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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역사를 보는 한 입장
- 입말, 프로이트 생각을 뒤집어 엎기
일반적으로 철학사를 시대 구분으로 고대철학, 중세철학, 근대철학, 현대철학으로 나누는 것은, 역사 서술에서 거의 왕조사를 따라가는 방식과 같다. 물론 왕조사의 변천을 따라가면, 인류의 의식의 변천을 볼 수 있다고들 한다. 크게 보아 고대 이전에는 인류가 자연과 투쟁이었고, 청동기 시대 전쟁의 설화를 거쳐서 철기시대에 들어서서 힘의 지배로서 참주(황제)제가 이루어졌으며, 그리고 인간이 인도주의(humanitaire)와 세계시민사상의 개입으로 종교의 시대를 거쳤다가, 절대왕권의 시대와 더불어 제도에 의한 입법적 체제로 만들기도 하였고, 그리고 프랑스 대혁명 이후로 인민의 의사를 반영하는 체제의 등장으로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고 한다. 그 제도와 체제의 변화에서 인류, 일반 인간의 코스모폴리탄, 개인주의, 다음으로 인격주의에서 특이성으로 변화의 과정을 찾을 수도 있다.
철기문화의 성립이후 지금까지 거의 4천년으로 보아, 마을(소도시) 집단생활에 익숙하였다고 보고, 철기를 다룸에서 인류가 자연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시기가 거의 기원전 1000년 쯤(3천년 전)으로 잡고, 철기를 다룸에서 익숙한 점은 그 제련의 온도만큼이나 도자기의 기술도 발전하였고, 칼, 창, 화살촉과 같은 무기의 발달이 1인 군주제의 체제(플라톤의 “국가론”에서 트라시마코스가 말하듯이 ‘정의는 강자의 이익’)를 만들었을 것이라고들 한다. 강하다는 것이 ‘뭣’이냐고 묻는 자가 소크라테스이다. “뭣”은 제도 속에서 행할 수 있는 방법, 같은 편을 만들고 위계질서를 만드는 것일까? 우리는 “뭣”을 화두라고 부르고, 행할 수 있는 방식에 대한 여러 상반된 논의를 “선문답”이라고 해도 무방하다고 본다.
일인이 강할까? 집단이 강할까? 물론 고대 그리스의 말 탄 창시합과 같은 일대일의 대결에서 당연히 이기는 자가 강자이다. 다수와 일인 사이에 당연히 다수가 이기지 않을까? 그렇지도 않다는 것이 사회라는 제도 속에서이다. 이런 식으로 논의를 제도로 옮기어, 어느 쪽이 힘이 있느냐는, 편을 가르는 경계를 구분하는 방식에 따라 달라진다. 제도에서 힘 있는 자들의 지배는 편을 잘 가르는 것인가? 편 가르기에는 소피스트의 논증술(la sophistique), 연설가들의 논변술(l’apologétique), 논리적(문법적) 구별에서 논쟁술(l'éristique), 마치 엘레아의 제논처럼 상대의 견해를 파괴하는 변증술(la dialectique), 견해들 사이에 대조에서 조화를 찾는 대화술(le dialogue) 등이 등장한다. 이런 방식들은 사회가 고정되어 있는 한에서 일어나는 방식이다. 어쩌면 하나의 통일성에 대해 더 이상 묻지 않는 경우이다.
소크라테스는 이런 고정된 방식이 아니라, 변화하는 삶의 과정에서 “뭣”을 화두로 삼았고, 인간이면 누구나 그 “뭣”(다이몬)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을 발현 또는 확신하는 길을 찾으려 했다. 소크라테스가 아니라도, 싯달다도, 공자도 이런 “뭣”을 고민했을 것이다. 그런데 “뭣”을 삶의 문제보다, 제도와 체제 속에서 찾으려 할 때, “뭣”을 인식하기 위해 논의 하는 담론의 여러 계열들이 있을 수 있고, 게다가 사회 제도 속에 살기 위해 꼬마 애들에게 교육을 마치 공안처럼 단답식으로 가르치는 방식도 있을 수 있다. 게다가 인식 문제가 아니라, “뭣”을 화두로 삼아 의식의 변화가 있었는지, 또는 4천년이 지나도 의식은 그대로인지, 등을 문제 삼을 수 있다. 이렇게 구별하는 것은 인식 문제에는 철학자의 개인의 관심에 의한 이론적 학설이, 의식 문제는 인류의 삶의 연속성이, 문제로 제기되기 때문일 것이다. 나로서는 벩송이 철학자들에 대해 설명하지만, 올바른 문제제기와 정확성이 철학을 하는 방법으로 제기하였다는 점에서, 또한 “삶이 먼저이고, 사변은 다음이라”는 그의 견해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철학은 우선 이법 또는 자연이 제기한 “뭣”에 대한 탐구일 것이다. 그 자연의 이법은 자기 능동적 변화의 과정에서 이질반복을 계속하고 있다. 매일 아침은 돌아오지만 동일한 반복이 아니라는 점에서 동일반복이 아니라 이질반복이다. 사람들은 이점을 동일반복이라고 착각한다. 그에 변화에 한편으로 보조를 맞추고 다른 한편 이 변화의 방향을 새로이 맞이해야 할 것이다. 자연의 변화, 생명체들의 변형(진화), 인간의 인민화(주체화, 화엄세계, 모두가 신들이 되는 세계) 과정 등을, 벩송과 들뢰즈와 더불어 주목하는 것은, 철학의 역사를 읽는 또 다른 한 관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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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었던 한에서, 철학의 역사의 변천에 대한 시각을 제시한 것은 아마도 헤겔(1770-1831)이 처음인 것 같다. 물론 에밀 브레이어를 읽으면, 철학사를 서술한 철학 사가들이 여럿 있다. 이런 이야기는 다음 절에서 소개할 것이다. 그럼에도 헤겔이 제시한 철학의 변천의 역사는 인간(의식)에서 개인(개인)으로 넘어오는 시기가 아닌가 한다. 그는 철학사에서 인간의 자유의 역사로 보았다고 하면서, 개인의 역할을 강조하였다. 그의 관점은 철학사라기보다 역사에 대한 철학적 관점이라 보여 지는데, 인간은 자유의 실현을 위한 노력을 이법(이성)을 통하여 실현한다고 하면서, 각 시대의 중요 개인에게 이법의 간지(List der Vernunft)를 통하여, 개인의 자유가 아니라 이법(die Vernunft)을 실현한다고 하였다. 이런 점에서 이법은 철학자들의 문제가 아니라 철학의 화두와 같다. 이런 점에서 화두[자유]의 진행과 인간의 자유 실현이라는 문제에서, 헤겔쯤에서야 인간과 개인의 구별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인간은 이법을 내재하고 있으면서, 그 실현의 방식에 목적을 향한 인간 일반이라기보다, 이법의 변증법적 실현을 위하여 인간들 중에서 개인을 도구로 삼아 실현한다고 본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헤겔은 인간의 이상 실현, 즉 자유 실현이 점점 확대되어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았다. 헤겔이 이후의 노장 헤겔주의자들과 소장 헤겔주의자들의 분열이 일어난 것은, 개인의 자유의 실현이라는 측면이 낭만주의의 아이러니에 빠지고, 결국에는 인민(또는 인간일반)의 자유 실현이 없이는 개인의 자유란 추구해야할 과정으로 보게 될 것이다. 아이러니를 넘어서, 게다가 풍자와 파라독사를 넘어서는 이법의 간지가 있을까? 이법이 인식능력인 한에서 파라독사에서 빠지게 되고(불교식 표현으로 개구즉착이 되고), 인식능력을 과신하여 이루었다고 여기는 이상실현은 소크라테스보다 더 심한 아이러니에 빠지게 될 것이다. 탐만치에 벗어나기. 그러면 이런 아이러니와 파라독사를 벗어나기 위해, 소장 헤겔주의자들에게 기대를 걸어도 될까? 우리는 기대를 거는 한 방향이라는 점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 한 방향은 제도와 체제의 변역(變易)과 혁명을 이끌었던 정치경제학이라는 점이다.
헤겔 자유 실현 속에 카톨릭의 정신세계 속에서 유일신의 의지의 실현의 과정이라는 것이 숨어 있다고들 한다. 이와 비슷하게 다음 세대인 꽁트에게서도 이런 신적 세계가 있는데 변증법적 과정이 아니라, 신의 통일성을 실현하려는 방식에 있다고 본 것이다. 꽁트는 프랑스 대혁명을 자유 실현의 과정으로 본 헤겔과 달리, 통일체 안에서 여러 중첩된 견해(doxa)들의 혼돈의 시기로 보았다. 꽁트의 관점이 특이한 것은, 스콜라철학의 말기에 신학적 세계관 속에서도 여러 견해들의 대조를 통한 논증과 담론의 시기가 사상의 발현의 시기였다고 본다. - 대조를 통한 논증과 논쟁은 마치 선문답과 같고, 유학의 통감과 같다(불교가 먼저 였고, 유교가 반성하고, 유럽은 가톨릭이 참주제 만드는 나고 늦었다 - 그리고 르네상스 이래로 형상형이상학이 철학적 담론의 방향을 한 방향으로 인도하면서 철학적 사유가 외골수로 나아갔다고 보았다. 그리고 대혁명 혁명과 이어지는 혁명의 혼란 시기를 지나, 세계를 통일체로서 다루어야 하는 것이다. 이는 신학에서도 형이상학에서도 아니고, 사회라는 실재적 삶의 양식들에서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생시몽의 영향으로 신적 통일성이 먼저 있고, 그 속에서 새로운 기술과 과학의 발달로 인간들의 삶의 양식들을 새롭게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사회제도의 변역과 변형이 철학의 주제가 되어야 한다고 한다. 그의 사회에 대한 실증적 탐구는 의식의 혁명과 진화라기보다, 통일체 속에서 새로운 조직화로 발생으로 보았다. 그에게서 이런 조직화는 물질적(화학적)조직화와 달리 생명적 조직화에 토대를 두고 있다. 이런 점에서 그는 화학의 발달과 생물학의 발달을 수용하였지만, 진화보다는 변역(變易)에 관심을 두었다. 그럼에도 그에게서 철학사적 변천의 과정을 찾는 것은, 시대적으로 보아 중세의 스콜라 철학의 신학, 근대의 이신론적인 형이상학, 그 다음으로 사회학을 통한 변화를 설명한다는 점에서 변형 또는 진화의 관점이 있다고 좋게 평가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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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 전문가인 박홍규는 철학사의 변천의 토대에 대해 매우 간단하게 이야기하였다. 철학에는 시간과 공간을 함께 다룬 플라톤이 있고, 공간의 측면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리고 시간의 측면에서 벩송이 있다. 철학에는 이 세 종류의 철학이 있다고 하였다. 철학사의 흐름은 공간론을 바탕으로 분석과 과학철학이 전개 되었고, 이에 비해 시간론은 표면 밑에 침잠해 수면 밑으로 흐르고 있다가, 꽁트의 실증주의를 거쳐서, - 나로서는 의학과 생리학을 거쳐서 심리학의 도래로 – 의식의 실재성을 내재적으로 다루는 지속의 철학을 창안했다고 한다.
이런 박홍규 교수의 견해를 오랫동안 이해하지 못했지만, 벩송의 전집과 여러 글들을 읽어보면, 또한 벩송이 철학사를 따로 책으로 서술하지 않았지만, 그의 작품의 순서가 철학사와 같고, DI(의식의 무매개적 자료들에 관한 시론, 1889)와 MM(물질과 기억, 1896)에서 심리학 또는 영혼의 실재성을 시간의 측면에서 정립하고 난 뒤에, EC(창조적 진화, 1907) 4장에서 개념론과 관념론의 비판의 역사를 간략하게 서술하였고, MR(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 1932) 4장에서 사회의 도덕과 인류 공동체의 종교에 관한 관점에서 인류의 변역과 미래를 서술하였다. 이런 점들을 엮어서보면, 벩송은 자신의 저술의 순서에 따라 철학사, 또는 철학의 변역(變易)의 과정을 이리저리 얽어 놓았다고 할 수 있다. 즉 그는 “철학”을 논하면서, 인식(la connaissance)의 문제제기보다, 의식(la conscience)의 변전을 제기했다. 의식에 안에는 인식의 여러 방식이 있다는 것을 정태적인 논의보다 역동적 논의로서 다루었다.
철학사에서 의식 또는 영혼이 외부에 또는 상층에 있다고 보는 형이상학(자연학배후) 견해에서 시작하였다고 보았다. 물론 이런 견해는 아리스토텔레스 이후의 관점이다. 벩송도 소크라테스 이전의 관점처럼, 의식이 자연의 이법과 더불어 (동적으로) 변전한다고 보았으며, 하며, 그는 이런 생각을 매우 중요시하였다. 그의 “고대철학 강의”와 “플로티노스 강의”를 통하여,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사, 그리고 그리스 이전의 철학에 대해 설명하였다. 그러나 이런 강의는 일반인에게 각성 또는 사유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수준이지 연구자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고 본다. 그런데 꼴레쥬 드 프랑스의 세 강의는 전혀 다르고, 철학사를 충분히 깊이있게 다룬 것이다. “시간관념의 역사(1902-1903)”, “기억이론의 역사(1903-1904)”, “자유문제의 진화(1904-1905)”를 3년에 걸쳐서 다루었다. 제목만 보아도 철학사와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강의록들이 2016년 이후에 나와서 논의 중에 있다. [<마실에서 천사흘밤>에서 연재하였다.]
* 벩송의 저술과 논문들, 강의록 등이 1999년까지 나온 내용들을 섭렵하고서, 그의 철학사적 관점을, 나로서는 정리한 적이 있다. <벩송의 철학사의 관점, 두 가지 참조>
내가 보기에, 벩송은 서양철학사를 잘 이해하고서, 여러 저술에 흩어 놓았다. 아마도 그가 흩어 놓은 것은, 당대의 우파인 소르본대학과 극우파인 악시옹 프랑세즈(카톨릭)와 다투지 않으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 내가 보기에 헤겔도 꽁트도 카톨릭과 다툰 철학이 아니라 포획된 철학이었다. - 벩송은 소크라테스처럼 “뭣”에 대한 근원적 물음을 제기하면서 2천5백년 서양철학사를 뒤집어엎었다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많은 철학자들이 말하는 서양철학이 정태적이고 유일 신학이 동태적이라는 관점은 착각이라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탈레스로부터 헤라클레이토스로 이르는 철학이 동태적이고, 퓌타고라스와 (크세노파네스와 더불어) 파르메니데스로 나가는 길과 이에 어깨에 목말을 타고 있는 유일신앙이 정태적이라는 것이다. 물로 그는 이런 표현을 드러나게 쓰지 않았다.
벩송은 플로티노스를 빌려서, 시간의 철학과 공간의 철학을 구분했을 것이고, 그리고 이를 참조하여 고대철학에서부터 네 가지 “볼 수 없는 것(l’invisible)”을 다루는 방식을 철학사적으로 전개 했다고 볼 수 있다. ‘볼 수 없는 것’들 네 가지란, 시간과 공간, 이데아와 원자이다. 그는 이 오관(안이비설신, 상식)을 통한 대상화 또는 일반화가 고대 철학의 상층 철학이라 보았다. 그 대상화와 상징화의 철학이 스콜라철학에서 정교하게 또는 세밀하게 다루었다고 하더라도, 그 “뭣”을 하늘 저넘어처럼 동떨어진 선전제로 두면서, 철학사를 왜곡의 길로 가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 상층의 철학이 갈릴레이의 빗금을 따라 표면으로 내려와, 르네상스 이래의 철학은 양식(le bon sens 일방향)으로 향하는 철학이 되었는데, 수와 길이, 즉 세는 것과 재는 것을 통합하는 데카르트의 좌표기하학의 힘을 입어서 미세함과 세분화의 문제를 해결한 듯이 보였고, 게다가 길이의 확장에서 무한을 잴 수 없지만 상상작용으로 그어 나갈 수 있다고 보았듯이, 수적으로 다루면서 오해와 미몽에서 벗어나게 하는 세분화의 연결도 좌표가 해결해 줄 수 있었다. 표면의 너비/부피(외연이 아니라)가 실재한다고 여기면서 철학에서 “뭣”의 문제는 현실에서 실재성으로 다루어질 수 있다고 믿었다.
벩송은 상층이 실재한다고 여긴 철학 다음으로 표면(길이 부피)이 실재한다는 양식에 의한 일반화가 생명과 영혼의 문제에서는 해답을 찾지 못했다고 본다. 표면에서 깊이(심층)로 들어가야만 한다. 르네상스이래로 갈릴레이의 영향으로 망원경과 진자, 그 다음으로 현미경이란 도구가 발달하면서, ‘볼 수 없는 것’(원자)의 내부를 가늠하게 될 것이다. 그 내부는 빛의 발산이 아닌가? 빛이라니 열(熱)이지. 운동의 설명에서 열의 이동에 대한 새로운 관점들이 전개되었고, 화학에서 원자들이 움직이지 않는 형상(데모크리토스 견해)과 달리 그 원자의 실재적 모습은 움직이고 있는 원자와 전자의 결합체이라는 것도 밝혀졌다. 내부로 들어가 물리적 운동의 관점이 전개되는 가운데, 의식(영혼)의 문제 제기는 혼란스러웠다.
데카르트 이래로 영혼과 신체의 만나는 위치 또는 장소를 규정하려고 했지만, 담론의 방식은 스콜라철학에 머물렀기에 영혼은 신적인 정신과, 신체는 물질과 연관으로 정립하려는 시도들이 있었다. 이에 비해 “빛들 세기”(18세기)의 자연론자들은 영혼은 (에피쿠로스학파의 견해를 이어받아) 물질로부터 생성와 변형을 이룬다고 설명하려 했다. 그러면 신적 정신은 무엇이 되는가? 외적 기계의 작용(deus ex machina, 데우스 엑스 마쉬나)이 될 것인가? 유일신앙자들은 물질로부터 동물이 생성된다고 하더라도, 인간은 생성되지 않고 창조되었다는 확고한 믿음으로, “빛의 세기”의 유물론자들을 배척했다. 유일신앙자들은 인간의 의식이 인식에서 다른 역량을 지녔으며, 그 역량은 (신적) 정신으로부터 온 것이라는 독단(도그마)은 여전히 계속되었다. 라이프니츠가 의식의 단일성(모나드)을 말하면서도, 생명 있는 존재의 의식의 이층가옥 구조처럼 설명했다고 하더라도, 그 의식은 신의 모나드에 반영으로 이해되었다. ‘볼 수 없는 것’의 두 가지(이데아와 원자) 중에서 이데아는 상상작용의 것이라고 하여 유명론에서 이미 실재성에서 배제되었다. 그럼에도 원자에 대한 내재성의 정확한 실증성이 도래하기까지, 상식(일방향)이 담론을 지배하고 있었다. 원자의 자기 운동은, 사실상 갈릴레이의 상대성에서 모든 지구상의 정태적인 것도 지구의 자전운동과 함께 운동하고 있다는 설명이 가능하듯이, 원자도 전자와 더불어 운동 중에 있다는 것도 가능하게 될 것이다(원자와 전자의 운동과 에너지는 뉴턴의 만유인력과 상관없다). 표면에서 내부(깊이)로 들어가면, 상상작용은 의식 내부의 활동인가, 물질과 연관 속에서 외부의 활동인가에 대해, 여전히 죽음 이후에도 영원히 산다는 정신(또는 영혼)을 믿는 유일신앙자들이 지배하는 학설(독단)들 속에서 의식은 정신의 작품이고, 신체는 물질들의 작품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유물론은 그리 쉽게 설명할 수 있는 학설(독단)이 아니다. 아직 더 깊이의 탐구가 필요했다.
생물학과 생리학의 발전은 생명체 속에서 의식이 생성된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그럼에도 인간의 생명만은 (신적) 정신의 생산물이라는 인식은 여전했고, 지금도 믿고 싶어하고 있다. 의식이 신적 생산이라는 것을, 중세 유명론 이래로 상징으로서 여겨, 상징적 정신을 더 이상 논의하지 않는다. 제논의 변증법을 사용하듯이, 상대의 논의의 고정에 부조리를 제시하면서, 신앙론자들은 정신의 실재성이 여전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유물론자는 이 부조리를 반박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다시 한 번, 원자 또는 수(數)의 단위는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invisible). 그럼에도 이런 볼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관점을 지니고, 전체의 통일성과 완전성을 주장하는 유일신앙을 반박할 수 있는 증거(징후 또는 증상)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인식으로서 불가능하지만, “의식”이 실재성이라는 생각은 화두로서 “뭣”의 문제제기에 있었다. 인식론자는 화두를 제외하고, 문제거리를 선문답으로서 논의의 대상으로 삼는다. 이들이 고대 소크라테스 시대의 논증술(la sophistique), 논변술(l’apologétique), 논쟁술(l'éristique), 변증술(la dialectique), 대화술(le dialogue)에 머물고 있을 뿐인데, 이 변증술에 문제점을 제기한 사람들은 많았으나, 변증술이 “뭣”을 화두로 삼는지에 대한 물음을 제대로 다룬 이는 없었다는 것이다. 벩송은 DI에서 변증술(변증법)의 착각은 자신들의 생각을 믿고 있으면서, 그 믿음의 아르케를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일신앙자들도 자신들의 신을 믿고 있으면서, 그 신이 무어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개구즉착 동념즉괴라는 것을 그들 유일신앙자들과 파르메니데스주의자들이 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벗어나는 것은 19세기 후반 비유클리드 기하학과 제논의 독사를 파라독사라고 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벩송은, 그들의 사유의 전제로서, 원자든, 점이든, 수이든 현실의 표면에서 정태적이라고 하는 것이 찰나(un moment)에 지나지 않고, 그것들이 움직이고 변화하는 과정중이라는 점에서 그것들이 순간(un instant)이라고 한다. 찰나는 잘라진 단위 즉 불변하고 움직이지 않고, 순간은 지속하는 단위로서 움직이고 변하며 변형하는 것이다. 이 후자에 영혼이 있다. 정신은 전자에 대해 논의를 하고 발설하고 판단하는 인식적 태도이다. 영혼은 살아가는 동안에 움직이고 변하면서도 자기 동일성(정체성)을 유지하려고 한다. 이 후자는 생명체로서 물질의 조직화(유기체화)로서 성립하는 것이다. 영혼은 물질에서 생성, 변화, 변형하는 것이다. 이로서 벩송은 서양철학사에서 과거 영혼의 관점을 뒤엎음으로서, 꽁뜨가 조직화 개념으로 사회학을 열었듯이, 벩송은 우주발생론으로서 유기체화를 통해 심리학의 길을 열었다.
이런 심리학의 도래에, 유일신앙자들이 불안했다. 신을 잃어버리고 인간의 미천한 동물처럼 생명체의 한 부류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영혼이 자기 동일성(정체성)을 유지하려는 방식을 꼬집어서, 정신의 동일성에 합일하는 또는 통일성에 부합하려는 욕망이 아닌가라고 말할 것이다. 유일신앙자는 철학사에서 정신의 실재성이 “뭣”인지, 그 실증, 증거를 말함이 없이 있다고, 맹목적으로 주장한다. (신이 갑자기 부여한) 이런 정신이 인간에게 영혼을 가져다주고, 그리고 개인의 정체성에서 자아의 성립과 정립을 이룬다고 주장하는 것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다. 이런 정신은 가정에서 생겨난다. 그것도 유일신앙을 믿는 가정에서, 그리고 사회와 국가가 그를 보증한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유일신앙자들이 영혼의 창조설만큼이나 열광하였다. 그러나 실증적 사실에서 멜라니 클라인의 유아의 탐구, 그리고 많은 1세 미만의 탐구에서 프로이트의 학설(독단)에 맞는 이야기가 없다는 것을 알아챈다.
벩송이 영혼은 생명체의 진화의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생성하는, 창발하는 것이라 점에서 창조적 진화를 말할 때, 유일신상의 신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태어나는 아이가 그 가정과 사회의 정체성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할 것이다. 그런가? 생물학적 삶의 터전에서 사는 방식에 따라, 개인과 인격의 정체성(l’identité)이 다르다. 영혼은 기억의 총체와 더불어 생성하고, 변하고, 확장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신분석학은 영혼이 정신의 작용임을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그들은 그 정신이 무엇인가?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단지 인간의 공통성, 보편성이라고 한다. 그 보편성은 고대의 상식의 기준이었고, 공통성은 르네상스 이후의 양식을 토대로 한 것이다. 이로써 정신분석학이 유럽의 가정, 제도, 국가의 보존에 관여하며, 그로써 순환론적으로 그 체제로부터 보장 받는 것이다. 이런 악순환이 정신론(유심론) 또는 주지주의자들의 착각이라고 벩송이 여러 번 말한다. 이를 이어 받은 이가 들뢰즈이다. 들뢰즈는 프로이트와 라깡이 착각에 빠졌다고 말할 것이다. 철학사는 정태적 사고가 무너지고 동태적 사유로 나가는가? - 그렇지 않다. 정태적 사고를 알아야 통태적 사유로 나간다. 마치 문헌학과 문헌통감을 거쳐서야 꽁트의 동태적 사고의 씨앗이 나오듯이 말이다.
여기서 들뢰즈에 대해 한마디 더하면, 그는 이런 순환론적 악순환의 이야기를 정신분석학이 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다섯 가지 오류를 범했다고 “안티외디푸스”에서 말했다. 그 다섯가지의 세 가지는 분명히 벩송이 창조적 진화에서 제기한 것이다. 그리고 두 가지 첨가는 현실과 표면의 연결(순접과 이접 포함)에서 이데아와 원자처럼 연결이 아니라, 표면에서 사건들은 다양하게 엮이어 관계의 변항들이 많다는 것이다. 즉 근대의 양식(일방향)과 이차함수, 3차 함수를 넘어서 다차 함수로 엮여져 있다. 이런 복잡성은 항들의 연관을 넘어서 (교향곡과 같은) 조성의 차원이다. 삶의 터전은 다항들의 연관과 조성으로, 하나의 항의 적용과 달리 적용되어야 하고, 또한 미래의 예상참여도 다항들의 합의와 계약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순환론적 변증법으로 통일성으로 향한다고 하거나, 보편성을 확보하려 한다고 하는 독단은 여전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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벩송과 들뢰즈 사이에서 같은 논의 방식은 여럿 있지만, 앞에서 지적한 세 가지 착각에 대한 논의는 벩송에게서는 주지주의 또는 유심론(정신주의, 카톨릭의 유일신앙)을 비판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고, 그리고 영혼론(심리학)의 정립을 위한 토대였다. 벩송이 심리학을 정립하였다는 것은, 철학사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과학론의 마지막인 심리학이 무너졌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유일신앙에 깊이 물들은 정신론자들은 여전히 언어를 들이댄다. 자연론자, 기억론자, 심층론자 등 너희들도 언어를 사용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들뢰즈의 대답은 간단했다. 정신분석학자 너희들은 모든 이야기를 언어를 통해 가정(유일신앙)으로 환원했지, 그 가정에 어긋나면 경찰을 부르지 라고 비꼰다. 이들은 언어 소통과 명령의 패거리 속에 있다는 것이다. 삶의 먼저인 철학에서 입말은 그렇지 않다. 들뢰즈는 언어가 제도 속에서 말씀과 문자가 먼저가 아니라, 생명 속에서 입말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이 흥미있는 이야기가 언어 논리학의 아리스토텔레스를 전복한다. 제반 과학들이 철학사적으로 모두 전복되었다.
들뢰즈의 한 작업이 있다. 너희들이 이야기했듯이, 나도 이야기 좀 할게 하면서 쓴 책이 “의미(방향)의 논리”이다. 이 책을 깊이 들여다보면, 서양 철학사가 왜 왜곡되어 흘러갈 수 밖에 없었는지를 잘 서술하고 있다. 그는 플라톤주의(주지주의)를 전복하기 위하여, 초기 스토아의 시간-공간론과 언어론을 끌어낸다. 시간-공간론은 철학사에서 있어왔지만 전도된 방식의 길은 벩송이 만든 길이다. 따라서 심리학이 전도되었다. 그런데 벩송이 이데아론도 착각이라 하였는데, 들뢰즈는 정신분석학을 대상으로 착각을 넘어서, 소피스트의 소피즘에 가까운 이야기들이라고 여러 방식으로 비판한다(개구즉착이거나 동념즉괴에 속한다). 들뢰즈의 이 책의 장점은 서양 철학사에서 상층을 지배하던, 정신주의, 주지주의, 유일신앙주의, 분석주의의 전복 이후에 마지막 남은 언어학의 전복이었다. 이것이 들뢰즈가 행한 프로이트에 대한 구강성의 비판이다.
영혼과 신체의 분화는 언어 속에 남아있는 것이 아니며, 외디푸스라는 성관심(la sexualité)에 국한 된 것이 아니다. 들뢰즈의 구강성은 들숨과 날숨, 먹고 마시고, 말하고, 빨고, 사랑하고, 생명활동을 하는 과정 중인 것을 가장 잘 드러내는 창구이다. 이 창구는 엄마-아빠라는 가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터전, 생명체의 자기 생성(하기, 되기)과 변전의 과정이다. 들뢰즈의 구강성은, 프로이트의 구강성[구순기]을 뒤엎은 것이기도 하다. 이런 구강성의 논의를 제기한 것은 멜라니 클라인이었고, 내가 생각하기에 아마도, 가타리가 들뢰즈를 만나게 되는 단초도 “구강성”에 있다고 본다. 생물학적으로 유기체와의 다양한 발현은 구강성이고 얼굴일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뢰즈가 정신분석학의 전복으로서 쓴 것이다. 이로써 서양철학사의 학문의 체계의 완전성을 주장하던 수학의 반전(비유클리드 기하학) 이후에, 심리학의 전복, 언어 논리학의 전복으로 유일신앙의 지위가 무너졌다. 그럼에도 그 유일신앙은 제도 속에서 국가 권력과 지식 권위에 결탁하여(패거리를 만들어) 제도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 신화와 시대가 길었지만 바뀌듯이, 이제 이 세 패거리들의 허구가 밝혀졌음에도 아직은 패거리시대가 여전해 보이지만, 21세기에 변역의 과정을 걷고 있는 중이다.
삶의 터전에서, 뛰어난 인식능력을 가졌다고 하면서 아직도 인류가 잘 만들지 못하고 있지만, ‘능력에 따라, 필요에 따라’라는 공동체의 상부상조로 또는 공산사회로 창설해 나갈 것이다. 벩송과 들뢰즈의 작업은 맑스가 국가 속에서 인민의 자유를 말하듯이, 삶과 사유 속에서 인민이 화엄세상에 살 수 있는 지속을 만들고자 한 것이다.
철학사는 철학자의 문헌이나 이 문헌들의 비평을 거쳐서, 인간 의식의 변화를 통하여(의식화를 통하여) 이렇게 흘러가고 있다. (6:40, 57ukj) (7:34, 57UL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