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셔요. 이번에는 장수왕이 천도한 평양성의 위치에 대해서 알아 보겠습니다.
장수왕이 천도한 평양성의 위치는 어디 일까요?
삼국사기에서는 장수왕이 천도한 평양성에 대해 단 한줄로 만 기록되어있습니다.
十五年, 移都平壤.
15년(427)에 도읍을 평양으로 옮겼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장수왕조]
삼국사기로는 장수왕이 천도한 평양성의 위치에 대해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에 중국 사료를 통해 위치를 파악해야 합니다. 그런데 강단사학에서는 아무 근거 없이 무조건 북한의 평양이다. 라고 주장하고 가르치고 있지만 이는 사료적 근거가 전혀 없습니다. 현재 사료적 근거로 제시되는 주장은 현재의 요동에 있는 요양이라는 설과 하북성의 평주라는 설 2가지 입니다.
전자의 설은 신당서등의 사료들을 근거로 하고 있고 후자는 통전에 기반한 주장입니다.
저는 통전의 주장이 더 설득력 있다고 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통전을 쓴 두우(735~812)는 당나라 당대의 인물입니다. 고구려는 당에 의해 멸망(668년)했고 통전은 그 뒤 100여년 뒤에 씌여진 책입니다. 신당서는 북송시대 인조의 명을 받아 구양수(1007~1072)라는 인물에 의해 고구려 멸망 약 400년 이후에 씌여진 책입니다. 따라서 통전의 내용이 더 정확하고 고구려의 역사에 대한 사료적 가치가 더 높고다고 할 수 있습니다.
통전의 고구려 수도에 대한 내용
당(唐) 시대의 두우(杜佑)가 쓴 ‘통전(通典)’에는 후위때 고구려가 평주에 도읍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晉因之 兼置平州 後魏時 高麗國都其地...置安東都護府於平壤城 以統之
진(晉) 시기에 평주(平州)를 설치하였다... 후위(後魏)시대에 고구려가 그 지역에 도읍하였다.
大唐總章元年 李勣平高麗...置安東都護府於平壤城 以統之
대당(大唐) 총장(總章:당나라 고종의 연호) 원년에 이적이 고구려를 평정하고... 평양성에 안동도호부를 설치하여 통치하였다.
『通典』
고구려의 수도 천도 기록을 통해 후위시기 천도한 기록을 살펴 보겠습니다. 고구려는 8번의 수도 이전 기록이 있습니다.
졸본(주몽) ▶ 국내성(유리왕) ▶ 환도성(산상왕) ▶ 평양성(동천왕) ▶ 환도성(고국원왕) ▶ 동황성(고국원왕) ▶ 평양성(장수왕) ▶ 장안성(평원왕)
그러면 북위(후위) 386년 ~ 534년 에 천도한 고구려의 왕은 누구 일까요?
고국원왕 재위: 331년~371년
장수왕 재위: 394년~491년
평원왕 재위 : 559년 ~ 590년
따라서 후위때 수도를 천도한 왕은 장수왕이 유일합니다.
또한 ‘통전(通典)’ 북평군 평주조에서 “평주는 지금의 노룡현(盧龍縣)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노룡현은 하북성에 있는 노룡현을 말합니다.
평주(平州)의 위치에 대해 지리적인 참고 자료가 남송(南宋)시대의 추리도(墜理圖)입니다. 이를 통해 평주의 위치는 하북성에 있는 지역임을 알수 있습니다. 즉 여기가 고구려 장수왕이 천도한 수도의 위치입니다.
첫댓글 장수왕때 천도한 평양이 <요양>이라는 설은 <인하대 고조선연구소>에서 많이 언급한 내용이라,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요양>이라 판단을 했는데, 하북성 <평주>설은 고민해 보지 않았는데~ 양 '설'을 비교하면서 검토해봐야 겠네요~
요양 보다는 평주를 좀더 설득력 있게 보는 이유는 이후의 수당 전쟁을 잘 설명해 주는 부분도 있습니다
요즘 장수왕의 평양이 요동이라는 설이 많아사 알고 있었지만, 더 정확하게 집어 주셔서 좀 더 연구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