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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우편배달부] 박정화
S#1. 길
80년대 초. 한적한 가로수 길에 자전거를 탄 우체부 나타난다.
S#2. 고아원 마당
아이들 놀고 있고, 어린 현우(7살) 한쪽 구석에서 땅바닥에 그림그리고 있다.
우체부 들어오자 현우 그에게로 뛰어간다. 우체부는 보모와 인사나누고 우편물 주고 간다.
보모 우편물을 뒤적이며 현관으로 들어가고 현우 멀거니 그 모습 보고 있다.
누군가 뒤에서 머리를 툭 친다. 돌아보면 10살 가량의 소년 공을 가지고 장난하며
소년 : 야, 꼬마야. 내가 인생의 선배로서 한 마디 하겠는데, 아무 소용없으니까 기다리지 마라. 알았냐?
현우 : (빤히 보면)
소년 : 니네 엄마가 편지 한다고 그랬지? 그거 뻥이야, 뻥. 두고 봐, 내 말이 틀리나.
소년 친구들에게 공 던지고 뛰어간다. 현우 화나서 노려본다.
S#3. 고아원 입구 몽따지.
고아원 입구에서 현우 기다리고 있다.
우체부 자전거타고 나타나면 현우 다가간다. 우체부 우편물을 뒤적여보고 없다고 한다. 현우 낙심.
다른 날, 현우 기다리고 우체부 편지 없다고 머리젓는다.
비오는 날, 망가진 우산쓰고 기다리는 현우. 우비입고 나타나는 우체부. 그러나 기다리는 편지는 없고.
낙심하는 현우에게 우체부 사탕 하나를 꺼내 주며 웃어준다.
S#4. 시골길
우체부 자전거 뒤에 현우 태우고 달리고 있다. 친해진 두 사람 바람 속을 즐겁게 달린다.
갈림길이 나오자 우체부 자전거를 멈추고
우체부1 : 자, 오늘은 어느 쪽 길로 먼저 갈까?
하며 모자를 벗어 공중으로 던진다. 모자 공중으로 떴다가 떨어지면 현우 그 쪽을 가리키며
현우 : 아저씨, 저쪽!
우체부 그쪽 길로 가며 모자를 주워 현우에게 거꾸로 씌워준다.
우체부의 자전거 지평선 너머로 사라져간다.
S#5. 시골길
20년 후. 한적하고 아름다운 시골길. 지평선으로부터 우체부 현우의 오토바이 나타난다.
현우 우체부 모자를 앞뒤 거꾸로 쓰고 있다.
S#6. 시골 마을
현우 열심히 우편물 배달한다.
S#7. 길의원 근처
현우 우편물 배달하며 길의원 앞을 지나다가 문득 멈춘다.
혹시 안이 보일까해서 헛되이 목을 빼고 기웃거리다가 행인이 지나가자 얼른 걸음을 재촉해서 근처의 우체통으로 간다.
우편물을 수거하려고 우체통 열면 비어있다. 도로 우체통 잠그고 오토바이에 오른다.
길의원에서 지은 우편봉투 들고 나오다 막 떠나려는 현우의 모습을 본다. 지은 급해져서 ‘아저씨!’ 외치며 뛰어간다.
현우 오토바이 시동거느라 듣지 못하고 출발한다. 지은 ‘아저씨! 아저씨!’ 부르며 필사적으로 뛰어간다.
현우 언뜻 돌아본다. 지은 반가워서 편지 흔들며 뛰어오는 모습이 인상적으로 보인다.
현우 오토바이를 멈추며 지은을 돌아보다가 오토바이와 함께 넘어진다.
일어나서 오토바이를 세우는 동안 지은 숨차게 다가오며
지은 : 어떡해. 안 다쳤어요, 아저씨?
현우 : 네...주세요, 편지.
지은 : (편지 주며) 오늘 저한테 편지온 거 없어요?
현우 : (머리젓고)
지은 : 아으, 안되는데. 있어야 되는데... 확실해요, 진짜?
현우 가방을 뒤적이고 지은 기대에 차서 목 빼고 보다가 현우와 눈이 마주치면
지은 : ...(조심스럽게) 없어요?
현우 : 네... (미안하고)
몹시 낙심한 지은 인상쓰며 입바람으로 앞머리 날리는데
원장E : 한간호사!
원장 병원 출입문으로 내다보며 화난 얼굴로 주먹을 흔들어 보인다. 지은 윽, 하고
지은 : 수고하세요.
다시 병원으로 뛰어간다.
현우 봉투를 보면 서울 주소의 ‘오정훈’ 앞으로 보내는 ‘한지은’의 편지.
현우 지은의 뛰어가는 뒷모습 잠깐 보다가 출발한다.
S#8. 구노인의 집 근처
현우 우편물 배달하며 다니는데 밭에서 일하던 구노인 손 흔들며 뛰어나오면서
구노인 : 어이! 우체부 양반!
현우 : 네. 어르신, 안녕하세요?
구노인 : 잠깐 나 좀 봐. 내가 부탁할 게 좀 있어서.
구노인 의미있는 웃음짓고 현우에게 손짓하며 집으로 뛰어들어간다.
현우 의아해하며 따라간다.
S#9. 구노인의 집 마당
현우 수돗물을 받아마시고 마루로 오면 구노인 방에서 필기구를 들고나온다.
구노인 : 바쁜 사람 붙잡고 미안한데, 내가 눈이 어두워서 당최 글씨를 쓸 수가 있어야지. 편지 대필 좀 해 줄 수 있지?
현우 : 네, 그럼요, 어르신. 무슨 편진데요? (준비하고)
구노인 : 슷, 남의 프라이버시까지 알려고 할 거 없고, 자넨 그냥 글씨만 받아쓰면 된다니까. 알아들어?
현우 : 네.
구노인 : 으흠. (미리 끄적거려놓은 것 애써 들여다보며 읊기 시작한다) 세월은 유수와 같이 흘러도,
한떨기 수선화같은 그대의 자태는...
현우 : (헉)
구노인 : 왜?
현우 : 아, 아녜요. (부지런히 글씨쓰고)
구노인 : 글씨 좀 남자답고 멋있게 잘 쓰고, 잉?
현우 : 네... 그대의 자태는...
구노인 : 여전히 내 가슴을 설레게 하오. 아!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현우 : (진지하게 쓴다)
S#10. 하숙집 앞 (저녁)
현우 자전거 타고 퇴근한다. 대문 앞에 빨간색 예쁜 우체통이 설치되어 있다.
현우 우체통을 열어본다. 비어 있다.
S#11. 하숙집 마당 (저녁)
현우 수돗가에서 푸푸거리며 씻고 있다. 소정(7살) 쭈삣거리며 다가와 몸을 꼰다.
현우 : 어, 소정아. 왜?
소정 : (수줍어 말 못하고)
현우 : 할머니가 밥 먹으래?
소정 끄덕거리고 달아난다. 현우 그 모습 보며 웃는다.
부엌에서 소정 할머니 밥상 들고 나온다. 수건으로 물기 닦던 현우 얼른 다가가 받아든다.
할머니 : 가만 보니까 우체부 일이 보통 고된게 아니네. 잘 먹어야 버틸텐데 반찬이 없어서 어째?
현우 : (마루로 가며) 별 말씀을요. 잘 먹겠습니다.
현우 식사 시작한다. 할머니도 마루에 걸터앉으며 아그그, 다리를 두들긴다.
현우 : 다리 많이 아프세요?
할머니 : 아이고, 쑤시고 결리고, 몸뚱이가 완전히 고물이 돼서 오늘 멈출지 낼 멈출지 모른다니까...
그나저나 저것이 불쌍해서 큰일이지.
뜰 한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병아리를 들여다보고 있는 소정에게 눈길을 주는 할머니와 현우.
할머니 : 독한 년. 얼마나 잘먹고 잘사는지 죽기 전에 한 번 봤으면 좋겄네.
현우 : (보는데)
할머니 : 근본도 모르는 게 굴러들어와서 남의 아들 신세 망치더니, 아니 어떻게 지 속으로 낳은 새끼까지 내버리고 달아나?
(거침없고)
현우 소정이 들을까 조바심 난다. 그러나 소정 늘 들어온 소리라 별 반응없이 병아리 쓰다듬고 있다.
할머니E : 어떤 놈하고 눈이 맞아 달아났는지, 세상에 그게 사람이야? 되먹지 못한 것.
현우 소정의 그늘진 얼굴이 안쓰럽다.
S#12. 안방
할머니는 텔레비전을 켜놓은 채 코골며 잠들어 있다.
소정은 몹시 낡아빠진 인형을 품에 안고 한쪽 구석에서 벽을 향하고 앉아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다.
한 두 살된 소정을 안고 활짝 웃는 엄마 사진.
할머니 잠꼬대 웅얼거리자 소정 흠칫 놀라 얼른 사진을 감추고 돌아보면 할머니 그대로 잔다.
소정 텔레비전 끄고 잠자리에 누으려는데 하모니카 소리 들려온다. 애잔한 곡.
소정 인형을 안고 문 가까이 앉아 귀기울여 듣는다.
S#13. 하숙방
책상 위 어린 시절 우체부와 찍은 사진이 놓여있고 현우 벽에 기대앉아 눈감고 하모니카 불고 있다.
S#14. 하늘
나무가 있는 밤하늘. 하모니카 연주가 끝나면서 푸른 새벽으로 밝아진다.
S#15. 우체국 외경
그 새벽 하늘 아래 시골 우체국.
S#16. 우체국
현우 배달할 편지를 분류하고 있다. 빨간 도장이 찍힌 반송 우편물을 집어든다.
‘오정훈’ 앞으로 보내는 ‘한지은’의 편지, 모아보면 모두 다섯 통.
현우 심각해진다.
S#17. 길의원
지은 구노인의 팔에 주사놓는다. 구노인 숨넘어가는 듯 비명지르고
지은 : 에유, 할아버지 엄살은? 다음엔 더 아프게 놔줄까부다.
구노인 : 거 참 못됐네, 참말로.
지은 : 그러니까 아프지 마세요, 할아버지. 약 좀 잘 챙겨드시구! (처방전 주고)
구노인 : 알았어! (돈 주고)
지은 : 조심해가세요.
구노인 : 응.
구노인 나가고 지은 잠깐 자리 비운다.
진료실 문 빠끔 열리더니 원장 동정을 살핀다. 소리죽여 출입문으로 도망나가는데
지은E : 원장님!
원장 이크 하며 돌아보면 지은 나타나 째려보고 있다.
원장 : (천연덕) 왜 불러요, 한 간호사?
지은 : 어디 가세요?
원장 : 어, 저기, 은행에 잠깐...
지은 : 은행? 은행 옆 초원 다방 아니구?
원장 : (오버하는) 아아니? 미쳤어? 흠, 금방 들어올 테니까 무슨 일 있으면 핸드폰 해.
지은 : 핸드폰은 가져 가구?
원장 : (옷 더듬으며) 어디 갔어, 이게? 나 참. (그냥 나가고)
지은 : (쫓아가며) 원장님! 아빠! 아빠!!
전화벨 울린다. 지은 할 수 없이 되돌아와 전화받는다.
지은 : 여보세요. 병원입니다...여보세요...네?
S#18. 길의원 앞
지은 구급 상자 들고 뛰어나와 소형차에 오른다. 시동이 걸리지 않아 애를 태우다가 가까스로 출발한다.
S#19. 시골길
한적한 시골길. 지은의 소형차 달려와 흙더미 앞에서 멈춘다.
지은 잠깐 난감해다가 차를 돌리려는데 시동이 걸리지않는다.
S#20. 차 안
지은 시동걸어보려 애쓰지만 소용없다. 지은 애를 태우다가 구급 상자 들고 내린다.
S#21. 시골길
지은 차에서 내려 정신없이 뛰어가기 시작하는데 뒤에서 오토바이 소리 들린다. 돌아보면 현우의 오토바이 달려오고 있다.
지은 활짝 반가워하며
지은 : 아저씨! (손 흔들고)
현우 : (의아해하며 다가가 멈추는데)
지은 : (다가들며) 저 지금 너무 급해서 그러는데 새작골까지 좀 태워주세요. (뒤의 우편함 잡으며) 아우, 이 속에 탈 수도 없구.
(잡아 흔들며) 이거 못 떼나? 아저씨! 어떻게 좀 해주세요, 급해요!
현우 : ...
S#22. 시골길
현우의 오토바이 지은을 태우고 외진 길로 달려간다.
S#23. 외딴집
지은 노파의 손에 붕대 감고 있고, 현우는 마루와 뜰에 흩어진 거울 조각들을 치우고 있다.
노파 : 내가 오늘 참말로 죽는줄 알았다니까. 피는 쏟아지지, 사람은 아무도 없지...
내가 우리 용국이 얼굴도 못 보고 죽는 줄 알고... (눈물 콧물 닦아내고)
지은 : 땅은 죄다 팔아먹구 생전 얼굴 한 번 안비치는 그 아들이 그렇게 보고 싶어, 할머니?
노파 : (눈물 찍어내고)
현우 : ...(벽에 걸린 오래된 가족 사진과 아들의 어릴 적 사진, 상장들을 본다)
지은 : 할머니, 디게 겁났구나. 아이구, 불쌍해라. (안아서 다독거려주고) 내가 뽀뽀 해주까? 응? (뽀뽀해주고)
노파 : (싫지 않게) 징그러라. 왜 이래? (닦고)
지은 : 어, 닦았어? 닦았단 말야?
지은 또 하려 하고 노파 뿌리치며 실랑이. 현우 그 모습 따뜻하게 본다.
S#24. 시골길
현우와 지은 오토바이 타고 돌아오고 있다. 지은 현우의 허리께를 잡고 있다.
현우 미묘한 설렘과 행복감. 지은은 지은대로 바람을 만끽하며 즐거워한다.
지은 : 아저씨, 나 오늘 오토바이 처음이에요.
오토바이 소음 때문에 잘 안들린다.
현우 : 뭐라구요?!
지은 : (소리높여) 나 오늘 오토바이 처음 타는데요! 재미있다구요!
현우 웃는다. 빗방울이 후두둑 쏟아지기 시작한다.
지은 : 악! 비온다! 아저씨, 어떡해요!
현우 속도내서 달린다.
S#25. 누각 아래
비가 몹시 쏟아지고 있다. 머리와 어깨가 약간 젖은 현우와 지은,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다.
지은은 빗줄기를 바라보고 있고, 현우는 곁눈으로 지은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매혹된다.
지은 : 비 정말 많이 온다...
지은 현우를 본다. 눈 마주치자 현우 머쓱해서 눈길 돌린다.
지은 : 그런데 아저씨는 왜 우체부가 됐어요?
현우 : (희미하게 웃고) ...내가 어릴 때, 우리 동네 우체부 아저씨 조수 노릇을 한 적이 있었거든요.
지은 : (흥미를 보이고)
현우 : 자전거를 타고 바람 속을 달리는 것도 참 좋았고, 우체부 아저씨가 갖다주는 편지를 받으면서
반가워하고 기뻐하는 사람들 얼굴을 볼 때마다, 기분이 참 좋 았어요. 어른이 된 후에 다시 생각해보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에 그만한 일이 없을 거 같더라구요.
지은 : 우아, 멋있다아. 어릴 때 꿈이 소방수라서 뒤늦게 소방수된 사람도 있던데... 아저씨도 멋있다, 진짜.
현우 : (몹시 쑥쓰럽고)
지은 : 그런데 요즘은 예전같지 않죠. 세상이 달라졌잖아요.
현우 : 네. 정말 그래요. 우편물이라고는 고지서랑 청구서랑... 재미없는 것들 뿐이고...
하지만 가끔은, 편지 쓰는 사람도 있긴 있어요. 그쪽처럼요.
지은 : 전화나 이메일이 편하긴 하지만, 그래도 편지만큼 아름다운 통신수단은 없는 것 같애요. 낭만적이잖아요. 근데...
현우 : (보면)
지은 : 참 바보같죠? 답장도 못 받으면서 계속 편지 쓰는 거... 창피해서 비밀로 하고 싶어도 아저씨한텐 숨길 수가 없네요. (한숨)
계속 답장이 안올지도 모르는데, 어떡하지?
현우 : ...기다리는 거 말예요. 아무 기약없이 그렇게 누군가의 편지를 기다리는 거, 참 힘들죠?
사실은 나도 그거 옛날에 해봐서 알아요.
지은 : 정말요? 아저씨도 정말 그런 적 있어요? 누구? 첫사랑?
현우 얼굴이 굳는다. 지은도 어색해지고. 잠시 침묵.
지은 : (손목 시계 보고) 어떡해. 병원 비워놓고 왔는데. 비 금방 그칠 것 같지 않죠?
현우 비오는 하늘을 보고
현우 : 여기서 잠깐 기다리세요.
지은 : 어디 가시게요?
현우 말없이 웃어보이고 오토바이 타고 빗속으로 달려간다. 지은 의아해하며 그 모습 본다.
S#26. 시골길
현우 빗속을 달려 지은의 소형차가 서 있는 곳으로 온다. 뒷좌석 열면 오토바이에서 떼낸 현우의 우편함 있다.
현우 우편함에서 우비를 꺼내 가방에 넣는다.
S#27. 누각 아래
지은 손목 시계 보다 비오는 하늘을 보며 막막하게 서 있다.
현우 비에 흠뻑 젖은 채 오토바이타고 달려와 가방에서 우비 꺼내 펼치며 내민다. 지은 의아하게 보다가
지은 : 와, 우비! (그러다) ...근데 어떻게 나만 입어요.
현우 : 난 이미 다 젖었는데요. 입으세요, 빨리 가야죠.
지은 : ...(받고)
현우 먼저 오토바이에 올라 기다리고 지은 우비 입고 뒤에 올라탄다. 오토바이 출발한다.
S#28. 시골길
빗속을 달리는 현우의 오토바이. 앞에서 위협적으로 달려오는 대형 화물트럭.
지은 비명지르며 현우의 허리를 끌어안고 현우의 오토바이 가까스로 트럭을 피한다.
S#29. 지은의 집 앞
길의원에 딸린 살림집 앞. 현우의 오토바이 와서 멈춘다. 지은 내리며
지은 : 잠깐 내리세요, 아저씨.
현우 : (보면)
지은 : 잠깐 내리시라니까요. 빨리요!
지은 현우를 끌어내린다.
S#30. 지은네 거실
아담하고 정갈한 분위기. 지은 현관에서 들어오며 우비 벗는다. 밖을 향해서
지은 : 들어오세요. 괜찮아요.
현우 쭈삣거리며 들어온다. 지은 우비벗고 들어오며
지은 : 저기가 욕실이거든요? 갈아입을 옷 갖다드릴테니까 따뜻한 물로 샤워 좀 하세요.
현우 : 아우, 아녜요. 괜찮아요.
지은 : 뭐가 괜찮아요, 그렇게 비 맞고 옷이 다 젖었는데. (욕실 문 열며) 좋은 말 할 때 들어가세요, 빨리?
현우 마지 못해 빗물 떨어지지 않게 조심하며 욕실로. 지은 문 닫아준다.
S#31. 욕실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욕실. 현우 들어와 둘러보며 옷 벗기 시작한다.
S#32. 원장의 방
지은 서랍을 뒤져서 옷을 꺼내 고른다.
S#33. 거실
지은 욕실 문 앞에 옷 내려놓는데 안에서 욕실 문 열리며 지은의 머리나 어깨에 부딪친다.
지은 : 아야.
현우 : (벗은 상체 조금 내밀고) 어우, 죄송해요.
지은 : 이거 우리 아빠 옷인데, 안맞아도 그냥 대충 입으세요.
지은 옷을 집어주는데 마을 여인 들어오며
여인1 : 한 간호사! 집에 있어?
하다가 지은과 현우의 모습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진다. 여인 몹시 민망해서 얼른 나간다.
오해를 받고 보니 둘 미묘하고 어색한 분위기...
현우 : 어떡하죠? 괜히 저 땜에...
지은 : 뭐... 신경쓰지 마세요. (외면한 채) 저기요, 내가 병원에 가봐야돼서... 따뜻하게 차 한 잔 드릴 테니까 병원으로 오세요.
(후닥닥 나가고)
현우 : ...
S#34. 길의원 입구
우비 차림의 현우, 굳은 얼굴로 입구로 간다.
가방에서 지은의 반송 우편을 꺼내들고 선뜻 들어가지 못하고 안을 들여다보다가
덜컥 놀라 황급히 우편물 도로 넣으며 돌아서서 오토바이로. 지은 문 열고 내다본다.
지은 : 어, 아저씨! 그냥 가시게요?! 아저씨!
현우 : (보면)
지은 : 조심하세요! 차 조심! (진심어린)
현우 : ...(고맙고)
현우 목례해보이고 출발한다. 지은 잠깐 보다가 들어간다.
S#35. 동네 슈퍼 앞
비가 그쳤다. 현우 달려와 멈추고 우비를 벗는다. 우편물 챙기며 안으로.
S#36. 슈퍼
슈퍼라기보다 구멍가게에 가깝다. 현우 들어오는데 30대 여인 빵 들고 항의하고 있다.
여인2 : 유통기한이 이렇게 많이 지난 걸 그냥 파시면 어떡해요! 어린애가 이거 먹고 탈이라도 나면 어쩔려고 그러세요?
돈으로 물러주세요.
몹시 심술맞고 인색해보이는 주인 할머니 대꾸없이 파리채 씽씽 휘둘러 파리만 잡는다.
여인2 : 돈으로 물러달라니까요, 할머니?!
주인 : 그거 먹어도 아무 일 없어! 한 번 먹어봐, 내 말이 틀리나? 먹고 이상 있으면 돈으로 물러주지. (요란하게 파리 잡으며)
여인2 어이없어 보다가 빵을 가게 안의 쓰레기통에 던지고 씩씩대며 나간다.
주인 : 요즘 젊은 것들은 어째 그렇게 싸가지들이 없어?
빵을 도로 주워서 진열대에 놓는다. 현우 보는데
주인 : (퉁명) 뭘봐! 구경났어?
현우 : ...편지 왔습니다.
현우 편지 주고 나간다.
주인 의아해하며 편지를 뜯어본다. S#11에서 현우가 대필한 편지.
S#38. 하숙집 마당 (밤)
현우 뭔가 사들고 들어서는데 소정 쓰레기봉투를 뒤지고 있다. 현우 의아해서
현우 : 소정아, 뭐하니?
소정 눈물이 글썽한 눈으로 현우를 보고는 다시 계속 뒤진다.
현우 : (다가가며) 왜? 뭐 찾아?
소정 열심히 뒤지다가 얼굴이 환해지며 낡은 인형을 꺼내든다. 손으로 털고 소중히 품에 안는데 할머니 부엌에서 나온다.
소정 얼른 감춘다.
할머니 : 아이구, 이제 오는 거야? 많이 늦었네.
현우 : 네. 일이 좀 늦게 끝나서요.
소정 인형 감추고 후닥닥 들어가려는데 할머니 인형을 보고 만다. 소정을 잡아채서 인형을 뺏어들고 흔들며
할머니 : 또! 또야, 또?! 이렇게 다 닳아빠져서 못쓰게 생긴 걸 왜 자꾸 주워들고 들어와, 왜! (쓰레기 봉투에 집어넣으려는데)
소정 : 할머니, 안돼! (쫓아가 뺏으려한다) 줘. 줘어!
할머니 : 너덜너덜허니 보기만해도 정신사나워 죽겠어. 그만 버려. 버리자니까! 할미가 새로 사준 거 있잖아!
소정 울면서 뺏기지 않으려 안간힘쓴다.
할머니 : 얘가 누굴 닮아서 고집이 쇠심줄이야? 놔! 놓지 못해?!
할머니 기어이 뺏으려하고 소정 질질 끌려가면서도 인형을 놓지 않는다. 현우 얼른 소정을 거들며
현우 : 할머니. 그냥 놔두세요. 지가 좋다는데 억지로 그러실 거 뭐 있어요.
할머니 : (마지못해 놓으며) 지 엄마가 사준 거라고 저러지, 쟤가. 엄마도 엄마 나름 이라니까 그렇게 못알아듣고.
(혀차며 들어가고)
현우 : ...
소정 인형을 쓰다듬으며 쪼그리고 앉는다. 현우 안쓰럽게 그 모습 본다.
S#39. 하숙방
현우 고민하다가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사랑하는 소정이에게’.
시간 경과.
현우 편지 한 통과 소포 하나와 작은 선물 포장 하나를 완성한다.
S#40. 하숙집 앞
소정 유치원 가방들고 기운없이 걸어온다. 집으로 들어가다가 빨간 우체통을 열어본다. 봉투가 있어 꺼내본다.
소정의 앞으로 온 익명의 편지.
S#41. 하숙집 마루
소정 편지 뜯으며 마루에 앉아서 읽기 소리내어 시작한다. (어린아이 특유의 리듬으로 서툴게)
소정 : 사랑하는 소정이에게. 그동안 연락 못해서 정말 미안해. 하지만 엄마는 매일 너를 생각한단다.
정말 너무 너무 보고 싶어...(목이 메고)
소정 눈물 흘리며 편지를 가슴에 안는다.
S#42. 외딴집 마당
노파 콩 까던 것 앞에 두고 고적하게 먼산보며 담배피우고 있다. 현우 들어서며
현우 : 안녕하세요? 손은 다 나으셨어요?
노파 : 응. 아이구, 어서 와요. 벌써 고지서 나올 때가 됐나?
현우 : 아뇨. 소포가 와서요.
노파 : 소포가? 잘못 가지고 온 거 아냐? 소포 보낼 사람이 없는데?
현우 : 아드님이 보낸 모양인데요?
노파 : 이? 아니 전화도 안하는 놈이 무슨 소포를 보내?
서둘러 뜯어본다. 모시메리. 노파 감격하며
노파 : 아이구, 세상에. 아이구, 그래도 이놈이...
노파 눈물 찍어내며 기뻐하고 현우 오토바이로 가며 혼자만의 미소 짓는다.
S#43. 길의원 근처
지은 우체통을 향해 뛰어온다. 우편봉투를 품에 안고 하늘을 향해 뭔가 간절히 기원한 후 우체통에 넣는다.
근처에서 배달하던 현우 그 모습 바라본다. 손에 들린 지은의 반송우편들을 보며 한숨쉰다.
지은 병원으로 가려다 현우를 보고 뛰어온다.
지은 : (활짝 웃으며) 아저씨, 괜찮아요? 비맞고 감기 안걸렸어요?
현우 : (당황한 채) 네. 덕분에... 아참.
우편함에서 종이백 꺼낸다.
현우 : 빌려주셨던 옷...
지은 : 아, 네. (받아서 들여다보면 작은 선물 포장) 어...이건 뭐에요?
현우 : 네, 저...그냥, 어저께 고마웠다는 뜻으루...
지은 : 나한테 주시는 거에요? 으아, 신난다. 선물이다. (뜯으려는데)
현우 : 저기요. 나중에 뜯어보세요.
당황해서 말리다가 들고 있던 우편물 몇 개를 떨어뜨린다.
현우 황급히 주워드는데 지은 발밑에 떨어진 우편물(뒷면이 위로 보이는)을 주워주려한다.
현우 헉, 놀라 보는데 지은 집어들고 앞면을 돌려본다. 현우 긴장한다.
그러나 지은 웃으며 돌려준다. 현우 보면 다른 우편물.
지은 : (선물 보이며) 고마워요.
지은 뛰어들어가고 현우 그 모습 본다.
S#43-1. 길의원
지은 선물을 뜯어본다. 단순하고 청초한 느낌의 작은 브로치. 지은 미소짓는다.
S#43-2. 길의원 근처
현우 우체통에서 지은의 새편지를 꺼내들고 고민한다.
S#44. 기차역
현우(사복) 서류 봉투 하나를 소중히 안고 서울행 기차를 탄다.
S#45. 서울 변두리 주택가
현우 서류 봉투에서 지은의 편지봉투를 꺼내보며 주소를 찾아 다닌다. 마침내 찾았다.
벨을 누르려는데 누군가 나온다. 현우 묻는 말에 주인 머리 젓는다.
S#46. 동사무소
오정훈의 전출입 신고 찾아본다. 새주소 찾고 활짝 기뻐한다. 쪽지에 정성껏 새주소 적는다.
S#47. 산동네
현우 새주소 들고 헤매다닌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묻기도 하고.
S#48. 반지하 셋집 앞
현우 마침내 찾았다. 벨 누른다. 아기 업은 여자 안에서 나오며.
여자 : 누구세요?
현우 : 저...여기 오정훈씨라고 계신가요?
여자 : (경계하는) ...어떻게 오셨는데요?
현우 : ...저...뭣 좀 전해줄 게 있어서 그러는데요...어...
여자 : (현우의 봉투를 보고는) 놓고 가세요. 제가 전해줄 테니까.
현우 : ...실례지만...누님 되시나요?
여자 : (몹시 기분 나빠하며) 아뇨. 그 인간 마누라 되는 사람인데요.
현우 : !!
여자 : 틀림없이 전해줄 테니까 놓고 가시라니까요?
현우 : ...저, 직접 전해드려야 할 거 같아서 그러는데...지금 어디로 가면 만날 수 있을까요?
여자 : ...(빤히 보다가) 대체 뭔데 그러세요?
현우 : ...네...그게요, 저...나중에 다시 오죠. (돌아서는데)
여자 : (보다가 앞장서며) 따라오세요.
아기 업은 여자 앞장서 내려가고 현우 따라간다.
S#49. PC방 앞
여자 들어간다. 현우 의아해하며 따라들어간다.
S#50. PC방
아이들 게임하고 있고 한 구석에서 후줄그레한 남자 담배 피우며 게임에 열중해있다.
여자 다가가 툭 친다. 정훈 돌아보고 짜증난 얼굴로
정훈 : 아, 알았어. 금방 간다니까. 여기까지 쫓아오고 그래. 쪽팔리게.
현우 그 모습에 적잖이 충격받는다. 멍해지고...
여자 : 내가 너 보고 싶어서 온 줄 아니?! 누가 찾아왔어.
정훈 : 누가?
여자 뒤를 가리킨다. 정훈 현우를 본다. 갸웃하고 일어난다.
현우 당황해서 얼른 밖으로 나간다.
S#51. PC방 앞
현우 나와서 편지가 든 서류 봉투를 만지작거리며 어쩔 줄 몰라 하다가 그냥 가려고 돌아서는데 정훈 나오며
정훈 : 여보세요.
현우 : ...(돌아 본다)
정훈 : (의아하게 보며) 저를 찾아오셨다구요?
현우 : (보다가) ...한지은씨라고 아시죠?
정훈 : 에? 누구요? 한지은?... (입속말로 중얼) 한지은...춘천에 그 유치원 선생인가? 아닌데. 그 병원 간호사던가? (모르겠고)
현우 분노가 치민다. 정훈 뭐라 물으려는데 현우 주먹으로 정훈의 얼굴을 치고 만다.
피시방에서 나오던 여자 비명지르고 정훈 황당해하다
정훈 : 뭐 이런 새끼가 있어?
정훈 현우를 맞받아친다. 둘 몸싸움 벌이고 여자 뜯어말린다.
S#52. 거리 (저녁)
시내 거리 일각. 사람들 오가고...약간의 부상 입은 현우 막막하게 앉아 있다. 서류 봉투를 소중히 안은 채.
S#53. 하숙방
이부자리 깔려 있고 현우 지은의 편지들을 만지작거리며 고민하고 있다.
궁금해져서 봉투를 불빛에 비춰보기도 하고, 눈감고 냄새를 맡아보기도 하고...
그러다 유혹을 물리치기 위해 서류 봉투에 넣어서 서랍에 넣고 돌아서다 다시 가서 열쇠로 잠근다.
S#. 밤 인서트
S#54. 하숙방
현우 자려고 애써보지만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러다 슬그머니 일어나 열쇠를 돌려 서랍을 연다.
편지 봉투 하나를 집어서 봉한 부분을 조심스럽게 뜯어보다가...도로 넣고 서랍을 다시 잠근 후 열쇠를 들고 고민하다가
열쇠를 창밖으로 던져버리고 잠을 청한다. 그러나 곧 눈을 뜨고 만다.
S#55. 뒤뜰 (밤)
어둠 속에서 현우 후레쉬를 이리 저리 비추며 열심히 열쇠를 찾고 있다.
잡초가 우거져 찾을 가망이 없어 보이지만 현우 샅샅이 뒤지고 있다.
시간 경과.
현우 찾다 지쳐서 낙심했다가 한쪽 슬리퍼를 벗어서 눈감고 위로 던진다. 슬리퍼가 떨어진 곳으로 가서 찾는다.
마침내 돌틈에서 열쇠를 찾아 들고 기뻐하며 뛰어들어간다.
S#56. 하숙방
현우 서랍 앞에서 열쇠를 들고 갈등한다.
S#57. 뒤뜰 (밤)
현우 후미진 곳에 땅을 파고 있다. 떨리는 손으로 봉투를 땅 속에 묻고 흙으로 덮는다.
마치 사람을 암매장하는 듯 떨리고 진땀이 난다. 열심히 흙을 덮는다. 꾹꾹 발로 다진다.
S#58. 하숙방 앞 이른 아침.
현우 출근하려고 방에서 나온다. 자전거를 끌고 나가려는데 바닥에 나뒹구는 편지 봉투 하나.
이상한 예감이 들어 주워보면 흙묻고 구겨진 지은의 반송 편지. 현우 경악한다. 황급히 뒤뜰로.
S#59. 뒤뜰
현우 뛰어오다보면 현우의 범행(?) 지점에서 개가 땅을 파고 놀고 있다. 주변에 편지들 흩어져 있고...
현우 기겁해서 쫓아가고 개 놀라서 달아난다. 현우 흩어진 편지들을 황급히 줍는데 갑자기 바람이 불어 편지들이 날아간다.
현우 정신없이 쫓아다니며 줍는다. 마지막으로 어렵게 주워든 봉투. 봉투가 찢겨져 내용물이 내보인다.
서정적인 그림 카드.
현우 침 삼키고 주위를 살피며 나무 뒤에 최대한 몸을 숨기고 쪼그리고 앉는다.
조심스럽게 카드를 열어보면 지은의 정성어린 예쁜 글씨들...
지은E :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는 라일락이 한창이었는데, 지금은 녹음이 짙어지는 초여름입니다.
S#60. 길의원
요구르트 병에 풀꽃 꽂혀있고 창문에 빗줄기...지은 일하다 말고 생각에 잠겨있다.
지은E : 당신이 떠난 후, 작은 풀꽃이나 창문에 흘러내리는 빗방울을 볼 때도
당신은 이런 것들을 어떻게 볼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지은 창밖을 내다본다. 현우의 오토바이 와서 멈추는 모습.
지은E : 그리고 요즘은 우리 동네 우체부 아저씨를 볼 때마다 가슴을 설렙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편지를 가져다 줄 사람이,
S#61. 뒤뜰
지은의 카드를 읽고 있는 현우.
지은E : 바로 그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단 한 번이라도 당신의 답장을 받고 싶습니다. 백지 편지라도 좋겠습니다.
현우 : ...
S#61-1. 문방구 앞
현우 배달하러 들어가는데 지은 문구 사들고 나오다 마주친다. 현우 가슴 덜컥한다.
지은 : 왜 그렇게 놀라세요?
현우 : 아,아니에요...(눈길 피하고)
지은 : 수고하세요. (하고 가려다) 아저씨.
현우 : ...네. (마주 보지 못하고)
지은 : (짓궃게 다가들어 현우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아저씨 혹시, 나 좋아하세요?
현우 : (어쩔줄 모르고)
지은 : (웃음 터뜨리며) 어, 정말인가봐.
현우 난처해하며 도망치듯 안으로 들어가고 지은 재미있어하다가 갸웃하며 떠난다.
S#62. 슈퍼
주인 할머니 손거울보며 립스틱 바르고 있다. 옷도 신경써서 입었다.
구노인 헛기침하며 들어오면 놀라서 얼른 치우고 도도하게 신문보는 척한다.
구노인 : 흠, 아이고 더워라.
구노인 괜히 진열대를 둘러보고 물건 만지고 서성이며 주인 할머니를 힐끗거린다. 그러다 눈이 마주치면 당황해서 딴전피운다.
다시 반복되고.
주인할머니 파리채로 계산대를 탁! 치고 일어나며 버럭
주인 : 야! 괜히 수작부리면서 가게 물건 훔쳐가려고 그러는 거지, 이 노인네야! 누가 속아넘어갈 줄 알고?!
구노인 : (절망스러워 아무 말 못하고)
S#63. 슈퍼 근처
현우 오토바이 타고 가다보면 구노인 맥없이 걸어오고 있다.
현우 옆으로 가 멈추고
현우 : 안녕하세요?
고개를 든 구노인 울먹울먹. 현우 놀라서 본다.
S#64. 구노인의 집 마루
구노인과 현우 나란히 앉아있다. 구노인 손등으로 눈물 훔치며
구노인 : ...기껏해야 날 좀도둑으로 의심이나 하는 사람한테...내가 미친 놈이야.
현우 : 그분이 어디가 그렇게 좋으세요?
구노인 : 몰러, 나두...내가 미친 놈이라니까.
현우 : 이제 어떻게 하실 거에요?
구노인 :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필기구를 내오며) 이왕 시작한 거니까 미친 척하고 끝까지 해보는 거지.
진심은 통하는 법이라잖아. 열 번 찍어 안넘어가면 열 한 번 찍으면 되구. 근데 뭐라고 쓰지?
현우 : (기다리는데)
구노인 : (버럭) 아 좋은 문구 좀 대봐! 젊은 사람이 그렇게 머리가 안 돌아가?!
S#65. 하숙집 마당 (밤)
소정 찐옥수수 쟁반을 들고 조심조심 현우의 방으로.
S#66. 하숙방
현우 지은의 카드를 보며 고민하고 있는데
소정E : 아저씨.
현우 얼른 서랍에 넣고 문 연다. 소정 쟁반 들고 서 있다.
현우 : 어, 고맙다, 소정아.
현우 받는다. 소정 가지않고 그대로 서 있다.
현우 : ...들어올래?
소정 들어오며 주머니에서 꼬깃한 편지 꺼내 내민다.
소정 : 있잖아요. 우리 엄마한테 편지 왔어요.
현우 : (옥수수 먹으며 놀라는 시늉) 그래? 정말이야? (받아서 보는 척하고)
소정 : (꼬깃한 사진도 꺼내 내민다) (S# 14 의 사진)
현우 : (받고) 여기 이 예쁜 아줌마가 소정이 엄마야? 소정이가 엄마 닮아서 예쁘구나.
소정 : (웃고)
현우 : 어, 소정이 이제보니까 웃을 줄도 아네. 웃으니까 더 이쁜데? (쓰다듬어주고)
할머니E : 소정아! 소정아!
소정 : 네!
소정 현우가 주는 편지와 사진을 소중히 주머니에 넣는다. 현우 웃어보이며 손 흔들면 소정도 웃으며 손 흔들고 나간다.
현우 잠시 생각하다가 필기구를 꺼내놓는다. 긴장해서 손을 비비고 편지 쓰기 시작한다.
‘안녕하세요’ 썼다가 북북 그어 구겨 버리고 ‘지은씨’ 쓰다 다시 북북 긋는다.
현우의 책상 아래로 그렇게 던져지는 종이들...
S#67. 우체국 앞 새벽.
현우 자전거타고 출근한다.
S#68. 우체국
아직 텅 빈 우체국. 현우 잔뜩 긴장해서 ‘한지은’ 앞으로 보내는 ‘오정훈’의 우편봉투에 우체국 소인을 찍는다.
발신지명이 찍히지 않게 가장자리 쪽으로.
S#69. 길의원 입구
현우 와서 잠깐 머뭇거리다가 우편물 두어 개를 문틈으로 밀어넣고 간다.
S#70. 길의원
지은 바닥에 떨어진 우편물들을 주워보다가 얼어붙는다. 우편물 중에 ‘한지은’ 앞으로 온 ‘오정훈’의 편지 한통.
지은 기절할 것 같다. 떨리는 가슴을 애써 진정하며 조심스럽게 개봉한다. 그림 또는 사진 카드.
현우E : 그동안 답장을 못드려 미안합니다. 이번에는 좀 긴 여행을 했었습니다.
S#71. 시골길
현우의 오토바이 아름다운 강가를 달린다.
현우E : 바다와 하늘을 실컷 보고 돌아와서 깨끗해진 마음으로 지은씨의 편지들을 보니,
당신은 특별한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S#72. 길의원
지은 카드를 읽고 있다. 힘이 빠져서 책상 위에 엎드린다.
현우E : 하지만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당신의 기대에 합당한 사람을 찾을 수 있기 바랍니다...오정훈.
원장 진료실에서 기웃거리며 지은을 살핀다.
원장 : 퇴근 안 해?
지은 : (일어나며) 잠깐 바람 좀 쐬구 들어갈게요. (옷 갈아입으러 들어가고)
원장 : (의아해서 본다)
S#73. 한적한 곳 (저녁)
지은 울적해서 산책하고 있다. 현우 자전거타고 돌아오다 마주친다.
현우 : 안녕하세요?
지은 목례해보이고 지나간다. 현우 짚히는 게 있어 마음이 불편한 채 떠난다.
지은 가다가 현우를 돌아본다.
지은 : 아저씨.
현우 멈추고 돌아보면
지은 : 지금 드라이브 좀 시켜줄 수 있어요?
현우 : ...
지은을 뒤에 태우고 현우의 자전거 달린다. 지은 소리없이 울지만 현우 눈치챈다.
S#74. 강가 또는 한적한 곳 (저녁)
현우와 지은 나란히 앉아 있다. 말없이 있다가
지은 : 오늘 그 사람한테서 답장이 왔는데, 내가 부담스럽대요.
현우 : ...
지은 : 나한테 그렇게 친절했던 거, 나를 특별하게 여겨서 그런 게 아니었나봐요... 이런 기분 아세요?
나 자신이 정말 너무나 보잘 것 없고 초라한 느낌...하긴 나도 내가 이렇게 바보같고 싫은데, 누가 나를...
차라리 그냥 아무 기약없이 답장을 기다리고 있을 때가 좋았어요.
현우 : ...그 사람, 사랑해요?
지은 : 솔직히...잘 모르겠어요.
현우 : 혹시, 그 사람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어떤 환상같은 걸 가지고 있는 건 아녜요?
지은 : ...
지은, 비참하다. 현우 더는 아무 말 하지 못한다. 지은 잠시 후
지은 : 옛날에요, 어떤 친구가 있었어요. 어느 날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면서 날 떠났어요.
나 그때... 정말 완전히 무너졌었거든요.
현우 : ...
지은 : 다시는 아무도 좋아할 수 없을 거 같았는데, 그래도 세월이 흐르니까 누군가를 다시 사랑하고 싶어졌어요.
그런데 이번엔 제대로 시작해보지도 못하고...
지은 무릎에 얼굴을 묻는다. 현우, 어떻하든 위로하려 한다.
현우 : ...지난 번에, 나더러 누구의 편지를 기다렸었느냐고 물었었죠?...우리 엄마 편지였어요.
지은 : (보고)
현우 : 나 일곱 살 때 우리 엄마가 나를 고아원에 데려다 놓으면서 그랬거든요. 꼭 편지한다고. 그래서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아무리 기다려도 편지는 오지 않았어요.
지은 : ...
현우 : 무작정 기다리는 것도 참 힘들었지만, 기다림을 포기하는 일은 더 고통스럽고 힘들었던 거 같아요...
중학교 때 처음으로 누군가를 좋아하게 됐는데, 나도 모르게 가슴이 오그라들면서 자꾸 그런 생각이 드는 거에요.
엄마도 나를 버렸는데, 누가 나를 사랑해줄까. 아무도 나를 좋아하지 않을 거야...
그 생각에서 벗어나기가...왜 그렇게 어렵던지...
지은 : ...(눈물이 툭 떨어지고)
말없이 있다가 지은 현우의 어깨에 가만히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는다. 그렇게 앉아 있는 두 사람.
S#75. 지은의 집 앞 (밤)
현우의 자전거 멈추고 지은 내린다. 잠깐 말없이 보다가
지은 : 들어갈게요.
현우 : ...잘자요.
지은 : (끄덕하고 돌아서다) 오늘 친구해줘서 고마워요. 사실은 오늘 아저씨 못 만났으면 (기운없이 웃으며)
강물에 뛰어들었을지도 모르는데. 그리구 (‘아저씨’ 하려다)... 그러고보니까 여태 이름도 몰라요. 이름이 뭐에요?
현우 : ...현우요. 박현우.
지은 : (끄덕거리며 가슴에 새기듯) 박현우...현우씨 참 좋은 사람이에요. (진심어린)
현우 : ...
지은 웃어보이고 들어간다. 현우 그 모습 바라본다. 지은의 모습이 사라진 후에도.
S#76. 지은의 방
지은 엎드려 있다.
지은E : 어쩌면, 당신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당신에 대해 환상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S#77. 길의원 근처 (밤)
지은 집에서 나와 우체통으로 다가간다. 우편 봉투 들고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넣고 돌아선다.
지은E : 하지만 해가 저물 무렵 이유없이 가슴이 저려오는 것과 정체모를 슬픔에 대해,
당신이 깊이 동감을 표했던 것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S#78. 길의원 근처
현우 우체통에서 열고 지은의 편지 꺼낸다. 주위를 살피며 자기 주머니에 슬쩍 집어넣고 출발한다.
지은E : 그런데 당신이 아니라면, 내 얘기를 들어주고 나를 이해해주는 그 어떤 사람은 정말 환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걸까요?
S#79. 한적한 곳
현우 지은의 편지를 읽고 있다.
지은E : 그 사실을 알 수 있을 때까지만 당신에게 편지를 쓰겠습니다.
현우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다가 편지를 접어 주머니에 넣고 오토바이에 올라 출발하는데
구노인과 슈퍼 할머니 외출복으로 빼입고 데이트하러 가는 모습이 보인다. 둘 손잡고 있다가 현우를 보자 얼른 손 놓는다.
슈퍼 할머니 부끄러워하고 구노인 현우에게 승리의 V자 만들어보이며 웃는다. 현우 웃어준다.
S#80. 시골길
현우 생각에 잠긴채 오토바이타고 달려가는데 거칠게 달려오는 대형 화물 트럭.
현우 황급히 피하는데 트럭의 요란한 급정거 소음. 화면 하얗게 바랜다.
S#81. 길의원 몽따지.
트럭 운전수, 현우를 업고 황급히 들어온다. 지은 일하다 놀라서 일어난다.
현우 진료실 침대에 눕혀진다. 주머니에서 툭 떨어지는 편지봉투. 원장 현우를 진찰한다.
지은 진료기구를 가지고 오다 바닥에 떨어진 편지 봉투를 주워든다. 자신이 정훈에게 보내는 편지. 봉합 부분이 열려져 있다.
지은의 얼굴이 얼어붙는다.
S#82. 길의원 병실
희뿌연 시야에 흐릿하게 보이는 간호사 지은의 얼굴. 점차 분명해진다.
현우 병실에 누워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얼떨떨해한다. 지은 냉정한 얼굴로 체온과 혈압을 재기 시작하고
현우 : 나 별로 안 다쳤죠?
지은 말없이 챠트에 기록하고 문 쾅 닫고 나간다. 현우 의아하게 보는데.
S#83. 병실 앞
지은 씩씩거리며 걸어나오다 참지 못하고 다시 병실로.
S#84. 길의원 병실
다시 문 벌컥 열리고 지은 씩씩거리며 다가선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
현우 일어나 앉는데 지은 봉투 꺼내 현우의 눈앞에 바짝 들이댄다. 현우 놀라서 아찔하고
지은 : 이거 어떻게 된 거에요? 내가 납득할 수 있게 해명을 좀 해주시겠어요? 어째서 내 편지가 아저씨 주머니에 들어 있고,
어째서 봉투가 열려 있는 거에요? 네? 어째서요?!
현우 : ...(당혹스럽고)
지은 : 이 편지, 아저씨가 뜯어서 봤어요? 뜯어서 읽었죠?
현우 : ...(고개 숙이고)
지은 현우의 뺨을 때린다. 원장 들어오다 보고 놀란다.
원장 : 뭐야! 어? 간호사가 환자를 쳐? 너 미쳤어? 너 간호사 맞어?
지은 : (몹시 격해서) 간호사 안해! 안하면 되잖아요! (울면서 현우에게) 당신이 뭔데 내 편지를 봐! 당신이 뭔데! 왜! 왜!!
언제부터야? 언제부터 남의 편지 뜯어봤어? 그동안 내편지 다 뜯어봤지, 다?! 전부 다?!
원장 눈이 휘둥그레져서 보고 현우 묵묵히 말이 없다. 지은 편지를 짝짝 찢어서 현우에게 던진다.
지은 : 아빠, 저 사람 정신병자야. 여기서 당장 쫓아버려.
지은 문 쾅 닫고 나간다. 원장 얼떨떨하고 현우 얼굴을 손에 묻는다.
S#85. 길의원 접수 창구
지은 일을 하려고 하다 그만 둔다. 분을 삭히지 못한다.
S#86. 길의원 병실
현우 괴롭다.
S#87. 하숙집 뜰
소정 유치원 가방 메고 즐겁게 돌아온다. 현우의 방이 열렸고 현우가 짐 정리하는 모습이 보인다.
소정 그쪽으로 뛰어간다.
S#88. 하숙방
짐 거의 다 꾸려져 있다. 소정 들어와 근심스럽게 둘러본다.
소정 : 아저씨...어디 가?
현우 : (웃고) 어떡하냐. 이제 겨우 친해지기 시작했는데. 그지?
소정 : 왜 가는 거야?
현우 : ...소정아. 아저씨 이제 우체부 못하겠다. 좋은 우체부가 되고 싶었는데, 반대로 아주 나쁜 우체부가 됐어.
소정 : (빤히 보고)
현우 : (일어나며) 소정아, 우리 자장면 사먹으러 갈까?
S#89. 중국집 앞
현우 소정을 태우고 자전거 타고 온다. 자전거 세워놓고 둘 손잡고 들어가는데 지은, 은행 여직원과 나온다.
지은 현우를 보고 얼굴 굳는다. 현우 두 사람에게 목례하고 지은 외면한다.
소정 : 안녕하세요.
지은 : 어, 그래. 소정이가 이제 인사도 잘 하고 얼굴이 아주 밝아졌다? 엄마한테 편지 또 왔어?
소정 : (웃으며 끄덕) 다음에 보여줄게.
지은 : 그래. 꼭 보여줘야 돼? 자장면 많이 먹구 가. (가고)
소정 : 응. 언니, 안녕.
지은 현우에게 눈길도 안주고 간다. 현우 보다가
현우 : 소정아, 잠깐만. (지은에게로) 저기요.
지은 : (상대하기 싫다는 듯) 됐어요, 아저씨. 나 정말 아무 말도 듣고 싶지 않거든요. (가고)
현우 : ...
소정 그 모습 유심히 본다. 현우 소정에게로 와서 억지로 웃어보이며 안으로 데리고 간다.
S#90. 기차역
현우 가방 두 어 개 들고 플랫폼에 서 있다. 서울행 기차 들어온다. 현우 기차에 오른다.
S#91. 버스 정류장(서울)
서울 변두리. 버스 달려와 멈추고 지은 내린다. 꽤 멋부린 차림새.
막막하게 두리번거리다가 지나는 사람에게 길을 묻는다.
S#92. 변두리 주택가
지은 정훈의 주소를 찾아 설레는 마음으로 초인종을 누른다. 응답없다.
시간경과. 지은 기다린다.
다시 시간경과. 지은 계속 기다린다.
외출했던 집주인 돌아와 의아하게 지은을 보며 열쇠로 대문을 여는데 지은 반갑게
지은 : 저, 안녕하세요?
집주인 : (경계하며) 뭐에요?
지은 : 이댁에 오정훈씨라고 계시죠?
집주인 : (빤히 보다가) 오정훈? 전에 전세 살던 그 애기 아빠 말예요?
지은 : 네? (놀라서 주소 다시 확인하는데)
집주인 : 맞어. 그 애기 아빠 이름이 오정훈이야. 매일 부부싸움하고 너무 시끄러워서 내보냈는데. 이사간지 한참 됐어요.
문학인가 뭔가 한답시고 어지간히 바람 피우고 다니고 마누라 속썩이더니... (지은을 위아래로 훑어보고)
지은 : (믿어지지 않고)
S#93. 반지하 셋집 앞 산동네.
지은 주소 적은 메모지 보며 어렵게 찾아온다. 대문 약간 열려 있다. 와장창 요란한 소리.
지은 살짝 들여다보면.
S#94. 정훈의 집
정훈 배낭 여행 차림으로 나서는데 아내 뒤에서 살림살이들 마구 내던지며 악다구니.
여자 : 야, 이 자식아! 왜 그냥 가! 왜!
여자 뒤에서 정훈의 머리채를 잡는다. 정훈 열받아서 확 밀친다.
정훈 : 아, 이게 진짜?! 내가 어쩌다 이런 거한테 발목이 잡혀가지구, 어흐!!
여자 : (나가떨어지고 울부짖는) 야 이 나쁜 자식아!
여자 통곡하며 울고 아이도 한쪽에서 운다. 지은 경악해서 보는데, 정훈 진저리치며 대문쪽으로 간다.
지은 사라진다.
S#95. 산동네
지은 황급히 몸을 숨긴다. 정훈 씩씩거리며 나와서 내려간다.
지은 그 모습 보다가 무너지듯 천천히 앉는다.
S#96. 달리는 버스 (밤)
지은 창가에 앉아있다. 어이없고 부끄럽고 화나서 훌쩍거리며 운다.
S#97. 길의원 근처 (밤)
지은 핸드백 늘어뜨리고 기운없이 걸어온다. 원장 집에서 나오다가
원장 : 꼴이 왜 그래?
지은 : ...
원장 : 아빠 지금 술 한잔 하러 가는데, 같이 데려가줄까?
지은 : (끄덕)
S#98. 술집 (밤)
소박한 술집. 원장과 지은 소주 마시고 있다.
원장 : 효녀도 아닌 것이 심청이 노릇하려다보니까 주리가 틀리지? 서울 가고 싶으면 서울 가서 살어. 나 너 필요없어.
지은 : (갑자기 와앙 울고)
원장 : 내가 너무 감동시켰냐? 왜 이래?
지은 : 필요없다구? 아빠두 나 필요없어? 그럼 난 어떻게 살아. 나한텐 아무도 없는데, 아무도 없는데 어떻게 살아...
원장 : (다정하게 구박) 이 자식이 술주정을 하나? 야, 너 뭐가 문제야, 임마. 어?
지은 : 아빠랑 엄마는 처음에 만났을 때, 어떻게 알아봤어? 자기의 반쪽이라는 거, 운명의 상대라는 거, 어떻게 알았어?
원장 : 그냥, 저절로 알았지.
지은 : 시행착오도 없었어?
원장 : 없었지.
지은 : (한숨) 으, 난 안돼. 난 아마, 진짜를 만나도 못 알아볼 거야. 아빠, 난 왜 이렇게 멍청할까?
원장 : 가르쳐줄까? 멍청이니까 멍청하지.
지은 : (흘기며 때려주고)
원장 : 기껏 키워놨더니 실연이나 당하고 다니고, 안됐다. 나라도 안아줘야지. 이리 와, 이 멍청아.
원장 지은을 안아준다.
S#99. 길의원 근처(밤)
원장과 지은 어깨동무하고 트로트 가요 고성방가하며 돌아온다.
지은 다리가 꼬여서 비틀거리면 원장이 업고 간다.
S#100. 지은의 방
창문으로 아침햇살이 비쳐든다. 지은 침대에서 잠깨어 생각에 잠긴다.
노크소리와 함께 원장 문 열고
원장 : 야, 북어국 끓여놨으니까 나와서 먹어라. (나가려다) 참, 거기 책상 위에 그거, 어제 소정이가 가져온 거야.
우체부가 자기 떠난 다음에 너한테 전해주랬댄다. (나가고)
지은 일어나서 책상위의 서류 봉투를 열어본다. 지은의 반송 우편들과 우송되지 않은 편지들...
그 속에 흰 편지 봉투 하나 있다. 지은 꺼내서 본다.
현우E : 당신의 편지들을 돌려드립니다. 너무 늦게 드리게 돼서 죄송합니다.
S#101. 공사장 (서울)
현우 막일을 하고 있다.
현우E : 남의 것을 가지고 있는 일은 저 역시도 마음 불편한 일이었습니다.
S#102. 달동네 자취방 앞 (저녁)
현우 돌아온다. 어울리지 않게 서 있는 빨간 우체통. 현우 우체통 열어본다. 텅 비어 있다. 현우 들어간다.
현우E : 하지만 당신의 기다림에 상처를 내는 일이 싫고 두려웠습니다.
S#103. 자취방
한쪽에 빈 컵라면 용기 아무렇게나 놓여있고 현우 피곤에 지쳐 누워있다.
현우E : 다시 만날 수 없더라도 용서를 해주신다면 감사하겠지만, 아마 그렇게 되지는 않겠지요.
S#104. 지은의 방
지은 현우의 편지를 읽다가 생각에 잠긴다.
현우E : 주제넘지만 딱 한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당신은 절대로 보잘 것 없거나 초라한 존재도 아니고
바보 같은 사람도 아닙니다. 당신은...정말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지은 생각에 잠겨 있다가 문득 서랍을 열어 S#73의 ‘오정훈’의 편지 꺼낸다. 필체를 대조해본다. 같은 필체...
S#105. 길의원
지은 일하고 있고 여인1 잡지 보고 외딴집 노파 졸면서 순서 기다린다.
새 우체부(50대) 들어온다. 그를 보는 지은 마음이 복잡하다.
지은 : 안녕하세요?
우체부2 : (무뚝뚝) 여기 싸인 좀 해주세요.
지은 사인하면 우체부 등기 우편 주고 간다. 슈퍼 주인 할머니 진찰실에서 나오며
주인 : 구관이 명관이라고, 저 양반... (머리 젓는다) 공과금 심부름도 안해주고, 저번 그 총각이 백배 나은데.
노파 : 누가 아니래? 아 글세 한번은, 그 총각이 아들한테 소포가 왔다면서 모시메리를 갖다주잖아.
주인 : (O.L) 아,알아, 알아. 또 그 애기야? 동네 방네 그거 입고 돌아다니면서 아들 자랑 엄청 했잖아, 형님.
노파 : 근데, 알고 보니까 그게 글세, 우리 아들이 보낸 게 아니야.
암만 생각해도 그 우체부 총각인데, 갑자기 고만두고 가버리는 바람에 고맙단 말 한 마디 못 하고...
지은 : ...
주인 : 요즘 젊은 사람이 우체부 일 그만큼 했으면 오래 버틴 거지 뭐.
여인1 : 일 때문에 그만 둔 게 아닐 걸요. (지은 쪽을 힐끗대며 의미있는)
노파 : 뭐? 일 때문에 그만 둔 게 아니면?
여인1 : 말해두 돼?
지은 : 아줌마! 그런 거 아니라니까!
주인 : 뭔데? 뭔데 그래? (손뼉 짝!) 아, 애정 문제?
여인1 : 아, 아니라잖아. 아니래요. (말로만)
주인 : 간호사 아가씨 때문에 그 총각 떠난 거라면, 너무 했네. 동네 사람들이 그 총각 얼마나 이뻐했는데.
노파 : 아, 그러게 말이야.
지은 뜨끔하지만 일하는 척.
S#106. 하숙집 근처
지은의 소형차 와서 멈추고 지은 내린다. 소정 엄마 집안을 기웃거리다가 몸을 숨긴다. 지은 안으로.
S#107. 하숙집 마루
할머니 마늘 잔뜩 쌓아놓고 껍질 까고 있고 소정도 매워하며 거들고 있다.
할머니 : 그 총각이 있을 때는 하숙비를 받아서 그런대로 살아갈만했는데... (한숨)
지은 들어오며
지은 : 안녕하세요?
할머니 : 어, 어서 와. 웬일이야 그래?
지은 : 그냥 지나가다 들렀어요. 소정아, 어제 우리집에 심부름 왔었다며? 고마워. 이거 선물. (새 머리핀 꽂아주고) 이쁘다.
소정 : ...언니, 저번에 아저씨한테 왜 그랬어?
지은 : ...어어...그렇게 됐어...너 혹시 아저씨 어디로 이사갔는지 아니?
소정 생각하다가 방으로 뛰어들어간다.
할머니 : 오늘 편지가 왔더라구. 둘이서 서로 편지하기로 했다나?
소정 편지 봉투를 가지고 나온다.
소정 : 나 벌써 답장 썼거든? 그러니까 이 봉투는 언니 가져두 돼.
지은 : 그래, 고맙다.
지은 봉투를 보면 익숙한 필체. 빈 여백에 ‘우체부 아저씨, 감사합니다’ 라고 썼다.
지은 미소짓는다.
S#108. 하숙집 앞
지은 나와서 차에 오르려는데
소정모E : 저기요.
지은 돌아보면 한쪽에 몸을 숨기고 있는 소정모.
소정모 : 잠깐 저 좀 보실래요?
지은 다가간다.
소정모 : 저, 소정이 좀 잠깐 나오게 해주실 수 있어요? 제가 소정이를 좀...(울음에 묻히고)
지은 : 소정이 엄마세요?
소정모 : (끄덕) 애가 날 원망 많이 할 거에요. 애를 만날 자신은 없고, 그냥 조금만 더 가까이서 보게 해주셨으면 해서...
지은 : 소정이, 엄마 원망 안해요. 얼마 전에 편지 몇 번 하셨었잖아요. 소정이가 얼마나 자랑하고 다녔는데요.
소정모 : 편지요? ...나 편지쓴 적 없는데.
지은 : ...
S#109. 하숙집 마당
할머니와 소정 마늘까고 있는데 지은 다시 들어오며
지은 : 소정아. 잠깐만.
지은 손짓해서 부르고 소정 따라간다. 할머니 잠깐 돌아보고 마늘 계속 깐다.
S#110. 하숙집 근처
지은 소정을 데리고 나오며
지은 : 누가 소정이를 만나고 싶어하는데, 알아맞혀 봐.
소정 : 음...아저씨?!
지은 : 아아니.
나무 뒤에서 나타나는 소정모. 소정 멈춰선다. 잠시 바라보다가 소정 달려가 안긴다. 소정모 눈물흘리며 깊이 안는다.
지은 눈물 글썽해서 그 모습 바라본다.
하모니카 연주 깔리고.
S#111. 자취방
현우 하모니카 불고 있다.
현우와 지은의 추억들 몽따지...
S#112. 지은의 마당 (밤)
지은 앉아서 생각에 잠겨 있다. 원장 옆에 와 앉으며
원장 : 뭐하냐?
지은 : 그냥...
원장 : (하늘 보다가) 아, 보고 싶어 죽겠다.
지은 : 누구?
원장 : 우리 이쁜 마누라.
지은 : ...아빠. 나, 어떤 사람한테 마음의 빚을 많이 진 거 같은데, 어떡하지?
원장 : (한숨) 마음의 빚이라...마음의 빚으로 말할 거 같으면, 내가 느이 엄마한테 참 많이 빚졌다. 미안했던 거, 고마웠던 거,
그때 그때 다 말해줄 걸. 내가 많이 좋아했던 거, 다 느끼게 해 줄걸...뒤늦게 아주 후회가 막심이다.
지은 : ...나 있지, 어떤 사람한테 굉장히 미안하고, 굉장히 고맙고...그리고 그 이상의 뭔가가 내 가슴에 있는데,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도 않고,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
원장 : 어떻게 해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까 그걸 생각해봐. 지나고 보니까 인생이 너무나 짧더라구...짧아.
지은 : ...
S#113. 현우의 자취집 앞
토요일 오후. 현우 비닐 봉지에 뭔가 사들고 터덜터덜 돌아온다. 헛일 삼아 우체통을 열었다가 닫고 정신이 번쩍 든다.
잘못 봤나? 다시 살짝 열면 편지 봉투가 잔뜩 들어 있다. 현우 의아해하며 꺼낸다.
소정의 편지, 소정모의 편지, 구노인과 슈퍼 할머니의 편지, 외딴집 노파의 편지...
현우 놀라워하다가 모든 편지가 우체국의 소인이 찍혀있지 않은 것을 의아해한다. 그렇다면 누군가 직접 가져왔다?
현우 주위를 둘러본다. 누군가 숨어서 지켜보다가 쏙 사라진다. 현우 다가가본다.
S#114. 달동네 공터
지은 나무나 축대 뒤에 숨는다. 현우 나타난다. 현우 지은의 뒷모습을 보며 의아해하며 다가간다.
지은 숨을 곳은 없고 현우는 다가오고 난처해한다.
현우 마침내 다가와서 지은을 보고 놀라는데 지은 쑥쓰러워하며 어색하게 웃는다.
지은 : ...안녕하세요?
현우 아무 말 하지 못한다. 지은 옷에 현우가 선물한 브로치가 달려있는 것을 본다.
지은 : 다들 아저씨... (그러다가) 현우씨를 그리워해요. 다시 돌아와줬으면 좋겠다고...
구씨 할아버지랑 ** 슈퍼 할머니 식 올리시기로 했거든요. 그 전에 빨리 돌아 오시래요.
그래서 제가 직접...편지 배달하러 왔어요.
현우 : ...
지은 : 소정이가 현우씨 많이 보고 싶어하구요, 그리고 나는...편지를 쓰려고 했는데... 말로는 내 마음을 표현할 수가 없어서...
현우 : ...?
지은 현우를 보다가 다가서더니 가만히 껴안으며 눈물흘린다.
지은 : 나, 현우씨 오토바이 다시 타고 싶어요.
현우 잠시 후 조심스럽게 지은을 마주 안으며 눈물 흘린다.
그러다 서로 마주 보고는 활짝 웃는 두 사람. (엔딩)
첫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