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叩頭)」(2016)
임현, 제8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2017), 문학동네, 2017. pp. 9-36 (P. 352)
- 임현(1983-), 전남 순천, 2014년 《현대문학》 「그 개와 같은 말」 신인추천으로 등단.
** 잘 짜여진 글이다. 교사의 행위에는 양면성이 있다. 한편은 이기적이고 다른 한편으로 어쩔 수 없다는 우연이다, 필연이 아니다. 이기적이고 게다가 약간의 자유의지가 있어서 자신의 삶을 재단하면서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우연적인 것조차도 이기적으로 사고하여 합리화를 시키면서 살 것이다. .. 그러다가 한 참 지난 지금에는 이 글이 “경마장 가는 길”을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인지를 나도 모르겠다. (52LKG)
* 여기서 주인공 나는 윤리교사이다. 연주라는 학생과 관계 때문에, 연주는 학교를 나오지 않아 퇴학을 당했다. 그리고 어느 날 배가 불러서 교사를 찾아 왔다. 이미 소문에 연주는 불량학생이었다. 그녀에 대해 아무도 모른다. 교사는 징계 받은 것은 아니지만, 그 학교를 떠나 연고가 없는 먼 학교에서 교사를 이어갔다. 이미 15년이 흘렀다. 교사의 한 학생이, 전교의 일등이, 애들끼리 투다 넘어서 사경을 헤매다 죽었다. 그 병원에 사과하러 온 여인이 연주를 닮았다. 밀쳤다는 애는 보호관찰로 구치소로 갔다. 교사는 풀려나는 날 그 애를 찾아갔다. 그 교사는 무엇을 말할까? ... 그게 나라고 뭐 달랐겠니. - 나로서는 이야기가 마치 천하루밤의 이야기의 한 이야기처럼 읽혔다. 알라의 뜻대로... (51WMG)
「고두(叩頭)」라는 용어에서 어떤 굴욕의 의미를 담고 있는 듯하다.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 중국청나라 때 아홉 번 머리를 조아려 황제에게 최대한의 경의를 표시하는 인사법. / 삼궤구고(三跪九叩)라고도 한다. 궤(跪)는 무릎을 꿇는 것이고, 고(叩)는 머리를 땅에 닿게 한다는 뜻이다. 무릎을 꿇고 양손을 땅에 댄 다음 머리가 땅에 닿을 때까지 숙이기를 3번, 이것을 한 단위로 3번 되풀이하였다. / 1623년에 인조는 반정(反正)을 일으켜 광해군 정권을 몰아냈다. / 사실 ‘삼배구고두’는 유목 민족에게는 집권자에 대한 최상의 경의 표시로 청나라의 입장에서는 자연스러운 의전 절차라고 생각했겠지만, 그동안 오랑캐라고 무시했던 청나라의 황제에게 조선의 국왕이 아홉 번이나 머리를 조아려야 한다는 것은 조선의 군신들에게는 매우 충격적인 항복 의식으로 받아들여졌다. 1637년(인조 15) 1월 30일에 인조는 용골대의 인도로 단(壇) 아래에서 북쪽을 향해 자리를 잡았다. 집례자의 구령에 맞춰 인조는 청 태종을 향해서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예 즉 삼배구고두례를 거행했다.
청 태종은 1636년 12월에 대군을 동원해서 남한산성에 피신한 인조와 대신들을 포위 압박했다. 인조는 고립무원의 상황에서 45일간의 항쟁을 풀 수밖에 없었고 삼전도에 설치된 수항단(受降壇)에서 치욕적인 항복 의식에 참여했다. (51WMG)
** 시작에서 아버지의 행위들과 다른 나를 구축한다고 생각한 아들이 있다. 그 아들이 윤리교사가 되었다. 초임지에서 부딪힌 연주라는 학생이 아이를 배고 퇴학 당했다. 누구의 아이냐고 따지지 말자. 그리고 15년 지난 이후에 연주의 아이인 듯한 아이가 싸움하여 친구를 죽이고 보호소에 갔다. 그가 출감하는 날, 나 주인공은 그 아이를 만나러 갔다. 그가 아이에게 인간들이란 ‘다 이기적이다’고 한다. 그럴까?
높이의 철학이 이기적이다. 상층의 사유에 젖으면 자기 밑의 사람들을 부리고 명령하려 든다. 남북 공동의 시대, 7천5백만의 시대에 깊이의 철학이 필요하다. 120여년동안 앙글로색슨의 사고에 젖어 이기심의 발로라고 하더라도, 이제는 자유, 자주, 주체의 파동(결)의 사고가 필요하다. 오랜 관습과 개인의 습관은, 시대의 환경과 정황에서 깊이에서 올라오는 창발과 다양한 갈래의 선들의 펼쳐짐에 의해, 달리 사는 방식으로 전화하는 중일 것이다. 달리 사는 삶의 과정이 일반적 습관이 되는 데도 노력이 필요하다. 변화에는 언제나 목마른자 샘을 파듯이, 필요를 느끼는자 행동하고 실천한다. (52LLF)
# 「고두(叩頭)」(2017) 9-36
- 임현(1983-), 전남 순천,
오랫동안 전파상을 운영했던 내 아버지는 다리를 절었단다. 군대에서 사고를 당했고 그것으로 유공자가 되었지. 이후로는 생계에 필요한 기술을 배워서 종일 앉아서 일했는데 장애인에게 제공되는 혜택을 꼬박고박 챙기는 사람이었다. 언젠가는 아버지와 단둘이 기타를 탄 적이 있는데 아마 입석이었을 것이다. 그랬으므로 빈자리를 찾아 여러 번 옮겨 앉아야 했지. 여행을 한 것은 아니고 먼 친척의 조문을 가는 길이었다. 그 때 나는 아버지의 당당한 태도가 부끄러웠는데 눈치 보지 않고 비켜달라고 할 때까지 버티는 떳떳함이 싫었단다. .. (9, 첫분단 앞부분)
그 여학생의 이름은 연주. / 나의 수업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무례한 아이였다. 교무실로 따로 불러내어 나는 그 학생을 훈계하려 했다. (13)
4. / 나를 위선자라고 욕하게 싶겠지. 그러나 나는 결코 그런 사람이 아니란다. 미성년자의 몸이나 탐할 만큼 성욕을 억제하지 못하는 파렴치한이 내가 아니라는 말이다. 무엇보다 그런 일을 나는 원하지 않았다. 이 후에도 여전히 연주에 대한 잘못된 소문들은 무성하게 자라고 농담들이 계속되는 데도 당신이 뭘 아느냐고 나는 화내지 못했단다. 연주가 그것을 원하지 않았으니까. / “그런 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닌걸요. 오히려 확신만 심어줄 뿐이에요.” (21)
이곳에 오기 전에 나는 유족들을 먼저 만나고 왔단다. 그렇지, 내가 가르치던 우리 반의 전교 학생회장, 반평균을 높여주던 그 아이. 그 애의 아버지가 내 손을 붙잡고 고맙다고 하더구나. 고생이 많았다고, 덕분에 장례를 잘 치를 수 있었다고. 퇴근길에 나는 매일 같이 그곳에 들러 내 학생을 간호했단다. 진심으로 그 애가 깨어나길 바랐다. 병동의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알아챌 수 있었지. 절대 남에게 해를 끼칠 만한 아이가 아니었다. 불량한 녀석들과 시비를 붙었고 누군가 그 애를 밀쳐 계단을 굴렀는데 분명 악의가 있었던 거라고 부모는 믿고 있었단다. (31)
내가 어떤 인간인지 그들이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나 역시 너를 알아본 것은 아니었단다. 그러나 네 엄마만큼은 분명 낯이 익었다. 병원 로비에 버젓이 서 있던 그 여자. 하마터면 그대로 달려가 머리채를 휘어잡을 뻔 했지. 몰려든 사람들 앞에서 할 수 있는 가장 더러운 말로 욕보일 수도 있었다. ....어딘가 비어있는 시선. 정작 자신은 이 사건과 무관하다는 듯이. 아니라면 모든 것을 인정하고 체념한다는 듯이 태연해 보였다. 하지만 그 자세만큼은 여전히 완벽하더구나. 무릎을 꿇고 바닥에 머리를 조아렸다. 아이의 엄마가 참지 못하고 후려쳤다. (32-33) [아이(전교일등) 엄마가 연주로 보이는 가해자 엄마에게 .. 고두(叩頭)]
... 다만 아무도 찾아가지 않는 사내아이 하나가 거기 오래 남아있더구나. 반성할 줄 모르는 눈매에 겉멋만 잔뜩 든 애송이. 이 사이로 침을 뱉고 되도록 불량스럽게 보이려고 노력하는 그 아이를 보니 어쩐지 용기가 생기더구나. 그래도 될 것 같았다. .. 내가 그 아이 앞으로 다가갔지. 그리고 나를 똑바로 쳐다보는 잘 마모된 조약돌 같은 머리통을 휘갈기며 말했다. / “너는 네 부모에게 미안하지도 않니?” / 차마 너에게 하지 못할 훈계를 늘어놓았다. 마치 그게 너인 것처럼 아버지 행세를 하려 했단다. 다를 것도 없었지. 누군가 이 아이의 인생에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니? 사납게 버둥거리며 고함치는 그 아이의 마른 어깨를 붙잡고 너를 위해 준비한 이야기를 들려주기로 마음먹었단다. 얘야, 내말 좀 들어 보렴 인간들이란 게 말이다. 원래 다들 이기적이거든. 생태적으로 그래. 처음부터 그냥 그렇게 생겨먹은 거란다. / 그게 나라고 뭐 달랐겠니. (35-36, 마지막 문단까지) (2:38, 52LKG)
(3:9, 52LLF)
설1983임현2017고두.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