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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벧엘교회 구요셉목사님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 택함 받으면 구원은 취소될 수 없다? 말씀 한 방으로 명확하게 결론! 이라는 제목으로 여러분과 함께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최근에 제가 아버님 상을 당해서 우리 형제들을 만났었는데 구원파인 작은 형이 같이 있는데 계속 이야기를 해서 가만히 들었습니다. 본인이 알고 있는 교리를 가지고 얘기를 해서 동생인 제가 목사인데 공부다 싶어 들어보니, 내용은 한 번 구원의 확신이 오면 구원은 정해진 거라는 이야기입니다. 큰 형은 가정교회를 다니고 있는데 이단은 아니지만 큰 형도 차를 타고 가면서 얘기를 하는데 신앙의 확신에 대해 저를 교훈해 주시려고 노력을 하셨습니다. 듣고 있다 보니 내용이 같아서 한 번 구원의 확신이 있고 구원을 받으면 구원은 취소가 안 된다고 알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놀란 것은 일반 교회가 작은 형이나 큰 형처럼 만나면 성경과 예수 이야기 하는 분이 별로 없고, 만나면 집, 돈, 집안, 자식, 손주 이야기를 하는데 예수 이야기는 거의 안하기에 오히려 나은 면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구원파가 이단이라고 하지만 일반 교회는 택함 받으면 취소 안 된다고 안하나요? 구원파는 몇 월 일시 언제 내가 구원의 확신을 얻었다 구원 받았다를 명시 합니다. 일반 교회는 내가 구원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택함 받았는지 알 수 없지만 택함 받은 사람은 무조건 구원받고 절대 취소되지 않고 택함받지 못한 사람은 열심히 교회 봉사하다가 돌아가실 때 예수 부인하고 돌아가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동전의 앞면과 뒷면처럼 비슷하고 서로 이단이니 삼단이라 말하지만 비슷합니다. 그래서 이번에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최근에 우리를 세대주의라 하고 이단이라고 하는 분들이 엄청나게 많은 한국 교회입니다. 미국 교회에 가면 세대주의가 주류입니다. 한국 교회는 주류가 바뀌어 있는데 주류가 바뀌면 이단입니까? 솔직히 제가 세대주의라는 생각을 안하고 일반 세대주의를 하는 분들과 제 의견이 완전히 일치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이단이라고 하시는 분을 보니 성경을 그대로 믿으면 이단이랍니다. 내용을 읽어보면 교리보다도 성경을 강조하면 이단이라고 적어놓았습니다. 그래서 읽다가 이게 무슨 소리인지 말이 안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개신교가 어떻게 출발했습니까?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진 것이다 라고 하는 베드로의 고백에서 출발합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 그리고 성경의 저자는 오직 성령님 한 분이시다. 그러므로 성경은 무오하고 통일되어 있다. 이것이 우리 개신교의 모토 아닙니까? 그런데 얼마나 타락을 했으면 성경을 그대로 믿는다고 이단이라 합니까? 도대체 어디서 나온 이야기인지 어떻게 교리가 성경을 앞서 나갑니까? 어느 장로님이 이단에 대한 설교해주시면 해서 이단 전문가를 초청하려고 교섭을 하려던 중이었는데 읽다 보니 그런 부분에 대해서 문제가 있어서 이단과 아닌 것을 분간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구리시에 서울침례교회라는 교회가 있습니다. 서울에 있는 서울침례교회는 남침례 교회의 후신으로 정통 교단이고 거기가 아닌 독립 침례교회에서 파생된 교회로 구리시에 이이레 목사님이 시무하고 계십니다. 이분은 정동수 목사님께 사사 받으신 분이라 하고 독립 침례교회입니다. 킹제임스 성경만이 옳다라고 하며 많은 교단도 각각 주장하는 바가 있어서 나쁘지 않습니다. 이것으로 세대주의 이단이라고 하는 부분은 용납할 수 없고 메시지를 전하게 된 문제는 말씀을 분류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기독교가 나온 것은 성경 전체가 하나의 성령께서 직접 쓰셨다 라고 믿기 때문에 이 성경이 우리의 텍스트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예수님은 왕국 복음을 전하셨고, 예수님 이전에 세례요한이 전한 것은 유대인 복음이고, 바울의 복음은 은혜의 복음이라고 합니다. 성경에 복음을 그렇게 나누는 것을 갈라디아서 2장에 증거를 두고 한다는 것입니다. 전혀 동의할 수 없습니다. 바울의 은혜 복음이 예수님 복음과 틀리다는 말을 하는 분이 의외로 많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바울이 이단이라는 분도 계시고 어떤 분은 예수님은 유대인에게 하신 말씀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다 잊어버리고 바울이 한 것으로 이야기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왜 똑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이렇게 서로 부딪힐까요? 그것은 본인이 믿고 싶은 바가 이쪽에 있는데 서로 적용이 안 된다고 생각하여 모순이 발생하기 때문에 이 모순을 뛰어넘을 방법이 없으니까 분리해버린 것입니다. 사실 뛰어넘을 방법이 없다 보니 새로운 방법을 찾은 것뿐이지 본인들은 이것이 진리라고 이야기하면서 우리는 은혜의 시대이기 때문에 가령 데마 같은 사람은 복음을 떠났지만 구원을 받는다고 보는 것입니다. 상급이 없고 꾸중을 듣지만 구원은 받는다는 식입니다. 구원은 취소되지 않는다 라고 보고 구원이 취소되지 않는다는 증거로 성경 구절을 읽어보니까 이해가 안 갑니다. 왜냐하면 정확하게 들어와야 이해가 되는 것인데 거기에 설명이 붙고 킹제임스 성경은 어떻고 번역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근거를 만들기 위한 것들이 많습니다.
성경은 쉬운 글입니다. 성경은 문어체가 아니고 성경을 읽으려고 쓴 글입니다. 공중에서 읽으면 다들 듣다가 아멘 하는 글이며 결국 성경 말씀은 어려운 말씀이 아니고 어린아이도 들으면 알아들을 수 있게 적은 게 성경입니다. 구어체이고 구약의 말씀들은 유대인들이 시 읽듯이 우리 창하듯이 그렇게 읽으면서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못 받아들인 이유는 구약이든 신약이든 2천년 혹은 3천년 전에 메시지이기 때문에 그 당시의 관습과 풍습과 우리가 다릅니다. 그 당시 사람들이 갖고 있던 사고 방식과 현대인의 사고 방식이 달라져서 어려워졌기 때문에 앞에서 전하는 사람이 거기에 대해서 더 이해할 수 있도록 여러분께 쉽게 전하는 방식을 찾아내야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쉽게 만드는 과정을 통과해야 되는 것들이며 그 과정들이 어렵고 서로 논리가 안 맞는다는 생각이 있다 보니 분류해 버린 것은 인간의 생각입니다. 성경 말씀을 왜 자꾸 분류할까요?
서양 학문이 시작된 시발점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의 지형과 그리스라는 나라가 갖고 있는 지형이 굉장히 다릅니다. 이스라엘은 산으로 올라가는 산악 지역이고 유목과 농사를 짓는 경계선이 있습니다. 대략 비가 500~ 600ml 정도 오면 유목도 할 수 있고 농사도 지을 수가 있습니다. 둘 다 할 수 있는 중간 지형인데 이스라엘의 강우량이 그 정도가 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목축도 하고 농사도 짓고 풍부한 곳이 아니기 때문에 서로 교류를 해야 되는 상황이고 구릉지가 많다 보니 이 마을과 저 마을이 서로 다를 수가 있습니다. 한국은 농경 사회인데 이스라엘과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한국도 산악 지형이 많고 물이 많이 흐르긴 합니다만 비슷한 것이 마을에 모여 사는 사람들은 서로 하나가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스라엘도 마찬가지로 자기 지역에서 딴 지역에서 쳐들어올 것을 대비하기 위해서 자기 지역 사람들이 잘 뭉치고 이웃과 교류도 해야 합니다. 넘어오는 길이 발달됐기 때문에 이스라엘과 우리나라는 서로 교류를 하다 보면 우리가 중심이 됩니다. 그래서 양을 치는 분들만 계신다면 고립주의가 되기 쉬운데 양을 치면 흩어지고 농사를 짓게 되면 같이 힘을 합해야 돼서 우리라는 개념이 되기 쉬우며 한국은 우리라는 개념이 지극히 강한 나라입니다. 세계에서 자기 아내를 우리 아내라고 말하는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습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 들으면 아내를 공유하는 줄 압니다. 아들도 우리 아들입니까? 내 아들입니까? 전 세계에 대한민국 같은 나라가 없는 농경사회의 특징이며 평야가 발달된 게 아니고 구릉지가 많아서 자기 마을 단위의 경향이 굉장히 강합니다. 우리라는 개념이 굉장히 강하고 이스라엘 도 우리라는 개념이 강하고 언어도 전체라는 개념이 강합니다.
그리스는 산악이 90%여서 농사를 못 짓습니다. 아테네가 다르고 스파르타가 완전히 다른 나라이며 거리가 멀지 않고 인구도 많지 않습니다. 아테네는 농사지을 땅이 없고 올리브 조금 자라는 거 말고는 없어서 해양 무역을 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곳입니다. 아테네는 배가 발달된 곳이고 스파르타는 내륙 지역으로 배가 없고 주로 육군이 발달된 지역입니다. 둘이 대화하면 안 통하고 끝까지 두 나라가 다 망할 때까지 말이 안 통했고 논쟁을 하게 돼 있습니다. 나는 이렇게 주장한다고 자기 논리를 펴고 반대편에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고 논리를 펴서 싸우다 보면 사고가 발달되고 분류하게 됩니다. 여기서 분석주의가 나오고 철학이 발달됐습니다. 분류하고 분석하고 따지는 것이 그쪽 나라의 특성으로 흑과 백을 나누고 선과 악을 나누고 분류하는 게 굉장히 많습니다. 기독교가 그리스 쪽으로 헬라 문화에 들어가면서 원래는 전체적인 우리라는 개념이 강한 종교인데 분석적으로 분류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연구하기 시작했는데 성경은 연구하는 게 아니고 받아들이는 겁니다. 어려운 게 아니고 쉬운 것인데 자꾸 분류하다 보니 이 문장과 저 문장하고 틀릴 수밖에 없고 서로 틀리고 다르니까 그 모순을 없애기 위해서 또 분류해버린 것입니다. 한국 사람들도 이러한 사고 방식이 3분의 2 정도는 들어와 있습니다. 현대 과학이 분석적이고 현대인의 사고방식이 분석적으로 발달됩니다. 일상적 용어는 같은데 '아'라고 말하면 법률적으로 죄가 없고 '어'라고 말하면 법적 죄가 됩니다. 법률적인 면으로 들어가는 것은 분석적인 것이고 우리가 일상적인 것과 많은 부분에 모순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도 그런 사고 방식으로 보는데 성경 말씀은 그대로 받아들이면 어렵지 않습니다. 바울과 예수님이 하신 말씀과 구약의 말씀은 같은 말씀입니다. 전체적으로 보는 관점이 약해서 따로 보는 것이며 전체를 볼 수 있는 역량이 떨어지는 부분에 대해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다음을 보겠습니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인 성도들의 구원이 하나님의 권능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히 보장됨을 믿습니다.
구원이 영원히 보장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하고 구원파하고 별다를 게 없습니다. 많은 기존 교단도 비슷하게 이야기합니다. 성경 말씀은 어떻게 얘기할까요?
고린도전서 9장 24절부터 27절
24 운동장에서 다듬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찌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26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여
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바울 복음은 은혜의 복음이라고 하면서 바울이 구원을 확신하고 있습니까? 두려워합니다. 바울이 달음질할 때 상을 얻으려고 하는 것은 구원에 관한 것으로 이기기를 다투는 자는 상을 얻는게 아니라 구원입니다. 구원을 얻으려면 절제하고 썩지 아니할 것 곧 영원한 구원 영원한 생명입니다.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지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치는 것 같지 아니하여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왜 바울이 자기 몸을 쳐 복종하게 합니까? 버림받을까 두려워서 말씀 그대로입니다. 우리가 왜 화를 내도 안 되고, 또 남에게 함부로 해도 안 되고 남을 미워해도 안 되고 왜 그렇습니까? 구원 못 받을까 주의해야 되고 조심해야 되는 것입니다. 말씀 그대로인데 왜 다른 논리를 가지고 얘기합니까?
디모데후서 4장 3절부터 8절
3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 사육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4 또 그 길을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5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 하라
6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7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때가 이르면 자기 생각을 쫓아가고 새로운 것들을 자꾸 만들고 말씀 그대로 믿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말씀 그대로 믿으려니까 피곤하고 뭘 지켜야 되니까 구원은 쉽다라는 것은 다른 복음입니다. 현대가 교회가 우리나라 교회가 그런게 너무 많습니다.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는다 적혀 있습니다.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직무를 다해 하나님께서 맡긴 일을 충성을 다하라 말씀합니다.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는 바울의 마지막 유언입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에서 마지막 구절에 믿음은 한 번 믿었으면 끝이 아니라 지켜야 됩니다.
성경 말씀 그대로 믿음은 한 번 믿으면 끝이 아니라 지켜야 됩니다.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예수님 오심을 기다리는 모든 자에게 의의 면류관 주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 때부터 주님의 나타나심 곧 예수님 오심을 기다리는 것은 우리 그리스도의 기본 의무입니다. 이게 다른 복음입니까? 예수님을 기다리면 이단입니까? 말씀은 그대로 믿으면 됩니다.
디모데후서4장 9절부터 11절
9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10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11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데마는 원래 바울을 돕던 직분자인데 이 데마에 대해서 성경 골로새서와 빌레몬서에 두 번 이름이 나오는 유명한 목사입니다. 이 목사가 구원을 못 받습니다. 한 번 구원 받았으면 취소 안 되고 생명책에 이름이 기재가 되면 안 지워진다는 것은 헛소리입니다. 데마가 세상을 사랑하여 아버지 곁을 떠나버렸습니다. 예수님을 배신해버리고 믿음을 지키지 못했다고 바울이 증거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끝까지 믿음을 지켰는데 데마는 믿음을 버렸다라고 바울이 바로 밑에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을 꼭 이어서 읽으라고 말씀드리는데 이것을 따로 자꾸 분류하지 마십시오. 성경은 구어체고 연결해서 읽는 것입니다. 믿음은 끝까지 지켜야 됩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택하시고 이집트에 갔던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셔서 구원하셔서 광야로 데리고 나와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려고 하십니다. 택함 받으면 다 구원받는 것인가요? 택함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기 위하여 그들을 선택하여 그들로 하나님의 일을 이루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택함은 곧 구원으로 교회에서 자꾸 가르치는데 택함 받은 민족이 다 구원받는지 보겠습니다.
출애굽기 32장 7절부터 14절
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려가라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 부패하였도다
8 그들이 내가 그들에게 명한 길을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그것을 숭배하며 그것에게 희생을 드리며 말하기를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라 하였도다
9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곧은 백성이로다
10 그런즉 나대로 하게 하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로 큰 나라가 되 게 하리라
11 모세가 그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가로되 여호하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 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12 어찌하여 애굽 사람으로 이르기를 여호와가 화를 내려 그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 서 진멸하려고 인도하여 내었다 하게 하려 하시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13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주를 가리켜 그들에게 맹세 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나의 허락한 이 온 땅을 너희의 자손에게 주어 영영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14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지음으로 분노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다 멸하려 하시고 그들을 진멸하고 모세로 큰 나라를 이루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우상 숭배를 했으나 택한 백성은 우상숭배하고 나쁜 짓 해도 구원 받나요? 마지막에 그냥 구원시키나요? 정동수 목사님이나 이이레 목사님이나 구원파가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차에 치여 죽어도 벌은 받았지만 구원은 받는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진노에 진멸시켜버리면 구원 받는 걸까요? 그렇게 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나님은 분노하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멸망시켜버리고 택한 백성일지라도 죄에 빠져서 하나님 곁을 떠나버리면 구원받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마지막에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 직전에 나의 안에 거하라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나의 안에 거하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가지가 포도나무에서 떨어지면 말라서 불에 던지우니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의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데마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지 아니하므로 말라서 불이 던져진 것입니다. 예수 안에 거하지 않으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대로 나의 안에 거하면 너희가 많은 열매를 맺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끝까지 예수 안에 거하여야 구원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주변에 일가, 친척, 부모, 형제, 가족들을 위해서 왜 기도해야 됩니까? 그 간구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시고 구원받을 사람을 많이 만들어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끝까지 기도해야 되는 것이고 기도의 이유와 목적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마음을 돌이키는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돌이키게 합니다.
출애굽기 32장 26절부터 35절
26 이에 모세가 진문에 서서 가로되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레위 자손이 다 모여 그에게로 오는 지라
27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진 이 문에서 저 문까지 왕래하며 각 사람이 그 형제를, 각 사람이 그 친구를, 각 사람이 그 이웃을 도륙하라 하셨느니라
28 레위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행하매 이날에 백성 중에 삼천 명 가량이 죽인 바 된지라
29 모세가 이르되 각 사람이 그 아들과 그 형제를 쳤으니 오늘날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 느니라 그가 오늘날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30 이튿날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큰 죄를 범하였도다 내가 이제 여호와께로 올라가노니 혹 너희의 죄를 속할까 하노라 하고
31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 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 주옵소서
3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34 이제 가서 내가 네게 말한 곳으로 백성을 인도하라 내 사자가 네 앞서 가리라 그러나 내가 보응할 날에는 그들의 죄를 보응하리라
35 여호와께서 백성을 치시니 이는 그들이 아론의 만든 바 그 송아지를 만들었음이더라
죄를 지었는데 모세가 기도했으니 하나님이 용서는 해주셨어도 안 끝났습니다. 모세가 레위 지파에게 너희는 칼을 빼어 너희 일가 친척, 형제를 죽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죽임 당한 사람들은 죄가 더 많아서 죽임당했습니까? 눈에 보이는 데 죽인 것은 죄를 지으면 반드시 죽는다는 것입니다.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을 떠나면 택한 백성이라도 구원받지 못한다고 경고하고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삼천 명은 그 당시 이백만이라고 하는 유대인들을 대표해서 죽은 것입니다. 우리 죄를 짓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됩니다.
모세가 죄악을 도말하기 위해 삼 천 명이 죽게 하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속에 죄를 멸하기 위해서입니다. 마음속에 있는 죄를 멸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죄를 미워하게 하려고 하신 것입니다. 모세가 다시 여호와께 올라가서 이 백성을 사하여 주옵소서 그러지 않으려면 차라리 생명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달라고 합니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재되었다고 해도 지워집니다. 구약도 그렇고 신약도 똑같습니다.바울도 똑같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뭐라고 하십니까? 죽이지 않으셨는데 백성을 인도하라 내 사자가 네 앞서 가리라 그러나 내가 보응하는 날에는 그들의 죄를 보응하리라 합니다.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가는데 구원 못 받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못 받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자는 두명 밖에 없습니다. 모세도 못 들어가고 죄의 보응으로 그들이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죄를 짓게 되면 이 세상의 삶 속에서 용서해 주셔도 어려움이 닥치므로 반드시 명심하셔야 됩니다. 예수님은 뭐라고 말씀하시는지 보겠습니다.
누가복음 10장 17절에서 20절
17 칠십 인이 기뻐 돌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18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19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20 그러나 귀신들이 너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 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칠십 인에게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하나님의 권능을 받아서 너희 기도를 들으시고 사탄이 하늘에서 땅에 떨어졌다 말씀하고 계십니다. 기도의 능력이 있고 사탄을 물치는 능력이 있습니다. 너희가 기뻐할 것은 사탄을 이긴 게 아니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너희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22장 24절부터 30절
24 또 저희 사이에 그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방인의 임금들은 저희를 주관하며 그 직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
26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두목은 섬기는 자와 같을찌 니라
27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28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한 자들인즉
29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30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
제자들이 서로 다투고 누가 크냐고 합니다. 천국은 섬기는 자 더 정확하게 심령이 가난한 자가 가는 나라입니다. 말씀 그대로 가난해야 천국 가고 어린 아이와 같이 낮아진 자가 간다고 합니다. 제자들은 높아지려고 하고 높아지려고 하면 천국 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섬기는 자로 왔노라고 하시며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십니다. 직접 본을 보여주시고 섬기는 자로 왔노라 하시며 꾸중만 하는게 아니고 칭찬도 해 주십니다. 높아지려고 말고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너희가 다스리며 나를 따르고 섬긴 것을 절대 잊지 않으시고 반드시 상급을 주시니 싸우지 마라고 하십니다.
누가복음 22장 31절부터 34절
31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32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33 저가 말하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도 가기를 준비하였나이다
34 가라사데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시니라
베드로에게 사탄이 밀을 까부르듯 하려고 청구하였느니라 하십니다. 교단의 교단장 되려 하고, 교단의 부교단장 되려 하고 높아지려고 하는 목사님들 많습니다. 높아지려고 하다가 자칫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사탄이 하나님의 법대로 제자들을 지옥 가게 해달라고 청구하고 하나님 법정에다 고소장을 낸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위하여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예수님의 기도로 그들이 겨우 돌이키는 것입니다. 모세의 기도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기회를 주셨듯이 똑같은 말씀입니다.
데마는 돌이키지 않고 가버렸고 제자들은 돌이켰습니다. 그 차이가 있는 것이고 돌이킨 후에 형제를 굳게 하여 확정된 것이 아니고 지켜야 되고 굳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믿음을 처음에 받았으면 예수 그리스도가 영접되고 그리스도가 내 생명을 위해 돌아가신 게 믿어지고 십자가의 사랑과 은혜가 믿어졌으면 이 믿음을 굳게 지키고 끝까지 유지해야 됩니다. 말씀은 그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서로서로 위로해 주고 서로 붙잡아주라는 것이 교회가 모이는 목적입니다. 열두 제자가 생명책에 기록됐는데 사탄이 청구합니다.
생명책에 기록되면 안 지워지고 구원이 확정되면 끝난다고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사탄이 청구했다고 말합니까? 성경 말씀은 믿음을 굳게 하거나 지키지 못하면 믿음에서 떨어집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지 못하면 가지가 예수님에게서 떨어져버리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오직 예수님께 붙어 있어야 됩니다. 제자들에게 장차 열두 고을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려 하노라. 내 상에서 먹고 마시고, 예수님과 가족, 형제, 친구가 되고, 온 세상을 다스릴 권세를 주시겠다고 말씀을 약속하고 계시는데 미래형이며 예수님의 의지형 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거절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자유 의지를 존중하십니다. 그것을 베드로에게 부탁하며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고 축복을 받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6장 13절부터 27절
13 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가라사대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14 가로되 더러는 세례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15 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20 이에 제자들을 경계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한테 뭐라고 하느냐 묻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과 세상 많은 사람들도 예수님을 각자 자기의 원하는 대로 믿습니다. 우리 시대는 자유주의 국가입니다. 바울이 신앙의 자유를 위하여 위정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는 말씀은 피지배 국가에서 저항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야기한 것입니다. 그 당시 상황은 그게 맞습니다. 구약의 왕에게 선지자들이 가서 다윗에게 양 잡아먹은 자라고 이야기하고 이사야도 왕에게 감히 가서 다 말합니다. 선지자들이 왕에게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했듯이 우리가 이 세상이 잘못되었으면 나가서 투쟁해야 말씀에 맞다라고 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때는 왕정 시대이고 왕이 예수님의 대리인으로 다스리던 시대로 천년 왕국의 비유이며 우리 시대하고 다릅니다.
한국은 지금 사사기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란에 살면 왕이 악하고 기독교를 핍박하는 바울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고 대부분은 자유 국가입니다. 사사기 시대에 왕이 없어 사람들이 각각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며 각 교회, 교단, 목사님마다 성경을 똑같이 보는데 하는 말은 다른 우리 시대입니다. 또 한 가지 우리 시대와 딱 맞는 게 바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 광야 시대입니다. 가나안의 요단강을 건너는 것은 무엇을 상징합니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 가나안 땅에 들어가셔서 전 세계를 다스리는 나라를 비유로 지금 우리는 예수님이 오기 직전에 광야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광야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은 무엇을 해야 됩니까?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를 학수고대하고 군사 훈련받고 준비해야 됩니다. 이 시대를 두 가지로 대변하면 믿음 생활이 어떻게 해야 되는지 정확하게 나옵니다.
시몬 베드로는 예수님께 주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리스도라고 말한 베드로가 한 고백은 예수를 그리스도를 영접한 것입니다. 요즘 교회를 보면 예수님을 예레미야로 또 엘리야로 다르게 받아 들이는 분들도 많습니다. 착하게만 살면 구원받는다고 하는 분들도 많고 천주교가 그런 경향이 있어서 말씀을 변개합니다.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이렇게 어렵습니까? 베드로가 한 고백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구원해 줄 수 있다고 베드로는 고백합니다. 예수님이 이 고백 위에 천국을 세우겠다 하시며 천국의 열쇠가 이 고백으로 천국이 열릴 것이다. 구원이 열릴 것이다 말씀하십니다. 열면 열리고 풀면 풀리는 베드로는 구원이 확정됐습니까? 이 말씀을 봤을 때 확정됐는데 예수님은 뭐라고 하시는지 볼까요?
마태복음 16장 21절부터 28절
21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상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24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은 잃으면 찾으리라
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
28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 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베드로가 천국의 열쇠를 받았다가 말 한마디 잘못해서 사탄이 됐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 최고의 축복을 주셨다가 이 세상 최고의 저주를 해버렸을까요?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이 고백으로 천국을 갑니다. 이 고백을 지켜야 되고 예수를 그리스도 되게 만들려면 하나님의 길을 따라가야 되고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간다는 뜻입니다. 베드로는 왜 이렇게 큰 책망을 받았을까요?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인간적으로 사랑하고 예수님을 친구로 생각한 것입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예수님이 말씀하실 때 베드로가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가 아시나이다 라고 대답합니다. 헬라어로는 필로세 친구의 우정으로 적혀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가페의 사랑을 물으셨으나 베드로는 필로세라고 대답합니다. 한국말에는 번역을 할 수 없어 그렇게 돼 있지만 끝까지 베드로는 필로세라고 대답합니다.
자기의 믿음이 연약한 걸 깨닫는 것이 돌이키는 것입니다. 자기의 믿음이 좋아서 내가 주를 위하여 죽음까지 가기로 작정하였나이다 하는 베드로는 사탄이 밀 까부르듯 합니다. 겸손하고 낮아져서 나는 예수를 제대로 사랑하지 못합니다고 고백할 때 예수님은 사랑하셔서 그를 사도로 삼으십니다.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항상 겸손한 데서 떠나시면 안돼고 자기를 낮추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그 뜻을 찾아가는 것이 우리가 해야 될 일입니다. 그래야 하나님 일을 실컷 해놓고 구원 못 받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바울이 끝까지 믿음을 지킨 그 고백과 같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나님의 일은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고난을 받지 않았으면 합니다 라고 말씀드린 것이고 예수님은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하십니다. 베드로가 마지막에 십자가를 받지 않으려고 도망가다가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나타나서 내가 대신 십자가 진다고하시니 다시 돌아가서 십자가에 못박혀 순교합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늘 살피며 따라갑시다. 말씀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예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우리 예수를 위하여 삽시다.
주님께서 생명 다해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심을 늘 명심하며 주님을 신뢰하고 따라갈때 우리는 영원한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여기 두 가지의 말씀이 모순된 것 같지만 모순된 게 아닙니다. 믿음은 붙잡고 따라가야 되는 것이며 믿음은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순교 직전의 마지막 최후 유언에 내가 끝까지 달려갈 길을 다 가고 나의 믿음을 지켰으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끝까지 달려가기를 다하고 믿음을 지키는 여러분에게 주님께서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실 때 여러분의 믿음으로 구원해 주실 줄 믿습니다. 행한다는 것은 우리가 행한다는 그 뜻이 아니고 믿음을 지킨다는 뜻입니다. 끝까지 믿음을 지키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사랑하는 주님
오늘은 말씀을 통하여 모세에게 하신 말씀, 또 예수님이 친히 하신 말씀, 또 바울이 했던 말씀이 동일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성경은 성령님께 성령의 감동으로 받아 적은 책이므로 모두 동일한 책임을 우리가 깨닫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볼 때 말씀을 그대로 보며 그 말씀을 믿으며 사랑하는 주님을 기다리겠습니다.
주님 끝까지 우리 모두의 믿음을 지키겠습니다. 우리를 인도하여 주옵소서.
살아계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첫댓글 양집사님께서 함께 해 주시니 몸과 마음이 한결 가볍습니다.
목사님께서 전해주시는 생명의 말씀을 글로 읽으며 선명하게 주님의 뜻을 깨닫도록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