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사이펀 신인상(상반기)|구경화
불안 선생 외 5편
안녕을 팝니다
밤은 줄어들어 그늘이 그늘 덮었거든요
나를 흔들 때는 가만히 눈가 누릅니다
약사는 진정제가 없어서 잠을 추천했어요
우리를 다독일 단맛이 필요해
앞집 윗집도 허물지 몰라
젤리로 개발 중이라는데
실험 대상을 찾지 못해 묘연하대요
후원자 기다리다 모종을 삽니다
취미를 바꿔보려고요
젤리가 열릴까요 나비가 울까요
밀었다 당겼다 방 안에서
소녀가 날개를 켜네요
흔들리는 창문까지
선생을 뛰어넘을 때가 왔나 봐요
나타나는 장소가 보도되지만
헤어질 때라 주의하는 거예요
영혼에 주사 놓을 시간이 다가와요
약병 건네는 세 명의 다른 나
대화를 나눕니다 관찰 일지 쓰다 보면
웃자란 나비 떼 부를 테지요
쉿. 눈을 감습니다
감은 눈은 얼마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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木
어깨 중앙입니다 곡선이 시작된 곳이지요
자연에서 오래 만진 결과는 짧은 키로
저보다 큰 세상 받치는 의무입니다
세상이 기운 날부터 목도 한쪽으로만 기웁니다
양말 신을 때 왼손이 양말 쥐고
발가락 밀어 넣어요 뒤꿈치 요리조리 맞춰요
오른손은 아는 척 같은 자세 유지합니다
그새 늘어진 목을 잡아 세웁니다
걸을 때마다 꺼졌다 솟아올랐다 휘청거리지만
반쪽만 활용해온 일상입니다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위인전을 증명해 준 셈이죠
생명이 지닌 목은 두께나 길이가 다르지요
그는 말 꼬는 선수입니다 꼬리말 목을 비틀면
맞은편 말은 멀어져 관계도 좁아져요
서툰 사람에게 이 꼬리쯤은 햇살 같아서
둘레에 맞는 폭으로 양쪽 손목 벌리면
가슴과 머리 잇는 목이 유연해져요
유연해질수록 가까워집니다
맥박이 날뛰는 목덜미 아름다운 섬이에요
입술이 가장 핥고 싶어 하는 과일이지요
바람이 목을 가다듬어 그림 그리네요
당신 왼쪽으로 발목을 밀어요 발등에
내 바닥 올려도 될까요 목이 하나로
포개질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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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너머
소는 기억한다 삼 일 울면
팔려 간 송아지가 찾아온다는 소문
막내가 태어난 해 식구가 된 어미 소
눈 부릅뜨고 먼 산 씹을 때
여물 위에 삶은 밥 얹어주는 남자
구정물에 잠겨 보이지 않는 사과가
사과일까
뿔 세워 따져 먹을 사이가 아닌 사이
곁을 나누기 위한 사과는 곧잘 하는데
어깨 돌린 생물은 돌아오기 어렵다
깨어있는 어둠 속에서 껍질 벗기느라
칼날이 자신을 향했는지 몰라
남자도 구토증을 버리고 싶지만
존재는 보이는 것이고 만져지는 것이라는데
우리가 마주 본다고 같은 생각일지
달콤한 게 아플 때가 있다면
가운데 짓누르는 빨간색일 거야
새끼 떼어 놓고 사과를 곱씹어
불이 푹 꺼진 남자
소의 이마 매만진다 먼저 떠난
막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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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날리는 국경
난민이 입국했다
널 처음 본 건 파나우
수 놓는 아이였어
모든 통로를 막는다
이번에는 철조망 아니라 솜이다
립스틱 바른 입술 고쳐주고
마지막으로 남은 틈
감아주고싶어 아파아파아프간
솜 가르는 검은 손
가르는 가위가 너무 커
오른발은 앞으로 왼발은
채우지 못한 나날
길 없는 곳에서 발견된 발자국
발화되지 못한 눈물은 부화했다
여밀 수 있는 순한 사물로
솜을 물고 가만히 누운 사람
마호가니 무늬 같아
애도가 안쪽을 맴돌지만
부드러운 게 슬플 때가 있지
슬픔은 껴안을수록 가벼워
흘러나오는 소리가 살갗을 찢어
토하기를 반복하는데
처음과 끝인 구멍
동그랗게 말아쥔 뭉치가
바다 위를 날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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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아리는 의자
비워내는 연습입니다
지금도 여럿 생각이 흥건하지요
몇은 밖으로 몇은 안으로 모서리가
타오를 때는 옮겨붙지 않도록
의자가 필요한데요
불 꺼진 화장실 좁은 창고 세탁실보다
바깥이 보이는 창문 앞이나 풍경 그림 걸린
벽 앞에 놓아야 골똘해집니다
머릿속 화면을 펼치고
미지근한 보리차를 마련해 주세요
문제 읽으며 나열하다 보면
하나둘 나뭇가지나 거미줄로 옮겨가는 멍
다리 꼬지 않아야 빠르게 빠져나가요
답이 없는 관객은 모른 척이 답입니다
가장 넓은 대륙이라는 뇌 학자도 있었고
감정을 불어넣느라 아직도 생각 중인
중세기 작가가 의자와 한 몸이 되었다죠
보이지 않는 게 아니라
꼬리 흔들며 물고 다니는 보호색
반은 채우고 나머지는 바람들
끝은 끝으로 마주하고 접으면 부풀어
거울 없이도 자신을 바라보는 거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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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서
오늘이 월요일인가요
동기를 부여하고자 함께한 공간이
퍽 그렇지 못하게 되었어요
진균이 퍼졌다는 이유가 게으른 모서리에
기댄 바 있었습니다
외길은 열려 있어서
웃으며 흔적 지우려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아야 빨리 지워진다죠
방법을 선택하기로 해요
그동안 저의 문장과 동행해 주셔서
고마웠습니다 흰 종이로 지혈하면
지면을 뚫고 나오는 붉은
열매가 익을 즈음 모가지 꺾어야 했나요
모른 척 지나던 옆모습이 굳어
피가 식었습니다
오르막이 옮긴 뿌리이기에
아무는 건 기대하지 않아요
우리의 방은 어두워지고 나는
보이지 않게 자랍니다
딱지가 흘러내릴 때
시작이라는 말보다 아직은
금요일 밤이 좋습니다 삼월이 왔지만
창은 닫고 스위치를 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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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구경화
비가 오는 동안
비를 보고 있었습니다. 건조한 세상을 조용히 적시는 비. 젖기 좋은 금요일 오후였습니다. 비와 기다림에 대해 말했고, 모여든 빗물이 내는 길을 따라 흐르고 있을 때 당선 소식을 받았습니다.
오른쪽으로 주방이 보였고, 구석 책상에서 밤을 세던 시간이 빗소리를 열고 솟구쳤습니다. 사이펀 패밀리로 불러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낮은 곳으로 기울어 바다가 되듯 방향을 잃지 않겠습니다.
아이의 마음을 읽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는 눈으로 손으로 울음으로 말하죠. 엄마가 아이와 소통할 수 있도록 관찰을 돕습니다. 헤아리는 일이 시란 걸 알게 해 준, 준호 승민 서영 사랑합니다. 이젠 풀을 이길 수 없다는 엄마 아부지, 지금처럼만 곁에 있어 주세요. 글벗 김새하 시인에게 고마운 마음 전합니다.
노마드 기지에서 함께 호흡하는 도반들과 기쁨을 나눕니다. 시에 대한 태도를 몸소 보여주신 권애숙 선생님, 고맙습니다. 존경합니다.
어둑해지는데 비가 그치네요. 우리, 젖은 곳을 좀 걸을까요?
구경화
-1975년 경남 합천출생
-동화작가 지도사(키즈에이원)
-현재 부산에서 활동
-kuky7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