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핵심, 축구
유창윤 (백석중 2년)
누구에게나 가장 좋아하는 일이 있다. 그 일을 하다보면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열중하게 된다. 미친 듯이 좋아하는 일만 하다보면 그것에 대해 잘 알게 되고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 될 것이다. 나에게도 그런 일이 있다. 바로 '축구'이다.
내가 축구를 하게 된 계기는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대한민국 대 그리스의 32강 경기였다. 그 때 박지성 선수가 2명을 제치고 골을 넣는 장면을 보고 내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 기억은 영원히 잊지 못할 기억이다. 최근에 개봉한 '인사이드 아웃'이란 영화에 나오는 핵심 기억(새로운 인격과 가치관을 만드는 경험)이 나에겐 이것이다.
월드컵이 끝난 후, 나와 쌍둥이 형인 성윤이를 포함한 모든 3학년 학생들이 축구에 빠졌다. 3학년 중에서는 성윤이가 제일 잘했다. 성윤이가 나보다 축구에 먼저 빠져들어서, 월드컵이 끝난 후, 바로 시작했다. 나는 성윤이의 실력을 보고 부러웠다. '어떻게 저렇게 잘할 수 있지?'하면서 축구 연습을 시작하게 되었다.
학교가 끝나면 운동장에서 연습하고 공터에서도 연습했다. 심지어 집에서도 축구를 했다. 매일매일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연습하다 보니 내 실력이 점점 늘었다.
성윤이와 실력이 비슷해졌지만 실력을 뛰어넘지는 못했다. 나는 성윤이보다 운동신경이 떨어졌지만 힘과 스피드는 학년 최고였다. 그래서 나는 성윤이와 함께 연습을 하기도 했다. 성윤이는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덕분에 내가 슛을 강하고 빠르게 할 수 있게 되었고 골을 차는 것은 성윤이를 뛰어넘었다. 드리블도 나만의 스타일도 창조해냈다. 성윤이는 우아한 드리블을 하는 반면에, 나는 스피드를 살리는 드리블을 사용했다. 성윤이는 어디에서도 본적이 없고 막을 수없는 드리블이라고 칭찬해 주었다.
나의 끝없는 노력은 6학년 때에 결실을 맺었다. 시에서 주최하는 축구리그에서 28골을 넣고 우수선수상을 받았다. 아쉽게도 우리학교는 결승전에서 3:2로 져서 준우승을 했지만 우리의 실력은 우승 급이었다. 이때의 기억도 나의 핵심기억 중 하나이다.
내가 축구를 잘하게 된 이유는 끝없는 노력 뿐 만 아니라 훌륭한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지금 나에게 있어서 축구란 날 살아있게 만드는 생명이다.
좋은 하루를 보내기 위한 것들
오연진 (봉서중 2년)
생명이라는 것, 살아간다는 것, 재미있는 것, 신기해서 두근두근하고 흥미 있는 것, 나에게 그런 것들을 느끼게 해주는 일은 맛있는 것을 먹는 것이다. 어느 날 요구르트가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난 요구르트를 그 날 꼭 먹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계속 요구르트가 생각나서 다른 일들을 잘 못하게 된다. 만약 돈이 없어서 그날 요구르트를 먹지 못했다면 다음 날 꼭 사서 먹게 된다. 이런 것들로도 작은 기쁨을 느낄 수 있지만, 먹고 싶은 것을 참아가며 돈을 모아 친구들과 더욱 맛있는 것을 먹으러 간다면 그때의 행복은 정말 크다. 사실 난 참는 것을 잘못해서 중간에 포기하고 작은 기쁨을 누릴 때도 있지만 열심히 참아가며 얻은 큰 행복의 맛은 정말 달다.
이렇게 먹는 것을 좋아하는 나도 귀찮아서 아침을 거르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11시쯤에 배가 너무너무 고파서 점심은 기존에 내가 먹는 양보다 더 먹게 된다. 공복기에 맛있는 것을 많이 먹으니 기분이 나쁠 수가 없다. 우리 집은 아침에 육류도 많이 먹는데 아침에 먹는 고기가 건강에 좋지 않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그래도 아침에 고기를 먹으면 채소류를 먹은 날 보다 힘이 난다. 고기는 언제다 옳다.
내가 좋아하고 재미있는 일이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친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나를 잘 아는 친구들에게 고민을 털어놓으면 몇 초 지나지 않아 해결책을 만들어 준다. 물론 그 해결책들이 항상 정답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오답인 적은 없었다. 친구들과 얘기를 하다보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있다. 가끔은 얘기를 나누다가 짜증이 난 적도 있지만 모든 것이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는 않기 때문에 딱히 짜증난다고 말해서 분위기를 흩뜨리지는 않는다. 그 때 짜증났던 말들이 지나고 보면 오히려 더 기억에 남는다. 어쨌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꼭 좋은 감정만 남기진 않지만 그것도 나름대로 추억이고 재미일 것 같다.
먹는 것과 이야기를 하는 것 들 다 재미있고 좋아하며 언제나 하고 싶은 것들이다. 가끔은 두근거리기도 하고 너무 그 일들만 하다가 시간을 허비하기도 하지만 이것들이 있어서 내가 하루를 보내는 데에 힘을 주지 않나 싶다.
나의 터닝 포인트, 축구
유성윤 (백석중 2년)
사람들은 모두 좋아하는 것이 있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그것만 하면 하루 24시간을 채울 수 있을 것만 같은 것, 나에게는 그것이 바로 축구이다.
여러분도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을 기억할 것이다. 박지성 선수가 그리스 전에서 2명의 수비수를 현란한 드리볼로 제치고 골을 터뜨린 것도 분명 기억날 것이다. 나는 그때 처음 축구에 빠져 무작정 시작했다. 축구에 특별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내 주위에 정식으로 축구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난 그냥 축구가 좋을 뿐이었다.
처음에는 축구에 관해서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도서관에 가서 축구에 관한 책을 찾아 직접 공부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이 세상에 쉬운 일은 없구나. 심지어 축구도.'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천천히 그리고 반복해서 연습을 하다 보니 내 몸이 축구의 한 동작 한 동작을 기억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처음 내가 원하는 슈팅을 했을 때 나와 항상 같이 축구 연습을 하던 쌍둥이 동생 창윤이와 함께 얼싸안고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 그 때가 5학년 때 일 것이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포지션이 공격형 미드필더였다. 하지만 6학년 때 축구부에 들고 첫 대회를 나갔을 때 느꼈다. '내가 아무리 골을 넣는다고 해도 상대편 공격수를 막지 못한다면 언젠간 골을 다시 먹힐 거야.' 그래서 나는 결샘했다. 공격형 미드필더가 아닌 수비수가 되겠다고.
첫 번째 리그경기가 끝나고 내가 수비수로 포지션을 바꾼 후 두 번째 경기의 스코어는 4:1로 대패였다. 하지만 나는 슬프지 않았다. 수비를 처음 했던 거라 예상도 했고 어떻게 수비를 해야 할지 알았기 때문이다. 그 다음 경기는 3:2로 승리를 했다. 물론 나는 맹활약을 했고, 감독님께 칭찬까지 받았다. 그 때가 내 축구 인생에서의 터닝 포인트였다.
그 이후, 우리 초등학교는 파죽지세로 이겨 시 대회까지 갔지만 결과는 준우승이었다. 우승도 아닌 뭔가 찝찝한 준우승. 준우승을 한 이유도 내가 공을 흘려 선제골을 먹혔기 때문이다. ‘아, 내가 이런 큰 대회에서 활약해야하는 판에 실수를 하다니, 수비를 접어야 하나?’ 하지만 친구들은 나에게 욕을 하는 대신 격려를 해준 친구들 덕분에 그 때의 준우승은 나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나는 지금 중2다. 시 대회 준우승은 6학년 때 일이고, 그 이후에 축구리그로 상을 탄 적이 없다. 이번 2학기 때도 대회를 할 수도 있을 거라고 선생님이 그러셨는데 이번에는 실수가 아닌 활약으로, 격려가 아닌 칭찬을 받고 싶다.
<신의 탑>이 나에게 가져다준 행복
김현정 (병천중 2년)
내가 처음 <신의 탑>을 본 날이 언제였을까? 처음에 <신의 탑>을 봤을 때의 기분은 정말이지 내가 지금가지 본 수많은 웹툰과는 차원이 다른 재미를 느꼈다. 아마 내가 모르는 웹상의 사람들과 처음으로 소통하게 된 것 같다.
그 후, <신의 탑>을 보며 팬 카페도 가입하고, 모르는 사람들과 소통도하고, 우리 카페는 카페 규칙상 단체 채팅이 금지되어 있었다. 그런데 언제가 한 번 카페 채팅이 열린 적이 있었다. 아직도 그때의 그 기분이 생생하다. 나와 같은 취미를 가진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다니! 그 때 그 기쁨은 말로 서술하기 어려울 정도로 매우 행복했다.
그리고 <신의 탑> 덕분에 내가 지금까지 살았었던 기분 중에 가장 큰 기쁨을 느낀 적이 있었다. 그때가 처음으로 서울코믹월드에 갔을 때이다. 서울코믹월드(서코)에 처음 갔을 때의 느낌은 진짜로 심장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였다. 요즘도 가끔씩 서코에 가면 가끔 그런 느낌이 들기도 한다. 진짜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나오는 그 기쁨이란! 서코는 나에게 많은 기쁨을 준 곳이다.
서코에서 <신의 탑> 작가님(SIO)의 팬 사인회가 열린 적이 있다. 아직도 그 날짜를 생생히 기억한다. 2015년 2월 14일 발렌타인데이였다. 그 전날부터 초콜릿을 만들어 드리겠다고 얼마나 난동을 부렸는지……. 지금도 다시 그때가 될 수 있다면 좀 더 높은 퀄리티의 초콜릿을 드리고 싶다. 마지막으로 내가 서코의 어느 부스 앞에서 있던 일이다. 내가 그때 본 부스에서 무엇을 팔았는지는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하지만 그때 그 기분 처음으로 심장마비 같은 기분을 느껴보았다. 진짜로 심장이 감당을 못했는지 심장이 아프다 못해 숨을 못 쉴 뻔 했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런 기분을 느낀 적이 없었는데 <신의 탑>이란 웹툰을 만나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세상과 소통하기’라던가 ‘심장이 아플 정도로 기뻐해’ 본적이 있어서 세상은 아직도 이렇게나 기쁜 일이 많구나 하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도 좋아하고, 계속 미래까지 좋아할 것이며 <신의 탑>으로서 계속 행복을 찾아나갈 것이다.
<신의 탑> 흥해라! SIO 작가님 만만세! Tower of Go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