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촌의 6.25 2
지옥임
그러고 보면, 옥희 삼촌이 군대 생활을 한 것은 그리 오랜 세월은 아니었다. 여름에 갔다가 겨울에 왔으니 예닐곱 달 사이에 엄청 많은 일을 겪고 돌아왔다. 옥희 삼촌이 돌아온 뒤로도 약 2년 이란 세월 전쟁은 계속되었다. 그러는 동안 옥희 삼촌은 떳떳하게 나다니지도 못하고 세상과 단절하고 사람들의 눈치를 봐야 했다. 1953년 7월 17일 휴접 협정이 되고 나서야 자유가 주어졌나 싶었는데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나라는 전쟁이 되었다. 하지만 옥희 삼촌은 호적에 전사한 것으로 되어 있어, 면사무소에 가서 호적을 살리려 했으나 무슨 뾰쪽한 묘안이 없었다. 옥희 아버지는 자기 동생의 호적 문제 때문에 어떻게 해보겠다고 이리저리 애를 써보지만, 매번 그냥 돌아와서 가족들을 실망하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면사무소에 다녀온 옥희 아버지는 한동안 말이 없다.
“정부에서 대책을 세우기는 했다는데…”
혼자서 속엣 말로 되내인다.
“그게 무슨 소리여, 무슨 대책?”
애가 닳은 할머니가 다그쳐 묻는다.
“북한에서 전쟁에 참전했다가 떨어져서 넘어가지 못한 사람들 중, 한국에서 살 의사가 있으면 신청을 받는댜. 그런디 비공식이랴 , 소문은 내지 말랴.”
면직원의 비공식 라는 말에, 옥희 아버지는 입에다 검지를 갖다 대고 속으로 말했다. 면사무소에 옥희 아버지와 절친한 친구가 있어 상의를 하니 귀띔을 해주었다.
삼촌은 새파랗게 질려 바싹 다가앉으며 말한다.
“어떻게, 무슨 신청을요?”
“또 군대를 가야한대요?”
“그게 아니고, 고향에서는 살 수가 없고 나라에서 정해주는 곳에 가서 그들끼리 모여 살아야 한댜”
“거기가 어딘데요?”
“경기도 파주라는 데랴.“
삼촌은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도 고향 떠나 살아야 한다는 말에 나망을 한다,
“싫어요. 난 여기를 떠나서는 못살아요.”
옥희 아버지는 길길이 뛰는, 삼촌을 설득을 시킨다.
“거기 가면 땅도 주고 집도 준댜.”
“땅 한 꼬랭이도 없는 너한테 누가 시집을 온댜?”
옥희 삼촌은, 아버지 안 계시는 가난한 집의 막내아들이다. 고향의 부모형제 곁에서 땅 한 꼬리도 없이 가난하게 사느니, 그 곳에 가서 살면 좀 낮 설기는 하지만 가난은 면하겠구나 하는 생각에 옥희 아버지는, 옥희 삼촌의 마음을 돌려놓으려고 애를 쓰고 있다.
“그려, 느이 성 말을 듣는 것이 좋을 성 싶다.”
옥희 할머니도 땅을 준다는, 옥희 아버지의 말을 듣고 보니 솔깃한 생각이 들어 부추긴다.
“난, 어머니와 형님들 떠나서는 못살아요.”
옥희 삼촌은 한동안 골이 나서 말도 하지 않고 툴툴거렸다.
그러나 번연히 살아있는 사람이 호적상 사망 처리되어 있으니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살려야했다. 그곳으로 가야만이 사람도 살리고 약간의 장래가 보장이 될듯하여 옥희 할머니와 옥희 아버지는 삼촌을 계속 달랬다. 이렇게 해서 가기 싫다고 고향과 어머니 떠나서는 살기 싫다고 하는 옥희 삼촌을 억지로 보냈다.
파주로 갈 때에는 군대를 갈 때와는 다르게 동네사람들도 모르게 소리 소문 없이 옥희 아버지가 면사무소 까지는 데려다 주고 돌아왔다. 그리하여 울며 겨자 먹기로 산 설고 물 설은 그리고 생각만 해도 진저리가 쳐지는, 지역은 다르지만 백마고지 가까운 최전방 파주로 갔다.
동네 사람들에게는 쉬쉬해가면서, 할머니와 가족들은 가기 싫다는 막내삼촌을 떼어 보내고 군대에 보냈을 때와는 또 다른 아픔을 겪어야 했다. 할머니는 식음을 전폐하고 몇날 며칠을 알아 누었다.
“못 먹것다. 저리 치워라.”
“엄니, 잡수셔야 해유.”
“이번엔 죽으러 간 것은 아니자녀유.”
“근강하셔야 삼촌이 올 때까지 사지지유.”
옥희 엄마는 식음을 전폐한 시어머니 때문에 애를 먹는다.
“죽으러 간 것도 아닌데 밥을 안 먹고 난리랴”
옥희 엄마는 할머니 앞에서는 안 그런 척 하면서 아무도 안 보는데서 혼자서 구시렁거린다.
“어머니, 편지 오면 한번 찾아가봅시다.”
효자 옥희 아버지는 가능성도 없는 말로 옥희 할머니를 달랜다. 세월이 약이라 했던가. 가족들은 잊고 사는 날이 많았다. 하지만 옥희 할머니는 날마다 가릅재 날망을 바라보면서 죽는 날까지 가슴에 한을 안고 살았다.
그렇게 해서 옥희 삼촌은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북에서 넘어온 실향민이 되어 새로운 호적을 만들어 파주의 최전방에서 새로 태어나 살게 되었다. 한 번간 삼촌은 편지도 없다. 북에서 넘어온 사람으로 살아야 하니 나라에서는 감시대상이 되어 옥희 삼촌은 고향과는 발을 끊고 살아야했다. 한 달, 두 달, 일 년, 십년, 이십년이 넘어가도 사람은커녕 편지도 없어 가족들의 애를 태웠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옥희 삼촌 나이 50에 넘었다. 그때는 이미 자유가 주어져 마음대로 오고 갈수가 있었다. 그런데도 옥희 삼촌은 편지한통 없다. 가족들은 죽은 것 갔다면서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 걸 괜히 보냈다며 때늦은 후회를 했다.
옥희 삼촌은 죽어도 가기 싫다는데 억지로 보낸 보복인지 서운함인지 고향을 찾지 않았다. 고향에서는 삼촌이라는 존재가 희미해졌을 때였다. 편지가 왔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였다. 옥희 삼촌이 환갑이 지난지도 여러 해가 되는 어느 날이었다. 옥희 삼촌은, 나이는 들었지만 예쁘장하고 조신하게 생긴 작은어머니를 데리고 뜬금없이 고향에 나타났다. 오랜만에 나타난 옥희 삼촌은 원래도 인물이 훤한데다 그동안 먹고 사는 것이 힘들지 않았는지 귀티가 주르르 흘렀다. 형제들은 그제야 삼촌에 대한 염려를 내려놓고 가슴에 맺혔던 응어리를 쏟아 놓고 마음 놓고 울었다. 몇 십 년 만에 만난 옥희 삼촌을 위해 삼사동네 잔치도 했다.
옥희 삼촌은 40년 전의 이야기보따리를 끌러 놓는다.
“정부에서는 어느 정도 먹고 살 만큼의 땅도 주고 집도 준다고 했지만, 막상 가고 보니, 집은 최전방에다 움막이나 다름없는 집을 주었어요. 땅은 비무장지대에 임자 없는 땅인데 본인 앞으로 등기를 넘길 수는 없지만, 농사는 마음대로 지어 먹을 수가 있었어요. 욕심을 내어 많은 땅을 부쳐 일 년이 지나고 두해 세 해 농사를 지면서부터는 먹고 사는 걱정은 하지 않았어요.”
옥희 삼촌은 건강하고 키가 훤칠하고 착하게 생겼다. 옥희 삼촌을 겪어본 땅 이웃 같은 곳에다 땅을 부치는 아주머니가 자기 동생을 중매해주었다. 옥희 삼촌은 땅 이웃, 아주머니 덕분에 그 집에 가서 찬물 한 그릇을 떠놓고 결혼식을 올렸다. 그렇게 가정을 이루어 딸 둘, 아들 셋을 낳고 처음에는 힘들었으나, 많은 땅에 농사를 짓고 좋은 집을 지어 부자가 부럽지 않다고 옥희 삼촌은 이야기를 끝낸다.
옥희가 보기에는 그 오랜 세월을 간단하게 요약해 이야기해주는데 모든 것을 체념한 듯 끝마무리가 왠지 쓸쓸해 보였다.
“짐승도 죽을 때는 고향 쪽으로 머리를 두고 죽는다더니”
옥희 막내삼촌이 본능적으로 고향을 찾았을 때는 이미 위암 판정을 받았다.
꿈에도 잊을 수 없는 고향, 미운마음 섭섭한 마음 다 내려놓고 용기를 내어, 몸져눕기 전에 찾아왔던 것이다.
어렸을 적에 삼촌에게 사랑받던 소녀 옥희가 중년 여인이 되어 삼촌을 끌러 안고 한 점의 거짓 없는, 가슴 깊은 곳에서 진한 눈물을 끌어올려 쏟아낸다.
“보고 싶은 것 잊으려고 ,참고 사느라, 얼마나 힘들었어요.”
“가슴에 묻어두고 말 못한 응어리들을 모두다 쏟아내세요.”
“오셨으니 다 풀어내고 마음 편히 가세요.”
삼촌의 만남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것을 직감한 그를 끌어안고 목 놓아 운다.
옥희 삼촌은 파주에 가서 모든 것이 다 좋았다고 말을 했다. 하지만 옥희가 보기에는 말 못하고 가슴속에 쌓아놓은 한이 태산 같은데 끝끝내 풀지 못하고 원망한번 못해보고 이산가족 아닌 이산가족이 되어, 형제들은 있으나 고아로 한을 안고 평생을 살았다.
나라를 완전 빈껍데기로 만들어놓은 ‘나쁜 전쟁’
번연히 고향과 부모와 형제를 곁에 놓고도 호적상 남남으로 갈라놓은 ‘나쁜 전쟁’
다시는 이 땅에서 또 벌어져서는 안 되는 ‘나쁜 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