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은 유난히도 길고 무더웠던 것 같다. 그건 아마도 코로나19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코로나19가 창궐한지 3년이 다되어가는데도 좀처럼 그 기세가 수그러들 기미는 보이지 않고, 변종까지 생겨나 날이 갈수록 확산일로에 있다. 이 때문에 마음대로 나다닐 수조차 없으니, 사람 사는 꼴이 말이 아니다.
코로나19는, 이미 감염된 사람이 숨을 쉬거나 말을 할 때 생기는 비말이 다른 사람의 코나 입을 통해서 감염이 되거나, 그 비말이 묻어있는 물건을 만진 손으로 코나 입을 만졌을 때 감염이 된단다. 이 역병에 걸리지 않으려면 사람과의 접촉을 피해야 하지만, 사람과 접촉을 하지 않고는 살 수가 없으니 그게 문제다. 마스크 쓰기와 거리 두기, 더하여 혹시나 바이러스가 묻어있는 물건을 만졌을 지도 모르니 수시로 비누로 손을 씻고 환기와 소독을 철저히 해야 한다. 그러나 이 역병을 옮기는 바이러스가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고, 누가 감염자인지도 알 방법이 없으니 문제다. 어디 그뿐인가, 누가 어디에다 바이러스를 남겨 놓았는지도 도무지 알 수가 없으니 이 정도 개인위생만으로는 감염을 차단하기란 아무래도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백신이 필요한 것이다.
백신이 필요하지만, 그 백신을 구할 수가 없으니 그 또한 문제다. 애당초 선진국 제약회사들이 백신 개발을 시작하면서 사전예약을 받는데, 이게 부작용이 있을지도 모르니, 다른 나라들이 먼저 접종하고 나서 부작용 여부를 확인한 후에 계약을 할 요량으로 사전예약을 미루었던 것이 화근이었단다. 며칠 전 보도에 의하면 백신 접종률이 OECD 38개국 가운데서 36위란다. 어이가 없다. 자존심이 상한다. 치료제도 마찬가지다. 마땅한 치료제 또한 개발되지 못한 형국이라 겉으로 나타는 증상에 따라 치료하는 대증요법이 고작이다. 게다가 넘쳐나는 환자들로 의료시설까지 부족한 형편이니 엎친 데 덮친 격이 되고 있다.
TV는 하루 종일 코로나19 이야기로 시작해서 코로나19 이야기로 끝이 난다. TV를 켜기가 겁이 난다. 하루 종일 확진자, 완치자, 사망자가 몇 명인지를 알리고 개인위생을 당부하기에 여념이 없다.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일이기는 하지만 너무 들으니 식상할 수밖에 없다.
백신 접종률이 저조한 상황에서, 감염원을 추적해서 차단하는 노력은 실로 눈물겹다. 전국 모든 보건소를 비롯한 요소요소에 PCR 검사소를 설치, 자발적인 검사를 유도하고, 필요에 따라 강제하기도 한다. 검사 결과 양성이 나오는 사람은, 격리치료를 하고, 동선을 추적하여 밀접 접촉자를 찾아내어 검사를 한다. 공공장소 출입 시 본인확인을 의무화 하고, 시간과 전화번호를 반드시 남기도록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검사 결과 양성이 나온 사람들의 동선을 일일이 다 확인하기가 어렵고, 어디서 어떻게 감염이 되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아 이 또한 역부족이긴 하지만, 이 방법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으니 안타깝다.
감염을 차단하기 위해서 집합금지, 거리두기 등을 시행하고 있으나, 이는 먹고 사는 문제와 직결되는 문제여서 소상공인들의 불평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견디다 못해 자살하는 이들까지 생겨난다. 하여 PCR 검사 결과 확진자 수가 다소 줄어들면 집합금지나 거리두기를 다소 완화하고, 확진자 수가 늘어나면 이를 다시 강화하는 방법으로 꽉 막힌 숨통을 틔워 주기도 한다.
지난여름 무덥던 어느 날, 확진자 수가 현저히 줄어들었다며 집합금지와 거리두기 단계를 완화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마침 예방접종도 2차까지 마친 터여서 아내와 함께 외식을 하러 단골집을 찾았다. 오랜만의 외식이라 밖에서 함께 앉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물론 음식도 맛있게 잘 먹고 왔다. 그런데 그로부터 3일째 되던 날, 보건소에서 전화가 왔다. 이것저것 몇 가지 확인을 하고 나더니, 그날 우리 내외가 점심식사를 할 때 우리 옆자리에 앉았던 남자 3명을 기억하겠는가 묻는다. 큰소리로 시끄럽게 떠들던 사람들이라 기억하고 있다고 했더니, 그중에 1명이 PCR 검사 결과 양성으로 판명이 되었다면서, 혹시 감염이 되었을지도 모르니 PCR 검사를 받으라고 하는 것이었다. 깜짝 놀랐다. 그 사람의 동선을 추적하다가 그 음식점에 남겨놓은 우리 내외의 전화번호를 확인하고 연락을 했다는 것이었다. 그날 그 음식점에 남겨놓았던 전화번호가 이렇게 유용하게 쓰이다니 신기하기까지 했다.
PCR 검사란, 의심환자의 침이나 가래에서 RNA를 채취하여 실제환자의 그것과 비교해보고 일정비율 이상 일치하면 양성으로 판정하는 검사방법이란다. 백신 접종을 2차까지 마쳤다고 했으나, 백신접종 여부와 관계없이 확진자자와 밀접접촉을 하면 반드시 PCR 검사를 받아야 된단다. 돌파감염이라 하여 접종을 한 사람도 감염이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란다. 검사를 안 받으면 격리대상자가 된다고 한다. 격리라는 말에 가슴이 철렁 하였다.
아내와 함께 보건소로 갔다. 보건소에 갈 때는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말고, 걸어서 가거나 개인승용차로 가야 한다고 헸다. 감염 위험 때문이란다. 다행히 보건소가 집에서 가까워 걸어서 갔는데 날씨가 너무 더워 땀이 비 오듯 했다. 검사는 실내가 아닌 밖에서 하고 있었다. 감염 위험 때문인 모양이었다. 서류를 받아 기입을 하고, 신분증을 꺼내 들고 차례를 기다리는 대기인원이 50여명은 실히 되어 보였다. 땀이 비 오듯 하는데도 불평하는 사람이 없다. 의료진들이 공기도 통하지 않는 방호복을 입고 애쓰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지 싶었다.
이윽고 내 차례가 되었다. PCR 검사는, TV 화면에서 익히 보던 대로 길고 가느다란 면봉 같은 것을 콧구멍과 목구멍에 차례로 깊숙이 넣은 다음 검체를 채취하는데, 콧구멍에서 검체를 채취할 때는 따끔해서 깜짝 놀랐는데, 목구멍의 경우는 무난히 넘어갔다. 불과 단 몇 초 만에 끝이 났다. 오전에 검사를 받으면 당일 오후에, 오후에 검사를 받으면 익일 오전에 결과를 문자로 알려준다더니, 이튿날 아침 일찍 문자가 왔다. 음성이 나왔단다. 음성이 나왔다고 해서 바로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 3일 후에 다시 PCR 검사를 받아야 한단다. 3일 동안 자가격리를 한 후 두 번째 PCR 검사를 받았다. 다행히 두 번째 검사에서도 음성이 나왔다. 그런 다행이 없었다.
올여름은 유난히도 길고 무더웠던 것 같다. 그건 아마도 코로나19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이제 그 여름이 마지막 안간힘을 쓰는지 가을장마까지 몰고 와 흡사 한증막을 연상케 하고 있다. 하지만 가을은 이미 코앞에까지 와있는 것 같다. 아침저녁이 제법 선선해진 것 같으니 말이다. 올 가을엔, 아직도 백신을 못 맞고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이들이 어서어서 백신이라도 맞을 수 있었으면 참 좋겠다. (2021.8.30.)
부산출생 수필가 한국문인협회 국제펜한국본부 회원 ROTC1기 장교 전 교정대학 학장 수필집:혜파정 외 다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