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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강 스토아학파
1. 안티노미와 과학
어제 콜롬비아 대학 교수님이 오셔서 어마어마한 우주의 세계를 이야기해 주셨다.
우주는 무한하다고 말할 수 있고, 유한하다고도 말할 수 있을 거 같다. 말하기 어려운 것이다. 칸트는 그렇게 말하기 어려운 것을 안티노미(Antinomie)라고 했다. 같은 사태에 대해서 이렇게도 말할 수 있고, 저렇게도 말할 수 있는 것을 안티노미라고 했다. 그리고 안티노미는 탐구의 대상에서 제외했다.
하지만 현대과학은 그런 것도 제외하지 않고, 끝까지 탐구하고 있다. 그런 영역까지도 여러 가지 이론을 제시하면서 끝까지 탐구하고 있다. 인간 정신의 용감한 모습들을 나는 과학에서 항상 발견하게 된다.
칸트는 안티노미(Antinomie)는 순수이성의 탐구영역에서 제외했다. 그러나 현대과학은 그러한 영역까지도 확실한 해답을 얻고자 노략하고 있다.
2. 나와 한복
이번 강의내내 내가 입은 한복들을 만들어 주신 분이 있다. 한복은 대단한 것이다. 오늘은 제 옷을 정갈스럽게 만들어주신 한복 전문가 김혜순 선생님과 한복을 가장 아름답게 입는 오정혜 배우를 모시고, 한복에 대해 잠깐 이야기를 나누겠다.
김혜순(金惠順) 한국전통의상의 대표적 디자이너
오정해(吳貞孩) 국악인 영화배우
내가 대학을 65년도에 들어갔는데, 60년대만해도 우리나라에서 젊은 사람이 한복을 입는다는 것은 상상을 못했다. 청학동 같은 곳에서는 입었을지 모르지만, 60년대 대학에서 한복을 입는다는 것은 상상을 못했다. 60년대만해도 우리의 전통적인 문화는 모두 버릴 때였다.
그런데 60년대에 내가 동양철학에 눈을 뜨게 된다. 남들은 다 서양철학만 했다. 우리 철학과에서도 동양철학을 전공하는 사람은 10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였다. 동양철학을 전공하면, 같은 철학과에서도 이상하게 봤다. 무슨 성명관을 차리고, 사주팔자를 보려냐 했다. 사회적 인식도 좋지 않았다. 60년대까지만 해도 전통학문을 모두 버리려 했다. 나쁜 것처럼 들렸다. 그래서 한복도 입으려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나는 동양철학적인 세계관을 접하고, 우선 입는 것부터 제대로 입어야겠다고 생각해서 대학 다닐 때부터 한복을 입고 다녔다. 60년대 고려대학에서 한복을 입고 다닌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용기였다.
그런데 그렇게 한복을 입게된 사연이 있다. 내가 동양철학을 잘 해서, 배울 게 많다고 하면서 나를 따라다녔던 친구가 있다. 그 친구 집에 갔는데, 집에서 한복을 입고 앉아서 영어원서를 읽고 있었다.
내가 거기서 충격을 받았다. 나는 동양철학을 공부하지만 집에서 한복을 입지 않았다. 그런데 그 친구는 서양학을 공부하면서 저렇게 한복을 입고 있다는 것을 알고,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바로 집에 가서 엄마한테 한복을 지어달라고 하고, 고려대학 철학과 3학년 때부터 한복을 입기 시작했다.
그 친구는 연세대학교 정외과 대학원까지 다닌 천재적 인물이었다. 이름은 문남연(文南淵). 그러나 아깝게 꽃다운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다.
그게 습관이 되어서 오늘날까지 한복을 입는다. 내가 한복을 입고 살다보니깐 어쩌다 한번 한복을 입는 사람을 보면, 봐주기가 괴롭다. 내 한복은 뭔가 어울린다. 이게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다. 그런데 어쩌다 입는 사람들의 한복은 옷이 붕 떠 있다. 요새는 사람이 한복을 입는 게 아니라, 한복이 사람을 입는다.
우리 한복에 대해서도 조금 더 깊은 통찰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의상이라고 하는 것도 아주 대단한 학문의 세계가 있다. 토마스 칼라일의 ‘의상철학’이라는 유명한 책도 있다.
칼라일(Thomas Carlyle, 1795~1881)
영국의 역사가며, 수필가, 그 대표작 중 하나가 “의상철학”(Sartor Resartus)
인간이 존재한 이후, 의상이 없었던 적은 없다. 그래서 의상의 변천만 알아도 인류 문화의 변천을 알 수 있을 정도다. ‘의복사’라고 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래서 오늘 우리 의상전문가를 모시고, 잠깐 이야기를 들어 보겠다.
3. 한복의 변천
[도올]
한복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죠.
[김혜순]
우리 한복에서 저고리가 가장 기본적인 의상이라고 볼 수 있다.
金惠順
우리나라 최고의 장인이었던 藝丁의 제자. 이론과 실기를 겸비
[도올]
치마도 중요하겠죠. 하지만 저고리 모양의 변천이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는 것이죠?
[김혜순]
삼국시대 이전까지 저고리의 길이가 엉덩이를 덮을 정도로 길었다. 남자들과 별차이가 없을 정도로 길었다. 그리고 허리에 띠를 매었다.
[도올]
그럼 서양복장과 같았네요.
[김혜순]
거의 비슷하다, 그리고 조선시대에 오면서 저고리의 길이가 짧아지기 시작한다. 여자들의 저고리는 큰 변화를 볼 수 있지만, 남자의 저고리는 큰 변화가 없었다. 18세기에 이를 때까지 저고리가 점점 짧아지기 시작해서, 19세기 초에 아주 짧아진다. 길이가 17.5센치정도로 아주 짧아진다. 하지만 치마의 길이는 그대로 있었다.
[도올]
그러니깐 조선의 여자들은 미니스커트 대신에 저고리를 짧게 했군요. 그게 섹스어필과 관계가 있나요?
[김혜순]
물론입니다.
[도올]
우리 어려서 겨울옷은 안에 솜을 넣어서 입었는데, 그걸 어떻게 빨았겠나?
옛날에 빨래를 한 번 하려면, 바느질한 것을 모두 풀었다. 조각조각 풀어서 빨래를 하고, 다시 바느질을 해서 만들었다. 옛날에는 다 그렇게 했다. 전기 다리미도 없어서, 숯불을 담은 다리미를 썼다. 여자들 일이 엄청 많았다. 한복은 여자들에게 괴로운 옷이다.
4. 한복의 특징
[도올]
한복은 뭐가 좋나요?
[김혜순]
사실 한복은 기능성 옷이다. 치마는 대를 물려서 입었다. 예전에는 끈이 없고, 가슴에 둘렀기 때문에 얼마든지 길이를 조정할 수 있었다. 저고리도 가위질을 끝까지 하지 않고, 옷감을 다 접어서 넣었다. 그래서 체형이 바뀌어도 적당하게 옷감을 넣어서 얼마든지 크기를 조절할 수 있었다.
[도올]
뜯어 놓은 한복을 보면, 재단 방식이 서양옷들과 다르다. 서양옷은 둥글고 복잡하게 재단하지만, 한복은 다 뜯어놓으면 네모다.
[김혜순]
한복이 평면이라면, 양복은 입체옷이다.
한복 : 평면적 재단
양복 : 입체적 재단
[도올]
여러분들은 모를 것이다. 소매도 뜯어놓으면 다 네모가 된다. 평면의 옷이라서 다 접어 넣어 바느질을 한다. 속에 쪼가리들이 들어 있다.
나만해도 한복 문화 속에서 자란 사람이지만, 이제 한복을 자연스럽게 입는 세대는 없어진다고 봐야 한다. 그리고 나는 개량 한복을 좋게 보지 않는다.
5. 한복의 장점
[도올]
오정해 씨도 우리 한복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세요.
[오정해]
저도 도올 선생님만큼 한복을 좋아하는 사람 중에 하나인데, 요즘은 한복다운 옷을 보기가 퍽이나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
오정해
우리나라 최고명장 김소희 문하에서 수업
서편제로 이름 떨침. 방송인으로서도 활약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개량 한복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한복을 입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도, 도대체 어떤 옷을 입어야 할지 모르게 되었다. 한복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시대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제가 하고 있는 일이 우리 음악이라서, 자연스럽게 한복을 접할 기회는 많다. 그런데 옷이라는 것은 그 옷의 목적에 맞아야 가장 아름다운 거 같다. 한복은 한복다울 때 가장 예쁘다.
제가 한복을 처음 입게 되고, 배우로서 기회를 주신 분이 김혜순 선생님의 삼촌이신 허영 선생님이시다.
허영(許榮 1947~2000) 호는 藝丁
한복의 달인. 특히 한복 인형의 선구적 문화운동을 펼쳤다.
김혜순의 외삼촌. 김혜순은 예정의 정통후계자.
허 선생님의 옷을 오랫동안 입었는데, 그 분이 돌아가신 후, 도대체 어느 분의 옷을 입어야 제가 만족을 할 수 있을지 찾았다. 그러다 김 선생님이 아주 오랫동안 우리옷을 만드신 것을 알고 너무나 반가웠다. 그 뒤론 제가 계속 쫓아다니면서 김 선생님의 옷을 입기 시작했다.
어떤 옷이든 자주 입지 않으면 불편한 옷이 된다. 꼭 한복이 아니어도 그렇게 되는 거 같다. 근데 한복은 내면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과도 같은 역할을 하는 거 같다. 겉으로 아무리 우아한 표현을 하고자 하는 사람도 한복을 입혀놓으면 그걸 숨길 수가 없는 거 같다.
아까 선생님이 말씀하신대로 어쩌다 입는 분들의 옷은 붕 떠보인다. 내가 입고 싶어서 입는 게 아니라, 때가 되어서 어쩔 수 없이 입으면 그대로 들어난다.
그래서 입다 보면 그 멋을 알게 된다. 조금 불편해도 한복을 입다보면 그쪽으로 손이 가게 된다.
한복한테 가장 잘 어울리는 헤어스타일은 무엇일까? 왜 어르신들은 비녀를 꽂았을까? 이유가 분명히 있었다. 제 얼굴이 다른 배우보다 크다. 이 비녀가 없었다면, 훨씬 더 커보였을 거 같다. 시선이 비녀로 쏠리면서 얼굴이 작아보인다.
또한 한복의 저고리가 짧아지면서 치마가 길어진다는 것은 하체를 길어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다. 제가 키가 작은데, 세계 무대에 나가도 멀리서 보면 그렇게 작아 보이지 않는다.
여러분도 기회가 되시면, 한복을 입어보길 바란다.
6. 새로운 한복을 찾아서
[도올]
동정의 선이 살짝 어긋나는 게 멋이다. 얇은 동정은 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소재다. 나이론으로 만들면 안된다. 한복은 절대로 원색을 쓰지 않는다. 자연 소재에서 우러나오는 은은한 맛이 있다. 아까 말한대로 그 사람의 인품과 자태가 베어나온다. 한복을 입으면 옷과 인간의 몸이 분리되지 않는다.
양복은 불편한 옷이다. 우리한테 맞지 않는다. 바닥에 앉아도 구겨지지 않는다. 한복은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도 편하다. 우리 삶과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그래서 나는 일자의 서양 바지를 입은 적이 없다. 안 입는다. 한국인의 삶과 맞지 않는다.
서양의 의상 변화도 상당히 기능적으로 변화해 왔다. 특히 2차대전을 거치면서 군복 스타일이 되었다. 작업복 스타일로 기능화되었다. 하지만 여러분들이 입는 옷들은 사실 불편하다. 그래서 비싼 옷을 사서 옷장에만 걸어두는 경우도 많다. 우리 삶과 뭔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아직 서양옷은 우리화가 되지 않았다. 이게 상당히 중요한 문제이다.
진짜 우리 의상은 어디 있는가? 한복이 모두 좋다는 것은 아니다. 사실 대한민국 사람들은 자기 의상을 잃은 민족이 되었다. 진정한 우리옷이 없다. 아라비아 사람들 사막에 살지만, 그 사람들은 진짜 자기 옷을 입는다. 인도 사람들도 자기 옷이 있다. 그런데 한국사람들은 아직 자기 옷이 없다. 굉장히 비극적인 일이다. 굉장히 중요한 우리 문화사의 문제이다.
우리 옷을 보면, 저고리가 점점 짧아져 왔다고 한다. 19세기에 극심하게 짧아졌다가 지금은 약간 길어지는 추세다.
즉 한국 의상도 고정적 틀이 있는 게 아니라, 시대와 더불어 변천해 왔다. 한복도 우리 삶과 더불어 변천하는 것이니깐, 한복에 대한 끊임없는 애착을 가지고, 21세기적인 방식으로 바꾸어 가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한복의 심층구조를 함부로 개량해서는 안된다. 세부적인 모양에 변화를 주고, 편하게 만들 수 있지만, 기본 한복의 의젓한 멋은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 이 멋이야말로 누가 흉내낼 수 없는 우리 한복의 아름다운 모습이다.
복식사는 논술의 주요한 주제 중의 하나다.
복식사는 문화사에 상응한다. 그리고 복식이란 우리의 삶의 양태(Mode of Life)와 더불어 끊임없이 변천한다.
7. 쾌락주의자의 금욕
지난 주에 우리는 Epicureanism을 공부했다. 영어로 Epicure라고 하면 식도락가이다. 인간의 모든 행복은 ‘위장’에서 온다고 했다. 위장이 튼튼하지 않으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선(善)은 없다고 했다.
에피큐로스학파(Epicureanism)
쾌락주의자 에피큐로스(Epicurus, BC 341 ~ 270 BC)가 주창한 이론.
쾌락주의자들은 인간에게 있어서 유일한 선은 쾌락이라고 보았다. 그런데 그 쾌락이 일시적 향락이 아니라, 쾌락의 질, 지속성, 강도 등을 생각했다. 좋은 쾌락을 얼마나 유지시킬 수 있냐를 고민하게 되면, 항상 금욕주의로 간다.
쾌락이 유일한 선의 기준이다.
진정한 쾌락주의자는 금욕주의자가 된다.
진정한 쾌락주의자는 향락주의자가 되지 않고, 항상 적당하게 금욕을 할 줄 알아야만 쾌락을 유지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에피큐리언들의 금욕주의는 pleasure를 위한 수단으로서의 금욕주의다. 금욕이 진짜 목적은 아니다. 금욕을 해야 더 큰 쾌락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금욕을 한다.
8. 스토익과 에피큐리아니즘의 차이
그러나 스토익은 진짜 금욕주의자들이다. 다르다. 스토익과 에피큐리아니즘은 그렇게 나누면 된다.
스토익들에게 인간의 본질은 로고스(logos)였다. 즉 이성이었다. 이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이성의 반대는 열정(passion, pathos)이었다.
스토아학파(Stoicism) :
키프러스 사람 제논(Zeno of Citium)이 아테네의 색칠한 스토아회랑(Stoa Poikile)에서 강의한 데서 유래한 학파. 자연에 합치되는 이성적 삶을 추구.
이성(logos) <-> 열정(pathos)
Reason <-> Passion
그래서 인간이 열정에 빠지면 이성이 파괴된다고 했다. 결국 이성적 삶이 파괴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철저한 이성주의자들이 되었다.
하지만 에피큐리언들은 이성주의자가 아니라 감성주의자들이다. 철저하게 쾌락을 추구하니깐, 그들은 어디까지나 감각주의자들이다. sensualist고 유물론자였다.
에피큐로스학파 : 감각주의
스토아학파 : 이성주의
그런데 스토익은 유물론자들이 아니다. 이 사람들은 철저하게 이성주의자들이니깐, 유물론적 세계관이 없다. Passion을 부정하게 되면 서 아파테이아로 간다. 인간에게서 파토스(열정)를 없애버리는 것이다.
아파테이아(apatheia) : 무감정(無感情)
그냥 무감각한 인간들이다. 옆에서 사람이 죽어도, 기뻐하든, 슬퍼하든 무감각한 사람들이 스토익이다.
9. 명상록
로마 황제들이 모두 스토익이었다. 스토익은 굉장히 강력한 흐름이어서 헬레니즘 시대의 희랍 군주들은 전부 스토익(stoic)이었다.
이 스토익들은 주로 시리아에서 나왔다. 당시에는 페니키아 사람들이다. 지금의 서양 문자가 페니키아에서 온 것이다. 시리아 사람들은 대개 스토익이었고, 나중에 로마로 전파되었다.
‘글라디에이터’라는 영화에서 코모도스가 찔러 죽인 사람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다. 유명한 스토익 황제다. 스토아학파의 거장이며, ‘명상록’이 아주 유명하다. 금욕주의자였던 그의 ‘명상록’을 보면 아주 대단하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121 ~ 180) :
팍스 로마나 로마전성기를 상징하는 스토아학파의 철인 황제. 『명상록』(Meditations)으로 유명.
나는 배웠다. 베루스 할아버님에게서 격정을 누르는 고상한 참을성을. 아버님에 대한 평판과 그 분에 대한 나의 추억으로부터는 겸손과 사내다운 성격을.
어머님에게서는 신실함과 자비심, 그리고 나쁜 행동만이 아니라 나쁜 생각도 삼가하는 절제를, 더 나아가서 부유한 생활에 탐닉하지 않는 검소한 생활 태도를.
인간에게 자신의 영혼보다 더 조용하고 한적한 은신처는 없다.
늘 그런 은신의 기회를 가져 너 자신을 새롭게 하라!
- 명상록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은 스토익의 대표적인 저작물이다.
10. 스토익과 소크라테스
스토익들은 헤라크레이토스를 중요시했다. 다른 학파에서는 소크라테스를 그다지 중요시하지 않았지만, 스토익들은 특히 소크라테스를 굉장히 중시했다.
왜냐하면 소크라테스는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추운데도 맨발로만 다녔고, 옷도 안 입었고, 부인하고 잠자리도 하지 않았다. 명상에 빠지면 며칠동안 그대로 서 있었다. 조금 이상한 사람이다.
강직증 환자 같기도 하다. 그러지 않으면 그렇게 서 있기 힘들다. 배고픈 것도 몰랐고, 말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았다. 하여튼 소크라테스는 좀 특이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스토익들은 소크라테스를 가장 위대한 성인으로 보았다.
Socrates was the chief saint of the Stoics throughout their history;(소크라테스는 스토아 학파의 역사 전체에서 최고의 성인이었다.)
그러니깐 스토익의 역사를 통해서 소크라테스처럼 위대한 성인은 없었다는 이야기다.
his attitude at the time of his trial, his refusal to escape, (재판을 받을 때 그의 태도, 탈옥을 그가 거절한 것,)
재판을 받을 때도 소크라테스는 태연했다. ‘너희들이 날 죽이려면 죽여라. 그러나 나는 오로지 진리를 위해 살겠노라.’ 제자들이 도망갈 수 있게 간수들을 매수해 놓았는데도 그는 치사하게 도망가지 않겠다고 했다. ‘아테네의 법을 지키겠다.’라며 안 갔다.
his calmness in the face of death,(죽음을 맞이할 때의 침착함,)
죽을 때도 태연한 자세로 ‘너희들이 나를 심판해서 이 독약의 사발을 마시지만, 과연 누가 더 바르게 사는 것인가? 이제 신이 판단할 것이다.’라고 하면서 약사발을 마셨다.
and his contention that the perpetrator of injustice injures himself more than his victim,(그리고 부당한 가해자는 피해자 이상으로 그 자신이 상처를 입을 거라는 그의 주장,)
부정의를 저지른 사람은 남에게 부정의를 저지르는 것보다 자신에게 더 가혹한 부정의를 저지르게 된다. 이 세상에 부정의를 저지르는 사람은 남을 해치는 것보다 오히려 더 자신을 해치게 된다는 소크라테스의 명언이다.
all fitted in perfectly with Stoic teaching.(이런 모든 것은 스토아 학파의 가르침에 완벽하게 적합했다.)
이러한 소크라테스의 삶에 대한 자세가 스토익의 가르침과 잘 맞아떨어졌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스토익은 소크라테스를 굉장히 숭상했다.
So did his indifference to heat and cold, his plainness in matters of food and dress,(그래서 그는 더위와 추위에 대해 무관심했고, 음식과 의복 문제에 대해 검소했고,)
더우나 추우나 소크라테스는 똑같은 옷만 입었다. 음식도 입는 옷도 항상 소박했다.
and his complete independence of all bodily comforts.(그리고 모든 육체적 안락에서 완전히 독립했다.)
모든 신체의 쾌락으로부터 완벽하게 독립되어 있어서, 어떠한 상태에서도 이 사람은 편안하게 견뎠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삶의 자세는, 어느 정도 신화적 각색도 있었겠지만, 조금 특이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것이 스토익의 금욕주의로 가는 것이다.
11. 스토익과 덕성
But the Stoics never took over Plato's doctrine of ideas,(그러나 스토아학파는 플라톤의 이데아 교리를 결코 이어받지 않았고,)
플라톤의 이데아설은 취하지 않았고,
and most of them rejected his arguments for immortality.(그리고 스토아학파의 대부분은 영혼불멸설에 대한 논쟁을 거부했다.)
더군다나 플라톤이 말하는 영혼불멸설도 취하지 않았다.
헬레니즘에 오면, 벌써 이런 식의 이상주의는 없어진다. 스토익이라고 할지라도 영혼불멸은 믿지 않았다는 것이다.
In the life of an individual man, virtue is the sole good;(개별적인 인간의 삶에서, 덕성은 유일한 선이다;)
인간의 생애에 있어서 유일한 선(善)은 뭐냐? 쾌락주의자들은 유일한 선은 쾌락이라고 그랬지만, 이 사람들은 인간의 덕성(virtue)이라는 것이다. 이 덕성은 내면의 덕성이다.
‘얼마나 많은 덕성을 쌓고 그 덕성을 가지고 사느냐?’ 이것이 유일한 선이라는 것이다.
such thing as health, happiness, possessions, are of no account.(건강, 행복, 재산과 같은 것들은 중요하지 않다.)
건강이라든가 행복이라든가 소유라는 것은 덕에 비하면 게임도 안된다는 것이다.
여러분들에게 어떠한 불행한 상황이 닥쳐도, 어떠한 신체적인 문제가 발생해도 바른 덕만 있으면 가치있는 삶을 살 수 있다. 덕성(virtue)이라는 개념이 중요하다.
Since virtue resides in the will, everything really good or bad in a man's life depends only upon himself.(덕성은 의지에 의해 생겨나기 때문에, 인간의 삶에서 진정으로 좋고 나쁜 모든 것은 자기자신에게 달려있다.)
덕성은 항상 우리의 의지 속에 있는 것이고, 덕이라는 것은 오로지 나 자신의 것이기 때문에 그건 스스로가 콘트롤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덕이야말로 남이 침범할 수 없는 것이다.
He may become poor but what of it? He can still be virtuous.(그가 어쩌면 가난해질 수 있지만 그것이 뭐 어떻단 말인가? 그는 여전히 고결할 수 있다.)
우리가 가난하다고 치자. 그게 그 사람에게 무슨 상관이 있냐는 것이다. 덕만 있으면 그 사람은 정말로 행복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A tyrant may put him in prison, but he can still persevere in living in harmony with Nature.(폭군이 그를 감옥에 넣을지 모르지만, 그는 여전히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삶을 유지할 수 있다.)
폭군이 그를 감옥에 집어넣을 수도 있다. 감옥에 들어가서도 자연과 합치되는 평온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이 인간이다. 의지만 있다면, 덕만 있다면, 그럴 수 있는 덕만 있다면, 감옥에 가서도 감옥 밖에 있는 사람보다도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스토익은 인간 내면의 덕성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가느냐? 그것은 철저히 이성주의적이고 anti-passion한 것이다.
He may be sentenced to death, but he can die nobly, like Socrates.(그는 어쩌면 사형선고를 받을지 모르지만, 소크라테스처럼 당당하게 죽을 수 있다.)
스토익들은 사형선고를 받아도 태연하게 죽으면, 구질구질하게 사는 것보다 더 행복할 수도 있는 게 아니냐고 한다. 이런 식의 인생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Other man have power only over externals;virtue, which alone is truly good, rests entirely with the individual.(타인은 오직 외적인 것을 지배하는 힘을 갖고 있다.; 유일한 진짜 선인 덕성은 온전히 각 개인한테 남아 있다.)
타인은 외재적인 조건 즉 부, 명예 이런 것으로 나를 조작할 수 있다. 내가 돈이 많은면 돈도 빼앗아갈 수 있고, 나의 권력을 빼앗아갈 수도 있고, 내 좋은 집을 불살라버릴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남이 내 내면의 덕성은 절대로 터치 못하는 것이다.
Therefore every man has perfect freedom, provided he emancipates himself from mundane desires.(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은 일상적인 욕망에서 자신들을 해방시키면, 완벽한 자유를 갖게 된다.)
그래서 인간들이 그런 세속적인 욕망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킬 수만 있다면 모든 인간은 완벽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
There goes with this a certain coldness in the Stoic conception of virtue.(덕성에 대한 스토아 학파적인 개념에는 이러한 어떤 냉정함이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스토익들이 말하는 버추(virtue)라는 개념에는 뭔가 냉소적인 감각이 있다는 것이다.
Not only bad passions are condemned, but all passions.(나쁜 열정이 비난받았을 뿐만 아니라, 모든 열정이 비난받았다.)
인간의 나쁜 격정을 배격할 뿐만 아니라, 인간의 좋은 격정까지도 모두 배격한다. 너무 지나친 사랑을 한다든가, 우정도 너무 지나치게 친구를 좋아하면, 이 사람들은 다 싫어한다. 그저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처럼 담담하게 살라는 것이다. 너무 격정적으로 사랑하면, 반드시 그 열정에 휘말려서 삶을 그르치게 된다는 것이다.
12. 스토익과 동정심
The sage does not feel sympathy:(성현은 동정심을 느끼지 않는다.)
동정같은 것을 굉장히 좋은 것으로 알지만, 성인은 동정을 느끼면 안된다는 것이다. 어떤 의미로 동정을 과도하게 느끼는 것도 사실 잘못된 것이다. 아카페를 운운하면서 누구 도와줄 사람이 없냐면서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조금 곤란한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 행복한 사람들이 아니다. 자신에게 문제가 있어서 격정적으로 남을 도와주려는지도 모른다.
로마의 스토익들은 그저 목욕탕에 앉아서 가만히 있었다. 로마상원의원들의 사상적 배경에 스토익이 많았다.
13. 스토익과 기독교
헬레니즘 사상 중에서 기독교와 가장 잘 매치가 된 게 스토익이었다. 기독교는 에피큐리언을 싫어한다.
기독교와 스토아학파는 매우 다른 사상적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금욕주의적 인생태도에 있어서 합치되었다.
원래 스토익과 기독교의 세계관은 아주 다르다. 그런데 기독교가 들어와서 보니깐, 스토익의 이러한 금욕주의적인 면이 로마에 있는 철학 중에서는 제일 나았다. 그래서 스토익과 붙는다.
에피큐리아니즘이나 시닉스가 스토익에 밀려서 사라진 게 서양문화의 비극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스토익의 조금 천박한 면만 기독교로 붙어버렸다. 그래서 기독교의 지나친 애타주의와 지나친 금욕주의만이 서양 사람들의 감정을 지배하게 된다.
14. 스토익과 동양사상
동양사람들에게 인간의 호오(好惡)에 흔들리지 않는 그런 평안함이 있다. 스토익 철학의 본래적 모습은 우리 동양 사람과 비슷하다. 동양에는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말도 있다. 기쁜 일이 있어도 나쁘게 될 수 있고, 나쁜 일이 있어도 좋은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깐 인생의 변화를 전체적으로 본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스토익의 삶에 대한 철학은 자연과 합치되는 삶을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스토익은 절대로 신을 인정하지 않는다. 영혼불멸을 인정하는 것도 아니다. 기독교와 다르다. 굉장한 자연주의자들이다. 그런데 이 자연이 부과한 최대의 선물이 바로 로고스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이성은 격정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이다.
스토익은 이성주의자들이기 때문에 편안하게 멀리 본다. 그리고 인간이 너무 좁은 데 집착을 하면, 격정적이 된다는 것이다. 멀리 보면 격정적이 안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스토익 철학은 나중에 임마누엘 칸트의 윤리관에 들어가고, 특히 스피노자에게 강한 영향을 준다. 세익스피어의 철학에도 스토이즘이 엄청나게 들어가 있다. 햄릿의 대사를 보면 스토익의 대사가 많이 들어가 있다.
스토아학파철학은 근세철학자 스피노자(Baruch Spinoza, 1632 ~ 1677)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 스피노자가 신을 거부한 것, 전체적 앎을 강조하는 것은 스토아학파와 관련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스토익이 우리에게 끼친 영향은 크다. 기독교를 통해서 문학, 철학 각 방면에 영향을 끼쳤다. 그러니깐 여러분들이 스토익에 대한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When his wife or his children die, he reflects that this event is no obstacle to his own virtue, and therefore he does not suffer deeply.(그의 아내나 아이들이 죽었을 때, 이 사태는 자신의 덕성에 장애물이 아니라는 것을 나타내고, 그래서 그는 깊게 고통받지 않는다.)
그의 부인이나 아이들이 죽을 때도, 그저 그런가 보다 생각한다. 부인이 있다가 죽어도 그저 그런가 보다 생각한다.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스토익이다. 그래서 부인이 죽어도, 내가 사는 삶의 덕에는 그렇게 큰 장애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부인이 죽어도 슬프게 울고 그러지 않는다.
이런 것을 보면 굉장히 나쁘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지만, 장자도 자기 부인이 죽었을 때 기뻐하면서 북을 쳤다. 하지만 젊은 제자가 죽었을 때는 슬피 운다. 자기 부인은 천수를 다하고 죽었으니깐 기뻐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젊은 제자가 일찍 죽은 것은 슬픈 일이라는 것이다.
이런 여유가 있다. 마누라가 죽었다고 무조건 슬퍼하는 게 아니다. 이렇게 동양인의 자연주의와 스토익은 통한다.
莊子妻死, 惠子弔之, 莊子則方箕踞, 鼓盆而歌.
장자의 아내가 죽자 친구 혜시가 문상을 갔다. 장자는 두 다리를 뻗고 앉아 북을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 『장자』「지락」-
The Stoic is not virtuous in order to do good, but does good in order to be vertuous.(스토아 학파의 사람들은 선행을 하기 위해서 고결한 게 아니라, 고결하기 위해서 선행을 한다.)
이게 중요한 이야기다. 스토익은 선을 행하기 위해서 덕성스러운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선을 실천하기 위해서 덕을 쌓는게 아니라, 덕을 쌓기 위해서 선업을 실천할 뿐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내면적 덕을 쌓는 게 이 사람들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뉴앙스가 다르다.
15. 스토익과 해탈
It has not occurred to him to love his neighbor as himself; love, except in a superficial sense, is absent from his conception of virtue.(그의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일은 그에게 일어나지 않는다. 사랑은 표면적인 감각을 제외하고, 덕성의 개념과 무관하다.)
그러기 때문에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소리는 스토익에게 없다는 말이다. 기독교는 이런 게 아주 강하게 나타난다.
성서의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도 아주 좋은 말로 들리지만, 사실 그게 될 말인가? 솔직히 말해서, 아무래도 네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긴 어렵다. 무리한 이야기다. 인간으로서 자연스럽지 못한 이야기다. 잘 분석하면, 그건 안되는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는 조금 형태가 다르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 신앙의 형태가 나중에 스토익과 결합되어 가면서 스토익도 변절되고, 기독교도 많이 스토익화된다. 둘이 서로 왔다갔다 한다.
인간의 욕망을 절제하고, 아주 냉정하게 평온한 삶을 산다고 하는 것은 사실 불교도 비슷한 데가 있다. 불교나 스토익이나 사실 모두 동방에서 온 것이다. 그래서 동양사상의 영향이 스토익에는 있는 것이다.
우리 동양인들은 인생의 가장 큰 목적을 어디에 두었냐? ‘평온한 삶’이었다. 그리고 스토익들은 ‘아타락시아’였다. 그러기 위해서 모든 격정으로부터 면역이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아타락시아(ataraxia) :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解脫)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그래서 이 스토익 철학은 우리 동방의 사상과 통하는 데가 있고, 특히 인도사상의 영향을 분명히 받았다.
16. 존재론과 인생론
알렉산더 대왕이 세계를 점령하여 동서가 교통되면서 이런 철학들이 나왔다. 그래서 우주의 존재에 대한 본질적인 탐구보다 인간이 어떻게 사느냐하는 삶의 문제로 철학의 과제 중심이 옮아갔다.
존재론(Hellenic) -> 인생론(Hellenistic)
그리고 그러한 것으로 인해서 지나치게 존재론적 관심으로 흘렀던 철학적 관심이 인생론으로 되돌아 왔는데. 또다시 이 스토익의 철학이 발전하지 못하고, 기독교의 신학에 너무 얽매게 되고, 그렇게 되면서 서양인들은 또다시 종교적 우주로 넘어가 버렸다.
기독교신학에 헬라스사상이 귀속되면서 다시 종교적 우주, 신의 증명과 같은 존재론으로 흘렀다. 기독교신학에는 진정한 인생론이 없다.
우주론(cosmology)이 전부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쪽으로 간다. 결국 중세기에는 신(神)을 전제로 하지 않는 인간 행복의 문제에 대해서 또다시 둔감하게 되었다.
17. 스토익의 사회철학
스토익의 사회철학을 보면, 국가주의를 완전히 타파한다. 스토익의 철학을 보면, 코스모폴리탄적이고, 노예제를 반대했다.
스토아학파의 사회철학은 코스모폴리탄적이다. 개인의 자족과 평등, 노예제 반대, 정의감을 주장했다.
그러기 때문에 사실 스토익의 그런 보편주의는 기독교의 인간보편주의와 잘 맞아떨어졌다. 사실, 근거하고 있는 것은 다른데, 서로 잘 맞아떨어진다. 그래서 스토익의 사회철학은 인간의 자족, 인간의 개체성, 인간 개인의 독립, 이런 것을 강조하게 된다.
이들은 종교를 철학의 범위 내에서만 인정한 것이다. 그래서 상당히 합리주의적이고, 반초월주의적이고, 인간의 이성에 대한 깊은 신뢰를 가졌다. 인간이 가장 억제해야 할 것은 인간의 passion이었다. 이것이 스토익 철학의 결론이었다.
이것으로 끝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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