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1865 년 일본에서 재간행했다는 <황조일통여지전도> 중 란하.요하 유역을 묘사한 부분도다.
<황조일통여지전도> 원본은 1832 년 청국 이조락 등이 간행했고 지금까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어쨋든 나는 위 <황조일통여지전도>를 `일본이 조작한 황조일통여지전도`라는 뜻으로 <일조황도>라 한다.
청국 원본인 <황조일통여지전도>에 묘사된 대요수.황하는 아마도 아래의 청색 실선처럼 묘사되어 있었을 것이다. 황하는 발원지에서 정동 방향으로 흘러 요하의 상류로 흐르지 않았을 것이며 또한 황하 중류의 남쪽 지류인 노합하의 길이도 현 중국전도에 표시된 노합하처럼 길 수가 없었을 것이다.
어떻게 아냐고?
<수경주/대요수>와 <청사고/지리지> 기록을 보시라.
또 송 시기 석각된 <지리도><우적도>나 청 시기 <성경여지전도> 및 이조선의 가칭 <백산대맥도> 등도 반드시 참고하시라.
우선 대한역사와 관련하여 지리와 지형지세의 근간은,
1. 한 시기 우북평.요서.요동 3 개 군 지역에서 발원하여 동북.동남류하는 백랑수는 새외에서 발원하여 요동군 망평.양평현으로 흘
러오는 대요수와 요동군 방현에서 합류하였고,
2. 청 시기 직예성 다륜약이구 북쪽에서 발원하는 석랍목릉하錫拉穆楞下는 황하潢河의 최상류 명칭인데 발원지를 떠나 적봉 동쪽
을 경유한 후 영금하.노합하를 받아들이고 조양 북쪽을 지나 봉천성 신민부 진안현 서쪽과 금주부 반산구로 흘러내려 대릉하와
합류하였다.
3. 결국 한 시기의 대요수는 청 시기의 황하인데,
일본명치왕이 동남류하는 황하를 지도에서 삭제하고 동류하는 당시의 흑룡강을 요하 서쪽 상류인 서요하로 표시하려고 변조한
것이다.
4. 그 결과 청국이 멸망한 1911 년까지도 지금의 란하 정북쪽 지류였던 요하가 동쪽으로 3000 여 리 이동되어 지금의 요하인 것
처럼 착각을 일으키게 하였고 1911 년 당시에도 요하에서 동남쪽으로 400 여 리 떨어져 흘렀던 압록강 역시 동쪽으로 3000 여
리 옮겨져 지금의 압록강이라고 주장하게 된 것이다.
명.청국의 동북쪽 국경선이 대충이라도 어디였는지를 간취해야만,
이조선의 서북쪽 국경선을 짐작할 수 있다.
즉,
일본명치왕이 이조선과 청국에서 간행된 고지도까지 변조.조작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명.청국의 지리지 기록과 고지도를 대조.검토해야만 한다.
제발 제대로 공부쫌 합시다.
현 중국전도 펼쳐놓고 주먹구구식으로 손꾸락질만 해서야 되겠는가?
어떻게 지금의 갈석산 부근이 한 무제 유철이 설치한 낙랑군이라고 하는가?
갈석산은 한 시기 요서군 비여현 동남쪽에 있었고 낙랑군은 요서군에서도 동북쪽으로 1700 리 씩이나 떨어져 있었다.
또 한.당.청 시기의 갈석산 위치도 일본명치왕이 란하 중.하류를 동쪽으로 약 300 리 쯤 이동시켜 표시하였기 때문에 지금의 표시 지점에서 서쪽으로 300 리 쯤 떨어진 곳에 있었다.
에휴.
이런 한심한 설명을 언제까지 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