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도 못생겼고 키도 작고 말도 잘 못한다. 부티가 나지도 않는다.
그런데 자꾸 눈이 가고 가슴이 콩콩거린다.
저런 남자에게 반하다니 혹시 나는 변태가 아닐까.
그러나 주위를 둘러보니 내가 정상임을 확인했다.
이 감자같은 남자 양동근에게 매혹된 여자가 의외로 많았던 것이다.
남자 보는 내 안목은 녹슬지 않았다”
한 여성의 고백이다. 이 여성만이 아니다.
인터넷 게시판에는 ‘왜 양동근이 섹시하게 느껴질까’
‘허름한 옷을 입고 볼품없는 운동화를 신어도 내겐 백마탄 왕자로 보인다’ 등
남자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여성들의 사랑고백이 이어진다.
요즘 많은 여성들로 하여금 자신의 심리나 안목을 의심케 만드는 남자.
그가 바로 양동근이다.
양동근의 괴상한 매력을 파악하기란 쉽지가 않다.
실제로 그와 대화하려면 인내심이 필요하다. 무얼 물어도 침묵이거나 단답형이다.
바쁜 그의 스케줄 때문에 심야에 전화통화로 인터뷰를 할 때도 마찬가지.
“아니, 이도 저도 관심사가 아니라면 대체 시간날 땐 뭐하는 거요?”.
한참이 지났을까. “음~ 달리기든 농구든 뭐든 하는…”(뚜뚜뚜…)
어렵사리 말문을 열었지만 통화는 그렇게 끝이었다.
통화를 하던 자정 무렵, 그는 촬영중이었고 양동근이 아니라 고복수였다.
# 복수, 체념이냐 오기냐
1987년에 데뷔한 아역 탤런트 출신의 양동근(23).
그가 출연한 MBC 미니시리즈 ‘네 멋대로 해라’는 시청률 20%대 평년작이지만
마니아에게는 ‘양동근 바이러스’라는 지독한 열병을 감염시키고 있다.
소매치기 전과 2범 고복수. 우연히 마주친 여인 경(이나영)의 애틋한 사랑도,
자신을 향한 미래(공효진)의 서글픈 당돌함도 그에게는 허망한 박제일 뿐.
몹쓸 불치병(재생불량성 빈혈)은 복수의 숨통을 조여오고 운명을 가른다.
그의 처절한 뇌까림에 시청자들도 아련한 통증을 느낀다.
그는 더 이상 ‘뉴논스톱’의 뻔뻔한 곱슬머리 구리구리가 아니라 섹시가이로 자리잡았다.
경쟁 채널에서는 꽃미남 고수가 애절한 순애보를 연기하지만
여성들은 이 마당쇠같은 양동근에게 자신의 사랑을 전하지 못해 안달이다.
‘명대사·명장면’을 꼽는 인터넷 시청자 게시판에는 문지방이 닳도록 감동의 사연들이 드나든다.
“‘심장에 박힌 그 사람을 뜯어내면 심장마비로 내가 죽어’라는 복수의 대사가
내 심정과 똑같다”(200081), “복수가 아버지와 저녁을 먹다 뛰어나와 상추쌈을
입에 물고 울 때 나도 눈물이 났다”(ARA0521) 등 애절한 고백이 대부분이다.
자신의 병을 알게 된 미래의 애끊는 절규에도 복수는 무신경한 채 “응”으로 일관한다.
대뜸 실없는 유머도 잊지 않는 복수. 난해하다.
그의 내면은 삶에 대한 체념일까, 죽음에 맞선 오기일까.
그런데도 양동근은 “복수가 너무 솔직해서 표현하기 힘든 인물”
이라며 또 한번 실타래를 꼬아 놓았다.
# “‘무뇌아’의 굳은 심지”
양동근은 입이 천근이다. 과묵한 그를 일러 사람들은 “말을 아낀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할 말이 없을 뿐”이라며 퀭한 시선을 거둔다.
이 지점이 바로 ‘양동근 바이러스’의 발원지다.
대중은 그의 반항적인 눈빛과 어눌한 말주변에서 원인 모를 희열을 맛본다.
굳이 입을 열지 않아도 끓어오르는 에너지를 숨긴 듯한 슬픈 눈빛에서
우리는 그의 알듯말듯한 메시지를 감지한다.
그 메시지는 ‘래퍼’ 양동근에게서 더욱 또렷해진다.
응어리진 인내와 분노를 일거에 씻어내리는 랩은 어쩌면 그의 유일한 표현도구일지 모른다.
말없던 그가 힙합댄스와 함께 폭발해버리는 랩….
‘네 멋대로 해라’의 연출자 박성수 PD는 “언젠가 다큐멘터리에서 불치병에
걸린 청년이 혼자 거울 앞에서 웃는 연습을 하는 장면을 보고 충격을 받아
그 이미지를 고복수를 통해 전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동근이와 복수는 별개가 아닌 한몸”이라는 말로 양동근을 설명했다.
작가 인정옥씨는 “드라마를 보면 내가 대본을 쓰기도 전에 복수가 먼저
죽을 것 같다”며 “여성팬들이 많은 것은 양동근의 섹시미 때문”이라는 해석을 내린다.
열혈 팬이라는 한 여대생은 “양동근은 그 슬픈 눈으로 ‘너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메시지를 보내
모성애를 자극한다”며 “그가 잘생기고 못생기고는 전혀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대학가요제 수상작인 ‘꿈의 대화’를 부른 가수 출신 신경정신과 전문의 이범용 박사도
“무뇌아로 보일 만큼 생각이 없는 듯하지만 그의 연기 이면에는 굳은 심지가 엿보인다”며
“이런 점에서 어른들과 갈등을 빚는 10대들이 동질감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여의도에 널린 ‘꽃미남’들의 화원에서 양동근은 한쪽에 서있는 거무튀튀한 선인장이다.
꽃들이 화려한 ‘끼’로 천연색 자태를 뽐내다 시들어갈 때,
선인장은 가시 돋친 ‘꾼’의 장인정신으로 제자리를 지킨다.
‘외계인이면서 지구인으로 가장하고 있을 것 같은 연예인’ 설문조사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한 양동근. 그는 외계인같은 매력으로 남자들에게도
메시지를 전한다. 남자는 미모 순이 아니라 매력과 실력 순이라고.
-가수 양희은씨가 본 양동근…눈만 껌벅이는 꽃미남은 싫다, 그의 매력은‘자연스러움’이다-
난양동근의 열혈 팬이다. 연기자 양동근이 너무 좋아 같은 양씨임을 강조,
MBC 시트콤 ‘뉴논스톱’에 자청해서 동근이 고모로 2회나 출연했다.
요즘은 아예 구리구리 양동근 스타일로 머리모양까지 바꿨다.
연기자 양동근을 처음 발견한 건 10년 전 미국에 살 때였다.
그곳에서 이문구 원작의 ‘관촌수필’이라는 드라마를 봤는데
10대의 양동근이 민구라는 소년으로 나왔다.
투박하고 못생긴 얼굴인데 어찌나 연기를 잘하던지 그때 ‘찜’해 두었다.
직접 만나보니 정작 본인은 그 역할을 기억하지도 못했다.
청년으로 성장한 그를 보며 막연히 예사롭지 않은 사춘기를 보냈겠다는 짐작만 했다.
요즘은 수·목요일 저녁에 약속을 정하거나 전화거는 사람들이 귀찮다.
양동근이 출연하는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시한부 삶을 사는 대책없는 청년 복수를 표현하는 그의 매력에 푹 빠져 있다.
꽃미남 열풍이 불었다지만 이제는 미남에도 싫증났다.
아무리 꽃미남이라 해도 대사 전달도 안되고, 연기라고는 그저
미간만 찡그리며 고뇌하는 척하거나 눈만 껌벅이는 연기자는 짜증난다.
하지만 눈빛 하나, 어깨 동작 하나에도 혼이 묻어나는 연기를 하는
연기자는 외모에 상관없이 존재감이 느껴진다.
양동근의 매력은 자연스러움이다. 연기한다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자연스럽다.
아주 치밀하게 계산된 연기인데도 그 계산이 시청자들에게 탄로나지 않는다.
그의 천연덕스러우면서도 절제된 연기를 보면 저런 걸 표현하기 위해
그가 얼마나 혼자서 침묵 속에 갇혀 지냈을까 안쓰럽기까지 하다.
또 요즘은 영화에 노래까지, 너무 바쁜 것 같아 자신을 너무 소모하는 게 아닌가 걱정도 된다.
양동근은 앞으로 어떤 드라마에서 어떤 역할로 우리를 감동시킬지
두고두고 지켜보고 싶은 연기자다. 기대에 차서 지켜볼 존재가 생겼다는 건
내게는 큰 기쁨이고, 그래서 양동근이 참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