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래의 슬픈 노래 김수종 2009. 9. 29. (www.freecolumn.co.kr)
오늘은 고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최근에 고래와 관련한 국내외 뉴스를 많이 보고 듣습니다. 나라 안에서는 주로 동해의 고래 출몰이나 고래포획 허용 문제와 관련한 뉴스가, 나라 박에서는 고래가 해변에 올라와 집단으로 죽어가는 광경이 텔레비전 화면에 자주 나옵니다.
자유칼럼 초창기에 글을 쓸 때 '코끼리의 장례식‘이란 제목으로 코끼리가 인간 문명 때문에 서식환경을 잃어간다는 이야기들을 모아 칼럼을 쓴 적이 있습니다. 육지보다 3배나 넓은 대양을 지배하는 고래도 마찬가지 운명에 처하고 있다는 사실이 묘한 대비가 되어 관련된 이야기들을 모아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코끼리는 지상에서, 고래는 바다에서 먹이사슬의 꼭대기를 차지합니다. 물론 인간이 먹이사슬의 최정상에 서 있습니다. 먹이사슬의 상층부로 갈수록 숫자는 줄어들어 피라미드형을 이루는 데, 인간의 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코끼리나 고래의 개체수가 그 영향으로 현저히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은 생태계의 아이러니이자 문명의 운명적 한계를 암시해주는 지표라는 생각도 해볼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덩치가 가장 큰 동물, 고래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다른 게 있다면 옛 사람들은 고래를 무시무시한 물고기로서 생각했던 것이고, 현대인들은 인류문명의 발달로 인해 차츰 서식지를 잃어가는 멸종위기의 포유동물로 보기 시작했다는 관점의 차이일 것입니다.
고래를 물고기로 알다
어릴 때 서귀포 근처 바닷가에 살았던 나는 돌고래가 떼를 지어 헤엄쳐가는 모습을 신나게 보았습니다. 그리고 일본사람들이 지었다는 고래공장 폐허를 구경한 적이 있습니다. 어쨌든 나의 머릿속에 자리 잡은 고래의 이미지는 물고기였습니다. 학교에 다니면서 고래가 새끼를 낳아 젖을 먹이는 원숭이나 개와 같은 포유류라는 것을 배웠지만, 인식의 밑바탕에는 상어나 참치 같은 물고기라는 이미지가 잘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고래가 물고기와 전혀 다르다는 인식을 하게 된 것은 25년 전쯤 미국 샌디에이고의 ‘씨월드’에서 돌고래를 본 후부터였습니다. 씨월드 공원은 방문객들과 돌고래가 만나는 장소를 만들어 놓고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조그만 돌고래가 고개를 내밀어 나를 쳐다보며 입을 벌려 요란스럽게 지껄이는 것이었습니다. 머리를 쓰다듬어 줬더니 그 놈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습니다. 옆에 있던 미국 사람이 먹이를 달란다고 귀띔해주었고, 그제야 먹이를 던져줬더니 그 돌고래는 고개를 상하로 흔들면서 뭐라고 떠들며 친밀감을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고래가 해안에 좌초해서 떼로 죽어가는 광경이 자주 텔레비전 화면에 나옵니다. 최근 사례로는 9월 중순에 아르헨티나의 추붓 주(州)에서 ‘파이럿’ 고래 50여 마리가 집단으로 죽어 있는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호주 뉴질랜드 남아프리카 등 세계 곳곳에서 이렇게 고래가 떼를 지어 죽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죽음의 원인을 놓고 ‘집단자살’이라는 설도 나오고, 고래 대장이 길을 잘못 인도해서 일어난 사고로 보기도 합니다. 가장 과학적 근거에서 나오는 고래의 사인(死因)은 잠수함이나 군함이 사용하는 소나(음파탐지기)가 고래의 청각기관과 뇌를 손상시켜 고래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것입니다.
고래 떼죽음의 원인은 소나
뉴욕타임스가 고래에 대한 특집기사를 실었는데 참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2002년 9월25일 멕시코 바하 캘리포니아 해안에 고래 몇 마리가 해변에 좌초되어 죽었습니다. 바로 같은 날 이곳에서 9,000킬로미터 떨어진 대서양의 카나리아 섬 해변에서도 고래 14마리가 좌초되어 죽었습니다.
학자들은 두 곳에서 벌어진 고래의 죽음과 관련하여 재미있는 공통점을 확인했습니다. 바로 고래가 죽은 카나리아 섬 인근에서 군함이 참여하는 군사훈련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1985년 이래 카나리아 섬에서 해군 훈련과 고래의 떼죽음이 잇달아 일어난 것이 4차례가 있었던 것도 알아냈습니다. 바하 캘리포니아 산호세 섬 근처에서는 해군 훈련이 아니라 해양탐사선이 지진조사를 위해 강력한 수중공기총을 발사했고 그 후 고래가 해변에 올라와 죽었던 것이 밝혀졌습니다.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사례가 브라질 바하마 일본 이탈리아 그리스에서도 확인됐습니다.
과학자들은 이렇게 죽은 고래를 부검해서 뇌와 귀에 파열상흔이 생긴 것을 발견했습니다. 카나리아 섬에서 죽은 고래를 부검한 결과 뇌와 귀에 출혈이, 간 허파 콩팥에 파열상흔이, 장기와 조직에 질소거품이 생긴 것을 알아냈습니다.
과학자들은 고래가 해변을 향해 ‘자살돌격’을 감행하는 것은 인간이 조성한 수중 소음을 견딜 수 없어 벌이는 행동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비영리 국제 환경단체인 천연자원 보전협회(NRDC)는 2005년에 “100년 전까지만 해도 고래와 어류의 합창이 울려 퍼지던 해양이 인간이 만들어낸 소음에 의해 감각능력 저하를 일으키는 곳으로 본질적 변화를 겪고 있다”는 보고서를 채택했고, 국제포경위원회(IWC)는 2004년 심포지엄에서 100여명의 과학자의 이름으로 “음파탐지기와 고래 떼죽음의 관련성은 아주 설득력이 있다.”는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고래의 죽음은 드디어 미국 대법원 법정 안으로 들어가기에 이르렀습니다. NRDC는 다른 환경단체와 공동으로 해군을 상대로 소나의 사용을 극도로 제한해야 한다는 소송을 제기해서 1, 2심에서 승소했으나 작년 대법원에서 6대 3으로 패소했습니다. 비록 국가안보를 중시해서 내린 패소판결이었지만 인간이 발생하는 소음이 고래에 유해하다는 인식을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또 고래의 죽음과 인간소음의 상호관계를 법률적 이슈로 제기했다는데서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고도지능을 가진 우아한 존재
생명치고 신비롭지 않은 존재는 없지만, 고래는 우주의 신비를 안고 있는 생명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모든 생명체의 기원은 지구표면의 70퍼센트를 차지하는 바다입니다. 인간도 바다 생명체에서 진화해서 오늘의 멋진 모습으로 변했습니다.
그런데 고래는 포유동물로 육지에서 살다가 바다로 이주한 아주 특이한 내력을 갖고 있는 존재입니다. 왜 그랬는지는 모릅니다. 인류가 태어나기 훨씬 전인 7,000만 년 전의 사건이라고 합니다. 고래는 바다 속에서 계속 진화해서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표현처럼 “행성 지구에서 가장 거대한 몸체를 자랑하며 깊은 바다의 우아한 주인으로서 고도의 지능을 소유한 존재”가 된 것입니다.
인류가 태어난 것은 아무리 거슬러 올라가도 700만 년 전이니 고래가 지구의 선참자입니다. 인간은 육상에서 그리고 고래는 바다에서 살았으니 그들은 서로의 간섭을 받지 않고 각자의 세계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살아온 셈입니다.
바다로 이주한 고래는 바다환경에 맞는 진화를 했습니다. 모든 생물의 본능이 번식과 종족보존입니다. 짝짓기를 해서 새끼를 낳고 적으로부터 자신과 종족을 보호하는 방법을 찾고 터득해나가야 했습니다. 고래가 잠수해 들어가는 수심은 1,000미터가 넘고 그런 심해는 암흑의 세계입니다. 육상에서 필요했던 시각과 후각은 점차 퇴화하고 청각기관이 발달했습니다. 고래는 소리에 의한 의사소통으로 존재가 가능한 동물입니다.
1만㎞ 밖서 소리를 듣다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고래의 노래’를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들은 15~30분간 긴 노래를 함께 부릅니다. 과학자들은 고래의 노래를 분석했습니다. 음 박자 리듬 소절이 완벽하게 반복됩니다. 고래가 겨울이 되어 따뜻한 남쪽으로 헤어져 살다가 다시 북쪽으로 돌아오면 꼭 같은 노래를 함께 부릅니다. 그런데 이렇게 헤어졌다가 돌아오면 발성법이 약간씩 변하는데, 고래의 합창은 이렇게 조금씩 변해간다는 것입니다. 고래는 고도의 사회적 동물의 행태를 보입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고래의 노래가 드넓은 대양을 무대로 사는 고래의 의사소통 방법이라고 봅니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이 들을 수 있는 소리만을 소리라고 생각하지만, 자연계에는 인간이 청취할 수 없는 넓은 대역의 주파수를 가진 소리가 다양하게 존재합니다. 같은 정상 인간이라도 10대가 듣는 소리를 50대는 전혀 들을 수 없습니다.
고래는 거대한 대양을 무대로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아주 넓은 주파수 대역의 소리를 내고 또 듣습니다. 고래는 사람의 청각의 범위를 벗어난 아주 낮은 주파수를 사용하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미국의 생물학자 로저 페인은 처음에 박쥐의 소리를 연구하다가 고래의 노래를 연구해서 유명해진 사람입니다. 그는 혹등고래의 노래를 연구해서 “화려하고 단절되지 않은 소리의 강”이라고 표현했고, 긴수염고래가 20헤르츠의 소리를 아주 크게 내는 것을 관찰해서 이 동물이 대양을 넘어 서로 의사소통을 한다는 학설을 처음으로 내놓았습니다.
20헤르츠의 소리는 바닷물에 거의 흡수되지 않는 주파수로서 지구상의 어느 수중 지점에서도 고래는 상대방의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다고 합니다. 남빙양의 고래가 북극해의 얼음 밑에 있는 고래와 서로 사랑의 노래로 교신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연인의 창문 밑에 바짝 다가가서 사랑의 세레나데를 불렀던 르네상스 시대의 근대 남녀보다 바다의 고래들은 훨씬 편리한 장거리 통신망을 구축하고 사랑의 메시지를 주고받으면서 수천 만 년 동안 지내왔던 겁니다.
인간과 고래의 충돌
인간과 고래가 충돌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부터라고 하지만 인류는 근세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고래를 피하면서 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구약의 요나를 비롯해서 고래와 얽힌 전설에서 고래는 무시무시한 괴물로서 비쳐졌던 것입니다. 아라비안나이트에서 신밧드 일행이 고래의 등을 아름다운 섬으로 착각하고 텐트를 치고 불을 지피다가 고래가 요동치는 바람에 바다로 내동댕이쳐지는 내용이 나옵니다.
인간이 고래잡이를 한 것은 오래지만 본격적으로 포획의 대상으로 삼고 포경선을 타고 작살을 던지기 시작한 것은 17세기부터였습니다. 공포의 대상이 정복의 대상으로 변한 것입니다. 고래 고기는 말할 것도 없고, 고래 기름은 등유를 비롯한 각종 고업원료로 쓰이는 등 고래는 남길 것이 하나도 없는 귀중한 자원이 되었습니다.
19세기와 20세기 200년간은 7,000만년 고래종의 역사상 가장 파멸의 시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포경선이 전 세계 대양을 누비기 시작하면서 고래는 인간에 의해 쫓기게 됩니다. 1860년 스웨덴에서는 해안에 좌초한 고래의 속살을 파내고 고래카페를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아가리로 들어가서 고래 배속에서 차를 마시고 나오면서 구약시대 요나가 경험한 공포의 경험을 즐거움의 경험으로 바꾸었습니다. 20세기 중반 들어 포경은 극에 달해 연간 5,000마리의 고래가 포획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19세기 이래 고래를 다른 측면에서 정말 괴롭게 만든 것은 바다에서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항해하는 증기선의 등장이었습니다. 엔진과 스크루가 내는 소리에 이어 군함의 소나가 등장하면서 고래가 견디기 힘들 지경으로 바다 속은 시끄러워진 것입니다. 인간은 해양 시대를 열어 문명을 구가했지만, 반대로 고래의 입장에서는 대양을 지배하던 통신망에 일대 교란이 일어난 셈입니다.
200년 전만 하더라도 10,000킬로미터 사이를 두고 교신할 수 있었던 고래의 통신거리는 이제 수 백 킬로미터로 줄어들었다고 학자들은 말합니다. 인간은 유선전화에서 인터넷 통신으로 지구의 구석구석을 연결하는 통신망을 구축했는데, 고래는 인터넷 통신망에서 유선전화로 되돌아간 꼴이나 마찬가지라 하겠습니다. 휴대전화가 터지지 않는 오지에 갔을 때 느끼는 불편함을 생각한다면 고래를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고래도 희노애락을 느낀다
고래는 소리를 통해 서로 통신을 할 뿐 아니라 고도의 지능을 가진 사회적 동물로서 희노애락의 감정을 가진 존재임이 속속 밝혀지고 있습니다.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은 뇌 속의 방추세포인데 고래도 이런 세포를 갖고 있다고 합니다. 과학자들은 고래가 도구를 사용하고 사냥할 때 고도의 협력 전략을 사용하는가 하면, 범고래 종류는 종족이 죽으면 슬퍼하는 것도 확인했습니다. 3년 전 뉴욕의 마운트 사이나이 의대에서는 고래의 뇌에서 한 때 소수의 영장류에만 존재했던 것으로 생각했던 고도로 특화된 신경세포를 발견했습니다. 이 세포의 작용에 의해 고래는 다양한 발성을 하고, 가르치고 배우고, 계획하고 협력합니다. 그리고 적을 알고 방어하며, 자신과 친구를 인식하고 신뢰를 쌓아가는 방법도 터득한다고 합니다.
향유고래는 지구상 동물 중에 가장 큰 9킬로그램의 뇌를 갖고 있습니다. 향유고래는 이 뇌를 통하여 수천마리가 이루는 대규모 정교한 사회활동을 해나간다고 합니다. 향유고래는 코끼리같이 모계 가족단위를 이루며 아기 고래가 태어나면 엄마 고래 외에 이모나 할머니 등 암컷 보호자에 의해 양육됩니다. 이들은 사냥방법과 의사소통 방법 등을 새끼 고래에게 가르칩니다. 해양 생물 중에서는 가장 인간과 비슷한 사회를 이루는 것이 향유고래라고 합니다.
이 거대한 향유고래는 알라스카에서 어부의 낚시 줄에 달린 대구 미끼를 그 큰 입을 세밀하게 조작하여 훔쳐갔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다른 향유고래들도 똑 같은 방법으로 대구 미끼를 훔쳐가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합니다. 그들이 사냥방법을 동족간에 전수하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고래들도 종족싸움을 하고, 인간과의 관계에서 특이한 행동을 보입니다. 멸종위기의 귀신고래와 혹등고래는 서로를 보호합니다. 미국 해안에서 귀신고래가 파일럿고래의 집단공격을 받자 혹등고래 떼가 나타나 파일럿 고래 떼를 몰아내는 것이 관찰됐습니다. 또 샌프란시스코에서는 그물에 걸린 혹등고래를 구하기 위해 구조팀이 파견된 적이 있습니다. 그 방법은 잠수해 들어가 고래를 감싼 그물 올을 하나씩 잘라내는 작업인데 고래가 요동을 치면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고래는 가만히 구조를 기다렸고 그물에서 풀려난 후 구조대원 주위를 뱅뱅 돌면서 친근감을 보인 후 사라졌다는 겁니다.
지난 7월 중국 하얼빈의 북극 흰돌고래 수족관에서 열린 다이빙 대회에 참가했다가 저수온에 몸이 마비되어 바닥에 가라앉은 여자 다이버를 흰돌고래가 입으로 물어 수면위로 올렸다는 뉴스가 사진과 함께 신문지면을 차지한 적이 있습니다.
멸종 위기의 한국 귀신고래
바다 속에는 수많은 종류의 고래가 서식합니다만, 전문가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고래가 있습니다. 바로 귀신고래(gray whale)입니다. 이 고래 종은 한국인도 관심을 가질 만합니다. 바로 울산 반구대 암각화에 나와 있는 고래가 귀신고래라는 해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귀신고래는 몸길이가 15미터에 무게는 40톤에 이르는 대형 고래로 수명이 100년이나 됩니다. 피부는 굴 껍데기같은 갑각류와 고래 이(虱) 등이 수백 킬로그램이나 다닥다닥 붙어 험상궂기까지 합니다. 귀신고래는 옛날부터 ‘악마의 물고기’로 불렸습니다. 속도가 빠르고 자신과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배를 뒤집어엎는가 하면 선원을 살상했기 때문입니다.
귀신고래는 18세기 이래 고래사냥의 표적이었습니다. 때문에 19세기에 이미 대서양의 귀신고래는 멸종되고 말았습니다. 20세기 들어 태평양의 귀신고래도 포획으로 멸종위기에 이르렀고, 1937년 국제포경위원회가 귀신고래 포경금지를 선언했습니다.
귀신고래는 태평양의 두 지역을 회유하는 그룹으로 나뉩니다. 알라스카에서 멕시코의 바하 캘리포니아 해안을 따라 이동하는 그룹과, 러시아의 오츠크해와 우리나라 동해를 왔다 갔다 하는 그룹이 있습니다. 미국 등의 보호노력에 의해 바하 캘리포니아에서 새끼를 낳는 동태평양 귀신고래는 다시 개체수가 회복되어 1만8,000마리까지 불어났고 멸종위기 종에서 해제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동해에 나타나는 한국 귀신고래는 그 숫자가 100마리도 안 된다고 합니다.
미국 과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동태평양 귀신고래를 연구했습니다. 때로는 생후 7일 된 길 잃은 새끼를 수족관에 기르면서 귀신고래의 생태와 행동양태를 관찰하여 많은 정보를 쌓게 되었습니다. 과학자들은 귀신고래의 뇌에 미세한 자석능력을 가진 산화철 입자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귀신고래는 이것을 이용하여 회유할 때 방향을 찾아간다는 것입니다. 고래가 꿈을 꾼다는 사실도 알아냈다고 합니다.
귀신고래를 연구한 과학자들은 이 고래가 ‘악마의 물고기’가 아니라 사람과 친숙해지려는 성질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미가 사람에 의해 죽임을 당하면 새끼들이 배 주위를 떠나지 않고 맴돌다 결국 굶어죽고 마는 것도 과거 목격자들을 통해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고래는 기후변화의 전령사
과학자들이 귀신고래 생태를 연구해 밝혀낸 사실 중에 주목할 것은 이 고래가 바다 생태계의 파수꾼이라는 사실입니다. 2008년에 미국에서 ‘귀신고래와 기후변화’를 주제로 한 워크숍이 열렸습니다.
여기서 귀신고래가 환경에 대한 적응능력이 대단하다는 사실이 발표되었습니다. 특히 기후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알라스카 인근 바다에서 남쪽 바다로 이동하는 시기를 늦추고 있으며 바하 캘리포니아에서 새끼를 낳고 키우는 기간도 줄이고 있다고 합니다. 즉 저위도 수역에서의 체류시간을 줄이고 먹잇감 사냥터를 북쪽으로 옮기고 있다고 합니다. 어떤 녀석들은 아예 남쪽으로 이동하지 않고 북극 바다에서 겨울을 보내기도 합니다. 과학자들은 이런 회유이동의 변화 원인을 기후변화라고 보고 있습니다. 요새는 툭하면 만사를 기후변화로 돌리는 시대입니다만 달리 합리적으로 설명할 방법이 없으니 그렇게 믿는 게 나쁜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거대한 대양의 주인공이었던 고래는 사면초가에 둘러싸인 꼴입니다. 인간의 사냥감이 되는 게 두렵고, 인간이 만들어놓은 소음에 청각이 마비되고, 이제 기후변화로 달라진 생태계에 적응해야 하는 어려운 환경에 몰린 셈입니다.
과학자들은 기발한 고래 보호 방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대양에 ‘고래길’(Whale Lane)을 만들어 여기서는 배의 운항도 제한하고 소음도 내지 말자는 제안입니다. 마치 고속도로에 버스차선을 두고 다른 교통수단이 다니지 못하게 하는 것과 같은 아이디어입니다.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그러나 위기를 느끼면 인간은 또한 기발한 해결방안을 생각해냅니다.
육지 동물에 대한 관심보다 바다 동물에 대한 관심에 인간이 더 둔감하다는 것이 문제일 것 같습니다.
20세기 중반부터 고래 사냥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국제적 규제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환경보전 분야에서 국제적 모범을 보이고 있는 일본이 포경금지 문제에서만큼은 대단히 강경한 반대 입장에 있다는 겁니다. 역시 해양민족으로 수산물에 의존했던 전통과 입맛을 버릴 수가 없는 모양입니다.
‘고래 도시’ 울산의 꿈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고래에 대한 인식은 어떤 상태일까요? 환경에 상당히 민감해진 추세를 생각할 때 일반적으로 고래보호에 온정적이지 않나 싶습니다.
그런데 고래와 경제생활이 보다 밀접한 동해안, 특히 고래를 도시의 테마로 삼고 있는 울산에서는 고래논쟁이 꽤 치열합니다. 울산시는 고래박물관을 세우고 고래관광선을 띄우는 등 고래를 테마로 한 해양 문화 콘텐츠 진흥에 노력하고 하고 있습니다. 그 일환으로 얼마 전에는 국제포경위원회(IWC) 연례회의를 울산에 유치하여 열게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동해안에서는 확인되는 것만으로도 연간 밍크고래 수십 마리가 그물에 걸려 죽어갑니다. 이 혼획(混獲: 목표 어종이 아닌 것이 그물에 걸려드는 것)을 놓고 환경단체는 고의적인 고래잡이라고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그물을 넣는 어민들의 마음속에는 고래가 걸리기를 염원한다는 것이죠. 고래 한 마리를 경매에 부치면 수 천 만원을 호가합니다. 그러니 그물에 걸린 고래를 보고 ‘바다의 로또’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 무리가 아닙니다. 현지 음식업계에서는 고래잡이 허용이 지역경기와 관련하여 민감한 사안입니다.
울산의 여론은 포경을 놓고 찬반이 혼재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미래의 울산 지도계층이라 할 청년회가 포경을 강력히 옹호하고 나선 것을 보면 동해를 회유하는 고래에게는 경종이 될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이것은 현재 우리의 고래문화입니다.
반구대 암각화가 암시하듯 우리나라 동해는 옛날 귀신고래를 비롯해서 각종 고래가 노래를 부르며 유유히 헤엄쳐 놀던 고래의 천국이었을 겁니다. 우리 조상들은 고래를 사냥해 식용으로 쓰기도 했겠지만 바다 속을 지배하는 용왕과 같은 존재로 두려워하고 그들의 유영을 신령스럽게 바라보았지 않았을까 상상해 봅니다.
이 땅에 사는 현대인은 장차 고래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설악산의 산양처럼, 지리산의 반달곰처럼, 한라산의 노루처럼 동해의 고래를 함께 살아갈 자연의 친구로 생각할 수 있을까요?
한국일보 논설위원 김수종 씀 - 연안이씨 혜정(국제변호사)의 부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