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녀들 오라고 하세요. 마님, 저는 요 앞 기원에 가서, 아버님을 꺽 을 비법을
연구하다가 저녁에 밥 먹을 때 쯤 에나 들어오겠습니다.”
정길이 핑계 김에 옳다하고 집을 나서, 10분 거리에 있는 송탄 기원에 머리를
내밀었다. 몇 번인가 와서 그 기원의 고수라 하던 이들을 여럿 꺽 어 서인지 기원
주인이 반색을 하며 정길을 맞는다. 어느새 정길이 이 기원의 특별 기객이 된 것이다.
정길이 다녀 간 후에 타격을 입어서인지, 단골손님들 중에 요즘 기보를 연구하고
대국에 열정을 보이는 기객들의 숫자가 늘었다. 거기에 그의 아들이 이번에 프로로
입단을 해서인지, 전과 다르게 바둑을 처음 배우는 사람과 학생들도 많이 찾아온다.
정길과 자신의 아들이 기원의 침체 상태를 벗어나게 해 준 것이다.
“이번에 입단한 제 아들입니다. 여태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쉬면서 하 찬성 6단에게
사사받았지요, 한국기원 연구생으로 있다가, 이번 가을 입단시합에서 입단한 3 명중
하나가 됐습니다, 잘 왔습니다. 이 아이하고 두면서 약한 점을 보완 해달라고 하세요,
기력향상에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원장님 감사합니다. 사범님 한 수 부탁합니다. 프로하고는 처음이라서 그런데 몇
점을 접어야 되는 건가요? 프로하고는 처음이라서 떨리네요.”
“말씀 놓으세요. 이제 겨우 열여덟 살입니다. 그렇게 어려워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버님이 선생님이 강한 일급이라고 하시던데, 우선 처음이니 3 점으로 시작해
보도록 하지요. 결과에 따라 치수를 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무리하지 마시고
평소의 실력으로 편안하게 두십시오.”
‘프로 하고의 처음 대결이라서, 떨리는 데, 그래도 아버님에게 워낙 시달려서 만만치
않을 걸. 석 점이면 아버님 하고 같은 치수이니, 내가 이기면 프로라도 아버님이 더
세신 거고, 내가 형편없이 진다면 프로의 벽이 내 생각보다 더 높다는 뜻이겠지.
자! 욕심내지 말고 처음에 장인에게 배우던 심정으로.’
곧 이어 두 사람의 대국이 진행되면서, 옆에 있는 강의실에서는 그들의 대국을
참관하고 연구하는 이들로 가득 찼다. 기원의 원장이 기분 좋은 얼굴로 기보를 전하기
위해, 오가는 기원의 직원인 청년의 모습을 보며, 자신은 두 사람의 대국이 모쪼록
조용하게 이루어지도록 신경을 쓰며 손님들에게 차를 나른다. 이 대국이 끝나고 나면
소문이 더욱 날 것이다. 아마추어 강자와 프로의 대국이 이 기원에서 이루어졌다고,
정길의 실력은 자신이 아는 강자들의 수준보다 몇 배 차이가 나는 대단한 실력이었다.
약간은 어설퍼 보이는데도, 이 기원의 고수들 뿐 아니라 근방과 평택의 기원에서도
그를 당해내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원장이 계속 닥치는 호재에 미소가 절로 오른다.
정길이가 너무 고맙다. 그가 아니라면 감히 프로인 아들과 대적할 만한 이가 아예 없는
것이다. 지도대국은 어딘가 맥이 빠지지만, 지금의 이 대국은 인근에서 알아주는
아마추어 강자와 프로의 대국이라 크게 소문이 날것이다. 이제는 손님 걱정을 안 해도
될 것이다. 이윽고 대국이 끝났다. 정길이 아깝게 분패했다.
“여기의 후절수를 보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강 일급이라도 후절수는 못 보시는
경우가 많은데, 정확히 보셨습니다. 기초가 튼튼하시고 계가 실력이 발군입니다.
다만 좀 급하게 두시다 보니 충분히 두실 수 있는 수인데, 모르시고 넘어 가는 때가
있습니다. 네? 아니 여기요, 만일 이렇게 받으셨으면 제가 오히려 모자랐을 겁니다.
눈에 보이는 수도 잠시 손을 멈추시고, 다시 보면 더 좋은 수가 있다는 생각을 하세요.
침착히 두시면 두 점 치수도 가능 하겠습니다.”
“제가 배운지 이제 일 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우리 장인에게 배웠는데, 사범님과
호적수가 될 것 같은데요. 강릉에서는 제일 고수지요. 사범님 기풍과, 장인의 기풍이
비슷해서 제가 지기는 했지만, 마음껏 실력을 발휘했습니다. 봐주시기도 했던 것을
압니다. 하하하 잘 배웠습니다.”
그동안 김 부장에게 배운 정필의 실력을 정길이 점검해 보니, 예상외로 솜씨가
제법이다. 느린 동작으로 대련을 해보더니 정필이 고개를 갸웃 거린다. 김 부장의
말로는 정필의 실력이 정길의 나이였다면, 정길과 상대해도 한 두수 정도 뒤질
뿐이라고 했는데, 정필이 아무리 배운 시간이 짧다고는 하지만, 도대체가 정길의
대련상대가 안 된다. 무언지 모르지만 정길에게 다른 기법이 더 있는 거 같아
당할 수 가 없다. 마치 어린 아이와 어른의 장난하는 거 같아 심통이 난다.
정필의 공격의 핵심을 알고 미리 방비하며, 전혀 예상도 못한 공격을 하니 이해가
안 된다. 정필의 공격보다 수비하는 정길의 무술은. 춤을 추는 진짜 무용수 같다.
부드럽게, 유연하게, 물 흐르듯 피하면서, 어느 새 코앞에 형의 주먹이 와 있다.
“형이 김 부장님보다 더 센 것 같다. 형이 하는 무술은 무슨 고전 무용을 하는
모습이야, 힘도 안 들어갔는데, 정확도와 빠르기에는 더 강해. 정확하게 들어가야
타격효과도 더 크다면서? 김 부장님 동작과 틀려. 다른 운동하고 합친 거야?
형의 눈이 너무 무서워. 노려봐야 더 힘이 세지는 건가? 나하는 거 봐, 여기서 돌면
약간 어지러워 초점이 안 잡히는데, 어떻게 때릴 곳을 정확하게 볼 수 있지?
자! 다시 한 번 응? 정지 됐을 때 위치가 어느 곳인지 알게 되면? 아! 여기에?
그러니까 돌아도, 서는 위치, 돌고서는 위치가 계산되어야 한다는 말이네. 맞아 형,
아! 된 다, 다른 거 가르쳐 줄 거야? 다른 것도 배웠다고? 좋지 뭔데?”
“장인에게 배운 검도인데, 사물을 보는 집중력이야. 배우고 싶으면 여기에 내일
지름 10 센티 정도 되는 나무를 하나 묻어. 그러면 가르쳐 줄게, 깊이 묻고 2미터
정도 높이라야 돼. 다음에 대나무 굵은 거와 가는 거 몇 개씩 구해오고 그거?
농사용품 파는 곳이나 철물점에 가면 구할 수 있을 걸. 오늘 당장 하고 싶다?
그런데 통나무를 구할 수 없다. 가로수 넘어간 거 방치한 게 있다고? 그럼 가져와
봐. 어디 리어카 빌릴 데 없나? 둘이서는 들기 어려울 텐데.”
“자! 나무에 홈을 파고, 굵은 대나무 하나, 이쪽으로 하나, 다시 이쪽에 하나
단단히 묶어, 그러면 여섯 방향에 손이 달려 있는 거지? 길이를 손 정도의 길이로
맞추고, 다음은 대나무 쪼갠 것을 손목 위치에 10 센티 크기로 묶는다. 고무줄로,
나중 자전거 튜브로 고정하면 좋을 거다. 이제 준비 끝, 나무손이 전부 여섯 개지?
복싱 폼으로 다가가서 이 가는 대나무 칼로 손목을 정확히 때려 볼래? 그래도 어렵지?
그런데 한 바퀴 돌고 정확하게 때리려면? 어렵지? 아까 배운 걸 써봐. 그러면
느낌과 눈초리가 살아나서 타격 위치를 정확하게 보고 때릴 수 있을 거야. 뭐! 내가
배운 거와는 틀리지만, 너에게 맞게 내가 연구한 거라, 오히려 배우고 나면 효과가
더 클 거다. 요령은 알겠지? 시범을 보여 달라? 좋아, 잘 봐라. 그리고 박치기는
수시로 단련해야 효과를 볼 수 있고, 가르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니 이 작은 자갈과
모래를 섞어 넣은 자루를 상대의 머리로 생각해서, 집에 드나들 때마다 받으며
연습해라. 대결 시 순간적으로 급소를 받아야 효과가 크다. 머리에서 여기, 이곳이
인체 중에서 가장 단단하다. 단단한 곳으로 받아야 되겠지? 따라서 상대방을 받을 때도
이곳은 피해서 받아야 한다.”
정길이 군에 가기 전에 북한 무장 공비들의 청와대 기습사건이 있었다. 대통령을 노린
것이다. 정길의 모친은 겁이 난 얼굴로 아들의 얼굴을 쳐다보며 걱정이 태산 같다.
집안의 대들보 같은 아들 잃으면 어쩌나 하고. 은숙이 뉴스를 자세히 들었는지
얼굴이 붉어진 채 열변을 토한다, 너무 흥분한 거 같다.
“긴급 뉴스를 들었는데, 북쪽에서 공비들이 몇 십 명이 넘어 왔대요. 대통령을
해코지 하려고 왔는데 거의 잡고, 몇은 아직 못 잡았다나 봐요. 세상에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을 저지르다니 그 나라에도 법이 있어요? 전쟁을 일으켜서 국민을 거지로
만들어 놓은 지 얼마나 되었다고, 우리나라를 잘 살게 한 대통령 각하가 아무리
밉다고, 강도보다도 못한 사람들이네요. 국민을 잘살게 하는 법을 배워 자신들도
잘 살면 되는 거지. 같이 못 살자 하다니.”
“그러게 무서운 세상이다. 감히 한 나라의 대통령을, 저 북쪽 사람들은 너무 악한
일만 골라서 하네. 작년에 위장으로 자수한 간첩 뭐라 하드라? 으응, 맞아
이 수근인가 하는 사람을 보내 나라를 떠들썩하게 하더니, 이번에는 아주 떼거지를
보내서 어쩌자는 건지, 전쟁을 하자는 건가? 우리나라가 월남에도 군대를 보내고,
미국에서도 우리나라를 지켜 주기로 했는데 해봐야 질 걸 왜 그러는지 몰라. 얘,
너무 불안하다, 너무 무서워. 진짜 전쟁이 나면 어쩌지? 우리나라가 앞으로는
더 잘 살게 될 텐데, 전쟁이 나면 잘 살아 보지도 못하고, 또 그런 엄청난 고생을
해야 하고, 일가친척을 잃는 일이 일어날 텐데, 생각만 해도 너무 겁이나, 네가
군대를 곧 간다하니 더 걱정이 되는구나.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해서 막아야 해.”
“염려 안 해도 됩니다. 우리나라 남자들이 공산당이라면 치를 떨어요. 북 쪽이
겁 없이 까불다가는 남북통일 되고, 오히려 우리가 바라는 건데요. 내가 있잖아요.
형도, 정래도, 내 가족들은 내가 지킨다. 으하하하 오려면 얼마든지 와 봐라.
다 부셔 줄 거니까.”
오랜만에 정길과 정필은 목욕을 함께 했다. 정필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길의 몸이
유명한 조각가의 무슨 조각상보다 더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그의 몸을 보고 자신의
몸을 보니 너무 부끄러웠다. 그 이후 정길이 아침마다 하는 운동을 따라하고,
정길의 지도를 받으며 어떻게 해야 몸을 아름답게 만드는 가를 배웠다. 전에는
김 부장에게 호신술을 배우면서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을 할 경우에 얼마나 거기에
몰입할 수 있으며, 성취가 빠르게 나타나는가를 체험했었다. 그 때 김 부장이 하는
말이 형 같이 너도 이해력이 좋다. 이 무술이 너희 형제를 위해 있는 것 같다는
말을 들었을 때에는 세상이 온통 내 것 같은 뿌듯함과, 우쭐해지는 마음을, 누이
정옥과 엄마 정자에게 드러내 자랑하다, 깡패가 되려하느냐는 핀잔만 들었다.
첫댓글 즐~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