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의 우물 30
내가 가톨릭 신자로 사는 이유 - 연재를 마치며.
‘만약’이란 단어는 그다지 생산적인 단어는 아니지만, 때로 내가 처한 현실과 창조적 상상력을 발휘하는 마력을 가진 말임에는 틀림없다. 가난한 이들은 “만약 내가 재벌가의 자녀로 태어났더라면”. “부유한 부모를 만났더라면”이란 회의에 찬 가정을 해보고, 건강을 잃은 사람은 “만약 내가 조금만 더 건강을 챙겼더라면”, 가정 해체를 맛본 이들은 “만약 내가 좋은 배우자를 만났더라면”, “좀 더 참고 인내했더라면” 등의 가정으로 현실을 탓하는 경우가 많다.
종교적 신념에 있어서도 ‘만약’이란 말은 몇 가지 생각할 거리를 준다. “만약 내가 천주교 신자인 부모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만약 내가 이슬람 국가에서 태어났더라면”, “만약 내가 하느님을 알지 못했더라면” 과연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가톨릭 신자가 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가? 아니면 때로 후회한 적은 없는가? 때로 주일이나 고해성사의 의무에 매일 필요 없는 불교가 매력적일 수도 있고, 메마르고 따분한 미사 전례나 의무적 신앙에 매이지 않는 개신교가 맘이 편할 수도 있다. 까다로운 윤리적 계명들을 양심에 거스르며 사는 불편함보다는 특정 종교의 의무에 속하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때로는 편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가톨릭 세례명을 갖고 있고, 성호경을 긋고 있는 사람이라면 가톨릭 신자로 사는 나름대로의 이유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신심 깊은 사람들의 신념에 찬 확신까지는 아닐지라도 가톨릭 신자임을 자부할 수 있는 자신 만의 이유는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 이유가 너무 자기 주관적이 아니면 좋겠다. 가령 시끄러운 개신교의 찬양일색과는 달리 성당의 고요함과 전례의 경건함이 좋다거나, 술, 담배를 허락해주는 교회라서, 때로 십일조와 헌금의 무게로부터 벗어나 ‘싼 맛’에 다닐 수 있다는 매력만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조금은 가톨릭 신자로 살아가는 이유를 이보다는 더 큰 것에서 찾았으면 한다.
가톨릭은 말 그대로 ‘보편적’인 교회이다. 보편적이란 말은 시대와 문화, 인종과 민족을 넘어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이 되신 하느님의 보편성을 뜻한다. 가톨릭 교회는 어머니의 품과도 같이 모두를 끌어안을 수 있는 넓이와 아무리 쳐다봐도 끝이 없이 심오한 하늘의 무한함과 완전함을 가지신 하느님의 보편적인 사랑을 세상에 선포한다. 비록 우리와 종교와 신념이 다르더라도 온 인류가 창조의 질서 속에서 하느님의 자녀로 부름 받았다는 사실과 아무리 세상이 편견과 오류로 가득 찬 가치 질서를 강요하더라도 진리는 결코 변하지 않는다는 확신에 찬 외침을 가톨릭 교회는 선포한다.
우리는 세상 어디에서나 불고 싶은 대로 부시는 성령의 움직임을 찾고, 하느님의 창조 질서가 왜곡되는 곳에서는 하느님을 닮은 인간의 천부적 인권과 자유, 피조물의 아름다움과 생명의 고귀함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계속한다. 성찬례의 신비 속에서 자신을 십자가의 희생 제물로 바치신 예수님의 사랑의 위대함을 맛보고, 고해소에서 우리의 양심을 가로막는 죄의 어두움으로부터 치유하시는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한다. 나의 가슴에 십자 성호를 그으며 우리 삶의 고통과 시련이 하느님께 봉헌되는 희생 제물임을 깨닫고,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을 도우는 손길 속에서 세상에 오신 하느님의 사랑의 육화(肉化)를 체험한다.
야곱의 우물에 글을 처음 연재할 때 나는 가톨릭 신자로 살아가는 기쁨과 우리 삶을 감싸고 있는 신앙의 신비를 ‘제3의 눈’으로 바라보자고 했다. 짧은 지면을 통해 충분하지 못하게 전한 메시지들은 사실 글을 읽는 독자보다도 내 자신을 향하여 쓴 이야기가 더 많았다. 세상 속에서 신앙을 찾는 것은 사제인 내게도 작지 않은 과제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을 찾는 우리들, 그 안에서 우리가 만난 세상 속 신앙 읽기는 나를 찾으시는 하느님과의 만남으로부터, 이웃과의 만남, 이웃 종교인들과의 만남, 교회에서 매일 부딪히는 민감한 신앙 문제와 관련된 이야기들이었다.
막상 연재를 마치려니 매달 어줍지 않은 이야기를 풀어내야했던 부담감을 벗는 것 같아 맘은 가볍다. 하지만 부족한 글들을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정성껏 읽어준 독자들에게 고마움과 부끄러움도 느낀다. 솔직히 충분히 생각하지 못하고 급하게 써낸 글도 많았고, 평소 생각을 다 담아내기에는 지면이 허락되지 않아 고민해야했던 적도 많았다. 처음에는 어떤 형태의 글을 써야 할지 몰라 담당 수녀님을 애먹인 적도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2년 반씩이나 독자층이 튼튼한 교회 잡지에 글을 매달 올린 것도 영광이 아닐 수 없다. 부족한 글을 정성껏 수정해주시고, 좋은 주제를 제안해주신 야곱의 우물 편집부에도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특별히 편집의 어려움을 느낄 때마다 애교(?) 넘친 표현으로 내 글의 동반자가 되어준 바오로딸 수녀님들께도 감사의 정을 띄우고 싶다.
세상은 인연의 연속인 듯싶다. 바오로 딸 수도회와 맺은 인연 덕분에 두 번 다시 만나기 힘들 정도로 정성을 쏟아주신 수녀님도 알게 되었고, 미디어 사목에 종사하는 수녀님 덕분에 평화방송 강좌에도 나서게 되었다. 여러 곳에서 글과 영상으로 복음을 전하는 바오로딸 수녀님들 덕분에 분에 넘치는 자리에 나선 적도 많다. 모두가 하느님께 영광을 돌려야할 일들뿐이다.
“주님께서 집을 지어 주지 않으시면 그 짓는 이들의 수고가 헛되리라.”(시편 127, 1).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마치면서 논문의 첫 장에 썼던 감사의 기도를 이곳에서도 바치고 싶다. 하느님은 참 좋으신 분이시다. 인간적인 결함과 부족함을 사람들의 사랑으로 채워주시니 말이다. 앞으로도 야곱의 우물에서 더 좋은 글들이 많이 나와서 이곳에서 샘물을 마시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송용민 신부
(인천교구 삼산동 성당 주임/
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첫댓글 수고 많이 하셨네요. 부담, 백지의 공포가 만만치 않은데.. ㅎㅎ.. '일을 이루려는 마음이 일을 정성스레 하려는 마음에 앞서면 그 일은 망친다.' 요즘 마음에 머물러 있는 글귀입니다. 부엌 일을 하면서 물을 쏟고 냉장고 문에 다리가 부딪혀서 멍들기도 하구요. 이런 상황들 때문인지..
고마워요~동감합니다~ 밀린 일들이 많다 보니 충분한 생각이 담기지 않은 일들이 자꾸 생겨서 걱정입니다~ 기도해주세요^^
가톨릭 신자라서... 정말 행복하고 감사해요..!!
아름다운 장미의 계절... 신부님, 건강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신부님의 글은 언제나 저를 감탄하게 하고 은혜로 충만합니다.
글 한 구절 한 구절마다 신부님의 감수성에 전율마저 느끼게 하구요~
가톨릭 신자로 살지 않았던들 신부님의 주옥같은 글을 읽을 수 있는 영광이 주어졌을까요?모두가 하느님의 섭리임을 믿습니다.진심모아 감사 드립니다.
다정다감한 신부님과의 인연에 얼마나 행복하고 고마운지요.
부족한 신자들 많이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신부님~따랑해요ㅎㅎ
긴 여정을 잘 마치심을 축하드려요.
힘드셨을 텐데 전 쉽게 단번에 접하게 되어 죄송하네요^^
시작하실 때는 삼산동에 오실 걸 모르셨겠죠?
이 글들로 인해 그 때의 신부님을 마치 지금 뵙는 것 같듯이,
2천년전 이 땅에 오신 예수님 또한 성경을 통해 현존하심을 느낄 수 있을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글을 쓴다는 건 축복입니다.
이번주에는 카톨릭 신자로 사는 나를 돌이켜 보며 보내야겠습니다. 야곱의 우물은 신부님의 강론과 좀다른, 신학적이기 보다는 인생 철학이 담겨 있는듯, 아니 좀더 인간적인 내용이어서 참 좋았는데요 많이 아쉽습니다.
신부님 ....뵐수록 가까이에서 뵙고 싶어집니다
맞아요 신부님 저도 한때 어디에도 매이지않는 불교가 매력적으로 보엿으나 그래도 천주교 신자를 벗어날수 없었네요~~
감사합니다. 신앙인으로 예수님을 잘받아드릴 수 있도록 가톨릭신자로 사는 이유~~문장 문장 마다 가슴깊이 울려옵니다
무한한사랑을 주신 주님을 깊이 묵상하면서 잘 읽어 습니다. 신부님 새해에도 늘 영육간에 건강하소서**!!!
신부님은 어떤분이실까 ...? 어떤분이시길래 이런글이 나올수있는 감성을 가지셨을까 ...?
야곱의 샘물에서 신부님의 사랑이 마구마구 쏟아올라 분수처럼 촉촉하게 적셔줍니다 ..감사드립니다
이곳까지 이끌어 주신 하느님께 감사 드립니다.
이제 신부님의 애독자가 될거예요.
신부님 더 많은날
여러번 읽어 보고 되새겨야 되겠군요^^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2.05.08 22:45
저희 카페로 퍼서 담아 가고 있는 중인데 괜찮지요오 내가 가톨릭 신자로 사는 이유중에서 이전에 연재 하셨던 내용들도 모두 필요한데 넘 욕심이 많나
그런데요오
제공해 주시면 아니되나요
제가 연재한 글들을 세상 속 신앙 읽기란 제목으로 책을 냈거든요~사람들에게 책선전 해주세요^^
신부님의 좋은 글 잘 읽고 제 카페로 모셔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