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동예(Tatar, 달단)와 옥저(오구즈, Oguz, Oghuz)에 관하여
가. 개설
강단사학은 옥저와 동예를 크게 다루지 않을 뿐 아니라 기껏 한반도의 북부지방(함경도, 강원이북)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고조선 멸망 이후의 동예, 옥저에 대한 관련 이론은 크게 없는 실정이다. 필자가 앞에서 주장한 대로 고조선은 9환으로 이루어진 동맹의 정치체제로 그 증명은 ‘하티안(Hattian, 흰 빛나는 머리족, 흰 머리족, 백두족)으로 증명되었으며 이 하티안의 증명은 고대 터키의 루비안(Luwian)문서에서 “그들은 8종의 언어와 대기업 사람들이 적용(9환의 동맹)되었고 태수통치를 하였으며 제후국가들은 ’아버지‘라고 불렀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언어학, 인류문화사적으로 ’타탈리아, 투탈리아(토카리스탄)‘ 가 고조선이었다.
사실 춘추필법으로 시작된 역사왜곡으로 중국의 사가는 일찍부터 서쪽의 아프리카, 지중해, 메소포타미아 지방, 그리스의 권역에서 찬란한 환인, 한웅, 고조선의 문명이 있었는데도 이를 아예 없는 것처럼 삭둑 잘라서 우리를 동이(東夷)와 서융(西戎), 북적(北狄), 남만(南蠻)으로 구분하였으며 고조선을 일으킨 종족은 고작 동이9족으로 몰아 모두 산동, 산서지역에 몰아넣은 것이었다. 숫제 서융족은 서양오랑캐가 되어 고조선과는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는 것처럼 역사왜곡을 자행하여 온 것이 필자에 의해 드러난 것이다.
일찌기 반고의 남하로 인해 형성된 ‘묘족’은 ‘남만족’이 되었으며 흑해 연안에 자리잡은 종족은 ‘서융족’이 되었고, 요녕성 지역과 홍산문화권인 내몽골을 아우러는 지역은 ‘북적’이 되어 고대 중국의 북부왕조가 한인12분국의 통고사국(선비국, 시위국), 구막한국(고막해<庫莫奚>, Kumoxi)의 종족에 의하여 위(衛(위), 趙(조), 燕(연), 魏(위), 북위(北魏(북위), 수(隋)등의 왕조를 만든 사람들로 소위 북사(北史)의 주인공들이었다.
이 사람들이 ‘북적’ 사람들이었으며 동이족의 한 갈래가 되었는데 하상주 공정과 동북공정의 시책으로 역사왜곡을 하고 있는 현 중국사가들은 동이9족이 모두 산동, 산서등지에 퍼져 살았다고 선전하고 있으며 고조선 또한 만주권역으로 몰아 서토(西土)의 문명과 그 역사를 모조리 없앤 것으로 오늘날 고조선은 발해만 이북의 만주권이며 동호(東胡), 동이(東夷), 동예(東濊)로 모두 동쪽으로 몰아 넣은 것이다.
그들이 고집하는 동이, 동호, 동예는 춘추필법이래로 중국의 25사에 그대로 인용되어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엄밀히 들어가 보면 고조선의 연대기가 37대 단군(기원전 591년)부터 42대 단군까지 연대기가 거의 없으며 44대 단군에 이르러 ‘대부여’로 개칭하게 된다.(기원전425년) 삼한을 ‘삼조선‘으로 개칭하였는데 병권이 단군에게만 있지 않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대저 국가가 새로 형성되고(대부여) 중간에 약 200년 이상 공백이 있는 것으로 대부여의 새로운 단군1세부터 기록되어야 마땅한데 다시금 연대기를 계승하여 연결시킨 것으로 그 저의가 있는 것으로 파악되며 깊은 연구를 해야 할 것으로 본다.
나. 동예(東濊)의 형성과 고조선의 멸망원인
중국 사가들이 ‘동예’로 지칭하였는데 미국의 학자들은 동예를 예맥으로 호칭하며 Yemek, Kimek으로 그 종족들의 자본은 킵착, 투르크, 타타르족이라고 연구하였다(하버드대 아시아연구소). 그렇다면 예맥의 구심점이며 그 자본인 ‘고조선’은 왜 연구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미국학자들의 에멕(예족과 맥족) 연구에서 고대 한국인의 조상그룹이라고 발표한 것은 아주 놀라운 연구인데 필자는 예족은 타타르(Tatar-머리의 달족, 달단족)이며, 맥족은 이란인들이 일으킨 매디아(Median, 매데, 기원전 678-549)로 보고 있다. 중국사가들은 대월지(大月支)를 ‘따예지’라고 호칭한다. 이때의 ‘예’는 달(月)을 가리킨다. 이 예족은 중국식으로 음사(音寫)된 것으로 응당 달족이 된 것이며 그러기에 ‘타타르(Tatar) -머리의 달족)'가 예족이 되는 것이다. 예족(타타르)의 분포는 시베리아 타타르, 몽골타타르, 크림타타르, 볼가타타르, 킵착타타르로 세분되며 타타르족이 활동한 그 영역은 필자가 주장하는 고조선 삼한의 관경과 거의 같은 것이다.
타타르족과 맥족은 같은 투르크(Turk, Turcic -달의 고리족)사람으로 고조선의 정체성인 달(月)에서 기인된 것이며 투르크 민족의 정체성은 앞에서 설명한 바 있다. 맥족인 이란인들은 ’엄족, 엄체족‘으로 불려졌으며 한단고기에 기록된 ’엄독홀 사람‘이었고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문명에서 엘람(Elam)의 문명이기도 하였다. 결국 흑해 이남의 이란인들은 엘람사람들의 프로토 마이그레이션(이주, 정착)에 의해 형성된 사람이었으며 그들은 역사가에 의하여 구티안(Gutian -머리의 고리 사람들)으로 지칭되어 수메르권의 환웅문명, 고시문명권에서 형성된 태양족이었으며 고조선이 이를 상속받아 구티안은 고조선의 제후가 된 것이었다. 이러한 증명은 현대 역사가들에 의해 쿠르드(Kurd -머리의 고리족)족의 조상들중 일부로서 간주되고 있다. 구티안은 안색이 좋고 금발이었다고 ’구약성경‘에서 언급된 사람들의 근거에서 주장되고 있다.
그러나 구티안(Gutian-머리의 고리 사람들)의 ‘구티’에 대하여 어원 분석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이란(Iran)에 대한 어원 분석도 옳게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서양에서 연구된 고대사가 엉터리라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이 예라고 볼 수 있다. 이란(Iran)은 두가지로 어원 분석이 이루어 지는데 첫째는 이라(Ira)를 태양으로 보아 ‘태양 사람들’이 이란인 것이며, 다른 하나는 이르(Ir)는 우리(Uri)에서 파생된 모음조화의 표기로, 이루(Iru), 이리(Iri), 이루(Iru), 이라(Ira),이랴등으로 표기가 형성되므로 ‘우리’라는 카데고리가 형성되고 남은 An(안)은 신(神)으로 “우리의 신”이 이란의 어원이 된다 할 것이다. 이러한 논리는 고대 사람들은 태양을 우선 숭배하였으며, 다양한 신을 숭배하였기에 가장 근접한 어원 해석이 되는 것이며 언어학적으로 증명된다 할 것이다. 또한 구티(Guti)는 ‘머리의 고리(연방)’ 이 되는 것으로 고조선(하티안)의 제후로 설명되는 머리종족의 연방(동맹, 제후)이 된 것이다. 필자가 더러 언급한 바와 같이 서양의 학자들은 고리(Gori), 머리(Da,Ta), 태양(He, Suri, La), 달(Dari, Tari), 어머니(M, MA, MI, MU,IM, UM, AM등), 아버지(Va, Ba, Pa, Fa)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실정에서 종족의 어원과 더불어 지명 해석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서양학자들의 엉터리의 어원 해석은 ‘캘트 연구’가 옳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고대사를 연구하는데 큰 지장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고조선(하티안)은 기원전 630년경에 멸망한 것으로 루비안정제와 아시리아 연대기, 이집트 기록에서 증명되는데 프리지아의 ‘고르디온’ 이 킴메르등 스키타이에 의해 함락되어 결국 고대 터키의 ‘타발국가(도시국가,신히타이트)’가 궤멸됨에 고조선의 9환중 마한이 완전 무너져 내리고 9환의 결속이 와해되었기에 고조선의 멸망을 앞 당기에 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러한 고조선의 멸망엔 먼저 기원전 1,178년에 9환과 아시리아(상나라) 연합에 의해 히타이트(하나라)가 멸망하였으며 ‘바다 사람들’(9활, 9환)의 동맹으로 이집트, 지중해등을 공격하여 마한의 고토를 회복하려 하였으나 회복하지 못하였으며 끝내 고대 터키와 시리아권이 진공상태가 되었으며 후에 아시리아의 남하와 킴메르등 스키타이족의 진출등으로 마한이 무너져 내리게 된 것이며 이란종족이 아시리아의 북방 진출정책에 시달리다가 ‘메디아(Medes, Medai, Media)‘란 왕조를 형성(기원전 678-549)하게 되어 마한 분열을 가속화 시킨 동기가 고조선의 멸망이 된 것으로 연구하였다.
이러한 이란의 독자적인 왕조는 메디아 왕조에 이어 고대 페르시아왕조인 아케메데스왕조(기원전 550-330), Argead(우리 고리의 머리, 기원전 330-309), 셀레우코스(Seleucus,기원전311-129)왕조로 계승되어 나갔으며 파르티아(Parthian -광명의 흰 빛나는 머리)왕조, 사산제국(Sasanian, 224-651)의 왕조를 끝으로 Rashjdun왕조가 이란의 무슬림왕조로 자리매김 되어 갔던 것이다.
이란의 메디아 왕조 건국과 프리지아의 궤멸등은 마한의 붕괴와 9환의 와해를 불러왔는데 때마침 기원전 6세기경에 시작된 켈트의 이동시에 대거 9환종족이 동,서부 유럽으로 진출해 나갔으며 아프칸과 국경을 하고 있는 파키스탄의 펀잡지역등의 인도 16국에도 진출하게 된 것이다. 공교롭게도 캘트의 이동과 인도 16국의 건설은 고조선의 멸망 시기인 기원전 6세기경에 이루어진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다.
다. 옥저(沃沮)
옥저는 서양 학자들이 표기하는 오구즈(Oguz, Oghuz)이다. 구즈의 어원은 ‘구스(GUS)에서 찿을 수 있으며 ’구스‘란 이름은 성경에 등장하는 종족으로 고대 이디오피아의 종족으로 훗날 이집트 왕조를 건설한 종족으로 소개되고 있으며 구시, 쿠시문명으로 소개되고 있다. 쿠시, 쿠쉬, 쿠스, 코시, 코스(Cos), 카스(Kas,Cas), 카시, 키쉬, 키스등으로 인도유럽어의 표기로 다양하게 변하며 나타난다. 특히 라틴의 비문에선 코스(Cos)로 소개되고 있다. 이 ’구스‘는 한웅족의 대표적인 종족으로 고시(Gosi)종족을 말하는 것이며, 반고의 남하시에 고시족과가우(加優, 신지에서 가우로 불려짐)족, 루카족(Luka), 묘족, 공공족이 대거 남하한 것으로 이 종족의 정체성은 고대 터키의 루카족과 리카오니아의 도시국가. 이탈리아와 캘트로 진출하였던 종족의 이름에서 증명된다 할 것이다.
이 ‘구스(Gus)' 가 슬라브지역과 중앙아시아권에서 ’구즈(Guz)'로 표기되고, 우즈(UZ)로 발음되며 Sir, Sar, Sor는 Zir, Zar, Zor로 표기되기도 한다. 오구즈족은 10개의 화살파, 7개의 화살파, 30씨족등으로 학자들에 의해 연구되고 있으며 셀주크터키, 오스만터키에 오구즈족이 주축이 되었으며 일부는 불가리아와 헝가리, 루마니아등 유럽의 유명 왕가로 형성되었는데 그중에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7개 오구즈의 화살지파는 명문의 왕가로 자리 잡았다. ‘오주즈(옥저)’ 는 한웅의 고시종족임에 정통성이 있는 종족이었다. 실로 구시문명은 지중해를 포함한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 문명이 ‘구시문명’이며, 나일강의 아프리카문명이 ‘쿠쉬문명’이었고 아프리카 4대언어의 하나인 ‘쿠쉬언어’(Cushitic<고시머리의 언어> -탄자니아, 케냐, 수단, 지부티, 이디오피아, 소말리아등이 사용)가 이를 증명한다 할 것이다.
1.526-1,804사이의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군주국의 무기 코트(강력한 칠성신앙 7개의 화살, 5개의 화살, 12개의 화살로 표시되는 ‘오구즈족’ 의 문장이다.(사진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