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팔광
동광
비광
일광: 일광은 별다른 의미가 없다.
<Point>
고도리(ごどり) = ご(五) + とり(鳥) : 5마리의 새를 뜻함.
와리바시 문화와 숟가락 문화
이 지구상에는 다양한 음식문화가 발달되어 있으며 그 음식을 먹는 도구 또한 여러 종류가 있다. 빵을 주식으로 해온 서양의 경우는 대체로 포크나 나이프류가 많고 밥을 주식으로 해 온 동양에서는 숟가락과 젓가락이 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같은 동양문화권에 속하며 쌀을 주식으로 국을 부식으로 하는 일본과 우리는 그것을 먹는 도구면에서 차이를 나타낸다. 우리는 숟가락과 젓가락을 번갈아 사용하지만 일본인들은 국은 손으로 들어 마시고, 젓가락 하나로만 식사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일본에는 우리의 찌개 형태에 해당하는 건더기가 많은 국은 거의 없다. 이러한 연유로 인해서 우리보다 많은 젓가락 종류가 발달하게 되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주로 우리나라의 일반음식점에서 사용하던 위생저(わりばし)이다.
이러한 わりばし가 일본의 강점과 함께 우리에게 전달되어 わりばし라는 말과 함께 자주 사용되곤 했으나 현재는 우리도 자연보호화 자원낭비를 방지하기 위해서 위생저(わりばし)의 사용을 규제하고 있다.
자, 이제 わりばし라는 단어의 형성 배경을 알아보자.
わりばし는 와리(わり=나눔)라는 단어와 하시(はし=젓가락)라는 단어가 합쳐진 복합어이다. 그리고, 이 경우 [わり + はし]가 [わりばし]로 바뀐 것은 일본어는 두 개의 단어가 결합되어 한 단어가 되는 경우는 대체로 뒤에 오는 단어의 첫글자가 탁음이 된다는 규칙 때문이다.
칸즈메(かんづめ/통조림)와 벤또(べんとう/도시락)
음식(たべもの)이란 대체로 일정한 공간에 펼쳐놓고 먹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왕래와 이동이 빈번해 지면서 휴대가 편리한 칸즈메나 벤또류의 발달을 가져왔다. 통조림은 음식을 오래 보존할 수 있고, 운반과 사용의 편리성이 뛰어나기 때문에 전세계적으로 애용되고 있으며, 모양과 규격이 대체로 일정하다.
그러나, 도시락은 음식을 가지고 다니면서 편리한 시간에 끼니를 때우는 수단으로 발전되어 온 것이다. 이러한 도시락이 가장 발달되어있고 종류가 많은 곳이 바로 일본이다.
단적인 예로 일본의 각 역(えき)에서 파는 에끼벤(えきべん)의 종류가 천종류가 넘는다는 사실만으로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어떠한 연유로 일본은 각양각색의 도시락이 발달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밥(ごはん)과 같이 먹는 반찬(おかず)에서 그 연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일본과 우리는 같은 쌀 문화권으므로 주식은 같으나, 다꾸앙(たくあん)과 깍두기처럼 똑같은 재료로 만든 반찬의 형태가 전혀 다르다. 즉, 우리는 대부분의 반찬에 국물(しる)이 있는데 비해 일본음식은 국물과 건더기를 따로 분리할 수 있는 형태가 많다는 것이다. 물론 인스턴트 식품의 범람으로 동일한 형태로 바뀐 반찬류도 그 수를 헤아리기어려운 오늘날에 그 차이점을 논하는 것이 무의미할 지는 모르지만 비슷하면서도 차이점이 많은 일본문화를 접하면서 피상적인 왜색 문화를 논하기 보다는 좀더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실체규명을 위한 연구가 각 분야에서 심층적으로 활발히 전개되면 일본을 좀더 쉽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입빠이(いっぱい) 넣어 주세요
아찔한 옷차림에 요란한 몸놀림으로 고객들의 시선을 끄는 주유소가 날로 늘어날 정도로 과거의 주유소와는 너무나도 다른 변화에 눈이 휘둥그래질 정도이지만 아직도 우리가 주유소에서 주유를 할 때 [입빠이(いっぱい)넣어 주세요]라는 말을 쉽게, 그리고 자주 사용해 왔다. 이 또한 일본어이므로 [가득 채워주세요]라는 우리말로 바꿔써야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물론 최근에는[입빠이(いっぱい)] 대신에 [가득]이라는 우리말을 쓰는 사람도 많아진 것도 사실이기는 하지만 아직도 나이드신 분들은 (いっぱい)라는 말을 자주 쓴다.
<Point>
(いっぱい)는 두가지 뜻을 가지고 있다.
가득 : あぶらをいっぱいいれる/기름을 가득 넣다
한잔 : 会社(かいしゃ)が終(お)わっていっぱいやりましょか/
회사가 끝나고 한잔 하실까요?
일본의 수도 東京(とうきょう)
1573년 むろまち(室町)막부가 おだ のぶなが(織田信長)에 의해 완전히 멸망한 후 일본은 끝없는 전쟁으로 빠져들었다.
전쟁에서 최초의 승리자, 즉 장군(しょうぐん;將軍)이 된 おだ のぶなが는 1568년 京都(きょうと)성을 점령하여 입성하게 된다. 이리하여 천하의 패권이 おだ のぶなが에게로 가는 듯 했으나, おだ のぶなが는 あけち みつひで(明智光秀)라는 장수의 습격을 받아 암살당하고 만다. 그후 あけち みつひで는 とよとみ ひでよし(豊臣秀吉) 에게 죽게되어, 일본의 새로운 승리자로서 とよとみ ひでよし가 등장하게 된다.
새롭게 승리자가 된 とよと みひでよし는 국내의 불만 세력 제거와 내전의 종식을 위해 1592년 무모한 조선침략을 감행하기에 이른다. 이 전쟁은 とよとみ ひでよし가 사망하게 되는 1598년까지 7년동안 계속되어 조선,중국 그리고 일본의 수많은 인적,물적 피해를 가져오게 되어 16세기의 출발을 어둡게 하였다. とよとみ ひでよし가 죽고 난 후 그의 어린 아들 とよとみ ひでより(豊臣秀康)에게 명목상의 대권은 이어졌으나, 기회가 오기를 끝없는 인내력으로 묵묵히 기다려온 とくがわ いえやす(德川家康)가 기회를 잡아 정권을 장악하게 된다. 이리하여 とくがわ いえやす는 1599년 가을 おおさか(大阪)성에 입성하고, 1603년 しょうぐん칭호도 얻게 되지만 불만세력이 많은 관계로 같은 해 수도를 자신의 본거지였던 えど(江戶)로 옮기고 えど막부를 창시하게 되는 것이다.
이 えど막부를 とくがわ(德川)막부라고도 하며, 이 とくがわ막부는 일본에서 메이지 이신 (めいじいしん;明治維新 1863년)이 단행되기까지 약 260년간 정권을 잡고 새로운 무인정권시대를 열게 된 것이다. 여기서 えど라고 하는 것은 동경의 옛 이름으로, 동경 지방의 풍속, 관습, 관례 등 전통적인 것을 나타내는 많은 단어에 아직도 えど라는 글자가 자주 붙어 다닌다.
사무라이(サムライ)에서 야쿠자(ヤクザ)까지
우리나라의 지배 계층 문화 또는 정신을 양반문화와 선비정신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 이와 대별되는 일본문화, 일본정신을 무사들의 문화와 사무라이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의 선비(양반)는 돈/권력/명예를 한꺼번에 움켜지려고 치열한 싸움을 벌렸으나 일본의 사무라이는 돈과 명예를 상인과 각계 전문가의 몫으로 돌리고 권력만을 위한 경쟁을 벌인 경우가 많다.
이러한 관점에서 선비는 명분을 중시했고, 사무라이는 의리를 소중히 했다. 이러한 차이점은 일본 문화는 주로 실리위주의 양명학에 기본 줄기를 두고 있으며, 우리문화는 명분을 중시하는 성리학에 그 근간을 두고 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그러나 의리에 충실하던 사무라이가 제국주의 시대에는 약탈과 살육을 감행하는 낭인그룹으로 나아가 현대사회에서는 야쿠자라는 국제적인 범죄집단으로 발전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야쿠자란 말이 다름 아닌 화투놀이에서 유래된 말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화투놀이 중에서 세장으로 뒤자리가 10단위가 되게 해서 남는 숫자가 높은 쪽이 이기는 게임이 있는데, 야쿠자란 8(ヤ), 9(ク), 3(ザ)이므로 합치면, 20이 된다. 그러므로 게임에서 최하위의 숫자가 되는데 이것은 어느 숫자와도 겨룰 수 없으니 쓸모없는 것이 된다. 이와같이 쓸모없는 것, 쓸모없는 인간을 야쿠자라고 하게 된 것이다.
말고기를 좋아하는 일본인들
일본요리(日本料理)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것으로 「すし 생선초밥」「さしみ 생선회」「かばやき 장어구이」「てんぷら 튀김」「そば 메밀국수」「おでん 꼬치」「すきやき 전골」「てんぱんやき 철판구이」등등이 있지만「말고기(ばにく)」에 대한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것은 우리의 보신탕이 유명(?)하지만 널리 알릴 수 없는 요리인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일본인들은 「말고기(ばにく)」를 즐겨 먹는다. 그 중에서도 특히 「육회」즉, 말의 날고기를 회로 만든 요리가 「진미(珍味)」로서 식도락가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한다. 일본 「ながのけん(長野県)」의 「まつもと(松本)」라는 곳은 「말고기(ばにく)」요리로 유명하며, 여기서는 시내 어느 푸줏간에 가도 반드시 말고기를 팔고 있다. 그래서 인지는 몰라도 이곳에 가면, 사람들은 특별히 더 말고기 육회를 권한다고 한다.
「말고기(ばにく)」는「さくらにく」라고도 하는데, 그 이유는 말고기가 벚꽃잎의 색깔과 같이 연분홍빛을 띠고 있는 데서 생겨난 말이다. 옛날에 말고기 요리집 간판에는 소가 뻗어 있고 그 위에 말이 앞발을 들고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고 한다. 마치 다운 당한 권투선수 앞에서 승리한 선수가 손을 들고 환호성을 지르듯이 말이다.
또한 말에서 나온 합성어로 「うまかった」즉「馬勝(うまかった) =말이 이겼다.」와 「旨(うま)かった=맛이 있었다.」라는 말이 있다. 일본에서는 이와 같이 발음이 비슷하거나 같은 어휘로 유머식 합성어를 자주 만들어 즐겨 쓰고 있다.
쓰리(すり)와 소매치기
도시의 혼잡한 지하철이나 시내버스,시장 등은 소매치기들의 주요 활동 무대가 되곤 하는데,우리는 흔히 소매치기를 당했을 때 『쓰리 당했다!』라고 한다. 이때 『쓰리』란 일본어이고, 그 정확한 발음은 『스리(すり)』이다.
이 『스리(すり)라는 말은 일본어의 する(掏る):소매치기하다』라는 동사에서 명사로 전성된 것으로 우리말 뜻은『소매치기』이다. 그리고 『すり』라는 말이 우리말처럼 쓰이는 과정에서 격음화되어(소매치기를 당했으므로 감정이 격화되어 발음이 강해지지 않았을까?)『쓰리』라는 말로 쓰이게 된 것이다.
※ 동사의 명사화
동사를 명사화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먼저 동사원형을 ます형으로 바꾼 다음, ます를 없애 버리면 명사가 된다. 그리고 ます형에서 ます를 없앤 것을 문법용어로는 동사의 중지형 또는 종지형이라고 부르며,말을 끊어서 이야기할 때 사용한다.
·おしえる→おしえます(가르칩니다)→おしえ(가르침)
·こたえる→こたえます(대답합니다)→こたえ(대답)
·やすむ→やすみます(쉽니다)→やすみ(휴일)
일본은 만화 천국이랍니다.
약 2세기에 걸친 파벌간의 정권쟁탈을 종식시키고 정권을 장악한 とくがわいえやす(徳川家康)는 とくがわばくふ(徳川幕府)를 열었다. 오랜 기간의 혼란을 극복한 徳川幕府는 기본적인 정책을 대외적인 문제보다는 국내문제에 우선을 두었다. 그 결과 대외적인 외교문제에 있어서는 무관심에 가까울 정도로 소극적이 태도를 취했으나,내부적으로는 체제유지를 위한 국내 정치의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설정해 유교적 가치관을 통치의 최고 이념으로 추구했다.
그러므로めいじいしん(明治維新) 단행하기까지는 ながさき(長崎)를 통해서만 제한된 교역이 행해졌으며, 부정기적인 조선 통신사에 의해서만 선진문화의 유입이 가능했다. 이렇게 좁은 통로의 외부문화 유입과는 상반되게 내부적으로는 모처럼의 평화스러운 시대를 맞이해 성리학에 기초한 수준 높은 정신 문화를 이루려는 시도를 부지런히 했다.
임진왜란을 계기로 일본에 포로로 잡혀간 지식인들에게서 전해진 율곡과 퇴계의 학문을 숭상해 국민 교화에 열을 올릴 것도 새로운 정신문화 추구의 한 단면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그 시대의 식자들은 주로 한자를 문자표현의 수단으로 많이 사용했으므로 일반인들은 그 뜻을 헤아릴 수 없었다.
이러한 것이 그림을 통한 전달 방식을 발전시키는데 절대적인 영향을 주게 되었으며,때마침 근대 국가의 태동을 눈앞에 두고 문자 해독력이 약한 ちょうにん(町人)이라고 불리는 상인계급의 부상이 그림 책의 수요를 폭발적으로 자극하게 되었고, 이것이 결국은 현재의 만화라는 형태의 그림책으로 완성 발전하게 된 것이다.
첫댓글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