땀으로 범벅이 되어 빨아 널어
두어도 바로 입을 수가 없어 우리돈 1500원 정도면 살 수 있는 인도의 런닝티도 몇 개를
사서 입었다. 11시 이전에 체크아웃을 하여야 하며, 만약 12시가 넘도록 체크 아웃을 하
지 않으면 하루 숙박료를 더 물어야 한다. 체크아웃을 한 후 배낭을 챙겨 카운터에 맡기
면 보관하는 창고가 있어 저녁에 찾아가면 된다.
▲ 숙소로 묵었던 스털링인(Sterling Inn)여관 간판
필자도 체크아웃을 하고 배낭을 맡겨두고는 밖으로 나왔다. 델리를 떠나기 전에 찬드니
초크(Chandni Chowk)를 한 번 더 걸어보고, 말로만 듣던「악사르담(Akshardham)」을 꼭
한번 가보고 싶다. 일단 메트로 뉴델리역으로 가서 메트로를 타고 찬드니 초크역에 도착
하여 내렸다. 찬드니 초크에 도착하여 어제 이쪽을 쭉 돌아보았지만, 그 속에서 놓친 자
이나교 사원인「스리 디감바 자인 랄 만디르」와 시크교사원을 서둘러 둘러 보았다.
▲ 인도 델리의 메트로 열차를 한번 타려면 이렇게 줄을 서서 보안검사를 받아야 한다.
▲ 아침의 뉴델리(New Delhi)역 앞에서 오가는 사람들과 차량들
◆ 자이나교 Jainism 耆那教
▲ 델리의 자이나교사원 Digambar Jain Lal Mandir, Chandni Chowk Delhi
멀리까지 위용을 나타내 보이는 육중한 붉은 성(Lal Qila = Red Fort)에서 바로 길을 건너,
혼잡스런 찬드니 초크(Chandni Chowk)지역으로 들어가면 <네타지 수바쉬 마르그 (Netaji
Subhas Marg)> 거리와 교차 지점에「스리 디감바 자인 랄 만디르 (Shri Digambar Jain Lal
Mandir)」라고 이름 붙여진 커다란 사원이 보인다. 바로 델리에 있는 자이나교 사원으로
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널리 알려진 곳이며, 가장 큰 사원이다.
▲ 델리의 자이나교사원의 바깥모습 Digambar Jain Lal Mandir, Chandni Chowk Delhi
▲ 델리의 자이나교사원의 내부 및 천장
자이나교(Jainism)는 자인(Jain)교, 자나교(Janaism) 또는 지나(Jina)교라고도 하는데, BC
6세기경에 바르다마나(Vardhamāna)가 당시 초기의 힌두교인 정통 베다교 의례에 반대해
창설한 인도의 종교이다. 창조 신을 믿지 않는 자이나교는 어떠한 생명도 살상하지 않을
것을 윤리의 핵심으로 삼고, 인간의 본성을 완전하게 하려면 주로 고행과 수도생활을 통
해서 성취하는것을 종교적 이상으로 여기고 있다. 델리에 있는 자이나교사원은 1656년에
처음 지은 것인데, 강한 인상을 주는 붉은 사암(砂岩)으로 되어있으며, 오늘 날에는 많은
변화를 거쳐 19세기초에는 애당초 것보다 여러 부문이 가미되고 확대되었다.
▲ 델리의 자이나교사원 앞의 큰 거리에는 차량이 혼잡하고 지나다니는 인파로 항상 붐빈다. ▲ 델리의 자이나교사원에서 거리의 빈민들에게 음식을 나눠준다.
이곳 자이나교사원에 들어갈 때는 반드시 신발을 벗어야 한다. 입구에다 신발을 맡기고
는 마당부터 맨발로 비둘기 오물을 밟으면서 들어가게 된다. 사람들은 작은 탑돌이부터
시작해야 한다, 기도하며 순례하는 가족도 있다. 사원에 들어 가서 뜰을 돌아 옆 건물로
가보면 새들의 병원이 있다. 조류병원과 자이나교와의 관계는 모든 생물의 영혼을 믿어
불살생(non-violence)이라는 자비심 때문이다. 그것은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Mohandas
Karamchand Gandhi ;1869~1948)의 주요 신념 중의 하나로 채택한 비폭력이라는 아힘사
(ahimsa)이기도 하며 불교의 불살생계(不殺生戒)이기도하다. 비둘기들과 새들은 새장에
있으며 치료하여 나으면 날려 보낸다.
▲ 자이나교사원 안쪽에서 새(鳥)치료병원 건물로 향하는 길
▲ 델리의 자이나교사원 안에서 조용히 기도하고 있는 젊은 남녀신도
▲ 자이나교 사원의 경내인 실외에서 합동으로 소리를 외치며 기도하고 있는 자이나교신도들.
본래 북인도에서 시작된 자이나교였지만, 한때는 심각한 기근(饑饉)을 피해서 남쪽 데
칸(Deccan)고원으로 승려들이 이동하기도 하였는데, 바드라바후가 지도자가 되자 마
하비라 이래로 내려오던 전통과 흰 옷을 입는 것 등을 버림으로써 분파가 생겨나게 되
었다. 이렇게 생긴 분파 중 하나는 디감바라(Digambaras, the sky-clad)이고, 다른 하나
는 스베탐바라(Svetambaras, the white-clad)이다. 두 종파가 시작된 것은 AD 1세기부터
이고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 델리의 자이나교사원의 육중한 모습
▲ 델리의 자이나교사원 주위는 항상 붐비고 복잡하다.
흰옷파인 스베탐바라(Svetambaras)는 주로 북인도에 거주하며 AD 82년에 남부 자이나교
와 의상 문제로 갈라진 후 다시 약 84파로 분열하였다. 푸른계열의 옷을 입는 청색옷파인
디감바라(Digambaras)는 남부 인도에 퍼진 자이나교파인데 북부 자이나교보다 더 엄격하
고 더 금욕적이다. 그들은 나체로 살았으며 그들의 신상까지도 나체신상이다. 경전문제도
디감바라파는 디감바라 정경(Digambara Canon)만을 인정한다.
▲ 델리의 자이나교사원을 가까이서 본 전체 모습
▲ 델리 자이나교사원의 경내에서 여러 시설로 가는 길
여기서 자이나교의 이름인「Shri Digambar Jain Lal Mandir」에서 “Shri”는 “Sri"라고도 쓰
는데 ‘성(聖)’이라는 뜻으로 종교적인 이름에 붙이며, ”Digambar“는 ‘푸른 색깔의’이란 뜻
이고, ”Lal Mandir“은 ‘Red Temple’이란 의미이다.
▲ 찬드니초크의 거리를 벗어나 조금 떨어진 곳에서 본 델리의 Digambar Jain 사원모습
◆ 시크교 Sikhism 锡克教 Gurdwara Sisganj Sahib in the Chandni Chawk Delhi
▲ 초대 구루 Guru nanak
▲ 델리의 찬드니초크에 있는 시크교사원인 구루드와라 시스간즈 Gurdwara Sisganj Sahib
라호르 근처에서 출생한 나나크(Gurū Nānak 1469∼1539)가 1521년 힌두교의 신애적 신
앙정신과 이슬람교의 신비사상을 합쳐서 창시한 종교가 시크교(Sikhism)이다. 종교의지
도자를 구루(Guru)라고 하고, 그를 따르는 제자들을 시크(Sikh)라고 불렀기 때문에 시크
교(Sikhism)로 불리게 되었다. 신자수는 2300만 명에 이르는데, 주로 인도의 펀자브지방
에 많다.
▲ 델리 제일의 시크교사원인 구루드와라 시스간즈 Gurdwara Sisganj Sahib 앞 거리
찬드니 초크(Chandni Chawk)에 있는 구루드와라 시스간즈(Gurdwara Sisganj Sahib)는 델
리에 있는 9개의 전통적인 시크교사원 중의 한 곳이다. 시크교의 제9대 구루인「테그 바
하두르(Guru Tegh Bahadur ; 1621~1675)」가 순교 당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1783년에
「바겔 싱(Baghel Singh; 1730~1802)」이 처음으로 설립한 시크교사원이다. 이곳 반얀나
무(banyan tree) 아래에서 무굴제국 황제 아우랑제브(Aurangzeb)는 이슬람으로 개종하도
록 명령하는데도 이를 거부한 시크교의 구루였던「테그 바하두르」를 1675년 11월 11일
참수시켰다.
시크교의 교리는 펀자브어로 간단명료하게 표현되어 있는데, 신(神)은 오직 하나이며우
상이나 신상(神像)을 만들지 않는다. 인간은 자신의 영혼이 윤회에 의해 여러 가지 모습
으로 태어남을 거쳐 궁극적으로 신과 합일될 때까지 신의 명령에 따르는 선한 생활과기
도, 특히 신의 이름을 되풀이하여 부름으로써, 이것을 통해 신을 섬겨야 한다. 시크교에
는 사제직이 따로 없고 남녀어른은 누구나 종교의식을 집전할 자격이 있다. 의식(儀式)
은 주로 〈그란트(Granth)〉를 읽는 것이다.
▲ 시크교사원인 구루드와라 시스간즈 Gurdwara Sisganj Sahib 전체모습
예배 장소는 '구르드와라(Gurdwara or Gurudwara)'라고 부르는데, 대표적인 예가 5대 구
루(Guru)인 아르준 데브(Arjun Dev)가 처음 세우고 몇 차례 훼손되었다가 마지막으로 란
지트 싱(Ranjit Singh ;1780~1839)이 재건한 흔히 “황금사원(Golden Temple)” 이라는 이
름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 암리차르(Amritsar)의 ‘하리만디르(Harimandir)’이다. 시크교도
들은 구르드와라에서 의식을 거행함으로써 전통적인 힌두축제일을 지키는 외에도 일부
구루의 생일 등 그들만의 성일(聖日)에 <그란트(Granth)> 를 들고 거리를 행진함으로써
기념한다.
▲ 시크교도들이 사원에 들어가기 전에는 모두 신발을 벗고 들어간다.
▲ 시크교도들이 사원에 들어가서 정좌하고 앉아 기도드리고 있다.
시크교도들을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은 남성들은 머리에 둘러쓴 터번과 얼굴에 자라고
있는 수염으로 구별할 수 있다. 제10대 구루인 고빈 씽(Gobind Singh)때 제정된 시크
교의 남성들은 소위 5K를 지킨다. - kes(케스 ; 깎지 않은 머리털), kangha (캉가 ; 작
은 머리빗), kara (카라 ; 둥근 팔찌), kirpan (키르판 ; 단검), kaccha (카차 ; 특별한속
옷). 대부분의 남성들은 종교적인 이유로 머리털과 수염을 절대 깎지 않는다. 그래서
신앙심이 깊은 남성들은 머리털을 위로 올려 머리빗으로 꽂은 후에 터번으로 둘러쓰
는 편이다. (현대에 와서 머리털과 수염을 깎는 남성들도 물론 있지만, 그런 남성들은
회당에 갈 때 작은 머리 수건으로 가려야 한다)
▲ 시크교 남자신도의 모습
▲ 시크교도의 결혼식 모습
남성들은 이름과 성 사이에 Singh (싱 - "수사자"의 뜻), 여성들은 Kaur (카우르 - "암사자"
의 뜻)이란 단어를 넣는다. 시크교도들은 채식주의자들이 대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