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월 6일(수) 밤 10:00~10:50 KBS 1TV 방송
[환경스페셜 531회]
<환경스페셜> 설 기획‘일생’
연출: 김한석
‘순간’의 기적이 모여 만들어낸 자연과 인간의 ‘일생’
지난 2011년 11월
초고속과 스틸 촬영을 통해
지리산 속 할머니와 자연의 평범한 하루를
86,400초의 경이로운 찰나로 조명했던 ‘순간’
그 이후 1년의 이야기.
‘생명’이라는 이름의 친구이자 가족으로
함께 나고 자라고 늙고 죽어가는
자연과 인간의 일생을 기록했다.
■ 단 한 번뿐인 삶, 일생
19살에 산골로 시집온 김채옥 할머니(71)는 유난히 친구들이 많다. 얼핏 외로울 것 같은 산중생활이지만 할머니에게는 산새와 산짐승 그리고 집에서 키우는 닭과 강아지가 모두 친구다. 마당에 찾아온 사마귀와 한바탕 숨바꼭질을 하기도 하는 할머니의 삶은 자연 그 자체다. 우여곡절 많은 할머니의 인생처럼 깊은 산 속 작은 생명들의 삶 역시 치열하고 눈부시다. 자연의 모든 생명은 단 한 번뿐인 저마다의 소중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영화배우 신현준의 목소리로 할머니의 시선을 따라 지리산 생명들의 일생을 들여다본다.
■ 시트콤보다 더 역동적인 지리산골 억새집 식구들의 티격태격 일상
전북 남원시 산내면 지리산 속에 위치한 김채옥 할머니의 집.
겨울이면 부뚜막 쟁탈전이 벌어진다. 할머니가 불을 피우면 기다렸다는 듯이 부뚜막에 올라 앉아 남은 온기에 엉덩이를 지지는 닭들. 하지만 이 자리는 생후 3개월 된 강아지 검순이도 탐내는 자리다. 부뚜막의 닭들을 모조리 쫓아내고 먹이통까지 차지한 검순이. 성난 닭들은 날카로운 부리로 총공세를 펼친다. 겨울날 할머니네 부뚜막은 닭과 검순이의 쟁탈전으로 바람 잘 날 없다.
■ 지리산 속 생명들의 4계
봄이 되면 개울에선 물두꺼비가 깨어난다. 짝짓기에 드는 수고를 덜기 위해 수컷을 업은 채 잠들었던 물두꺼비는 곧바로 다음 세대를 위한 교미를 시작한다. 뒷산에서는 겨울을 무사히 넘긴 멧돼지가 녹은 땅을 파서 먹이를 구한다. 여름에는 풀잎 한 장 위에서까지 생명의 쟁탈전이 치열하게 벌어진다. 무당벌레는 진딧물을 잡아먹고 물속에선 닷거미가 치어 사냥에 한창이다. 가을이면 뒷산 다람쥐는 밤을 까 식량을 비축하고 할머니는 이듬해 지붕을 새로 얹기 위해 억새를 벤다. 유달리 빨리 찾아오는 산 속의 겨울. 지리산 속 생명들은 각자 매서운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며 겨울을 보낸다.
■ 늙은 어미만이 헤아리는 세상 모든 어미의 마음
할머니는 짝짓기 중 수컷에게 상처 입은 암탉을 방에 데려가 치료하고 먹이를 따로 주며 살뜰히 보살핀다. 고사리를 캐러간 산에서 발견한 어미 잃은 아기 고라니에게, 비록 짧은 인연이지만, ‘미라니’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우유도 먹여 산으로 돌려보낸다. 강아지 검순이가 할퀸 암탉의 눈엔 자신의 안약을 넣어준다. 스무 살 어린 나이에 시집 와 이곳에서 세 명의 자식을 낳았던 할머니는 이 산에서 새끼를 낳고 보살피는 어미의 고단한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안다.
■ 죽음으로 완성되는 가치 ‘일생’, 모두의 일생은 찬란하다.
봄부터 여름까지 마당 한편에 집을 짓고 새끼를 키웠던 쌍살벌의 일생은 겨울이면 끝이 난다. 여왕벌만이 낙엽 속에서 살아남아 이듬해 다시 거대한 가족을 꾸린다. 하루살이 유충은 성충이 되기 위해 1년 동안을 물속에서 보낸다. 어른으로 살아가는 시간은 짧게는 2-3일에서 길게는 몇 주일 뿐. 다음 세대를 위한 번식을 마치면 이내 죽음을 맞는다. 일평생을 지리산에서 살아온 할머니는 그의 산 속 친구들이 그랬듯 흙이 자신이 돌아갈 고향이라고 말한다.
누구에게나 단 한 번뿐인 일생.
숨 쉬는 모든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지리산 생명들의 이야기를 통해
삶과 죽음이 함께 하는 일생의 의미를 되새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