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그림책 포럼 7차 <해외 영아그림책 현황> 주제 발표 내용을 토대로 한 것입니다
[월간그림책]에 격월로 2,4,6,8,10,12월에 연재 될 예정이에요
월간그림책 4면_연재 ‘해외 영유아 그림책 현황’ 1
영아 그림책, 세상을 여는 첫 번째 창
신혜은(그림책 심리학자, 경동대 유아교육과 교수)
작년 2025년 9월 19일, 그림책의 해 7차 포럼으로 영유아 그림책의 활성화 방안에 대한 ‘영유아 그림책 포럼’이 김포 장기도서관 대강당에서 개최되었다. 국내 영유아 그림책의 위상과 영향, 해외 영유아 그림책 현황부터 국내 영유아 그림책의 출판 활성화 방안까지 논의하는 소중한 자리였다. 필자가 2005년 한국어린이문학교육학회 학술대회에서 처음 영아기에 발달적으로 적합한 그림책은 어떤 것인지, 또 ‘영유아기 그림책 공유하기의 중요성’에 대한 논의를 시작한 지 20년이 되는 시점에서 해외 영유아 그림책 현황 및 트렌드 분석은 개인적으로 매우 흥미롭고도 도전적인 과제였다.
최근 전 세계 그림책 시장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분야는 0~3세 대상 영아 그림책이다. 북미는 전체 그림책 시장의 4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는데, 여기서도 약 3분의 1이 영유아 도서이다(「Global children’s publishing trends」, Anderson). 글로벌 영아 그림책 시장의 성장은 향후 10년 5~6퍼센트로 예측된다. 이는 단순한 출판 트렌드라기보다 영아기의 중요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를 반영한다. 과거에 비해 “그림책, 언제부터 읽어줘야 해요?”라는 질문은 상당히 줄어들었다. 하지만, 지금도 “아기에게는 어떤 그림책이 좋아요?” “영아 그림책, 어떻게 읽어줘야 해요?”라는 질문은 여전히 부모와 현장 교사에게 중요한 부분이다. 또 한 가지 영아 그림책을 이야기할 때 등장하는 질문이 있다. “이 책으로 무얼 가르칠 수 있나요?”이다. 그러나 이 질문은 영아 그림책의 본질을 조금 비껴간다.
그림책 『Everywhere Babies』를 펼치면, 이 질문은 조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모든 날, 모든 곳에서”라는 반복구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읽기 쉬운 라임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다양한 모습의 아기들과 가족을 사랑과 일상 속에서 보여준다. 이 책에는 특별한 주인공도, 기승전결의 서사도 없다. 대신 기어 다니고, 앉고, 넘어지고, 울고, 먹고, 잠드는 아기들의 일상이 장면마다 이어진다. 어른의 기준에서 보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책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바로 이 점 때문에 이 책은 영아 그림책을 설명할 때 가장 자주 언급되는 사례 중 하나가 되었다. 이 책이 보여주는 것은 ‘이야기’가 아니라 ‘삶의 리듬’이다. 그리고 영아에게 그림책이란 바로 이런 방식으로 다가온다. 사진 기반 『Hello, Face』에는 다양한 아기들의 얼굴과 표정이 가족과 함께 웃고, 재채기하고, 하품하는 모습으로담겨있다. 영아에게 그림책은 세계와 처음 만나는 장소이며 책 속에 등장하는 얼굴, 몸, 가족, 일상은 아기가 세상을 인식하는 틀이 된다.
발달심리학 관점에서 ‘영아는 관계 속에서 배우는 존재’이다. 영아는 혼자 세계를 탐색하는 존재가 아니라 타인의 시선과 몸짓, 목소리에 반응하며 세상을 경험한다. 아기가 책을 만지며 종이의 질감을 느끼고, 그림을 보다가 엄마 아빠의 얼굴을 올려다보는 순간, 그 경험 자체가 이미 학습이다. 이해 이전의 경험, 설명 이전의 만남이 일어난다. 따라서 영아에게 그림책 읽기란 글자를 해독하는 인지 활동이 아니라, 보고·듣고·만지고·응답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전신적 경험이다(『From neurons to neighborhoods』, Shonkoff & Phillips). 이 관점에서 보면, 영아 그림책의 가치는 ‘어떤 개념을 담았는가’가 아니라 ‘어떤 만남을 가능하게 하는가’에 있다.
지금의 그림책은 3세 이상 유치원 시기를 위한 교재가 아니라, 0~2세 영아기 발달 그 자체를 지지하는 매체로 재정의되고 있다. 이 변화는 해외 여러 국가의 정책과 제도에서도 확인된다. 미국에서는 소아과 정기검진 현장에서 그림책을 처방하는 ‘Reach Out and Read’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으며, 영국·독일·프랑스·북유럽 국가들에서도 신생아에게 책을 보편적으로 제공하는 정책이 확산되고 있다. OECD도 2025년 ECEC(Early Childhood Education and Care) 보고서에 0~2세 조기교육과 돌봄 참여에서 취약 계층의 접근성 강화와 공공개입의 필요성을 권고하고 있는데, 특히 가정을 기반으로 한 그림책 공유 읽기를 효과적인 정책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림책은 이제 각 가정에서 선택하는 물건’이 아니라, 사회가 영아에게 제공하는 첫 문화자원이 되고 있다.
영아 그림책은 조용하다. 화려한 설명도, 강한 메시지도 없다. 그러나 바로 그 조용함 속에서, 아기는 세계와 연결된다. 보호자의 무릎 위에서, 같은 책을 수십 번 반복해 읽는 시간 속에서, 아기는 사람과 사물, 소리와 몸짓 사이의 관계를 배운다. 그래서 영아 그림책은 ‘이른 책’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처음 필요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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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혜은 선생님은 그림책 심리학자이자 작가, 번역가로 그림책 심리치유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현재 경동대 유아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그림책 『나비잠』 『 비가 오면』 『조개맨들』 『마음아 작아지지 마』 등을 썼고, 번역한 그림책 『이색다바나나』『가만히 들어주었어』『내 안에 내가 있다』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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