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울렸다. 산사(山寺)의 뜨락에는 일제히 가사(袈裟)빛 놀이 깔렸다. 길게 끌며 파문지는 종소리의 여운에 따라 엷은 무늬를 이루며 놀이 흔들렸다. 법당 위 산죽(山竹)숲으로부터 새 한 마리가 날아올랐다. 그 새는 법당 지붕 위를 몇 바퀴 빙빙 돌더니 빠르게 지붕을 넘어 법당 앞의 탄식대(歎息臺) 위에 앉았다.
종채를 놓은 동승(童僧)이 불단(佛壇) 앞으로 다가가 목어(木魚)를 들었다. 다르르륵, 다르르륵, 두 번 채를 고르고 난 동승은 천천히 목어를 내렸다. 시나브로 가늘어 지는 목어 소리에 따라 불단 앞 정중앙 어간(御間)에 서 있는 노승(老僧)과 노승 앞에 저만큼 떨어져서 있는 여인의 허리가 깊숙이 숙여졌다. 다시 한 번 채를 고른 다음 동승은 길게 청을 뽑았다.
지이시이이임귀며엉레(至心歸命禮) 삼계에도사사생자부우(三界導師四生慈夫) 시아본사아아서어어가모니이불(是我本師釋迦牟尼佛)
제 머리통만한 목어를 두드리며 뽑아내는 동승의 염불은 제법 구성지게 가락이 잡히고 목소리 또한 여간 낭랑한 게 아니어서 절밥을 오래 먹은 올께끼로 보였다.
천천히 목어를 내란 동승이 신중단(神衆壇)을 향해 몸을 돌렸다. 부릅뜬 고리눈으로 부월(斧鉞)과 모검(矛劍)을 치켜들고 있는 화엄신장(華嚴神將)을 향하여 동승과 여인의 허리가 깊숙이 숙여졌는데, 노승은 부동의 자세였다.
……관자재보살 행 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 오온개공도 일체고액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증시공 공즉시색(觀自在菩薩 行 深般若波羅蜜多時 照見 五蘊皆空度 一體苦厄 舍利子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일정한 간격을 두고 절도 있게 두드리는 동승의 목어 소리에 맞춰 반야심경(般若心經)이 독송(讀誦)되었다. 분문(糞門)으로부터 밀어올리는 듯 우렁차고 장중한 노승의 염불 소리에 용마루가 쩡쩡 울렸다. 입을 벌릴 때마다 관골에 굴은 힘줄이 돋는 노승의 등뼈는 꼿꼿했고 큰 키에 체격이 장대해서 망팔(望八)의 노비구(老比丘)라기보다는 천군(千軍)을 질타하는 장수의 풍모였다. 청아하고 구성져서 차라리 안스러운 느낌이 도는 동승의 염불(念佛) 소리는 노승의 노도 같은 염불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고 여인은 아직 이백 육십자 반양심경을 못외우는 듯 가만히 합장(合掌)만 하고 있었다.
노승이 불단 위의 본존(本尊)을 향해 반배(半拜)한 다음 어간문을 나갔다. 동승은 본존 앞의 무인등(無人燈)에 불을 붙이고 여인은 각단(各壇)에 켜져 있는 촛불을 껐다.
헌식대 위에 앉아 있던 새가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그 새는 허공으로 힘차게 솟구쳐 올랐다가는 떨어지고 다시 솟구쳐 올랐다가는 떨어지기를 되풀이하며 토막토막 끊어지는 단음(單音)을 토했는데, 영락없는 목어소리였다. 그 소리는 딱 딱 딱 딱… 일정한 간격을 두고 천천히 이어지다 딱 딱 딱 딱…… 조금씩 조금씩 빨라지기 시작해서 딱딱딱딱…… 이윽고 숨 넘어 가는 소리로 빠르게 내려지고 있었다.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신음처럼 중얼거리며 허공으로 치켜올렸던 고새를 내리는 노승의 눈에 저만큼 마당을 가로질러 다가오고 있는 청년이 보였다. 그 청년은 빠른 걸음으로 헌식대 옆의 석계(石階)를 올라왔다. 협문(夾門)으로 법당을 나오던 여인의 눈이 크게 벌어지면서 손에 들고 있던 염주(念珠)가 가늘게 흔들렸다. 청년이 여인의 앞으로 다가갔다. 여인은 문득 노승 쪽으로 고개를 비틀며 뭔가를 호소하는 표정이 되었다. 노승이 늙은이답지 않게 정한(精悍) 눈빛으로 청년을 바라보았다.
“시주(施主)는 뉘시오?”
청년이 눈을 가늘게 해가지고 노승의 시선을 받았다. 그는 양쪽 허리가 타진 신사복에 넥타이를 매고 끝이 뾰족한 구주를 신고 있었는데 세련된 대처의 멋쟁이로 보였다. 청년은 잠깐 여인에게 일별을 던진 다음,
“누님 되십니다.”
하고 말했다. 노승이 고개를 끄덕였다. 청년은 희고 길쭉한 손가락으로 귀를 덮은 장발을 쓸어올리며 여인에게로 한 발 더 다가섰다.
“누님, 누님을 찾느라고 한 달을 헤맸어요. 소식 한 장 없이 그럴 수 있습니까? 아이들 생각도 좀 하셔야죠.”
노승이 여인을 바라보았다.
“젊은 시주가 보사(保寺)님의 아우 되시오?”
“……네.”
여인이 고개를 숙이며 조그맣게 대답했다. 노승이 고개를 끄덕였다.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무단히 출분(出奔)을 하셨다 그 말이요. 산승(山僧)이 눈이 어두웠소이다.”
여인의 고개가 더욱 밑으로 숙여지며 목덜미가 붉게 물들었는데 모두의 얼굴이 놀에 비껴 붉었으므로 특별히 표가 나지는 않았다. 노승의 오른손 엄지에 밀려 느릿느릿 뒤로 제껴지고 있던 단주(短珠)가 갑자기 딱 소리와 함께 멎었다.
“이놈, 능선(能善)아!”
“네엣.”
여인의 뒤에 서서 청년의 얼굴이며 옷차림을 바라보노라 정신을 놓고 있던 동승이 화들짝 놀라며 노승 앞으로 달려갔다.
“고이헌 놈이로고.”
엄하게 꾸짖는 목소리와는 달리 노승의 눈가에는 파뿌리 같은 잔주름이 모아지고 있었다.
“네… 스님.”
노승은 다시 느릿느릿 단주를 굴렸다.
“객이 오셨을 땐 어찌해야 하느냐?”
동승의 두 손이 가슴께로 올려지면서 손바닥이 합쳐졌다.
“네, 우선 공양(供養)을 올리고….”
“그리고,”
“처소로 모셔야 하옵니다.”
“연인즉슨,”
동승이 청년에게로 뛰어갔다. 여안은 여전히 고새를 속인 채였는데 청년은 속삭이듯 낮은 목소리로 뭔가를 열심히 말하고 있었다.
“처사(處士)님, 저녁 공양 드셔야지요?”
청년이 손을 내저었다.
“아 상관없다. 먹고 왔어.”
동승이 뒤를 돌아보니 노승은 어느새 염화실(拈花室)로 가는 석계를 오르고 있었다. 걸어가면서 노승이 말했다.
“손님께 다(茶) 공양을 올리도록 해라.”
동승은 멀어져가는 노승의 등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네.”
객실(客室) 쪽으로 겅중겅중 뛰어가는 동승의 옆구리에서 조갑지만한 쪽빛 염낭이 간들간들 흔들렸다.
“늙은 중놈 눈빛 한번 고약하군.”
동승의 뒤를 따라가며 청년이 중얼거렸다.
“미스터 박!”
여인이 걸음을 멈추면서 낮게 소리쳤다. 청년은 빙글거리면서 여인의 팔을 잡았다.
“오여사두 중 다 됐수.”
객실의 문을 열러 주고 돌아서는 동승의 눈과 여인의 눈이 잠깐 마주쳤다. 여인이 무슨 말을 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였는데 동승은 고개를 외로 꼬면서 팽그르르 한 바퀴 몸을 돌리더니 공양간 쪽으로 빠르게 뛰어갔다.
동승은 ‘삼계유심(三界唯心)’이라고 쓰인 예서체(隸書體) 현판이 걸려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 방에는 몇점의 여자 옷가지와 아이용 승복이 벽에 걸려있고 뒷창문 쪽으로는 낡고 때절은 조그만 서안(書案)이 놓여 있었다. 서안 위에는 옹혼한 필체의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필사본(筆寫本)이 산죽 뿌리로 만든 서산대가 끼워진 채로 펼쳐져 있었다.
동승은 잠깐 벽에 걸려 있는 눈부시게 흰 원피스를 바라보다가 협실(夾室)의 문을 열었다. 유실(幽室)과도 같이 이상한 향내음과 침중한 분위기가 감도는 그 방에는 주석(朱錫) 촛대며 향로(香爐), 다관(茶罐), 다기(茶器), 옻칠이 벗겨져 희뜩거리는 목발우(木鉢盂), 크고 작은 여러 개의 항아리, 그리고 갖가지 기명(器皿)이며 제구(祭具)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사바하.”
동승은 입술을 오물거려 무슨 진언(眞言) 같은 것을 외면서 얼른 다관과 다기를 목예반 챙겨들고 작설(雀舌) 한줌을 다기에 담은 다음 그 방을 나왔다.
수각(水閣)은 공양간 뒤란에 있었다. 물에 비친 동승의 갸름한 얼굴은 투명하게 말고 준수해서 언뜻 미모의 계집아이로 보일 만큼 어여뻤다. 수각 앞에 쪼그리고 앉아 물 속의 제 얼굴을 들여다보던 동승은 문득 입술을 홈통처럼 오므리더니 훅 하고 바람을 내뿜었다. 어여쁜 얼굴이 가늘게 경련하면서 이내 보기 흉하게 일그러졌다. 동승은 손으로 물을 휘저어 얼굴을 지웠다. 가까운 곳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조그만 산새 한 마리가 수각에 물을 떨어뜨려 주는 대나무 홈통 위에 앉아 물을 찍어 먹고 있었다. 동승은 홈통 밑에 다관을 받쳤다. 산새가 포르르 날아오르더니 저만큼 떨어진 돌담 위에 앉아 이쪽을 바라보았다. 동승은 다관의 절반쯤 물을 받고 다기를 깨끗이 씻어가지고 공양간으로 들어갔다.
서말들이 흑철솥에서는 뽀얀 김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동승은 예반을 부뚜막에 내려놓고 저고리의 고름을 자시 맨 다음 합장을 했다. 벽에는 연기에 그을리고 빛이 바래어서 주사(朱砂)의 흔적이 얼마 남지 않은 조왕대신(竈王大神) 화상이 갈려있었다. 동승은 거기에 대고 허리를 굽힌 다음 부지깽이 들고 아궁이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아궁이의 재를 헤치자 빨간 숯불이 나왔다. 동승은 아궁이 앞으로 숯불을 끌어낸 다음 작설을 넣은 다관을 올려 놓았다.
“부초심지인은 수원이악우하고 친근현선하야 수오계십계(夫初心之人 誰遠離惡友 親近賢善 遂五戒十戒)…….”
부지깽이로 장단을 맞추면서 원효(元曉) 스님의 초심(初心)을 염불식으로 중얼거리던 동승은 갑자기 부지깽이를 집어던졌다. 그리고 두 무릎을 오므려 가슴에 붙이더니 두 손으로 무릎을 끌어안고 무릎 위에 턱을 올려놓았다. 물끄러미 숯불을 바라보는 동승의 눈에 뿌연 안개가 서렸다.
“어인 수선인고?”
염화실에서 면벽좌선(面壁坐禪) 중이던 노승이 결가부좌(結跏趺坐)를 튼 채로 고개만 돌렸다.
“저…….”
아이는 입술을 비쭉이며 왼손을 내밀었다. 검지손가락을 칭칭 동여맨 잿빛 헝겊 위로 새빨간 선혈이 임리(淋漓)하였다. 노승이 가부좌를 풀더니 아이의 앞으로 다가와 쭈그리고 앉았다.
“목어도 십 년을 때려야 제 소리가 나는 법, 일호차착(一毫差着)이 천지현격(天地懸隔)이라 일렀거늘… 하찮은 낫질에도 도(道)가 있다 안하던고.”
“그게 아니어요.”
“아니면.”
아이는 아랫입술을 꼭 깨물었다.
“이제 풀베기 안하겠어요.”
노승이 깊은 눈길로 아이를 바라보았다.
“일일부작(一日不作)이면 일일불식(一日不食)이어늘, 일하지 않고 먹겠다 하느뇨?”
아이는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손가락이 아파요. 풀들은…… 얼마나 아프겠어요?”
노승의 흰 눈썹이 꿈틀하더니 눈이 크게 벌어졌다.
“호오, 선근(善根)이로다.”
아이가 눈을 깜빡였다.
“스님, 풀베기 안해도 되어요?”
노승이 무릎을 치며 벌떡 일어났다.
“법기(法器)로다. 노랍(老納)이 드디어 사자새끼를 얻었구나.”
노승은 아이를 데리고 염화실 옆에 붙은 협실로 들어갔다.
“능선아.”
“네.”
“보고 싶은 사람이 있으렸다.”
“네.”
아이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노승은 뚫어져라 아이의 눈을 들어다보았다.
“시재(時在)에 제일로 그리운 사람이 누구인고?”
아이의 입술이 비틀리며 초롱초롱 빛나던 눈에 물기가 돌았다.
“……옴마.”
노승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하리라.”
노승은 벌떡 일어나 방을 나갔다. 잠시 후 노승은 큼지막한 목자배기를 들고 오더니 목침 한 개 없이 소조한 백방(白房) 한구석에 놓았다.
“기다리거라.”
아이는 입술을 빨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방을 나간 노승은 협문을 잠갔다. 그리고 협실의 앞문을 닫아 걸고 철장을 질렀다.
“스님, 스님….”
방안에 갇힌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능선아!”
노승이 소리쳐 아이를 불렀다.
“이잉.”
“잘 보아라.”
“……?”
노승은 염낭 속에서 소침(小針) 한 개를 꺼내더니 문에 대고 찔렀다.
“보이느뇨?”
아이는 문에 붙어있었으므로 창호지를 뚫고 들어오는 바늘을 보았다.
“이잉.”
노승은 바늘을 뽑았다.
“그 구멍에 눈을 대어라.”
아니는 바늘구멍에 한 쪽 눈을 붙였다. 노승이 소리쳤다.
“보이느뇨?”
“안보여잉. 이무 것도 안보여잉.”
“그러렸다. 허나, 보일 것이다.”
“뭐가잉?”
“능선아.”
“이잉.”
“제일로 그리운 사람이 누구라 하였던고?”
아이는 주먹으로 눈께를 문질렀다.
“옴마.”
노승이 고개를 뜨덕였다.
“어미라 하였겄다.”
“이잉.”
“어미가 올 것이야.”
아이의 눈이 반짝 빛났다.
“이잉?”
“어미는 소를 타고 올 것이야.”
“소?”
“그러하니라. 누런 황소이니라. 어미는 그 누런 황소를 타고 올 것인즉.”
노승은 잠깐 말을 끊었다. 꼴깍 하고 아이의 목구멍으로 침 넘어가는 소리가 노승의 귀에 들렸다. 노승이 말을 이었다.
“잡아야 하느니라. 어미를 태우고 오는 소가 보이거든 그 소의 뿔을 꽉 잡아야 하느니라. 헌즉, 어미를 만날 것이야.”
“정말?”
“알겠느뇨. 그 구멍으로 내다보고 있노라면 어미를 태운 황소가 오리니, 그 황소의 뿔을 꽉 잡아야 하느니라.”
아니는 그날부터 노승이 협문을 따고 디밀어 주는 밥을 받아먹고 자배기에 대소변을 보는 시간 이외에는 바늘구멍에 눈을 붙이고 밖을 내다보았다. 엄마가 보고 싶다는 지극히 사무치게 그리운 마음으로 바늘구멍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밤을 보았다. 깜깜한 어둠을 보았을 뿐이었다. 밤이 오면 무서워서 아이는 두 주먹을 옹송그려 쥐고 협문을 두드렸는데 노승은 응구대첩이 없었다. 법을 디밀어 주고 자배기의 오물을 버리느라 문을 여닫을 때도 쏘는 듯 형형한 눈으로 쏘아보기만 할 뿐, 묵언(黙言)으로 일관했다. 지쳐 쓰러져 잠이 들었다가 눈을 뜨면 아이는 다시 바늘구멍에 눈을 붙이고 뚫어져라 밖을 내다보았는데, 어둠이었다. 해가 지고 놀이 죽고 그리하여 우우 우우 아우성치며 달려가는 바람 소리가 먼 골짜기에서 들려오는 산짐승들의 울부짖음에 흠칠흠칠 몸을 떨다가 아이는 지쳐 쓰러져 또 잠이 드는 것이었다. 잠이 들면 꿈을 꿨고 꿈을 꾸면 엄마를 만났다. 엄마의 얼굴에서는 독한 분내음이 났고 엄마의 젖가슴에서는 우르르우르르 뜀박질하는 비릿한 피내음이 났다.
“아가.”
“응.”
“엄마가… 엄마가 말야.”
“옴마, 왜 그래?”
여인을 치어다보는 아이의 눈망울은 이슬방울처럼 영롱하다.
“아무 것도 아냐.”
절레절레 고개를 내젓는 여인의 속눈썹이 파르르파르르 흔들린다.
“아가.”
“응.”
“엄마가….”
“응.”
“까까 사올께.”
“가까, 까까 조아.”
왈칵 아이를 끌어안은 여인의 눈이 붉게 충혈된다. 아이는 여인의 저고리섶을 헤치며 얼굴을 묻는다.
“옴마, 조이여.”
아이의 목소리가 점점 가늘어지더니 이네 고른 숨을 내쉰다. 여인은 아이를 자리에 눕히고 궁둥이를 몇 번 다독이고 이마에 입을 맞춘 다음 살그머니 일어나 문을 민다.
“차처(此處)는 노랍의 독살이외다. 대가람(大伽藍)으로 가시어 선지식(善知識)을 찾으시오.”
노승은 느릿느릿 단주를 굴렸다.
“하오나 스님….”
여인은 애소하는 눈빛으로 노승을 올려다 본다. 딱 소리와 함께 단주가 멎었다.
“그여이 입재(入齋)를 하시겠다. 그 말이오.”
“방황하는 영혼을 가엾이 여기소서.”
“산승은 영가(靈駕)를 천도(遷度)할 법력(法力)이 없소이다.”
“큰 스님의 선성(先聲)은 일찍부터….”
“허허, 진세(塵世)의 허명(虛名)은 삼악도(三惡道)의 노수(路需)로나 쓰일 일….”
여인이 똑바로 노승을 올려다보았다.
“진세의 중생들을 가엾게 여기어 슬픔을 나누는 게 사문(沙門)의 도리가 아니온지?”
노승의 눈썹이 미미하게 경련했다. 노승이 껄껄 웃었다.
“고라니 새끼가 어찌 사자의 흉내를 내겼소이까. 허나, 참으로 어려운 것은 성불(成佛)이 아니라 진세에 묻혀 저자의 중생들과 우비희락(憂悲喜樂)을 함께 나누는 일일 것이오. 산승이 이를 모를 모른 바 아니나 사람에겐 제각기의 그릇이 있는 법, 이를 모르고 어찌 동타지옥(同墮地獄)의 혀를 놀리리까. 일지기 산승은 작심한 바 있소이다. 삼춘(三春)에 노래한ㄴ 앵무가 되기보다 천고(千古)에 말이 없는 바위가 되겠노라고.”
노승은 잠시 말을 멈추더니 여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여인의 눈에는 그렁그렁한 눈물이 맺혀 있었다.
노승이 한숨을 내쉬었다.
“허나, 단월(檀越)의 청이 하 곡진하시니 산승은 또 망축(亡祝)의 구업(口業)을 짓나 보외다.”
여인의 허리가 깊숙이 숙여졌다.
“큰스님의 자비(慈悲), 잊지 않겠습니다.”
노승은 다시 천천히 단주를 굴리기 시작했다. 무슨 말인가를 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이던 여인은
“그럼 제수(祭需)장을,”
하더니 말을 잇지 못한 채 뛰듯이 산을 내려갔다.
엄마 생각이 날 때마다 아이는 법당 뒤로 달려갔다. 거기에는 나이를 알 수 없게 늙은 보리수 한 그루가 서 있었는데 아이는 그 나무 아래서 몰래몰래 우는 것이었다.
“능선아아---.”
저를 찾는 노승의 목소리가 들려오면 아이는 얼른 눈물을 닦고, 저고릿 고름으로 꼭꼭 찍어 눈물을 닦고, 그리고 웃으면서 달려갔다. 그러나 노승은 아이가 울었다는 것을 귀신처럼 알았다.
“이노옴, 또 망상(妄想)을 피웠구나.”
아이의 고개가 밑으로 떨어진다.
“어미가 보고 싶으면 관세음보살을 부르라 일렀거늘.”
“관셈보살을 부르면 정말 옴마를 만날 수 있어요?”
“허어, 미욱한 중생이로고. 일념(一念)으로 관세음보살을 부른즉 삼재(三災)가 불입(不入)하고 팔난(八難)이 능멸(能滅)이며, 삼십이응신(三十二應身)을 안나투시는 곳이 없고 천수(千手)로 어루만지고 천안(天眼)으로 살펴보실 것이어늘, 항차 인간의 어미일까. 관세음보살.”
노승은 뜻 모를 소리를 중얼거리며 아이의 등을 법당 안으로 미는 것이었다.
법당 안은 무섭다. 개금(改金)을 한 지 오래되어 꺼멓게 금칠이 벗겨진 불상도 무섭고 울긋불긋한 탱화(幀畵)도 무섭고 개분(改粉)을 안해 거무죽죽한 십육나한(十六羅漢)의 일그러진 얼굴이 무섭고 불단(佛壇) 위에 배설된 향로며 다기, 촛대, 그리고 바람이 불 때마다 미친 듯이 펄럭이는 탁자 밑의 붉은 휘장이 무섭고 지장보살이며 관세음보살의 차라리 슬픈 듯 아름다운 얼굴도 무섭다. 아이는 이를 옹송그려 물고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마룻바닥에 엎드린다. 우수수우수수 흙덩이가 떨어지고 깨어지는 소리를 내면서 여닫히는 문짝, 저려오는 무릎을 꼼지락거릴 때마다 삐걱이는 마룻장, 울부짓는 산죽숲, 객길 뒤 개오줌나무 숲속에서 들려오는 낮부엉의 울음 소리…. 무서워서 무섭고 또 무서워서 아이는 입을 오물거린다.
“관셈보살, 관셈보살, 관셈보살….”
그러나 아무리 관세음보살을 수천 수만 번을 불러도 엄마는 나타나지 않고 사르르사르르 눈이 감긴다. 아이는 힘주어 눈꺼풀을 밀어올리며 다시 관세음보살을 부른다. 그렇게 자꾸 가늘어지는 목소리로 관세음보살을 부르던 아이는 고개를 점점 밑으로 숙여지기 시작해서 이윽고 모잽이로 쓰러져 새우처럼 허리를 꼬부리고 사타구니 사이에 두 손을 찌른 채 참이 든다.
“이놈, 능선아!”
벽력같은 노승의 고함소리에 놀라 아니는 눈을 떴다. 잘 익은 탱자알처럼 노란 햇살이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아이는 무릎걸음으로 다가가 바늘구멍에 눈을 붙였다. …… 밤이 가고 아침이 오고 또 밤이 가고 아침이 왔다. …… 마침내 아이의 눈에 외계(外界)의 사상(事象)이 조금씩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어둠이 보이고 안개가 보이고 구름이 보이고 놀이 보이고 햇빛이 보였다. 햇빛을 베이며 지나가는 바람이 보였다. 바늘구멍에 눈을 붙인 채 미동(微動)도 하지 않는 아이의 몸뚱이는 엷은 안개에 휩싸여 있었다. 밥을 넣어 주려고 협문을 열던 노승이 심우삼매(尋牛三昧)에 빠져 있는 아이를 발견하고 얼른 문을 닫았다. ……마침내 아이의 눈에 사물의 구체적인 모습이 조금씩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넓은 절 마당이 한눈에 들어왔다. 마당의 흙이 보였다. 돌멩이가 보였다. 멋대로 자라고 있는 잡초가 보였다. 꼬물거리며 기어 다니는 개미가 보였다. 수많은 개미들이 일자로 긴 행렬을 지어 어디론가 끝없이 기어가고 있었다. 개미의 행렬을 따라가던 아이의 눈이 법당 앞의 헌식대(獻食臺)에 머물렀다. 개미들은 필사적으로 헌식대 위로 기어오르고 있었다. 기어오르다가 떨어지고 또다시 기어오르다가는 떨어지기를 되풀이하면서 개미들은 행렬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헌식대 위의 밥찌꺼기가 보였다. 밥찌꺼기 사이에 있는 검정콩 한 알이 보였다. 콩알은 조금씩 커지기 시작해서 이윽고 목어만 해졌는데, 새였다. 참나무 장작불처럼 빨갛게 타오르는 놈이 소낙비처럼 퍼부어 내리고 있었다. 그 새는 타는 놀을 받아 황금빛으로 빛나는 나래를 풍선처럼 부풀어 올리더니 힘차게 깃을 치며 허공을 향해 솟구쳐 올랐다. 토막토막 끊어지는 단음이 수은 방울처럼 헌식대 위를 굴렀다. 아이의 정수리에서는 뜨거운 김이 분수처럼 솟아오르고 있었다. 그때 장삼 자락으로 땅을 쓸며 마당을 가로질러 오고 있는 오승이 보였다.
“스님!”
아이는 소리쳐 노승을 불렀다.
“잡았느뇨?”
구르듯 달려오며 노승이 소리쳤다. 아이가 맞받아 소리쳤다.
“보여요!”
“뭐가 보이는고?”
“새가 보여요. 날아가는 새를 보았어요.”
노승이 발을 굴렀다.
“그것뿐인고?”
아이가 다시 소리쳤다.
“스님이, 스님이 보여요!”
노승은 주먹을 들어 러공을 후려쳤다.
“이놈아! 소 타고 오는 어미를 보라 하였지 날아가는 즘생을 보고 이 늙은 중놈을 보라 하였더냐?”
땅이 꺼지게 한숨을 쉬며 염화실로 들어가는 노승의 발걸음은 그러나 가벼웠다. 노승은 서둘러 가사와 장삼을 벗어 벽에 건 다음 공양간으로 달려갔다.
노승이 쑤어다 준 잣죽을 먹고 나서 아이는 다시 바늘구멍에 눈을 붙였다. 햇빛을 베이며 지나가는 바람이 보이고 마당의 흙이 보이고 끝없이 이어져 헌식대를 기어오르는 개미떼가 보이고 밥찌꺼기가 보이고 검정콩알이 보이고 그리고 아아 황금빛 나래를 부풀리며 힘차게 솟아오르는 새가 보이고 그 시간마다 어김없이 마당을 가로질러 오고 있는 노승이 보였는데, 그것으로 그만이었다. 결코 소는 보이지 않았다. 소를 타고 오는 엄마는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도 않는 소의 뿔을 잡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심심하고 배가 고프고 졸음이 왔다. 아이는 주먹으로 협문을 두드리며 소리쳐 노승을 불렀다. 묵묵부답(黙黙不答)이었다. ……마침내 바늘구멍에 눈을 붙이고 있던 아이의 몸이 뒤로 넘어져 버렸다.
“사자새끼인 줄 알았더니 고라니새끼였고녀.”
노승이 장탄식(長歎息)을 하며 철장을 해제했다. 그리고 산문(山門) 밖으로 아이의 몸이 뒤로 넘어져 버렸다.
“가거라. 진세의 저자에는 어미가 있으리니.”
아이는 기쁘고 슬픈 마음이 반반인 채로 산문을 벗어났다. 사행(蛇行)으로 길게 꼬리를 감추고 있는 산길을 따라 밑으로 내려가던 아이는 이내 밤을 맞았다. 우르릉 우르릉 산이 울었다. 풀이 울고 벌레가 울고 나무가 울고 새가 울고 짐승이 울고 바람이 울었다. 밤이면 깨어나는 땅 위의 모든 것들이 일제히 머리 들고 울부짖었다. 울부짖으며 아이의 몸뚱이를 물어뜯었다. 소리쳐 엄마를 부르는 아이의 눈에 멀리 산꼭대기에서 눈물처럼 빛나고 있는 장명등(長明燈)의 불빛이 보였다. 아이는 눈물을 철철 흘리며 소리쳐 노승을 부르며 산길을 뛰어올라갔다. 아이는 산문에 몸을 숨기고 염화실 쪽을 훔쳐보았다. 창문에는 벽을 향해 결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노승의 육중한 그림자가 비치고 있었다. 아이는 발뒤꿈치를 치켜들고 살그머니 공양간으로 숨어들었다.
“고라니새끼도 법기는 법기지. 서까래감은 되리라.”
솥전을 껴안고 잠들어 있는 아이를 안아 올리며 노승이 중얼거렸다.
아이는 숲 속으로 숲 속으로 들어간다. 숲은 깊고, 깊은 숲 속에서는 만수향(萬壽香) 타는 냄새가 난다. 아이는 돌멩이를 집어 숲 속에 던진다. 푸드득 깃을 치며 산새가 날아오른다. 요령(搖鈴) 불알처럼 흔들리던 나뭇잎이 멎으면서 숲은 다시 고요 속에 잠긴다. 아무 것도 없다. 보이는 것은 나무, 그리고 또 나무…. 심심하다. 날아다니는 잠자리라도 잡아먹고 싶을 만큼 심심하고 또 심심해서 아이는 돌멩이를 던진다. 하지만 나무들은 저희들끼리만 속살거릴 뿐 아무런 이야기도 들려주지 않는다. 우우 우우 바람이 분다. 진저리치며 갈대가 흔들린다. 아이는 팔베개를 하고 갈밭에 눕는다. 파랗다. 너무 파래서 손가락으로 하늘을 푹 찌르면 파랑 물감이 묻어날 것 같다. 현기증이 나서 아이는 눈을 감는다. 엄마 생각이 난다. 그리고 또 배가 고프다. 아이는 참으로 알 수가 없다. 어째서 엄마 생각만 하면 배가 고파지고 배가 고파지면 또 어김없이 엄마 생각이 나는 것인지. 살래살래 고개를 흔드는 아이의 뺨 위로 또르르 눈물 한 방울이 구른다.
“이 속에 불법(佛法)이 다 들어 있느니라. 이것만 익히고 쓰면 삼악도(三惡道)에는 떨어지지 않을 것이며, 선근(善根)이 익어지면 어느 땐가 타파칠통(打破漆桶). 마음 달[月]을 보게 되리니…….”
솥전을 껴안고 잠이 든 아이를 안고 염화실로 들어간 노승이 아이가 잠이 깨기를 기다려 때절은 서책 한 권을 던져주었다. 필사본으로 된 초발심자경문이었다. 노승이 혼잣말로 탄식하였다.
‘가탄(可歎), 가탄이로다. 내 너의 선근을 어여삐 여겨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의 보주(寶珠)를 주려 하였더니, 너의 선근이 미치지 못하는고녀. 이 어찌 가탄치 않으리오. 허나 여래지에 이르는 길은 수천 수만 갈래가 있을 것인즉 스스로 근기(根機)에 따라 찾아볼 일이로다. ……아, 참으로 헛되고 헛된 것이 언어(言語)와 문자(文字)일 것이니, 일찌기 석로(釋老)가 마업(魔嶪)이라 일렀음이여.’
아이는 한 달만에 그 책을 떼었고, 구술(口述)해 주는 천수경(千手經)은 사흘에 익혔는데 노승은 더 이상 가르쳐 주지 않았다. 아이가 다른 책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을 때 노승은 눈을 부릅뜨며 호통을 쳤다.
“이놈! 삼악도가 그리운고?”
꿈결인 듯 아득하게 들려오는 노승의 호통소리에 아니는 눈을 떴다. 홍시를 으깨어 칠갑을 한 것처럼 짙은 주황색 하늘이 이마 위로 낮게 내려와 있었다. 깜짝 놀라 산을 뛰어 내려가던 아이는 문득 저만큼 개오줌나무 숲 사이를 빠져나오고 있는 여인의 하얀 치맛자락을 보았다. 눈부시게 흰 원피스를 입은 여인이 꽃무늬로 레이스를 두른 원피스 자락을 두 손으로 모아잡고 아이를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 여인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홍시빛 타는 놀이 여인의 하얀 발목을 뱀의 혀처럼 핥았다. 거리가 가까워졌을 때 아이는 자기를 향해 조용히 웃고 있는 여인의 얼굴을 보았다. 놀을 받아 발그레 혼조를 띤 여인의 얼굴은 탱화 속의 관세음보살처럼 차라리 슬픈 듯 아름다웠는데 아이는 하마터먼 ‘옴마!’하고 소리를 지를 뻔하였다.
“노스님께서 찾으시던걸.”
여인은 가쁜 숨을 곱게 내쉬며 투명하게 흰 손으로 이마에 흘러내리는 머리칼을 쓸어올렸다. 손가락에 끼워진 보석반지가 반짝 하고 빛났다. 아이는 감전된 듯 움직이지 않았다. 여인이 아이의 곁으로 바싹 다가왔다.
“어머, 이 자국 좀 봐. 산에서 잠들었던 모양이지.”
여인은 손을 들어 아이의 볼에 찍혀 있는 갈대 자국을 쓸었다. 법당의 만수향 타는 냄새나 산꽃 내음과는 다른 야릇한 향기가 여인의 손끝에서 풍겨왔다. 가슴이 터질 것처럼 벌렁거리고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아 아이는 아랫입술을 꼭 깨물었다.
“자, 우리 내려갈까. 이런 데서 자다가 벌레한테 물리면 큰일나요.”
여인은 살그머니 아이의 손을 잡았다. 갑자기 아이는 세차게 여인의 손을 뿌리치고 밑을 향해 달렸다.
“얘, 같이 가, 같이…….”
뒤에서 쫓아오며 여인이 소리쳤는데 아이는 못 들은 척 그냥 달렸다. 한참을 달리던 아이가 문득 뒤를 돌아보니 여인은 보이지 않았다. 아이는 멈칫거리다가 슬그머니 내려온 길을 되짚어 올라갔다. 저만큼 잔솔밭 사이로 원피스 자락이 보였다. 좀더 가까이 가보니 여인은 솔밭 사이에 쓰러져 있었다. 아이는 단숨에 뛰어가 여인의 어깨를 흔들었다. 뽀얗게 웃으며 야인이 일어났다. 눈처럼 흰 원피스 앞자락에 시퍼런 풀물이 배어 있었다.
“혼자만 가는 법이 어딨어. 그 바람에 아줌마가 넘어졌잖아.”
여인은 곱게 눈을 흘기며 아이의 손을 잡았다. 아이는 가만히 있었다.
“산승은 진작에 여인(女人) 사람으로 인하여 졸경을 치른 적이 있소이다.”
노승은 아이를 한 번 바라보고 나서 말을 이었다.
“보시는 바와 같이 늙은 비구와 어린 사미(沙彌) 아희가 조죽약석(朝粥藥夕)하는 독처(獨處), 대처의 귀부인이 유(留)할 곳이 못되오이다.”
“허락하시어요. 절양식은 제가 대어드리겠으며 저 아이도 쓸쓸할 것이니 동무삼아.”
“스님이라 부르시오. 산승이 이미 십계(十戒)를 설했으며 능선이라 불명(佛名)을 주었소이다.”
“죄송합니다.”
“관세음보살…… 불문(佛門)은 무문(武門)이라 왕자(往者)를 막지 않고 내자(來者) 또한 막지 않으니, 왕래를 자재(自在)하시오.”
그날부터 아이는 여인과 한방을 쓰게 되었다. 그 여인은 몸이 아파 휴양 온 것이라고 했는데 어디가 꼭 아픈 것 같지는 않았다. 옷차림이라든가 소지품 그리고 나이를 짐작할 수 없게 희고 고운 피부로 봐서 부유한 집안의 귀부인 같았는데 이따금 미간(眉間)에 그늘이 지는 것으로 보아 남모르는 번뇌(煩惱)를 깊이 간직하고 있는 듯하였다. 여인은 그날부터 아이를 공양간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대장부가 부엌에 들어오면 못써요.”
그러나 아이는 기를 쓰고 공양간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서 불도 때주고 잔심부름도 해주면서 여인을 졸라 산문 밖 세계의 이야기를 듣는 게 신기하고 재미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야기보다도 사실은 냄새가 좋았다. 여인에게서는 밥이 익을 때의 솥뚜껑처럼 따스하고 살짝 누룽지를 눌려 끓어낸 보리숭늉처럼 구수한 엄마의 냄새가 나는 것이었다.
“보살님, 보살님.”
“응.”
“……서울은 얼마나 멀어요?”
“멀지, 아주 먼 데 있어.”
“응…… 서방정토(西方淨土)보다두요?”
“서방정토가 어딘데?”
“응…… 서쪽으로 서쪽으로 한참, 아주 한참 가면 있대요.”
“오, 그래…… 그럼 그곳엔 누가 살까?”
“성불(成佛)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래요.”
“성불? 성불이 뭔데?”
“히히…… 보살님두. 부처님이 되는 거지 뭐예요.”
“참 그렇지. 그럼 성불은 어떻게 하면 할 수 있지?”
“응…… 공부를 많이 해야 된대요. 노스님처럼 참선 공불….”
“능선 스님.”
“네.”
“능선 스님도 참선 공불 많이 해서 꼭 성불하세요. 응.”
여인은 아이의 손을 꼭 쥐어 주는 것이었는데 그때마다 아이는 목젖이 꽉 막히면서 배가 고파지는 것이었고, 그래서 아무도 몰래 법당 뒤 보리수나무 밑으로 달려가는 것이었다….
동승은 예반에 다관과 다기를 받쳐들고 공양간을 나섰다. 빛 바랜 가사빛으로 시들어가고 있는 놀이 장삼 자락처럼 땅 위로 끌리며 낮은 포복으로 기어다니고 있었다. 객실에 얼른 다 공양을 올리고 나서 장명등에 불을 밝히겠다고 생각하며 동승이 걸음을 빨리하는데 법당 뒤 산죽 숲으로부터 목어 소리가 들려왔다. 목어 소리는 잦아들었다가는 되살아나고 잦아들었다가는 또 되살아나 끝없이 이어져 되풀이되고 있었다. 그 새는 꼭 저녁 예불을 마친 동승이 법당을 나서면 기다렸다는 듯이 울기 시작해서 놀이 죽고 어둠이 올 때까지 목어 소리를 내며 슬피 우는 것이었다. 법당 쪽을 바라보는 동승의 눈에 뿌연 안개가 서리고 있었다.
“시임, 시임, 모따소이다. 모따소이.”
처음 그 새의 울음소리를 들었을 때 아이는 자꾸 노승의 치의(緇衣)자락을 끌며 법당 뒤 산죽 숲으로 가자고 졸라댔다.
“들리느뇨, 저 소리가.”
이목구비가 큼직큼직하고 검붉은 빛깔이어서 짐짓 험상궂어 보이는 노승의 얼굴에 문득 한 자락 비감(悲感)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드인다, 드인다.”
아이는 모둠발로 뛰어오르며 자꾸 노승의 장삼끈을 흔들었다. 노승은 눈가 가득히 주름을 잡으면서 솥뚜껑 같은 손으로 번쩍 아이를 들어올렸다.
“선재(善哉), 선재라.”
노승은 도토리껍질처럼 조그만 아이의 머리통을 쓰다듬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아아 도현(倒懸)의 아해(兒孩)들이 어미 찾아 우짖는고녀. 살아서 찾지 못한 어미, 죽어 운들 무엇하리.”
아이는 칭얼대며 노승의 가사섶을 흔든다.
“이잉, 자바조. 모따소이 자바조.”
허공에 던져져 있던 노승의 깊은 눈길이 아이에게로 옮겨졌다.
“어째서 무(無)라 했던고?”
아이는 여전히 칭얼댄다.
눈언저리를 덮고 있는 노승의 최고 긴 눈썹이 철사처럼 빳빳해지면서 갑자기 목소리가 높아졌다.
“무엇을 일러 무라 했는고!”
갑자기 엄해진 노승의 얼굴이 무서워 아니는 입술을 삐죽인다. 노승이 다시 소리쳤다.
“무가 무인 도리(道理)를 아는고!”
아이는 앙하고 울음을 터뜨리며 노승의 가사섶을 쥐어뜯는다. 노승의 입이 활짝 찢어지면서 시뻘건 목젖이 크게 꿈틀거렸다.
“으핫핫핫…… 무로서 무를 찾으니 무 찾는 이 물건 또한 무로구나!”
객실 앞 토방에는 고무신과 구두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까무룩이 잦아들던 놀이 여안의 흰 고무신 속으로 파고들며 부르르부르르 진저리를 쳤다. ‘보살님’하고 동승이 불렀다. 대답이 없다. 멀리 염화실 쪽에서 노승이 부르짖듯 뱉어내는 ‘무(無)라!’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동승은 다시 한 번, 이번에는 조금 크게 ‘보살님’ 하고 불렀다. 대답이 없다. 동승은 고개를 갸웃하면서 왼손으로 예반을 받쳐들고 가만히 문고리를 당겼다. 갑자기 동승은 흑 하고 호흡을 삼키며 급하게 몸을 틀었다. 예반이 땅에 떨어졌다. 사기그릇 깨어지는 날카로운 파열음이 땅 밑으로 잦아드는 놀을 발기발기 찢어발기며 허공으로 흩어졌다. 산문을 향하여 마구 내달리는 동승의 두 뺨 위로 축축한 것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 어린 사미승 아이는 보아버렸던 것이었다. 사람 위에 또 사람이 포개어져 만들어진 이층(二層)을.
놀이 졌다. 목어 소리 끊어진 산사의 뜨락에는 일제히 승복빛 어둠이 깔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