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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중국의 차도(茶都) 항주의 용정차(龍井茶) ① "색이 맑고 맛이 달아 최고의 명차로 자리" 1. 용정차의 역사 이미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중국은 차의 발상지답게 세계적 명차(名茶)가 많기로 유명하다. 그 종류는 적게는 십여 종에서부터 많게는 수십 ? 수백 종류에 달하여 일시에 손으로 꼽기도 어려울 정도이다. 그래서 많은 전문가들 사이에는 어느새 명차의 종류를 간략히 추려 ‘중국의 팔대명차’니 혹은 ‘중국의 십대명차’니 하는 말들이 교과서적인 전문용어처럼 유행하여 상용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 외에도 각 시대별로 분류하고 정리하여 ‘무슨 시대 때의 십대 명차(名茶)’니 ‘어느 조대(朝代)의 십대 공차(貢茶)’니 하는 등의 수식어로 표현되기도 한다. 이는 모두가 모 지역의 사람들 자신이 지정한 특정한 차의 우수성을 표현하고 강조하기 위하여 그 서열을 정하거나 혹은 그 서열의 범위 안에 포함시킴으로써 그 차의 품질과 명성을 돋보이기 위함일 것이다. 실제로도 이렇게 명차반열에 포함된 차들은 명차로서의 손색이 전혀 없거니와 또한 여기에 포함되지 않은 차일지라도 명차의 반열에 들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차들이 무수히 많다. 필자가 중국의 명차 산지를 답사하면서 마셔본 어떤 차들은 명차의 반열에서 제외되었지만, 그 맛과 향이 일반에 거론된 명차들 못지않거나 혹은 더 나은 차도 있었다. 물론 필자 개인의 느낌이니 여기서는 거론하지 않기로 하겠다.
▲ 용정촌 입구.
그 분류법이 어떠하든 간에 빠짐없이 상위권에서 자리 매김하는 차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용정차(龍井茶)’이다. 중국을 다녀왔거나 중국차를 즐겨 마시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들어보거나 마셔본 중국차에는 무엇이 있냐고 물으면 백이면 백 모두가 서슴없이 ‘오룡차’와 ‘용정차’를 이야기 한다. 그러다가 1990년대 들어서면서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하여 ‘보이차’도 함께 이야기하고 있다. 그야말로 기가 막힌 분류법이다. 이것이야말로 최고로 간단하면서도 가장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분류법이다. 왜냐하면 녹차의 대표가 ‘용정차’이고 반발효의 대표가 ‘오룡차’이며 완전발효의 대표가 ‘보이차’이고 보면 그 방대한 종류를 가진 중국차의 핵심을 중국인들보다 더 간단명료하게 요약하는 표현할 줄 아는 한국인들의 지혜가 돋보인다.
용정차는 생각보다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중국 북송 때의 유명한 시인 소식(蘇軾:소동파蘇東坡)은 항주의 관리로 가 있을 때, 차에 관심이 많아 항주 차의 종식(種植)과 재배에 대한 역사를 고증하고 연구하였다. 소식에 의하면, “남조(南朝)의 시인 사령운(謝靈運)이 서호(西湖) 아래 있는 천축(天竺) 일대에서 불경을 번역할 때, 천태산(天台山)에서 가져온 차나무 씨를 서호(西湖)에 심고 재배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용정차의 기원은 남조시대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으며, 역사적으로는 대략 1천5백년이란 긴 역사를 가지게 된다. 소식은 북송을 대표하는 시인이자 사인(詞人)이면서 또한 가장 많은 다시(茶詩)를 남긴 인물로도 유명하기 때문에 그 근거가 충분히 믿을만한 것으로 보인다.
▲ 용정촌 전경.
항주에서 차가 생산된다는 최초의 기록은 당나라 육우의 《다경》의 <차의 산지(茶之出)>에 보인다. 그 기록에는 “항주의 임안현(臨安縣)과 어잠현(於潛縣) 구역의 천목산과 서호 안의 ‘천축(天竺)’과 ‘영은(靈隱)’ 두 절에서 차가 생산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 시기에는 차의 생산에 있어 그다지 제대로 된 생산규모를 갖추고 있지는 못하였다. 항주의 용정차구가 대략적이나마 차의 생산적 체계와 규모를 갖추게 된 것은 북송 시기에 이르러서이다. 당시 영은사와 하천축(下天竺)의 향림동(香林洞)에서 생산되는 ‘향림차’와 상천축(上天竺)의 백운봉에서 생산되는 ‘백운차(白雲茶)’그리고 보운산에서 생산되는 보운차(寶雲茶) 등은 이미 공차(貢茶)의 반열에 올랐다. ‘천축(天竺)’은 원래 고대 인도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여기서는 절강성 항주 서호의 서안(西岸)에 있는 절 이름이다. 천축사는 비로봉 남쪽의 ‘하천축사’와 계류봉 북쪽의 ‘중천축사’ 그리고 북고봉 기슭의 ‘상천축사’로 나뉜다.
▲ 향주차엽박물관.
전하는 말에 의하면 북송의 고승 변재(辯才)법사는 이곳으로 돌아와 은거하였고, 소동파 등의 당시의 문호들은 사자봉(獅子峰) 자락의 수성사(壽聖寺)를 즐겨 찾아와 차를 마시고 용정차를 찬미하는 시를 읊조리곤 하였다고 전한다. ‘십팔과어다원(十八?御茶園:황제에게만 바치기 위해 재배되는 18그루의 용정차나무 밭)’의 사자봉 산자락의 절벽바위에는 아직도 소동파가 친필로 쓴 ‘노용정(老龍井)’이란 글씨가 석각되어 있다. 용정차는 원대(元代)에 이르러 그 질량과 품질이 진일보 발전하게 되었고, 이때부터 ‘명전(明前)용정’이니 ‘우전(雨前)용정’이니 하는 등의 품질의 등급이 점점 분류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명대(明代)에 이르자 용정차(龍井茶)의 명성은 중국 각지로 점점 더 널리 퍼지게 되었다. 명나라 가정(嘉靖) 연간(1522-1566년)의《절강변지(浙江?志)》에 의하면 “항주 여러 곳에서 생산되는 모든 차는 그 품질이 용정(龍井)에서 생산되는 것에 미치지 못하며, 용정차는 곡우 전의 여린 싹[細芽] 중에서도 ‘일창일기(一槍一旗)’를 취해 만들어야만 제대로 된 진품용정차이다. 따라서 그 생산이 적어서 차가 귀할뿐더러 값이 비싸다”고 전한다.
▲ 노용정.
명대의 유명한 품다가(品茶家)이자 샘물 감별가인 전예형(田藝?)은 그의 저술《자천소품(煮泉小品)》에서 육우가《다경》<차지출(茶之出)>에서 항주의 차를 하등품으로 폄하한 대목을 지적하고 말하기를 “홍점(鴻漸:육우)은 항주의 천축과 영은사의 차를 하등품으로 차례를 매겼으나, 이는 미처 ‘용홍차(龍泓茶)’를 몰랐기 때문이다”라고 말하였다. 그가 말한 ‘용홍(龍泓)’은 항주의 명천(名泉)인 용정(龍井)을 가리키는 말로, 그 유명한 ‘용정차’의 이름도 바로 이 우물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이어서 용정차를 찬미하기를 “《군지(郡志)》에서는 보운, 향림, 백운 등의 차만을 칭찬하여 놓았으나, 사실 이 차들은 모두 용홍차(龍泓茶:즉, 용정차)의 맑은 향기와 뛰어난 맛에는 이르지 못한다.”라고 하였다. 《전당현지(錢塘縣志)》와《절강통지(浙江通志)?물산(物?)》에는 모두 “용정에서 나는 차는 순두부 향이 나며, 색이 맑고 맛이 달아 다른 산(山)에서 생산된 것과는 사뭇 다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명(明)나라 만력(萬曆)19년(1591년)에 황일정(黃一正)이 편찬한《사물감주(事物紺珠)?차류(茶流)》에는 중국 각지의 명차 97종을 열거해 놓았는데, 그 중에서 용정차가 2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때부터 용정차는 중국명차로서의 위상을 나날이 더해가며 널리 알려지게 된다.
▲ 18課 御茶樹(노용정 앞에 위치)
청대(淸代)에 이르자, 용정차는 마침내 여러 명차들 중에서도 첫손가락에 꼽히는 최고의 명차로 거듭나기 시작한다. 건륭(乾隆) 연간(1736-1795)에 건륭황제는 강남을 여섯 차례나 순행을 하였는데, 강남을 순행 중에 네 차례나 용정차구를 찾아서 찻잎을 감상하기도 하고 찻잎을 직접 따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품다(品茶)와 용정차에 관한 부(賦)와 시를 여러 수 지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우중재유용정(雨中再遊龍井)》(빗속에서 다시 용정을 유람하며)라는 시 중에서 “서호풍경미(西湖風景美), 용정명차가(龍井名茶佳)”(서호는 풍경이 아름답고, 용정에는 명차가 좋구나 )라는 구절은 차 애호가들이 즐겨 써서 걸어놓는 차련(茶聯)으로도 유명하다. 아울러, 건륭은 호공묘(胡公廟) 앞의 18그루의 차나무를 ‘어차(御茶)’로 봉하여 황제에게 헌상토록 하였다.
청나라 말기와 민국(民國) 시기로 내려오면서 용정차나무는 사자봉, 용정, 영은, 오운산, 호포, 매가두 등지로 널리 분포되었고, 이에 용정차는 사(獅),용(龍),운(雲),호(虎) 등의 여러 종류로 나누어지게 되었고, 중화인민공화국 이래로는 통칭하여 ‘서호용정(西湖龍井’은 ‘사봉용정(?峰?井)’ ‘매가오용정(梅家塢龍井)’ ‘서호용정(西湖龍井)’등 크게 세 품종으로 분류, 등급이 정해지게 된다.
(32) 중국의 차도(茶都) 항주의 용정차(龍井茶) ② 천혜의 조건을 갖춘 재배지에서 출품 2. 용정차 재배의 생태적 환경조건과 채다의 3대 특징 중국의 다도라고 일컫는 항주에서 생산되는 용정차는 일반적으로 ‘서호용정’ 또는 ‘서호용정차’로 불리어진다. 이는 그 생산지가 대부분 서호 주변을 따라 분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서호용정차’의 생산지가 대부분 집중되어있는 사봉산((獅峰山), 매가오(梅家塢), 옹가산(翁家山), 운서(雲棲), 호포(虎?), 영은(靈隱) 등지는 가는 곳마다 숲이 깊고 울창할 뿐더러 그 속으로 청죽(靑竹)이 여기저기서 얼굴을 내밀고 있음을 쉽게 볼 수가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모든 차밭들은 늘 운무가 감싸고 있으며 녹음이 짙게 덮여있다. 이곳은 자연적, 지리적, 환경적 어느 측면으로 보나 차 재배에 아주 적합한 생태적 환경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는, 그야말로 천혜의 조건을 갖춘 이상적인 차 재배지이다. 뿐만 아니라 멀게는 도시를 감싸고 흐르는 절강(浙江)과 가까이는 도시 안을 출렁이는 서호(西湖)가 미치는 자연적인 영향도 빼놓을 수 없는 타고난 자연조건 중의 하나일 것이다.
▲ 메가오(梅家塢) 입구.
이곳의 연평균 온도는 16℃정도이고 연평균 강우량은 1,500㎜정도로 기후와 강우량이 모두 차 재배에 아주 적합하다. 게다가 최상으로 치는 춘차(春茶)의 계절인 봄에는 늘 안개비로 덮여있고, 산골짜기에는 계곡물이 마르지 않고 흘러내린다. 토양은 대부분 모래와 진흙의 비율이 적절하게 혼합된 사양토(砂壤土)로서 우량품질의 용정차를 생산하기에는 그야말로 안성맞춤이다. 이곳 차나무의 품종은 싹 잎이 부드럽고 연하며, 작고 세밀할 뿐만 아니라 아미노산(amino acid)과 비타민 등 각종의 영양소를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다.
용정차는 그 명성만큼이나 차를 만드는 제다방법에 있어서 다른 차에 비해 그 특징이 두드러질 뿐만이 아니라, 찻잎을 따는 ‘채다(采茶 혹 採茶) 과정’에서부터 매우 까다로운 3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찻잎을 따는 시기가 일러야하고[早], 둘째는 여리고 부드러워야 하며[嫩], 셋째는 부지런해야 한다. 이상의 3가지 채다의 특징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겠다.
▲ 용정차 선엽(鮮葉).
첫째는 차를 따는 시기의 중요성을 말한다. 필자는 이를 천시(天時)의 중요성으로 재해석하고 싶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대저 차를 따는 시기는 각 지역의 기후에 따라 약간씩 달리하지만 거의 대동소이하다. 용정차는 예부터 일찍 따는 것을 최고로 친다고 했다. 항주 용정차구에서의 차를 따는 가장 이상적인 시기는 24절기 중 청명을 기점으로 하기 때문에 청명 전(前) 삼일 동안 따는 것을 최고의 상품으로 친다. 그래서 이곳 차농(茶農)들은 “청명 전 삼일 일찍 따는 것은 보배요, 청명 후 삼일 늦게 따면 풀이 된다”고 말한다.
명대 전예형(田藝?)의 《자천소품(煮泉小品)》<의차(宜茶)>편에도 “삶아서 다리는 황금 찻싹은 곡우(穀雨) 후의 것은 취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래서 용정차는 청명 전에 따서 만든 차를 최고로 치며, 이 시기에 만든 차를 통상 ‘명전(明前)’이라 한다. 곡우 전에 따서 만든 차도 품질이 그런대로 좋은 편이며 통칭 ‘우전(雨前)’이라 한다.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우리나라에서는 ‘우전’을 최고로 치는데, 이것은 중국과 한국의 차 재배환경에 있어 기후적, 지형적인 차이로 인해 채적 시기를 약간 달리할 뿐이지 별 다른 의미가 없다.
둘째는 찻싹을 채적할 때 따야 할 차싹의 선별기준을 의미한다. 즉, 여리고 부드러운 찻싹을 잘 선별하여 온전하게 따서 만든 용정차는 그 상품적 가치를 높게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저 용정차는 채적하는 찻잎의 형태에 따라 다시 연심(蓮心), 기창(旗槍), 작설(雀舌) 등의 3가지로 분류하여 상품적 가치를 판단할 수 있는데, 이 방법은 모든 차에 공식처럼 적용되는 방법이기도 하다. ㉠‘연심(蓮心)’은 봄에 차나무 맨 윗부분 끝에 뾰족하게 움터 오른 여리고 부드러운 첫싹으로 만든 것이다. 그야말로 용정차의 최상급이라 하겠다. ㉡‘기창(旗槍)’: 일아일엽(一芽一葉)의 형태로 즉, 차나무 맨 위의 끝부분에 있는 뾰족하게 움터 오른 찻싹과 바로 아래 달려있는 찻잎 하나로 만든 것으로 그 모양이 싹은 창(槍)처럼 뾰족하고 잎은 깃발(旗)같다 하여 ‘기창(旗槍)’ 또는 ‘일창일기(一槍一旗)’라고 한다. ㉢작설(雀舌)은 ‘일아이엽(一芽二葉)’의 형태 즉, 한 싹에 두 잎이 막 갈라져 나오는 것으로 ‘일창이기(一槍二旗)’라고도 하며, 그 잎의 형태가 아직 완전히 펴지지 않고 약간 말려 있는 것이 마치 참새 혓바닥 같다고 하여 ‘작설’이라 한다. 근거에 의하면 특급 용정차 1근(500g)을 만드는데 무려 7~8만개의 가늘고 여린 부드러운 차 싹[嫩芽]이 쓰여 진다고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특급 용정차를 만드는데 쓰이는 찻잎은 기본적으로 우선 온전한 형태의 ‘일아일엽’이며, 차 싹은 찻잎보다 길어야 한다. 또한 차 싹과 잎의 전체길이는 약1.5㎝이라야 한다.
셋째의 “부지런해야 한다.”는 말은 차농들의 육체적인 근면성을 뜻한다. 차를 채다하는 계절이 되면 녹색의 차밭이 펼쳐지는 차산(茶山) 위로 삼삼오오 짝을 지어 차를 따는 아가씨들을 거의 매일 볼 수가 있다. 그녀들은 모두 차광주리를 어깨에 메거나 또는 허리에 차고 차밭에 올라 마치 닭이 모이를 쪼아 먹듯 오랫동안 숙련된 두 손으로 재빨리 가늘고 여린 용정찻잎만을 따서 광주리에 담는다. 이렇듯 채다하는 계절이 되면 각자 조를 짜서 때에 맞춰 차산에 올라 찻잎을 따는 것은 이미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오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그들만의 관습이다. 이상은 다른 차밭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현상들이다.
그런데 문제는 용정차구의 찻잎을 따는 횟수가 다른 지역의 차밭에서 보다 훨씬 많다는 것이다. 때문에 용정차구의 차농들은 다른 지역의 차농들에 비해 몇 배 더 손길이 바빠질 수밖에 없고, 더 부지런해야만 한다. 일반적으로 춘차(春茶)는 채다 시기의 전반기에 매일 채다하거나 혹은 하루걸러 채다한다. 그러다가 중후기에 와서는 며칠씩 건너서 한번 씩 채다한다. 근거에 의하면 용정차구에서는 한 해의 전체를 통해 차를 만드는 계절 중에 30여 차례나 채다를 하게 되는데, 이는 정말 부지런하지 않고는 감당하기 어려운 횟수이다. 이상에서 살펴 본 ‘용정차의 채다(采茶) 3대 특징’을 필자는 개인적으로 녹차의 채다에 있어서 반드시 준수해야 할 <채다 3대 강령>이라고 정리해 보고 싶다.
3. 용정차의 종류와 등급 중국의 녹차를 대표하는 용정차는 그 명성만큼이나 역사도 깊고, 이에 얽힌 전설도 많을뿐더러 그 제다가 특이한 만큼 그 종류도 또한 복잡하고 다양하며 그 종류에 따라 붙여진 이름도 천태만상이다. 게다가 그 유명세만큼이나 진짜 같은 가짜도 무척이나 많다. 가짜 용정차 뿐만이 아니다. ‘용정차’란 이름에 나타난 ‘우물 정(井)’자에서 우리는 용정차가 우물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쉬이 짐작할 수 있다. 항주의 샘물 유적지들은 용정차의 유명세에 일조를 더하고 있다
▲ 용정다실의 용정(龍井).
그래서 용정차 산지 중의 하나로 유명한 옹가산(翁家山)에는 원래 없던 ‘노용정(老龍井)’이라는 가짜 우물까지 만들어 놓고, 택시기사들을 이용해서 호객행위를 하고 있다. 건륭의 친필이 석각되어 있는 노용정은 너무나 진품 같기에 이곳을 찾는 중국인들조차도 진짜인 줄 알고 기념촬영까지 하는 것은 물론 그 물로 손을 씻고 그 주변의 차장으로 들어가 차를 마시고 사간다. 필자도 이 용정이 원래의 ‘용정’이라는 택시 기사의 말에 깜빡 속아 정말로 새로운 유적지를 찾았다는 기쁨에 단숨에 달려가 사진도 찍고 차도 구입했다. 옹가산 자체가 원래 전통 용정차 생산지의 한곳이니 차야 속아 사지는 않았지만, ‘노용정’이란 말에 속아 그곳까지 따라가 가짜 용정을 촬영한 걸 생각하면 약간 분통이 치밀기도 했다. 하지만, 이 또한 용정차에 얽힌 새로운 전설의 탄생이니 나름대로 한번쯤 가 볼만한 가치는 있었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위안하였다.
▲ 옹가산(翁家山)의 가짜 노용정(老龍井).
용정차가 다른 녹차와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은 맛과 향에 앞서 우선 찻잎의 형태이다. 어느 차에서도 볼 수 없는 납작한 편형(扁形)이라는 것이다. 용정차가 처음 창제될 때부터 편형의 모습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언제부터 편형의 용정차가 시작되었는지 또 누가 만들기 시작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길이 없다. 각종 문헌에 의하면, 용정차 또한 여느 차와 마찬가지로 원래는 긴압(緊壓)된 단차(團茶)의 형태였으며, 마시는 방법 또한 당대의 팽다법(烹茶法)과 송대의 점다법(點茶法)의 단계로 발전하였다. 그러다 명말(明末)?청초(淸初), 대략 1644년쯤에 이르러 비로소 납작한 형태의 편형으로 변형되었다는 게 중국차학계의 잠정적인 정설이다. 이로 미루어 짐작컨대, 용정차의 ‘편형’의 역사는 대략 300년 내지 400년에 이를 것이라는 것이 중론(衆論)이다. 서호 용정차는 각산지의 다원의 토질과 미세한 기후의 차이, 그리고 각 차농들의 초제(炒制:볶아내는)하는 수준에 따라 각기 다른 품질의 차이와 특징을 보이며 아울러 그 등급이 매겨진다. 청나라 때부터 줄곧 차상들은 서호 용정차를 각산지에 따른 네 곳으로 나누어 각기 다른 명칭으로 구분하여 불렀다. 중국인들은 이를 약칭하여 ‘사개자호(四個字號)’라고 한다. 즉, “네 개의 글자로 부른다”는 뜻이며, 그 네 글자는 바로 ‘사(獅)?용(龍)?운(雲)?호(虎)’이다.
① ‘사(獅)’자호는 산지가 사자봉(獅子峰)을 중심으로 호공묘(胡公廟), 용정촌(龍井村), 기반산(棋盤山), 상천축(上天竺) 등을 포함한다. ② ‘용(龍)’자호의 산지는 옹가산(翁家山), 양매령(楊梅?), 만각롱(滿覺?), 백학봉(白鶴峰) 일대이며, ③ ‘운(雲)’자호는 운서(雲棲), 오운산(五雲山), 매가오(梅家塢), 랑당령서(琅??西) 등지이고, ④ ‘호(虎)’자호는 호포(虎?), 사안정(四眼井), 적산부(赤山埠, 삼태산(三台山) 등지를 산지로 한다. 이상의 용정차들은 모두 서호를 중심으로 둘러싸인 여러 산지(山地)에서 생산되므로 ‘본산용정(本山龍井)’이라 부르며 최상급의 용정차이다. 그 다음 등급으로는 서호 부근 평지에서 생산되는 용정차로서 이를 ‘호지용정(湖地龍井)’이라 한다. 맨 마지막 등급은 서호 인근 지방에서 생산되는 모든 용정차를 가리켜 ‘사향용정(四鄕龍井)’이라 한다. 그 후, 근현대로 접어들면서 차 산업이 번성함에 따라 서호의 정통 용정차 산지 외에도 절강성 여러 차산지에서 서호 용정차를 모방한 용정차가 대량으로 생산되기 시작하였는데, 현지인들은 이를 가리켜 속칭 ‘절강 용정차’라고 하여 최하급 또는 가짜 용정차로 취급한다.
1932년《중국실업지》의 통계조사자료에 의하면 전후(戰後) 절강성에서 생산된 차는 총 21,000 톤이고, 녹차가 차지하는 생산량은 총 18,500 톤이었으며, 사봉, 용정, 매가오 일대에서 생산된 정통 용정차는 적게는 25톤에서 많게는 60~65톤에 불과했다. 반대로 인근 지역에서 ‘용정차’로 사칭하여 생산된 가짜 용정차는 무려 3,750톤에 이르렀다.
▲ 용정차 건엽.
당시는 용정차의 등급을 매기는 통일된 표준안이 없었기 때문에 당시의 차농들은 찻잎의 발아(發芽)하는 시점을 기준으로 삼고 차를 따는 합당한 절기를 선택하여 네 단계로 등급을 분류하였다. ㉠첫 봄[頭春]에 따는 것은 ‘연심(蓮心)’이라 하며 청명에 따며, ㉡두 번째 봄[二春]에 따는 것은 ‘기창(旗槍)’이라하며 곡우에 딴다. ㉢세 번째 봄[三春]에 따는 것을 ‘작설(雀舌)’이라하고 입하(立夏)에 따며, ㉣마지막 늦은 봄[小春] 네 번째 따는 것을 ‘중아(重芽)’라고 하며 입하 한 달 뒤에 딴다. 어쨌든 차상들은 차시장에서 용정차를 사고 팔 때 반드시 ‘사(獅), 용(龍), 운(雲), 호(虎)’자호의 기준에 따라 용정차를 세밀히 판별하고 또 그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로 매겨지고 있다. 가격의 통일된 일정한 표준이 없이 상인들의 판단에 의해 가격이 좌우되던 용정차는 1949년에 이르러 급기야 국가의 관리를 받게 된다. 이로써 청대부터 줄곧 사용되어 오던 서호 용정차의 전통적인 ‘사개자호(四個字號)’ 분류법은 중국 정부의 관여에 의해 그 분류법이 다음과 같은 세 종류의 품목으로 그 분류가 축소 개정된다. 첫째가 ‘사봉용정(獅峰龍井)’으로 원래의 ‘사(獅)’자호와 ‘용(龍)’자호에 해당된다. 둘째는 ‘매오용정(梅塢龍井)’으로 이에 해당하는 서호용정 대부분은 원래의 ‘운(雲)’자호에 해당한다. 세 번째는 앞에서 거론한 두 종류(사봉과 매오)를 제외한 그 나머지를 모두 통칭하여 ‘서호용정(西湖龍井)’이라 한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다시 표로 그려보면 다음과 같다. [1949년 이후 중화인민공화국에 의해 제정된 서호 용정차의 등급 분류 기준]
그러나 1984년에 국가가 차엽의 판매 관리계획 정책을 취소하고 차업에 대해 민간 자유 경영으로 개방하는 정책으로 전환함에 따라 위의 표준분류도 서서히 도태되어 버렸다. 그러다가 1995년에 중국정부는 다시 새로운 ‘서호 용정차 구매 통일질량 표준안’을 제정하였다. 새로 제정된 표준안에 의한 최고 등급별 품질의 특징을 보면, 특급은 찻잎의 외형이 편형으로 곧아야하며, 색택은 연녹색에 윤기를 띤다. 그 향기는 신선하고 부드러우며 맑고 청아하다. 그 맛은 신선하고 상쾌하며 달고도 순하다. 다 우려 마시고 난 엽저(葉底)는 차의 싹들이 마치 한 떨기 꽃송이를 따놓은 것 같아야 한다. 만약에 엽저가 부서져 있거나 흩어져 보이면 일단 상급으로 칠 수 없다. 일등급이나 이등급의 특징도 대동소이하나 특급과는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일단 외형이 편형이며, 색택은 취록(翠綠)색을 띠며 향기는 맑고 향긋하다. 맛은 신선하고 깔끔하며 엽저는 가는 차 싹이 선명함은 물론 온전하게 나타나야 한다.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이후에도 줄곧 지금까지 서호 용정차는 일반적으로 이상의 전통적 분류법을 기준으로 삼거나 혹은 정부의 표준안에 의해 차의 등급을 매기긴 하나, 차를 농사짓거나 구매하고 판매하는 차농과 차상들 제각각의 판단기준에 따라 그 등급의 기준 또한 각 지역이나 또는 각 차장들마다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게다가 여기에 얄팍한 상술까지 더해지면 그 기준은 더욱 더 애매모호해지기도 한다. 다른 차에 비해 용정차는 특히 진위의 구별이 어렵기도 하거니와, 진정한 용정차의 생산량도 아주 제한적이라서 진짜를 구한다 하더라도 그 가격이 매우 고가(高價)이다. 따라서 차를 구매하는 사람들 각자가 나름대로의 판별 기준을 갖고 적당한 가격의 용정차를 구매해서 마시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는 듯하다.
박영환/중국사천대학 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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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음의 정원 원문보기 글쓴이: 마음의 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