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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백두산이나 연길을 여행하는 분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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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딸까지 대학에 들어갔고 아들이 내년 초에 입대가 예정되어서 연중에 온 가족이 멀고 잘 갈 수 없는 유럽같은 곳으로 여행을 가기로 했었다.
막상 애들이 학교에 다니고 내가 별로 어려운 직장은 아니지만 자리를 많이 비울 수가 없어서 미루다가 여행을 못 할 처지에 놓였다.
언제 갑자기 아들과 딸과 아내와 같이 여행을 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렸다가 정말 의미있는 가족여행을 늘 기리며 언젠가는 꼭 가서 2003년도에 이어서 색다른 가족여행의 경험을 기대한다.
그래서 그동안 해년마다 한번씩 가깝든 멀든 갔었던 외국여행의 기회가 없었나 싶었다.
갑자기 백두산을 다녀오라는 회사 사장님의 말씀에 후닥닥 해서 11월 20일 금요일 오후에 출발해서 11월 22일 일요일 오후에 들어오는 여행상품을 겨우 만들어서 정말 번개처럼 다녀왔다.
여행이 확정되는 날, 롯데 면세점에 가서 아내와 딸이 원하는 명품 핸드백을 하나 사서 보세구역에서 찾기로 한다.
400불이 넘어서 나올 때 관세를 물어야 될 지도 모른다고 하는 데...
출발하는 날 아침에 회사에 나와서 차 한잔하고,
이곳 저곳에 연락해서 나의 건재를 알리기도 하고.
혹시 나를 찾으면 휴가를 갔다고 전해라고 하고 떠난다.
같이 갈 동료 직원 3명과 함께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점심을 먹고,
보세구역 창구에 와서 드디어 비싼(?) 핸드백부터 찾아서 직원의 배낭이 모셔두고...
혹시 돌아올 때 걸려서 세금을 물까봐 포장지도 다 뜯어서 그에게 맡겼다.
비행기를 타면 늘 기쁘지만 특히 우리나라 비행기는 더욱 더 좋았다.
편하게 말할 수 있어서 먹는 것과 서비스를 받는 모든 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기내식을 먹을 때 늘 느끼지만 이것을 우리나라 고속도로 휴게소 같은 데서 팔 수 없을 까?
점심먹은 지 두시간밖에 되지 않았지만 맛있게 먹고,
중국의 식성에 맞추기 위해서(?) 칭다오맥주도 두 캔이나 청해서 마셨다.
요즘 많이 좋아져서 핸드폰의 로밍도 필요없이 자동으로 된다고 한다.
이륙후 한참을 지나서 컸던 핸드폰을 켜보았다.
위치추적을 한다고 나오더니 방금 4시 몇 분이 3시 몇 분으로 바뀌고 있었다.
이제부터 걸려오는 전화도 받으려면 돈이 들어간다고 했다.
문자가 몇 건이 오는 데 문자 받는 것은 괜찮다고 한다.
드디어 조선족 자치주 연변의 최대도시인 연길공항에 도착했다.
4시가 조금 넘었는 데 매우 컴컴하다.
우리 시간으로 해봐야 겨우 5시가 조금 넘었을 뿐인데...
젊은 남자 가이드가 기다렸다가 우리 일행을 맞아 주었다.
스타렉스를 모는 운전기사는 한족(漢族)인 데, 꽤 나이가 들어보였다.
바로 저녁식사를 하자고 했다.
연길공항부터 한글로 쓰여져 있다.
연변일대의 모든 곳에 간판은 한자와 한글을 병기하고 있었다.
조선족 자치구이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고 한다.
가이드가 지극히 간단하게 말했고, 나도 들어왔지만 실제로 광활한 중국땅에 이렇게 우리의 말과 글이 쓰이고 있다는 데 대하여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여기 조선족은 이곳에서 만큼은 한족이나 중국의 타 민족보다 훨씬 잘 살고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 면적의 반이상이나 되는 이 중국땅에서 모국에는 영어가 그렇게 쓰이고 있는 데 불구하고 여기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우리말과 글이 이렇게 존중을 받고 있다는 생각에 이곳에 살고 있는 조선족들에게 정말 감사한 마음이 일고 있었다.
그 반면에 지금 우리가 이들에게 어떻게 하는 지를 생각케 한다.
동포라면 미국이나 일본이나 서구에 가있는 사람에게는 지극히 적극적이고, 여기는 어려울 때 이 곳으로 와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려던 깨인 선각자나 그 후손에게는 어떻게 하고 있는 지를...
공항에 내려서 한겨울을 추위를 느끼면서 중국 간자체로 '한라산'이라고 쓰여진 식당에 도착했다.
저녁식사는 불고기구이.
달궈진 후라이팬에 불고기와 삼겹살을 구워서 연길에서 첫 식사를 하고 있다.
가이드가 첫날 첫식사라고 빙천비주(冰泉啤酒, 맥주)를 써비스로 줘서 세병을 시원하게 잘 마셨다.
바로 백두산이 가까운 이도백하(二道白河)로 이동하려다가 먼저 발마사지를 받기로 했다.
근처에서 잘하는 곳으로 이동을 하면서 우리나라의 6,70년대 간판의 모양인 빨간 네온싸인을 많이 보는 데, 유난히 개장국집이란 식당들이 많이 있다.
고급식당으로 보이는 데 버젓이 개장국집이란 간판이 즐비함을 보고 또 한번 놀란다.
본국에는 아직 허가받아서 도살하는 개고기 유통 경로도 하나 정비되지 않았는 데, 여기서는 이렇게 내놓고 파는 사람이나 먹는 사람이 모두 떳떳하다.
한국에서도 개고기를 잘 먹지 않지만 여기의 전통적인 개장국의 요리를 맛보고 싶어서 내일 저녁은 개고기를 먹자고 내가 제안을 한다.
발마사지를 같이 간 직원들과 1시간 이상을 즐겼다.
물론 이런 발마사지를 하는 사람들은 거의가 조선족이 아닌 한족이라고 했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우리에게 성심껏 열심히 해주었다.
다시 눈길을 달린다.
눈길에 익숙한 운전기사와 차량 정비가 잘 되어있어 눈길에 시속 80킬로 이상을 무리없이 잘 달리고 있었다.
자정이 다되어서 이도백하에 도착했다.
거의 여름철 3개월 영업으로 일년을 사는 사람들이라 호텔은 너무나 썰렁했다.
장백호림대하(長白虎林大厦)에 짐을 풀고 씻으려고 하니 계속 녹물만 흘러 나와서 가지고 간 식수로 대충 양치만하고 팩소주 몇 개와 김으로 한잔 마시고 바로 잠을 잘 수밖에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길을 나섰다.
밖에는 눈길과 빽빽하게 길게 뻗은 참엽수림만 보인다,
산책을 하다가 혹시 누가와서 잡아간다면 아무도 말릴 길이 없다는 생각에 얼른 뒤돌아서 다시 호텔을 향한다.
대충 영하 20도이상은 될 듯했다.
여행안내서에 차량으로 이동을 하기 때문에 파커와 등산화는 필요없다고 생각한 것이 큰 오산이라는 것을 느끼면서 다시한번 공항에서 면세로 산 파커의 고마움을 느끼면서 걷고 있었다.
이 추위에서도 빨갛게 해가 떠려고 하고 있었다.
물론 백두산의 해돋이를 봤으면 더 좋겠지만 백두산의 해돋이를 보려면 폭포근처에서 자고 새벽에 올라가야 하므로 지금 계절에는 그렇게 할 수가 없다고 했다.
그렇지만 백두산을 앞에 둔 호텔의 옥상에서의 해돋이도 장관이라고 생각하고 혼자서 휴대폰 카메라로 그것을 담고 있다.
씻을 물을 7시이후에 준다고 해서 아예 씻는 것을 포기하고 나중에 백두산의 온천욕을 하기로 마음먹고 아침을 먹으려고 일행이 식당으로 내려갔다.
처음 인상이 좋지 않은 호텔이라 그런 지 아침 메뉴는 다양하고 많았지만 거의 먹을 수가 없을 정도로 내 입맛에 맞지 않았다.
그래서 가지고 간 고추장과 김과 거기서 준 된장국으로 겨우 아침을 해결한다.
이도백하의 산골의 호텔이 낭만이 있고 상당히 좋은 곳에 위치해 있었지만 계절에 맞지 않은 이방인을 반기지는 않았다.
차라리 연길 대우호텔에서 자고 아침 일찍 출발을 했으면 더 좋을 듯 했다.
차를 타고 백두산 입구에 도착했다.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고 오고 있었다.
한국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중국의 남방에서 온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주차장 근처에서 뚜꺼운 옷을 빌려 입는 사람들도 꽤 많았다.
셔틀버스를 타고 장백폭포로 올라가는 중에 가이드가 깜짝 놀란듯이 셔틀버스 안내원 여자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불길한 이야기임을 감지하고 뭐냐고 물었더니 오늘 천지(天池)를 관광할 수 없다는 말이라고 한다.
'천지(天池)를 보러 왔다가 천지(天池)를 못보고 간 사람이 천지(天地)'라고 한다는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다.
회사에서 천지의 기운을 받으라고 보내줬는 데, 나는 가이드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올라가야 된다.
안되면 눈을 치우는 차량을 임대해서라도 올라가야 된다고 단단히 일러두었다.
셔틀버스에 내려서 장백폭포로 올라가고 있다.
쌓인 눈이 바람에 흩날려서 꽤 얼굴을 때려서 살이 에는 듯한 느낌을 들게한다.
태어나서 이렇게 심한 바람과 눈을 맞아보기는 처음이다.
아무튼 운동화같은 신을 신고 올라가는 사람은 나와 같이 간 동료 한사람뿐 인듯 했다.
물론 여행사에서 나온 팜프렛 덕분이다.
아무튼 백두산을 올라갈려면 방한화 등산화는 필수라고 생각한다.
장백폭포를 올라가는 중에 온천에서 삶은 계란도 팔고 있었다.
물론 내려와서 먹었지만 4개에 10元(약 1,700원)인데 보통과는 달리 노른자가 먼저 익고 흰자위를 익는다고 한다,
유황이 많이 함유되어서 그렇다고 했다.
눈보라를 맞으면서 장백폭포에 도착해서 사진을 찍고 내려왔다.
눈이 쌓여서 반은 얼었고 반 정도 폭포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장관이라는 표현을 쓰기에는 좋다고는 할 수 없었다.
내려와서 천지를 가야할 시간인 데, 아직 천지는 올라갈 수 없다고 했다.
기다리면 제설작업을 잘해서 올라갈 수도 있다고 했지만 영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내가 제안해서 일단 온천부터 가기로 했다.
온천에서 온천욕을 하면서 아침에 못한 샤워를 하고 백두산의 온천수로 처음으로 반신욕까지 할 수 있었다.
노천탕이 있어서 아까 본 장백폭포 주위를 보면서 즐길 수 있었지만 사진을 찍을 수는 없었다.
나와서 여기저기 사진을 찍고 있자니 가이드가 떨리는 목소리로 천지를 올라갈 수 있다고 반갑게 말해주었다.
아까 그에게 책임지고 올라갈 수 있도록 하라고 한 나 자신이 꽤 부끄럽고 미안한 순간이었다.
천지를 오르락 내리락하는 전용 찝차에 일행이 타고 2,30분 정도를 달려서 천지 입구에 도착했다.
차에 내리니 엄청난 바람과 날리는 눈속을 가기가 쉽지 않았다.
오분거리밖에 되지 않지만 가는 길과 천지에 도착해서 서있는 것 조차도 너무 힘들었다.
사진을 찍고 흔적을 남기기에 급급해서 천지를 보고 경건하게 정기를 받는 것도 잊어버렸다.
그렇지만 그나마 이렇게 천지를 보고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진 자체가 큰 다행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지난 일주일을 통털어서 처음 올라갔다고 한다.
이제 다시 찝차를 타고 눈길을 헤쳐서 내려오고 있다.
내려와서 늦은 점심을 백두산 입구 강원도식당에서 먹는다.
말이 강원도 식당이지 완전 중국사람들이 운영하는 곳인 것 같아서 강원도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더니 할머니가 강원도 출신이라고 한다.
여기도 식성좋은 나와 음식이 맞이 않아 가져간 고추장과 김과 참치로 해결했다,
그렇게 많이 까다롭지도 않는 데...
오면서 故 박경리님의 '토지'의 무대인 용정을 지나도록 부탁해서 그렇게 가기로 했다.
백두산 천지를 본다고 너무 많이 대기를 해서 그런 지 용정에 도착하니 거의 5시가 넘어서 어두워졌다.
일송정과 해란강은 생략하고 대성중학교(현, 용정중학교)교정에 있는 시인 윤동주의 서시가 담긴 시비(詩碑)에서 사진을 찍는다.
어두어서 자동차 헤드라이트를 비춰서 겨우 촬영을 하고...
다시 연길로 왔다.
호텔에 도착하기 전에 어제 말한 개장국을 잘 한다는 식당으로 갔다.
그 식당은 한국에서 말하자면 아주 고급 레스토랑에 해당하는 곳으로 해홍미식성(海虹美食城)이란 곳이다.
옛날에 우리 조상들이 드셨을 개장국이라는 생각을 했다.
국물이 맛있었다.
단지 좀 아쉬운 것은 화학조미료를 쓴다는 것이 좀 걸렸지만 그래도 좋았다.
잘 보전된 우리 음식문화를 보는 듯해서 나오면서 감사하다고 주인에게 말하고 나왔다.
그동안 잘 못 먹었던 식사를 한꺼번에 잘 먹었다.
대종대우호텔에 도착해서 벌써 마지막 날 여장을 풀었다.
대우라는 이름이 들어가긴 했어도 이제 대우는 옛날 대우가 아니고 연변의 동포들이 인수한 호텔이 되었다.
호텔이 깨끗하고 좋았다.
밖에 나가서 술을 한잔 마시려다가 직원들만 보내고 나는 호텔에서 쉬었다.
북한방송을 보자니 참으로 유치하다.
어느 음악을 전공하는 젊은이가 가기 싫은 군대를 억지로 들어가서 복무중에 우리나라의 강재구소령처럼 동료를 위하고 장렬히 순직하는 모습을 그린 다큐멘터리인 것 같은 데 그것을 보고 있자니 반공교육이 저절로 되는 것 같았다.
반면에 연변방송을 보고 있으니 참 자랑스럽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되었다.
우리말과 우리글을 쓰면서 '우리나라 베이징 올림픽의 이야기'를 소개했을 때 잠시 오보가 아닌 가 착각도 하기도 했다.
여기서 우리 조선족이 말하는 우리나라는 중국을 뜻하기 때문이다.
짜임새있는 조선족의 훌륭한 성장을 바라보며 남과북을 연결하는 연변자치주의 역할을 기대하기도 한다.
셋째날 아침에 일어나서 거리에 나섰다.
추운날씨에 많은 사람들이 총총걸음으로 제각기 분주히 나서는 모습에서 부지런함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거리에 간판들은 중국간자체와 한글이 병기되도록 되어 있어서 북경이나 상해에서는 궁금했던 글들이 저절로 해석이 되면서 공부를 하게 되었다.
몇 가지를 소개하자면 초시(超市)는 수퍼마켓을 말하고,
약방(葯房)은 약국이다. 우리나라의 약(藥)을 이렇게 간자체로 표기하는 것이다.
반점(飯店)은 대개 고급호텔을 표기한 것이고, 고급 호피스텔을 겸한 호텔을 대하(大廈 :다사)라고 하는 것 같다.
버스광고에 '다시다'가 크게 붙어있어서 아까 말한 화학조미료의 사용이 많은 듯 하였다.
아침을 잘 먹고 짐을 챙겨서 나왔다.
박물관에 갈려다가 그냥 백화점 쇼핑이나 가자고 제안을 했다.
연길시내의 대형백화점에서 술과 차를 구경하고 사기도 했다.
그리고 옷 매장에 가서 어제 내가 산 옷과 비슷한 옷이 있어서 가격을 물었더니 2000위엔정도라고 하니 34만원이니까 1.6배가량 비싼 것이다.
그저께 입국할 때 조선족들이 쿠쿠밥통을 하나씩 사서 들어오는 것을 봤는 데, 옷도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사서 오면 비행기삯이 빠질 정도라는 말이 맞는 것 같았다.
밥통은 처음에 한국에서 30만원주고 사서 들어오면 백만원에 팔린다고 했다.
잊어버릴까 싶어서 빨리 정리를 했다.
어려운 여건인데, 회사에서 배려해줘서 직원 4명과 이렇게 좋은 여행을 하게 되어서 정말 기뻤다.
그리고 늘 느끼지만 중국이나 일본여행이 유럽이나 다른 나라 여행보다 편하고 즐거웠다.
특히 이번 연변자치주 탐방은 우리 민족이 이렇게 광활한 대지에서 어려운 가운데서 열심히 사는 것을 보고 다시한번 더 잘살아보자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우리나라 비행기를 타고 맛있는 기내식과 청도맥주를 끝으로 여행이 끝났다.
네명이서 별도의 해단식없이 기내에서 조용히 외쳤다 '굿바이 우리 연변, 포에버 우리 연변'
첫댓글 와..!..저기가 백두산 천지구나..~여행기 잘 읽었습니다..(살을 에는 바람, 눈보라가 사진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네요..)
덕분에 제가잘~다녀왔습니다 땡~큐
굿바이 ~ 포에버~ 멋있는 문구입니다. 사진을 보는 순간 가고 싶은 사람 천지~이겠습니다. ^^ 예전에 은하철도 999 라는 만화속 주인공 '철이'가 생각나는 분위기 입니다. 로스트 인 스페이스...또는 로보캅, 특수임무를 띤 특공대~ 암튼 멋있으십니다. 천지의 기운을 이곳에 ~~
덕분에 백두산 기행 잘 했습니다. 겨울 추위가 바로 앞에 있다는 것을 사진을 보니 느끼겠네요. 아휴 춰라!호^^호 ^^^
단장님의 꼼꼼한 성격이 느껴지네요~ 마치도 제가 다녀 온듯 하네요 ~^^*
기행기 잘 읽었습니다.. 부러우면 지는거라고 누가 그러던데여..넘 부럽습니다..^^
백두산으로 훌쩍 떠나고 돌아오신 단장님을 뵈니 저도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픈 마음이 드네여..;;
어설픈 기행문 올려놓고 좀 쑥스러운 마음이 들었는 데, 가브리엘까지 좋은 말 해 줘서 너무 감사합니다. 꼼꼼하다는 말씀은 거의 처음 듣지만 싫지 않네요. 전임 단장님의 넓으신 마음이 느껴집니다. 은하철도 999! 그러고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답글이 예술입니다. 안나아버지, 같이 한번 가면 제가 가이드할 수 있습니다. 뮤즈님, 감사합니다. 정말 우리 민족 대단함을 느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