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아름다운 운율...시대 아픔 녹아 들어야
- 제주를 새롭게 바꾸는 아름다운 사람 <6> 시조갤러리 발행인, 고정국 시인
제주신문 기사승인 2015.03.16
미국의 중·고등학생들은 영어 시간에 무엇을 배울까? 물론 미국문학에 대해 배우는 시간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배우는 건 미국문학만이 아니라 일본의 전통시인 '하이쿠(俳句)'이다. 하이쿠의 음절 수에 맞춰 짧은 글짓기 연습을 하는 시간도 있다고 한다. “미국 학생들은 매년 ‘하이쿠의 날’을 통해 일본 문학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이다. 하버드대 동아시아 언어문화학과 데이비드 맥켄 교수의 말이다. 일본의 전통시 하이쿠가 미국 학생들에게도 읽히고, 쓰는 법까지 교육되고 있다는 것은 우리로서는 부러운 일이다. 우리의 전통시라고 하는 시조는 한국에서마저도 소외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조의 아름다움을 되살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씨앗을 뿌리고 있는 시인이 있다. 바로 제주의 고정국 시인이다.
고정국 시인은 198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길」이 당선되면서 문단에 나왔으며, 시집『백록을 기다리며』외 6권의 시집과 산문집 『고개 숙인 날들의 기록』, 글쓰기 이론서 『조사에게 길을 묻다』등을 펴는 등 활발한 문학활동을 하고 있는 중견 작가이다. 지난해(2014년)에는 그가 낸 시집, 『민들레 행복론』이 세종문학나눔 우수도서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한국문학상 최초의 ‘시조로 쓰는 관찰일’기라는 독특성이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이다.
고정국 시인이 시조갤러리를 발행하게 된 건 지난 2010년부터이다. 시조로 문단에 입성해 활발하게 활동하면서도 늘 마음 한 켠에 아쉬움을 갖게되는 건 한국 사람들이 한국 시조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다는 것과 시단의 풍조가 자기내면에 갇힌 내면시 혹은 난해시의 일변도에 대한 새로운 환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이다.
고정국 시인은 “시조(時調)는 말 그대로 시대 정신을 정형율에 맞춰 형상화한 시문학 장르입니다. 무엇보다도 정신이 중요하죠. 자연에 대한 심미적 태도도 중요하지만 우주와 자연, 사물, 일상의 이야기에 시대의 아픔이 녹아들어야 진정한 시조정신이라고 할 수 있지요.” 라는 말을 통해 시가 시대 또는 정신의 반영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신변잡기 토로 또는 배설 위주의 시작(詩作) 태도에 대해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시조가 한국 고유의 정형시라는 것은 누구나 안다. 하지만 아직도 시조를 생각할 때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는 구절이 떠오르면서 다소 구태의연하고 고전적인 옛날 양반들의 신세한탄 쯤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시조는 우리 가슴 속에 아름다운 운율로 자리해 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가곡 ‘옛 동산에 올라’와 같은 가사가 그렇다. “내놀던 옛동산에/ 오늘 와 다시 서니/ 산천의구란 말/ 옛 시인의 허사로고”로 시작하는 우리 가곡 ‘옛 동산에 올라’는 우리 시조에 곡을 붙인 노래이다. “시조는 원래 노래에요. 노래도 4/3 박자, 4/4 박자 등 고유의 리듬이 있잖아요? 시조도 마찬가지로 그런 운율을 가지고 있죠. 3,4,3,4/3,4,3,4/3,5,4,3에 맞춰 읊조리는 거예요. 시조 낭송하는 걸 들으면 저절로 가슴이 편안해지는 걸 느낍니다.” 시조가 인간의 내면에 흐르고 있는 고유의 운율을 갖고 있어 낭송했을 때 더욱 가슴에 와닿는다는 고정국 시인의 말이다.
시조갤러리는 2010년 6월부터 시작해 46호째 발행하고 있다. 중간에 잠깐 쉰 것을 빼고는 한 달에 한 번 꼬박고박 나오고 있는 셈인데, 그에 소요되는 비용과 공력들이 만만치 않다. 발행인 역할을 맡고 있는 고정국 시인과 더불어 김연미 편지국장(시인), 강영미, 김미향(시인), 김인자, 김문규, 김용숙 편집위원 등이 시간을 내고 자비를 털어가면서 수고하고 있다. 시조갤러리를 받아본 사람이면 누구나 감탄하는 것이 아름다운 시조에 배경이 되어주고 있는 사진일 것이다. 사진은 주로 고정국 시인이 직접 찍은 사진이다. 사진작가는 아니지만 평소에 사진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감각을 확인할 수 있다. “거의 매일 출사를 나갑니다. 사진을 찍으러 가는 시간이 참 행복해요. 사진에서 시적 영감을 얻기도 하고, 예기치 않게 마음에 드는 컷을 건져올릴 때가 있습니다.” 사진 작품이 예사롭지 않다는 필자의 물음에 수줍은 듯이 대답하는 고정국 시인의 말이다. 덧붙여서, 시조가 잘 읽히려면 시조 자체가 좋아야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볼거리가 있을 때 더 잘 읽힌다는 설명이다. 그러니까 시조갤러리는 시조와 사진이 어우러진 손바닥 크기만한 우리나라 최초의 월간지가 되는 셈이다. 누구나 손 안에 들고 다니면서 시조를 읊조리게 하고 싶다는 발행 취지에 걸맞는 컨셉이라고 할 수 있다.
시조갤러리를 어떻게하면 받아볼 수 있느냐는 질문이 많다. 매월 첫주에 시조갤러리는 발행되는데, 받아보고 싶다는 의사를 갤러리 발행인이나 편집장에게 알려주면 된다. 무료로 배포하던 것을 지금은 소정의 우표값을 받고 있다. 실제로 들어가는 비용을 충당하기에는 턱도 없는 금액이지만 무료로 독자들에게도 약간의 책임감을 부여한 셈이다. 우리나라 시조가 널리 읽히고, 더불어서 우리 것을 살릴 수 있다면 그 정도는 부담해야하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이지 않을까. 하버드대에서 하이쿠가 정식 교과목이 되어 가르치고 있듯이 우리 시조가 널리 알려져서 영어로도 번역돼 출판되고, 다른 나라 사람도 읊조릴 수 있는 날이 오기만을 기대해본다. 문단에서마저 다소 소외되고 있는 듯한 우리 시조가 누구나 쓰고, 읽는 생활문학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대중들의 관심과 사랑이 더욱 아쉽다. ‘우리 것이 세계화다’라는 슬로건이 구호로만 그쳐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기에 시조갤러리 발행인 고정국 시인은 오늘도 시조를 알리는 일에 동분서주하고 있다. 그의 발걸음에 축복이 있기를 바란다.
강은미 시인/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