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5일 설날의 일기
오늘 새벽도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이러저런 연구와 동영상 보면서 밤새웠다.
(요즘 주로 많이 하는 연구는 낮에는 바둑과 역사, 밤에는 역사 내지 불교쪽이며
주로 많이 보는 동영상은 세계 여행기와 우주 관련 및 심심하거나 따분할때는 전쟁쪽)
완전히 밤낮이 바뀐 이런 생활패턴은 체질화 되어서 무슨 획기적인 변화없는한
고치기나 바꾸기 어려울 것으로
근래 한달 가까이 일 못하다보니(거의 매일 구인광고 뒤져봤지만 마땅한게 없다) 심해지다.
불면증 심함 또는 올빼미적 생활 습관의 뿌리는 30대적 10년 동안의 영향이 큰 모양으로
극심한 생활고와 죽고 싶도록 괴로운 처지와 심경 등으로 술 없이는 살 수 없었던 그 시절에
다른건 다 포기 상태였고 목숨포기만 남은 현실에서 술 마시지 않는 날은 없다시피했다.
4일전인 2월1일에 대중교통으로 30분 거리인 이모댁 다녀왔을때 이모께서
설날에 같이 차례 지내자고 일찍 오라고 하실때 (오전)8시까지 가겠습니다라고 했기에 집을 나섰다.
이모댁앞 버스 정거장에서 내리면 횡단보도 2개를 건너야 하는데
8시가 조금 넘었기에 급한 마음에 첫번째 작은 횡단보도 앞에서 무단횡단 했다.
건널때는 저 멀리서 차가 오기에 괜찮을줄 알았는데 막상 다 건너니 차가 몇 미터 앞에 있어
운전자에게 죄송하다는 의미로 손을 들어 인사했다.
밤새워 잠 부족함으로 인해 내 상태가 안좋음을 실감했다.
이모댁 가는 길가 어느 집에서 쓰레기로 버린 앨범 더미들을 보고 여러 생각들었다.
누군가의 역사와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사진 앨범을 저렇게 쓰레기로 버리다니...와
만약 남의 손에 들어가거나 악용된다면 등이다.
이모댁에서 이모, 사촌여동생, 여동생의 딸, 여동생의 아들 그리고 나 포함 모두 5명이
같이 차례를 지내고 아침을 맛있게 먹었다.
이모께서 차례상에 깐 큰 종이를 버리고 오라고 해서
음식물 찌꺼기 묻은 종이를 그냥 버리면 안된다 싶어 대문 밖에 나와
종이에 묻은 음식물 찌꺼기를 털어 버리는중에 가까운 곳에서 새끼보다는
조금 큰 어린 고양이 본후 방에 들어와 이모께 저기 작은 고양이 있네요라고 말했는데
내 집이라면 내 마음대로 음식 조금 줄텐데 이모의 판단에 맡겨야만 했다.
밤 새워인지 졸립고 목소리는 이상하게 들리는 등 상태가 안좋았지만
오늘같은 날 이러면 안된다는 생각에 버티면서
이모댁 분들에게 어디가고 싶은데 없냐? 물었는데
한참을 옥신각신하다 결국 안가는 것으로 결론 나서 속으로 다행이다 싶었다.
작년 설날때는 이모댁 분들과 다른 친지들 만나 같이 시간 보냈는데
이번에는 그런 일정도 없었고 추운 날씨에다 서울 사람들이다 보니
서울꺼 보기는 식상함 면이 큰거 같다.
이모께서 싸주신 이런저런 명절 먹거리 가지고 이모댁 나와 이모댁 주변 풍경을
습관대로 몇장 찍다.
내게는 매일 보거나 남들은 무관심한 풍경 모습 사진 찍는 습관이 있는데
훗날 역사용과 추억용으로 보고자 함도 있지만
이게 과연 사실 또는 현실인가??? 하는 증거용 때문이기도 하다.
간혹 꿈중에 사진 찍기하는 꿈을 꾸기도 하는데
그런 꿈속에서는 사실감 또는 현실감 있게 느껴지지만
깨고나서 실제있는 사진기 속에는 그런 장면이 없으니
아! 꿈이였구나 하고 여기는 경우가 있어서 및 그런 착오를 막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그렇게 이모댁 주변 사진 찍기를 한후 귀가하니 대략 오전11시다.
부모형제 사는 부산에서 서울 온(1996년경 2월인가 3월로 기억) 후 오늘 2019년 2월5일 설날 현재까지
명절날 한번도 부산 못갔다.
아니 평소에도 몇년에 한번 부산 깔까말까 하다.
마음만 먹으면 몇시간이면 얼마든지 갈 수 있지만 이런저런 사유들 때문으로 경험없으면 이해 어려울 것이다.
그렇게 40여번 정도의 설날과 추석날 대부분을 이모댁에서 보냈으니...
외할머니께서 살아 계실적과 돌아가신 직후 얼마동안은 충청북도 어느 농촌에 있는 외가집에서
설날과 추석 보내기도 했지만 손꼽을 정도다.
30세 이후 서울 사는동안 보낸 설날과 추석중 가장 슬픈(?) 경우는 2000년대 중반에 있었는데
당시 지금은 뉴타운이란 이름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진 서울 하왕십리동 살때다.
집에서 가까운 제기동에 있던 **인력 사무실에서 추석 아침밥을 먹었다.
수중에 돈 한푼 없고 한푼이 절실한 상황이라
추석이라 일 없는줄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인력소 가서 대기하다 8시인가 9시 넘으니 인력사무실 소장님께서
몇명 인부들에게 밥을 사주는 것이였고 같이 먹었다.
몇날 지난 다음해 설날에도 같은 일이 또 생겼다.
수중에 돈 한푼 없고 한푼이 절실한 상황이라
설날이라 일 없는줄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인력소 가서 대기하니 8시쯤 지나 인력사무실 소장님께서
몇명 인부들에게 밥을 사주는 것이였고 같이 먹었다.
이런 인연 때문일까..
오늘 저녁 먹고 식곤증에 잠시 잠들었들때 그 당시 인력 사무실 소장님도 보이시고
일감문제로 인력 사무실 신세 지는 꿈을 꾸기도 했다.
아무튼 오전 11경시에 귀가해서 볼일 보고 11시 40분 정도에 잠드니
오후 1시경에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마도 내가 몇일전 보낸 문자에 대한 답례같다.
이 지인은 아마 1999년경 겨울에 직장 일 때문에 처음 만났는데
서울에서 만난 인연들중 현재까지 연락하면서 지내는 몇 안되는 사람중 한분이다.
통화한후 잠이 깨 나의 절친인 인터넷과 시간 보내다
1~2 시간 정도 쪽잠 들고 다시 깨어나 절친인 인터넷과 시간 보내다
대략 6시경 아까 이모께서 싸주신 음식들중 하나인 "잡채"만으로 저녁 식사하다.
저녁 먹으니 또 졸음 밀려와 2~3시간 정도 깻다말다 하다.
오늘을 반성하고자 돌아보니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참 문제와 잘못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으뜸은 "생명" 또는 "생명 현상" 관련한거 같다.
이모댁 가기전에 잠 좀 자고 갔으면
오늘같은 날 이모댁 분들과 작년 설날때와 추석날처럼 좋은 시간
보낼 수도 있었을텐데 졸음 때문에..............
또 하나는 이모댁 대문앞에서 본 고양이 문제로
이모댁에서 나올때 이모께서 싸주신 음식들중 일부를
고양이에게 줄 수도 있었을텐데 졸음 때문에 미처 그런 생각조차 못함이다.
내 자신 그렇고 오늘 같이 만나고 시간 보낸
이모댁 분들 한명한명 다 많은 사연 등이 있는데
그걸 어찌 다 쓸 수 있으며, 간략히 쓸 수 있음이 가능하랴.
그런건 통화하거나 문자만 한 다른 지인들도 마찬가지이며
지나가다 본 이름도 모르고 인연 없는 많은 존재들도 마찬가지이며
못보거나 못접한 존재 조차 모르는 무수한 존재들도 마찬가지이리라.
이렇게 생명체라면 누구나 또는 존재 하나하나가 "소우주"로서
"대우주" 만큼이나 "내 목숨" 만큼이나 대단히 귀중하고 특별한 존재요,
소우주가 어울려 사는 사회나 공동체는 "중우주"요,
흔히 부르는 "우주"가 "대우주"라는 생각과,
지금의 내 능력이나 수준으로는 안돼 정확히 모르며 표현도 못하지만
불가 또는 불교에서 왜 1번째 계율로
"살생하지 말라"를 했는지도 이와 관련 됐을 것으로 생각하다.
또한 그런식으로 추리해 나가면
"극미우주"며 "대대우주" 또는 "초우주"같은 것도 연상이나 생각 가능하지만
이는 지금의 내 인식과 인지 능력밖이라.........
이렇게 2019년 2월5일 설날 하룻동안의 내가 보낸 시간이 갔고,
앞으로 그들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할 수 있을지? 등등의
어지러운 번뇌 번민 등으로 하루를 마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