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회를 앞두고 대충 준비는 해 놨으나 마지막 점검을 하고 있는데...
휴대폰이 울린다.
"어이! 어데있노. 와 안오노?"
"아 좀 있다 가야지. 8시 출발인데 벌써 거기 가 있나?"
"머라카노. 7시 출발 아이가 전부 다 와 있다 빨리 온나"
아뿔사 이런 실수가 도둑을 만나려면 개도 안짖는다고 했던가 한번 8시라고 생각하고는
다시 확인도 안하고 태평을 치고 있었으니...!!!
5시 55분 무선 교통 수단을 이용 하더라도 해운대 대회장까지는 1시간 이상 소요되는
거리인데 부랴 부랴 아무거나 챙겨 집을 나서 중앙동 지하철역까지 뛰어 서면에서 2호선으로
환승해 동백역에 도착하니 7시 대회장까지 또 뛰어 갔지만 이미 출발해 동백섬을 한바퀴
돌고 있다.
본부석이 어디냐니까 철수하고 저 위로 갔다고 해서 동백섬쪽으로 올라가다 다른 사람에게
물어니 다시 저 아래 주차장 제일 안쪽에 있단다.
이리뛰고 저리뛰어 본부석에서 접수하고 기념품과 배번을 받아 달고 물품은 맡기고 보니
나 처럼 8시로 착각한 사람이 몇 사람 있었다.
7시 20분경 출발 동백섬을 한바퀴 돌면 1km 정도 되는데 너무 늦었으니 그냥 뒤 따라서
찾아 가란다.
허겁 지겁 나서지만 이미 후미도 보이지 않아 약간의 지름길인 지하도 대신 횡단보도를 건너
장산 입구에서 후미를 만나 동해 남부선 철길을 넘어 어둠속에 길게 줄지어선 후렛쉬와 깜빡이
불빛을 따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맨 후미에 붙어 천천히 오른다.
초반인데다 어둡고 좁은 산길이라 마음은 빨리 가고 싶지만 갈 수가 없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주력의 차이가 나 한 두사람 추월하여 장산(634m) 정상에 오르니
진행요원이 여든 여덟번째라던가 그러는것 같았다. [5.7km 1시간20분]
광안대교를 비롯한 부산의 야경에 올라오는 사람마다 환성을 지른다.
밤바람이 싸늘해 땀이 식지 않게 베낭속의 바람막이 옷을 꺼내 입는 사이 많은 주자들이 앞서
지나간다.
정상을 왼쪽으로 돌아 숲길을 한동안 내려 가다 다시 올라 한참을 가니 정상의 부대로 올라가는
임도 약간의 내리막길이라 천천히 뛰어본다.
멀리 불빛이 하나둘씩 보이고 임도를 어느 정도 가다 왼쪽으로 틀어 기장쪽으로 향한다.
낮에는 몇 번을 왔던 길인데 밤이라 일행들과 무턱대고 가지만 낮 보다 오히려 더 수월한것
같기도 하다.
가는 동안 뒷 사람들중에 배번에 적힌 이름을 보고 아는체 인사를 하는게 게시판에 가끔 글을
올리고 여러 대회에 나가다 보니 이름이 조금 알려진 것 같다.
한적한 산길에 외딴집이 있는데 닭을 많이 키워 지나면 닭똥 냄새가 심하게 난다.
하지만 찻길이 있어 집행부에서 여기까지 차로 올라와서 라이트를 산성산 갈림길에 비춰놓고
종이컵에 물을 따라 주며 응원을 한다.
엉성한 짧은 나무 다리를 지나 산성산을 오르는데 은근히 힘이들지만 한동안 부드러운 길이
이어지다 산불 감시초소가 있는 산성산(368.9m) 정상을 지나 조금 갈림길이 나오고 오른쪽은
기장으로 가고 왼쪽으로 내려가는데 경사가 너무 급해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써며
내려간다.
앞 뒤에 사람은 안보이지만 주최측에서 간간이 달아논 볼펜같이 생긴 현광색등을 등대삼아
찾아 내려가는데 워낙 어둡다 보니 미등도 밝게 느껴진다.
차 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리고 숲 사이로 불빛도 보이는게 제1cp(체크 포인트)가 머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급경사의 숲길을 빠져 나오면 바로 공원 묘지 혼자라면 12시가 넘은 야심한 밤에 좀은 으쓰쓰
하겠지만 그런걸 느낄 여유 조차 없는듯 급경사 시멘트 포장길을 쏟아지듯 내려가면 진행
요원들이 배번을 체크한다.
쌍다리재(반송에서 기장으로 넘어가는 고개) 3시간 20분 통과 하지만 여기서 제한시간 5시간
내에 통과를 못하면 탈락된다.
큰길 횡단보도를 지나 100여미터 허씨농장 옆의 임도가 어둠속에 혼자라 그런지 지루하고
멀게 느껴진다.
개 짖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앞 사람이 임도가 끝나는 외딴 양어장옆을 지나 가는가 싶다.
우리야 이미 각오하고 나온 사람들이지만 오늘밤 우리가 지나가는 길가에선 개 짖는 소리에
잠을 설치는 사람이 많겠구나 싶다. ㅎㅎ
약수가 또르르 흐르는 팔각정에서 초코파이를 한개 먹는데 마음이 바쁘다 그냥 느긋하게
완주만해도 될것을 아직 가슴 한 구석에 승부욕이 웅크리고 있어서 그런지 잠시라도
머뭇거리는게 아깝게 생각되니 병이다.
안면있는 사람과 동반주가 시작되어 한동안 같이 호흡을 맞추어 뛰지만 마음이 편치 않고
오히려 부담스러운것은 일단 한동안 우연히 일행이 되어 뛰다보면 서로가 혼자 가기가 미안
해서 머뭇거리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장군에서 주민들을 위해 잘 가꾸어 논 일명 "테마임도"라 하여 노면 상태도 좋은 편인데
옆사람이 돌뿌리에 걸려 넘어진다.
다행히 다친곳은 없지만 나도 조심해야 겠다는 경각심이 생긴다.
배가 고파오지만 베낭속의 비상식을 꺼내 먹기가 성가시어 참으며 그냥 간다.
나름대로 믿는 구석이 있어 호스로 물만 빨아 마시며 낙엽 흩어진 임도를 뛰고 또 뛰니 드디어
정관으로 넘어가는 "곰내재" (290m) 정상의 간이 매점 제2cp (26km) 제한시간 7시간 30분
먼저 온 사람들이 먹고 쉬고 있다.
들어서며 "아지메 국시 한그릇 주소" 하니 "예~에"한다. 아닌 밤중에 이집은 북적대며 신이났다.
차도 잘 안 다니는 이런 밤중에 성시를 이루니 이 아니 즐거울 소냐...!!!
누군가 말한다. "아지메요 마라톤 자주 했으면 좋겠지요" 웃으며 예에 한다.
나도 한마디 했다.
"아지메는 돈벌어서 좋고 우린 먹고 쉬어갈 수 있어서 좋고 그지요"
모르긴 해도 국수와 커피 삼은 계란등을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먹고 갔을듯...
허기가 질려고 하는데 따끈한 잔치 국수에 약간 얼컨하게 양념을 넣어 먹어니 단것에 다린속이
확 풀리는듯 돈은 내고 먹지만 정말 고맙게 느껴진다.
오아시스를 뒤로하고 서둘러 길을 건너 문래봉 들머리에서 몇 사람과 줄지어 오르게 되었다.
경사가 장난이 아닌데 낙엽마져 떨어져 쌓여 미끄러워 헛심을 많이 뺀다.
문래봉(512m) 가파른 오르막에 비해 내리막은 다소 완만한 편이다. 또 다시 개가 짖어대는걸
보니 소산마을이 가까웠다는 것이다
소산마을 지나면 지루하고 매력없는 오르막의 임도가 나오는데 경사가 심해 뛰어 오를 수도
없고 걸어 가자니 땀이 식어 추워 질려고 해서 한기들기 전에 옷을 꺼내 입고 오른다.
어둠속을 혼자서 이리 저리 한참을 오르니 드디어 중간 지점이라 할 수 있는 곳 철마산(605.4m)
밤이라 안보여서 그렇치 낮에 보면 기가 차는 곳이다.
왼쪽으론 멀리 거쳐온 까마득한 장산이요 오른쪽엔 뾰쪽한 "계명봉"과 우뚝솟은 고당봉 그리고
주능선을 따라 쭈~욱 가면 그야말로 까마득한 백양산이 보이는데 참 저 먼데를 과연 제한시간
내에 갈 수가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는 곳이다.
철마산은 문래봉과는 반대로 오르기는 무난한 편이나 내리막길이 전코스중에서 가장 가파른
곳이라 할 수 있겠다.
평지나 오르막은 그냥 보통 수준이지만 내리막에선 타의 추종을 불허 한다고나 할까?
내리막에서 앞 사람들에 정체가 되어 한참을 따라 내려오다 결단을 냈다
좀 둘러 가더라도 막히지 않는 길로 들어서니 세사람이 뛰따라 온다.
남자 2명은 처지는데 여자 1명은 큰길이 나올때까지 바짝 따라 붙는데 주력이 대단해 언제나
나를 앞서 갔지만 고당봉을 앞두고 내가 앞서긴 했지만 가만히 보아하니 부부가 함께 참가한
것 같았다.
철마산을 내려와 큰길을 계속 뛰어 3cp에 도착하니 둘러왔는데 막히지 않으니 내리막에서
앞에 가던 사람들 보다 우리가 먼저 올 수 있었다.
제3cp(35km) 제한시간 10시간중 7시간 21분에 도착하니 체크하고 식권을 주며 앞의 식당에서
식사 하란다. 자그마한 식당이라 먼저 온 사람들로 꽉 차 있고 메뉴는 쇠고기 국밥이었다.
새벽이라 밖은 춥지만 식당안은 사람들의 훈기로 따뜻해 좋았다.
입맛은 별로 엿지만 갈길을 생각해서 한 그릇을 천천히 다 비웠는데 그래도 내가 좀 빨리 도착한
편인지 점점 더 복잡해 진다.
셀프 커피를 한잔 뽑아들고 나서니 바깥 기온이 싸아한게 몸이 움츠러 든다.
식당에서 사람들이 그렇게 많아도 길을 나서면 또 혼자가 된다.
어차피 서로의 주력이 맞지 않기에 서로에게 부담을 주지 안으려니 그런것 같다.
울산국도 갈림길에 경광등으로 길을 안내한다.
날씨를 판단해 겉옷 상의 하나만 있으면 될것 같아 모자달린 얇은 조끼와 얇은 바람막이 바지를
물품보관차에 맡기고 일직선으로 뻗은 포장길을 천천히 간다.
울산국도 갈림길에서 경광등으로 길을 안내하며 횡단보도를 건너 가란다.
마을로 들어서니 밤이라 그런지 뭔가 좀 이상해 이리저리 살피니 개울이 나온다.
아뿔사 다리를 건너 마을로 들어가야 되는데 혼자서 마음만 바빠 착각했다.
국도에서 마을로 들어서자 마자 바로 산으로 오르게 되는데 크지 않은 산이지만 숲이 짙어
사방이 캄캄한데 후렛쉬 불빛으로 길을 찾아 가자니 신경이 많이 쓰인다.
보이진 않지만 내 뒤에 사람들이 오고 있다는 생각에 무섭거나 하진 않았다.
이리 꼬불 저리 꼬불 길을 찾아 가는데 오른쪽 저 아래선 쌩쌩 달리는 차소리가 요란하고 왼쪽
아래는 숲사이로 컨트리클럽의 불빛이 보이기도 한다.
얼마나 갔을까 내리막에서 앞서가던 사람이 컨디션이 별로인지 길을 비켜준다.
컨트리클럽 입구에서 산은 끝나고 고속도로를 가로 지른 차가 다니는 큰 다리를 지나니 양산
가는 국도변에 승용차 트렁커를 열어 놓고 음료수와 커피를 주는데 먼저 온 몇 사람들이 모여
쉬고 있었다.
커피 한잔 마시고 여럿이 함께 농장으로 오르는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오르니개들이 요란하게
짖어댄다.
계명봉은 범어사 왼쪽에 있는 산으로 멀리서 보면 피라밋 처럼 뾰쪽하게 생겼는데 생긴 그대로
경사가 만만찮게 급한데 떨어진 낙엽까지 쌓여 미끄럽다.
새벽이 되니 기온이 점점 내려가고 골짜기를 타고 올라오는 찬바람이 세차다.
코가 땅에 닿을듯 가파른 길을 힘겹게 오르니 정상의 진행요원들 두툼한 옷을입고도 추워
하는게 고생이 많아 보였다.
수고한다는 말 한마디를 남기고 쉬지도 않고 급경사의 내리막길을 급히 내려가니 먼저 가던
사람들이 모두 비켜줘 단숨에 내려서니 또 혼자가 되었다.
범어사뒤의 임도를 따라 고당봉을 향해 올라가는데 후렛쉬 불빛이 많이 약해졌다.
예비 밧데리가 베낭속에 있지만 사방이 캄캄하고 귀찮키도 하고 이제 조금후에 날이 새겠지
하며 미련스럽게 꾸역꾸역 올라간다.
낮엔 주위 경관을 봐가며 올라가니 지루함이 덜 하겠지만 캄캄한 어둠속에서 땅만보며 가자니
정말 멀게 느껴지는데 갑자기 주머니속에서 나는 소리가
"일어나세요. 11월11일 일요일 오전5시45분입니다."하고 모닝콜이 울린다.
비록 기계음이긴 하지만 사람의 목소리를 들어니 반가운 마음이다.
쉬지 않고 서너 사람을 앞서며 계속 올라가니 고당봉은 오르지 않고 바로 밑에서 금샘쪽으로
코스를 돌려 놓았는데 야간에 바위길을 오르는 위험을 들기 위함인것 같았다.
희미한 불빛으로 돌길을 내려 가자니 신경이 많이 쓰인다.
이윽고 북문산장앞 불빛은 환하나 인적이 없어 주능선을 향해 그냥 지나친다.
긴 돌계단길을 올라서니 어제밤에 거쳐온 장산이 까마득히 보이고 동쪽 하늘이 조금씩 밝아
오는데 반대편 낙동강쪽에서 세찬 바람이 불어와 손끝이 시리다.
동문이 가까워 지니 일찍 산을 오른 사람들이 한 사람씩 보이기 시작하고 후렛쉬가 필요없어
졌다.
배가 고파온다 동문지나 풀밭에 앉아 파워젤을 하나 먹고 칼로리바란스는 가면서 먹는다.
산성고개 제4cp에서 배번 체크하고 진행요원이 보온병에서 따뜻한 커피를 따라줘 마시는데
한 사람이 차에서 비닐 봉지를 들고 내리더니 종이컵에 된장국을 따라주는데 허전하던
속이 확 풀리고 힘이 나는듯했다.
남문 케이블카쪽으로 올라가는 산길은 꽤나 가파르고 막판에 힘이 많이 드는 코스다.
오르막을 가는데도 춥고 바람이 스산하게 불어 손끝이 시리다.
아! 숲사이로 멀리 동녁에서 빠알갛게 아침해가 뜬다.
=계속=