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하라 여자의 콩떡 한 개
"교토"에는 "오하라메"라는 유명한 콩떡이 있다.
찹쌀에 검은 콩을 꾹꾹 눌러 박은 볼품없는 떡이다.
값도 아주 싼 동전 한잎의 싸구려 떡이다.
헌데 이 볼품없는 떡은 "교토의 명물" 중의 하나이다.
"오하라메"는 "오하라의 여자"라는 뜻이다.
일본의 수도였던 "교토"의 인근에 "오하라"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하늘이 동전만하게 보이는 산촌이다.
논과 밭이 거의 없는 찢어지게 가난한 마을이어서 도무지 먹고 살 길이 없는 곳이다.
그 오하라 마을 여자들은 생계를 위해 산에 가서 나무를 자르고 패서 한단의 나무를 만든다.
그리고 한단의 나무를 머리에 이고 교토로 간다.
오하라와 교토는 차로 한 시간 거리이다.
그러나 머리에 한단의 나무를 이고 걷자면 서너 시간이 걸려야 교토에 닿을 수 있다.
아침에 죽 한 그릇을 떠먹고, 오전 내내 걸어 그녀들은 교토에 도착한다.
그리고 교토의 "니시키" 시장을 찾아 거기서 한단의 나무를 판다.
나무 한단이라야 요즘 돈으로 불과 5천원..
그녀들은 그 5천원의 돈으로 보리 한 되를 사서 다시 오하라로 돌아간다.
오후 내내 걸어야 해가 질 때 쯤이면 오하라에 도착할 수 있다.
오하라 마을엔 그녀의 어린 자식들이 어머니가 돌아올 때를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다.
어머니의 보리 한 되가 있어야 그날 저녁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하라의 여자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려 한다.
그러나 보리죽 한 그릇을 먹고 점심을 건너뛴 그녀의 발걸음은 천근만근이다.
오하라로 나가는 교토의 "데마치 야나기" 거리에 "다와라 야깃토미"(俵屋吉富)라는 떡집이 있다.
그 집 좌판에는 먹음직스러운 콩떡이 있다.
오하라의 여자는 망설이고 망설이지만 너무 배가 고파서 도저히 오하라까지 걸어갈 기운이 없다.
눈앞에 자식들의 얼굴이 어른거리지만 그거라도 한 개 사먹지 않으면,
기진맥진해서 도저히 집에까지 걸어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떡 한 상자는 열 개, 한 상자를 다 살수는 없다.
결국 그녀는 콩떡을 하나만 팔 수 없냐고 물어 본다.
주인은 고개를 가로 젓는다.
옷차림은 거지나 진배없이 더럽고, 게다가 장작을 머리에 이고 오느라고 땀 냄새는 진동을 한다.
떡집 주인은 행색이 너무나 초라한 그녀들에게 떡을 팔고 싶은 마음조차 없다.
처음에 떡장수는 그녀들에게 떡을 팔지 않았다.
행색이 너무 더러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곧 그녀들이 오하라 마을의 나뭇단 장수인 것을 알게 되었다.
비로소 그녀들이 내민 동전 한 푼이 얼마나 힘들게 번 것인가를 눈치 챈 것이다. 떡집 주인의 고개가 숙여진다.
한 닢의 동전이지만 그녀들에게는 천금보다 더 소중한 돈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날 떡집 주인은 오하라 여자들이 사먹는 콩떡을 좀 더 크고 실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낱개도 판매"라고 써 붙였다.
비록 단 한 개의 떡을 팔아주는 고객이지만 그들을 없이 여겼던 자기 자신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 유명한 "오하라메 콩떡"의 사연이다.
"하찮은 액수의 손님이라도 소홀히 하지 마라.
그들의 동전 한 잎이 얼마나 힘들게 번 것인가를 생각하라. 손님을 차별하지 하라.
오늘 돈이 없다고 해서 내일도 돈이 없다는 보장이 있는가?"
일본의 상인들은 그런 사실을 "오하라메"의 나뭇단 장수들로 부터 배웠다.
그리고 그 배움을 지금까지 실천하고 있다.
오늘날 "오하라메"라는 콩떡은 교토의 명물이 되었지만,
그 콩떡 속에 숨어있는 사연을 일본 과자 장인들은 알고 있기에,
일본의 과자가게에서는 단 한 개의 과자를 사는 고객이라도 정성껏 그 한 개의 과자를 포장해 준다.
오하라 여자들의 콩떡 이야기를 알고있기 때문이다.
요즘 교토에서는 해마다 4월 셋째 주에는 "오하라메 마쓰리"라는 것을 한다.
오하라의 나뭇단장수처럼 나무 한단과 깡총한 "하오리" 옷을 입고,
바로 그 오하라 여자들이 걷던 길을 나뭇단을 머리에 이고, 걸어보는 축제이다.
참가비는 2천엔.
그 옛날, 자식들을 굶기지 않기 위해서 공부를 가르치기 위해서
그렇게 고생하던 어머니들을 생각해보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어떤가?
으리뻑적한 대형 백화점이 즐비하고해외의 명품브랜드가 넘친다.
그걸 살려고 줄을 서고 있다.
동전 한 닢의 소중함이 잊혀지고,강남의 골목에는 밤마다 음식점의네온사인으로 불야성이다.
그러나 잊지마라.
바로 대형 백화점과 불야성의 고급식당들 뒤에서 바로 우리의 어머니,
재래시장 상인들은 그 동전을 벌기위해 새벽부터 나와 있다는 사실을..
우리 어머니들의 고생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풍요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3만불 국가의 대한민국,
너무나 잘살고 있지만 과거의 가난, 과거의 근면 검소함이 잊혀지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까운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