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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활력·중독의 두얼굴 ‘커피’ ‘약물 중독’하면 제일 먼저 대마초나 히로뽕 같은 무시무시한 마약이 떠오르지만, 세계적으로 가장 즐겨 마시는 음료인 커피도 미약하나마 중독성 물질중 하나다. 미국 사람 한명이 1년 동안 마시는 커피를 1.5리터 콜라병에 담으면 그 개수는 무려 86통이나 된다. 우리나라 사람은 그 보단 좀 덜하지만, 거리마다 커피숍이 즐비하고 매시간 텔레비전 광고에 유명스타들이 등장해 “나와 함께 마셔요”를 속삭이는 걸 보면, 한국에서도 커피는 가장 인기 있는 음료중 하나다. 커피만의 특별한 매력은 ‘그윽한 맛과 향기’에 있다. 커피광으로 유명한 시어도어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이 남긴 명대사 “마지막 한 방울까지 좋았다”는 100년 동안 커피회사 맥스웰하우스의 광고문구로 사용될 정도였다. 여기에 덧붙여, 커피만의 또 다른 매력은 바로 각성 효과다. 아침에 마시는 커피 한 잔은 흐린 정신을 맑게 해주고 밤에 즐기는 커피 한 잔은 졸음을 쫓고 활기를 되찾게 도와준다. 피로물질 ‘아데노산’ 억제 흐린 정신 맑게하고 졸음 쫓아 뇌 기능 자체 높여주지는 않아 하루4잔 넘으면 ‘독’ 세포들이 에너지를 사용하면 그 부산물로 ‘아데노신’이란 물질을 만드는데, 아데노신이 체내에 많이 쌓이면 우리 몸은 피로를 느끼고 각성중추를 자극하던 신경전달물질이 약화되면서 졸음이 온다. 흔히 열심히 일하고 나면 ‘피로가 쌓인다’는 표현을 쓰는데, 의학적으로 보자면 아데노신이 쌓이는 셈이다. 그런데 커피에 들어있는 카페인은 아데노신이 활동하지 못하도록 막는 물질이니, 졸음이 사라질 수밖에. 바로 이런 커피의 각성 효과 때문에, 프랑스의 소설가 오노레 드 발자크는 밤마다 커피 잔을 연거푸 비우며 74편의 장편소설을 완성할 수 있었다. 요한 세바스찬 바흐는 커피와 함께 밤샘 작업을 한 뒤 ‘커피 칸타타’라는 명곡을 남길 수 있었던 모양이다. 그렇다고 해서 커피가 뇌 기능 자체를 향상시켜주는 것은 아니다. 커피가 뇌의 전반적인 각성수준을 높이고 주의력을 강화한다는 데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그것이 논리적 추론이나 이해력, 복잡한 계산을 잘 하게 도와준다는 증거는 없다. 다시 말해, 커피 덕분에 임마누엘 칸트나 장 자크 루소 같은 커피마니아들의 정신이 한결 명민해 질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겠지만, 그들은 커피를 안 마셨더라도 위대한 업적을 남길 수 있었을 거라는 얘기다. 커피의 효과나 부작용은 사람마다 그 편차가 굉장히 크다. 낮에 마신 커피 한잔 때문에 밤에 쉽게 잠들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밤늦게 커피를 마시고도 1시간 후면 깊은 잠에 빠지는 사람도 있다. 카페인에 대한 감수성이 사람마다 다른 이유는 아데노신과 반응하는 수용체의 숫자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이런 편차는 유전적으로 타고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니 커피를 여러 잔 마시고도 잠을 잘 잔다고 해서 ‘미련한 사람’이라고 놀리지 마시길. 매일 아침 커피를 습관처럼 즐기는 사람들은 가끔 ‘내가 커피 중독은 아닐까’ 걱정하게 된다. 커피는 술이나 마약처럼 중독성이 강하지 않아서 ‘중독’ 대신 ‘습관성’이라는 표현을 쓰는 사람도 있지만, 확실히 중독을 유발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머리가 아프거나 피로가 덜 풀린 것 같고, 예전과 비슷한 효과를 얻기 위해 점점 많은 양의 커피를 마셔야 한다면 ‘커피 중독’일 가능성이 있다. 커피를 너무 많이 마시는 것 같아서 줄이려고 여러 차례 시도해 보았지만 번번이 실패했다면 ‘커피 중독’일 가능성이 높으니 치료가 필요하다. 커피 한잔에 들어있는 카페인의 양은 평균 100밀리그램. 카페인의 치사량은 5천 밀리그램이니 커피 50잔을 연달아 들이켜야 도달할 수 있는 양이다. 커피에 중독된 사람이라 하더라도 대개 하루에 15잔 이상 마시지는 않기 때문에 커피 먹다가 죽을 염려는 없다. 하지만 심장발작과 같은 부작용을 줄이고 정상적인 생활을 위해서라도 하루에 4잔 이상은 안 마시는 것이 좋다. 활력과 중독의 두 얼굴을 가진 커피, 적당히 마시고 현명하게 즐기는 지혜가 필요하다. 정재승 한국과학기술원 바이오시스템학과 및 콜롬비아의대 정신과 조교수 jsjeong@kaist.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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