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일어나는 윤상도옥사와 완당의 유배
1840년 55세 되던해 6월, 병조참판을 지내고 있던 완당은 동지부사로 임명되는 감격을 맞았다. 꿈에도 잊지 못할 연경에 30년만에 다시 가게 된 것이다. 그 옛날 30년전 동지부사였던 부친의 자제군관으로 갔던 완당이 이제는 자신이 동지부사가 되어 연경으로 가게 됐으니 그 또한 금의 환향 같은 것이다. 완당의 그 설레는 가슴을 우리는 남김없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감격도 잠시뿐이었다. 완당으로 보자면 저승사자 같은 김우명이 대사간이 되고, 경주 김씨와는 악연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김홍근이 대사헌이 되어 양사를 장악한 안동 김씨들이 10년 전 윤상도 사건을 재론하면서 이미 돌아가신 부친 김노경을 공격하고 나선 것이다.
6월30일 대사헌에 임명된 김홍근은 자리에 오른지 불과 열흘 만인 7월10일, 사직서룰 제출하고서 삼가 목욕재계하고 말씀드리는 것이라며 비장한 분위기를 조성한 다음, 느닷없이 10년 전 김노경과 윤상도의 옥사를 다시 조사해야 한다는 상소를 올렸다.
이에 대리청정을 보고 있던 대왕대비는 추자도에 위리안치되어 있는 윤상도를 끌어올려 즉시 국문하게 하고 김노경에게도 마땅한 처분을 내리겠다고 하교하였다. 그 이튿날에는 완당과 아우 명희의 관직을 빼았고, 7월 12일에는 이미 죽은 부친 김노경의 관직을 추탈하였다.
그런데도 대사헌 김홍근은 그 배후를 캐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것은 정치적으로 반대세력을 제거할 때 쓰는 상투적인 수법인데, 안동 김씨들의 공격은 경주 김씨의 완당 김정희를 겨냥하고 있는 셈이다. 최완수 선생은 이 정쟁의 배경을 당시 우의정 조인영, 형조판서 권돈인, 병조참판 김정희 등으로 엮인 반 안동 김씨 연합세력에 대한 안동 김씨의 공격으로 보았다.
윤상도를 추자도에 끌어올려 국문한 결과 윤상도는 전 승지 허성이 시켜서 한 일이라 했고, 허성은 김양순의 위협과 사주를 받았다고 자백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완다을 줄기차게 모함해온 안동 김씨의 김양순이 얽혀든 것이다. 이에 8월 11일, 윤상도 부자를 능지처참하였고, 김양순은 궁지에 몰린 나머지 김정희가 시킨 일이라며 완당을 끌어 들였다.
이리하여 8월20일 , 예산 향저에 낙향해 있던 완당이 나포되어 의금부로 압송되었다. 김양순과 김정희의 대질 심문에서 김양순의 말이 거짓임이 드러나자 김양순은 다시 죽은 이화면을 끌여들여 그가 다리를 놓은 것으로 말하였다. 이렇게 국문이 계속되는 동안 김양순은 8월 27일 고문 끝에 죽고, 허성 또한 8월30일 역적모의에 가담한 죄로 죽임을 당하니, 이제는 김정희만 남아 국문을 받게 되었다.
혹심한 고문에 모두 며칠을 넘기지 못하고 죽음에 이루렀으니 완당의 목숨 또한 경각에 달린 셈이었다. 죽음의 문턱에 들어서 있는 완당을 구해줄 친구로는 오직 안동 김씨에 실세였던 황산 김유근이 있을 뿐이었눈데 당시 김유근은 중풍에 걸려 4년째 와병중인데다 다른 병도 아닌 실어증을 앓고 있었으니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었다. 완당은 그야말로 죽을 처지 였다.
이때 우의정 조인영은 완당과의 끊을 수 없는 정리를 생각하여 9월4일ㅡ정중하고 논리정연한 문장으로 차자를 올렸다. 이는 진실한 벗의 용기 있는 상소였다. 이것이 유명한 국문받는 죄수 김정희를 참작하여 조처해즐 것을 청하는 글이다.
엎드려 아뢰옵니다.
신이 듣자옵건대 "옥사는 천하에 공평해야 할 일이라. 전형과 법칙에서 조금이라도 남용되어서는 아니 된다"하옵니다. 혹시 법으로는 처벌함이 마땅하여도 정황에 미진함이 있거나, 정황으로는 처벌함이 합당하지만 법으로 반드시 더 살펴야 할 것이 있다면 대개 의문에 붙이고 마는 것은 바로 정황과 법칙의 사이를 참작했기 때문입니다.
이번 김정희가 절개를 거스르고 흉악함을 도모한 것은 진시로 끝까지 힐문할 것도 없이 대질시켜 증거를 취해야 할 것이나, 이미 그 국문의 사례가 없고 신문을 더한다 하더라도 완결을 기약할 수 없습니다. 이 어찌 성스러운 조정이 가련한 사람을 구원해주는 뜻에 맞을 수 있겠습니까....
엎드려 바라옵건데 전하께서는 빨리 재량하여 처리하옵소서.
조인영의 차자를 받은 대왕대비는 이을 받아들여 다음과 같이 하교하였다.
이제 우의정의 차본을 보니 옥사의 맥락과 오점이 매우 분명하다. 인하여 계속 신문해야 마땅하겠지만, 증거댈 길이 이미 끊어져서 힐문할 방도가 없고, 또 행형과 법리를 세세히 말한 것이 실로 공명한 논의이니, 그 의심스러운 죄는 가볍게 벌한다는 뜻에 입각하여 감사의 법을 씀이 마땅하다. 국청에 수금한 죄인 김정희를 대정현에 위리안치하도록 하라.
대왕대비의 이런 조치가 내려지자 예상대로 이튿날 대사간 김우명을 비롯하여 삼사가 또 들고 일어났다. 이들은 합계하여 김정희를 다시 국문할 것으 요구했다. 그러나 대왕대비의 대답은 단호했다.
전의 차자에 대한 비답에 이미 일렀다. 번거롭게 하지 말라.
이리하여 완당은 조인영의 도움으로 겨우 목숨을 구해 제주도 귀양살이를 떠나게 되었다.
죽음에서 탈출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