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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림 신앙에 있는 데살로니가의 성도들을 위해 권면하는 바울
데살로니가전서 5장 12-22절 / 12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13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14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15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서로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 16항상 기뻐하라 17쉬지 말고 기도하라 18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19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20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21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22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데살로니가에서 사도 바울과 실루아노(실라)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자 데살로니가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듣고 기쁨으로 받아들여 그동안 섬겨왔던 우상을 버리고 살아 계시고 참된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보내실 재림을 소망하며 믿음에 굳건히 있었습니다. 그런 데살로니가 교회에 사도 바울은 그들이 열렬히 고대함에 있는 재림이 그들에게 어떤 것일지에 대해 설명을 해 주어 큰 위로와 소망에 있게 하면서 불신자에게는 재림이 갑작스럽게 임하는 재앙이 될 것이나 그리스도인에게는 그들의 믿음을 헛되게 하지 않을 것이어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하고자 우리를 택하신 은혜를 따라 죽은 자이든 또한 살아 있는 자이든 모두를 영원히 함께 살도록 그의 나라로 데려가실 것이니 항상 정신 차리고 깨어 있을 것을 말하였습니다.
그리고서 데살로니가전서를 끝내는 마무리를 하는 것에서 해 주시는 권면을 5장 12-22절에서 하고 있는데 (1)5장 12-13절에서는 교회와 함께 있으면서 수고하고 지도하며 훈계하는 자들을 (a)귀히 여기며 (b)존경하여 잘 따를 것을, (2)5장 14절에서는 그들과 함께 하는 믿음의 형제들을 비롯한 그들을 핍박하는 악한 자들을 어찌 대해야 할 것인지를 권면하는데 (a)믿음의 형제들에게서 (ⅰ)게으른 자들1)을 권계하며 (ⅱ)마음이 약한 자들2)을 격려하고 (ⅲ)힘이 없는 자들3)을 붙들어 주며 (b)믿음의 형제들을 핍박하는 악을 행함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는 오래 참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5장 15절에서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서로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고 하는데, 배종열 교수는 이 구절이 어떤 것으로 있는 것인지를 말하기를 14절에서 해 주시고 있는 권면의 마지막에서 해 주시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시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음에 있어야 하는데, ‘누가 누구에게든지’ 오래 참으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누가’는 핍박을 당함에 있는 그리스도인인 믿음의 형제들이며, ‘누구에게든지’는 그리스도인을 핍박함으로써 그리스도를 배척함에 있는 악한 자입니다. 곧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과 그들의 충동에 의해 부하뇌동(附和雷同)에 있는 이방인입니다. 바울은 믿음의 형제들 중 누구도 악한 자 그 누구에게든지 – 그 누구를 대하든지 :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항상 선을 따르라고 하였습니다.4)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배종열교수는 데살로니가교회의 상황에서 이해를 하여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데살로니가는 항구도시로 무역을 통한 상업도시로 발달되어 있었습니다. 그러한 데살로니가는 ‘다신론 신앙’에 있는 다양한 우상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습니다. 이 우상숭배의 신앙과 상업도시의 특성은 함께 묶여 있어서 우상숭배에 의한 상업도시에 있었기에 우상산업으로 움직이는 도시를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우상숭배와 데살로니가 도시의 발달은 떼어 놓을 수 없는 관계였습니다. 그런 데살로니가에 사도 바울과 실라의 복음 전파로 많은 경건한 헬라인과 그 도시의 귀부인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옴으로 인해 큰 변화에 있었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그 많은 사람들이 그동안 숭배해 왔던 우상을 순식간에 내던짐으로 인해 우상산업에 의지해 있던, 곧 우상과 관련된 산업에 종사하여 밥 먹고 살았던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우상산업의 경제가 마비되어 밥줄이 끊어지는 큰 타격을 입게 됨으로 들고 일어났습니다. 사도행전 17장 5-7절에 의하면 사도 바울과 실라의 복음 전파를 시기하는 유대인들이 거리의 불량배들을 모아 떼를 지어 성을 소동하게 하였는데, 그들은 사도 바울과 실라를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이곳 데살로니가에 와 여기서도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다”면서 “이 사람들이 다 가이사(로마 황제)의 명을 거역하고 가이사 대신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를 섬기라고 한다”고 말하였습니다.5) 이런 그들은 사도 바울과 실라만 위협하며 핍박하는 것이 아니라, 야손을 비롯한 그리스도인의 집을 습격하여 잡아들였습니다. 그에 따라서 데살로니가의 그리스도인들은 큰 핍박을 받는 고난에 있었습니다. 그런 와중에서도 그들은 사도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피신시켜 생명을 보호하였으며, 사도 바울과 실라가 데살로니가에 없는 상태에서도 주께로부터 받은 복음을 성령을 통해 큰 확신을 가지고 붙들고 있었으니 많은 시련과 슬픔 속에서도 성령께서 주신 기쁨으로 사도의 가르침을 따라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됨으로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모범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한 그들은 자신들이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살아 계신 참 하나님을 섬기게 된 것을 감추지 않고 말하였으며,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는 장차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에서 구원하여 주실 유일한 구세주이심과 그 하나님의 아들이 하늘에서 다시 오실 날을 여러분이 열렬히 사모하여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말하여 사도 바울과 실라가 증거한 말의 권능에 그들 또한 있었습니다.
이는 핍박 속에서 있는 일이었습니다. 데살로니가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라 하는 그리스도를 주로 섬기는 자와 함께 한 사실로 핍박을 받는 고난에 있었으며, 그들 자신들 또한 예수라 하는 그리스도를 주로 섬김으로 핍박을 받는 고난에 있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배척함에 있는 데살로니가의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데살로니가의 그리스도인에게 핍박을 행하는 것은 악을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을 대할 때 데살로니가의 그리스도인들은 어찌 대할 것인지에 대하여 바울은 권면합니다. “너희에게 악을 행할 때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항상 선을 좇으라”고 말입니다.
왜 이처럼 하라고 바울이 권면하는가 하면, 그 이유를 18절 후반절에서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말입니다. 여기서 지시대명사 ‘이것이’(this)는 앞에 있는 말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뒤에 나오는 말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대개의 경우는 ‘이것이’가 앞의 구절인 16-18절의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를 가리킨다고 봅니다. 반면에 배종열교수는 이 지시대명사는 앞의 구절에서 해 주시고 있는 말이 아닌 뒤의 구절인 19-22절에서 해 주시고 있는 말인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를 가리킨다고 하였습니다. 가리키는 것이 무엇을 지시하는 것이냐는 문맥을 통하여서 판단하는데, 연관성, 논리성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며 논리성을 가지고 본다면 15절에서 악과 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18절 후반절에서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항상 선을 좇으라”고 악과 선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면서 19-21절에서 항상 선을 좇아야 하는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려주기를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라고 말하며,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1)‘성령을 소멸하지 말라’는 그 뒤에 나오는 (2)‘예언을 멸시하지 말라’에 대한 또 다른 표현입니다. 성령의 사역은 예언 사역인데, 예언 사역에 있으시는 성령의 사역을 소멸한다는 것은 데살로니가에서 “예수는 주이시다”라고 고백하는 신앙에 있어나가게 하시는 성령의 사역에 반하는 행동에 있는 것이니 이는 선을 좇음에 있는 것이 아닌 악을 악으로 갚음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가룟인 유다의 배신에 의해 대제사장이 보낸 무리에게 사로잡힐 때 사도 베드로가 말고라고 불리는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칼을 내리쳐 잘랐는데, 이를 본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칼을 칼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요 18:11)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좀 더 자세하게 기록해 주고 있으니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하시더라”(마 26:52-54)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에게서 보듯이 악은 악으로 갚는 것이 아니라 예언 사역을 해 나가시는 성령의 사역을 좇음에서 상대해야 하며, 그런 까닭에 성령의 사역에 의한 예언 사역에 의해서 맺어지는 선한 열매를 생각하고 누가 악하게 행동할지라도 누구에게든지 오래 참음으로 있어나가야 할 것(14절 후반절)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3)그러한 것에서 또한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라”고 권면이 되고 있습니다. 문자적인 뜻은 “모든 것을 시험하여 입증된 좋은 것을 확고하게 붙들고 견고하게 서라”는 것인데, 핍박의 고난을 통해 데살로니가의 그리스도인은 예언이 주는 구원 얻는 믿음에 굳건히 서나감에 있을 것이 권면되고 있습니다. (4)그러하기에 예언에 비추어 보아서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악’은 효력에 있어서 파괴적이고 성질에 있어서 사악성을 띤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문자적인 뜻은 “모든 형태의 악으로부터 스스로를 삼가라”입니다. 이는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에 대한 또 다른 표현으로, 어떤 형태로이든 악을 악으로 갚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선을 좇음에 있어 선으로 악을 이겨나가야 할 것에서 해 주시는 말입니다.
정리하면 데살로니가의 그리스도인들이 (1)교회의 지도자들을 귀히 여기고 존경할 것, (2)그리고 교회의 믿음의 형제들을 살펴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줄 것, (3)또한 믿음의 형제들을 핍박하는 악을 행함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는 오래 참음에 있을 것은 (4)예언의 말씀을 따라 살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따름에 그들의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5)해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해하고 이를 15절에서 18절 상반절에서 말해 주시고 있는 항상 기뻐하며 기쁨으로, 그리고 늘 기도하며 기도로, 또한 범사에 감사하며 감사함으로 받들어 따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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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게으른 자들’의 문자적인 뜻은 ‘대열을 벗어난 자들’로 군대에서 사용하는 용어인데, 행군 중 대열에서 이탈하여 낙오된 병사를 가리킨다. 이는 믿음의 형제들과는 달리 그들에게서 벗어나 제멋대로 행하며 그리스도의 교회된 믿음을 세워 나가는 데는 게으르며 일하지 않는 자들이다.
2) 마음이 약해서 외적 시련을 잘 견디지 못할 뿐 아니라 구원의 확신에 견고히 서 있지 않고 심판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다.
3) 어려움에 처하면 쉽게 낙담하고 유혹에 쉽게 넘어가는 영적으로 연약한 자들이다.
4) “선을 따르라”에서 ‘따르라’에 사용된 원문의 단어는 그 뜻이 ‘따르다’, ‘뒤따르다’, ‘학대(박해)하다’ 외에도 ‘추구하다’로도 쓰이고 있다. 본 구절에서는 ‘(열렬히) 추구하다’, ‘(열정적으로) 노력하다’의 뜻으로 쓰였다.
5) 사도행전 17:6에서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의 ‘천하’는 ‘로마 제국’을 뜻하며, ‘어지럽게 한다’는 경멸적인 의미로 하는 말인데 ‘사회의 기존 질서를 뒤흔들고 소요를 일으킨다’는 뜻에서 쓰고 있는 것으로 사도행전 21:18에서는 ‘난을 일으킨다’라는 의미로 번역되기도 하였다. 이는 사도행전 17:7에서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말하되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하더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는데, 사도 바울과 실라를 가이사 외에 다른 임금을 내세워 따르며 로마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고 몰아가는 악의적인 모략이다.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Augustus, B.C. 27-A.D. 14 재위)는 B.C. 44년에 암살된 그의 양부 줄리어스 시저(Julius Caesar)를 신격화하는 법령을 만들었으며, 그 후로 로마 황제들은 사후에 다음 황제와 시민에 의해서 신처럼 받들어졌는데, 황제가 아닌 죽은 다른 어떤 자를 신으로 섬기는 것은 로마 황제의 권위와 동일시하여 다른 임금을 섬기는 것이 되어 가이사의 법령을 거역하는 것이 된다. 그런데 사도 바울과 실라, 그리고 그들에 의해서 그리스도인이 된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신격화 하고 있는 로마 황제를 숭배하지 않고 다른 임금을 섬긴다며 예수라고 하는 그리스도를 따름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배척하는 데살로니가의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은 죽은 로마 황제 숭배를 거역하고 죽은 예수를 신격화하는 것으로 몰아가 사람들을 미혹함으로 가이사의 명을 어김에 있게 하는데, 그들을 놔두면 큰 세력이 되어 가이사의 힘은 약화될 것이므로 로마에 큰 위협이 될 것이란 모략에 있었다.
*2022년 4월 3일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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