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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김씨 익원공파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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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원공파 자료방 스크랩 본관별 종류 - 김씨(16)
김완식 추천 0 조회 74 10.05.25 22:11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제목: 뿌리를 찾아서 2008.11.6.목

본관별 종류 - 김씨(16)


영월김씨(寧越金氏)

 시조 김여생(金麗生)은 신라 경순왕의 여덟째 아들 김추(선산김씨 시조)의 후손이다. 그에 대한 사적은 알 수 없고 전옥에서 봉사를 지내고 화를 입어 영월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살았다고 전해진다. 그 후의 후손에 대한 기록은 없어서 알 수가 없고 후손 김복중이 명천으로 이사하여 살면서 그를 1세로 하고 본관을 영월로 하였다.

 본관 영월은 강원도 영월군 일대의 지명이다. 2000년에 총 223가구 699명이 있다.

영주김씨(榮州金氏)

 시조 김정자(金挺磁)는 신라 경순왕의 9세손으로 고려 때 태자소보를 지냈다고 전하나 사적이 없으므로 세계는 상고할 수 없다. 여주김씨와 동원이라고 전하는 문헌도 있다. 본관을 영주로 하게 된 연유는 알 수 없다. 2000년에 총 284가구 922명이 있다.

  

영천김씨(永川金氏)

 영천김씨는 김알지의 후손이면서 1세조를 각각 다르게 하고 서로 혈연관계를 밝힐 수 없는 4개의 계통이 있다.

 김철일계의 김철일은 신라 경순왕의 셋째 아들인 김명종의 17세손이다. 김온계는 영천에서 살다가 김온 에 이르러 평북 가산으로 이사하여 살면서 조상의 고향인 영천을 본관으로 하였다. 김지식계의 김지식은 신라 경순왕의 후손이라고 한다. 김영장계의 김영장은 검교 한성부윤을 지냈다. 묘소는 황해도 평산군 남천읍 두무리에 있다.

 과거 급제자는 김용기(金龍基, 1811 辛未生) : 문과(文科) 헌종9년(1843) 식년시 병과(丙科), 김관효(金觀孝, 1817 丁丑生) : 문과(文科) 헌종9년(1843) 식년시 병과(丙科), 김명래(金命來, 1666 丙午生) : 무과(武科) 숙종25년(1699) 식년시 병과(丙科), 김지순(金之純, 1777 丁酉生) : 사마시(司馬試) 순조7년(1807) 식년시 이등(二等), 김기국(金器國, 1737 丁巳生) : 사마시(司馬試) 영조44년(1768) 식년시 삼등(三等), 김석로(金錫魯, 1704 甲申生) : 사마시(司馬試) 영조23년(1747) 식년시 삼등(三等), 김언형(金彦衡, 1781 辛丑生) : 사마시(司馬試) 헌종10년(1844) 증광시 삼등(三等),  김대창(金大昌, 1721 辛丑生) : 역과(譯科) 영조16년(1740) 증광시, 김대징(金大徵, 1712 壬辰生) : 역과(譯科) 영조5년(1729) 식년시, 김대관(金大寬, 1709 己丑生) : 역과(譯科) 영조5년(1729) 식년시 등 모두 19명이 있다. 문과 2명, 무과 1명, 사마시 4명, 역과 3명, 음양과 7명, 율과 2명이다.

 본관 영천은 경상북도 영천시 일원의 옛 지명이다. 2000년에 총 1,100가구 3,540명이 있다.

  

▲ 영해김씨(寧海金氏)

 시조 김억민(金億敏,億東)은 신라 경순왕의 넷째 아들인 김은열의 14세손이며, 구 안동김씨의 중시조인 김방경의 7세손이다. 김억민은 고려 말에 중랑장을 지내고 조선개국에 공을 세워 개국공신으로 안동군에 봉해진 김철 의 손자다. 김억민이 진사시에 합격하고 병조정랑을 거쳐 영해부사를 역임함으로서 후손들이 본관을 영해로 했다. 묘소는 함경북도 학성군 학남면 금산동 동막촌 사을포산에 있다.

 김세봉(金世鳳)은 오위장(五衛將)을 지냈으며, 김기영(金基濚)은 성균관사업(成均館司業)을 지냈다. 본관 영해(寧海)는 경상북도 영덕의 지명이다. 2000년에 총 214가구 718명이 있다.

▲ 예천김씨(醴泉金氏)

 시조 김존사(金存沙)는 신라 경순왕의 아들 김선(金鐥)의 8세손인 언양김씨의 중조 김취려(金就礪)의 후손으로 전하나 중간 세계는 불분명하다.

 과거 급제자는 김기남(金己男, 1610 庚戌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김우혁(金宇奕, 1757 丁丑生) : 사마시(司馬試) 정조7년(1783) 식년시 이등(二等), 김종우(金宗祐, 1867 丁卯生) : 사마시(司馬試) 고종25년(1888) 식년시 삼등(三等) 등 모두 3명이다. 무과 1명, 사마시 2명이다.

 본관 예천(醴泉)은 경상북도 예천군의 지명이다. 2000년에 총 281가구 884명이 있다.

  

▲ 오천김씨(烏川金氏)

 시조 김서흥(金敍興)은 신라 경순왕의 둘째 아들인 김굉의 7세손으로 고려 인종 때 예빈동정을 지내고 오천군에 봉해졌다. 그의 4세손 김예직이 고려 원종 때 공을 세워 오천군에 봉해졌으므로 나주김씨에서 분관하여 본관을 오천(연일)으로 하였다. 묘소는 경기도 장단군 선거산에 있다.

 2000년에 총 223가구 704명이 있다.

  

▲ 옥구김씨(沃溝金氏)

 시조 김범(金範)은 신라 김알지의 후손으로 전하는 상산김씨(商山金氏 = 尙州金氏) 시조 김수(金需)의 19세손이자 장사랑 김윤검(金允儉)의 아들이다. 그를 시조로 본관을 옥구로 하게 된 이유는 알 수 없다.

 김범(金範)의 자는 덕용(德容)으로 일찍부터 시에 능했다. 1540년(중종 35) 문과에 진사과로 급제, 1566년(명종 21) 내시교관에 임명되었으나 사퇴했다. 다시 학행으로 천거되어 옥과현감이 되어 조식(曺植)과 함께 명종에게 불리어 학문, 정치에 관해 진언했다.

 만년에는 주자학에 전심하여 많은 제자를 가르쳤다. 인조 때 효자정문이 세워졌고 상주(尙州)의 옥성서원에 배향됐다.

 사마방목(司馬榜目)에는 본관이 상주(尙州)로 기록된 것으로 보아 그의 후손들이 본관을 옥구로 그를 시조로 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진사(進士) 김인수(金仁秀)를 시조로 하는 문헌도 있다.

 옥구는 전북 옥구군의 지명이었다. 지금은 군산시에 병합됐다. 2000년에 총 1가구 3명이 있다.

  

▲ 옥천김씨(沃川金氏)

 시조 김곤(1596~?)은 김알지의 후손으로 예안김씨(禮安金氏) 시조 김상(金尙)의 15세손 김득선(金得善)의 셋째 아들이다. 1648년(인조 26)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현감, 감찰 등을 역임했다.

 국조문과방목에 본관이 예안으로 되어있고, 김곤 이전에도 본관을 옥천으로 하는 과거 급제자가 있다. 김곤의 조부는 김윤안(金胤安), 증조부는 김사희(金士熙)이다. 진사(進士) 김천익(金天益)을 시조로 하는 문헌도 있다.

 과거 급제자는 김우현(金禹鉉, 1855 乙卯生) : 문과(文科) 고종28년(1891) 별시 병과(丙科), 김연(金輦, 1786 丙午生) : 문과(文科) 순조14년(1814) 식년시 병과(丙科), 김사남(金士男, 1603 癸卯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김완(金琬, 1674 甲寅生) : 무과(武科) 숙종21년(1695) 별시 병과(丙科), 김계숙(金啓塾, 1750 庚午生) : 사마시(司馬試) 영조49년(1773) 증광시 삼등(三等), 김홍태(金弘泰, 1804 甲子生) : 사마시(司馬試) 순조27년(1827) 증광시 삼등(三等), 김오상(金五常, 1804 甲子生) : 사마시(司馬試) 중종5년(1510) 식년시 삼등(三等), 김팽수(金彭壽, 1804 甲子生) : 사마시(司馬試) 중종5년(1510) 식년시 이등(二等), 김오륜(金五倫, 1804 甲子生) : 사마시(司馬試) 중종23년(1528) 식년시 삼등(三等),  김천부(金天賦, 1591 辛卯生) : 사마시(司馬試) 광해군7년(1615) 식년시 삼등(三等) 등 모두 12명이다. 문과 2명, 무과 2명, 사마시 8명이다.

 본관 옥천은 충청북도 옥천군의 지명이다. 2000년에 총 215가구 723명이 있다.

  

▲ 온양김씨(溫陽金氏)

 희천김씨(熙川金氏)에서 분관됐다. 본관 온양은 충청남도 아산시에 위치한 지명이다. 2000년에 총 852가구 2,650명이 있다.

  

  

완산김씨(完山金氏)

 시조 김정(金晸)은 신라 경순왕의 아들인 대안군 김은열의 10세손인 김약선의 아들이다. 전주김씨 시조 김태서의 손자다.

 과거 급제자는 김유정(金有鼎, 1630 庚午生) : 무과(武科) 효종2년(1651) 식년시 병과(丙科), 김승길(金承吉, 1612 壬子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김홍(金烘, 1663 癸卯生) : 사마시(司馬試) 영조1년(1725) 증광시 삼등(三等), 김두환(金斗煥, 1861 辛酉生) : 사마시(司馬試) 고종19년(1882) 증광시 삼등(三等), 김응정(金應正, 1610 庚戌生) : 역과(譯科) 인조11년(1633) 식년시, 김광운(金廣運, 1711 辛卯生) : 역과(譯科) 영조1년(1725) 증광시, 김경희(金景禧, 1711 辛卯生) : 역과(譯科) 영조5년(1729) 식년시, 김효검(金孝儉, 1725 乙巳生) : 의과(醫科) 영조23년(1747) 식년시, 김만일(金萬鎰, 1725 乙巳生) : 의과(醫科) 숙종7년(1681) 식년시 등 모두 9명이다. 무과 2명, 사마시 2명, 역과 3명, 의과 2명이다.

 본관 완산은 전주의 옛 지명이다. 2000년에 총 201가구 653명이 있다.


▲ 용담김씨(龍潭金氏)

 시조 김순서(金順瑞)는 수원 김씨의 시조 김품언의 넷째 아들로 고려 때에 예부시랑을 지냈다. 그의 후손인 김덕생은 조선 개국 대 원종공신으로 병조참의를 역임하고 명천으로 낙향하여 살면서 후손들이 명천, 길주, 경성 등에 정착하여 살았다.

 본관 용담은 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의 지명이다. 2000년에 총 64가구 197명이 있다.


용성김씨(龍城金氏)

 시조 김시보(金時輔)의 자는 공이(公耳)다. 국주(國柱)로 신라 경순왕의 제4자 김은열 손자인 수원김씨(水原金氏) 시조 김품언의 22세손이며, 김의지(金義之)의 아들이다.

 그는 무공랑으로서 1495년(연산군 1년) 증광시 생원으로 급제, 1507년(중종 2) 식년시에 을과로 급제하고 현감을 지냈다. 그의 급제 당시 본관이 용성(龍城)이고 세거지가 밀양인 점으로 보아 그의 선대에서 밀양으로 이주 후에 전 세거지였던 용성을 본관으로 하게 된 듯하다.

 과거 급제자는 김시보(金時輔) : 문과(文科) 중종2년(1507) 식년시 을과(乙科), 김계인(金戒仁, 1593 癸巳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김대남(金大男, 1603 癸卯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김시보(金時輔, 1603 癸卯生) : 사마시(司馬試) 연산군1년(1495) 증광시 삼등(三等) 등 모두 4명이다. 문과 1명, 무과 2명, 사마시 1명이다.

 본관 용성은 경기도 화성군의 옛 이름이다. 2000년에 총 32가구 104명이 있다.

( 정복규 논설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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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0.05.26 12:33

    첫댓글 중간세계가 없는 성씨들이 꽤 많습니다. 기록의 불비에 재난과 전쟁으로 인한 소실도 많겠지만 과거에도 가문에 대한 의식이 약했던 모양 입니다. 게다가 창씨와 개명을 통한 끼워 넣기가 많았던 모양 인데 어쨋든 선현들에 대한 존경심만은 있어야 겟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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