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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행복 충전소(大名*大明*大命) 원문보기 글쓴이: 익명회원 입니다
I . 서 론 1
A. 연구동기와 목적 1
B. 연구 방법 및 범위와 그 한계 2
II . 상상력 5
A. 상상력의 필요성 5
B. 개념이해를 위한 상상력에 관한 역사적 고찰 7
C. 상상력의 개념적 정의 16
1. 사전적 정의 16
2. 상상력에 대한 종합적 개념 18
D. 문학적 상상력 24
1. 18세기 낭만주의 24
2. 상상력과 시 26
3. 쿨리지의 상상력 29
a. 쿨리지의 상상력 이론 29
1) Coleridge의 시적 상상력 29
① 언어의 자의성과 상상력 32
② 쿨리지와 쉘링 37
2) 상상력의 개념과 이성 39
3) 상상력과 환상 및 상징의 이론 41
b. 쿨리지의 방법론 43
1) 지각과 인식 43
2) 자연과 상징의 개념 46
3) 양극의 원리 - 대립의 화합(주체와 객체의 통합) 48
c. 쿨리지의 '상상력 이론'에 대한 종합적 평가 51
E. 기독교적 상상력 53
- 개럿 그린을 중심으로 53
1. 상상력과 계시 53
a. 계시와 상상력의 관계성 53
b. 계시의 접촉점으로서의 상상력 55
2. 상상력과 종교 57
a. 인간의 상상력과 하나님의 형상 59
b. 기독교 상상력의 초점 62
3. 하나님 상상하기 63
a. 은유, 상상, 그리고 신학 64
b. 사실, 허구, 그리고 성경적 진리 67
c. 신앙주의와 충실한 상상 69
F. 기독교 교육적 상상력 71
- 마리아 해리스를 중심으로 71
1. 상상력과 이미지 71
2. 상상력과 신앙 72
3. 종교적 상상력 75
4. 종교교수의 자리로서 상상력과 계시 77
III. 마리아 해리스의 종교교수 방법 85
A. 마리아 해리스의 교수 과정이론 85
1. 관상(명상) 85
2. 참여(연합) 87
3. 형상 만들기(형상제시) 88
4. 출현(Emergence) 89
5. 방출(release) 90
B. 마리아 해리스의 교수방법 91
1. 교수방법을 위한 전제들 91
a. 심미적 요소들 91
1) 언 어 91
b. 정서와 경험의 결합 92
2. 예술적 요소 92
C. 상상력으로 초대하는 교수모델 93
1. 관심 기울이기 93
2. 단계들 취하기 93
a. 이야기와 의식의 리듬들을 단계화 하기 94
IV. 자연계시를 통한 하나님 묵상하기 99
A. 방법론 99
1. 바라보기 100
2. 몰입하기 100
3. 느껴보기 100
4. 하나님 상상하기 100
5. 표현하기 101
6. 찬미하기 101
7. 감사하기 101
8. 서로 나누기 101
9. 함께 기도하기 101
B. 자연계시를 통한 하나님 묵상하기의 실제 102
1. 자연현상에 나타난 하나님 묵상하기 102
2. 시편 23편에 나타난 하나님 묵상하기 104
V. 결 론 108
A. 요 약 108
B. 제 언 116
참 고 문 헌 118
I . 서 론
A. 연구동기와 목적
계몽주의 시대 이후 현대 학습형식은 이성중심의 형태로 치우쳐왔다. 이러한 학습의 형태는 인간의 전인성(全人性)을 간과하고 개인들의 독특성과 다양성을 살리지 못했다. 따라서 이를 보완하는 전인적 교육의 매개로서 상상력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의 가르침은 상상력을 통한 상징과 경험에 참여하는 전인적 교육의 형태이다. 성서의 가르침은 이성과 감성, 전통과 경험이 함께 어울러진 전인교육의 형태를 띠고 있다. 이러한 전인적 교육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상상력이다. 따라서 본고는 이러한 상상력에 대한 다차원적인 접근 연구를 통하여 기독교교육의 가능성으로서의 상상력을 말할 것이다.. 그리고 상상력을 통한 기독교교육의 가능성 제시를 위한 시도로서 일반계시로서의 자연을 통하여 묵상하는 훈련을 소개할 것이다. 이러한 묵상훈련은 이성주의 적이고 합리주의 적인 현대인의 삶의 무미 건조함과 존재의 상실성, 문명에 함몰되어 가는 비인간적 모습을 하나님께서 주신 자연과 자연계시가 나타나 있는 시편의 말씀을 통하여 치유하고 회복시키는 경험으로 이끌어 내게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하여, 하나님의 자연을 묵상하게 하며 아울러 하나님의 자연을 경험하고 이를 통해 삶을 극복하고 회복하는 시편 기자들의 모습을 묵상하게 한다. 아울러 이러한 묵상훈련을 통하여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도 하나님의 자연을 경험하게 하여 자신의 시편을 쓰게 한다. 곧 하나님에 대하여 더욱 깊이 느끼고 표현하고 찬미하고 감사하고 기도하게 하여 자신의 삶이 시편이 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구체적으로 느끼게 하는 훈련을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B. 연구 방법 및 범위와 그 한계
본 논문은 상상력이 기독교교육에 있어서 상상력이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밝히고 있다.
제 1장에서는 상상력을 통한 기독교 교육이 왜 필요한지를 말한다. 그리고 논문의 목적과 범위 한계를 언급할 것이다.
제 2장에서는 상상력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돕기 위해 상상력에 대한 역사적 고찰을 시도할 것이고, 또한 상상력의 필요성과 상상력 언어의 중요성에 대하여 살펴볼 것이며. 상상력에 대한 사전적, 종합적 개념을 살펴볼 것이며, 여기에서 더 나아가서 문학적․기독교적․기독교 교육적 상상력을 소개한다.
먼저 상상력으로 대변되는 문예사조인 18세기 낭만주의를 살펴보고 아울러 상상력과 시의 관계성에 대하여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나서 상상력에 대한 더욱 깊이 있는 이해를 돕기 위하여 시인이자 비평가인 쿨리지(S. T. Coleridge)1)의 상상력 이론을 소개한다.
다음으로는 기독교적(신학적) 상상력에 대하여 언급한다. 상상력이 기독교 신학에 얼마나 중요하고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신학자 개럿 그린(Garrett Green)2)을 중심으로 소개할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 교육적 상상력에 대하여 언급한다. 기독교 교육 안에서 상상력은 어떻게 수용되고 발휘될 수 있는 지를 살펴볼 것이다.
제 3장에서는 가르침의 과정에서 상상력을 중요시했던 마리아(Maria Harris)3) 해리스의 종교교수방법을 소개한다.
제 4장에서 기독교 교육에 있어서 상상력이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를 그 실례로서 상상력을 통한 하나님 묵상하기를 제시한다. 이러한 시도는 쿨리지의 문학적 상상력 이해와 그린의 신학적 상상력 이해 그리고 가르침에 있어서 상상력의 역할을 잘 보여주는 해리스의 종교적 가르침을 위한 다섯 가지 요소를 통하여서 이루어지는 묵상훈련이다. 이것은 기독교 교육에 있어서 상상력의 역할을 잘 보여주는 시도이며, 특별히 묵상훈련에서 상상력이 어떻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제 5장 결론에서는 본 논문의 내용을 요약하고 발전적 제언을 제시할 것이다.
상상력을 통한 기독교 교육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시도로서 상상력을 통한 자연계시에 나타난 하나님 묵상하기는 비단 자연계시 뿐만 아니라 특별계시에 대하여 묵상하기를 실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하나님의 창조물인 자연에 나타난 하나님의 손길, 곧 자연계시를 묵상하는데 제한을 둔다,
A. 상상력의 필요성
상상력은 우리의 마음과 정신의 지식을 확장시켜 준다. 흔히들 사람들은 말하기를 상상력(imagination)은 겉으로 보여지는 현상적이고 과학적인 지식을 직시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 현상의 사물을 보는 시각을 흐려놓는다고 생각하는 성향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아마도 상상력에 대한 개념이 정말 올바르게 소개되지 못하거나 왜곡되어 소개되어지고 잘못 가르쳐졌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현대에 많은 사람들은 객관적이고 현상적이고 과학적 지식을 교육받고 살아왔고, 합리적이고 논리적이고 수학적인 지식만이 확실한 것으로 생각하며 살아감으로써, 상상력이 갖는 전인적인 앎의 특성과 힘을 간과하기 쉽다.
정작 우리가 생각하기에 합리적이고 논리적이고 수학적인 지식 또한 어떤 현상의 대상으로 추상화하여 이것이 사람들이 인정하는 객관이라는 매개를 통해 지식의 자리를 가지게 되지만 이러한 논리적 지식 또한 가정과 가설 속에서 긍정의 요건들만을 모아서 하나의 체계라고 만들고 약속하는 것뿐이다. 논리라는 것도 상징으로부터 추론한 원리라고 할 수 있다. 수학적 지식조차도 전제를 가지고 있고, 전제 안에서 모든 것이 지식이라는 자리를 획득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객관적이라고 부르는 지식들이 과연 객관적일 수 있는가하는 질문을 던진다. 합의에 의해 형성된 진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객관이라는 담론에 의해 그냥 그렇구나 하고 단정하지 그것이 왜 그렇게 되었나하는 질문으로는 나아가지 못하는 성향이 있다.
언어에 있어서도 우리는 어떤 사물을 무엇이라고 칭한다. 그렇다면 정말 그 무엇의 이름이 과연 그것인가? 그 이름이 정말 그 무엇의 모든 것들을 전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가? 그것은 그 사물의 일부를 보여주는 것이고 그것이 우리에게 그렇게 파악되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이를 우리는 언어의 자의성이라고 알고 있다. 언어는 약속이고 동의이다. 따라서 어떤 사물에는 얼마든지 다른 이름으로 표현되어질 수 있으며, 그 의미도 발견되어 질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 이상을 원치 않는다. 그냥 보이는 현상 속에 그 사물의 의미를 제한하고 마는 것이다.
이제 논리적이고 명제적 언어는 그 영향력이 약화되어 가고 있다. 과거에 확정적이라고 믿어왔던 과학적 수학적 사실들이 지배하던 시대에서 우린 이제 그 모든 것들이 확률적 지식으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즉 불확정성이라는 패러다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논리적이고 수학적이고 명제적인 것들의 확실성이 무너지고 이젠 그러한 것들을 엎고 올라서는 보다 더 크고 넓은 상상력의 언어가 나타난다.
언어는 은유적 표상이 정적인 개념으로 ‘냉각’되는 과정을 거쳐서 변화하는 것으로 보인다. 은유는 잠재적인 개념이며, 개념은 화석화된 은유이다. 개념적인 언어 안에서 표상들은 분명하게 고정되며, 표상들의 연상, 함축성, 모호성 등은 사라지게 된다. 과학자는 은유적인 연상을 떨구어 낸 개념의 정확한 한계에 의존하는 반면에, 시인은 아직 탐구되지 않은 표상들의 무제한적인 개방성에 의존한다. 마찬가지로 일상적인 수준에서도 다양성은 본질적으로 중요하다.
상상력의 언어 속에서 현상과 그 현상을 너머서는, 납작한 사물 너머에 있는 사물의 더 깊고 넓은 무한한 세계를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상상력의 언어를 통해 하나님과 그 분의 말씀을 더욱 깊게 넓게 다양하게 바라볼 수 있는 길로 다가갈 수 있으며, 그것을 표현하는 언어의 폭넓은 의미를 지속적으로 발견할 수 있게 한다. 바로 메타언어가 이러한 부류에 속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상상력의 언어는 매우 중요하다.
상상력은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을 더욱 넓고 깊게 이해 해줄 수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상상력의 언어를 통해 하나님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기에 상상력은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을 향해 좀 더 가까이 다가가는 하나의 통로인 것이다.
먼저 필자는 오늘날 상상력이 현상을 직시 못하며 환상만을 추구한다는 대중의 지배적 논리의 출발이 어디서부터 일어났으며 이러한 상상력에 대한 왜곡의 흐름의 역사를 문학사적, 신학사적 접근을 통해서 고찰해보고자 한다.
B. 개념이해를 위한 상상력에 관한 역사적 고찰
상상력은 신화시대로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신화시대에 있어서의 상상력은 결합을 촉진하는 위대한 지적인 힘이었으며, 인간의 마음에 영향을 미쳐 그 인간 그룹들을 일치시키고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거룩성을 유지하게 하며 사로잡혀 있는 이미지를 변화시키고 최대한의 돌봄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1)
고대에 있어서 상상력은 우리의 기억과 이성과 감정에 작용하여 실재에 관한 확실한 지식과 세계에 관한 진리와 경험, 그리고 새로운 것에 관하여 얻을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또한 상상력은 약하고 빈약한 생각에 자극을 주어 우리 마음의 기능들을 복 돋아 주는 것이다.(Kieran Egan, 1992:15)
고대와 중세기 사이의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보여지는 것으로서 상상력은 모든 지적이고, 지각적인 것들을 결합하는 결합체이며, 영육을 결합하는 매개체이며, 사람들의 영혼과 마음이 이지러지기 시작할 때 그 빈 공간에 채워져 자라도록 하는 것이었다.(Kieran Egan, 1992:18)
로마제국 말기와 중세기 초기의 어거스틴(St. Augustine, 354-430)을 통하여 나타난 상상력은 어떤 대상을 눈앞에 두지 않고도 다만 지각 작용을 통하여 그 대상을 머리에 떠올릴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였다.2) 이때의 상상력은 영적인 생활을 회복하고, 아직 오고 있는 실제들과 미래의 행위들에 대하여 숙고하도록 이끄는 개념이었다.
중세기에는 ‘상상력’이 활발하게 작용하고 수용되었던 시기였다.3) 보나벤투라(St. Bonaventure, 1217-1274)는 상상력이 하나님께로 향하도록 이끈다면 그 상상력은 유익하게 사용될 수 있다고 하였는데, 이 경우 상상력은 절대자를 향한 영적인 만남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상상력이 사물들의 이미지들을 창조할 수 있다. 그러나 계몽기에 앞선 이 시기에는 상상력을 지각으로부터 실재를 복사하거나 또는 이미지들을 그리는 것과 같은 모방적으로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결코 쉽게 사용되기가 어려웠다.(Kieran Egan, 1992:17-18) 왜냐면 이 시기에는 개인적이고 신비적인 경험을 말하는 것이 제한되었고 허용되지 않았다.
계몽기는 근대 과학 연구의 태동기라는 특징으로 인하여, ‘상상력’이 그다지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은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에 상상력은 공상적인 수준을 넘지 못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이 시기는 이성주의를 바탕으로 상상력을 배타시 하고 합리주의에 모든 점수를 주고 있다.(데카르트/Rene Descartes, 베이컨/Francis Bacon 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에 있어서 상상력은 점차 새로움을 창출하는 힘으로, 감각들에 의해 표현되어진 이미지들로 이해되기 시작하였다. 상상력은 창조적인 힘과 같은 것을 소유한 인간의 마음으로, 다른 어떤 사물들의 이미지들이나 감각들에 의해 받아들여진 모양을 하고 싶은 대로 표현하는 것으로, 새로운 방법이나 다른 순서에 따라서 여러 심상들을 결합하는 것 등으로 이해하였다.(Kieran Egan, 1992:19-20)
또한 상상력은 다양한 감정들 사이를 연결해주는 것이며(흄/David Hume),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을 지각하게 함으로서 그 경험한 세계를 구성하여 의미를 만드는 매우 활동적인 것이다. 곧, 이것은 어떤 다른 형태 안에서 표현되어지거나 묘사될 수 없는 이미지들을 우리 안에 생기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상상력은 마음에서 경험한 이미지와 개념들을 종합하여 지식을 가질 수 없었던 대상에 대한 의미와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4)
더 나아가 상상력은 모든 정신적인 능력들을 서로 연결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진리 안에서 몸이나 마음을 다함께 묶는 매듭인 것으로(Herder),(Kieran Egan, 1992:22.) 이해되었다. 상상력은 또한 특별히 의식의 형식이나 과정 그 구성 요소들을 나타내는 종교적 이미지들(또는 종교적 표상들)5)을 묘사하는 것으로, 종교를 해석하는 수단으로, 절대자를 이해하는 중간 매개 방법으로 여겨졌다(헤겔/G.W.F Hegel).6)
칸트와 헤겔 이후 상상력은 낭만주의 안으로 연결된다. 낭만주의에 있어서 상상력은 활기 있는 힘이 되도록 하고 모든 인간의 지각에 대해 가장 중요한 작인이 되도록 하며, 그리고 유한한 마음 가운데서도 무한함과 창조의 영원한 활동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으로 여겨졌다.(Kieran Egan, 1992:22) 또한 상상력은 우리가 과거에 지각하였던 것이나 과거의 지각으로부터 새로운 형태의 지각에 이르기까지 각 요소들을 결합함으로 심상들(images)을 이루는 마술사(conjuror)로 이해되었다. 더 나아가서 그것은 우리의 현재적이지 않는 것을 마치 현재적인 것처럼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여겨졌다. 낭만주의의 상상력에 대한 개념은 탐구의 가치가 있는 자의식적 마음의 감각과 의식적인 조절(control)이다.(Garrett Green, 1989:23)
낭만주의 시인 워즈워드(William Wordsworth)는 상상력을, 대상들 위에 마음의 작인(operations)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결정적인 것으로, 끊임없이 회복하려는 통찰로 보았다. 그는 상상력이 기억과 어린 시절의 훌륭한 경험을 가장 잘 보존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진 것으로 생각했다. 상상력은 기억으로부터 이성에 이르기까지 한번 지각했던 사물들의 심상을 불러일으키거나 인식들을 바꾸는 재생산적인 것이다. 또한 상상력은 서로 함께 지각했던 사물들의 이미지들에 접속하여 끊임없이 세계의 모양들을 지각하여 희망과 두려움, 그리고 그러한 모습 속에서 다른 감정들을 사용하는 창조적이고도 활동적인 기능으로 생각했다.(Kieran Egan, 1992:24-25) 그에게 있어서 상상력은 그가 본 상상력의 결합 능력에 대한 것으로 깊은 감정과 함께 심오한 생각을 결합하는 것이다.
따라서 워즈워드에게 있어서 이성과 상상력은 서로 배타적인 기능들이 아니며, 또한 서로 상반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상상력은 가장 고양된 마음가짐일 뿐 결코 배타시한 다른 어떤 것도 아니다. (Kieran Egan,1992:24-25) 이렇게 낭만주의는 우리에게 상상력에 대한 확장된 개념을 남기면서 현대에로 이어지게 되었다.
현대로 접어들면서 상상력에 대한 개념은 여러 분야에서 논의되게 되었다. 그 가운데 먼저 철학적 측면에서 보는 상상력은 마음에 그리는 상, 즉 “Imagery"(심상)와 의식의 의도적인 행위로서 이해된다. 심상을 함축하는 상상력은 마음 속에 있는 사물이 암시하지 않는 것을 위하여 상상적인 행위를 부르므로 동일시(identify)할 수 있게 하며, 또한 세계 속에 있는 사물이 암시하지 않는 것을 위해 상상적인 가운데 스쳐 지나가는 사물들을 부르므로 그것과 동일시하게 하는 것으로 여긴다.(사르트르/Sartre).(Kieran Egan, 1992:27-29)
샤르트르에게 영향을 받은 리챠드(Ian. A. Richards)에 따르면, 상상력은 활동적인 마음을 명명하는 것이고, 이러한 활동적인 마음은 추론하며, 접촉반응을 일으키게 하고, 구축하고, 용해하며, 재창조하고, 감각을 만들며, 의미를 만드는 것이다. 여기서 상상력은 궁극적으로 자유로움 가운데 세계 즉, 우리가 살고, 그것을 이해하는 경험의 세계를 변화시키는 힘을 가진다.(Kieran Egan, 1992:.29)
화이트(Alan White)는 상상력을 생생하게 마음에 그리는 것(visualizing)으로 보았다. 이것은 상상 가능하게 하는 어떤 것에 대해 마음을 쓰며 그것이 가능할 것인가에 대하여 마음을 쓸 때 가능하며, 이러한 상상력은 다양하고도 다변화 적인 이미지들을 가질 수 있다고 보았다.(Kieran Egan, 1992:29-30) 그에게 있어서 상상력은 자유로운 감각에 이르기 위한 열쇠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발명한 것, 그리고 조직한 것을 결합하는 기능으로, 실제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가능케 하는 사고의 작용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속에 또는 그 현실을 넘어 가능성을 마음에 품도록 우리에게 능력을 주는 것으로, 또한 현실 속에서 정당하지(바르지) 못한 것을 우리로 하여금 몰두케 하며, 현재를 보게 하고, 그리고 옛날의 궁핍함으로서의 지나간 날들과 시간을 보게 하며, 나아가 살아 있는 기둥들로 세워진 성전으로서의 자연적인 모습 등을 보게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워넉(Mary Warnock)은 상상력을, 매일의 지각 속에서 세계에 대해 생각하는 힘으로, 부족한 것을 풍부하게 하는 능력으로, 그리고 어떠한 것이 있거나 없거나 간에 의미심장한 것으로서 세계를 보도록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결론적으로, 철학적 측면에서의 상상력은 단지 일반적으로 마음속에 이미지를 형성하는 것이나 마음의 눈 속에 외견상의 그림들을 다루는 것만을 포함하지 않는 사고의 종류라 할 것이다.
심리학적 측면에서의 상상력은 무의식의 세계로부터 나오는 무한한 힘과 연관하여 생각한다.7) 이미지들을 마음에 생생하게 그리며, 형성하며, 균형 취하기, 종합화의 도정에 놓여 있는 것으로 보면서, 그 무한한 힘 속에서 독창적, 창의적, 생성적 활동이 나온다고 본다.(진형준, 1992:24-28) 특히 라캉에 의하면, 상상계란 본원적으로 훼손될 수밖에 없는 무의식의 세계와 그리고 비인간적인 세계를 현실로 바라보는 세계이다. 인간이 이 상상계에서 상징계로 옮아갈 때 인간 자신을 소외시키는 인간 조건, 언어의 존재와 화해함으로써 개별성을 획득하는 것으로 본다.8)
신학적 측면에서 상상력은 아직 오고 있는 실재들과 미래의 행위에 대해 숙고하도록 이끄는 힘, 세계를 창조하는 힘, 전망할 수 잇는 힘,(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Thomas H. Thoeger, 1990:104-05) 보이지 않는 사물들을 뚜렷하게 상상하도록 하는 힘, 분명한 모양을 주는 힘, 영혼에 대한 중요한 의미를 운반할 수 있는 힘, 영혼 안에 있는 하나님의 능력(Henry Ward Beecher),9) 비 실재와 접근하기 어려운 실재에 대한 양상들을 간파하는 힘, 기독교 신학을 빛나게 하고 하나님의 진리의 인식에 이르도록 하는 힘,10) 신앙심을 깊게 하는 힘이다. 본래 하나님으로부터 피조물에게 주어진 것으로서 상상력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행동하고, 세계에 대해 생각하는 과정 속에서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능력이 되며, 그 상상력은 기독교의 신앙과 경험에서 불 때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의 삶 속에서 가장 효과적이게 하는 특수한 것으로 파악한다.11) 또한 그 상상력은 성서와 전통에 의해 형성되어진 종교공동체를 통하여 매개체로서의 기능을 하며, 이미지들과 개념들로부터 의미를 갖기 위한 인간의 능력으로서 파악되기도 한다. 역시 상상력은 기독교 종교의 진리를 드러내며 현행의 해석들을 위한 신학을 가능하게 하고, 가능한 다른 원리를 비교하는 용어 안에서 계시의 전통적 교리를 재형성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12)
C. 상상력의 개념적 정의
1. 사전적 정의1)
“상상력(imagination)"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의 영상(映像)을 만들거나 경험을 초월한 세계를 만드는 정신적 능력으로 이미지 활동, 즉 어떤 것을 마음속에 그리는 일이며, 상상․상상력․공상 등으로 번역된다. 과학이나 예술 활동에서 창조적 기능의 중요한 부분을 이루어 단순한 공상과 구별된다. 특히 예술작품을 감상하거나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큰 역할을 한다. 상상력은 과거의 경험으로 얻어진 심상(心像)을 새로운 형태로 재구성하는 정신작용이다.
“공상”이란 어떤 사물이나 사건의 이미지[심상(心想)]를 머리 속에서 그리는 일을 말하며 비현실적인 것이 특징이지만,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의식하고 있는 점에서 꿈이나 망상과는 다르다. 공상의 일종인 백일몽은 다소 변형적인 이미지를 차례로 상상 속에서 그리는 것인데, 이런 현상은 현실에서 채워지지 않는 욕망에서 생기는 것이다.
과거의 경험을 그대로 생각해내는 기억의 재생은 상상이라고는 하지 않으며, 사고(思考)는 추상적 개념을 구사하는 것으로 이미지에 의존하지 않기 때문에 상상과는 구별된다. 상상의 내용이 현실에는 없는 것이라고 생각되는 경우, 이것을 공상이라고 한다. 그러나 달 여행은 공상이었지만 점차 상상으로 발전되더니 이제는 현실이 되었다. 상상하는 사람은 그 내용이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상상은 있지 않은 것을 현실로서 생각하는 망상이나 환각과는 구별된다.
상상력이란 그 자체로서 현존하지 않는 대상을 직관 속에서 표상 하는 기능이다. 상상력은 지금 없는 것을 표상 한다. 즉, 그것은 직접적인 경험으로써 접근할 수 없는 것을 표상들을 통하여 드러나게 한다. 그러므로 상상력은 다른 방식으로는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을 것들을 접근 가능하게 만든다. 실재적 상상력은 우리가 직접적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실재들(real objects)을 다룰 때에 작용한다. 지금 현재 거기에 있지는 않으나 만일 거기에 있다면 직접적으로 인식 가능한 대상들과 관계된 것들이다.
어떤 물체가 물리적으로 부재함에 있어서는 두 가지의 중요한 주요한 유형이 있는데, 그것은 시간적인 부재와 공간적인 부재이다. 시간적인 부재의 가장 명료한 경우는 과거의 실재인데, 기억은 상상의 행위를 필요로 한다. 미래의 실재는 과거의 경험으로부터의 추정, 새로운 발전의 예상, 그리고 미래의 상황에 대한 가설 등을 통하여 우리에게 온다.
경험적인 대상에 관계되는 상상력이 또 다른 실재적 사용은 공간적인 것인데, 그것은 실재적 대상이 관찰자와의 공간적 관계 때문에 관찰자로부터 차단되는 상황에서 상상력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관찰자와 관찰 대상과의 공간적 관계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대상에 대한 직접적인 관찰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상상력은 경험 그 자체의 어느 부분이나 측면을 지시하지 않으며, 단지 먼저 거기에 어떤 경험이 있기 위하여 필수적인 조건들을 지시하는 것이다. 상상력은 선택하며, 통합하고, 매개하는데, 물론 우리의 경험의 내용이 아니라 그것들의 감각적인 선행조건들을 선택하고 조합하며 매개한다.
상상력이란 우리가 직접적으로 접근할 수 없는 어떤 것을 표상하게 만들어 주는 수단인데, 이러한 어떤 것은 가공적인 세계와 실재 세계의 난해한 측면들을 모두 포함한다. 따라서 상상력은 사실과 허구 모두의 매개체이다.
2. 상상력에 대한 종합적 개념
Egan에 의하면, 어떤 것을 상상한다는 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존재로서의 그것(대상/사물)에 마음을 쓰는 것이다.(Kieran Egan, 1992:36) 그런데 그 대상 또는 사물에 마음을 쓸 때에 자기의 모든 역동성을 가지고 전체 속에서 가능성과 그리고 때로는 비현실적인 것을 향해 정신적 작용을 일으킨다. 이러한 의미에서 상상력은 정신적 경험이다. 이러한 상상력의 기능은 보다 더 창의력과 이해와 행동이 관계되는 정신적이고 실제적인 창조의 순간에로 나아간다.2) 이것이 바로 상상력의 참된 기능인데 이러한 상상력은 동적 이미지와 형태적 이미지를 산출한다. 이는 상상력이 나타나는 두 유형이다.
여기서 동적 이미지란 과거 경험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 가운데 나타나는 것으로 그것은 정신의 안벽을 격렬하게 스쳐 지나가는 어떤 힘에 의해 자극되어 나타난다. 이는 자기가 제어할 수 없는 정신의 내밀한 밀실을 스쳐 지나가는 것과 같은 것이다. 반면에, 상상력이 나타나는 또 다른 유형인 형태적 이미지란 과거를 배열한 집, 경험의 한 극점인 원형을 기반으로 하여, 모든 경험이 그 원형으로 귀환하여 과거의 형태를 이루며 나타난다. 예컨대, 행태적 상상력은 가령 난다는 것을 파악할 때, 우선 자기가 경험했던 어떤 것, 어렸을 때 다락방에서 쥐고 놀던 장난감 비행기나 혹은 전쟁터에서 본 전폭기의 폭격 광경을 추출해 낸다.3) 동적 상상력은 비합리적 논리의 세계라는 특성을 띠며, 정서적 마음에서 유래하는 심상적 상상력과 연관이 있으며, 반면에 형태적 상상력은 합리적 논리의 세계라는 특성을 띠며, 객관적 지식에서 유래하는 이론적 상상력과 연관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이론적 상상력이란 이름 그대로 과거의 객관적 지식, 학문의 세계를 바탕으로 하여 일어나는 상상력으로, 이러한 상상력은 반드시 이론의 구조적 세계(지식의 구조적 맥락)를 전제로 하여 구조적 세계 이상의 것에 대하여 상상한다. 그러나 심상적 상상력은 반드시 이론의 구조적 세계(지식의 구조적 맥락)를 전제로 하거나 알아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상상력이다. 즉 심상적 상상력은 상상을 위한 이론적 준비나 마음의 결단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심상적 상상력이란 단지 자연 세계를 보고, 또는 정신의 안벽을 스쳐 지나가는 가운데 느끼는 그 자신의 마음의 움직임을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면에서 볼 때 심상적 상상력은 상대적으로 무한히 넓은 무제한의 세계를 가지며, 또 이 상상력은 순전히 상상적이고 정서적인 복합성의 자연스런 표현의 차원에서 일어나는 것이므로 자연스럽게 무엇인가를 습득하고 획득하게 되는 학습이 일어나게 된다.4)
이러한 상상력은 모두 앎을 가능하게 하며, 접촉을 일으키고 결합, 통합하는 역할을 하며, 변화를 일으키며, 창조적인 역할을 하고, 종교적인 기능으로서의 역할을 한다.
요컨대, 먼저는 앎을 가능케 하는 것으로서의 상상력은 실재하는 것 외(外)의 다른 세계와 실재에 대해 상상할 수 있도록 하며, 또 있는 그대로의 세계와 실재에 대해 정확하게 상상할 수 있도록 한다. 이러한 상상력의 능력은 어떻게 해서든지 존재로서 어떤 것에 마음을 쓰게 하는 것이며 발견과 참신성, 독창성, 그리고 생성력(Generativity)의 근원으로서의 역할을 한다.(Kieran Egan, 1992:36) 이러한 상상력은 암묵적으로 통합하여 의미를 획득하는 것이며, 인간 정신에 있어서 세계와의 의미 있는 상호관계를 가능하게 하며, 일상적 인식, 이해와 해석, 그리고 우리가 인간생활과 실재의 의의, 의미, 신비 가운데 찔러 넣는 모든 탐사침들의 기초가 된다. 이것은 단순한 인식 현상이 아니다.5)
상상력은 어떤 상태들이나 행위들의 불확실한 영역을 마음 속에 확실하게 잡을 수 있게 하고, 가능적인 암시들을 고려할 수 있게 하며, 사유들을 평가할 수 있게 하고, 그 모습들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게 하며, 어느 것이나 가장 특별하고 효과적인 것이 되도록 선택할 수 있게 한다.(Kieran Egan, 1992:37) 상상력은 현재이지 않거나 심지어 실체이지 않은 것을 마치 실체나 현재인 것처럼 어떤 것에 관하여 느끼고 알도록 해준다.(Kieran Egan, 1992:43) 이렇게 하여 상상력으로 이루어진 지식은 우리의 삶을 갑작스럽게 거의 폭발적으로 확대시키는 지식이며, 다방면으로 우리의 삶을 다르게 그리고 멀리 내다보게 한다.
이러한 상상력은 명상을 요구하는 아름다운 지식을 이루며, 합리적 세계와 비합리적 세계를 다 포괄하는 가장 이지적인 지식이 되게 한다.(김용선, 1991:12-13). 둘째로, 접촉을 일으키는 것으로서의 상상력은 우리의 지각작용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체험에 접촉함으로서 필요대로 나타내는 역할을 하며, 시공의 제한 없이 접촉함으로써 현실에서 만날 수 없는 세계, 즉 지각에도 없고 기억에도 없는 새로운 세계를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역할을 한다.6)
이러한 역할로서의 상상력은 우리 인간의 경험적 차원과 하나님의 계시적 차원을 연결시키는 접촉점으로서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곧 우리 인간이 실제적으로 하나님이 계시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촉매역할을 하는 것이다.7) 계시의 접촉점으로서의 상상력은 계시를 보다 더 참되게 그리고 실재적으로 보도록 이미지들을 제공해 준다. 이 이미지들은 우리로 하여금 세계를 보다 더 깊고 분명하게 보도록 돕는다.(Crag R. Dykstra, 1984:124-25) 셋째로, 결합, 통합하는 기능으로서의 상상력은 부분 부분 떨어져 있는 것을 하나로 보게 하며,8) 인간 개인 안에 있어서 몸, 정신, 정서 사이의 연결을 제공하는 통합하는 힘으로서의 역할을 한다. 이러한 상상력은 모든 지적, 지각적인 것들과 그리고 마음의 경험과 개념을 결합하는 결합체이며, 영육을 결합하는 매개체이며, 사람들의 영혼과 마음이 이지러지기 시작할 때 그 비인 공간에 채워져 자라도록 하는 것이다.(Kieran Egan, 1992:18) 상상력은 또한 원천으로부터 에너지를 끌어오고 우리의 삶을 떠받치는 역할을 한다.(Thomas H. Troeger) 나아가 이러한 상상력은 합리화나 비합리화를 모두 다 포괄하여 체계화하고 그것의 강력함을 통찰하는 능력으로서의 역할을 한다.
이러한 통합하는 힘으로서의 상상력은 종교적 상징들이 인간의 실존 안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설명해 주며, 그 상징들은 전체의 삶 가운데서 그것이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를 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 삶과 함께 전 인격 속에 참여한다.9) 그리고 나아가 외적, 내적인 모든 자극들을 의미 있고 이해할 수 잇는 전체로 요약할 수 있는 이미지들도 구성된다.(Crag R. Dykstra: 1984:122) 넷째로, 규범형성으로서의 상상력은 어떤 것을 부분들 안에 전체(whole-in-parts)로서 조직적, 본질적 패턴이나 모델로 형성되도록 하며,10) 사유 의지, 감정 등이 일정한 이상, 목적을 이루도록 마땅히 따라야 할 법칙과 원리를 이루고,11) 어떤 난제들에 부딪혀 풀기 어렵고 증명하기 어려운 것일지라도 급작스러운 규범변화나 새로운 규범형성으로 인해서 풀리지 않던 문제가 풀리게 되고, 증명되지 아니한 것이 증명되게 되는 것이다.12) 이러한 것은 어떤 돌연한 비약과 경험의 세계를 보는 새로운 방식의 전환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13) 다섯째로 변화를 일으키는 것으로서의 상상력은 마음 속의 심상을 급속하고 변화 있게 진행시켜 나아가며,14) 마음속의 이미지를 바꾸고,15) 그 사람의 신념이나 의지력을 바꿀 수 있다.16)
그러므로 정신적 육체적 개선도 가져올 수 있으며, 행동양식을 바꾸는 결과도 가져올 수 있다.17) 여섯째로 창조적 기능으로서의 상상력은 우리의 경험 속에 포함된 기존인식과 사물에 대한 평가에 의존하여 어떤 새로운 것을 창조하며, 지각에도 없고 기억에도 없는 새로운 세계를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기능을 한다.18) 이러한 창조적 기능으로서의 상상력은 상징을 직접 향유하도록 이끌어주는 천진성의 학교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진형준, 1992:16-17) 창조적인 상상력은 항상 대화하면서 변화하는 항상 열려있는 그 무엇이다. 그것은 그것 스스로 객관성을 보장해주는 닫힌 실체가 아니라 열려있는 가능성이다.(진형준, 1992:38-41) 창조적인 상상력은 인간의 경험을 토대로 하여 또는 지각에 작용된 체험을 통하여 새로운 어떤 있음직한 본보기(model)를 구성하는 힘을 일으키며, 그 창조적 상상력은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사물들 사이에 의미 있는 관계가 있음을 파악하거나, 일상생활의 온갖 경험을 토대로 하여 새롭고 의미 깊은 형상을 창조하는 능력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19)
일곱째로, 종교적 기능으로서의 상상력은 절대자를 향한 영적 만남을 가능하게 하고, 영적 생활을 회복하게 하며, 영혼에 대한 의미와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아직 오고 있는 실재들과 미래의 행위들을 숙고하도록 이끄는 힘이 된다.(Kieran Egan, 1992:22) 또한 종교적 기능으로서의 상상력은 영원한 천성가운데 잠자는 상징들을 이끌어 내는 역할을 하며, 그것의 타고난 능력을 다시 일깨우는 역할을 한다.20)
프랭크(Erich Frank)는 “신의 본질과 신과 맺는 우리의 관계를 나타내는 다른 종교적 관념은 상상력에서 오는 관념이다”라고 하였다.21) 종교적 상상의 관념은 인간이 신과 맺는 관계의 적절한 표현으로서 인간이 신 앞에서 현존하여 섰다고 믿는 신앙의 표현이다(Erich Frank, 김하태 역, 1985:99) 이처럼 상상력은 이론적인 종교적 진리를 경험적인 종교적 진리로 드러내며 그려낸다. 상상력은 종교적으로 과거를 안고 현재를 직시하며 미래를 보게 한다. 그러하기에 우리로 하여금 우리는 넘어서 있는 그 무엇을 포착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22)
D. 문학적 상상력
1. 18세기 낭만주의
18세기에 주요한 유럽 국가들은 17세기 프랑스에서 확립된 고전주의를 일반적으로 계승함과 동시에 이성(理性)을 인식의 유일한 수단으로 삼은 계몽주의의 지배를 받았다. 고전주의는 보편 절대적인 미(美)의 관념에 입각하여 엄격한 규칙을 세우고 복잡한 것 보다 간명(簡明)한 것을, 동적인 것보다 정적인 것을, 토속적인 것 보다 도회적인 것을, 노골적인 것보다 우아한 것을, 파격보다 균제(均齊)를 중시하는 귀족문화였다. 그러나 18세기 중엽이 되면서 절대왕정의 이완 및 부르주아지의 발흥과 함께 인간을 있는 그대로 보려는 욕구가 분출하는 한편, 계몽주의 그 자체에서도 이성에 의한 비합리적인 면이 드러나자 지금까지 경시되었던 감각현상들에서 인간성의 진실을 찾으려는 노력이 나타났다. 동시에 고전주의가 모범으로 삼은 그리스 ․로마의 고전고대(古典古代)로부터 자국의 과거로 눈을 돌리고, 거기에서 새로운 문화의 원천을 찾으려는 기운이 일어났다. 이 무렵에 일어난 1789년의 프랑스혁명은 사람들의 마음에 환멸감을 일으켰다.
계몽주의의 최고의 성과가 이성에 의한 비합리적인 정치체제의 타파였는데, 사람들은 혁명을 통하여 드러난 인간의 취약한 면을 보고는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주변이 어지럽게 변하는 데 당혹하였으며, 모든 원리가 붕괴되는 것을 보고 일체에 대한 불신감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정신의 폐허 위에 자신의 심성(心性)에 맞는 문화를 이룩하려고 한 것이 낭만주의 정신의 본질이며, 그 결과 자아(自我)에 대한 확인과 그 내부에로의 침잠(沈潛)이 시작되었다. 내면에야말로 진실이 있다고 주장하고 1798년 독일의 예나에서는 A.W.슐레겔과 W.슐레겔 형제가 《아테네움:Athenum》지를 창간하였으며, 영국에서는 워즈워스와 S.T.콜리지가 자연의 관조(觀照) 중에 상상력에 의한 우주와의 영적(靈的) 합일감(合一感)을 노래한 《서정민요집》을 간행함으로써 각기 자국 낭만주의의 효시(嚆矢)를 이루었다.(본문 출처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2. 상상력과 시
20세기 실증주의적 과학이 다차원적인 실재 속에서 일차원적인 추상적 원인만을 추출함으로써 실재를 단순화시켰다고 본 신비평가들은 다차원적인 경험의 세계를 창조하여 간접적으로 계시하는 목적적인 사물로서의 로고스의 시를 선포했다. 그들은 과학적 논리에 모순되는 역설의 구조를 지닌 시의 언어가 과학적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입체적이고 복합적이고 유기적인 세계를 재창조한다고 주장했다. 실증주의적 언어는 논리적인 언어로 “말하고” “설명할 수 있는 추상적이고 필연적인 세계인 반면, 유기적 언어는 언어에 담을 수 없는 구체적이고 우연적인 개별적 사물의 실존적 세계이다. 유기적 언어가 곧 상상력의 언어이다. 상상력의 언어는 시적인 언어이다. 아취볼드 맥리쉬(Archibald MacLeish)가 「시의 기술(Ars Poetica)」에서 말한 바와 같이 “시는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이다.” 즉 시는 과학의 추상적․논리적인 의미의 세계를 진술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비논리적인 존재의 세계를 상징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이 구체적이고 비논리적인 시의 세계(상상력의 언어)는 다차원적․복합적․역설적인 세계이다. 브룩스(Cleanth Brooks)에 의하면, 복합적이고 역설적인 세계를 형상화(육화)한 시는 논리적 “의미”로 환원시킬 수 없는 “실재의 영상(simulacum of reality)"이다.1) 이러한 육화된 시는 그리스도의 육화처럼 진정한 세계를 계시해 준다.2) 역설의 시는 육화의 계시인 성경의 역설의 진리였다. 시는 종교는 아닐지라도 종교를 위한 준비이다.3) 실재가 육화된 비논리적인 역설의 시는 논리적인 언어로 “뜻풀이”할 수 없다.
다차원적이고 복합적인 사물인 시는 다양한 요소들의 균형과 통일이라는 점에서 유기체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다. 이런 면에서 20세기의 신비평은 뉴턴의 기계론적 방법에 반역하여 유기체설의 기치를 높이 들었던 19세기 “신비평”이라 할 수 있는 낭만주의의 후계자이다.
시는 실재의 강화이다. 반면, 실재의 다양한 양상들 가운데 논리에 맞는 면만을 진리로 보는 과학은 ‘실재의 축소’인 것이다. 정확성이라는 단어는 과학의 상표이다. 과학의 정확성은 구체적 경험의 정확성이 아니라, 수학의 정확성이다. 그러므로 과학은 그 추상성이 높으면 높을수록 그 정확도도 높아진다. 과학은 용어를 정착시키고, 그것을 엄격한 외연적 의미로 고정시키는 경향이 있다. 또한 과학적 논리적 언어는 인간의 실제 용도와 목적에 따라 추출한 것일 뿐 자연자체의 실상을 추상화시키고 “단순화”시킨 데 불과하다. “과학의 언어는 문맥의 압력에도 변하지 않는 추상적 기호이다. 이것의 의미는 미리 정의되어 있다. 그것은 뒤틀어 새로운 의미를 지니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상상력의 언어는 끊임없이 서로를 변화시켜서, 그 사전적 의미를 깨뜨린다. 언어와 실재에 있어서 언어의 기능을 ‘지시적(과학적) 기능과 ’정서적(시적)‘ 기능으로 나누려는 유명론적 실증주의의 언어에 이해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언어는 ’재현적‘(직관적 또는 상징적)기능이 있다. 시는 정서적일 뿐만 아니라 인식적이다. 시는 은유를 통해서 진리를 제시한다. 모든 시적 상징은 은유이며 은유에서 나온다. 그러나 상징은 은유이상이다. 은유는 우리가 그것을 통해 다른 방식으로 표현할 수 없는 이상적인 내용을 형상화할 때 상징이 된다(Brooks, 1947:254). 다른 방법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하나의 다차원적․복합적 실재를 상반되는 구체적인 부분들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보여줄 때, 그 구체적인 부분들은 전체를 보여주는 기능을 하기 때문에 ’기능적 은유”가 된다. 시는 경험의 입체성, 다차원성에 관심을 가진다. 이처럼 상반적이고 복합적이고 다면적인 실재를 형상화하는 기능적 은유들을 상징이라고 한다. 유기적 상상력의 산물인 상징의 특성은 “특수를 통해 보편이 비친다. 상징은 보편적 부분이다.4) 상징의 구조는 유기체의 구조와 같이 상반되며, 상징은 역설적 구조를 지닌다.
상상력의 언어는 유기체적 특성을 가진다. 상상력은 부조화스럽거나 상반되는 특성들을 균형 또는 화해로 자신을 계시한다.5) 유기체의 특징중의 하나는 상반된 다양한 요소들이 상호의존관계를 이루어 하나의 통일체를 창조한다는 점이다. 유기체는 “다양성의 통일”을 이룬다. 유기체의 부분들 간의 관계는 극히 비논리적인 관계이다. 브룩스에 따르면, 이 “통일의 원리는 함축적 의미들과 태도들과 의미들의 균형을 유지하고 조화시키는 원리이다. 이것은 곧 같은 것과 다른 것을 결합시킨다. 이것은 하나의 함축적 의미로 다른 함축적 의미를 지워 버리는 그런 단순한 방법으로 이질적인 것들을 결합시키는 것도 아니고, 빼기 기법으로 상충되는 태도를 조화시키는 것도 아니다. 이 통일은 대수 공식에 알맞은 통분과 단일화로 달성되는 그런 유(類)의 통일이 아니라 적극적 통일이다.
시적 상상력은 종교적 상상력이다. 하나님에게 형상과 본성과 기능을 부여하여 그를 “형상화하거나 ‘발견’하는 것은 시적 상상력이다. 이런 시적 상상력이 없다면, 하나님은 가장 메마른 플라톤적 이데아로서 모든 함의 (intension)가 논리적 의미(extension)에 희생당할 것이다. 이처럼 은유는 추상적인 논리를 구체화 또는 육화시키는 장치이다.
1) 쿨리지[S. T. Coleridge:(1772-1834)]는 영국 낭만주의 시대에 살았던 탁월한 철학자, 신학자, 문학비평가, 사회비평가, 심리학자이자 시인이다. Coleridge는 그의 상상력에 관한 이론적인 것들을 그의 대표적인 평론인≪문학평전 Biographia Literaria》(1817)을 통하여 소개하고 있다. 인간 최고의 능력으로서의 상상력의 우위를 강조한 그의 이론적 ․철학적 방법론은 시적 직관에 뒷받침되었으며, 20세기의 신비평 등 후대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의 사색은 종교와 정치영역에까지 미쳤으며, 19세기 중엽의 그리스도교사상에도 영향을 주었다. 오늘날에야 비로소 발간되는 그의 방대한 수첩은 프로이트를 예언하는, 심리적 통찰에 가득 찬 귀중한 인간기록이기도 하다. 가장 낭만주의적인 작품을 쓴 시인 ․사회비평가 ․문학평론가 ․신학자 ․심리학자로서 그는 인간 존재와 전우주의 본질적인 창조적 원칙을 해명하고자 노력하였다.
2) Garrett Green은 Joined Connecticut College의 종교학부(Religious Studies Department) 교수이자 학과장이다. 그의 전공은 기독교사상사, 현대종교사상, 종교적 상상력, 종교철학이다. 그는 스탠포드 대학(A.B.), 유니온신학교(M. Div.), 예일대학(Ph.D.)을 졸업했다. Green의 전문분야는 기독교 역사(whole history of Christianity)인데 주요 관심과 연구분야는 17, 18세기에서 현재까지의 종교사상이다. 이 시기는 전통적인 종교신앙과 현대세계가 만나는 곳이다. Green의 가르침은 고전적 기독교 전통과 현대세계의 만남, 특별히 “종교와 현대세계의 발흥"(Religion and the Rise of the Modern Spirit)"의 과정, 그리고 ”20세기의 하나님“(God in the 20th Century)에 대해 다양한 면(aspects)을 다룬다. 그의 가장 최근 작품인 「하나님 상상하기」(Imagining God: Theology and the Religious Imagination,1989)는 과학과 예술 그리고 종교가 진리를 발견할 때, 상상력 역할의 필요성을 탐구한 책이다.
3) 마리아 해리스(Maria Harris)는 미국의 기독교교육학자로서 상상력의 이론을 현장에서 검증해 온 현장 교육가로, 자신이 쓴 『가르침과 종교적 상상력』(Teaching and Religious Imagination)에서 가르치는 내용과 방식이 일치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상상력을 십분 활용한 신앙 교육을 전개해 나갔다. 그는 상상력을, 사람 속에 있는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믿음, 두려움과 구속 없이 그 가능성을 실현하는 자유에 대한 존경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상상력이 풍부한 사회는 정의와 개인의 자유가 실현되는 사회를 꿈꾸며, 상상력이 풍부한 교실은 학습자와 교사가 서로 상대방의 인격과 삶, 그 속에 존재하는 가능성을 존중하게 된다고 하였다.
3. 쿨리지의 상상력
이상에서 상상력에 대하여 다양한 관점을 살펴보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더 확장된 이해와 상상력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위하여 특별히 Coleridge의 상상력이론을 소개하고자 한다.
Coleridge는 그의 상상력에 관한 이론적인 것들을 그의 대표적인 평론인≪문학평전 Biographia Literaria》(1817)을 통하여 소개하고 있다. 인간 최고의 능력으로서의 상상력의 우위를 강조한 그의 이론적 ․철학적 방법론은 시적 직관에 뒷받침되었으며, 20세기의 신비평 등 후대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의 사색은 종교와 정치영역에까지 미쳤으며, 19세기 중엽의 그리스도교 사상에도 영향을 주었다. 오늘날에야 비로소 발간되는 그의 방대한 수첩은 프로이트를 예언하는, 심리적 통찰에 가득 찬 귀중한 인간기록이기도 하다. 가장 낭만주의적인 작품을 쓴 시인 ․사회비평가 ․문학평론가 ․신학자 ․심리학자로서 그는 인간 존재와 전우주의 본질적인 창조적 원칙을 해명하고자 노력하였다.
a. 쿨리지의 상상력 이론
1) Coleridge의 시적 상상력
상상력이란 “shaping"의 특성을 지니며 근본적으로 “joy”와 결합되는 것이다. 그런데 기쁨이란 것은 우리들의 내부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 같은 기쁨이 없이는 우리는 단지 자연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지,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다. 자연에 대한 지각을 느낌으로 바꾸어주는 것이 바로 기쁨(joy)임을 Coleridge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1) 그러므로 느낌이 없이 사물을 본다는 것은 그 본 것을 다른 무엇으로 변모시킬 수 있는 구성력(shaping)이 없음을 뜻한다.2) 시편은 이러한 하나님의 자연을 바라보는 기쁨과 환희를 표현하는 부분들이 있다.
Coleridge에 있어서 감정이란 시에 있어서 원동력이 되는 것이며 理知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理知를 움직이는 힘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감정의 논리는 시에 있어서 주지적 부분의 결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지(理知)에 의한 논리만으로써는 시적 작업이 불가능함을 뜻한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보아서 Coleridge에게 있어서 감정은 상상력을 구성하는 것이고 이미지의 구성과 기술의 한 몫을 담당하는 것이다.3) 이러한 감정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고유한 감각능력이기도 하며 하나님을 향한 마음으로 이끌어주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Coleridge에 있어서 상상력은, Mary Warnock의 지적대로 세 가지를 중요한 구성 요인으로 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상상력은 먼저는 이미지를 만드는 힘이며, 다음으로, 상상력은 그 이미지를 보편적인 의미를 가진 것으로 보게 해주는 힘이며, 마지막으로 상상력은 그 이미지의 현존 안으로 깊이 인도 힘이다.4)
이렇게 해서 사고와 감정이 종합되고 詩形이 결합되어 한편의 시가 탄생하는 것이다. Appleyard에 의하면, Coleridge는 인식 과정에서 한계가 있음을 잘 알고 있다.5) Appleyard에 의하면, Coleridge는 의식과 대상, 즉 사고와 물의 관계에 깊은 관심을 보여 왔다. 그런데 여기에서 Coleridge는 두 가지 문제에 봉착하게 되는데, 첫째는 의식을 중심으로 할 때, 심성이 사고 과정에 간여하는 경우이고, 둘째는 자연이 중심이 될 때, 외계의 사물이 독자적으로 의식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이다. 거기에다 사고에는 감정이 따르는 법이어서 사고와 감정과 사물의 관계가 성립되고, 또 다시 언어가 개입하게 된다. 그런데 언어는 심성과 사물을 연결하는 단순한 매개물이 아니라 살아 있는 심성의 살아있는 산물이지만 우리들의 인식능력에는 한계가 있어서, 대상의 실재를 온전히 파악할 수 없다(김병옥,1990:337-38) 상상력의 활동은 지각 속에 있으며, 시지각(示知覺)을 통해서 삶을 파악하고 상으로 표현하고자 하고자 하는 것이다(김병옥,1990:339) 지각은 감정과 결합되어 언어에 의하여 외화되어 표현된다. 그러나 언어의 한계는 인간의 한계이다.6) 언어가 지각(知覺)의 세계를 구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한으로는, 언어적 표현의 한계가 바로 관념의 내용에 제한을 가하는 것이 된다. 이 현상은 우리들의 지각과 결합되는 감정의 세계가 깊을수록 더욱 더 그럴 것이고, 그 결과는 언어의 유희가 된다.
그러나 쿨리지는 그의 정신을 개개의 事物形式의 이미지를 개별적이고 특수한 양상에서 파악하여 이것을 다시 全一의 통일(undivided Unity)속에서 파악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쿨리지에게 있어서 조형력(造形力)으로 통하던 상상력 이론에, 다시 상상력이 지각하는 전일의 생명(the one life)이라는 개념이 추가되고, 이렇게 하여 시란 상상력을 동원하여 강력한 정신작용을 낳는 것의 소산(所産)이 되고, 그 소산은 “사고”(thought)", "감정(feeling)" 및 “시적인 틀(poetic forms)"이 결합된 것으로서 ”하나의 어렴풋한 창조의 유비(A dim Analogue of Creation)"가 된다.7) Coleridge의 상상력이론은 영국의 문화적 전통 속에서 배태되었으며, 그 후에 독일 철학에 접근하게 됨에 따라 더욱 체계적인 이론의 진전을 가지게 되었다.8)
쿨리지는 상상력이란 재창조를 위한 상반물을 균형 있게 조화시키고 통일시켜서 이상적인 관념으로서 제시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김병옥, 1990:348). 정신과 자연을 연결하는 문제, 즉 지각하는 자로서의 주체와 지각되는 것으로서의 객체가 서로 대립되는 관계에 있었던 것을 해소시켜서 하나로 융합하는 것이 그의 상상력 이론이다. 정신과 자연의 세계를 연결할 수 있는 힘은 바로 상상(imagination)이다. 상상이라는 것은 자아와 자연의 세계를 매개하는데서 시발되었다.
① 언어의 자의성과 상상력
우리가 흔히 시라고 할 때, 그것은 비현실적인 이상주의자의 환상적인 것이라고 간주하기가 쉽다. 상상력의 생동력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이에게 흔히 발견되는 관점이다. 이들은 詩라고 하면 그저 비현실적이고, 환상과 이상을 그리는 것이라고 생각하기가 쉽다.
그러나 시는 비 현실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현실과 그 현실 넘어 있는 모습까지도 그려낸다.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도 비추고 성찰해낸다. 예를 들면, 지금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을 보자. 우리는 그것을 구름이구나 하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구름이라고 인식하는 것은 그것이 정말 구름이기 때문에 그렇게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하늘에 떠있는 둥근 솜틀 모양을 구름이라고 부르기로 약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곧, 구름의 의미가 획득되어지는 과정이다. 대상 혹은 사물에 대한 지시적 의미로서 구름이라는 의미가 획득된 것이다.
그러면 이 구름이라고 불리어지는 하늘에 있는 대상의 의미는 아직도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고, 그 변화된 모습을 볼 수도 있다. 평소에 바라보는 구름은 그저 평범한 구름이라고 생각하지만, 저녁에 노을이 퍼져있는 구름은 우리에게 많은 다른 의미를 생각하게 해준다. 만약 하늘의 그 구름이 구름이라는 이름을 가지지 않았다면, 누군가가 그것을 그리움이라고 부르고, 그 의미가 다수에게 인정된다면, 지금 우리가 구름이라고 부르는 그 대상은 구름이 아니라 그리움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모든 사물에는 다양한 의미들이 획득될 수 있다는 점이다. 단지 그 의미들이 다수에게 인정되지 않지만 말이다. 이러한 사물이 가지는 다양한 의미를 그 사물의 총체성이라고 부를 것이다. 이렇듯 사물이 가지고 있는 잠재적 의미의 가능성을 표현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바로 상상력이다. 상상력을 통해 나타나는 다양한 의미는 과학적이고 합리적이고 수학적이고 지시적인 의미로는 사물의 의미의 전체성을 표현할 수 없는 것을 상상력을 통하여 다양하게 그려낼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시이며, 시는 그러한 상상력을 통해서 사물을 기준의 획득된 한 사물의 의미를 넘어서서 또 다른 의미의 단어로서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맥락)에서 Samuel Taylor Coleridge는 시적인 상상력을 강조한 것이다.
그의 지적 성장 과정과 시론은 그의 자서전적 문학 이론서인 Biographia Literaria(2권으로 나누어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주로 1권에서는 상상력 이론을 다루는데, 특히 마지막 장인 13장<상상력 또는 통합력에 관하여>에서 그는 상상력을 <1차원적 상상력>, <2차원적 상상력>으로 나누어 정의한다.9)
1차적 상상력은 모든 지각(知覺)의 생명력이며 주된 작인(作因)으로서, 무한하나 자아의 영원한 창조행위가 유한한 정신 속에서 반복되는 것이며, 2차적 상상력은 1차적 상상력의 반향으로서 가능 면에서는 1차적 상상력과 동일하나 다만 작용의 정도와 양식에 있어서 다르며, 대상을 재창조하기 위해 그것을 용해하고 확산시키며 흩뜨린다. 이러한 과정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그것을 이상화하고 통합시키는데 기여한다. 따라서 2차적 상상력은 본질적으로 고정되고 죽어있는 대상들과는 달리 생명적이다. 이러한 두 가지 상상력의 차이는 1차적 상상력의 작용은 무의식적이고 2차적 상상력은 의지가 그 작용을 주도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상력의 이론은 상상력의 능동적, 창조적, 통합적 기능을 강조하고 있다.10)
그러면 사무엘 테일러 쿨리지의 詩들에 종합적으로 암시되어 있는 상상력 이론을 검토해본다. 자연에 감응하는 정신의 주체적 창조력인 생기와 예술을 창조하는 생명의 원초적 활력인 기쁨을 그 원천으로 하고 있다. 영혼의 힘찬 음악, 미를 창출하는 힘인 기쁨은 1차적 상상력과 2차적 상상력의 근원적 요소가 되는 것이다.11) 그의 상상력은 천부적으로 우리에게 부여된 생득적 인간 능력이며, 다만 그러한 기쁨은 자연과 감응하거나 시인이 아닐 수도 있는 소수의 선택된 자에게 주어지는 신의 선물이라 요약된다.12)
사물을 창조적이고 통합적으로 지각할 수 있는 상상력, 이러한 상상력의 근원이 되는 동시에 다양성을 통합하는 창조적 힘은 기쁨이다.(George Deker,1978:23) 이러한 상상력의 통합적 기능은 문학평전(Biographia Literaria)에서의 언급과 같이 유기적 결합력을 갖고 있지 못하며 여러 가지 심상을 병치시키는 것으로 끝나는 Fancy의 기능과 구별된다.
요컨대, 그의 상상력의 원천이 되는 것은 <성형(成形)적 상상력>으로서 <생기>와 <기쁨>을 그 구성요소로 한다. 생기는 자연에 감응하는 정신의 주체적 창조력이며, <기쁨>은 생명의 원초적 활력으로서 예술을 창조하는 힘이며 다양성을 통합시키는 창조적 정신이다. 이러한 상상력은 생득적인 것이고 자연과의 상관 속에서 부여받는 정신적 힘인 것이다.
쿨리지는 최고의 창조적 능력이 상상력이라는 신념을 가진다. 그는 상상력의 활동을 창조에 비유하고 그 창조는 우리가 창조에 관해 마음 속에 품을 수 있는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인간의 창조의 활동, 즉 새로운 실체의 창조는 상상력의 소산으로서 외부의 대상물을 모사(copy)하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물의 내적 원리를 재현시킨 것이다. 이질적인 여러 요소들이 표함되면서도 그 요소들이 전체적인 하나로 융합되는 상상력의 이론은 “유기적 통일”(organic unity)과 “대립물의 조화 또는 화해”(reconciliation of opposites)의 개념이 필연적으로 내포되어 있다.13)
그는 상상력을 유기적 성장(organic growth)으로 파악한다. “상상력 속에서 정신은 성장한다. 공상(fancy)속에서 상상력은 단지 과거의 창조물을 재배열한 것의 산물에 불과하지만 정신작용의 개념이 공상으로부터 상상력으로 옮아가는 것이다”.14)
이렇듯 쿨리지는 낭만주의 시학의 철학적 기초로서 상상력 이론을 정립했는데, 이것은 칸트의 구상력 이론에 힘임은 바가 크다. 그러므로 쿨리지의 사상적 기초가 되는 칸트의 ‘구상력’ 개념을 살펴본다. 구상력이란 “직관 중에서 대상이 지금 있지 않건마는, 대상을 표상하는 능력15)으로서 오성과의 자유로운 유희(freie spiel)”를 통해 미적 판단을 구성한다. 구상력은 “많은 사유를 유발하지만, 그러나 어떠한 특정한 사상, 즉 개념도 이 표상을 감당할 수 없으며, 따라서 어떠한 언어도 이 표상에 완전히 도달하여 그것을 설명할 수 없는”16) 표상을 통해서만 이성이념을 구성할 수 있다. 이성과 이성의 언어는 사물의 전체성(총체성)에 다가가기는 부족하다. 이성은 실재적 이념에 완전히 이르지 못하며 개념화된 부분만을 생각하게 한다. 납작하게 보여지는 사물을 바라본다. 따라서 이성과 이성의 언어로서 감성계의 크기를 평가하는 것은 부적합, 또는 미흡하다. 그것은 우리의 신념 자체가 사물의 총체성을 말해주지 못하기 때문에 부분적인 성향을 가지기에 이 총체성에 이르는 노력은 곧 초 감성적 능력인 감정을 환기함으로 좀 더 사물의 총체성에 가까이 접근할 수 있다.17)
말하자면, 보다 더 넓은 이해와 지평으로 나아가는데, 요청되는 것이 바로 초 감성적 능력의 감성이며, 초 감성적 능력의 감성은 그 사물의 총체성으로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다. 사물의 총체성의 기여를 위하여 상상력적 직관은 유비에 의해서 직관하는 상징을 만들어 낸다. 언어를 유비적으로 사용하게 되면, 대상물의 인식을 결정하는 조건들을 벗어나는 사고와 감정을 상상력(구상력) 속에서 파악하려고 하는 상징이 생겨나게 된다.
② 쿨리지와 쉘링
쿨리지는 일상적 세계를 뛰어넘는 초월적 세계의 형성 원리를 정립하는데, 독일 철학자들 중, 특히 쉘링(Schelling)의 사상에 많은 힘입은 바가 크다(이종숭, 15쪽) Read는『문학평전』 여러 곳에서 쉘링의 사상과 합치되는 점을 밝히는데. 쿨리지 인간 의식이 자연의 내재적 생명력, 혹은 형상생성력(morphogenesis)과 동일함을 말한다. 이러한 형상 생성력의 모체가 점진적으로 증진되어 완성된 것이 ‘유기적 형식’(organic form)이다.(이종숭, 1987:24)
쉘링과 쿨리지에게 공통된 유기관을 이해하려면 주관과 객관의 상호 의존성, 혹은 주관과 객관의 동질성을 믿는 선험적 형이상학을 고려해야 한다. 쉘링에 의하면 상상력은 대상이 딱딱한 표피를 용해하고 거기서 순수한 본질을 추출해내는데, 이 본질을 생명처럼 느끼고 이해하는 고도의 능력이 상상력이다.18) 상상력이 객체의 가장 깊은 실재에 도달하여 그것과 생명의 종합을 이루려면 인간의 모든 지각작용을 활동시켜야 하며, 이를 통해 상상력은 단순한 知力이 미치지 못하는 고도의 지각과 형성적 자각을 성취한다. 활력을 주는 능력으로서 모든 정신능력 속에 내재하는 상상력은 이성과 감각 그리고 오성을 결합시키어 모든 존재를 서로 긴밀한 관계를 맺고 융합할 수 있게 하는 신비의 힘을 가진다. 단순히 외계의 인상들을 복사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이념의 內外를 동질로 화합하는 상상력의 활동은 초월적 활동이다.(이종숭,1987:27-28)
쿨릿지의 상상력의 최종 개념은 유기론(Organism)과 변증법(dialectic)이라는 외견상 양립할 수없는 두 모델을 결합시켰다.19) 모든 자연과 존재에는 그들의 내면적 대립 투쟁을 조화롭게 통일시키고 완전으로 지향케 하는 양극성의 원리가 내포되어 있다. 이 양극성의 운동은 정과 반의 충돌로서 야기되나 그것은 어떤 균형을 깨뜨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재결합을 위한 흐름이다.20)
모든 존재의 실재- 최상의 신으로부터 최하위의 미립자에까지 이르는 “존재의 거대한 사슬”(the great chain of being)21)은 서로 긴밀한 연관을 맺고 융합할 수 있는 유기체들이다. 상상력은 이 모든 유기체들 속에 내재한 이질적인 면들의 상충을 하나의 전체적인 조화로 환원시켜 보는 전인적 활동이다.(이종숭,1987:28)
2) 상상력의 개념과 이성
그는 공상과 상상력의 구분을 『문학평전』(Biographia Literaria) 제 1권의 끝 부분에서 “공상은 고정물과 한정물 외에는 같이 작용할 다른 상반물이 없으며, 사실상 시간과 공간의 질서로부터 해방된 기억의 양식에 불과한 것이며. 이것은 의지의 경험적 현상과 혼합되기도 하고 의지의 경험적 현상에 의해 수정되기 한다”22)고 말한다. 그리고 사우디(Southey)에게 보내 편지에서 ‘공상’을 “정신의 집적적 능력”(the aggregating faculty of the mind)23)이라고 하는데, 이는 대상물을 거울처럼 모사할 뿐이지 창조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거울이 자기에게 비친 모습을 지우거나 변화시키지 못하는 것처럼, 공상은 대상의 인상을 변화시키지 못하고 그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이러한 기능을 ‘기계적 형식’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러한 공상과는 달리 그가 새로이 확립하고자 하였던 인식 기능은 창조적 상상력이다. 이 기능은 “변형시키는 힘”(the modifying faculty)으로서 대상을 “용해하고 확산하고 소산시킨다.” 이러한 능력을 가진 상상력은 “살아있는 힘”(living power)이다. “나는 그러므로 상상력을 일차적인 것이 아니면 이차적인 것으로 구분하여 생각한다. 일차적 상상력은 모든 지각의 살아있는 힘이며 근본적 動因이며, 유한한 자아 속에서 되풀이되는 무한한 자아의 영원한 창조 행위이다. 이차적 상상력이란 전자의 메아리로서 의식적인 의지와 공존하나, 그 종류는 일차적 상상력과 동일하며, 다만 활동의 정도와 양식이 다를 뿐이다. 그것은 재창조하기 위해 용해하고 확산하고 소산시킨다”.24)
일차적 상상력이란 모든 사람들의 보편적 기능이다. 그에게 상상력이란 몇몇 천재들에게만 부여된 능력이 아니라, 모든 인간들의 “근본적 動因이다. 상상력은 사물의 실재와 같은 유기적 생성력을 지닌 ”살아있는 힘“이고 무의식적으로 현상계를 배태(胚胎)시킨다.(이종숭, 1987:21) 인식론의 측면에서 볼 때, 사물의 실재들을 이념의 차원에 놓고 관조하는 기능은 이성이다. 이러한 이성은 우리의 감각 위에 빛을 비추어져, 그것을 통하여 생기 넘치는 온기로서 확산된다. 쿨릿지의 상상력 이론은 형이상학적 이성관과 결합되어 있는데, 이것은 칸트와 쉘링 등의 선험적 관념론의 영향으로 보여진다.(이종숭,1987:22) 그러므로 그가 상상력 이론에 도입한 이성은 육체의 눈에 비쳐 들어오는 물질세계를 초감각적 이념에 물들여 통합하는 광채와도 같은 것이다. 일상적 세계를 뛰어넘는 초월적 세계를 표현하는 그의 상상력은 대상을 변용 시키지만 실재와 치밀한 균형을 유지한다.
그러므로 상상력은 두 종류의 내면적 의식작용 - 자연의 배우에 숨겨진 실재를 상징적으로 읽는 태도인 ‘실재적 태도’(realistic attitude)와 자연에 감정과 열망을 투입하여 그것을 재창조 해내는 심성인 ‘투사적 심성’(projective mind)25)-을 복잡하게 형성시키면서 초월적 경지로 승화되는 과정과 일치한다. 이성이 오류를 범하는 것은 경험할 수 없는 이념들의 대상을 현상계에서 찾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성은 선험적 종합을 이루기 위하여 신, 영혼, 그리고 세계를 실재하는 직관의 대상으로 착각한다.26)
3) 상상력(Imagination)과 환상(Fancy) 및 상징(Symbol)의 이론
쿨리지는 영국의 경험론으로써는 해결할 수 없었던, 이른 바 정신과 자연의 단절문제(斷絶問題)를 극복하고, 또 한편으로는 정신과는 단절되어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한에 있어서, 기계와 다름없는 자연을 유기체적 자연으로 부활시키는 문제의 논리적 귀결로서 상상력 이론을 제시했다(김병옥, 1985:340-341). Appleyard와 MacFarland에 의하면, 그는 시인으로서 체득한 想念을 바탕으로 해서 독일의 관념 철학의 도움에 힘입어서 그의 사상체계를 더욱 확고히 하였다. 이러한 이론적 기반을 갖춘 그의 상상력 이론은 Biographia Literia에서 primary imagination과 secondary imagination으로 갈라지고, 이것은 다시 fancy와 구별이 된다.(김병옥, 1985:341)
환상(Fancy)와 상상(imagination)은 상호 배타적인 것은 아니다. 일차적 상상력이 지각일반에 관여하는 능력이라고 한다면, 일차적 상상력이 투영으로서, 주체적 의지와 공존하는 이차적 상상력은 시작에 관여하는 능력이 된다. 또한 이차적 상상력과 대비되는 것이 환상(fancy)인데, 환상은 시간과 공간의 질서에서 해방된 기억의 한 형태에 불과하기 때문에, 연상능력에 지나지 않으며, 이차적 상상력에 대한 보좌적 역할을 담당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Biographia Literaria, II장 12절에서 시인의 상상력은 相反物의 균형있는 조화, 같으면서도 다른 것, 구체적이면서 일반적인 것, 이미지와 결합된 관념을 낳는 것이 되고, 개별적인 것에서 보편적인 것을 의식하고 거기에 감정이 결합된다. 그러므로 상상력은 이미지를 낳는 상상의 힘, 우리들로 하여금 이미지를 보편적인 의의가 있는 것올 보게 하는 상상의 힘, 이미지 앞에서 우리들 마음속에서 깊은 감정을 자아내게 하는 힘이다.
쿨리지의 상징의 이론은 상상력이론에서 파생한 것이다. Biographia Literia 제9장에서 “An IDEA, in the highest sense of that word, cannot be conveyed but by a symbol; and...all symbols of necessity involve an apparent contradiction." 라고 말한다. 그는 알레고리와 비교하여 상징을 설명하는데,
“Allegory is but a translation of abstract notion into a picture-language which is itself nothing but an abstraction from objects of the senses....A symbol is characterized by a translucence of the Special In the Individual or of the General in the Especial or of the Universal in the General"
라고 했다.27)
상징은 보편의 개별의 삼투, 영원이 시간속으로 삼투되는 것을 특징으로 하며, 그 상징에 의한 표상은 이해 가능한 실체의 성질을 띠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징은 상반된 성질들의 균형 있는 조화로서의 상상력의 산물이다.(김병옥, 1985:346)
b. 쿨리지의 방법론
1) 지각과 인식
그는 인간의 사유 행위를 주관에 입각해서 시작할 것인가 아니면 객관을 전제로 해서 시작할 것인가 하는 가장 기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로서, 주관이 객관에 선행되어야 함을 말하는 데, 이것이 그의 방법론의 골자이다.28) 그는 1817년에 펴낸 Biographia Literaria 12장에서 이미 “객관적인 것을 최초의 것으로 생각하게 될 때 그것과 합일하는 주관적인 것의 계기”를 설명하였고 이어 “주관적인 것을 최초의 것으로 생각했을 경우 그것과 합일하는 객관적인 것이 어떻게 계기가 되는가”29)를 상술한다. 제12장에서 “사물은 객관적인 존재가 될 수 있으나 그 자체가 유일한 지각자가 될 수 없다(A thing is that, which is capable an object of which itself is not the sole percipient.) 또는 “인식되는 모든 것은 지각자를 전제로 한다”30)라고 말한다. Coleridge의 주관 및 객관의 통합은 I AM과의 합-을 말하는 것으로 엄격하게 이것은 자의식의 확립을 전제로 한다. 이런 뜻에서 주관에 역점을 둔다고 할 수가 있다(Everything perceived supposes a perceiver)라고 주장하면서, 주관에 역점을 둔 그의 방법론은 실증주의적 과학사상에 바탕을 두었던 당시의 사고 방식보다 관념적 사유행위에 우위를 두는 것이다. 주관에 중점을 두었다는 것은 인간의 마음이 사고 행위의 기초가 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곧 마음이 생산적이고 동적인 기능을 갖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방법론을 희랍어에서 인용하여 ‘이행의 통로’(path of transit)로 보면서 “방법이란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의 점진적인 이행임을 말한다.
방법이란 낱말이 그처럼 지속적인 많은 이행과 관계가 있으므로 그것은 전개를 수반한 한 통일체(unity)의 원리를 뜻한다. 그러나 무엇을 통합한다는 것, 그래서 인간의 마음속에서 다(多)를 일(1)로 만든다는 것은 마음 자체의 노력이고 지성의 현현(顯現)이지 임의의 불확실한 정황에 의한 것은 아니다. … 만일 예술이나 과학의 모든 분야에서 이행(transit)의 각 단계로 선도해 주는 보편적인 방법을 찾아내고자 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인간지성(human intellect)의 내적 본질에서 찾아야 한다”31)
인간지성이 갖는 내적 본질은 마음이 갖는 자유의지 곧 “능동적 원리, 자아의 개성화”를 가능하게 하며, 따라서 쿨리지는 인간의 마음을 “모든 사유 행위의 근본으로 여기고 ”자연의 형상을 통해 산재되어 있는 지성의 광선(ray)이 한 곳으로 모이는 초점“이 바로 마음이라고 한다.32)
그는 대상을 관념(idea)과 법칙(law)의 관계로 파악한다. 이러한 관계는 “다(多)를 하나로 통합”시켜야할 때, 필연적으로 야기되는 주관과 객관의 관계이다. 대상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하는 그의 방법론은 주관과 객관과의 관계는 먼저 마음에서 연유되는 예상(preconception)을 전제로 한다. 그러므로 마음이 지성의 온상이고 인간을 지식의 세계로 유도하는 원천이라면, 그 마음은 바로 관념(idea)을 산출해 내는 요람이 되는 것이다. 왜냐면 무엇을 안다고 하는 것은 관념을 갖는다는 말과 같기 때문이다. 이 관념의 세계는 법칙과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다. 만상의 모태가 절대자이고 관념이 이 법칙에서 파생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쿨리지는 방법론에서 법칙(law)을 가장 중요시한다 : “I have thus assigned the first place int the science of method to law; and first of the first, to law, as the absolute kind...".33)
쿨리지는 법칙이 창조자의 속성인데 반하여 관념은 인간의 마음에 내재되어 있는 법칙이라고 본다. “관념과 법칙은 창조자와 진리, 객관과 주관으로서만 다를 뿐, 상관용어”(Treatise, p.6.)이며 “...객관에 존속하는 관념이 바로 법칙이며 마음의 주관적인 법칙이 또한 관념이다.”(Works, Shedd, I, P.219)라고 그는 쓰고 있다.
이렇듯 “법칙은 본질적으로 절대성을 띠고 있고 실재추구의 확실한 근원”34)(이후 인용은 Friend로 표기)이다. 이 법칙을 쿨리지는 “신, 지고(至高)의 예지”로 보고 또 “인간의 활동은 물론 모든 존재 자체를 이 법칙에서 파생된 것”[Treatise, p 4.]으로 본다. J. R. de Jackson도 법칙을 “신의 관념과 유리될 수 없는 우주 창조자의 속성”35)이라고 하고 “우주는 사실상 모자이크처럼 정돈되어 있다”36)고 말한다. Jackson은 쿨리지가 플라톤 이후 어거스틴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고, 그리고 인간의 지성이나 사물의 형상이 창조자인 신에게서 비롯되었음을 시사하고 있다고 언급한다. 그리고 모든 인간이 자연의 원리에 순응하도록 창조자가 우주를 맡겨 놓은 것이 아니라 우주의 질서를 변증법적 발견이나 직관에 의해서 인식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런 노력은 단순히 관념이 유희가 아니라 인간이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끊임없는 과제로 남아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37)
그런데 쿨의 방법론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이 법칙과 관념(idea)은 어떤 관계가 있는가? 관념은 “ 마음이 지니고 있는 생명 있는 법칙이다.”38) “관념과 법칙은 같은 자석에서의 주관과 객관의 극을 의미하며 마음인 주관에 내포된 관념은 자연이라는 객관 안에 있는 법칙이 되는 것이다:”[Friend, p.497]라고 쿨리지는 말한다. 결국 관념과 법칙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동질성의 것이다. 논리나 추상적 이론의 전개가 관념과 법칙의 내용을 명쾌하게 보여줄 수 없고, 오직 직관적인 또는 내면적 자기성찰을 통한 종교적 사유로써만이 관념과 법칙의 이해가 가능한 것이다.
결국 관념과 법칙은 우주에 편재해 있는 창조주의 호흡과도 같은 것이다. 그는 관념과 법칙의 상관관계를 논하면서 결국 독자들에게 현실의 세계의 파악은 현상의 관찰과 분석만으로는 불가능하며 내면 세계의 이해와 믿음이 선행될 수밖에 없음을 당시의 합리주의 사상에 매몰된 지식인들-유물론적 경험주의자들-에게 지적하고 그 사고의 방법론적 오류를 깨달아서 새로운 방향을 잡도록 권고하고 있다.
2) 자연과 상징의 개념
쿨리지는 신과 모든 창조들이 서로 반대되어 있으면서도 동질적 관계를 맺고 있다고 보았다.(이종숭,1985:35). 튜베슨(Tuvesson)은 신의 본질에는 구별되는 것이 없으며, 신 안에서는 모든 상반되어지는 것들이 융화하며, 신의 중심은 진실로 모든 곳이며, 또한 어떤 곳도 아니라고 말한다.39) 사우디(William Southey)에게 보낸 편지에서 쿨리지는 만물은 그 자신의 생명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우리 모두는 하나의 생명“이라고 말하였으며, 또 히브리 종교 시인들을 언급하면서, “히브리의 시인들에게 있어서 개개의 대상들은 그들 자신의 생명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들은 우리 모두의 생명이며, 신 안에서 그들은 움직이고 살아가며 그들의 존재를 가지게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40)
쿨리지는 인간의 가장 깊은 내면적 신비, 신을 포함한 모든 존재와 사물들의 신비를 탐구하고자 했기에 흔히 볼 수 있는 현상계 하나라도 그대로 지나쳐 버리지 않고 그 배후에 숨겨진 실재의 신비를 붙잡으려고 했다. 즉 눈에 보이는 대상들 뒤에서 빛나는 신비의 세계를 포착하려고 했다. 이러한 현상계의 배후에 숨겨진 신비를 탐색하기 위해 상상력을 최대한도로 개방하여 인간의 모든 정신을 활동시키며, 과학적인 해명이나 분석으로도 도달할 수 없는 실재의 신비까지도 재현시켰다. 그러므로 상징은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정신 세계를 새롭게 일깨워 주고, 닫혔던 마음의 문을 개방시켜 준다.
우리가 신이라고 부르는 초월적 실재, 자아의 깊은 의식, 자연과 인간의 생명력 통합, 인간 경험의 복잡성들이 이 상상력에 의해 신비스럽게 융합된다. 상징은 이러한 신비를 우리에게 보고 느끼게 하며, 그 이상으로 그 신비와 함께 살게 하는 마력을 가진다. J. R. Barth는 상징의 기능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말한다.
이것은 상징의 다양한 기능중의 하나이다. 단지 우리가 보도록 도울 뿐만 아니라, 신비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준다. 상징은 우리로 하여금 인간경험의 복잡성을 동일성 속에 유지시켜 준다. 즉 우리가 어느 정도 의미 있는 대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일종의 감정적인 단일성으로 유지시키는 것이다. 상징은 신비를 설명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신비와 함께 살 수 있도록, 그것도 아주 즐겁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41)
3) 양극의 원리 - 대립의 화합[주체와 객체의 융합(통합)]
쿨리지의 방법론에 있어서 그의 자연관을 말하려면 극(極)이론에 접하게 된다. 그는 우주의 모든 사물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고 본다. 이 균형을 사물의 무한한 변화의 결과라고 믿고 그는 명제와 대립명제를 제시하여 설명한다.(김정근, 1986:886) 명제는 사물의 극단적인 고형성(固形性)의 에네르기를 가리키며 대립명제는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에네르기로서 자기 수축에서 확산으로 향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는 이 두 종류의 에네르기의 통합으로 사물이 구성되어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예를 들어 설명한다. 즉 금속은 딱딱한 면이 있으나 부드러운 면도 갖고 있으며 또 Gas는 농도가 짙을 수도 있고 희박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통합이나 균형이라고 할 때, 쿨리지는 이와 같은 다양성의 결합내지는 혼합상태를 말한다. 어떤 물체이든 서로 대조를 이루고 극단적인 힘이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 힘은 자석의 양극처럼 서로 친화력은 물론 대립 작용을 동시에 지닌다. 명제는 흡인력과 반발력을 내포하며 대립명제는 양극으로서의 수축을 말한다.42) 여기서 주의할 것은 명제나 반명제가 서로 대립되는 극을 무시하고 존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명제와 대립명제의 관계는 헤겔의 정반합이론과는 다르다. 헤겔의 경우, 대립자 상호간의 합일은 소멸을 전제로 하나 쿨리지의 경우, 명제와 대립명제의 합일 내지 통합은 생명의 존속은 물론, 보다 더 큰 제일 생명과의 조화를 지향한다. 쿨리지의 “양극은 합일한다”라는 구절은 두 힘의 대립 또는 싸움을 통한 유기적 통일을 말한다. 이런 대립상태에서 균형이 이루어지고 있는 자연의 현상을 폭포에 빗대어 말하고 있다.
“폭포는 언제나 한결같은 외양을 하고 있어도 폭포 밑의 웅덩이 속에 서 끊임없는 변화를 일으켜 포말의 구릉을 만들어 낸다. 존재한다는 것과 행동한다는 것은 서로 별개의 것으로 이해되나 본질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정적인 것이고 행동한다는 것은 네모꼴도 되고 원도 된다. 이 네모꼴이나 원의 끝없는 결합에서, 때로는 네모꼴의 변화가 더 빈번히 일어나면 원의 변화가 적게 일어나서 재미있는 형상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43)
이렇듯 쿨리지의 극이론에서 대립되는 극이 갖는 이 에네르기는 이처럼 항상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는 힘을 말한다. 그는 자연을 에네르기가 작용하는 조직체44)로 여기는 쿨리지의 태도는 현대 물리학자들의 태도와는 판이하다. 물리학자들의 연구 대상은 단지 현상 추구에 국한되어 있으나 쿨리지는 자연현상의 이해가 소산적 자연(所産的 自然)(Natura naturata)에 있지 않고 능산적 자연(能産的 自然)(Natura naturans)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김정근, 1985:888-89) “현상의 해결은 현상에서 얻어질 수가 없다.(Barfield,1971:23)"는 것이 쿨리지의 확신이다. 이렇게 볼 때 그의 극이론도 역시 추리적 언어로써는 이해가 불가능한 것이다. 능산적 자연에 기초한 그의 극이론은 자연의 생산적 속성과 인간의 마음이 본질적으로 유리되어 있지 않고 하나라는 것을 우리에게 확신을 시켜 준다. 능산적 자연의 중심에 극의 법칙이 놓여 있다면 마음의 발의권으로서의 한 통일체인 인간은 이 극의 법칙을 구현하고 있다고 볼 수가 있다. Barfield는 쿨리지의 자연관과 생명론에 관한 언급에서 현대 철학과 과학이 ‘마음’을 철저히 배제시켜 인간과 세계를 유리시켰다는 것을 쿨리지가 비판하고 있다고 논평한다. 이것은 곧 우리 내부에 존재하고 있는 정신적 실체를 외면해 버린 당시의 그릇된 방법론에 대한 비평이기도 한 것이다.
요컨대, 철학적 방법론과 자연관과 생명관을 요약하면, 첫째로 기독교 철학의 근간인 제1원인에 근거한, 자연을 일(一)의 개념으로 본다는 것이다. 창조자와 인간은 그 속성이 같기 때문에 궁극적인 실재의 추구는 소산적 자연에 있지 않고 정신이 기능을 가능케 하는 절대자인 창조자의 지배하에 있는 능산적 자연에 있다는 것이다.
둘째로, 쿨리지의 정신적 실체인 마음, 관념 그리고 법칙 등의 개념은 실증을 거부하는 직관을 수단으로 하여 알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직관은 오직 내면적인 믿음으로써만 가능한 것이다. 사물의 판단이나 분석을 감각과 이성에만 의존했던 당시 시대 사조에 대한 쿨리지의 비판이다. 즉, 이것은 데카르트 이후의 현대철학과 과학사상에 기초한 사고방식에 대한 쿨리지의 도전이었다. 그의 방법론은 이런 점에서 현대 서구철학에서 전통으로 확립한 주관과 객관의 이원론을 일원론으로 환원하여 이성과 상상의 세계를 융합하고자 한 새로운 방향의 추구이다. 그의 일원론 주장은 가시적인 세계를 불가시적인 세계에서 이해함으로써 실재를 이해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셋째로 올바른 철학적 방법론의 이해는 추상적 진리에 근거할 수 없고 영원한 ‘I AM'가 직결된 자아의 주관적 경험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참으로 믿음의 필요에 대한 확신만이 “주관과 객관의 분리는 물론 통합”을 가능케 할 수 있다.
c. 쿨리지의 ‘상상력 이론’에 대한 종합적 평가
쿨리지의 상상력 이론은 상상력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그 이론적인 깊은 기초를 제공해준다. Biographia Literaria, II장 12절에서 시인의 상상력은 相反物의 균형있는 조화, 같으면서도 다른 것, 구체적이면서 일반적인 것, 이미지와 결합된 관념을 낳는 것이 되고, 개별적인 것에서 보편적인 것을 의식하고 거기에 감정이 결합된다. 그러므로 상상력은 이미지를 낳는 상상의 힘, 우리들로 하여금 이미지를 보편적인 의의가 있는 것올 보게 하는 상상의 힘, 이미지 앞에서 우리들 마음속에서 깊은 감정을 자아내게 하는 힘이라고 한다. 상상력은 우리에게 마음속에 어떤 이미지를 그려내게 하고, 바로 그 이미지를 보편적으로 의미 있는 것으로 보게 하며, 그 이미지의 현존 앞에 깊이 몰입하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쿨리지는 인간의 마음을 “모든 사유 행위의 근본으로 여기고 자연의 형상을 통해 산재되어 있는 지성의 광선(ray)이 한 곳으로 모이는 초점”이라고 한다.45) 이러한 초점 안에서 초월자의 현존에 몰두하여 그 존재의 신비를 경험하고 그 대상에 대한 이미지가 형성되며, 그 이미지는 정서적인 믿음의 자리로 이끌어 주는 것이다.
그는 지적인 믿음과 정서적인 믿음을 인식하고 지식의 기초가 되는 것은 지적인 믿음이기보다는 정서적인 믿음이 우선한다는 것을 말한다. 이성으로 확인 불가능한 것이 존재하는 한 정서적인 믿음이 불가피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는 정서적인 믿음만이 추상력의 바탕이 되는 오성의 힘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고 보았고 이 믿음으로 인해서 유한계의 생명이 제일 생명과의 합일을 가능케 한다고 말한다.
활력을 주는 능력으로서 모든 정신능력 속에 내재하는 상상력은 이성과 감각 그리고 오성을 결합시키어 모든 존재를 서로 긴밀한 관계를 맺고 융합 할 수 있게 하는 신비의 힘을 가졌다. 상상력은 모든 유기체들 속에 내재한 이질적인 면들의 상층을 하나의 전체적인 조화로 환원시키는 전인적인 활동이다.
쿨리지는 이러한 인간의 가장 깊은 내면적 신비, 신을 포함한 모든 존재와 사물들의 신비를 탐구하고자 했기에 흔히 볼 수 있는 현상계 하나라도 그대로 지나쳐 버리지 않고 그 배후에 숨겨진 실재의 신비를 붙잡으려고 했다. 그는 눈에 보이는 대상들 뒤에서 빛나는 신비의 세계를 포착하려고 했다. 이러한 현상계의 배후에 숨겨진 신비를 탐색하기 위해 상상력을 최대한도로 개방하여 인간의 모든 정신을 활동시키며, 과학적인 해명이나 분석으로도 도달할 수 없는 실재의 신비까지도 재현시켰다. 우리가 신이라고 부르는 초월적 실재, 자아의 깊은 의식, 자연과 인간의 생명력 통합, 인간 경험의 복잡성들이 이 상상력에 의해 신비스럽게 융합되어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상상력은 초월적 존재나 사물이 가지는 다양한 의미를 표현할 수 있게 해준다. 상상력을 통하여 나타나는 다양한 의미는 과학적이고 합리적이고 수학적이며 지시적인 의미로는 초월자와 사물의 의미의 전체성(총체성)을 표현 할 수 없는 것을 다양하게 그려 낼 수 있는데, 이것은 상상력을 통하여 사물을 기존의 획득된 한 의미를 넘어서 또 다른 의미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쿨리지의 상상력이론은 이성 중심의 계몽주의 세계에서 상상력의 언어의 중요성을 깊이 설명하고 있으며, 상상력의 언어를 통하여 계몽주의의 편협한 이성주의를 극복하려고 했다. 그는 상상력이 환상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바로 잡아주었다. 상상력은 환상이 아니며 오히려 상상력이 이성적, 수학적, 물리적, 논리적 언어로도 알 수 없는 세계를 직관하고 파악하는 경험을 제공해 줄 수 있음을 말해주었다. 이것은 곧 상상력이 지금 까지 발견된 의미뿐만 아니라, 아직 발견되지 않고 숨어서 잠재해 있는 사물의 총체적인 의미를 직관하게 해주는 것이다.
Garrett Green은 Joined Connecticut College의 종교학부(Religious Studies Department) 교수이자 학과장이다. 그의 전공은 기독교사상사, 현대종교사상, 종교적 상상력, 종교철학이다. 그는 스탠포드 대학(A.B.), 유니온신학교(M. Div.), 예일대학(Ph.D.)을 졸업했다. Green의 전문분야는 기독교 역사(whole history of Christianity)인데 주요 관심과 연구분야는 17, 18세기에서 현재까지의 종교사상이다. 이 시기는 전통적인 종교신앙과 현대세계가 만나는 곳이다. Green의 가르침은 고전적 기독교 전통과 현대세계의 만남, 특별히 “종교와 현대세계의 발흥"(Religion and the Rise of the Modern Spirit)"의 과정, 그리고 ”20세기의 하나님“(God in the 20th Century)에 대해 다양한 면(aspects)을 다룬다. 그의 가장 최근 작품인 「하나님 상상하기」(Imagining God: Theology and the Religious Imagination,1989)는 과학과 예술 그리고 종교가 진리를 발견할 때, 상상력 역할의 필요성을 탐구한 책이다.
E. 기독교적 상상력 - 개럿 그린을 중심으로
1. 상상력과 계시
a. 계시와 상상력의 관계성
하나님의 계시와 인간의 경험 사이의 접촉점을 상상력의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하나님-인간 사이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은혜의 우선성(the priority of grace)을 강조하는 동시에 하나님-인간 사이의 역할을 인간의 종교현상으로 이해하는 가운데 분석적이며 비교적인 용어로 서술할 수 있다. 인간 삶의 문제는 단순히 표면적인 것만이 아니라 심층적인 것이기에 눈에 보이는 것을 넘어서서 존재하는 것을 포착하는 것이 중요하다.1)
상상력이 지금 눈앞에 없거나 실재하지 않는 것을 머리 속에 그려보는 능력이라면, 우리는 상상력을 통하여 지금 현존하지 않는 것을 보고, 들을 수 있다. 보이는 것 가운데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며, 들리는 것 가운데 들리지 않는 것을 듣고, 어제의 사건 가운데 내일의 사건을 발견하고, 표면 가운데 이면을 찾고, 성경의 문자 안에서 하나님의 영을 소리 가운데 마음을 느끼는 훈련은 상상력의 훈련이라 생각한다.2)
신학방법론에 대한 논의 가운데 신학적인 개념의 형성에 있어서도 상상력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현대 신학자들은 신학적 작업에서 인간의 상상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성경의 계시라는 것도 실은 인간의 상상력의 산물임을 지적한다.3) 하나님에 의하여 계시가 보여질 때, 인간은 그 계시를 기록한다. 그 때에 인간은 자신이 가진 다양한 상상력을 통하여, 즉 그가 가진 언어적, 상징적 능력을 바탕으로 하는 상상력을 통하여 하나님의 계시를 표현한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이 인간의 상상력 속에다 계시를 심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그 당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언어 습관을 넘어서서 초월적 개념을 상상하여 그리게 된다. 이것을 바로 하나님은 인간이 이해하는 언어로서, 형태로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종교적 형상을 통하여 자신을 보여주시는 것이기에, 하나님은 인간의 상상력을 통하여 그 속에서 자신을 보여 주시는 것이다.
개럿 그린(Garrett Green)은, 신학의 상상적 성격을 강조하는 것은 계시의 중요성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계시의 중요성을 재인식하게 만든다고 하였다. 계몽주의 이후로 사람들은 상상력을 그저 공상과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면서 상상은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리고 많은 사상가들이 종교를 서술함에 있어서 상상력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를 주저하는 이유는 종교를 상상이라고 서술하는 것이 종교적 신념이 단지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는 것과 같은 인상을 강하게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린(Green)은 과학철학의 발견, 형태심리학의 통찰 등을 원용하여 새로운 상상력의 이해를 전개하면서 인간의 상상력이 기독교적 계시 이해에 있어서 새로운 지평을 제시해 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4) 피히테에 의하면, 인간의 정신(spirit) 그 자체를 상상력과 동일시하면서 상상력을 우리의 모든 표상의 원천으로서, 또 감각 경험을 뛰어넘는 개념의 원천으로 이해한다. “모든 실재는 단지 상상력에 의하여 만들어지고 인간 정신의 모든 작용은 상상력으로부터 나온다.”5) 상상력을 통하여 얻어지는 관점은 주관적이고 허구적인 것이 아니라 상상력의 구성적(건설적, Constructive) 측면과 통합적(receptive) 측면을 가지게 된다. 상상력은 인간 경험의 주관적인 영역에만 관계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현상의 객관적이며 사실적 탐구에 필수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b. 계시의 접촉점으로서의 상상력
접촉점이란 계시를 위한 인간학적인 만남의 점을 의미한다. 상상력은 인간이 가진 기본적인 능력의 명칭으로서 이해될 수 있는데, 그것은 사람들이 이 세계 안에서 살아가고, 행동하면서, 또 세계에 대하여 사고하면서 하는 행위들 가운데 하나이다. 이렇게 이해될 때, 상상력은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의 삶 가운데 효과적으로 되어 가는 바로 그 부분을 가려내 준다. 보다 형식적으로 표현해 보면, 상상력은 하나님의 계시를 위한 인간학적인 접촉점이다. 상상력은 계시에 대한 ‘기초’나 ‘근거’, ‘선 이해’ 또는 ‘존재론적인 바탕’이 아니다. 상상력은 단지 계시가 일어나는 자리일 뿐 아니라, 계시가 일어나는 방식이다. 중요한 것은 상상력을 통하여 인간이 무엇을 하느냐 하는 것인데, 이것은 즉 상상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는 것이다. 하나님-인간 사이의 만남의 접촉을 상상력의 용어로 서술하는 것은 신학으로 하여금 계시의 두 가지 측면을 모두 정당하게 취급하도록 돕는다. : (1)계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행위로서 인간의 능력, 속성, 필요로 환원될 수 없다. (2)계시는 또한 인간의 신앙의 행위로서 다른 형태의 인간 경험과 중요한 측면에서 비교될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증거하는 계시의 독특성은 계시를 개념적으로 고립시키고, 또 모든 비판으로부터 그것을 차단하려고 애씀을 통하여 가장 잘 보존되기보다는, 그것이 다른 현상들과 가지는 다양한 관계들을 자유롭게 탐구함으로써 가장 잘 확보된다. 사람들이 하는 행위들 가운데 하나는 상상하는 것이며, 사람들이 상상하는 여러 가지 것들 가운데 하나는 신학자들이 계시라고 부르는 것이다.
개럿 그린에 의하면, 은혜의 선험성을 거부하는 근대주의와 계시의 공통적 경험으로부터 고립된 상태로 내버려두는 신학적 실증주의 사이의 난처한 선택이 실질적인 모순이기보다는 개념적 혼동의 결과이다. 이러한 개념 혼동의 상황을 극복하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계시와 인간의 경험 사이를 연결해주는 접촉점으로서 상상력을 말할 수 있다. 이것은 곧 계시와 자연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력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다.
2. 상상력과 종교
종교의 세계는 상상적이며, 은유적인 표상으로 가득 차 있다. 오리 -토끼 그림6)tter-spacing:0.000px;text-align:justify;'>. </SPAN><SPAN STYLE='font-family:"신명 신문명조,한컴돋움";font-size:11.000pt;color:"#000000";line-height:22.000px;letter-spacing:0.000px;text-align:justify;'><A NAM><SPAN STYLE='font-family:"신명 신문명조,한컴돋움";font-size:11.000pt;color:"#000000";line-height:22.000px;letter-spacing:0.000px;text-align:justify;'><A NAM&gt;&lt;SPAN STYLE='font-family:&quot;신명 신문명조,한컴돋움&quot;;font-size:11.000pt;color:&quot;#000000&quot;;line-height:22.000px;letter-spacin
“세계가 어떤 모습인 것 같은가에 대한 믿음은 종교에 있어서 본질적인 것으로 여겨진다”.7) 종교를 패러다임적인 상상력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은 그 대상 가운데 더 이상 환원되지 않는 특권적인 알맹이 부분을 찾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대상이 전체적으로 구성되어 있는 유형을 발견하는 것이다. 각 전통의 추종자들은 궁극적으로 가장 중요한 유형을 찾는데 있어서 자신들의 표상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며, 따라서 갈등이 판별될 수 있는 그 기준도 역시 자신들의 그러한 표상 속에서 발견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종교적 상상력의 기능은 우리에게 가장 넓고, 가장 깊은 의미에서 ‘세계가 어떠한지’를 말해 주는 것이다. 보다 형식적인 용어로 말한다면, 만일 상상력이 유사성을 지각하고 대표하는 인간의 능력(곧, 패러다임적인 기능)이라면, 종교는 우주적 방향설정을 위하여 그러한 능력을 사용하며, 상상력을 매개로 하여 이 세계가 종교 신봉자들에게 알려지게 하는 가운데, 그들에게 이 세계의 궁극적 성격, 가치, 운명이 분명히 밝혀지도록 만들어 준다.
이러한 종교 이해는 종교 언어를 ‘한계언어’로 파악하는 주장 - 종교를 오직 삶의 변두리, 곧 삶의 극단적인 상황에서만 적합한 것으로 여기는-하는 이론보다 몇 가지 이점을 가진다. 곧 종교 언어가 패러다임적으로 작용하면서 삶의 유형을 정립한다면, 종교는 단지 모든 경험 또는 일부의특정한 경험과 동일시되지 않으면서도 경험의 모든 부분과 참으로 연결된다.
a. 인간의 상상력과 하나님의 형상
상상력이란 실재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실재와 허구의 다양한 형태들이 우리에게 전달되는 수단이다. 종교는 이러한 상상력의 힘을 사용함으로써, 실재의 궁극적인 ‘형태’나 구성 유형을 우리에게 전달해 주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인간 삶의 의미와 가치를 조명해 주는 것이다.
기독교의 계시는 어떤 구체적인 패러다임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실증성’을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실증성’은 ‘상상력의 자연신학’의 가능성을 배제한다. 기독교적인 내용은 우리가 상상한다는 사실(that)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상상하는 구체적 내용(What)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적인 상상은 형태와 실체를 제공함으로써 상상을 가능하게 만드는 패러다임에 의존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최초의 인간을 자신의 형상으로 창조하셨기 때문에(창1:26-27),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의 본성을 아는데 뿐 아니라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연결고리를 아는 데에 있어서도 분명히 중심적인 열쇠가 된다. 하나님의 형상 교리는 전통적으로 다음의 세 가지를 다루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인간이 창조된 것, 타락 가운데 그 형상이 상실되거나 손상된 것,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그것이 회복된 것이다. 따라서 형상(image)이란 인간 본성의 본질과 계시를 위한 접촉점을 동시에 의미한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되는 것으로 어느 정도 하나님의 형상이 파손되었는가의 문제, 그리고 모든 사람 안에서의 하나님의 형상과 그리스도안에서의 하나님의 형상의 관계의 문제 등을 제기할 수 있다.
종교적 상상력은 인간 삶의 의미의 틀을 제공하는 자신의 작업을 수행하는데 보다 넓고, 궁극적인 상상적 맥락 안에서 인간의 삶을 바라봄으로써 그러한 작업을 수행한다.
죄는 하나님을 올바로 상상할 수 없게 하는데, 사고와 행위가 더 이상 하나님께 합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죄에 의해 파손된 것은 바로 이러한 ‘형상’, 곧 하나님에 대한 이러한 유사성(likeness)이다.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행동하지 않음으로써, 인간은 하나님과의 본질적인 유사성을 지워 버리고 말았다. 그 결과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올바로 상상하는 능력의 상실로 이어지는데, 이것은 곧 자신과 하나님 사이에 더 이상 긍정적인 유비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세 신학에서는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서 창조된 인간의 본성이 어떤 의미에서 가장 완고한 죄인 안에서 그대로 남아 있다고 주장했는데, 이러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의 상상력 그 자체이다. 그러나 그것이 남아 있다면, 그것은 오직 가장 ‘형식적인’ 의미에서 남아 있는 것이며, 상상할 수 있는 능력으로서만 남아 있는 것이다. 내용적으로 볼 때, 죄인들은 하나님의 형상, 곧 자신들 안에 있는 하나님의 패러다임을 상실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해서 개혁자들은 죄인의 삶 속에 하나님과 유사성은 그 어느 것도 남아 있지 않다고 주장하였다.
인간 존재는 상상할 수 있는 형식적 능력에서 참으로 하나님과 비슷하다. 그런 하나님과는 달리 피조물에게 이러한 능력은 가까이에 있는 자료, 곧 이용 가능한 표상들에 의하여 제한된다. 이러한 자료, 곧 상상력이 상상을 전개하는 패러다임이야말로 바로 죄가 손상시켜 버린 것이다. 다시 말하면, 죄인은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반면에, 하나님을 상상할 수 있는 기초를 잃어버린 것이다.
하나님은 오직 은혜에 의하여 죄인을 구원하며, 하나님에게로 돌아가는 인간의 자연적 능력을 인정한다. 상상력의 용어로 말해보면, 인간은 상상하는 능력 가운데서, 곧 지금 없거나 실재하지 않는 것을 ‘정신의 눈’ 앞에 현존하게 만드는 능력 속에서 가장 하나님을 닮았다. 그러나 이러한 능력은 죄에 대하여 예외가 되지 않으며 죄의 영향권 아래 있다. 죄 가운데 있는 상상력은 구원의 원천이기보다는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적개심의 무기이다. 우상숭배, 이것은 피조물과 창조주를 혼동하여 손으로 만든 대상들과 하나님에 의하여 창조된 형상을 혼동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상숭배는 종교적 상상력의 오용이며 우상은 하나님에 대한 거짓된 패러다임이다.
하나님의 참된 형상은 하나님께서 은혜롭게 자신을 내어주심을 전달하는 것인 반면에, 우상은 하나님의 뜻을 인간의 통제 아래 종속시키려는 무익한 시도를 하려는 것이고, 따라서 인간의 상상력을 거짓된 모형과 헛된 추구에 예속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형상들과 은유들을 사용하여 인간의 상상력 그 자체에 대하여 사고한다. 우리는 은유와 패러다임의 중개가 없다면 인간 경험의 복잡한 측면에 대하여 사고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상상력에 관해서도 은유와 패러다임을 통하지 않고는 사고할 수 없다.8)
상상력이란 시각적인 비전의 유비에 따라 모형이 비롯되는 것으로 일종의 내적인 시각으로 여겨진다.9) 종교적 상상력은 하나님을 ‘형상화’하는 것(하나님에 대한 어떤 종류의 그림을 그려내는 것)이 아니며 단지 하나님을 상상하는 것(어떤 패러다임에 따라서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이다. 패러다임적 상상력은 하나님이 누구인가(what God is)를 (있는 그대로 정확히)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어떠한 것과 같은가(what God is like)를 우리에게 보여 준다. 우상숭배는 is(......이다)와 as (......로서)를 혼동하는 것이다.10)
상상에 대한 일차적 형상들과 상상에 대한 이차적 개념 사이의 구분은 조금 혼동스럽지만, 매우 중요한 구분인데, 이것을 그림(picture)과 형상(image)을 주의 깊게 구분함으로 명료화 할 수 있다. 그림은 그대로 재생하는 반면에 형상은 예시한다(exemplify). 형상이란 비본질적인 특성들이 삭제되고 본질적인 특성들이 강조된 그림을 의미한다. 그림은 특징들을 무차별하게 표상 하는 반면에, 형상은 선택적으로 그 특징들을 표상 한다. 형상은 그림보다 크기도 하며, 작기도 하다. 그림은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 주는 반면에, 형상은 우리에게 그 무엇이 진정으로(really) 어떤 것인가를 보여 주려고 의도한다.11)
우리가 사용하는 상상력 언어는 시각적인 모형에 의존한다. 즉 상상력의 언어는 우리가 상상하는 그 무엇의 그림을 가져다주는 패러다임에 의존하게 되는데, 그러한 그림은 그 대상의 형상으로서 가능하며, 그 가운데 상상되는 그 대상에 빛을 비춰준다. 이러한 시각적 표상(imgaery) 자체는 유비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종교적 상상력의 패러다임적인 행위와 상상력에 대하여 시각적으로 지향된 개념성을 구분해야 한다. 우상숭배는 그저 하나님 상상하기(imagining God)와 동일시되어서는 안 된다. 우상 숭배란 하나님을 시각적으로 표상 하는 것의 오류인데, 그것은 곧 하나님 그리기(picturing)이다. 여기서 제기되는 신학적인 쟁점은 하나님에 대한 형상들을 사용할 것인가 아닌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것을 사용할 것인가이다.
b. 기독교 상상력의 초점
성경을 안경으로 간주하는 칼빈의 은유로부터 시작하는 가운데, 성경의 영감은 성경이 가진 상상력의 힘, 곧 인간이 상상력을 재형성(개혁re-form)하는 능력으로 이해된다. 성경의 통일성은 그에 상응하는 방식으로 이해되기에 교리의 일치나 내용의 획일성에서 찾아지기보다는 충실한 상상을 위하여 상호연관성을 가진 전체(a coherent gestalt), 곧 규범적인 유형을 드러내 주는 정경(cannon)의 능력 속에서 찾아진다. 성경의 권위는 상상적이며(imaginative), 그리스도인의 상상력을 위하여 규범적인 패러다임(paradigm)으로서 기능하다는 논지가 펼쳐진다. 이러한 성경 이해는 고전의 개념으로서 성경을 이해하기도 하지만, 여기서 고전이란 아직 주제가 확정되지 않은 선행의 경험의 한 표현으로서 이해되기보다는 상상력과 그에 따르는 경험의 형성을 위하여 사회적으로 재가된(sanctioned) 본문의 규범으로서 이해된다.12)
3. 하나님 상상하기
신학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충실한 상상으로 보는 것에 함축된 바 해석학적인 기능(hermeneutical function)을 수행하며, 신앙공동체의 지속적인 삶과 사고방식을 위하여 성경적 패러다임을 해석해 준다. 은유에 대한 최근의 이론들을 검토함으로써, 우리는 신학적 진리 주장의 광범위한 문제들을 다루게 된다. 우리는 흔히 ‘사실(fact)'과 ’허구‘(fiction)를 이분법적으로 나누곤 하는데, 이것은 부적절한 구분으로서 허구적 이야기가 어떻게 규범적인 성경으로서 기능하는가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막는 것이다. 역사적 준거경으로서 기능하는가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막는 것이다. 역사적 준거경으로서 기능(historical reference)과 본문의 의미의 쟁점에 대한 한스 프라이(Hans Frei)의 명료한 해석에 기대는 가운데, 허구적 이야기가 어떻게 우리로 하여금 이 세계를 참으로 보도록 만들며, 그것을(칼빈의 표현에 따르면) ’하나님의 영광의 활동 무대‘(the theater for God's glory)로서 보게 만드는가를 살펴본다.
이러한 해석학적인 논의의 결과는 현대의 ’비평이후‘(post-critical) 신앙인들도 깨끗한 양심 가운데 성경을 참 성경으로 간주할 수 있고, 그 가운데 하나님과 관련하여 자기 자신과 세례를 그려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제2의 단순성(a second naivite)을 통하여 비평 이전의 전제들에 빠지지 않는 가운데 성경을 문자적으로 읽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십자가의 해석학’(hermeneutics of the cross)으로 그 결론을 내린다.13) 이것은 성경에 서술된 하나님의 독특한 본성에 기초하여 전개되는 주장으로서 하나님은 강제적 힘을 통하여 인간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타락한 인간 존재의 ‘상상력’을 사로잡음‘으로써 승리를 얻는다. 이러한 신학적 원리는 성경의 ’허구적‘ 위치가 그 속에서 계시되는 하나님의 본성에 접합한 것이라는 이라는 내용을 암시한다.
a. 은유, 상상, 그리고 신학
은유를 그저 꾸밈으로만 보는 고전적인 은유 이해를 거부하는 광범위한 합의가 최근에 언어철학자들, 문학비평가들, 그리고 신학자들의 작품 속에서 등장하였다.
고전적 전통에 따르면 은유는 미적이며 수사적인 이유로 인하여 참되며 진정한 언어 사용으로부터 이탈하는 것이며, 따라서 언어의 문자적 상응물 대신에 비유적인 언어를 대치하여 사용하는 것이다. 반면에 은유에 대한 새로운 합의에 따르면, 은유는 언어의 진정하고도 중심적인 사용으로서 이해되며, 또 보다 문자적인 다른 용어로 환원될 수 없는 것으로 이해된다. 은유에 대한 고전적인 이해가 대체적인 이해라면 새로운 합의는 실재적인(substantive) 이해라고 불릴 수 있는데, 그것은 새로운 이해가 은유적 말하기를 언어의 타당하며 중심적인 기능으로 간주하기 때문인데, 또한 비유적인 용어로는 복제될 수 없는 양식으로 무엇인가를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인정하는 까닭이다.
은유를 허구적인 말하기로 간주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오랜 전통은 은유 없이도 사물의 전 세계를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한 사물이 가지는 지배적 의미는 애초부터 획득된 것이 아니라 처음에는 은유들이었고, 은유적 구조를 형성하는 것이다.
은유적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듣는 사람을 일상적이며 상투적인 언어로부터 탈출시키어 진리를 듣게 한다. 보통의 단어들이 익숙함으로 인하여 우리의 주목을 둔화시킬 때, 은유는 색다른 단어들을 사용함으로써 우리를 깨어있게 만든다.
신앙의 언어는 메타포에 의하여 구성되며, 은유는 표현된 발견들이다. 신학의 과제는 신앙의 이러한 선행적 경험을 ‘명료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Sallie McFague는 은유를 ‘알려진 것으로부터 알려지지 않는 것으로 둘러가는 기본적인 운동’이라고 말한다.14) 그녀는 하나님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은유는 필연적임을 주장한다. 은유는 단지 그에 상응하는 문자적인 표현에 의하여 대치될 수 없다. 이러한 은유는 유비를 사용한다. 유비는 다른 용어와의 유사성의 유형을 보여줌으로써 어떤 용어의 빛을 비춰주는 것이다. 단어는 대상을 직접적으로 명명하기 위하여 사용되는 반면에, 은유의 경우에 있어서는 유비에 의존함으로써 간접적으로 대상을 지칭한다. 듣는 사람이 명시적이거나 암시적인 유비를 파악하는 정도에 따라서 이해의 정도가 결정된다. 이해의 사건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말하는 자와 듣는 자가 ‘요점을 잡거나’, 또는 ‘빛을 보아야’만 한다.
은유적 말하기는 패러다임적 상상력이라고 불리우는 능력을 필요로 한다. 은유는 말하는 사람이 어떤 주제를 유비적으로 서술하기 위하여 사용한 명시적 또는 암시적 언어 모형이다. 은유는 그 어떤 것을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데, 은유는 문자적 등가어로서 대치될 수 없다.
종교언어는 이전의 종교 경험의 표현이 아니라 특정한 종교적 패러다임에 대한 헌신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서로 다른 패러다임적 헌신을 하는 사람들은 그 특질상 서로 다른 경험들을 가지게 된다. 따라서 신학에 있어서 주어지 것은 기초주의적 경험이 아니라 종교적 패러다임인데, 그것은 “세계가 어떤 모습인가?”를 나타내는 규범적 모형이며, 그것은 성경의 정경 속에 구현되어 있고, 종교공동체의 삶 속에서 표현되어 있다. 기독교인들이 인식하는 방법은 그들의 언어 ‘뒤에’ 놓여 있는 경험들을 찾아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계 속에서 그들이 스스로를 어떻게 상상하는가를 관찰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경험은 종교적 상상의 근거이기보다는 종교적 상상의 산물이다. 은유는 언제나 ‘상상적’ 언어로 이해되어 왔는데, 그것은 은유가 말하는 사람들의 배후에 있는 패러다임적 헌신으로부터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은유는 말하는 사람의 종교를 아는 데에 있어서 중요한 실마리이다.
요컨대, 종교가 상상적이기 때문에, 종교 언어는 은유적이며, 신학의 언어는 해석적이다.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에 구현되어 있는, “세계가 어떤 모습인가?”에 대한 종교적 비전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인간의 삶과 사고를 규정하는 패러다임적 규정이다. 따라서 기독교 신앙은 그 특징에 있어서 충실한 상상으로 규정될 수 있는데, 그것은 곧 성경 안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제사된 비전에 따라서 사는 것을 뜻한다. 신학은 그러한 충실한 삶의 한 기능으로서, 비판적 해석의 과제를 수행하는 것이다.
참으로 비판적인 신학은 공동체의 비전에 따르는 삶을 살기를 추구하는 공동체를 위하여 성경의 상상적 언어를 해석하는 과제를 수행한다. 그러므로 신학은 역사적으로, 또 문화적으로 인간적 맥락 안에서, 또 그 맥락을 위하여 말하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에 의하여 주어지 형상들을 통하여 계시한다. 성경적 형상들의 외적인 모양이 하나님의 말씀에 유사는 것은 충실한 상상력이 성경적 형상들에 내적으로 일치하는 것이다.
이러한 형상과 상상 사이의 일치(계시적인 접촉점)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주도에 의존하는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상이라는 전적으로 인간적인 형태 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오직 신앙 속에서만 상상은 하나님과 일치하며, 따라서 상상의 유비는 신앙의 유비가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접촉점은 충실한 상상력, 곧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서 상상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으로 서술될 수 있다. 성경의 영감은 성경의 상상적 힘으로 이해될 때 가장 적합하게 이해될 수 있다. 여기서 상상적 힘이란 인간의 상상을 재형성하고 변혁하는 능력으로서 신약성경이 성령의 사역이라고 부르는 ‘하나님의 비밀스런 행위’에 근거하는 것이다.
b. 사실, 허구, 그리고 성경적 진리
신학의 과제는 종교적 삶과 신앙의 은유적 언어를 해석하는 것인데, 그러한 은유적 언어는 성경, 곧 기독교 신앙의 고전적 또는 패러다임적 본문 안에서 그 뿌리를 가지고 있다. 어떤 본문을 어떤 것으로 보는 것은 하나의 능력인데, 이러한 능력은 패러다임적 상상력이며, 이것은 유비적 능력, 곧 어떤 것을 다른 것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것이라는 표시로서 자신의 형상을 찍어누른 곳은 ‘ 인간 가운데’ 이다. 이러한 각인 또는 찍어누름의 표상은 상상력을 하나님과 인간의 접촉점으로 기술하는 은유를 제시한다. 죄로 인하여 손상된, 인간이 가진 하나님과의 유사성은 그리스도의 인간성 속에서 새롭게 ‘주조되었다’. 신약성경에 따르면,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통하여 하나님의 형상, 곧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화상은 신앙인들의 상상력 속에 각인되었고, 그들을 하나님과 일치하도록 만든다. 그러므로 충실한 상상력은 ‘그리스도 형태적’이 되고, 하나님 형태적(gottforming)이 되어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새롭게 창조된 유비를 구성한다.
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만드신 각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상상력에 호소함으로써 그러한 각인을 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구현된 자신의 형상을 최초로 증인들에게 각인(in-press)하셨고, 그들은 다시 그러한 형상을 어떤 원문들(text)속에 표현(ex-press)하였다. 따라서 성경은 다시 한 번 그 형태를 현대의 청취자인 우리에게 각인하여 하나님의 형상으로 우리를 재형성하는 것이다.
계시는 최초의 증인들의 상상력의 영감을 기술하는 전문용어이다. 성경의 증인들은 자신들에게 계시된 내용들을 기록해 둔 원전의 영감을 묘사한다. 마지막으로, 신학은 성경의 해석을 통해 계시에 대한 비판적인 해석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이러한 세 가지에 있어서, 상상력은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계시는 상상력의 행위이고, 성경은 상상력의 작품이며, 신학은 상상력의 해석이다. 성경의 기록자들은 위로부터 내려온 계시에 대한 내용을 자신의 경험의 언어로(상상력의 언어) 표현하는 것이다.
성경의 영감은 올바른 상상력의 문제이다. 성경을 성경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것이 사용자로 하여금 하나님과 세계를 올바로 상상할 수 있도록 돕는다.
c. 신앙주의와 충실한 상상
상상하는 것은 구성 요소들을 의미 있는 전체 속에 위치시키는 것이며, 어떤 특정한 전체의 형태에 따라서 생각하는 것이다. 직접 볼 수 없는 그 물체의 뒷면에 있는 것에 대해서 ‘불가지론적인’ 입장을 취하지 않고 그 물체를 전체로서 보는데, 즉 숨겨진 측면들도 포함하여 보는 것이다.
신앙인의 충실한 상상력은 그 자체가 성경본문들의 상상력에 의하여 형성되도록 허용되는 것이다. ‘신앙’은 기독교 교리에 있어서 ‘패러다임적 상상력’이라는 철학적 개념에 가까운 개념이다. 인식자인 인간과 인식대상인 실재 사이의 접촉점을 지시하고 있다. 인간의 상상이라는 것은 신앙의 충실한 상상의 형태로 나타난다.15)
상상의 형태로서의 신앙은 직접적인 지식은 아니다. 하나님을 올바로 상상한다는 것은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하나님을 보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직접적으로 바로 볼 수 있는 것을 우리가 상상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상력은 신앙의 기관이며, 신앙의 근거, 목표 또는 완성이 아니다. 단지 상상력은 최종적인 구속이 아직 희망의 대상으로 남아 있는 세계 속에서 궁극 이전에 위치한 은혜의 수단이다.16)
하나님께서는 상상 가운데 우리를 만나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 죽음, 부활에 대한 회상뿐만 아니라, 영광 가운데 있을 그의 미래의 재림에 대한 기대를 상상한다. 계시의 접촉점은 충실한 상상력이며, 직접적인 비전의 부재 가운데서도 성경의 형상들에 대한 신뢰이다. 충실한 상상은 하나님의 형상이 ‘희미하게’ 반영되는 거울이다.17)
d. 상상력의 이론과 실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접촉점을 상상력으로 규정하면서 해석하는 것은 실천신학에도 그 함축하는 바가 있다. 선포에 있어서 성경의 표상들(images)을 통하여 듣는 자의 상상력에 호소하는 것으로 규정될 수 있다. 설교자가 자신의 상상력을 활용함으로써 그러한 만남을 중재하고 촉진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성경 본문의 표상(imagery)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 성경적 표상이 회중에게 분명히 보여지고 들려질 수 있도록 성경 표상을 명료하고 힘있게 제시할 수 있다.
충실한 상상은 성경의 다선적 운율 가운데 계시의 선율을 듣는 법을 배우게 한다. 말씀의 선포는 다른 사람들도 또한 그 선율을 듣고 즐기며 노래 가운데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성경의 선율을 노래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18)
신학적 상상력의 실천적 결과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전인격과 어떻게 만나며, 전인격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를 보여준다. 하나님은 인간의 지성, 감성, 또는 양심을 각각 따로 다루지 않는다. 따라서 다양한 기능들을 서로 연관시킨다. 상상력이란 어떤 특정한 기능이라기보다는 다양한 인간의 능력과 잠재력을 인간의 경험 속에서 통합한 것이다. 의미의 유형들을 외적으로 파악하는데 작용하는 상상력의 통합적 기능은 또한 상상하는 주체로 하여금 총체적인 응답을 하도록 인도한다.
마리아 해리스(Maria Harris)는 미국의 기독교교육학자로서 상상력의 이론을 현장에서 검증해 온 현장 교육가로, 자신이 쓴 『가르침과 종교적 상상력』 (Teaching and Religious Imagination)에서 가르치는 내용과 방식이 일치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상상력을 십분 활용한 신앙 교육을 전개해 나갔다. 그는 상상력을, 사람 속에 있는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믿음, 두려움과 구속 없이 그 가능성을 실현하는 자유에 대한 존경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상상력이 풍부한 사회는 정의와 개인의 자유가 실현되는 사회를 꿈꾸며, 상상력이 풍부한 교실은 학습자와 교사가 서로 상대방의 인격과 삶, 그 속에 존재하는 가능성을 존중하게 된다고 하였다.
III. 마리아 해리스의 종교교수 방법
본 장에서는 지금까지 논해왔던 상상력의 개념과 상상력과 연관된 교육 신학적 요소(명제)들을 기초해서 상상력을 통한 교수과정 이론을 정리하고, 다음으로 교수방법을 다루게 될 것이다.
A. 마리아 해리스의 교수 과정이론
마리아 해리스는 종교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하여 이것에서 좀 더 파생하고, 더 깊이 있는 , 그리고 보다 더 효과적인 교수의 가르침의 내용과 방법 전개를 위해 다섯 가지 요소들을 패러다임으로서 제시한다.
해리스는 이것들을 가르침을 위한 다섯 순간들, 혹은 가르침을 위한 다섯 단계라고 지칭하고 있다. 종교적 가르침을 위한 다섯 가지 요소란 곧 관상(Contemplation/명상), 참여(Engagement/연합), 형상 만들기(Form-giving/형상제시), 출현(Emergence), 방출(Release/표출)을 말한다.(Maria Harris, 1987:25-40)
1. 관상(명상)
관상은 거기에 무엇이 있는가를 보는 것으로서 시작한다. 그것은 우리의 자료(material)가 준비되어 있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아직 현재에 있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그 순간에 우리는 “너”(Thou/당신, 대상)로써 가르치는 것을 보도록 물어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관상은 침묵과 존중과 존경의 태도를 가지고 임하는 것이다.
관상에서 본질적인 것은 “우리가 보는 것이 얻는 것이다” 예컨대, 현 실정에서 가난을 보는 것은 미래를 향한 희망적 가능성을 얻게 한다. 학생들에게 있어서 첫 발견은 가르침에 있어서 본질적인 것이다. 교사는 현재 안에서 그 자체를 발견하며, 그 다음 그것에 대해 대처하도록 하며, 교사의 현재 속으로 오는 다른 인간의 존재들이 배우도록, 알도록, 교수되어지도록 한다.
교수-학습에서 학생들이 “너”(Thou)로써 교사를 보는 것은 관상적인 순간의 상징화를 포함한다. 학생을 학생으로서 보기 이전에 교사 역시 “너”로 볼 것이다. 이러한 것은 다 희망적인 것인데, 부가적인 희망은 배우고 공부하는 다 같은 동반자로서의 공동체를 창조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관상의 목적은 사람들의 하나의 공동체가 각자 근본적인 특이성과 유일성을 지니고 다같이 하나의 희망의 공동체로서 역할하도록 또 그렇게 하는 가르침을 보이는 것이다. 가르침(교수)의 첫 순간은 (관상/명상) 멈추는 것이고(조용히 있음), 시간을 요하는 것(시간이 걸림)이며, 완전히 깨어 있음이다. 가르침의 요소는 교사(첫 번째 동반자)와 학생(두 번째 동반자) 그리고 주제(세 번째 동반자)이다. 이들은 주제의 현재 속에 다함께 개입된다. 그룹 토의에 있어서 주제는 고정적인 듯하며, 가끔 우둔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진리를 나르며(bear), 교수를 통하여 그 주제의 필요성을 예증하도록 할 수 있다. 주제 없는 가르침은 붕괴되어진다. 그러나 관상은 이러한 주제 없이도 가르침을 가져올 수 있다. 오히려 관상은 우리에게 주제의 동반자가 될 수 있는 “너”(Thou)로써 우리의 주제(Thou)로 다가오며 그것을 깨닫도록 돕는다.
관상 속에서 깨닫는다는 것은 해석하는 것이며, 분석하는 것이고, 해설(설명)하는 것이다. 이것은 학습자에게 여지(space)를 주는 것이며, 주제에 익숙하도록 하고, 그러므로 그들 역시 초기의 관상 속에서 참여(관계)할 수 있다. 시작에 있어서 -모든 가르치는 사건에 대한 하나의 방법은 처음에 관상으로써 그것을 보는 것이다- 우리는 먼저 보통 아는 것이 한 순간 동안 흐르는 곳에서 잘 받아들이는 순간을 찾는 것이다. 그리고 알지 못하는 것으로 들어간다. 그 다음에 침묵적으로 가능한 만남이 일어나도록 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한 장면이 아주 빨리 지나 다른 장면을 덮음으로 끝날 수도 있다.
교수 행위는 가르침이 일어나는 장소적 환경이나 상황, 분위기적 환경에 대한 관상을 요구한다. 이것은 네 번째 동반자일 수 있는데, 이는 물리적, 신체적 환경과 현세의 요소들, 즉 의자나 책상, 카페트, 온도, 시간 뿐만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환경도 마찬가지로 모두 포함된다.
경험된 교사들이 관상에 관한 이러한 양상을 확실히 하기 위하여 병합하는 책략은 사람들이 다같이 들어가고 들어가게 될 장소를 마음의 눈 속에 예견하고, 상상하며, 보는 것이다. 가르침에 있어서 이러한 필수적인 동반자는 활동과 쫓아 행동하는 것, 함께 행동하는 것, 그리고 때때로 그것에 맞서 행동하는 것 등이다. 다른 말로 분위기적 환경은 깨달을 만 하며, 묵상할 만 하며, 주의를 가질 만 하며, 존중할 만 하다.
2. 참여(연합)
교사는 이제 가르침 안에 근본적으로 다른 성분들(또는 요소들)울 모아야 한다. 그리고 재창조를 향하여 그것들을 녹여 융합(catalyze)해야 한다. 참여(연합)는 그 자체로 들어가는 것(drive-in), 맞붙는 것, 주제 속에서 돌고 도는 것을 의미한다. 참여는 어떤 잡을 수 있는 것을 향하도록 하는 관상적 상상력을 가져오며, 창조적 상상력의 활동을 만든다. 마치 조각가들이 느끼고, 만지고, 시험하고, 그것에 관하여 배우고(익히고), 관상함으로 진흙을 결합하여 그들의 얻고자 하는 바를 얻듯이, 교사들도 역시 보다 더 상호 작용적으로, 상호 변화적으로, 장황한 주제를 함께 하는 활동적인 역할을 위해 그저 응시된 것, 알려진 것을 넘어 참여(연합)를 추구해야 한다.
그런데 진정한 참여가 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진지하게 주제에 관한 본질과 의미하는 바를 알아야 한다. 만약에 그렇지 않으면, 수박 겉핥기 식으로 되기 쉬울 것이다. 교사는 주제를 가장 깊고 가장 심오하게 결합하고자 하는 동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정말로 주제를 사랑해야 한다. 만약에 주제가 의미의 세계, 자연의 질서, 물리적 과정, 사건들의 형태, 실제의 미로, 생각해야 할 점을 위한 실마리들의 조직을 향한 계획으로써 인정되어지고, 보여진다면, 그때 주제에 대한 의미의 풍부함이 나타난다. 이러한 풍부함은 우리 자신의 창조에 관한 두려움을 줄이도록 돕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것의 특징, 불가침, 그리고 능란한 힘이 주제를 허락하기 때문이다. 교사로서 우리 자신의 창조성은 창조성뿐만 아니라 조작하는 것(operating)이다. 그러나 창조적 역동성은 마찬가지로 주제 속에 존재한다.
우리 자신이 주제가 되어 참여한다는 것은 주제들이 되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참여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는 역시 어떻게 관상적인 순간이 참여의 순간 속으로 병합이 되어지는가를 볼 수 있다. 주제가 되는 우리는 세계와 함께 연합하도록 우리에게 요구할 뿐만 아니라 어떻게 우리가 세계를 바라보는가를 되물어 보도록 요구한다. 참여의 주제들, 그리고 그 주제와 함께 참여하는 것은 마찬가지로 관상적인 주제들이다.
3. 형상 만들기(형상제시)
상상력은 형상을 만드는 것을 가능케 하며, 형상을 만드는 방법 속에서, 만약 형상을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고 상상한다면, 또 만약, 형상을 만드는 것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상상하도록 한다면 그 상상력을 통한 교수는 충분히 이뤄지는 것이다. 우리가 만드는 형상이라는 것은 어두움과 보이지 않는 속에서 부단히 노력하는 가운데 그리고 끊임없는 느낌 가운데서 되어지는 것이며, 단순한 사고들로 끝마쳐지는 것이 아니고, 오직 사고와 실재와 만드는 것 속에서, 주는 것 속에서, 삶이 경험 속에서 되어지는 것이다. 오직 그 형상(forms)을 보고 우리가 포착한 차원들과 그리고 안정적인 틀과 정의 한 범주들과, 우리의 짧은 경험으로부터 전망들이 주어질 수 있는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형상들은 우리의 아이디어들이나 우리의 개념들, 우리의 배움(학습)이 아니다. 그 대신에 형상들은 오히려 그러한 아이디어들의 배경이 되며, 학습의 뿌리가 되고, 우리의 삶, 사랑, 정체성, 죽음, 긴장, 운명, 용기, 희망의 초석이 되는 것이다.(Maria Harris, 1991:35)
종교적 상상력의 활동으로써 가르침의 형상 만들기 단계는 그 내용과 주제를 형성하도록 하는 창조적 상상력의 단계이다. 그리고 형상 만들기는 교사와 학생, 주제를 서로 함께 놓기 위해 시도한 방법이다. 새로운 형상은 존재 속으로 들어가는데, 그 이유는 우리가 예술가들이 되고, 창조자들이 되며, 교사들이 되는 모험을 취하기 때문이다.(1991:35-36)
다음은 형상 만들기(형상제시)에 있어서 가르침의 과정에 있어서 네 번째 단계(순간)인 출현(Emergence)에 대해 살펴본다.
4. 출현(Emergeance)
출현은 깨달음의 순간을 의미한다. 무언가 새롭게 태어나는 가르침의 과정 속에서 학습자가 어떤 것을 습득하는 순간이 바로 출현의 순간이다. 출현은 “내가 무언가를 이해했다는 것으로 특징지어 나타난다. 이러한 이해의 순간은 모든 가르침의 행위 가 그 가르침의 완성을 향해 작용하고 있다. 뭔가 새로운 것이 일어나기 시작할 때 그것은 이전의 일어난 무언가와 연관이 되며, 학습자에게는 이러한 상황 안에서 그 자신이 새롭게 재형성되어지고, 학습자의 생의 미래를 위해 재창조되어져 왔다. 출현은 새로운 삶으로 이끌어 주는 선구자와도 같다. 출현의 순간은 시간, 학기나 어떤 기간, 시험, 그리고 압박에 의하여 강제적으로 계획된 시간 안에서는 일어나지 않고 그 어떤 순간에 고요한 가운데 일어나는데, 이것은 마치 사람이 자라나는 나무의 뿌리를 보려고 나무를 뽑는 것과 같은 열정적인 행함 속에서 일어난다. 너무 지나친 압박이나 빨리빨리 하라는 요구는 자연의 법칙, 곧 영원한 리듬(eternal rhythem)을 가치고 있는 가르침의 법칙을 깨뜨리는 것이다. 출현은 새로운 삶으로 태어나게 도와주는 교사를 생각나게 하는데, 슬픔과 어두움 속에 지내며, 비탄과 죽음 같은 삶을 살고 있다면, 가르침의 과정 속에서 마지막 순간 새로운 삶으로 일어서게 하는 것이다.(Maria Harris, 1991:37-38)
5. 방출(release)
방출(표출)은 사람이 더 이상 행할 수 없는 것이나 무엇이나 가치 있는 것을 위해, 그리고 세계 속의 새로운 존재를 위해 표명하는 것이다. 교사에게 요구된 이 마지막 움직임 또는 순간 또는 단계는 움직임의 중지나 또는 평안한 상태의 휴식, 빈 마음과 같은 공허(비하)이다.(Maria Harris:1991:38)
때때로 인간의 고통과 슬픔, 괴로움과 고독, 고생, 애씀 등등에 방출의 순간(단계)은 필수적인 것이다. 사실 방출은 겸허를 배우기 위한 좋은 시간이다. 그 예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자기 비하로 알려진 겸손에서 볼 수 있다. 방출은 평안의 휴식의 순간이요, 공(emptiness)의 순간이며, 침묵의 순간이다. 평온한 방출 안에서 교사는 평안하지 못한 인간 주체들의 고뇌를 들을 수 있다.
이상의 다섯 가지 패러다임이 상상력을 통한 기독교 종교교수과정의 필수적인 이론이라 할 수 있다면 다음에 언급되는 교육적 요소들과 예술적 요소들은 상상력은 통한 기독교 종교교수 방법을 위한 전제들로서 실제에 있어서 보다 더 상상력적 교수방법을 도모할 수 있는 중요한 것들이라 할 수 있다.
B. 마리아 해리스의 교수방법
1. 교수방법을 위한 전제들
a. 심미적 요소들
상상력을 통한 교수는 “심미적”(aesthetic)이어야 한다. 여기서 심미적“이라는 말은 상상력을 통한 교수를 위한 단어로서 그 본질을 붙잡을 수 있고 소형화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목표들, 목적들, 객체(대상)들, 나타나는 것을 보기 위해 기다리는 분위기의 심미적 번영에로 적응시키는 존재이다. 이러한 심미적 요소들로는 언어의 함의적, 초월적 묘사와 교수환경, 교수자료, 정서와 경험을 결합하는 것에서 볼 수 있다.
1) 언 어
가르치는 언어의 감각적 경험은 중요하다. 감촉할 수 있는 경험을 통하여 자료들을 결합할 수 있다. 이러한 경험가운데, 시각적인 경험은, 어떤 사람이 어떤 문제를 풀려고 할 때 먼저 시각적인 상징들을 창조함으로서 일어난다. 그런데 전진하는 시각적 상징들에 관한 창조는 어떤 점들을 향해 진행하는 동안 어의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경험한 것과 만나고 있는 것(계시) 사이를 연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때 의미는 상황 속에서 발견되어지고 계시되어진 것이 된다. 여기서 의미하는 것은 끝점이자 시작점이다. 계시라는 어의가 초월적으로 높이 날아오른다 할지라도, 의미에 도달하고 언 어안에 접촉할 때, 이 계시는 단어를 가리키며 그것의 목적, 역할이 나타나게 된다.(Maria Harris, 1991:130-31)
b. 정서와 경험의 결합
보다 활동적인 상상력이 되게 하려면 가능성과 가능한 세계에 대한 사고를 부지런히 하고 늘 새로운 감정적 착색을 취하며, 새로운 자신을 끊임없이 발견하는데 있다. 인간이 배우는 것은 단순히 마음 밖에 있는 그 무엇이 아니라 결정적으로 구조화와 구성하는 것을 포함한다. 무엇보다도 효과적인 상상력을 취하기 위해서는 친밀한 즐거움과 기쁨이 일어나야 한다. 정서와 경험의 결합은 가르침이 심미적인 것으로 이끌어 준다. 경험 속에서 정서는 예술적 차원과 함께 결합된다.(Maria Harris, 1991:136-39)
2. 예술적 요소
심미적 요소들은 역시 예술적 요소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예술적 요소들은 교수방법을 위한 전제적인 것으로서, 이것은 신학과 연관하여 종교, 상상력, 교수활동을 어떻게 모을 수 있는가에 대하여 관심을 가진다.
예술적이고 심미적인 상상력은 종교와 교육의 차원이다. 예술은 인간이 감정을 표현하여 나타냄으로 지각할 수 있게 하는 하나의 형식적 창조이다. 창조와 감정을 묶는 것으로서 종교는 사람들에게 신적인 것과 그들의 관계를 표현하려는 데에 형식을 주는 문화적 수단이다.
C. 상상력으로 초대하는 교수모델
1. 관심 기울이기
관심기울이기에 대한 교수 행위의 시작점은 영적인 것들에 관한 것이다. 관심기울이기는 존재로서 타자를 향한 하나의 태도나, 방법, 존중과, 존경의 편을 든 하나의 결정이다. 관심기울이기를 위한 가장 실제적인 절차는 영성, 즉 묵상, 기도, 침묵이다. 교사와 학생이 조용한 가운데 주제의 수용과 자각 안에서 가끔 10-15분을 보낸다. 그리고 나서 학생들에게 당신이 영혼 속에 깊숙이 앉아보라고 요구한다. 이때 당신의 영혼 속에 깊숙이 앉는 다는 것은 당신의 몸 속에 깊숙이 앉는 것이다. 놀랍게도 이것은 우리가 조용히 앉아서 고요함과 개방성을 접촉하고, 느끼고, 냄새 맡도록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순간들은 어떤 주제에 가까이 다가가는 하나의 수용성을 창조한다.(Maria Harris, 1991:159-60)
2. 단계들 취하기
교사는 유희로서의 상상력을 수용하여 관상, 참여, 형상 만들기, 출현, 방출 등의 유희 은유(dance metaphor)를 수용한다. 이러한 과정은 리듬적인 순환으로써 일어나야 한다. 이러한 단계들을 취하는 훈련을 제시하는데 여기서는 이야기와 의식의 리듬들을 단계화하기만을 소개한다.
a. 이야기와 의식의 리듬들을 단계화 하기
교수에 관한 리듬의 단계들은 지, 정, 의 방법에 의해 무슨 주제에나 적용될 수 있다. 우리는 관상, 결합(참여), 형상 만들기(형상부여), 출현, 방출을 통하여 자극하는 일련의 질문들을 만들 수 있다.(Maria Harris, 1991:165)
- 당신이 주요한 특징들(성격들)을 관상한 대로, 무엇이 제일 먼저 마음에 오며, 누가 제일 먼저 마음에 오는가?
- 거기에 나타난 특질들과 함께 당신을 가장 잘 참여케 하는 것을 무엇입니까?
- 어떤 특징에 형상을 만들려고(형상을 부여하려고) 한 것이 무엇인가?
- 어떤 장면 속에서, 당신에게 아주 잘 이해하도록 나타난(Emergence) 특징들은 무엇인가?
- 자신에게 일어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상에서 마리아 해리스의 기독교 종교 교수의 이론적 기초가 된 상상력이 촉발되는 교수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마리아 해리스는 쿨리지의 문학적 상상력 이해를 기반으로 하여 이것에서 좀 더 파생하고, 더 깊이 있는, 그리고 보다 더 효과적인 교수의 가르침의 내용과 방법 전개를 위해 다섯 가지 요소들을 패러다임으로서 제시했다. 해리스는 이것들을 가르침을 위한 다섯 순간들, 혹은 가르침을 위한 다섯 단계라고 지칭하고 있다. 종교적 가르침을 위한 다섯 가지 요소란 곧 관상(Contemplation/명상), 참여(Engagement/연합), 형상 만들기(Form-giving/형상제시), 출현(Emergence), 방출(Release/표출)이다.
관상은 거기에 무엇이 있는가를 보는 것으로서 시작한다. 관상은 자료(material)가 준비되어 있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있는 그 곳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이러한 순간에 우리는 “너”(Thou/당신, 대상)로써 가르치는 것을 보도록 물어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관상은 침묵과 존중과 존경의 태도를 가지고 임하는 것이다.
가르침(교수)의 첫 순간은 관상(명상)이며, 이것은 모든 다른 것으로부터 멈추는 것(조용히 있음)을 의미하며, 이러한 순간은 시간을 요하는 것으로서 이 순간은 완전히 깨어 있는 상태이다. 관상 속에서 깨닫는다는 것은 해석하는 것이며, 분석하는 것이고, 해설(설명)하는 것이다.
참여(연합)는 그 자체로 들어가는 것(drive-in), 맞붙는 것, 주제 속에서 돌고 도는 것을 의미한다. 참여는 어떤 잡을 수 있는 것을 향하도록 하는 관상적 상상력을 가져오며, 창조적 상상력의 활동을 만든다. 마치 조각가들이 느끼고, 만지고, 시험하고, 그것에 관하여 배우고(익히고), 관상함으로 진흙을 결합하여 그들의 얻고자 하는 바를 얻듯이, 교사들도 역시 보다 더 상호 작용적으로, 상호 변화적으로, 장황한 주제를 함께 하는 활동적인 역할을 위해 그저 응시된 것, 알려진 것을 넘어 참여(연합)를 추구해야 한다.
그런데 진정한 참여가 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진지하게 주제에 관한 본질과 의미하는 바를 알아야 한다. 만약에 그렇지 않으면, 수박 겉핥기 식으로 되기 쉬울 것이다. 교사는 주제를 가장 깊고 가장 심오하게 결합하고자 하는 동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정말로 주제를 사랑해야 한다. 이것은 교사로서 자신의 창조성뿐만 아니라 조작하는 것(operating)이다. 그러나 창조적 역동성은 마찬가지로 주제 속에 존재한다.
우리가 주제로써 참여하는 것은 주제들로써 인간의 존재들과 함께 참여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우리는 역시 어떻게 관상적인 순간이 참여의 순간 속으로 병합이 되어지는가를 볼 수 있다. 그곳에서 주제들에 대한 우리의 존재론적 사명은 세계와 함께 연합하도록 우리에게 요구할 뿐만 아니라 어떻게 우리가 세계를 바라보는가를 되돌아보게 한다. 참여의 주제들 그리고 그 주제와 함께 참여하는 것은 마찬가지로 관상적인 주제들이다.
상상력은 형상을 만드는 것을 가능케 한다. 형상을 만드는 작업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상상하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가 만드는 형상은 어두움과 보이지 않는 속에서 부단히 노력하는 가운데 그리고 끊임없는 느낌 가운데서 되어지는 것이며, 단순한 사고들로 끝마쳐지는 것이 아니고, 오직 사고와 실재와 만드는 것 속에서, 주는 것 속에서, 삶의 경험 속에서 되어지는 것이다.(Maria Harris, 1991:35)
종교적 상상력의 활동으로써 가르침의 형상 만들기 단계는 그 내용과 주제를 형성하도록 하는 창조적 상상력의 단계이다. 그리고 형상 만들기는 교사와 학생, 주제를 서로 함께 놓기 위해 시도한 방법이다. 새로운 형상은 존재 속으로 들어가는데, 그 이유는 우리가 예술가들이 되고, 창조자들이 되며, 교사들이 되는 모험을 취하기 때문이다.(Harris, 1991:35-36)
출현은 깨달음의 순간을 의미한다. 무언가 새롭게 태어나는 가르침의 과정 속에서 학습자가 어떤 것을 습득하는 순간이 바로 출현의 순간이다. 출현은 “내가 무언가를 이해했다"는 것으로 특징지어 나타난다. 이러한 이해의 순간은 모든 가르침의 행위가 그 가르침의 완성을 향해 작용하고 있다. 뭔가 새로운 것이 일어나기 시작할 때 그것은 이전의 일어난 무언가와 연관이 되며, 학습자에게는 이러한 상황 안에서 그 자신이 새롭게 재형성되어지고, 학습자의 생의 미래를 위해 재창조되어져 왔다. 출현은 새로운 삶으로 이끌어 주는 선구자와도 같다. 출현의 순간은 시간, 학기나 어떤 기간, 시험, 그리고 압박에 의하여 강제적으로 계획된 시간 안에서는 일어나지 않고 그 어떤 순간의 고요한 가운데 일어나는데, 이것은 마치 사람이 자라나는 나무의 뿌리를 보려고 나무를 뽑는 것과 같은 열정적인 행함 속에서 일어난다. 너무 지나친 압박이나 빨리빨리 하라는 요구는 자연의 법칙, 곧 영원한 리듬(eternal rhythm)을 가르치고 있는 가르침의 법칙을 깨뜨리는 것이다. 출현은 새로운 삶으로 태어나게 도와주는 교사를 생각나게 하는데, 슬픔과 어두움 속에 지내며, 비탄과 죽음 같은 삶을 살고 있다면, 가르침의 과정 속에서 마지막 순간 새로운 삶으로 일어서게 하는 것이다.(Maria Harris, 1991:37-38)
방출(표출)은 사람이 더 이상 행할 수 없는 것이나 무엇이나 가치 있는 것을 위해, 그리고 세계 속의 새로운 존재를 위해 표명하는 것이다. 교사에게 요구된 이 마지막 움직임 또는 순간 또는 단계는 움직임의 중지나 또는 평안한 상태의 휴식, 빈 마음과 같은 공허(비하)이다(Maria Harris, 1991:38) 때때로 인간의 고통과 슬픔, 괴로움과 고독, 고생, 애씀 등등에 방출의 순간(단계)은 필수적인 것이다. 사실 방출은 겸허를 배우기 위한 좋은 시간이다. 그 예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자기 비하로 알려진 겸손에서 볼 수 있다. 방출은 평안의 휴식의 순간이요, 공(emptiness)의 순간이며, 침묵의 순간이다. 평온한 방출 안에서 교사는 평안하지 못한 인간 주체들의 고뇌를 들을 수 있다. 마리아 해리스가 제시한 종교적 가르침을 위한 다섯 가지 요소는 자연계시 묵상하는 과정에서 도움을 줄 것이다.
다음 장에서 기독교 교육에 있어서 상상력이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를 그 실례로서 상상력을 통한 하나님 묵상하기를 제시한다. 이러한 시도는 쿨리지의 문학적 상상력 이해와 그린의 신학적 상상력 이해 그리고 가르침에 있어서 상상력의 역할을 잘 보여주는 해리스의 종교적 가르침을 위한 다섯 가지 요소를 통하여서 이루어지는 묵상훈련이다. 이것은 기독교 교육에 있어서 상상력의 역할을 잘 보여주는 시도이며, 특별히 묵상훈련에서 상상력이 어떻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IV. 자연계시를 통한 하나님 묵상하기
자연계시를 통한 하나님 묵상하기는 사물에 나타난, 특별히 하나님의 피조물인 하나님의 아름다운 대 자연에서 발견되어지는 하나님의 솜씨를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손길과 속성과 다스림을 깨닫게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이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목표는 아래와 같다.
1. 자연에서 느껴지는 만물의 아름다운 모습에 몰입하여 하나님의 솜씨와 이미지를 표현하는 가운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게 한다.
2. 인간이 가지는 고독과 자연과의 만남의 교감을 통해서 하나님의 신비를 알고 깨닫게 한다.
3. 일상에 젖어서 지쳐있는 영혼에게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음미하는 경험을 하게 함으로써 영혼의 회복과 찬미를 경험하게 한다.
4. 나눔을 통하여 다양하게 다가오시는 하나님을 깨달아 나눔 가운데 친미와 기도로 더욱 하나님의 임재를 가까이 느끼게 한다.
A. 방법론1)
자연계시를 통한 하나님 묵상하기의 단계는 바라보기, 몰입하기, 느껴보기, 하나님 상상하기, 표현하기, 찬미하기, 감사하기, 서로나누기, 함께 기도하기로 나눈다.
1. 바라보기 - 일어나고 있는 심미적 자연현상을 그냥 바라보게 한다.2)
2. 몰입하기3) - 바라보는 단계를 지나서 대상에 집중하여 몰입하게 한다.
3. 느껴보기 - 몰입의 상태에서 오감을 통해서 다양한 느낌을 경험케 한다.
4. 하나님 상상하기4) - 어떠한 하나님의 이미지가 떠오르는지를 마음으로 영혼으로 그려보게 한다.
5. 표현하기5) - 느낌의 경험을 말로나 글로써 써보게 한다.
6. 찬미하기 - 자신에게 그려진 하나님의 모습을 보며, 그러한 신비를 주신 하나님을 찬미케 한다.
7. 감사하기 - 아름다운 자연을 통해서 하나님의 신비를 만나게 하셔서 마음에 기쁨과 감흥과 풍성함과 충만함을 주심에 감사를 드린다
8. 서로 나누기 - 서로의 느낌을 서로 나누게 한다.
9. 함께 기도하기 - 각자가 경험한 하나님의 신비와 아름다움에 대하여 기도하게 함으로써 하나님이 우리 주위의 환경가운데 역사하고 계심을 기도를 통해서 확신케 한다.
B. 자연계시를 통한 하나님 묵상하기의 실제
1. 자연현상에 나타난 하나님 묵상하기
일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자연가운데 특별히 노을이 지는 장면이나 비가 내리는 장면 속에서 자기 시편 그리기를 시작한다.
1) 바라보기 : 노을이 지는 하늘을 본다. 또는 비가 내리는 장면을 보게 한다. 붉게 물든 하늘이나 가로등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는 경험을 할 수 있다.
2) 몰입하기 : 깊이 집중하여 몰입해서 노을 속에(비속에) 마음을 젖어들게 한다. 다른 생각들과는 단절시키고 오직 이 장면에만 몰입하게 한다.
3) 느껴보기 : 노을 속에 일어나는 느낌을 오감을 통해서 가져본다. 붉게 타는 노을, 오렌지 빛 가로등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볼 수 있다.
4) 하나님 상상하기 : 노을 속에서 느껴지는 하나님의 형상을 그려보자. 붉게 타는 노을을 보며, 하나님은 참 아름다운 분이시라는 이미지를 그려본다. 또한 오렌지 빛이 퍼져있는 가로등에 내리는 빗방울들의 움직임을 관상하고 몰입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빗방울과 같은 나를 인도해주시는 분으로 상상한다.
5) 표현하기 : 하나님의 형상을 말이나 글로써 표현하게 한다.
저녁 오렌지 빛이 펴져 있는 가로등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면서 깊이 몰입하여 느껴보면서 하나님을 상상한 것을 글이나 시로서 표현할 수 있다. 이러한 장면을 시로 표현해보면 다음과 같을 수도 있다.
비를 통해서 만나주신 하나님
- 박동근 -
번개가 장난치는
틈을 지나서
새 하얀 한 줄기
빗방울이 내려와
어느 듯 대기를 지나
오렌지 빛 가로등에
내려앉았죠.
하지만 너무도
빛나는 손길에 놀라서
이젠 퍼져나갑니다.
소리 없이 소리 없이
여러 갈래로 흩어집니다.
나의 빗방울은
이젠 대지 속으로
당신의 여과기에 걸러져서
이젠 넓은 바다로 갑니다
아름다운 당신의 길이
펼쳐진 흔적을 따라
당신께서 부르시는
손길을 기다리며
이젠 떨림으로
부풀어 있죠.
당신께서 내게 베풀어주신 느낌들로
내 앞에 다가서는
모든 것들로부터
당신을 너무도
강하게 느낍니다....
영원한 당신의 목소리를.....
(장신대 『로고스』, 30집, 시 부문 ‘우수작 )
6) 찬미하기 : 비를 통해서 자신에게 그려진 하나님의 이미지를 보면서 하나님을 찬미한다.
7) 감사하기 : 노을을 통해서 하나님의 신비와 아름다움을 보게 하심에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비를 통해서 만나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8) 서로나누기: 각자 체험한 하나님에 대하여 서로 나누게 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아름다운 자연을 서로 고백하고 말하게 한다. 비나 노을을 바라보면서 느꼈던 경험들을 서로 나누게 한다.
9) 함께 기도하기 - 각자가 아름다운 노을이나 비를 통하여 하나님을 깨닫게 하심에 대하여 기도 드린다.
2. 시편 23편에 나타난 하나님 묵상하기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시편 23편은 다윗에 의해서 쓰여진 것으로서, 시편 중에서 가장 많이 암송되는 아름다운 노래이다. 일반적으로 성경은 성도를 목자장 되시는 하나님의 양으로 묘사한다. 선한 목자와 사랑스러운 양의 관계가 굳은 신뢰와 함께 푸른 초장 그리고 잔잔한 물가 등 아름다운 회화적 배경을 가지고 간결하고도 우아하게 표현되어 있다.
이러한 시편을 쓴 다윗의 언어에는 자신이 살아왔던 삶의 자리에 나타나는 친숙한 자연적 배경이 잘 나타나 있다. 목자로서의 양을 치는 시절에 자신이 경험한 장면을 머릿속에 그려서 그 장면을 바라보고 거기에 몰입하여 집중한다. 그 전경은 3곳으로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는 양이 푸른 초장에서 풀을 뜯고 있는 장면으로 목자는 그 양을 지키면서 바라보고 있다. 다음은 양이 목이 마르자 목자는 양을 쉴만한 물가로 데리고 간다. 세 번째 장면은 양이 이러 저리 마구 다니며 마침내 음침한 골짜기로 헤매고 있는 양을 찾아내어 다시 푸른 초장으로 데리고 오는 장면이다. 다윗은 이러한 과정을 상상력을 통하여 머리에 떠올리며 이미지를 형성하면서 하나님을 상상하게 되고 하나님은 그에게 목자로서의 이미지로 다가오고, 그 순간에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모습이 바로 목자와 같다는 고백을 하고 체험한다. 다윗은 이러한 하나님이 자신을 인도하고 안위하심의 손길이 잔이 넘치는 것과 같이 넘침을 감사하며 마지막으로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라는 고백을 한다.
이제 이러한 의미를 가지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하여 시편 23편을 9가지 단계를 통해서 실제로 묵상을 해보겠다.
1)바라보기 : 실제로 푸른 초원과 양과 쉴만한 물가가 있는 곳에 직접 가서 실시하는 것이 더욱 좋을 것이다. 아니면 상상력을 통하여 머릿속에 그러한 장소로 달려갈 수 있을 것이다.
먼저는 목자가 양을 푸는 초장으로 인도하는 장면을 바라보게 한다. 여기에 푸른 초장은 산들산들하고 포근한 바람이 불고 새들이 여기저기서 지저귀고 등을 약간 기대서 누워서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그러한 초장이다.
그리고 나서 목자가 목말라서 애태우는 양을 쉴만한 물가로 데리고 가는 장면을 보게 한다. 여기서 양을 껴안고 가는 장면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그리고 물가는 푸른 시냇물이 졸졸 흐르고 작은 조약돌이 있으며 푸른 하늘이 비치는 맑은 냇가이다.
2)몰입하기 : 이러한 장면 속으로 깊이 몰입하게 한다.
3) 느껴보기 : 양의 소리와 목자의 부드러운 음성, 푸른 하늘과 하늘이 비치는 맑은 물가, 조약돌, 부드러운 풀들이 한들한들거리는 초장을 떠올린다.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오감을 최대한 사용하여 생생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4) 하나님 상상하기 : 이러한 장면 속에서 느껴지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한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자연의 체험을 통해서 하나님의 모습을 그려본다. 하나님이 주신 이러한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하나님의 따뜻함과 포근함을 느끼게 되며, 깊이 몰입하는 가운데 하나님은 목자와 같은 이미지로 그려질 수 있다. 하나님은 목자와 같아서 양인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이시다. 우리가 힘들 때, 푸른 초장과 같은 곳에 누이셔서 하늘도 바라보게 하시고 목말라 할 때, 쉴만한 물가로 인도해주시는 분이시다. 우리가 양같이 막 길을 헤매고 다닐 때, 우리를 안전한 길로 인도해주시는 분이시다. 지금까지는 장면을 바라보고 몰입하여 깊은 체험을 통하여 하나님에 대한 이미지를 마음속에 그려보는 단계이다.
5)표현하기 : 머리 속에, 마음 속에 그려진 하나님의 이미지를 말이나 글이나 그림으로 표현하게 한다. 다윗은 시편 23편과 같은 시로써 표현했지만, 각각은 다르게도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6)찬미하기 : 이러한 장면들을 통해서 자신에게 그려진 하나님의 이미지를 보면서 하나님을 찬미한다. 목자와 같이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을 찬미하게 한다. 표현한 시나 글을 노래로 만들어 찬양하게 할 수 도 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주제로 하는 복음성가나 찬양을 부르게 할 수도 있다.
7)감사하기 : 오늘 이러한 체험을 통하여 하나님을 깊이 생각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셔서 인도해 주심에 대하여 감사하게 한다.
8)서로나누기 : 시편 23편의 장면을 통해서 각자 체험한 하나님에 대하여 서로 나누게 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아름다운 자연을 고백하고 말하게 한다. 여기서 쓴 글이나 시나 그림을 통하여 나누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9)함께 기도하기 - 이제 최종적으로 각자가 경험한 하나님을 기도하게 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이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오늘 아름다운 시편 23편을 통해서 저희를 만나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부족한 저희를 인도하시며, 어둠의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저희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되셔서 이끌어 주심을 감사합니다. 우리의 평생에 영원히 저희를 인도해주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V. 결 론
A. 요 약
상상력을 통한 기독교 종교 교수의 방향성은 합리적 구조와 이성적 구조에서 탈피하여 감성과 상징체계를 통한 인간의 전인적 교육의 자리를 요청하고 제시한다. 곧 상상력을 통한 기독교교육의 자리는 지식전달 위주와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경험이 결여된 형식교육 중심, 그리고 지나친 이성 의존 중심에서 벗어나 상상력을 통한 정적인 측면(두뇌의 우반구적인 기능)을 강조하는 흐름으로 나아가야 한다.
본 논문은 상상력이 기독교 교육에 있어서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으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서 시작된다. 그리하여 먼저 상상력의 개념을 정립하고 문학적 상상력과 기독교적 상상력과 기독교 교육적 상상력에 대하여 고찰했으며, 실제로 상상력이 발휘되는 기독교 교육적 프로그램으로서 자연계시를 통한 하나님 묵상하기를 제시하였다.
제 1장에서는 상상력이 이성과 감성과 경험이 함께 어울러진 전인적인 교육의 필요성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본 논문이 기독교 교육에 있어서 상상력의 가능성에 대하여 고찰할 것임을 밝혔다.
제2 장에서는 상상력 전반에 관하여 다룬다. 상상력에 대한 개념이해와 더불어 상상력의 이해의 역사와 상상력 언어의 중요성, 그리고 문학적․기독교적․ 기독교 교육적 상상력을 말하고 있다.
상상력은 사물에 대한 합리적, 논리적, 과학적, 수학적 지식을 직시할 뿐만 아니라 그 사물 너머에 있는 아직 파악되지 않은 있음직한 세계를 추상하고 상징해 낼 수 있다. 이러한 상상력의 언어 속에서 현상과 그 현상을 너머에 있는 사물이나 대상에 대하여 더 깊고 넓은 무한한 세계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에 있어서 상상력의 언어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을 더욱 넓고 깊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 하나님을 향해 좀 더 가까이 다가가는 통로가 된다. 상상력이 환상이며, 오히려 지식을 혼란하게 만들어 놓는 다는 상상력에 대한 오해를 해명하기 위하여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상상력에 대한 역사적 고찰을 통해서 상상력의 참된 의미를 밝혀보았다. 특별히 18세기 낭만주의는 이성을 인식의 유일한 수단으로 삼은 계몽주의 시대에 대한 반발로서 일어났는데, 심성과 감성을 강조하고 내면을 중시하는 것이 그 특징이다.
상상력의 언어는 시적 언어이며, 시적인 언어는 유기적 언어이다. 왜냐면 실증주의 적이고 논리적 언어가 말하고 설명할 수 있는 추상적이고 필연적인 세계인 반면에, 유기적인 언어는 언어에 담을 수 없는 구체적이고 우연적인 개별적 사물의 실존적인 세계이다. 이러한 유기적 언어가 곧 상상력의 언어이며 상상력의 언어는 시적 언어이다. 시는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이다. 시는 과학의 추상적, 논리적 의미의 세계를 진술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비논리적인 존재의 세계를 상징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시는 논리적 의미로 환원시킬 수 없는 실재의 영상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시는 종교는 아닐 지라도 종교를 위한 준비이다. 다차원적이고 복합적인 사물인 시는 다양한 요소들의 균형과 통일이라는 점에서 유기체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 시는 은유를 통해서 진리를 제시한다. 모든 시적 상징은 은유이며 은유에서 나온다. 그러나 상징은 은유이상이다.
상상력의 이론의 기초를 제공하기 위하여 문학적 상상력 이론을 잘 적립한 사람으로 18세기말에서 19세기 초에 활동한 낭만주의 호반시인(Lake Poet) 쿨리지(S. T. Coleridge)의 상상력 이론을 소개한다. 쿨리지는 그의 저서 『문학평전』을 통하여 상상력에 관하여 소개하고 있다. 그는 상상력이 이미지를 낳는 힘이며, 그러한 이미지 앞에서 우리들 마음속에서 깊은 감정을 자아내게 하는 힘이라고 말한다. 곧 상상력은 우리에게 마음속에 어떤 이미지를 그려내게 하고, 바로 그 이미지를 보편적으로 의미 있는 것으로 보게 하며, 그 이미지의 현존 앞에 깊이 몰입하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쿨리지는 인간의 마음을 “모든 사유 행위의 근본으로 여기고 ”자연의 형상을 통해 산재되어 있는 지성의 광선(ray)이 한 곳으로 모이는 초점“이라고 한다.1) 이러한 초점 안에서 초월자의 현존에 몰두하여 그 존재의 신비를 경험하고 그 대상에 대한 이미지가 형성되며, 그 이미지는 정서적인 믿음의 자리로 이끌어 주는 것이다.
그는 지적인 믿음과 정서적인 믿음을 인식하고 지식의 기초가 되는 것은 지적인 믿음이기보다는 정서적인 믿음이 우선한다는 것을 말한다. 이성으로 확인 불가능한 것이 존재하는 한 정서적인 믿음이 불가피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는 정서적인 믿음만이 추상력의 바탕이 되는 오성의 힘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고 보았고 이 믿음으로 인해서 유한계의 생명이 제일 생명과의 합일을 가능케 한다고 말한다. 곧 활력을 주는 능력으로서 모든 정신능력 속에 내재하는 상상력은 이성과 감각 그리고 오성을 결합시키어 모든 존재를 서로 긴밀한 관계를 맺고 융합 할 수 있게 하는 신비의 힘을 가졌다. 상상력은 모든 유기체들 속에 내재한 이질적인 면들의 상층을 하나의 전체적인 조화로 환원시키는 전인적인 활동이다.
쿨리지는 이러한 인간의 가장 깊은 내면적 신비, 신을 포함한 모든 존재와 사물들의 신비를 탐구하고자 했기에 흔히 볼 수 있는 현상계 하나라도 그대로 지나쳐 버리지 않고 그 배후에 숨겨진 실재의 신비를 붙잡으려고 했다. 즉 눈에 보이는 대상들 뒤에서 빛나는 신비의 세계를 포착하려고 했다. 이러한 현상계의 배후에 숨겨진 신비를 탐색하기 위해 상상력을 최대한도로 개방하여 인간의 모든 정신을 활동시키며, 과학적인 해명이나 분석으로도 도달할 수 없는 실재의 신비까지도 재현시켰다. 우리가 신이라고 부르는 초월적 실재, 자아의 깊은 의식, 자연과 인간의 생명력 통합, 인간 경험의 복잡성들이 이 상상력에 의해 신비스럽게 융합되어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상상력은 초월적 존재나 사물이 가지는 다양한 의미를 표현할 수 있게 해준다. 상상력을 통하여 나타나는 다양한 의미는 과학적이고 합리적이고 수학적이며 지시적인 의미로는 초월자와 사물의 의미의 전체성(총체성)을 표현 할 수 없는 것을 다양하게 그려 낼 수 있는데, 이것은 상상력을 통하여 사물을 기존의 획득된 한 의미를 넘어서 또 다른 의미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기독교적 상상력은 개럿 그린(Garrett Green)을 중심으로 소개한다. 그는 하나님을 이해하는 접촉점으로 다양한 관점들을 가지게 하는 패러다임적 역할을 하는 것으로 상상력 말한다. 상상력이 지금 눈앞에 없거나 실재하지 않은 초월적인 것들을 머리 속에 그려보는 능력이라면, 우리는 상상력을 통하여 지금 현존하지 않는 것을 보고, 들을 수 있다. 보이는 것 가운데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며, 들리는 것 가운데 들리지 않는 것을 듣고, 어제의 사건 가운데 내일의 사건을 발견하고, 표면 가운데 이면을 찾고, 성경의 문자 안에서 하나님의 영을 , 소리 가운데 마음을 느끼는 훈련은 상상력의 훈련이다.2) 인간의 삶의 문제는 단순히 표면적인 것만이 아니라 심층적인 것이기에 눈에 보이는 것을 넘어서서 존재하는 것을 포착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간은 자신의 다양한 능력을 통하여 그가 가진 언어적, 상징적 능력을 바탕으로 하는 상상력을 통하여 하나님의 계시를 표현한다. 바로 이것은 하나님이 인간의 상상력 속에다 계시를 심어주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언어습관을 넘어서서 초월적 개념을 상상하여 그리게 된다. 이것을 바로 하나님은 인간이 이해하는 언어로서, 형태로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종교적 형상을 통하여 자신을 보여주시는 것이기에, 하나님은 인간의 상상력을 통하여 그 속에 자신을 보여주는 것이다.
기독교적 상상력은 기독교적 계시 이해에 있어서 새로운 지평을 제시해 줄 수 있다. 그린(Green)은 인간의 정신 그 자체를 상상력과 동일시하면서 상상력을 우리의 모든 표상의 원천으로서, 또 감각경험을 뛰어넘는 개념의 원천으로 이해하는 피히테의 주장을 인용한다. “모든 실체는 단지 상상력에 의하여 만들어지고 인간 정신의 모든 작용은 상상력으로부터 나온다.” 상상력을 통하여 얻어지는 관점은 주관적이고 허구적인 것이 아니라 상상력의 구성적(건설적: Constructive) 측면과 통합적(receptive) 측면을 가지게 된다. 상상력은 인간 경험의 주관적인 영역에만 관계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 현상의 객관적이며 사실적 탐구에 필수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3)
제 3장에서는 기독교 교육적 상상력에 대하여 마리아 해리스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그녀는 기독교교육에 있어서 상상력이 어떻게 가르침의 과정 속에서 반영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시도를 했다. 마리아 해리스는 종교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하여 좀 더 깊이 있고 보다 더 효과적인 교수의 가르침의 내용과 방법을 전개하기 위하여 다섯 가지 요소들을 패러다임으로서 제시한다. 해리스는 이것들을 가르침을 위한 다섯 순간들, 혹은 가르침을 위한 다섯 단계라고 지칭하고 있다. 이러한 다섯 가지 패러다임적 요소는 상상력을 통한 자연계시에 나타난 하나님 묵상하기 과정에서 적용이 될 것이다. 종교적 가르침을 위한 다섯 가지 요소란 곧 관상(Contemplation/명상), 참여(Engagement/연합), 형상 만들기(Form-giving/형상제시), 출현(Emergence), 방출(Release/표출)을 말한다.
관상은 거기에 무엇이 있는가를 보는 것으로서 시작한다. 관상은 자료(material)가 준비되어 있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있는 그 곳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이러한 순간에 우리는 “너”(Thou/당신, 대상)로써 가르치는 것을 보도록 물어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관상은 침묵과 존중과 존경의 태도를 가지고 임하는 것이다.
가르침(교수)의 첫 순간은 관상(명상)이며, 이것은 모든 다른 것으로부터 멈추는 것(조용히 있음)을 의미하며, 이러한 순간은 시간을 요하는 것으로서 이 순간은 완전히 깨어 있는 상태이다. 관상 속에서 깨닫는다는 것은 해석하는 것이며, 분석하는 것이고, 해설(설명)하는 것이다.
참여(연합)는 그 자체로 들어가는 것(drive-in), 맞붙는 것, 주제 속에서 돌고 도는 것을 의미한다. 참여는 어떤 잡을 수 있는 것을 향하도록 하는 관상적 상상력을 가져오며, 창조적 상상력의 활동을 만든다. 마치 조각가들이 느끼고, 만지고, 시험하고, 그것에 관하여 배우고(익히고), 관상함으로 진흙을 결합하여 그들의 얻고자 하는 바를 얻듯이, 교사들도 역시 보다 더 상호 작용적으로, 상호 변화적으로, 장황한 주제를 함께 하는 활동적인 역할을 위해 그저 응시된 것, 알려진 것을 넘어 참여(연합)를 추구해야 한다.
그런데 진정한 참여가 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진지하게 주제에 관한 본질과 의미하는 바를 알아야 한다. 만약에 그렇지 않으면, 수박 겉핥기 식으로 되기 쉬울 것이다. 교사는 주제를 가장 깊고 가장 심오하게 결합하고자 하는 동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정말로 주제를 사랑해야 한다. 이것은 교사로서 자신의 창조성뿐만 아니라 조작하는 것(operating)이다. 그러나 창조적 역동성은 마찬가지로 주제 속에 존재한다.
우리가 주제로써 참여하는 것은 주제들로써 인간의 존재들과 함께 참여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우리는 역시 어떻게 관상적인 순간이 참여의 순간 속으로 병합이 되어지는가를 볼 수 있다. 그곳에서 주제들에 대한 우리의 존재론적 사명은 세계와 함께 연합하도록 우리에게 요구할 뿐만 아니라 어떻게 우리가 세계를 바라보는가를 되돌아보게 한다. 참여의 주제들, 그리고 그 주제와 함께 참여하는 것은 마찬가지로 관상적인 주제들이다.
상상력은 형상을 만드는 것을 가능케 한다. 형상을 만드는 작업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상상하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가 만드는 형상은 어두움과 보이지 않는 속에서 부단히 노력하는 가운데 그리고 끊임없는 느낌 가운데서 되어지는 것이며, 단순한 사고들로 끝마쳐지는 것이 아니고, 오직 사고와 실재와 만드는 것 속에서, 주는 것 속에서, 삶이 경험 속에서 되어지는 것이다.(Maria Harris, 1991:35)
종교적 상상력의 활동으로써 가르침의 형상 만들기 단계는 그 내용과 주제를 형성하도록 하는 창조적 상상력의 단계이다. 그리고 형상 만들기는 교사와 학생, 주제를 서로 함께 놓기 위해 시도한 방법이다. 새로운 형상은 존재 속으로 들어가는데, 그 이유는 우리가 예술가들이 되고, 창조자들이 되며, 교사들이 되는 모험을 취하기 때문이다.(Harris, 1991:35-36)
출현은 깨달음의 순간을 의미한다. 무언가 새롭게 태어나는 가르침의 과정 속에서 학습자가 어떤 것을 습득하는 순간이 바로 출현의 순간이다. 출현은 “내가 무언가를 이해했다는 것으로 특징지어 나타난다. 이러한 이해의 순간은 모든 가르침의 행위 가 그 가르침의 완성을 향해 작용하고 있다. 뭔가 새로운 것이 일어나기 시작할 때 그것은 이전의 일어난 무언가와 연관이 되며, 학습자에게는 이러한 상황 안에서 그 자신이 새롭게 재형성되어지고, 학습자의 생의 미래를 위해 재창조되어져 왔다. 출현은 새로운 삶으로 이끌어 주는 선구자와도 같다. 출현의 순간은 시간, 학기나 어떤 기간, 시험, 그리고 압박에 의하여 강제적으로 계획된 시간 안에서는 일어나지 않고 그 어떤 순간에 고요한 가운데 일어나는데, 이것은 마치 사람이 자라나는 나무의 뿌리를 보려고 나무를 뽑는 것과 같은 열정적인 행함 속에서 일어난다. 너무 지나친 압박이나 빨리빨리 하라는 요구는 자연의 법칙, 곧 영원한 리듬(eternal rhythm)을 가치고 있는 가르침의 법칙을 깨뜨리는 것이다. 출현은 새로운 삶으로 태어나게 도와주는 교사를 생각나게 하는데, 슬픔과 어두움 속에 지내며, 비탄과 죽음 같은 삶을 살고 있다면, 가르침의 과정 속에서 마지막 순간 새로운 삶으로 일어서게 하는 것이다.(Maria Harris, 1991:37-38)
방출(표출)은 사람이 더 이상 행할 수 없는 것이나 무엇이나 가치 있는 것을 위해, 그리고 세계 속의 새로운 존재를 위해 표명하는 것이다. 교사에게 요구된 이 마지막 움직임 또는 순간 또는 단계는 움직임의 중지나 또는 평안한 상태의 휴식, 빈 마음과 같은 공허(비하)이다(Maria Harris:1991:38. 때때로 인간의 고통과 슬픔, 괴로움과 고독, 고생, 애씀 등등에 방출의 순간(단계)은 필수적인 것이다. 사실 방출은 겸허를 배우기 위한 좋은 시간이다. 그 예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자기 비하로 알려진 겸손에서 볼 수 있다. 방출은 평안의 휴식의 순간이요, 공(emptiness)의 순간이며, 침묵의 순간이다. 평온한 방출 안에서 교사는 평안하지 못한 인간 주체들의 고뇌를 들을 수 있다.
다음 장에서 위의 내용들을 바탕으로 하여 기독교교육에 있어서 상상력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제안으로서 자연계시를 통한 하나님 묵상하기에 관한 방법론과 그 실제적 프로그램을 제시하고 있다. 자연계시를 통한 하나님 묵상하기의 실제로서, 자연현상에 나타난 하나님 묵상하기와 시편 23편에 나타난 하나님 묵상하기를 프로그램으로 제시한다.
B. 제 언
오늘날 기독교교육의 현장에서는 상상력의 역할이 매우 중시되고 강조되어 지고 있다. 이것은 곧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이성중심의 교육 방식에 대한 새로운 전환을 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지식의 전달 위주와 내용 중심으로 실시해온 이성 중심적 교육에서 개인의 독특성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감성과 경험과 상징을 통한 교육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이러한 교육은 바로 전인적인 교육으로서 바로 상상력을 통한 교육이기도 하다.
지성과 감성과 영성을 통한 교육은 상상력을 통한 교회교육 안에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상징과 감성을 훈련하는 전인적 교육의 방법으로서 오늘날 요청되는 것이 바로 생태 환경적 교육이다. 개념을 외우고 이해하는 교육이 아니라 실제 어떤 대상을 경험하면서 감성적 몰입을 통해서 개인적 상징화를 통해 자신만의 경험을 자극할 수 있는 환경 친화교육이 필요하다. 이러한 환경친화 교육은 하나님의 환경 안으로 들어가서, 특별히 자연과의 직접적 만남의 자리로 들어가서 하나님에 대하여 더욱 친숙하고 가까이 느낄 수 있게 해줄 것이다.
그러한 환경친화교육의 모델로서 상상력을 통한 자연계시 묵상하기 실시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인들의 삶은 복잡하고 시간에 좇기는 삶을 살고 있다. 이러한 현대인은 내면적인 성찰을 하는 시간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결핍은 인간성을 메마르고 무감각하게 하여 생동력이 없는 모습으로 보여지게 한다
이러한 현대인을 위해서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는 기회로서 자연을 통한 묵상하기는 유익할 것이다. 이러한 훈련을 통하여 신앙인 에게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자연을 통하여 하나님의 다가오심을 경험하게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일상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아름다운 자연과의 신비를 경험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만남은 일상성에 젖어 있는 사람에게는 어렵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하나님의 아름다운 자연을 정말 깊이 바라보고 관상하여 몰입해보면 거기에는 하나님의 따스한 손길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상상력을 통한 자연계시에 나타난 하나님 묵상하기는 하나님의 피조물인 자연과 사물을 묵상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우리와 함께 하심, 친근하심, 선하심과 신실하심 등을 깊이 발견하고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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