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가장자리에서부터
여기저기서 통화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약속을 정하는 전화부터, 학원에 보내려고 아이 깨우는 엄마의 목소리, 마치고 이곳으로 태우러 오라고 당부하는 할머니의 목소리도 들린다. 누군지 알 수는 없지만, 약 냄새가 겹겹이 베어 있는 커튼 너머로 부산한 움직임이 느껴진다. 몸이 아파 치료를 받으러 온 이곳이지만, 온전한 쉼을 가진다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는 듯하다.
토요일 오전 한의원에는 유난히 훈기가 가득했고, 진한 쑥뜸 냄새는 코끝을 깊이 찔렀다.
주말에는 기본적으로 30-40분 대기해야 하지만, 운 좋게도 바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이 한의원 선생님은 환자들에게 다정하기로 소문이 나서, 무릎이며 허리며 아픈 곳을 호소하는 어르신들이 유독 많이 오신다. 물리치료를 받다가 본의 아니게, 환자들의 호소를 들을 때도 있는데,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에는 딱히 특별한 것은 없었다. ‘아이고 그러셨구나!’, ‘어머니, 서운하셨겠네요!!.’, ‘그 때 정말 아프셨겠어요’라는 아주 평범한 말들이었다. 한의원 오픈 시간은 9시지만, 밤잠 없으신 어른들이 대중없이 일찍들 나오셔서, 그분들을 위해 7시가 조금 넘으면 문을 연다고 하니, 통증 때문에 밤잠 못잤을 손님을 배려하는 선생님의 마음이 전해지는 것 같다.
어깨 통증이 있어 작년 겨울부터 치료를 받고 있다.
정형외과에서 물리치료를 받다가 한의원으로 옮겨보았는데, 첫 진료때 경험했던, 온몸을 녹일만한 지글지글한 뜨거움을 잊을 수가 없다. 그 온도를 내 몸이 먼저 기억하고는, 그 뒤로 쭉 여기에서 치료를
받고있다. 아무 일없이 360도를 잘 회전하던 어깨가, 묵직하게 아파오고, 팔까지도 힘이 없이, 뚝 떨어지는 때도 있었다. 오른손으로 하는 모든 행동들이 어눌하고, 불편하기만 하고, 자다가 돌아누울라 치면 알수 없는 날카로운 통증으로 한참 잠을 설치는 때가 있었다.
나의 증상을 다 듣던 선생님은 깊은 생각에 잠기시더니 ..음 오십견이네요라며 간단하게 말씀하셨다. 그것에 대해 별 지식이 없던 나는, ‘오십’이라는 말에 갑자기 발끈하면서, 선생님을 노려보듯 되물었던 것 같다. “저는 아직 오십되려면, 아직 몇 년 남았는데요??라고 하면서. 선생님은 까칠한 환자의 무지함을 특유의 느린 웃음으로 넘기시며 설명해주셨다. 이 증상은 꼭 오십이 되서가 아닌, 그 이후나 그전에도 얼마든지 올 수 있는 증상이며, 팔도 잘 들어올릴 수 없고, 회전에 불편함도 많아 보이니, 일년 정도 치료받는다고 편하게 생각하고 오라고 하셨다. 이것은 석회화 건염이라고도 부르는데, 어깨관절의 과사용, 국소압박으로, 힘줄 조직에 석회가 침착되어 통증이 생기는 경우라고 한다. 주변 근육이 굳어지고, 염증으로 주위 근육이 석회화가 되었고, 진행중이기 때문에 꾸준히 운동으로 풀어주고, 서서히 찜질과 침으로 근육을 달래고 풀어줘야 회복이 된다고 한다. 가자마자 찜질로 몸을 풀고, 길이가 다른 침들이 몸속을 관통하는 날카로운 느낌도 이제 조금씩 적응이 되었다. 선생님은 두껍게 언 호수를 멀리서부터 두드리기도 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깨면서 더 두꺼운 얼음쪽으로 옮겨간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하셨다.
침을 다 맞고, 이 한의원에서만 특별히 제공되는 3단계 찜질을 받으며, 몸을 녹일 듯 적당히 뜨거운 온도에 몸을 맡겨본다. 계속될 것 같았던 ‘겨울 왕국’의 두꺼운 커텐은 드디어 걷혀지고, 마침내 우리의 만남은 시작되었다. 조금씩 봄기운이 전해지며, 가장자리의 얼음들이 녹고 있다. 곳곳에서 지극히 평범한 일상들이 회복되고 있는 모습들이 믿기지 않을 만큼 낯설게 느껴진다. 그동안 기대하고 기다리다가 실망하고, 또 좌절하며 수차례 스탠바이만 거듭했던, 목장 모임도 이제 시작이 되었다. 목사님도, 목자, 목녀의 열심만이 아닌, 모두의 마음에서 동시에 주신 모임에 대한 뜨거운 훈기와 만남과 나눔에의 기다림과 갈급함이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불편하고, 어색하여 딱딱하게 석회질화 될 뻔한 우리의 만남과 관계속의 두꺼운 얼음에도 이미 쨍-하고 굵은 금이 간 상태이다. 그 틈으로 주체할 수 없이 새어나오는, 삶의 소중한 향기와 아이들의 나눔과 웃음소리..찬양과 달고 오묘한 말씀의 나눔들...목장을 기다리는 일주일이란 시간은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 또 다시 사라질까봐, 다시 한없이 기다리게 될까 봐 마음속에 꼭 품어본다. 눈을 뜨면 혹시 사라질까 지긋히 감고 기억속의 저장소에 고이 넣어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